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0, 2012

Convenience Store에서 맥주판매는 그래서 시급하다.




요즘과 같은 연말 연시에는 온타리오주에 있는 맥주판매소와 440여개의 맥주outlets가 호황을 맞아  문을 열면서 닫을때까지 북새통이다.  LCBO에서 맥주가게를 control하고 있는것으로 우리 온타리안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득을 남겨 온타리오주 정부에 많은 이득을 남겨 주는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전에 온타리오주의 야당 당수, Tim Hudak이 한발언이 그냥 스칠일이 아님을 다시 음미해 본다.  "온타리오주민들의 정신적 성숙도를 아직도 믿지 못하고, 맥주판매를 LCBO에서 지정한 판매소에서만 구입할수 있도록한 오랜법을 이제는 버리고,  퀘백이나, 남쪽의 뉴욕주에서 처럼 Convenience store에서 자유롭게 구입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여름철 더운때는 맥주는 음료수 대행으로 많이 마시게 된다.   맥주 한Pack를 구입하기 위해서 차를 운전하고 다녀야 할 정도로 불편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많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Queen's Park에서 Columnist로 활동하고 있는 Martin Cohen씨의 설명에 의하면,  온타리오주에서 판매되고 있는 맥주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것 처럼 그판매액이 LCBO를 통해서 정부의 금고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맥주판매의 독점권을 갖고 있는 회사는 전부 외국자본이라고 했다.   Anheuser, Busch Invev, Molson Coors 그리고 Sapporo맥주회사로서, 이들은 벨지움, 브라질, 미국 그리고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했다.

Labatt, Molson, Sleeman등의 캐나다 맥주회사는 이미 그 ownership이 외국자본에 넘어간지 오래됐다.  이들 외국맥주회사들은, 독점권을 이용하여, 정부에서 행할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정부는 그냥 보고만 있는 셈이다.  고객인 온주민들이 입맛에 맞는 compact package 맥주를 구입 할려고 하면, handle하기에 편리한 6병으로 포장된 맥주는 거의 없다.   입맛에 맞는 브랜드를 구입할려고 찾으면 대개는 24병으로 포장된 Package를 구입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 필요한 양 이상을  구입해야  하는데,  이런 간접적인 편법을 이용하여 이들 외국회사들은 시장점유율을 약 80%이상 차지하게 되여 자동적으로 좌지우지 맥주판매에 횡포를 부려도, 정부는 손도 못대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이들을 선택했는가?

시간은 계속흘러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아직도 1927년도에 만들어 놓은 법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즉 와인이나 기타 술은 LCBO에서 관장하고,  맥주는 업주들끼리 조합같은 형태의 판매조직을 통하여 판매 하여오는 동안에  몇개의 회사들을 그판권을 독식하여 위에서 언급한 외국회사들이 판매권을 독점하도록 한 법이 바로 이시간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횡포는 오래전 영국이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치하여 인도의 무진장한 시장을 점유하여 착취를 했던 경우에 비교 될수도 있다고 할수 있겠다.

아무런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지 않은채 독점 알코홀판매 제도를 해체해 버리면, 여러면에서 정부로 들어가는 이득금에 대한 차질을 빗을수 있는것도 배제 할수 없다.
LCBO전체를 팔고 민영화 시키겠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맥주판매에 대해서만 전매사업에서 떼어서 Convenience Store등에서 판매 하도록 법을 바꾼다면  온주민들이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맥주판매가게와 440개에 달하는 맥주취급점에 대하여 잘 못알고 있는 내용을 알아야하는게 먼저 일것 같다.

만약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온주정부가 맥주판매에 대한 비즈니스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든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그렇게 말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있다.  분명한것은 정부가 맥주를 판매하는 권한이나  Store가 없다는것을 말한 것이다.

지금으로 부터 10여년전에 Burlington에 맥주가게를  새로 open 했었다.  그때 Perry Davidson씨는 부사장으로  300종류이상을 Store에 진열하여 고객들의 호응이 무척 좋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주인은  이를 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객들은  이것 저것 골라서 입맛에 맞는 맥주를 맘껏 구입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Labatt, Molson Blue 그리고 Cnadian등의 맥주는 판매가 줄어들어,  맥주 Cartel주인들은 궁리끝에 또 다른 방법을 만들었었다.  그내용은 약 30 종류의 맥주는 취급하면서,  시원하게 냉장시켜 손님들을 유인하는 방법을 썻다고 한다.

1940년에  몇개의 맥주제조사들은  맥주소매판매망을 연합하여 사들이기 시작했고,  그후에 그들은  이름을 바꾸어, Brewers Retail로 바꾸어  맥주제조에서 부터  소매 판매망까지 전부 직접 그들이 판권을 장악하여 그들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다시 몇십년이 흐른후, 이들 맥주회사들은 전부 외국회사들이 접수하여 위에서 언급한데로 오늘날에는 온타리오주 정부의  간섭을 벗어나  맥주판매를 온주민들에게  하고 있는데,  온주민들은 이같은 깊은 내막을 거의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이의 시정을 요구할 권한도, 의지도 없기에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LCBO를 민영화 시켜야 한다는 공약을 해오곤 했었던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지만, 맥주판매는 LCBO에서 운영이 별도로 되여있어,  정확한 정보를 온주민들에게 제공하기위해서는 정치꾼들이  LCBO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꼈으면 한다.   맥주판매 시스템은,  Brewers Retail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낡아빠진 운영체제를 온타리오 정부는 비밀에 부치고, 지금까지 숨겨온 이엄청난 사실에 온주민들의 상당수는 우리가 인질로 잡혀 몸값을 지불해온 꼴이 된것이라고 한탄을 퍼붓는 심정이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야당인 보수당에서만 당수가 한번 언론에 의견을 비쳤을뿐,  여당인 자유당 정부는 이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소수정부인 자유당은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온주민들이 지금으로 부터 어느순간에든지 투표소에 가야할 처지에 있다.   현재로서는 어느 뚜렷한 언급이 없다.   계속해서 온주민들은 비싼 맥주를 마셔대겠지만, 이득금은 온타리오 정부의 금고로 들어가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Convenicence Store에서 맥주를 판매할수 있도록 정치꾼들의 각성이 절실이 요구되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Wednesday, December 26, 2012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둘러앉은 성탄절 저녁 테이블

이제는 나보다 훨씬 더 커버린 두아이와 같이 온 친구가 식탁에 삥 둘러 앉아, 엄마가 아침부터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코끝이 찡해 옴을 느낀다.   지금은 각자의 집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에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다시 만남을 만든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커보이던 식탁이 오늘 이시간에는 꽉 찬느낌이다.  어제낯에 Super Market에 나가 터키를 사고, 또 다른 식품도 구입 했었다.   쇼핑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성탄절 저녁에 꼭 참석할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우리 부부는 그렇게 음식준비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었다.   다행 스럽게도 엄마의 offer를 받아 주어서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게 된것이다.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한인들중에는  명절때는 특히 성탄절에는 온식구가 모여  음식을 나누면서  혈육의 정을 나누는 얘기들을 들을때면,  가끔씩은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나도 고국에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런 분위기속에서 하루저녁을  뜻있게 보낼텐데....라고"
이곳에는 내쪽은 나혼자다.   

이민 36년동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삶의 즐거움보다는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뇌리에서 떠오르는것은, 어쩌면 우리 한인 모두가  경험했던 삶의 현실이었을수도 있었겠지만,  몸서리 쳐지도록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에 지난 36년간 살아온 삶을 다시 반복해서 하라고 한다면, 삶을 차라리 포기하는쪽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식탁에 둘러 앉아 Turkey고기를 Cranberry Sauce에 찍어 먹으면서, 아이들이 가끔씩은 어렸을적의 얘기를 무심코 저희들끼리 할때면, 괜히 마음이 아파온다.   그때 좀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먹고살기위한다는 핑계를 대고   같이 놀아주지도 못한때가 많았었고,   때로는  초등학교, 중학교  최근에는  Executive Course 로 MBA 학위를 받을때도 그현장에 있어주지 못했던 점들이 아빠의 가슴속에서 옥죄어 나옴을 느끼면서,   그래도  잘자라서  자기 앞길을 헤쳐 나가는 아이들이  보배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때, 아이가 학교 밴드부에서 큰 나팔을 맡아 불면서, 때로는 집에 까지 들고와 연습을 하느라 삑삑 소리를 낼때면,  피곤한 몸을 쉬러 방에 들어왔는데, 그소리에 쉴수가 없을때는, "야 빨리 빨리 불고 끝내라" 라고 아이를  야단치는 무식한 아버지 였었던 기억이, 지금 식탁앞에 앉아 있는 아들 아이를 보면서 주마등 처럼 기억속에서 흘러 나온다.   아이는 아마도 기억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때면 아이는" 아빠 3/4박자 노래인데 어떻게 빨리 불수가 있어?" 라고 대답하면서, 무식한(?) 아빠를 쳐다보곤했던 코흘리개 아들이었었다.

삶의 현장에서  손님을 상대로 장사 하기에 바쁜 그때,  손님중에 한분이 가게에 들려, "네 아이가 지금 학교 밴드부에서 리더로  Performance준비를 하고 있는것을 보고 왔다.  아주 잘 하더라.  가서 Cheer해주어라" 라고  아이가 학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알려 준일도 있다.    그럴때면 부모인 나를  위해서 해주는 소리인지? 아니면 넌 장사만 생각하고  아이의  학교생활에는 관심이 없느냐? 라고 비아냥 거리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었다.  학교의 Arena안에  Podium에서 연주를 하고 있던 아이가 아빠인 나를 보더니, 더이상 나팔을 불지 못하고  뻔히 한참을 아빠를 쳐다 보다가, 이를 목격한   선생님의 손짖으로 다시 나팔을 부는 순간도 목격한 기억이 떠 오른다.  아이는 아빠나 엄마를 생각할때, 의례히 우리 부모는 장사에 파묻혀 학교에 올것이라고는   상상도 안해왔었다는  증거였으리라.

중학교 졸업식에 모처럼 시간을 내여 참석했었다.   예상치도  않게 아이가 Award를 많이 받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신경써 가면서 보살펴 준일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뿐이었음이 더 있었다.
아이가 어쩌다 아침에 늦잠을 자느라 학교 등교시간에 늦어도,  아이들에게 성화를 부린일이 없었다.    학교 다니는일은 부모가 해줄일이 아니고,  아이들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만 미루면서,  생업과 연결시켜 왔었던 기억이 오늘 저녁 이저녁에 새삼 떠 오른다.

언제 준비 했는지, 선물 꾸러미를 엄마에게 아이들이 내민다.   겨울이니까 춥지 않게 입으라고 두툼한 샤쓰와 부엌에서 엄마가 사용키좋은 Juice Mixer기를 사왔다.   내눈에는 아직도 그들이 어린 아이로만 보여, 선물로 가져온 그물건들을 사느라 지출했을 돈을 속으로 먼저 계산을 해본다.   적은 돈이 아닌것 같다.   고맙기도 하지만, 괜히 마음이 쓰리고 아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하는데...."라고.   엄마의 마음은 더 한것 같다.
부모의 마음은 어느 누구나 다 한결 같은 생각일 것이다.    아까워서 함부로 몸에 걸치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  엄마 또한  Juice Mixer기에 대해서 같은 생각일 것이다.

오래전 내가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사회 초년병이었을때,  어머니 돗보기 안경과 털오바를 사드린 적이 있었다.   그땐  어머니가 "괜찮다  나는 그런것 없어도 할일 다한다" 라고 말씀 하셨던  그뜻을  오늘 이저녁에야 어렴푸시 깨달은것 같다.  아이들이 사온 선물을 열어 보면서.
그뒤  주말이 되면 서울에서 시골집에  들리면, 어머님은 돗보기 안경을 끼시고, 양말을 꿔매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었고,  읍에 나들이 가실때는   꼭 오바를 입고 다니셨던 기억이 떠 오른다.
아마도 동네 친지분들과 같이 읍에 걸어서 다니면서도  은근히 자랑을 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것을  식탁에 마주 앉아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실감한다.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할려고 하는 순간,  아이가 아빠 내가 식사감사 기도 할께요.  의외의 발언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언제 아이가 이렇게 기도까지 하는 신앙생활을 삶의 일부로 생활화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한국말 보다는 영어가  그에게는 쉽기에,  그점이 약간은  아쉽긴 했지만.  

터키를 roasting하는 법은 오히려 아이들이 더 잘알고 익숙해 있는것으로 생각돼지만, 그래도 한점 고기를 씹으면서,  "엄마 고기가 참 맛있다.  몇도에 마추고 얼마동안 roasting 했어요?" 라고 엄마에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도 보기좋다.    이런 흐믓한 순간들을  아이들이 보여 주기에
산고의 고통도 이겨 내면서 자식을 생산하고,  그래서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는 Simple한 진리를  머리속에 깊이 각인 한다. 

먼훗날, 나의 아이들을 통해 새생명이 태어나고, 기하학적으로 산술적으로 후손들이 늘어나서,오늘과 같은 식구들, 아니 자손들의 모임이 있을때, 우리의 시조(the father of progenitor)에 대한 뿌리를 찾는다고 한다면, 나와 내아내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어렷을적 나의 부친께서 족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 기억이 어렴푸시 생각난다.  정처없이 개나리 봇짐을 싸서 헤매다가 한곳에 정착하여 자손들을 생산하고....... 몇대가 흐르고 난뒤, 그가 바로  소위 고국에서는 가보로 여기는 족보의 시조로 등재된것처럼,  나도 그런위치에 서있음을 아이들과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성탄감사 식사를 하면서,  우리 부부의 위치가 매우 중요(?)한것임을  느끼면서 그러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가는 앞에서 나도 별수없이  인생황혼기를 살아가는 한초로의 심정으로  생각이 좁아짐을 느낀다.

바라기는 건강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맡은바 삶의 책임을 다해가면서 사회인으로서 반듯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부부의 삶이 다 할때까지 흐믓한 마음으로 볼수 있도록 살아가기만을 바랄뿐 더이상의 아이들에 대한 욕심은 없다.   오늘밤의  식탁은  온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감사의 요건으로 채워진 음식을 먹을수 있는 축복을 주신 그분에게 진정으로 아뢰고 싶은 순간이다.    창문너머 온타리오 호수위에는 한떼의 백조가 한가롭게 거북선처럼  먹이를 찾아 바삐움직이는 모습이  많은것을 느끼게 한다.  감사.










 

Saturday, December 22, 2012

성탄도 아니고, Holiday도 아니고,Carol Song이 없어졌다.

괜히 마음이 들뜨곤 했던 연말의 축제 기분이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오늘은 12월 21일, 금요일이다.  특별히 누구에게 선물할 물건을 살 계획이 있어서 쇼핑몰에 간것은 아니지만,  쇼핑몰의 중앙지점에는 어김없이 어린 아이들의 동심을 현실로 보여주는 산타할아버지와 사진찍기위해 어린아이들과 함께온 젊은 부보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는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나도 오래전에, 아직 아이들이 어렸을때, 산타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정겹고 은은히 흘러나와 온 쇼핑몰에서 바삐 움직이면서 선물사기에 여념이 없는 뭇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당연히 Christmas 하면 캐롤송이 쇼핑몰에서나 상가지역의 가게에서 은은히 흘러 나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괜히 기분이 들떠서 꼭 필요치도 않은 물건들을 사곤 해서 경기부양에도 한몫했었던 기억도 있다.  선물을 사는 사람이나, 파는 가게주인 똑같이 분위기속에서 희망을 느낄수 있었다.

오늘 들린 쇼핑몰안의 Main Hall의 천장과 벽에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장식이라기 보다는 Holiday기분을 내기위한 화려한 Decoration이 걸려져 있고,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 Tree옆에 잘 단장된 Podium에서 어린아이들을 무릎에 얹혀놓고,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고, 덩달아 젊은 부모들도 사진을 찍어대는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무드는 전연 느낄수가 없었고, 그위에 뭔가 빠진게 있는것 같았지만,  쉽게 찾아낼수가 없어 아내에게  물어 보기도 했었다.  뭔가 빠진게 있는것 같은데 생각해 낼수가 없네라고.   쇼핑몰안의 분위기가 쇼핑객들의 기분을 up되게 해주질 못해서인지,  쇼핑객들의 발걸음도 활기가 없어 보이고, 가게마다 사람들이 붐비는것도 옛날과는 확연이 다르게 한가하기만 내눈에는 보여졌다.

캐나다와 미국은 분명 청교도정신을 근간으로 해서, 초기 청교도인들이 중심이 되여 기독교 정신이 사회의 저변에 깔려서, 매년 이맘때면 당연히 성탄 Tree가 세워지고, 12월 25일 까지는 듣기 실어도 들어야 했던 X-mas Carol Song들이, 일년동안 살아오느라 지친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청량제 역활을 했었다. 그러한 전통이 200년이 넘게 이어져 왔었는데.....지금은 공공장소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흘러 나오면 어느 특정종교를 두둔 한다는 불평이 들어와, 종교의 자유를 들이대어,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사실을 오늘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래서 쇼핑몰안에서 흘러나왔어야할 캐롤송이 사라져 버렸지만, 대신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전연없어, 적막강산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쇼핑객들의 기분을 down시켜, 쇼핑할 마음도 없어져 버리게하고 분위기를 무겁게 해서,가게는 매상도 오르지 않아,  전체 사회가 웃음을 잃어 버린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평등을 주장하는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민주주의의 맹점이 여기에 있는것 같다.   정치꾼들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서  각계층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북미의 국가, 미국과 캐나다가 본래의 색갈을 퇴색시켜,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지난 수년전부터 거의 자취를 감추고, Identity가 확인되지 않은 색갈들로 바뀌었다.  그색갈에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흘러나올수가 없다.  신화속의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기를, 그래서 빨간 양말을 거실 벽난로위에 걸어 놓고 밤잠을 설쳐가며 기다리는 어린 동심들에게 그런꿈을 이루게 하는 분위기는 집에서도, 쇼핑몰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것을 느끼는 안타까움은 나만이 보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겠지만,  세태가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는것이려니..... 체념해 버린 군중들의 표정에서 밝음을 볼수 없음이 안타깝다.

Smart Phone이 세상에 등장하여 지구촌이 이제는 옛날 어렸을때 이웃 동네 마실을  가는것 보다 더 간편하게 빠르게 사는 모습들을 주고 받고 하지만,  기계적일뿐,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인심을 나누게 하게 그런 포근하고 의지하고 싶은 정서는 실종됐고, 삭막하기만 하다.  좋은 뜻으로 문명의 이기가 사용되기 보다는 반대의 방향에서 서로에게 경계하고 질시하는쪽으로 흘러가는 세태도 크리스마스 캐롤송의 실종과 무관 하지만은 않은것 같다.

중동의 여러나라를 관광차 들려서 그곳 사람들과 친교도하고, 풍습도 겪어보고......
그곳의 사회적 변화는 거의 없음을 보았었다.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의 사고 방식이 확고하게 서있어,  국가로서의 존재성의 변혁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그들 고유의 풍습과 문화를 지켜 나가는것을 여행중에 많이 느꼈었다.  소수의 불평이 있을수 있겠으나, 다수의 의견을 쫒아 가는 지도자들이 사회적 관습을 지켜가는 의지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됐다.

민주주의가 서구사회에서는 잘못 이해돼 가고  Practising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선거때 지지표로 연결되는 맹점을 소수의 입심센사람들이 잘이용하고, 리더들은 이용당하고 있음에 한탄을 금할수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왜 크리스마스만 성스러운 축복의 날이냐?라고 함축된다.  비난받기 싫고, 또 표잃는것을 염려하여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이러한 회색빛갈의 축제 분위기가 되여, 캐롤송하나 흘러 나오지 못하게 되는 성탄절이 되고 만것으로 이해된다.
요즘의 캐나다와 미국은 건국정신을 전연 찾아 볼수가 없을 정도로 실종돼 버린지 벌써 오래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 그옛날에 돛단배 타고 유럽을 탈출하여 끝없이 펼쳐지는 대서양의 가파른 파도를 가르고 항해아여 이곳 북미까지와서 오늘의 잘먹고 잘사는 북미대륙의 초석을 다졌던 선조들의 건국정신을,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뿌리채 뽑아 던져 버린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 정치적 지도자들은 오늘 그들의 아이들, 아니면 손자손녀들의 손목을 잡고, 선물을 사기위해 쇼핑몰, 아니면 상가를 걸어다니면서, 뭔가 가슴이 꽉 막힌,  뭔가 꼭 있어야할 Ingredient가 빠져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을 먹는것 같은 기분을 느낄것이다.  

성탄축하의 Carol Song들을 이제는 겨우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만이 잠깐 들을수 있는 시대의 변화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는 나는 해석할수가 없다.  이시대가 향하여 달리고 있는 최종목적지는 어디일까?라는 의문점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뿐이다.  역사에서 배운 십자군전쟁같은, 생각키도 싫은, 그런 참극이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걱정뿐이다.














 

Friday, December 21, 2012

Time's 기자가 본 대선뒤의 숨겨진 이야기(박근혜)

이글을 읽기전까지는  외국기자가 쓴 글이 얼마나 한국을, 그것도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를, 잘 안다고 감히 그녀에 대한 대선뒤의 숨겨진 얘기를 쓴다는 것일까?
모르는 그녀에 대한 진실을 이글을 통해서 알아본다기 보다는 외신기자가 어떤내용을,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나열되여 있는것을 확인(?)하기위함에서 들여다 본것이다.
 
나의 상상은  다만 상상으로 끝나고 말았음을 알았고,  외신기자의 전문성이 많이 깃들여진
취재 내용은 "아 그래서 역시 기자생활을 하는구나"라는  긍정을 부정할수 없었다.
 
좀처럼 얼굴의 표정이 보통사람들 처럼 변화하지 않고, 내면에서 조절하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파악하고 있는 기자의 예리한 눈초리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같은 풍습속에서 같이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자만(?)했던 한국사람이 어찌 나혼자 였겠습니까?  그예가 그녀가 광주를 방문했을때 아주 잘 표현된것으로 기자는 보고 있었다.
 
그녀의 부친은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18년 동안 통치한 분이다.  아버지의 고향, 한반도의 남단 동쪽지역을 공업화 시키고, 그반대편인 서쪽, 그중에서 광주는 역사적으로 다른지역에 비해 liberalism을 부르짖는 대표적 도시였는데, 공업화에서 제외시켜, 그지역 국민들에게 좀 심하게 표현하면 한을 더 심어준 격이 되는 좋지 않은 선물을 준격이 됐다.  차거운 그곳에서 그녀는 주민들로 부터 냉대를 받는 대신에 지혜롭게 잘 처신해 "무슨 염치로 이곳에 왔느냐" 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고, 사상 처음으로 두자리 숫자의 지지를 얻어냈다고 했다.
 
박근혜는  한국사람이라면 오늘의 한국이 있게된 초석을 다진 그의 아버지로 부터 유산을 물려 받았다.  어떤이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또어떤이에게는 독재자로 남아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국민들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신앙처럼 고마워한다.  혁명과 같은 개혁을 해서 경제기틀을 다졌고,  특히 한국전쟁이후 경제적으로 거의 쓸모없는 곳으로 여겨지던곳에  경제 기적을 일으킨 그의 쉬지않고 정직을 밑천으로 열심히 일하고 이끌어온 영도력에 후한 점수를 주고 공경한다.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Senior들은 박근혜를 통해서 다시 보기를 원하고 그래서 이번 선거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보고 있는것 같다.  특히 아버지가  암살당했다는 첫소식을 접한 그녀는  첫마디가 "휴전선은 이상 없나요?"라고 했던 그녀를 믿음직 스럽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이에 앞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이북의 사주를 받은 자로 부터 암살당했을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 처녀로, 어머니가 맡았던 First Lady역활을 하면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확고한 사상을 자리매김한것으로 보고 있는것 같다. 이제 집권한지 겨우 1년차인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어떤식으로 그녀를 시험할지(?)가 그녀가 준비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현 이명박 정부에선 북한은 2번씩이나 공격을 감행 했었다.  첫번째가 천안함 폭침사건, 두번째가 연평도 포격사건, 두번다 이명박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반격을 취하지 못한것으로 기록되고 있는것 같고,  그뒤에는 진보를 부르짖는 야당과 젊은 세대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얻지 못한점도 한몫했다고 본다.
 
가난했던 세대가 겪었던 인생의 맛과, 전쟁의 참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호시탐탐 틈새만 보이면 Agitating할려고 하는 북한 정권의 실상을 리얼하게 알리고 홍보하는, 그래서 조국 대한민국은 무장을 해야만 하는 특유의 이유가 있음을  계속적으로 교육차원에서 알려줬으면 하는 나의 생각도 곁들여 본다.  
 
한국사회의 구조상, 아직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대우는 갈길이 멀다고 하겠다.  경제적 규모는 세계 11위로 성장했지만, 여성의 사회적 대우는 챙피하게도 전세계에서 108위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속에서 여성대통령이 됐지만, 과연 이러한 Gap을 얼마나 좁힐지는 그녀의 향후 대통령직 수행에서 피부로 느낄만큼 변화 시킬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분석한것 같다.
 
야당후보였던 문재인이 주창한 개혁보다는 바로 코앞에 대포와 장갑차로 무장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안보개념과 안정을  더염려하는 기성세대들의 생각과 박근혜의 생각이 맞아 떨어져 승리를 이루었지만, 압도적 승리(Landslide)는 아님이 또한 부담이 될수도 있다는 분석같다.  또 그냥 지나칠수 없는 고민은, 아직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날개를 달고 부상한지 얼마 안되는 새와 같아, 성숙되기까지의 여정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의 욕구와 충돌을 면할수 없게 될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꾸준히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까지 달려와,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흔히들 여성의 본능중의 하나인 상황에 따라서 표정이 칠면조처럼 변하는 행동을 겉으로 거의 나타내지 않은 단호함은, 그래서 Ice Queen(얼음공주)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단다.  여성이 국가의 수반이 되고, 세계정치무대에서 활동한 예는 많지만, 결혼안한 처녀의 신분으로 국가의 수장이 된 예는 역사상 두번째라고 한다.  첫번째는 영국여왕을 지냈던 엘리자베스 1세 이고, 그뒤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라고 한다.   이점은 두고두고 한국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기록될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당선자가 선거운동때 주창했던 모든 공약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잘사는 조국이 되기를 기원한다. 
 
 
 

Behind the Story: TIME’s Emily Rauhala Discusses South Korea’s First Female President

 
Park Geun-hye
Lee Jin-man / AP
A man looks at the wall paintings of South Korea's President-elect Park Geun-hye of ruling Saenuri Party and national flag at the Korean Civic Education Institute for Democracy in Seoul, South Korea, Thursday, Dec. 20, 2012.
On Dec. 19, conservative candidate Park Geun-hye won the race for the South Korean presidency. The 60-year-old career politician will be South Korea’s first woman President when she is inaugurated in February. She is also the daughter of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 the dictator who ruled the country from 1961 to 1979. TIME Asia Associate Editor Emily Rauhala wrote about Park and her campaign for a recent magazine cover story. The day after Park’s election victory in a tight contest, TIME spoke to Rauhala to get the story behind the story of Park’s historic return to the Blue House.
What surprised you when you followed Park on the campaign trail?
I saw Park Geun-hye campaigning in enemy territory. I followed her to the city of Kwangju in the country’s Southwest, which is part of a region that has historically supported liberal candidates. I had heard that she was very cold and I knew she had the nickname “Ice Queen.” So what surprised me was her demeanor with people: she had a strange mix of being very reserved and yet very personable at the same time. She is great about shaking people’s hands, about making eye contact, about politely bowing to the people before her, but—at least in Kwangju—she rarely lingered to ask questions. I got the impression that her image was tightly controlled.
Park’s father, General Park Chung-hee, who ran the country for 18 years, developed South Korea’s economy in a way that split the country from East to West. The Southeast, where he was from, became the industrial heart of the country, while the people in the West now feel that they have been left behind. Yet she operated well in this hostile environment.
Looking back at her successful campaign, was her father’s legacy an asset to Park Geun-hye’s presidential aspirations?
Her father Park Chung-hee is probably the single-most influential and single-most divisive figure in contemporary South Korean history. The legacy is both her blessing and her curse. On the plus side, her father is idolized, particularly by some older South Koreans. He is credited with revolutionizing the economy, transforming South Korea from an economic wasteland after the Korean War to the economic powerhouse it is today. The older generation and Park Chung-hee’s fans in general tend to see him as someone who was hard-working and honest. Park Geun-hye gets to bask in that glow.
On the flip side, her father’s rule is still something the country is coming to terms with. He seized power in a military coup and became increasingly authoritarian over the course of his tenure. By the 1970s he started jailing critics and implemented a repressive constitution; a lot of the current crop of liberal and progressive leaders cut their teeth as student leaders and activists fighting his rule. During South Korea’s democracy struggle, public sentiment toward General Park hardened. After her father was killed, Park Geun-hye lived in relative seclusion, staying out of the public eye until she re-entered public life, as a politician, in the wake of the 1998 Asian financial crisis. For some people, she will always be the dictator’s daughter, nothing more, nothing less.
In your story you recounted how, when she first learned of her father’s assassination, she asked whether the border with North Korea was safe. How will Park deal with the North’s dictator: Kim Jong Un?
This is one of the biggest questions going forward. Park Geun-hye has an incredibly difficult history with North Korea. In 1974, her mother Yuk Young-soo, then the First Lady, was assassinated by a North Korean sympathizer. That forced her to become the de facto First Lady at age 22. North Korea has been very critical of her.
Over the coming months we can expect Kim Jong Un to be testing Park Geun-hye and seeing what she is made of. During the campaign, Park promised to return to engagement with Pyongyang, a departure from the hardline policy of incumbent President Lee Myung-bak—which was seen as a failure by many South Koreans because of two attacks during his tenure: an artillery attack on a South Korean island, and the alleged sinking of a South Korean naval vessel, both in 2010. She has said she hopes to build trust with the North. We’ll see if she can do it.
South Koreans have elected their first woman president. Can her conservative policies bring about more gender equality in the patriarchal society that is South Korea
Considering that South Korea is the world’s 11th-biggest economy, it’s quite striking that it ranks only 108th in terms of the World Economic Forum’s gender-gap index. There is no shortage of highly educated and accomplished South Korean women, but their rates of labor force participation and their rates of pay lag behind their peers in advanced economies. A South Korean woman can expect to make an average of 39% less than a man in the same job. Women are also over-represented among contract workers, who often don’t getbenefits, work irregular hours, and are paid less. There is a lot to do.
Park Geun-hye made women’s rights one of the cornerstones of her campaign. She promised a “women’s revolution” for South Korea, mentioning issues such as childcare. The word “revolution” might be a bit of a stretch: according to her critics, her feminist credentials are somewhat lackluster and her identity as a woman has never been front-and-center until this campaign. The question is whether she can make good on the pledge of changing the reality of South Korean women without alienating the more conservative old-school members of her Party’s base.
In her victory speech in Seoul, Park promised to revive what is Asia’s fourth-largest economy. Will she be able to deliver?
It’s going to be tough. One of the things that surprise outsiders most is the extent North Korea didn’t figure prominently in the election. The campaign was very much more about domestic economic concerns and quality-of-life issues, rather than the question of North Korea, which looms large in South Korea, but much more so in the international imagination. South Korea is growing. HSBC Research predicts 3.8% growth for 2013. While many Western countries could only wish for suchfigures, for South Korea that represents the end of 50 years of breakneck growth. There is a growing concern about the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and household debt is at 154% of household income. Ordinary South Koreans increasingly feel that they are scrambling and struggling to make ends meet, let alone to get ahead. The big challenge for Park will be trying to find a balance between her more populist campaign rhetoric—she talked about reining in the corporate conglomerates that dominate the economy, lowering the cost of education, helping women access affordable childcare—while maintaining her popularity with the conservative base.
The left-leaning opposition candidate Moon Jae-in conceded defeat after running on a platform of more social spending and a softer stance on North Korea. Does the South Korean left have to rethink itself?
Moon ran a strong campaign. About 51.6% of South Koreans voted for Park, who represented the legacy of state-led development and stability, and just over 48% voted for Moon, with his more progressive, more liberal vision for the country. This has certainly not been a landslide victory for Park or a crushing defeat for the opposition. South Korea is a young democracy, but has an incredibly vibrant tradition of activism and protest. You can expect that, over the course of Park’s single five-year term, the liberal camp will continue to push its vision for economic democratization and engagement with the 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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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19, 2012

와싱턴포스트, LA Times 조심 스럽게 여성대통령 당선을 예측

지금 이시간에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뽑기위한 유권자들의 투표가 한창진행되고 있다.
누가 될것인가? 이번에는 보수를 지향하는 여성후보와 진보를 지향하는 남성후보간의 대결이라서 더 큰 관심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것 같다.
 
수요일 실시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사상최초로 여성대통령을 탄생시킬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더 흥미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것 같다.  이는 남성이 주로 활동하는  사회에서 크나큰 변화일수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여성사회 참여도는 남녀평등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 회교국가보다 조금 앞서 있을뿐인  한국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셈이다.
 
선거결과를 점치는것은 아직은 속단인것 같다.   얼마전만 해도  여성후보인 박근혜가 여론조사에서 앞섰으나, 최근에는 진보성향인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반대당 문재인 후보가 바짝 뒤쫒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들의 남편에 순종해야 한다는 유교사상이 강하게 사회저변에 깊게 깔려 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대통령을 탄생시킨다는것은 과히 혁명적이라 할수 있겠다.
 
한국은 7년전까지만 해도 부모로부터 재상상속을 받는데 차별을 받아 왔었고, 직장에서 남녀간의 봉급차이도 산업화된 국가중에서 가장 격차가 많았던 국가 였었다.
 
전문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대통령 선거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 국민투표가 아닌, 국가경제 정책과 특히 준전시상태에 있는 이북과의 관계정립에 대한 두후보간의 정책에 중점을 두고 투표를 해야 할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문 두후보는 직장에서  여성의 차별화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16년간 의회생활을 한 박후보는 실제로 이문제에 대해 실적을 쌓은적은 없는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박근혜후보는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여권주의자가 아닌 전통적인 카리스마를 갖인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군사쿠테타를 통하여  정권을 잡고, 이후 18년간  한국을 통치해 왔던  아버지 밑에서 권력이 무엇인지를 겪었으며, 그녀는 미혼으로, 아버지를 암살하려던 괴한의 총알이 엉뚱하게도 옆에 있던 어머니를 관통 사망케 함으로서 국모역활을 그때부터 해오면서 국가일에 참여하게 됐었다.
 
두후보간에 누가 당선되든 대북관계는, 현 이명박 정부의 보수노선을 떠나 대화를 통한 관계개선을 위해 많이 완화 시킬것으로 보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친인척들의 권력남용에서 오는 부정을 원천적으로 막을수 있다는점에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것 같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우자나 아이들이 없기에 그들이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을 저지를 요소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유권자들로 부터 호응이 좋은점이다.  나는 남은 생애를 국가와 결혼한것으로 믿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라는 점을 강조하는게 어필 되는것 같다.
 
보험원으로 종사하고 있는 Esther Kim씨는 설명 하기를 우리식구들은 박정희 전대통령을 하늘처럼 여기고 있다.  모두가 그분의 딸인 박근혜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내 숙부님은 문재인 후보를 빨갱이라고 지칭한다.   내가 만약에 문후보를 지지한다면 숙부는 나보고도 빨갱이라고 몰아부칠분이다 라고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한다.
 
암튼 좋은 대통령을 선출하여, 국가를 더 부흥시키고, 북한을 대화의 창구로 끌어내여, 한민족이 함께 사이좋게 살수 있고,  국민들, 측히 젊은이들이 남북을 세계여러나라를 여행하듯, 누구의 간섭이나 재제없이 여행할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녀의 슬로건이 귀에 많이 익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  기왕이면 현실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KBS MBC SBS 방송3사 “박근혜 대통령 당선 확실”





 

In ‘Madame Park,’ S. Korea sees its first potential female leader

By and Yoonjung Seo,

SEOUL — South Korea has the chance Wednesday to elect a woman to its top office, an unprecedented step in a nation long dominated by boardrooms of men and ranked only slightly ahead of most Islamic countries when it comes to gender equality.
The outcome of the presidential election is hardly clinched: Conservative Park Geun-hye — known to her supporters as Madame Park — must hold off liberal Moon Jae-in, who in recent weeks has slashed Park’s lead in polls from several percentage points to nearly zero.


But a Park victory would represent a major symbolic breakthrough in a region underpinned by Confucianism, a Chinese-born philosophy that says women should be obedient to their husbands. Until seven years ago, South Korean women did not have equal inheritance rights. South Korea’s wage gap between men and women is the widest among fully industrialized countries.
This presidential election, according to most analysts, is not a referendum on gender issues. Voters have judged the two leading candidates mostly on their economic agendas, and to a lesser extent on their strategies in dealing with North Korea. Moon and Park have outlined competing policies to help women in the workplace, but in her 16 years as a legislator, Park showed no particular passion for women’s issues.
Park is viewed by South Koreans not as a feminist but as a traditional power figure. Her father, Park Chung-hee, gained power in a 1961 military coup and ruled the country for 18 years. Park Geun-hye, who has never married, served briefly as the nation’s first lady after her mother was killed in an assassination attempt that missed its real target, her father.
If she becomes president, Park could help normalize the idea of women holding positions of power, opening the door for others at universities, in the corporate world or in government. But some gender studies experts here say her rise would offer few applicable examples for women about how to break Korea’s glass ceiling. The greatest lesson might be a dispiriting one: If you want to become a female leader, it helps if you’re the child of a president.
“Most accomplished South Korean women started from the ground level and have worked their way up while facing discrimination,” said Kim Hyun-young, a professor of gender studies at Kookmin University in Seoul. “Park is a different case because she reached her current position thanks to her father’s political glory.”
Park’s campaign team has tried in recent weeks to emphasize her qualifications as a “fully prepared female president,” as one widely distributed poster reads. The message comes at a time when, despite the gender gap, Koreans increasingly see gender equality as a national priority. In a 2010 Pew Research Center poll, 93 percent of South Koreans said women should have equal rights and 71 percent said more changes were still needed.
Koreans young and old can rattle off the female virtues traditionally held in high esteem here. Women are viewed as disciplined, competent and skilled at managing money, a responsibility they undertake in both traditional and modern households.

Polarized South Korea could elect its first female president

Park Geun-hye, conservative daughter of the 1961 coup leader, is a polarizing force in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South Korea presidential election
South Korean presidential candidate Park Geun-hye campaigns in Suwon, south of Seoul. She could become the country's first female president. (Jung Yeon-jejung, AFP/Getty Images / December 18, 2012)
 
 










SEOUL — Park Geun-hye has been in the public eye since she was 9 years old, when her father took control of South Korea in a 1961 coup.
Half a century later, Park herself is a powerful political figure. In voting Wednesday, she stands a good chance of becoming South Korea's first female president. Polls suggest her race with Moon Jae-in, a silver-haired labor lawyer, is neck and neck.
Some critics call Park, now 60, the "ice queen" for her lack of visible emotion in public. Elegant and composed, she never married — something that Koreans like because there is no spouse or children who can dip their fingers in the public till.
Moon was arrested and expelled from a university for a protest against Park's father and later served as chief of staff to the left-of-center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But the election is less about Moon's qualifications than the polarizing figure of Park.
To some extent, the election is a referendum on the divisive legacy of her father, Park Chung-hee. He is credited with the rapid industrialization that turned South Korea into one of the world's wealthiest countries. But he also suspended the constitution and arrested and tortured student protesters. His security services tried to kill his opponent, Kim Dae-jung, who later became president and won the Nobel Peace Prize for his rapprochement with North Korea.
"I hate her so much that I have no choice but to vote for Moon," said Lee Sang-gun, a 47-year-old magazine distributor who, as a university student, participated in pro-democracy demonstrations against the dictatorship of Park's father. In his view, electing Park would be a step backward. "I feel this is a very critical time for Korean democracy," Lee said.
In September, Park Geun-hye apologized for human rights violations committed during her father's rule. "Behind the stellar growth were sacrifices by workers who suffered under a repressive labor environment," she said. "I believe that it is an unchanging value of democracy that ends cannot justify the means in politics."
Despite the ideological overtones, the campaign issues are mostly prosaic matters of jobs, the economy and social services. Moon has attacked Park as being too close to the chaebol, the huge conglomerates that dominate South Korea's economy.
The candidates agree on the need to engage with North Korea, and whoever wins is likely to move away from the hard line adopted by conservative incumbent Lee Myung-bak.
Still, the electorate of this country of 50 million is deeply polarized along ideological and generational lines.
"This is like George W. Bush versus Al Gore. You have conservatives against liberals and the animosity between them is very strong," said Hahm Sung-deuk, a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Korea University.
Park has been one of the most visible public figures in South Korea for decades. As a young woman, she interrupted her studies in France in 1974 after her mother was killed by an assassin's bullet aimed at her father. She served as de facto first lady until 1979, when the head of her father's own security service shot and killed him.
She has been in the national assembly since 1998. The first time she ran for president in 2002, she was dismissed as just another in the long tradition of female Asian leaders who were trying to gain power on the coattails of a powerful male relative.
But with a decade more of experience under her belt, Park now is seen as a reassuring conservative, especially among older voters.
Although her campaign has tried to raise the energy level at her appearances with ear-splitting K-pop blaring from the loudspeakers — Park herself even tried a little "Gangnam Style" hand movement at one campaign appearance — the preponderance of gray hair is undeniable.
At a rally on the outskirts of Seoul last week in 15-degree weather, supporters in their 50s and 60s were bundled heavily with red scarves, the color of the ruling New Frontier Party.
"The world powers' leaders are changing, and we need a president who has good judgment on national security issues," said Lee Shin-baek, 64. He had come with friends who were enthusiastically waving red banners.
The night before, a basement-level coffee house was filled with a standing-room-only crowd including university students and professionals in their 40s who had gathered to watch the second of the presidential debates. Whenever Park spoke, they jeered and made catcalls at oversize television monitors.
"For many of the people in my family, they think Park Chung-hee was like a god and, of course, they are all supporting his daughter," said Esther Kim, a 39-year-old insurance company worker.
"My uncle thinks that Moon Jae-in is a communist," she added with a laugh. "I suppose he'll say I'm a communist too if I tell him I'm voting for Moon."
Park had been leading in the polls for most of the campaign, but the withdrawal of a third candidate, Ahn Cheol-soo, who endorsed Moon, has put the candidates almost even. The latest polls, which cannot by law be published in South Korea the week of the election, showed an even split — 45.2% each for Park and Moon, according to political scientist Hahm.
Hahm said the weather might be decisive. Cold is thought to favor Park because young people aren't as politically committed as older voters and are less likely to turn out.
barbara.demick@latimes.com
Special correspondent Jung-yoon Choi contributed to this report.

Thursday, December 13, 2012

북한 장거리 로켓트 발사성공(수요일 아침)

North Koreans Launch Rocket in Defiant Act


Published: December 12, 2012
 

SEOUL, South Korea — North Korea launched a long-range rocket on Wednesday morning that appeared to reach as far as the Philippines, an apparent success for the country’s young and untested new leader, Kim Jong-un, and a step toward the nation’s goal of mastering the technology needed to build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The Sohae rocket launching facility in Cholsan County in North Pyongan Province, North Korea.                           
KNS/Agence France-Presse — Getty Images
Kim Jong-un, shown last month, wants to be seen as a leader hailed at home and feared abroad.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or Norad, said it had detected the launching and tracked the missile — a Galaxy-3 rocket, called the Unha-3 by the North — as its first stage appeared to fall into the Yellow Sea and the second stage into the Philippine Sea.
“Initial indications are that the missile deployed an object that appeared to achieve orbit,” Norad said. “At no time was the missile or the resultant debris a threat to North America.”
But the timing of the launching appeared to take American officials by surprise. Just an hour or two before blastoff from the Sohae Satellite Launching Station in Tongchang-ri on North Korea’s western coast, near China, American officials at a holiday reception at the Japanese ambassador’s residence in Washington said they thought the North Koreans had run into technical problems that could take them weeks to resolve.
North Korea’s official Korean Central News Agency said the rocket succeeded in the ostensible goal of putting an earth-observation satellite named Kwangmyongsong-3, or Shining Star-3, into orbit, and celebrations by members of the North Korean media were reported.
Although the launching was driven in part by domestic considerations, analysts said it carried far-reaching foreign relations implications, coming as leaders in Washington and Beijing — as well as those soon to be chosen in Tokyo and Seoul — try to form a new way of coping with North Korea after two decades of largely fruitless attempts to end its nuclear and missile ambitions.
For President Obama, the launching deepened the complexity of dealing with the new North Korean government, after four years in which promises of engagement, then threats of deeper sanctions, have done nothing to modify the country’s behavior. A statement from the White House by Tommy Vietor,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spokesman, called the launch a “a highly provocative act that threatens regional security, directly violates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1718 and 1874, contravenes North Korea’s international obligations, and undermines the global nonproliferation regime.”
China, the North’s main ally, said on Wednesday that it “regrets” the launch, the first time it has used that word in the context of Pyongyang’s rocket program. The Chinese Foreign Ministry spokesman, Hong Lei, also said that North Korea’s right to a peaceful space program was “subject to limitations by relevant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somewhat tougher language than China has used on that subject in the past.
“North Korea, as a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has the obligation to abide by relevant resolutions of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Mr. Hong said at a regular briefing in Beijing. He declined to say whether North Korea had lived up to that obligation or whether China had received advance notice that the launch would happen Wednesday.
In recent days, the Chinese Foreign Ministry had for the first time stressed the restrictions placed on the North by the U.N. resolutions, and said that China was ready to maintain “close communication” with other countries on the matter. But it was far from clear Wednesday how far China might be prepared to go in joining Washington to push for further sanctions on North Korea.
A delegation of Chinese officials visited Pyongyang shortly before North Korea’s leader, Kim Jong-un, announced his intention to move ahead with the launch. Some Chinese and Western analysts interpreted the announcement, so soon after the Chinese trip, as a rebuff of Chinese efforts to persuade North Korea to abandon its plans. The launching appeared to dash the hopes of some analysts that Mr. Kim might soften North Korea’s confrontational stance. It showed him instead as intent on bolstering his father’s main legacy of nuclear weapons and long-range missile programs to justify his own hereditary rule.
For Mr. Kim, barely a year in office, the launching was important in three respects. Its apparent success, after a test of the same rocket failed spectacularly seconds after takeoff in April, demonstrated what one American intelligence official called “a more professional operation” to diagnose and solve rocket-design problems similar to those the United States encountered in the 1960s. He built credibility with the powerful North Korean military, whose ranks he purged in recent months, replacing some top leaders with his own loyalists.
He also advertised that the country, despite its backwardness and isolation, could master a missile technology that it has previously marketed to Iran, Pakistan and others. Some American officials, who have privately warned of increased missile cooperation between Iran and North Korea over the past year, have argued that the North Korean test would benefit Iran as much as North Korea.
The North has a long way to go before it can threaten neighboring countries, and perhaps one day the West Coast of the United States, with a nuclear-armed missile. It has yet to develop a nuclear warhead small enough to fit atop its missile, experts say, and it has not tested a re-entry vehicle that can withstand the heat of the atmosphere. Nor is it clear that the country knows how to aim a missile with much accuracy.


Choe Sang-hun reported from Seoul, and David E. Sanger from Washington. Jane Perlez contributed reporting from Beijing.


하루전만 해도,  고국의 정부와 관련 기관에서는 이북의 장거리 로켓발사가 기술상의 문제로 연기되여, 최소한 내년 2월 말경에나 다시 발사대에 재장착 될것으로 보도 했었고, 국민들을 안심 시켰었다.  해체되는 사진까지도 보여 주었었다.  같은 시각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언론은 한국에서 처럼 크게 북한의 로켓발사를 보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도둑 한명을 경찰 열명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얘기들도 음미해 본다.   고국의 정보수집 능력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이북의 로켓이 발사된후, 미국의 와싱턴 포스트지는 로켓의 이름이
은하 3호로 발표했었고,  고국의 언론은 광명성 3호(Shining Star 3)로 나왔었다.   은하3가 맞는것 같다.

서구언론의 제목을 보면, 서방세계의 발사제재에 반발하는 뜻에서, 쏘아 올렸다고 한다.
고국에서는 대선과 연결지어 해석 하려는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정말로 코미디 같다.
그들의 지식과 해설은 한마디가 맞지 않았음이 증명되고도 남았다.   발사성공이후 그분들의
추측이 완전 빗나갔음에 한마디의 해명이 나왔다는 뉴스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국민들도
전연 느끼질 못하는것 같다.

지금  조국의 언론은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국 반열에 들어섰는데, 정부는 그동안 무엇했나?
라고 비난만 쏟아붓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이사실을 완전 통제하여 알리지 않았고, 다만 북한의 엘리트 구룹만 볼수
있는 웹싸이트에만 이사실을 올려 놓았었다고 한다.  북한의 노동신문에도 로켓발사에 관한
기사는 전연 내보내질 않았었다고 한다.   발사 2시간이 지난후 성공이 확실해지자, 방송에 혁명가를 계속해서 내보냈고, 김일성 사진이 방영됐었다고 한다.

북한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남한의 관련부서의 활동상은, 앞으로 6일 남은 대선에 밀려  국민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대선운동을 하는 후보자분들의 선거운동에서 흘러나오는 경제활성화 등등의 이슈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때를 틈타 북한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대선후보중 선두구룹에서 뛰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복원을 집권하면 하겠다고 공약을 국민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는 그시간에 북한은 로켓발사를 감행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집권하면 북한의 새 지도자 젊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그시간에 로켓발사를 북한은 자행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북한의 거짖가면을 몰라서 였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국민들의 표를 얻어 집권을 하기위해 임기웅변식으로 그순간을 커버 했을까?   그런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심히 걱정이다.

북한의 동맹국이자 경제원조를 주도하는 중국외무성도, 북한의 로켓발사에 대한 논평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목적의 로켓발사는 유엔에서 제정한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매우 유감스럽다" 라고, 전에 없는 강한 톤으로 북한을 비난하는 자세인것 같다.  중국의 경제영역이 전세계를 향하여 거미줄 처럼 뻗어있는  상황에서  유엔결의안을 무시 해서는 안된다는 현실속에서
골육지책으로 그런 성명을 낸것 같다.  그러나 이순간이 지나면 조용해 진다는것을 그들은 이미 계산하고 있는것 같다.

평화적으로 사용하기위한 목적에서 발사를 감행했다면, 외부세계가 이를 믿을수 있도록
개방이나, 감시기구의 상주를 금하겠는가?   로켓이 우주를 빙빙 돌고 있는것과 북한 주민들이 먹을것이 없어 이추운 겨울에 아사 직전에 있는것과는 전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정권이 목적하는바는 충분히 예측되고도 남지만,   그런 수작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절대로 이루어 질수 없음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실용화에 대한 비용과 또 실용화가 됐다고 한들,  그기술이 배고픈 주민들의 창자를 채워줄수는 없다.
아이고 답답해라.  




North Korea fires a long-range rocket

Ahn Young-joon/AP - South Koreans watch a public TV reporting news about North Korea's rocket launch at Seoul Railway Station in Seoul, South Korea, on Wednesday.
By ,
TOKYO — North Korea on Wednesday successfully fired into orbit a long-range rocket carrying a satellite, an outside aerospace monitoring organization said, a major advance in the authoritarian nation’s weapons program.
According to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a joint organization of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North Korea “deployed an object that appeared to achieve orbit” after the first and second stages of the rocket dropped into the sea.


Based on that assessment, the third stage of the rocket, as well as the satellite, would have entered orbit, aerospace experts said.
Though the Unha-3 rocket did not carry a warhead, it relied on technology similar to that of a long-range missile, leading Washington, Seoul and Tokyo to describe the launch as a de facto missile test that violated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The North also said Wednesday that its launch was a success.
If North Korea indeed placed a satellite into orbit, it would mark a significant breakthrough in its decades-long attempt to develop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capable of hitting the United States and would present a new threat for the Obama administration.
The North had carried out four previous missile or rocket launches, dating back to 1998. In the most recent one, eight months ago, the rocket broke apart after roughly 90 seconds and dropped into the sea.
The rocket launched Wednesday was fired from a facility in the country’s northwestern corner, not far from the Chinese border. It traveled southward, zipping over the water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flying above the Japanese island of Okinawa, then heading toward the Philippines.
According to the Japanese government, stages of the rocket fell into the Yellow Sea and the East China Sea, the planned trajectory that North Korea had described in its report to the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which is responsible for maritime safety.
South Korean President Lee Myung-bak called an emergency security meeting, and a Japanese government spokesman called the launch “unacceptable.”
“It is extremely regrettable that North Korea went through with the launch despite our calls to exercise restraint,” said the spokesman, Osamu Fujimura.
China also expressed its unhappiness with the long-range launch. Foreign Ministry spokesman Hong Lei told reporters: “We express regret at (North Korea’s) launch in spite of the extensive concern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ong said China “believes U.N. Security Council reaction should be prudent and moderate and conducive to maintaining stability and avoiding escalation of the situation.”
In Washington, the White House called the launch a “highly provocative act that threatens regional security.”
Rep. Ileana Ros-Lehtinen (R-Fla.), chairman of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criticized the launch, saying it shows that a defiant Pyongyang “is moving ever closer towards its ultimate goal of producing a nuclear ballistic missile.”
The launch caught North Korea’s neighbors off guard. Though the North had stated earlier this month that it would go ahead, South Korean military officials on Tuesday told reporters in Seoul that Pyongyang was disassembling its rocket to fix technical problems.


The rocket was launched at 9:51 a.m. local time, according to the South Korean government.
For North Korea, an impoverished, authoritarian police state, the launch comes at a critical time. The country is days away from the one-year anniversary of the death of leader Kim Jong Il, and some outside analysts called the rocket blast a means to mark the occasion. The launch also comes just eight months after the high-profile failure — one the North had invited foreign journalists to watch.


 


This time, North Korea told its citizens almost nothing.. Though the government had laid out its plans on its state news agency Web site, only the most elite North Koreans have access to the Internet. The North never mentioned the plans in its newspaper, the Rodong Sinmun.
But Wednesday, roughly two hours after the rocket lifted off, the North held a special noon television broadcast, which opened with martial music and a picture of national founder Kim Il Sung.
The blast also comes one week before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National security and relations with the North have been lower priorities in the race compared with domestic economic issues. But the North’s announcement — and the launch Wednesday — placed a greater spotlight on the dangers posed by a family-run government that funnels its money to weapons programs.
Both leading presidential candidates in the South, conservative Park Geun-hye and liberal Moon Jae-in, have advocated some rapprochement with the North following a five-year period in which almost all dialogue and joint economic programs have been cut off. But Moon goes further, saying he’d want a summit with you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Eun. Some analysts in Seoul say North Korea’s latest provocation could help Park.
South Korea’s foreign affairs minister, Kim Sung-hwan, urged the North to “spend its enormous budget on its people rather than on rockets.”
Outside analysts cautioned that the North, even if it carries out a successful rocket launch, still has hurdles to climb before it can clearly threaten the United States. Most analysts don’t think the North is capable of miniaturizing a nuclear warhead to mount on a long-range missile.
Additionally, “if this is considered relatively successful, that also does not prove they have a reliable system that will work time after time,” said Daryl Kimball, executive director of the Washington-based Arms Control Association.

Yoonjung Seo in Seoul and Ed O’Keefe in Washington contributed to this report.




Thursday, December 06, 2012

한국의 자랑 K-Pop 토론토와 북미시장을 달군다.

오늘자 토론토 스타 신문의 Entertainment에는 K-Pop의 기사와 이들로 인해 해외관광객
들이 이제 한국을 찾기 시작하여 북미여행시장이 한국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곁들였다.

흔히들 말하는 발레스타일이 곁들인 이들의 댄스는 열광하는 젊은이들에게 꼭 맞는
시대의 요청을 절묘하게 대변하고 있어 세계의 Pop시장을 점령하는데 앞장을 서고,
이에 합세하여 Psy의 강남 스타일은 우리한국말이 그대로 전세계의 연예계를 휩쓸게
하고 있다는 위대한 탄생이 한국의 진주알 같은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 흐믓
하기만 하다.

K-Pop의 장르는 Pop Music계를 대표하는 Sugar Pop, EDM, American hip pop 그리고
R&B를 망라한 짜릿한 고유문화로 승화시켜 전세계를 향해 질주 하고 있다고 스타지는
과감하게 평하고 있다.  K-Pop을 대표하는 3개 구룹의 2011년도 수입은 자그만치
1억6천말달러라고 한다.  이들의 구상은 당대로 끝나는게 아니고 다음세대의 K-Pop까지 생
각하여, 전세계를 상대로 오디션을 하여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토론토
도 예외 일수가 없음은 물론이다.  오디션에서 중점적으로 관찰하는것은 젊은이여야
하고, 외모가 출중하고, 춤을 사뿐히 잘추어야 한다. 할수만 있다면 영어와 일본어
구사가 자유로우면 더 좋다고 한다.  그리고 구설수에 오를수 있는 과거가 있으면
합격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좋은면 금상첨화
겠지만, 꼭 필수조건은 아님도 강조한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선발되면
그들만의 훈련장소에 입소하여 최소한 2년동안의 혹독한 훈련을 거친후, 과연 이들이
다음세대의 Supergroup될 자격이 있나를 심도있게 고려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러한 작업은 팬들이 열렬히 응원해주고 헌신해주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도 인기리ㅣ
에 잘 진행되고 있는데, 그예로 Melisa Adams를 꼽을수 있겠다. 21세의 Melisa는 3년된 K-pop 팬클럽인 Toronto Korean Music Group을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 팬클럽을 이끌어 가는 이사들은 전부 비한국계 사람들이라는데 또한번 의아해 하게 된다고 한다.

오는 12월9일에는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K-pop 팬들이 한데모여 큰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이들은 이러한 잔치를 하면서 "한류"의 고유맛에 푹 빠지게 될것이라고 한다. Hallyu는 굳이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한국사람들 마음속에서만 도도히 흐르는 문화적 발로라고 해야 맞을것 같다.  그속에는 한국문화의 모든것들이 다 포함되여 있기 때문이다. 그대표중의 하나가 바로 K-pop이라고 할수 있겠다.

아직까지 토론토에는 K-pop공연이 거의 없었다. 지난 10월달에 Psy가 잠깐 들렸었고, 12월 16일날 Rogers Centre( Sky Dome)에서 있게 되는 NFL 어메리칸 축구경기가  열릴때 Half Time시간을 이용하여 잘깐 출연 하고, 그때 TKMG가 동시 깜짝 출연하여 한류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속으로 끌고 갈것이라고 스타지는 전한다.  십대소녀,소년들은  오직 그날을 기다리면서 열광하고 있다라고 Adams는 설명한다.

이들 팬클럽은 한국의 문화체육부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 한국의 국제문화교류재단으로 부터 보조금을 받고 활동하고있다고 한다.  이들팬클럽과 깊은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하고 있는 캐나다교류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Eunice Chang이 자기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린 내용이 한국문화체육부의 관심을 끌게 됐다고 한다. "팬들은 K-pop을 너무나 좋아 합니다. 어느면에서는 한국사람들보다 더 열광적이지요"라고 설명한다.  연출가이자 무대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Eunice Chang은 HallyuCon행사에 많은 팬들이 모이므로써, 한국의 큰 연예사들이 토론토를 그들의 다음 공연지로 프로그람에 넣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K-pop팬들의 한류행사가 성공을 거두어 LA또는 Newark,NJ에서 K-pop공연이 있는것 처럼, 토론토에서도 공연할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 효과가 있기를 기대 한다고 했다.  이러한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토론토팬들의 열렬한 성원이 있어야 한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계속해서 트위터등을 통해서 동향을 살피면서, 캐나다의 젊은 여성들이  K-pop이 토론토에서 직접공연하는 것을 볼수 있게 되기를 거의 미친듯이 울먹이면서 기대하고 있다는것을 잘알고 있다" 라고 분위기를 설명해주었다.

열성팬들은 토론토 총영사관의 문화담당영사 "안해정"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하소연 하기도 하나, 이들의 토론토 공연을 위해 총영사관에서 할수 있는일은 극히 제한적일수 밖에 없다.
"한국의 큰 연예담당회사가 토론토에서 이들의 공연을 하게 된다면 우린 적극적으로 도와줄수는 있다"라고 영사는 설명했다고 한다.

몇년전부터 K  -pop의 연예활동이 유럽무대에서 미국의 무대에서 젊은 십대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면서, 세계무대를 상대로 활동하고있다는 뉴스는 접한적이 있었지만,  토론토스타에서 이렇게 큰 지면을 할애하여 보도 한다는것은 상상도 해본일이 없었다.

 Belanger씨는 "토론토의 K-pop팬들이 서로 힘을 모아서 활동하게 된다면 토론토에서의 공연은 꿈만이 아니고 현실로 나타날수 있다"라고 서로간의 협조를 당부 한다.

또 그는 설명하기를 "싱가폴, 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등 이들나라에서는 K-pop에 대한 얘기가 첫째이며, 거의 모든 십대들은 그들방의 벽에 K-pop그림들을 도배하고있다, 공연표는 항상매진이다. 아이들의 얘기주제는 모두가 K-pop이다. 확실히 K-pop의 음악은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이다"라고 설명한다,  토론토는 K-pop을 모셔오기위한 준비작업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라고 첨언하기도 한다.

K-pop멤버들의 활동으로 한국의 위상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서게된것은,  국민들은 자랑스러워 해야하고, 이들의 공을 높이사서 훈장이라도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조국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기에 이를 밑바탕으로 세계무대에 설수 있는 foundation이 형성됬음을 무시해서는 이또한 안된다고 믿는다.  내가 너의 등을 긁어 주면 너도 나의 등을 긁어 주는식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음을 서로가 감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며칠후면 고국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후보들도 이들의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을 잘 보고 듣고 할것이다.    이들을 보면서 조국의 좀더나은 발전을 위해 그들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았으면 참으로 원이 없겠다.

이들의 활동덕택으로 고국을 찾는 관광객들, 특히 북미대륙에서 한국을 찾아가는 관광객들의 숫자가 급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Psy의 강남스타일 때문에 요즘은 강남일대를 중심으로한 관광코스가 형성되여 외국관광객들에게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더욱 자랑스럽고 신기한것은 금년부터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숫자가 일본을 알지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돈도벌고, 국위도 선양하고..... 이들이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국가는 이들에게 어떤식으로 위로하고 보상해 줄것인가?   오래오래 이들의 음악활동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건강하고, 부강한 조국이 있기에 세계무대에 서기도 한결 쉬었다는점을 잊기 말기를 .....

http://www.thestar.com/entertainment/music/article/1297502--toronto-s-k-pop-scene-ready-to-explode

Monday, December 03, 2012

연평도추념식과 미국병사의 국가관

며칠전 연평도 포격2주년 추념식을 했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일방적으로 조국 대한민국이 주적 북한이 예고도 없이 퍼부어댄 포탄에
연평도 주둔 해병과 민간인 그리고 많은 부상자와 재산피해를 입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었다.

향군회원님들과 한인교포분들과 같이 추념식을 하면서, 이번 고국방문에서 느꼈던것과 똑 같은 현상이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깊이 느꼈다.   고국방문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뻐스와 특히 관광뻐스의 앞 유리판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표어를 다 부치고 다니면서 조국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독도분쟁에서 죄없는 민간인과 방어를 하고 있는 국군장병의 목숨을 잃어버린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온 나라가 떠들썩 하게 독도사수를 주장하고 있는 법석을 보면서, 북한의 Sudden Attack으로 침몰당한 천안함 그리고 연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NLL 침범사건에 대해서는 너무도 조용한 국민들의 생각과 정서를 생각해 보았었다.   친북파성향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었다.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2주년 추념식이 한인회관에서 있었다.   날씨도 포근했었고, 관심만 있다면 많은 교포들이 참석할수 있는 초겨울 날씨였었다.    정작 참석했어야할 교민사회의 리더들과 향군의 고참분들과 회원들의 참가율은 저조하기 이를데 없었다.  고국에서 보았던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에 걸린 그여파가 이곳에까지 깊이 옮겨져 있는것으로 해석을 했다.

교포사회의 언론사들역시 마치 동맹이라도 한것처럼,  이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분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직 All TV에서 나온 기자만이 그나마 현장을 동영상으로 취재하는게 유일했다.
교포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국민계몽은 미디어의 몫이 굉장히 크다는것은 다 알고 있다.

세계는 공산당의 종주국 쏘연방이 문을 닫은후 동서냉전의 시대가 사라지고 지금은 화해 무드로 향해 달리고 있다.  쏘련 위성국들이 거의 다, 러시아 마져도 민주주의식 선거제도를 채택하여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각하는바데로 대표자들을 선택하여 일을 시키고 있은지도, 그날 이후로 30여년이 훌쩍 흘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공산주의 대부 중국마져도 문호를 활짝 개방하여, 국민들은 서방세계의 사람들과 일상생활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자유를 만끽하고, 시장 경제의 맛을 즐기고 있고, 월남과 큐바 마져도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자유는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며칠전에는 Burma마져도 폐쇄정책을 끝내고,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서고, 미국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Obama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하는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기도 했었다.

오직 한반도만이 이러한 세계의 대변혁에 역으로 발길을 걷고 있다.  며칠후면 북한은, 조국 남한의 대선이 치러지는 기간을 통해 장거리로켓를 쏘아 올리겠다고, 남한을 위협하는 발표를 했다.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항의가 빗발 치지만, 정작 당사국인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선거전을 치르는 대선후보들은 북한의 이런 망나니 행동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도 눈치는 대개 살피고 있는것을 느낄수 있다.

이러한 대선주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다시 천안함, 연평도,NLL침범사건들이 발생했을때,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 특히 국토사수를 위해 젊음을 바쳐 군복무를 하고 있는 장병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었을때,  희생자만이 억울하다라는 생각을 국민들 머리속에 깊이 심어주는, 즉 조국방어를 위한 희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조국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할수만 있다면 국민의 의무중에서 가장큰 국방의무를 하지않고 출세시키려는 부모들의 얄팍한 잔꾀를 더 부추기게하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져가는 이때에, 대통령을 비롯한 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들을 상대로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그분들의 생각은  진정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조국수호를 위한 국방정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실무자선에서 해결해도 할수 있는, 학생들의 급식에 까지도 매주알 코주알 읊어대는 대선주자분들이다.   이럴때 북한이 망나니 행동을 해서, 남한의 국민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케 한다면  그원인을 찾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라는 메세지 하나 이 못던지는가?   국방과 안보의 현장에서 총 칼들고 올빼미가 되여 불침번을 서고 있는 장병들의 마음은 편안할까?  과연 임전무퇴정신이 그들속에 배여 있다고 믿어야 할까?

미국병사의 인터뷰 얘기는, 그래서 미국이 강국일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연평도 포격 2년] [1] 이라크戰 부상병 "국가·이웃이 안아준 6년… 행복했다"
입력 : 2012.11.19 03:00






  •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병사들… 韓美 너무 다른 대접]
    폭발물에 부상 갠스너 중사 - 비행기 오르니 "영웅이 탔다" 모든 승객, 기립박수로 맞아
    돌아온 집엔 '웰컴' 플래카드… 휠체어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가족도 모르게 집 내부 수리도
    부대 최고 훈장 받고 재활훈련, 정부 지원으로 방산업체 취직

    "브라이언이 다쳤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군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셰 릴 갠스너(30)는 6년 전 이라크전에서 부상한 미군 중사 브라이언 갠스너(34)의 아내다. 브라이언은 당시 장갑차를 운전하다 조수석 하단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발목을 크게 다쳤고, 오른쪽 다리와 왼쪽 허벅지, 오른쪽 손목에 파편이 박혔다.

    그 때부터 셰릴은 블로그에 남편 간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블로그에는 국가와 지역 주민, 각종 민간단체가 얼마나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부상한 갠스너 부부의 '희생'을 보상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셰릴은 "가족과 친구, 국가와 지역사회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다"고 인터넷 신문 '라이크잇포타임'에 말했다.
    웃음 되찾은 갠스너 중사… 2006년 9월 28일 브라이언 갠스너 중사가 부대 최고 훈장인‘퍼플하트’를 수여받고 아내인 셰릴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셰릴은“군인의 아내로서 최고로 자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했다. /허핑턴포스트
    2006년 7월 28일 오전 3시. 자고 있던 셰릴에게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공포에 떨고 있던 셰릴에게 남편을 치료하던 의사가 곧이어 이메일을 보냈다. '방금 브라이언 몸에 있던 파편을 다 제거했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쓰여 있었다. 3일 뒤 브라이언에게 "사랑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 사이 국방부 관계자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남편의 상황을 알려주며 안심시켰다. 동네에 사는 다른 군인 부인들도 찾아와 셰릴에게 각종 선물이 담긴 보따리를 주면서 위로했다.

    며칠 뒤 브라이언은 귀국해 워싱턴 D.C.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셰릴은 며칠간 브라이언을 병원에서 간호했다. 이후 셰릴과 브라이언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켄터키주(州)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기장은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 비행기에 영웅이 한 분 타셨습니다. 브라이언입니다. 승객 여러분, 우리의 영웅과 그의 부인을 잊지 마세요. 군인의 부인들은 미군 중에서도 가장 힘든 역할일 것입니다." 모든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셰릴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집에 도착하자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집 내부도 전역자처우협회(VA)에서 브라이언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싹 수리해 줘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셰릴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집도 고쳐져 있었고,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배려였다"고 말했다. 나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위한 사회의 시스템은 이렇게 소리없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해 9월 28일 브라이언은 부대 최고 훈장인 '퍼플 하트'를 받았다. 3개월 뒤 셰릴도 국가로부터 '몰리 피처 어워드'라는 상을 받았다. 미 포병과 방공협회에서 미군에게 헌신한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브라이언은 2008년 3월 정부 지원으로 방위산업체에 취직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초 셰릴은 워싱턴 D.C.의 한 행사에 초청받았다. 엘리자베스 돌 전(前) 상원의원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셰릴은 '나는 이들 중 한 명이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적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는 그들을 잊지 않은 것이다.

    Tuesday, November 27, 2012

    "오빠는 강남 스타일" 그속에 무엇이 있길래?

    눈에 뵈는것은 빈공간에 멀리 아스라이 나이아가라쪽의 건물들이 희미한 언덕처럼 보일뿐이고, 그앞쪽으로는 바다와 같이 넓은 온타리오 호수가 보이고, 더 가까이에는 하얀깃털의 옷을 입고 있는 수십마리의 백조(Swans)들이 떼지어 먹이를 찾아 유영하는 모습들 뿐이다. 

    굴뚝 세대를 살아온 나에게는, 서울태생의 PSY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한청년이 어설픈 말춤을 추어댄게,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Cyber세계를 통해서, 전세계의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려, You Tube의 조회숫자가 7억번을 넘어,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뉴스에, 실감이 피부에 와 닿지를 않는다.  단서가 붙어 있어 더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지금까지 조회수 1위를 유지 했던 Bieber의 기록은 약 4년간 모아진 숫자인데반해, PSY의 기록은 불과 4개월만이라고 하니, 눈에 귀에는 전연 그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전파의 위력이 이렇게 전세계를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들을 지배하고(?)있음에, 놀랍기도하지만, 눈으로 보고 만져 보아야만 확인이되는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는 의문투성이로 남을 뿐이다.

    CP 24 채널에서는 며칠동안이나, 아침시사 거리를 전해주는 남녀 Anchor가 PSY가 추어댄 그말춤을 거침없이, 어설프게 추어대는게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한다.  그속에 젊은 세대들이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깊이 박혀 있음을 어렴푸시 터득할것 같다.
    전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내보내는 CNN에서 까지 PSY의 말춤을 뉴스거리로 내보냈으니
    그영향력은 과히 설명이 필요없는것 같다.  미국의 대통령도 CNN에 출연하기위해서는 섭외를 해야 할 정도로 스케줄이 꽉 짜여 있는 CNN방송인데.....

    컴퓨터라는 괴물이 세상에 나타나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가 되기 시작한것은 불과 1/4반세기 정도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30중반의 청년기를 살아가고 있는 아들이 국민학교 다닐때 처음 컴퓨터를 사주고, 그가 신기해 하면서 매달리는것을 옆에서 본 기억이 있다.  중학교를 다닐때는 Contest에 학교 대표로 나가 Award 도 획득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그아이가 컴퓨터 대학을 졸업하고, 그것으로 생업을 유지해 가고 있다.

    아들 아이가 기술적으로는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중의 하나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Entertainer나 심지어 종교적 지도자들마져도 컴퓨터라는 전파미디어를 활용하여 그들의 아성을 구축해 간다.   유명한 가수나 Entertainer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cyber세계의 Technology를 개발하는 기술자들에게 자기네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컴퓨터라는 Gadget을 이용하면 그안에 모든것이 들어 있어, 자연적으로 이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information이 공유하게되기 때문인것같다.

    PSY의 "오빠는 강남스타일" 짧막한 맨트와 말춤은 정교한 춤의 기술도 필요없어 보인다.  그져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라면 금방 모방하여 손을 흔들고 발을 조금 구부리고 흔들어 대는 대충 그런 형상의 Performance이다.   그런데도 굴뚝세대들이 그것을 따라 하면 뭔가 앞뒤가 맞지않아 보인다.  마치 구두신고 갓을 쓴것 처럼 말이다. 

    영웅 호걸은 시대와 장소를 잘 만나야 한다고들 애기한다.  맞는말같다.
    PSY가 30년전에 나타나서 말춤을 췄었다면, 그는 정신나간 미친놈쯤으로 사람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전파를 탄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전세계를 무대로 바삐 팔려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곳 토론토에도 벌써 두어번 다녀 갔다고 한다.  그가 토론토에 나타난다고 한 그날은 전 시내가 열광을 했고, 컴퓨터속의 세상은 물론이고, 지상파 미디아, 언론들도 도배를 하다시피 했었다.  신기하게도 군중속에서 굴뚝세대를 찾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다 드물었었다.   지금 세대에서는 그가 영웅이지만, 굴뚝세대에서는 한갓 형편없는 망나니 춤쟁이쯤으로 여겨질 뿐이다.   고개만 갸우뚱 해질 뿐이다.

    다시 1/4반세기가 지난후의 세대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뭐가 나타나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고, 단 한시간도 몸에서 떼어놓고는 삶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컴퓨터 세대들이 굴뚝세대들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처다보는것처럼, 그들 자신들도 대열에서 열외로 취급을 받지 않을까?라는 망상도 해본다.   그렇게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가는 그존재의 힘을 무엇이 될까?  상상만 해도 두렵다.  자식들을 통해 세상에 태어날 먼훗날의 나의 핏줄이나 흔적들이, 지금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나"라는 조상(?)에 대해 참멀리도 본 분이다, 아니면 생각이 겨우 그정도뿐인 그분이 나의 조상중의 하나였음을 챙패해 할까? 암튼 6개월이 멀다하고 바뀌는 요즘의 컴퓨터 Technology는 나에게는 이해못할 그리고 설명이 안되는, 어쩌면 PSY만이 알고 있을수 있는 마력이 있음에는 공감이 일부 간다.

    세상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굴뚝 세대에게는 극히 비정상으로 보이는 존재가치가, Cyber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세대들에게는 극히 정상이고 또 그것을 갈구하고 있는 세태이다.
    교통사고도 전에 비해 무척 많이 나는것 같다.  그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들이다.
    이또한 Cyber Generation과 연관이 있지는않을까?라고 Link시켜 본다.  그럴것같이 느껴진다.

    동방의 조그만 반도, 대한민국의 한 젊은 청년, PSY가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전세계의 미치광이(?) 젊은이들이 열광이고 PSY속에서 헤여나지를 못하고 있다. 당분간은 지속될 그의인기는 돈으로 연결되는것 같다.  조국 대한민국의 존재가치를 그만큼 세상에 알려준 인물이 일찌기 조선반도에는 없었다.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그뒤의 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거나 존재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마력은 아리송할 뿐이다.   장하다 어쨋던.

    https://www.youtube.com/watch?v=Ixsn81SqU6E

    https://www.youtube.com/watch?v=9bZkp7q19f0&feature=player_detail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