이런 문 대통령에게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은 불가능해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젊은 층의 사면 반대 여론이 훨씬 높다. 민주당 지지층은 말할 것도 없다. 문 대통령은 인기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돌았던 성탄절 사면설이 물 건너 갔다고 한다.

정치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국민 다수나 지지층이 싫어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욕을 먹으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진보 사민당 출신 슈뢰더 총리가 핵심 지지 기반인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 개혁을 완수하고 정권을 잃은 것이 정치 지도자의 본령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지도자다운 모습을 임기 중 한 번이라도 보여준 적이 있나.

사실 박·이 전 대통령 사면은 이미 때를 놓쳤고 의미를 잃었다. 두 사람 입장에서도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새 정부인데 이제 와서 문 대통령의 은전을 입고 싶은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두 전 대통령을 사면했으면 하는 것은 한국 대통령 잔혹사가 또 하나의 악업을 쌓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 그 위에 못질까지 하지는 말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손으로 박,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하고 임기를 마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 지금 둘로 쪼개진 우리 사회의 적대감은 터질 듯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보복의 악순환을 멈춰세우지는 못할 망정 원한의 씨에 물을 뿌리지는 말아야 한다.

1997년 12월 김대중 후보 당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가 만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에 합의했다. 구속 2년 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전, 노 대통령과는 커다란 구원(舊怨)이 있었다. 김대중 후보는 전두환 사면 찬성을 말했다가 지지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했다.

듣기로는 문 대통령도 사면을 고민했다고 한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올해 초 문 대통령에게 두 전 대통령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했던 것도 문 대통령과 교감 아래 한 말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사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결단할 때다. 박 전 대통령 수감은 5년이 돼간다. 대통령에겐 지지층이 싫어하고 여론에 인기도 없지만 나라 전체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일을 하는 게 진짜 고집이다. 한 정파가 아닌 국가 지도자로서의 문 대통령 모습을 보고 싶다. 한 번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