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7, 2016

여권은(Passport) 국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 대한민국의 국력이 선진국수준임에 자랑스럽다.

지구상에서 가장 여행하기에 편리한 여권은?


  • 세계 각나라의 시민들이 비자없이 방문할수 있는 나라의 숫자를 근거로 해서 작성,
  • 가장 힘있고 비자없이 여행할수 있는 나라는 핀란드, 미국, 독일 그리고 영국이며
  • 이락,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 여권 소지자들이 가장 여행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조국대한민국의 여권의 힘이 전세계에서 상위구룹에 속해 있음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조국에 감사할줄 알아야 한다. 


비자 규제 인덱스는 비자없이 방문할수 있는 국가를 분석하여 작성된 것이다. 최근의 결과를 보면 2014년 5월20일부터 조사한 결과에 따른것이다.

여권을 소지한다는것은  여행자가 자유롭게 세계각국을 여행할수 있는 길을 열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모두가 그럴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상에서 상당수의 나라들이, 정부에서 보증하고 만들어준 서류(여권) 운좋게 소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나라들이 당신의 여행을 제한하고 때로는 입국자체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Henry and Partners사가 비자제한에 대한 인덱스를 만들어, 여행을 자유스럽게 할수 있는 정도에 따른 랭킹을 만들어 발표했다.  어떤 경우는 놀랍게도 많은 이변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파키스탄 Khyber 국경검문소에서 Khyber Pass에서 입국허가를 받는것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난다는 뜻이다. 이나라에서 발행한 여권으로는 단지 32개국에 한해서 비자없이 입국할수 있다.

충분히 예측돼 온바지만, 북한과 또한 큐바같은 나라는 여행 자유가 가장 제한되여 있는, 가장 바닥을 기는 나라다. 이들 나라들은 86 아니면 69 나라에 한해서 가능하여, 순위로는 94위를 가르키고 있다.

각나라에 대한 평가는, 주거지와 시민권에 대해 특별히 전문인 Henley and Partners 회사가 전세계적으로 컨설팅해서 나라별로 점수를 매긴것이다.  이번에 점수를 매긴 근거는 지구상에 있는 각나라들과 그나라에 속한 영토의 비자규제 내용을 근거로 해서 작성된 것이다. 또 다른 점수기준은 그나라의 시민들이 방문하고져 하는 나라의 비자를 받을 필요없이 입국할수 있는 점을 평가한 것이다.

가장 낯은, 점수는 아프가니스탄(무비자로 입국할수 있는 나라는 겨우 28개국으로 94위에 올려져있다),이락(겨우 31나라 무비자 방문가능), 파키스탄, 소말리아(32나라 무비자가능) 그리고 팔레스타인(35 나라 무비자 가능) 순이다.

가장 높은 자리매김을 한 나라는  핀랜드, 독일, 스웨덴, 영국, 그리고 미국등이 최고의 점수를 받아, 174 나라를 무비자로 입국할수 있는 나라들이다.  Henley and Partners사는 "오늘날의 지구촌은, 비자통제로 외국사람들이 국경을 넘는데 꼭 필요한 통제수단으로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그들의 영토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외국사람들로 부터 입국비자를 요구하고 있다.  입국비자의 요구는 또한 방문코져하는 각나라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척도이기도하고, 또한 전반적으로 각나라들로 구성된 국제사회안에서 각나라의 관계와 상태를 반영하는 척도로 사용되기도한다.

소말리아(왼쪽)는 92위에 등재되여 있고, 무비자로 입국가능한 나라는 겨우 32개국이다.  이락여권(오른쪽)은 31개국을 무비자로 입국가능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은 비자자규제인덱스에서 92위에 마크됐으며, 시민들은 Trinidad and Tobago, Haiti,그리고 도미니칸 공화국 정도가 무비자로 입국할수 있는 국가를 포함하여 32개국뿐이다.  이러한 일부 국가에 대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함에도 파키스탄 국경에서 인도, 이란등은 비자 받아야 한다. 쿠웨이트에서도 완전히 입국이 금지된 아프카니스탄 국민들이 꼴찌로 나타났다.  그래도 그들은 미크로네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다와 하이티나라들에 대해서는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은 유럽연합 Schengen 나라들을 무비자로 입국할수 있으며,이 때문에 자유롭게 여행할수 있는 순위를 올리게 됐다.

유엔산하 국제여행협회(UNWTO)보고서는 지구상의 3/4에 달하는 사람들은 유럽 여행시 비자가 필요한것으로 나타났다. 

UNWTO의 Visa Openness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도까지만 해도 77%였던 사전비자획득 비율이, 2014년도에는 62%로 낯추어졌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세계인구의 19%에 달하는 사람들이 무비자로 가고져 하는곳을 여행할수 있으며, 16%는 공항에 도착해서 비자를 받는다고 한다.(2008년도에는 6%였었다) 

상위에 들어있는 나라들.


1) Finland
= Germany
= Sweden
= USA
= United Kingdom (174 points)

2) Canada
= Denmark (173 points)

3) Belgium
= France
= Italy
= Japan 
= Korea (Republic of South)
= Luxembourg
= Netherlands
= Portugal
= Spain (172 points)  

BOTTOM 5 RATED COUNTRIES  

89) 

= Eritrea
= Libya
= Sudan
= Syria (38 points)

90) Nepal (37 points)

91) Palestinian Territory (35 points)

92) Pakistan
= Somalia (32 points)

93) Iraq (31 points)

94) Afghanistan (28 points) 




한국전쟁의 참혹상 시작과 끝, 동영상 14편. 한국전66주년, 휴전63주년.

                   항상 좋은 내용의 글을 보내주시는 친지가 한국전쟁의 참혹상을 보내왔다.


한국전의 발발에서 휴전까지의 동영상14편

                           이 자료는 한국전의 발발에서 부터 휴전까지의 역사적

자료를 담은 매우 귀중한 영상 자료입니다.
일부러 구하려고 노력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인데
이렇게 14편 전질을 모아서 보내드리오니 저장하여 두시고
차근 차근 보시면 도움이 되실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보여 줌으로서 그들에게 우리의 시련의 역사를 알려주심은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릿고개는 없어져 밥3끼 먹는것은 이제 해결됐으나, 국민들의 정신은 
밥3끼 먹기 어려워 힘들었던 그때보다 훨씬 더 썩어 버렸다.
민변은 김정은의 하수인 역활을 하겠다고, 탈북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자의에 의한 남한입국한것인지를 확인하기위해
법원에 제소했다고 하는, 이적행위를 서슴없이 해대고 
있는데, 보릿고개보다 훨씬 더 깊이썩어버린 대한민국이 
사상적으로는 석양놀보다 더 깊게 빨간물이 들었다는 현주소를 확실히 
밝혀주고 있다. 한국전 휴전 66주년을 맞이하여 
호국선열들에게 볼낯이 없다.



Sunday, June 26, 2016

Brexit: '모두가 알고 있는 거칠은 결혼생활 갑작스런 이혼으로 끝장났다'에 비유.

보수당수로 새로 선출된 Margaret Thatcher가 1975년 6월 4일 "유럽안에서 영국을 지키자" 캠패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기로 다짐한다.
결혼생활로 43년 같이 살았다는것은 괜찮은 편이다.  1973년에 영국과 유럽이 한배를 타게됐지만, 이들의 관계는 서로간에 고문을 당하는것 같은 관계였었다. 때로는 돈때문에, 믿음을 주지않는다고 서로 비난하고, 양측은 조그만 사건을 가지고도 크게 확대해서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 지내왔었다.
유럽과,1971년 당시 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영국이 접근할수 있도록 협상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챔피언 역활을 했던, 보수당 출신 수상 Edward Heath가 바로 그장본인이었었다.  당시 영국의 의견은, 중도노선을 지향했던 정치권은 '유럽경제사회'에 합류하기를 주장했고, 좌파와 우파 정치권은 합류에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구애작전은 40여년이 지난후에 이루어지게될 이혼의 고약한 증오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젊은사랑 

    나는 1971년 하원에서 EEC에 합류하기로 투표했었던 10월의 밤을 기억하기에 충분한 소년이었었다. 그투표는 매우 중요한것으로 보였었고,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끝에 받아 들였지만,  크게 흥분 하지는 않았었다. 
    왕정의 영국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이 사라져가는것을 위장하기위해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있는 안전한 연결고리에 의지하면서 과거의 임페리얼 왕국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러한 행동은 가끔씩은 유럽의 "병들은사람", 또는 군중데모로 나타났었다. 유럽은 "현대"라는 다른 방법으로, 걸어가고 있는 적절치 않는 길을 탈피하고 있었다.
    1973년 1월에는 EEC 본부에 마침내 영국기가 펄럭이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2년후 노동당정부는 앞서만든 합의문의 재협상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Heath 수상의 후계자 Harold Wilson은 앞서 합의했던 조건에서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이 수정된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 그는 그의 정부각료들이 다시 그들의 생각을 담은 토론을 허용하면서, 다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무척이나 많은 보고 들었왔던 전례와 매우 흡사한 소리였었다.
    그결과로 영국인들은 다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로 절대적 지지를 투표로 나타냈고, 만약에 원한다면 다시 수정할수 있다는 확약을 했던 것이다.


    http://cnn.it/28W44y9

    Friday, June 24, 2016

    한번 보고 웃기도하고, 가슴아파하기도 하고, 기억에 남겨둘 사진들.


    Funny photos from everywhere.












    캐나다 최남단의 섬 Pelee Island 탐방 그리고 헤여짐의 만찬식사 ( June 20,2016)

    원래의 계획은 아침 일찍 Check out 하고 Leamington에서 동쪽으로 약 30킬로 떨어져 있는 Wheatley Provincial Park에 들려, 그곳을 탐방하고 Toronto로 올 계획이었으나,  여기까지 와서 Pelee Island 구경을 안하고 간다는것은 좀 아쉽고 억울한것 같아, 대원들과 중지를 모아 어제 아침을 같이 하면서, Ferry 회사와 Contact하여 Reservation을 했던 것이다.  공원도 보고, Island도 탐방 하기에는 시간이 급박하여, 공원 탐방은 취소하고, Island Ferry를 타고 Pelee Island행 탐방을 하기로 선택한것이다.

    어젯밤에는 구경 못했던 수많은 Flying Bug들이 온천지를 밤새 뒤덮어, 다른 세상을 만든것 처럼, 건물의 벽보이는곳은 전부 도배되여 있어, 모두가 깜짝 놀랐었다.  첫날 Check in 할당시 모텔 주인장께서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밤에는 가능하면 밖에 나오지 말고, 외등도 켜지 말라고 한 주문이다. 처음에는 전기세를 아낄려고 그러나 하면서 마음속으로 시쿤둥하게 들었었는데, 이제야 그해답이 풀렸다고 생각된다.  모기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고, 그런데 꼬리가 무척 길다.  토론토에서는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insect인것 같다.

    Kitchen이 함께 있는 방에서 투숙한 이유로, 여성대원 K와P가 밤잠을 설쳐 가면서 아침과 점심을 준비해 줘서 대원들 모두가 아침부터 진수성찬에 기분이 고조된채, 식탁에 둘러 앉아서, Sandwich와 Bagel Sandwich로 아침을 맛있게 해치우고, 곁들여서 Bacon에, 과일에 이곳에서의 Last Breakfast는 그렇게 진수성찬이 되고, 점심은 남은 식재료를 현지에서 먹을수 있도록 준비하고, 전기밥솥에 대원들이 다 먹을수 있는 량의 밥을 만들었다고 한다. 식단준비명단에 보면 분명 남자대원들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시원찮고, 또 마음이 놓이지않아 아예 제외(?)시키고 여성대원들이 써비스 해줘 고맙기도 했지만, 존재의 상실감에 세월의 무상함도 일부 느낀다.


    바삐 서둘러 Ferry 선착장의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이곳은 더 많은 Flying Insects들이 들끓고 있음을 보게됐다. 주차된 차량들,  인근공원의 잔듸에도 수북했고, 길바닥에 널려있는 Insect들을 밟을때는, 마치 어렸을때 딱총화약을 터뜨릴때 들었던 소리가 나기도 한다.


    우리대원들은 이미 예약을 했기에 Gate가 열릴때까지 조금은 한가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빌딩안의 Ferry 승차권 매표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자동차없이 Ferry에 승선하는 승객들은 승차권을 구입한다.  매표소 직원과 잠시 얘기도 나눴는데,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Ferry선박회사는 국가의 보조를 받는 개인회사이며,  Georgian Bay쪽에도 Sister 회사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Gate를 통해서 10시에 승선하게되는 차량들이 Line up 하고 있었고, 우리는 Line up이 아닌 주차장에 주차하고, 우리가  승선할 11시 출발할 Ferry 출발 한시간전에, 이들이 떠난후 Line up 해야한다.

    10시에 떠나는 커다란 Ferry선박이 앞부분의 Front Hull이 들려져 있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새가 먹이를 먹기위해 입을 짝 벌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올려져 있음을 보면서, 유압으로 올린 그힘은 얼마나 클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남아있는 시간동안 대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구경하고 이바구하고, 어떤 모양의 Pelee Island 가 우리대원들을 맞이할까? 등등의 상상도 하고, 주위경관의 아름다움을 맘껏 즐기고 있다.  P 대원이 호숫가에서 특급모델 이상으로 멋진 모습으로 서있고, 멀리 방파제가 보이고, 서있는 바로 그자리에는 June Fly( Insects)들이 수를 셀수없을 정도로 널려있어,  이지역의 특이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https://youtu.be/lnwpBvaBdlQ



    1906년 5월 8일, 사진에서 보이는 범선 Barge선, Armenia호는 철광석을 잔뜩싣고 항해하던중, 폭풍을 만나, 이섬의 최북단에 있는 Pelee Passage Lighthouse를 따라 Towing 되던중, 침몰되고 말았는데, 선원들은 구조됐었다고 한다.  4척의 다른 배들도 Lake Erie에서, 같은 폭풍을 만나 침몰돼고, 2명이 목숨을 잃었었다.
    당시 이배는 $36,00달러를 받을수 있는 보험에 들었었는데, 그후 얼마지나지 않아 배의 보수를 위해 $15,000달러를 수령했었다고 한다.  증기선 Charles B Packard호는 수장되여 있는 Armenia호의 선체를 들이받아 침몰하는 또다른 사고가 있었다고한다.  그후 Armenia호를 인양하여 towing하기에는 매우위험하여 다이나마이트를 사용, 폭파시키고 만다.  길이가 300 피트( 약 90미터)인 Armenia호는 목재를 이용하여 건조된 화물선으로는 마지막 이었으며, Michigan주 West Bay 시에 있는 James Davidson 선박제조회사가 건조했다고 한다.  이무렵에 선박제조회사는 목재대신 철제를 이용하여 선박 건조가, 5대호수를 중심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한다.  불과 100여년 전의 일들이다.
    이번 Project에서 식품구입과 회계를 맡은 Lunar, Susie가 영수증과 잔고를 알아보기위해, 선박이 출항하기전,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고, 대원 K 가 옆에서 거들어 주고 있어, 멀리서 보기에도 Co-operation이 잘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곳이 아니면, 이렇게 자연스럽고, 하얀 이를 들어내고 환하게 웃는 미녀들을 볼수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앞날에도 대원들의 일상이 이런 여유로움속에서 이루어 지기를, 지켜보는 다른 대원들도 크게 박수로 응원하고 같이 합장 대소했다.

    이분들도 우리처럼 Pelee Island로 가기위해 Line up 된 차량속에 주차 시키고, 멀리날고 있던 기러기떼들을 쳐다보고 있는 그모습이 역시 삶의 뜻이 무엇인가를 막연히나마 보여주는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시려진다.  마치 나의 앞날을 보는것같다.  이들이 배타고 건너가서 아주 좋은 기억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터의 염원을 보낸다.
    우리를 싣고 떠날 배가 들어와, 모든 승객들은 Inspector의 통제하에 점검을 받고 배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숫자를 계산하는 조그만 Stop Watch같은게 들려져 있었고, 한명이 그를 지날때마다 눌러대어, 승선객 전체의 숫자를 계산하고 있었다.  일년 조금전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침몰때, 정확한 승선자의 숫자를 혼동하여 발표했었던 순간이 머리에 떠 오른다.

    Susie가 승선하는 승객을 점검하던 Crew와 포즈를 취하고,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여, 우리 대원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어,고마웠다.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반사되여 반짝이는 물결이 마치 다 녹아서 조그만해져 물위에 떠 있은 조그만 얼음조각으로 착각된다.  그뒤로는 mooring되여있는 유람선들도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여러방법중 하나를 보여주는것 같다.

    처음 배에 올라탔을때는 햇볕이 들지 않을것으로 추측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었는데, 달리는 배와 부딫치는 해풍은 오히려 햇볕을 찾아 자리를 옮기게 해주고 말았다.  우리 대원들이  Ferry를 타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뜻일수도 있겠다 싶다.








    대원들이 앉아 있는 긴의자에서 빠져나와 난간 바로 밑에 있는 빈공간이 Lunar와 앉아 있기에 꼭맞아서 Sun Tan(?)을 하고 있었는데, 앗뿔사, 막내 찍사에게 들켜 버렸다.  이친구는 짖굿게도  보호용 철조망 뒷편에서 찰칵해놓고,  우리가 승선해 있는 동안에 뭔가 잘못하여, Crew에 이끌려 Jail Cell에 감금되여 있는 순간으로 설명을 해주어, 폭소를 쏟고 말았다.

    무려 1시간 30분의 항해끝에 Pelee Island에 도착하여 하선하고, 하선한 승객들은 자동차들이 Crew에 의해 배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순간이다.  우리가 타고온 배는 소형이어서 자동차의 승하차를 운전자에 맡기지 않고, Crew가 도와주어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멀리 우리가 타고온  Ferry가 보이고,  Seashore 에는  노란색을 띄는 물체가 둥둥 떠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June Fly의 시체들인것으로 확인 되면서, 정말 이지역은 June Fly의 천국(?), 아니면  유일한 Sanctuary라고 생각됐다.
    Brochure에 따르면, 탐방할곳이 많아 보였는데, 우선 선착장으로 가까운곳에 있는 Winery로 향했다.  

    Winery 입구에는 노란꽃을 활짝 피운 한무더기의 선인장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선인장은 꽃을 피우는것이 다른 꽃나무처럼 흔하지는 않다.  토론토에서는 Christmas Cactus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빨간색 또는 Pink색의 꽃을 피워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Winery의 시음장 입구에는 커다른 Barrel들이 쌓여있다.  유난히도 눈길을 끈다.  이통들이 수확기가 되고, 와인을 제조할 즈음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손을 무척 바쁘게 할것이다.
    시음장안은 무척 넓었고, 한켠에 수많은 Wine Bottle들이 Shelves에는 이곳을 방문한 Tourists에게 최후의 맛을 보여주기위해 잘정돈되여 있는것으로 보였다.  벽한쪽의 중앙에는 Taxidermied Moose Head가 아래를 내려다 보고있다.  써빙하는 Lady의 시중으로 여러종류의 와인을 오랫만에 시음하는 기분은 마치 왕이된 느낌이다.  특히 Ice Wine 시음은, 다른 지역에서는 3-5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다른 와인과 함께 무료다.  Red Ice Wine맛은 또 다른 맛이었다. 입안에 한모금 털어넣고, 빙빙 돌려서 혀끝에 묻어나는 맛은 오래 기억될것 같았다.
    White 그리고 Red Ice Wine 한병씩을, 대원들과 함께 마시기위해 구입했다.  값이 다른 Wine에 비해 만만치 않았지만,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Chance인데.... 그리고 멀리 이곳까지 왔는데, 대원들과 같이 그기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기에 모두가 환영일색이었다.  다른 몇명의 대원은 집에 선물로 가져가기위해 구입하기도 했다.  시음장에 들려 시음하고, Asian People들도 분위기를 탈줄 안다는 자연스러움을 나타내준 대원들이 대견했다.



    포도나무 덩쿨로 뒤덮혀 숲의 턴넬을 만들어 놓은 그밑으로 대원들이 앞서가는 K 대원의 지시(?)에 따라 발길을 제멋데로 떼고 유유자적이다.  다시는 이곳에 오게 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기에 한발한발 뗄떼마다 땅바닥에 표시를 더 단단히 해두려는 발걸음인것 같다.

    시음장 앞에는 여러종류의 Sample tree들이 자라고, 그앞에는 원산지와 종류를 자세히 밝힌 조그만 표지판들이 질서정연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중의 표시판 하나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Gamay Noir 라고.
    14세기경에 불란서의 Burgundy 지역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다른이름으로는 Bourguignon Noir and Petit Gamai 라고 불린다.  중간색의 Red Wine으로 주로 가벼운 음료수로 적합한 종류라고 설명하고 있다.
    점심을 먹기위해 Picnic Table이 있는 곳을 찾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Country side를 돌면서, 먹이를 찾는 사자의 눈들이 되여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한군데 호수가로 좁은 숲속길이 틔어져 있어, 막내 K 대원이 재빠르게 뛰어가 Inspect하더니, 흰 이빨을 드러내면서 환한 웃음을 보내고 Thumb up 신호를 보낸다.  물가의 Sediment는 시골 카테지가 있는 Presqu'ile Park의 호수바닥과 똑 같이 돌짝들로 구성되여 있었는데, 맨먼저 Susie가 그위에 서서 환호를 지른다.

    나뭇그늘아래 간이 식탁을 펼치는 솜씨들이 능숙하다.  음식이 더 풍부한것 같아 보였는데, 그이유가 있었다.  이번 점심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먹는 기회이기에 남은 모든 먹거리를 다 들고와서 펼쳤기 때문이었다.  이럴때는 Stomach가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준비가 다 된후에 각자에게 활당된 Dish를 들고, 이시간이 있게 준비해주신 그분에게 먼저 감사의 기도와 여행동안 같이 동행해주시면서, 대원들과 대화를 해주신 그고마움을 가슴속에 더 깊이 새겼다.  이렇게 좋은 세상살이가 또 있을까?  Ben은 좀 멋적어서인지 잠시 곁으로 비켜서 있었지만,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거금을 들여 구입해온 White, Red Ice wine이 곁들여 지고.... 뒤이어 Cheers하고 한모금씩 귀중한 보약을 마시듯, 입안에 넣고 빙빙 돌리면서 그맛을 음미도 하는 대원들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를 엮어낸 여성대원 Karin의 재치가 더 빛났다.

    Lunar가 돌수집을 하기위함인지 넓직한 돌짝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밀림지역에서 보았던 고릴라의 옆모습과 흡사하게 보였다.  Lunar, 계속 전진하시기를 .....
    맛이 있어 너무나 많이 먹었더니, 오수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자리를 펴고 돌짝위에 몸을 맡기고, 두발은 물속에 넣고 눈을 감았는데, 후에 들은 얘기지만 Lunar가 Paper Towel한쪽을 준비해서 혹시라도 얼굴이 타사 붉어질까봐 하는 노파심에서 덮어두고, 혹시라도 바람에 날릴까봐 조금만 Pebble stone을 올려 놓았었다고 들었다. 그래도 같이 오래 한침대를 썼다고, 애틋한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시를 해준것이 고마웠다.
    막내 K부부는 둘째 아이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결코 젊지않은 친구들이지만,  그래도 막내티를 내기위함에서인지, 가끔씩은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도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하는게 발견된게 여러번이다.  아 그들이 부럽다. 젊다는 그한마디 때문에. 이번 Trail Walk동안에 이들 부부가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Sediment의 형상을 보면서, 아주 오랜옛날에 화산이 터져 용암이 낯은 곳으로 흘러내려 갔었던 모습을 연상케 하는 Plywood같이 겹겹히 겹쳐진 바위에서 대원들이 그들 자신만이 느끼고 감상할수 있는 자세로 망중한이다.  이순간을 오랫동안 기억속에 담아 두기를 기원해 본다.


    작품을 만들겠다고, 어설프게 셧터를 눌러 보았다.  과연 호감을 받을수 있을까?  그런것들은 상관없다.  내가 좋아서 찰칵했으니까.  나뭇잎 하나에 검은 점이 박혀 있는게 유난히 눈을 끌었다.  자세히 보니, 마치 우리 피부에 기생하고 있는 Wart같은 존재였기에, 나무잎들도 Parasite에 시달리면서 한세상을 지내고 있음을 알게됐다.  모든 생명체는 삶을 영위하기위해 양면성의 실체가 있다는것을...




    4시에 떠나는 Ferry에 승선할 시간이 돼서 짐을 꾸려 호숫가에서 느꼈던 낭만을 뒤로 해야했다.  시간이 너무나 짧다. 아직도 이섬의 명소로 여겨지는, 가보아야할곳이 상당히 남아 있는데,  같이 보냈던 순간들이 재미있어서 였을까?

    Lake Henry Marsh, Pelee Passage Lighthouse, Lighthouse Point nature reserve, Brown's Point 등등...
    봤으면 더 많은 기억을 만들수 있었을 곳인데.... 이제는 아쉬움으로 기억속에 넣어야만 한다.

    대원들의 대화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그다음에는 폭소가 뒤따른다.  무사히 모두가 제 할일들을 훌륭히 해내서, 이순간까지 웃음이 터져 나온것, 좋은 기억으로 오래 기억될것이다.


    Leamington에 도착하자마자, 배밑바닥에 주차해 있던 차량들이 시동을 걸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대열속에 우리 대원들도 끼어 있다.  이번 Ferry는 큰 배여서 직접 운전자들이 운전을 하고 들어오고 나가게 해줘 편리했다. 마음이 조금은 급해진다.  저녁을 먹기로한 시간에 토론토에 도착하지 못할것 같아서이다.  전화를 걸어 식당에 양해를 구하고 좀 늦은 사유를 설명했더니, 걱정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오라는 당부까지 해준다. 고마웠다.
    시간을 절약하기위해 토론토 도착 약 한시간전에 다시 전화를 해서 각자가 먹을 음식을 주문했다.  냉면갈비정식, 조기구이정식, 회냉면 등등.... 기분으로는 화살처럼 달려와 식당에 도착했을때, Susie대원의 장대같은 훌륭한 아들이 엄마를 비롯하여 대원모두를 맞이해주는, 뜻밖의 환영인사를 받기도했다.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 금새 나타났다.  전부침,순대, 물만두, 큰 양푼에 가득 채워진 열무김치 등등의 보너스 음식이 푸짐이 식탁을 채웠다.  맛이 있었지만, 내배꼽도 나를 믿고 있는지라, 한계를 느껴 다 먹지를 못함이 오히려 주인장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집에 가는길에 Humber Bay Park West에 들려 훤히 뜨기 시작하는 만월달과 그밑에 아스라히 보이는 한떼의 구름과 그리고 달빛에 비쳐진 호수의 물결이 은파로 변해 장관을 이루는 장면을 덧없이 쳐다 보았다.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아련함이 남아있다.  콘도 지하 Parking lot에 주차해 놓은 막내 K 대원이 차를 타고 다시 자기집으로 가기전에 이곳에 들린 것이다.



    이제 숲속을 거니는 Trail Walk은, 공식적인 Event는 끝났지만, 실지로 숲속을 걷는 Trail Walk이 나닌, 대원들의 2차 3차 이바구의 Trail Walk이 이어질 것이다.  그속에는 배꼽을 잡는 웃음과 아쉬움으로 도배될것이다.  사랑과 우정과 그속에 함께 하시는 그분도, 그순간만큼은 위엄보다는 자애스런 모습으로 동참해 주실 것이다.  다음 Trail Walk 실시될때까지 건강.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