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06, 2015

김정일집단의 납치극 - 신상옥, 최은희 부부 - 목적을 위해서는....


http://www.bbc.com/news/magazine-31628415

북한의 마수에 걸려, 한국의 유명한 영화감도과 최고의 여배우가, 당시 영화광인 김정일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도록 지시했던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영화감독도 창조해 내지못할, 짜깁기식의 억지 영화를 만든 그모습이 그려진다.

그렇게 하기위한 간단한 방법, 즉 북한은 영화제작 기술이 필요했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한 제작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목적을 달성하기위해서 기술이 있는 감독이나 배우를 납치하면 그만인것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증거가 여기에 있다.  1977년, 한국의 최고 피아니스트가 신원이 확실치 않은 팬의 호의를 받아들여, Zagreb의 외곽도시에서 개인 연주를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는 공항에서 북한국적기가 주차되여 있는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속에 의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약속한 장소에 거의 도착했을때, 북한말투를 사용하는 음성을 듣고, 바로 발길을 돌려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영화감독과 영화배우인 그의 아내는 운이 굉장히 나쁜 경우라고 하겠다.  남편 신상옥과 그의 아내 최은회는 둘다 홍콩에서 납치당한 것이다.  피아니스트에게 사용했던 흉계를 이용하여 외곽에 떨어진 한적한 집에서 만나기로 유혹한 것이다.  그후 이들 부부는 북한을 탈출하기전까지  8년간 북한에서 영화제작을 하면서 그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들 부부납치계획은, 김정일이 아직 아버지 김일성으로 부터 정권을 인수받기전, 영화산업을 직접 지휘하고 있으면서 탄생하게 된다.  그는 굉장한 영화 전문지식을 갖추고, 한편 Hollywood 영화, 그중에서도 람보영화와 배우 Elizabeth Taylor와 James Bond가 출연한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 했었다.  이러한 영화를 감상하면서 그러한 끔직한 흉계를 꾸몄다고도 할수 있다.

서방세계에서 근무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그러한 영화를 수집하여 평양에 있는 김정일에게 보내 감상할수 있도록하는 특별 지시를 받았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수집된 영화를 보는것으로는 양이 차지않고, 어떻게 하면 북한의 영화산업을 발전시켜 국제무대에서 경쟁을 할수 있을까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서 직접 제작 감독한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흭득할수 있기를 무척 원했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명확했다.  즉 남한에서 유명한 영화제작을 하는 부부를 납치해서 그들에게 세계가 놀랄만한 영화를 제작 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김정일이 좋아하는 제임스본드 영화, 007 제작 방법을 그대로 인용하는 하는 것이었다.

여우 최은희가 먼저 납치 됐었다.  그녀가 침체기에 있던 1977년, 그녀는 홍콩의 사업가로 위장한 사람과 만나게 된다.  만약에 여우로서 성공을 못한다해도, 영화제작소를 만들어 옛날의 명성과 돈을 벌자고 제안을 하게된다.  영화제작자 또는 배우로서 돈을 벌어야 겠다는 꿈이 이루어질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그녀는 영화배우에서 제작자로 변신해서 다시 태어나게 될수 있다고 꼬득였다.

새로 발간된 책, "김정일 영화제작소"에 의하면 그녀는 홍콩으로 건너가서 홍콩근처의 한 섬에서 계획된 회의에 참석 하도록 회유 당한것으로 보인다.  회의장소로 가는 도중에 Repulse Bay에서 차가 멈추고, 그녀와 북한에서 파견된 납치범은 차에서 내렸는데, 그곳에는 여러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모터보트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최은희를 조심스럽게 붙잡아 보트로 갔다.

책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그녀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이었다.  그녀는 누눈가가 그녀를 모터보트로 데리고 갔었고,  그녀에게 주사를 놓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입속에 뭔가를 집어 넣었다.  한참후에 그녀가 깨어 났을때, 그녀는 큰 화물선의 선장실에 있는것을 알아차렸다.
선장실의 벽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김정일의 초상화가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8일후 그녀는 평양의 한곳에 있는 호화판 빌라에서 감시원의 빈틈없는 감시하에 감금되여 있는것을 알았다.  비록 신상옥과 최은희는 서로 이혼한 사이였지만, 여전히 깊은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신상옥씨는  그녀를 만나기위해 홍콩으로 갔었다.  그곳에서 그 또한 납치 당하고 만다.  "갑자기 누군가 커다란 자루로 나의 머리를 덮고, 그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볼수 없었고, 숨쉬기 또한 쉽지 않음을 느꼈었다"라고 그는 후에 술회했었다.

평양에서 둘이 서로 격리된채 감시당하고 있을당시,  신상옥은 4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많은 김정일에 협조하도록 많은 회유를 당했었다.  마침내 그가 협조하겠다고 약속하자 곧바로 최은희와 함께 생활하도록 해준다.

후에 그들 부부에 대한 사실과, 또 그들은 남한에서 그들의 사업이 기울자 북한으로 도망왔었다는  내용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었다.  그러나 "김정일 영화제작소"의 저자, Paul Fisher는 말하기를 그들은 북한의 회유에 저항을 했으며, 때로는 심하게 다투기도 했었고, 평양당국의 감시자들과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었다.

"북한에서 그들 부부가 김정일이 원하는쪽으로 일하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하는것만, 즉 영화제작을 하는길이 그들이 살길이라는것을 인식하는데는 자그만치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었다. 그들 부부는 김정일이 영화제작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영화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다는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남한에서 유명한 영화 제작자, 신상옥이 김정일을 만나 영화제작을 하기위한 회의를 하면서, 그가 여러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 있는 사람이라는것을 발견한것이다." 라고 그는 설명했다.


8년이 지나면서 그들 부부는 김정일을 회유하고만다.  마침내 그들은 김정일의 신임을 얻게되고, 그들이 도망친 비엔나에까지 여행을 할수 있도록 허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후 그들은 도피처로 미국대사관으로 들어가 CIA요원들에게 그간의 내용을 전부 브리핑한다.

신상옥은 2006년도에 사망했으며, 최은희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이북에 붇잡혀 갔다고 주장하면서도, 김정일을 속인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북한은 그들을 납치했었다는 점에 대해 완강히 부인 하면서, 그들이 제발로 북한을 찾아온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들은 그들이 김정일을 좋아했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를 갖고 있다. 내용은 그들이 김정일을 위해 비밀리에 만든 기록이다.

북한은 몇명의 일본인들을 납치한점은 시인하고 있다.  도쿄와 평양당국은 지난해에 이런 납치건을 상의하기위한 회담을 갖었었다.

북한이 70년대와 80년대에 13명의 일본인들을 납치 했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들중 5명은 2002년도에 일본으로 되돌아 갔으나, 나머지 8명은 이미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본은 그들의 주장을 믿지않고 있다.

더자세한 내용은 위의 링크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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