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2, 2016

토론토교민사회의 자존심, Partnership 성공의 증인, 평화식품 고국에서 온 친지부부와 방문.

먼저 생산공장안을 들어가는데, 혜영아빠의 엄한(?)요구사항이 있었다.  식품제조업이기에 먼저 Sanitation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것을 알기에 그의 말데로 따랐다. 다름아닌 신고 있는 신발을 먼저 소독하는 관문을 통과 하는 것이다. 벽에 걸려있는 소독기에서 소독액이 Floor에 Spray 되면서, 그위를 우리는 신발을 처벅처벅 하고 통과 했다.
 나는 평화식품제조회사를 토론토 교민의 자존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우리 한국계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은 동업이라는 사업을 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 경우를 보기는 매우 드물다.  하물며 Culture가 다르고, 법이 다른 이곳 이민자의 생활속에서는 더욱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자신도 약 40여년전에 동업을 해봤었고, 결과는 잔뜩 빛만 짊어지는 실패로 끝난 밝히고 싶지않은 가슴아픈 경험이 있기에 어려움을 잘 안다.  평화식품제조회사가 동업을 하면서 어찌 난관이  없었겠는가.  이들은 인내와 후손에게 할수 있다는 이정표를 만들어 보자는 신념하나로 새벽잠을 설쳐가면서 일년 365일을 하루같이 Milk Cow처럼 매진 하여 토론토 교민사회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https://youtu.be/H0yV2Yx1xmU


 세월앞에는 장사가 없다는말을 중국고사를 빌려보면, 진시황제의 죽음에서 인지할수 있다.  세상의 모든것이 자기것인데, 세월이 흘러감에, 이것들을 놓고 저승으로 가기에는 너무도 억울하고 안타까워,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수천명의 부하들을 풀어,  현실에서는 없는 불로초를 찾았었다고 한다.  동업자 한분은 몇년전 두사람이 장고의 협의끝에 물러나기로 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때부터 어려운 살림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정이 매우바쁜 사장인, 혜영이 아빠로 부터 우연히 생산공장 방문할수 있으면, 연락을 하고 오라는 카톡이 왔는데, 마침 고국에서 살면서 매년 여름철이면 아들이 살고 있는 이곳 토론토을 방문하는 친지분이 며칠전 토론토에 왔는데, 연락이 되여 그분부부와 함께 방문해도 좋다는 초청을 받아, 생산공장을 방문하게 됐던 것이다.
 생산제품은 우리 식탁에서 꼭 있어야 되는, 콩나물, 두부, 된장, 그리고 주식 또는 별미로 먹는 만두 등등, 고국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향수를 묻어나게 하는 친한 벗과 같은 먹거리들이다.
 모든게 거의 설비자동화 되여 생산량도 늘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새벽 5시면 공장에 나와 직접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이다.  특히 만두만드는 기계설비는 이공장의 자랑거리였다. 만두만들기는 밀가루 반죽부터, 만두속 넣는것, 삶는것, 급냉동시키는것, 그리고 마지막 포장까지 완전 자동화로, Worker는 군데군데 기계 작동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지키고 있고, 맨마지막에 포장된 만두Package를 Box에 넣고 포장하는것만 직원이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기계는 깨끗하고 윤이 번질번질 했는데, 그이유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공장안의 모든 기계시설은 완전 Stop 시키고, 분해하여 보수할것은 하고 청소를 한다고 설명해주는데서 수긍이가는 이유를 찾았었다.  만두를 급냉시키기위한 냉동설비용 Compressor는 그용량이 자그만치 75 HP라고 했다. Compressor의 작동소리는 마치 큰여객기의 Jet Engine돌아가는 것을 연상케하는 듬직함이 있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장이기에, 정부의 감독이 매2주간격으로 불시에 방문하여 점검하기 때문이기도하지만,  내가족 친척 이웃이 먹는 음식이기에, 청결을 지키지 않을수 없다는 설명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생산된 만두 제품은 이곳 냉동고에 보관하고, 콩나물은 Packing되면서 바로 현지로 배달된다는 설명이다 공장건물밖의 한쪽 보관소에서는 된장을 만드는 공정의 하나인, 그러면서도 제일 중요한, Fermenting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수를 셀수도 없을 정도의 저장통들이 즐비했다.  된장찌게 생각이 절로나와 침이 꿀꺽 해진다.

 약 40여년전 처음 콩나물과 두부를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할때는 토론토 다운타운 서쪽지역의공장 지하실을 빌려서 모든것을 수작업으로 조그만 규모로 시작했었다.  고국의 명절인 설날이나 추석날에는 수요가 많아져, 우리 몇몇 친지들은 새벽같이 공장에 가서, 또는 퇴근후에 공장에 가서, Volunteer로 같이 얼굴에 콩물을 튀겨 가면서 가래떡을 뽑고,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물에 씻어 봉지에 넣고....
집에 올때는 두부 콩나물을 백에 담아서 고마움의 답례로 손에 쥐어주는 백을 받아들고 와서 저녁 식탁을 풍부하게 했었던 기억이 엇그제 같은데.......

그때 맺어진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여러번의 공장 이전을 하여 지금의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이다.  그파란만장한 역사를 알기에 Super Market에 가면 꼭 두부와 콩나물이 진열되여 있나 여부를 나도 모르게 하게된다.  그리고 한봉지씩 구입한다. 캐나다 전역에 있는 Canadian Super Markets, 즉 Lawblaws, Metro, Nofrill 그리고 한인들이 경영하는 수퍼마켙에, 오래전부터 캐나다 국경과 인접해 있는 미국의 큰 도시들에도 공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감히 평화식품제조회사는 우리 토론토 교민사회의 자존심이자, Partnership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자랑한다.

지금은 아버지를 도아 아들이 경영수업을 하고 있었다.  힘든 일을 아들이 기꺼이 이어받아 하는 기특함이 가상스러웠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앞으로 그의 역량에 따라 사업은 번창할것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역사의 무대에서 서서히 Faded away하게 될것이다.  세월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으니까.
 머리카락의 흩날림을 방지하기위해 뒤집어 쓰고 있는 White Net는 의미하는바가 나에게는 무척컸다.  혜영아빠, 이제는 건강을 챙기고, 때가되면 같이 주유천하를 한번 생각해 보는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그날이 오게되면 희비쌍곡선이 그려질것 같아, 재촉하기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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