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30, 2016

Kim's Convenience - CBC 연속극 10월4일 부터 방영. 초기한인들이 겪은 삶의 애환.

전에는 없었던 Kim's Convenience Store가 CBC 토론토 방송국 빌딩안에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앞에는 여러명의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면서, 물건을 사고 있는 광경이 옛날 내가 이와 비슷한 장사를 했던때를 기억에서 떠올리게 했다.  나의 발걸음은, 자연적으로 빌딩정문으로 들어서자 마자 그곳으로 돌려졌고, 나도 Line up해서 차례를 기다렸다.  내차례가 되여 카운터 앞에 서있는 점원(Clerk)앞에 섰을때,  항상 들어왔던, "May I help you?" 대신에 카운터위에 진열되여 있는 Scratch ticket를 먼저 건네 주면서 winning하면 상품을 준다고 Promotion같은 선전을 하는게 아닌가? Ticket을 자세히 보았더니, 그것은 Real ticket이 아니고, Mockery였음을 금새 인지 할수 있으면서, Clerk을 또한번 보았더니, 그는 상점의 점원이 아니고, CBC 직원이었다.
그는 다음주 화요일부터 방영되는 "Kim's Convenience" 연속극의 홍보요원이었고, 가게역시 연속극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일하게 되는 모델 가게였음을 알았다.


 캐나다의 국영방송, CBC 방송국 빌딩이 토론토 다운타운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빌딩 안에서 조촐한 Su Shi Restaurant을 하는 친지가 있어, 가끔씩 들리곤 한다.
물론, 그곳 식당에 들리면 극진한 대접을 받곤 해서 때로는 부담이 되여, 오히려 잘 가지 못하는데, 오늘은 시내에 볼일이 있는김에 나갔다가 식당에 들렸었다.  우리 한인이민 1세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2세들을 양육시키게한 편의점을 주제로한 "Kim's Convenience" 가 CBC 방송의 저녁 Prime time 에 극화되여 방송될것이라는 뉴스는 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현장을 보니, 기대감이 더해졌다.


 평상시에 나는 복권같은것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오늘은 홍보요원 점원의 권유로, 물론 무료로 시도해 보는것이지만, 별로 관심도 없이 한장받아 Peeled off했는데, 나를 조금 흥분하게 하고도 남게, 3개 모두가 똑같은 "Treat"로 눈앞에 보이는게 아닌가.  점원이 이를 보고 "You won"하면서 상품으로 조그만 Candy한곽을 준다.  어쨋던 기분은 좋았다.

같이 갔던 Lunar도 나의 뒤를 이어 한장 얻어 Scratch했는데, 그녀는 나처럼 winning ticket이 아니였다.  이런경우에는 내가 더 Lucky한것 같다.  여행가서 Casino에서 Play 할때는 나는 항상 푼돈이지만 잃었었고, 그녀는 항상 승자로서 의기 양양해 했었는데, 오늘은 반대였다.  다만 Real ticket이 아니였다는점이 좀 아쉬웠지만 말이다.


 가게안의 물건 진열은 얼른 봤을때는 구색이 갖추어져 있는것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제 장사를 하기위해 Open했다고 했을때, 문제점이 많이 발생할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Kim's Convenience"라는 가게 간판을 보면서, 나에게는 1980년대 중반부터  Retire할때까지 같은 직종에서 아침에는 별을 보고 가게 문을 열고, 밤에는 다시 별을 보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으면서, 이민의 삶을 살았던 기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캐나다 특히 토론토를 중심으로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의 대부분은 이민 초기에 거의가 다 Convenience 업종에 종사 했었다. 그세대가 지금은 거의 다 은퇴하여 황혼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한인들이 이러한 업종에 몰리게 된데는, 나름데로 분석해 보면, 우선 언어소통의 불편함을 최소화 할수 있었고,  또 다른 이유는 언어 소통문제로 전공한 Job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었던 이유도 있었다고 하겠다.  훌륭하신 분들은 전공을 찾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비교적 편한 삶을 살아온분들도 있다.  이런 환경속에서 2세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이 지금은 자라서 이곳 사회의 각분야에서 두각을 서서히 나타내고 있음을 보면, 그래도 이민1세들의 힘든 이민의 생활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라고 큰점수를 주고 싶다.


 이민자로서 가장 보람있게 느끼는 점은, 물론 자손들이 잘 성장하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로 사회생활을 자유분망하게 이루어 가는것을 보는 흡족함일 것이다.  그외에 가장 중요한점은, Convenience Store를 하면서, 근검절약하여 경제적 기반을 비교적 잘 갖추어, 은퇴후에 생활을 큰 여려움없이 하고 있다는점일 것이다. 그렇타고 풍족한 삶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Convenience 사업도, 2000년대로 접어 들면서, 시류에 따라 서서히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하여, 지금은 우리 한인들의 손을 떠나 중국계 또는 월남계등의 다른 민족들에게 바통이 넘겨져, 온타리오주에 불과 1,000개도 채안되는 가게만 남아 있을 정도다. 한때는 5천 또는 6천개 정도의  Convenience Store들이 한인들에 의해 운영 됐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정부의 정책에서 쉽게 찾을수 있다고 하겠다.


 2000년대 전후를 맞이하면서, 그때까지 온타리오주 정책은, 일요일과 Holidays 에는 경쟁상대에 있었던 Super Market의 영업을 금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정책이lifting 되면서, Customer들은 자연적으로 값싸고, One stop shopping이 가능한 Super Market으로 몰리면서, 편의점은 서서히 그영광(?)을 잃기 시작했었다.   큰 Super Market의 영업이 금지된, 전성기에는 토요일, 일요일 2일간의 매상이 주중의 전체 매상보다 더 많았었다.  또 다른 요인은 일요영업이 허용되면서, 미국의 큰 Walmart,  Costco 또는 Home Depot 같은 큰 Chain Store들이 앞다투어 캐나다로 몰려 들면서 치명적 타격을 입은 것이다.  여기서도 정치가들이 얼마나 거짖말장이 인가를 뚜렷히 알수 있는면이 있다.  그들은 큰 Store들이 Open하게 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캐나다 경제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논리를 폈지만, 그로인해 소리없이 서서히 일자리를 잃어가는 Small Business에 대해서는 계산을 아예 안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숫자가 큰 Store 들이 창출한 숫자보다 더 많다는 호소를 정치꾼들은 지금도 완전히 귀막고 있는 것이다.


Convenience Store을 운영하면서, 당했던 어려운점도 참 많았다.  요즘은 그런편견이 거의 없만, 그때만해도 이곳의 어린 학생들이 유교사상에 깊이 젖어있던 우리 한인들이 쉽게 이해할수 없는 거친말과 행동을 해서, 별수없이 당해야만 했던 정신적 아픔도 많았었고,  어린아이들이 부모님 심부름으로 물건을 사기위해 왔을때, 금발에 하얀 얼굴이 귀여워서, 할아버지의 심정으로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나, 또 다른 신체 부위를 사랑의 표시로 만졌다가, 뜻하지 않게 성적학대(Sexual harassment) 라는 치욕스런 죄목으로 기소되여, 치한으로 몰린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런것들이 바로 Culture Shock였었다고 할수 있겠다.  지금은 이런 항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곳의 경찰관들이나, 이민1세들이 사회적 문화를 잘 알고 적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한인들의 풍습을 이곳 사회가 어느정도 이해한다는 뜻이기도하다.


 오늘은 운이 좋았었나 보다.  이 연속극에서 아버지로 출연하는 Actor를  우연히 Building안의 Atrium에서 만났다.  우선 그에게 물었다. " Which language do you speak in the drama?" 내가 생각했던데로 그는 한국인은 아니였고, 아마도 중국계로, Gag man임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I think time to time  Korean will be spoken but would be English mostly but I'm not sure" 그의 대답이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가게를 한 경험이 없어서, 과연 제대로 Convenience Store를 하면서 겪었던 우리 한인 1세들의 애환을 제대로 소화해 낼까?라는 의문이, 그와 대화하는중에,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CBC 국영방송에서 한인들의 주종사업이었던 "편의점"을 주제로한 연속극을 방영한다는것은 그만큼 한때는 편의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는 증거로 봤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연속극은 다음주 화요일 (10월4일)부터 한회에 30분간씩, 13회(13 Episode)를 하게 된다고 설명해 주면서, 관심을 갖어 주어서 굉장히 흥분된다고 심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친절히 설명해주면서, 오히려 잘해낼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너스레도 떠는 모습에서 포근함을 느끼기는 했었다.

우리한인사회 이민1세들의 편의점 경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라, 지금은 성인이 되여 사회생활을 잘하면서, 어렸을때 경험했던 부모님의  삶을 Non fiction Novel로 써서, 캐나다 전국적으로 큰 호평을 받은 또 다른 편의점의 주인공이 있다. " Kay’s Lucky Coin Variety" 
이소설은 캐나다의 문단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문인이 추천서까지 써 주면서, 칭찬을 해주고 많은 성원을 독자들로 부터 받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을 아래주소를 링크해서 자세히 볼수 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6/09/2.html

Wednesday, September 28, 2016

남편은 방문객신세이고 여성이 호주인 동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모계사회의 삶과 전통.

역사를 통해서 본바로는, 옛날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한때는 "모계"중심이었었다고 한다.  문명이 발달안돼고, 남편이라는 사람은 먹거리를 구하기위해, 즉 사냥을 하기위해 집을 떠나 목적지를 향해 먼길을  걸어야만 했었기에 집에 거주하는 기간이 규칙적이지 못해 자연적으로 집안살림과 아이들 성장에 필요한것은 엄마의 몫이 될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유추 해석해 본다.



인공위성이 몇년을 날아가 Jupitor의 사진을 찍어 보내고,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 하느니, 얼음으로 덮혀 있다느니, Cell Phone이 신체의 일부가 된것 같은 삶을 살게하는... 하는등등의 과학이 일상화 된 세상인데, 이를 부정이라도 하는듯이, 엄연히 여성들이 가정의 주축이 되고, 남편인 남자는 아내가 거주하는집에서 손님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는 마을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뉴스는 어느면에서는 현대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느낌(?)마져 주었다.

인도네시아는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토면적이 무척 큰 나라이다.  이곳을 여행하기위해 현지의 전문 여행사를 찾아 보았으나, 신통하게도 현지의 Local Tour Agent 는 생각보다 활동이 빈약하고, 거의가 다 북미의 여행사들이 여행 안내를 하고 있는 점도 특이 하다면 하겠다. 가보고는 싶은데....


Sumatra섬 서쪽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에서는 남성인,남편도 손님으로 취급되는 마을이 있다.



 모든것은 여성이 통제한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서족의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원주민, Minangkabau족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모계
사회를 형성하고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12세기경에 Koto Batu왕조를 세우고 통치해왔던

Mahrajo Dirajo왕이, 3명의 왕비로 부터 얻은 3명의 어린 아들을

뒤로하고 죽었다.자연히 첫번째 왕비,Puti Indo Jalito가 자동적으로

아이들과 왕조를 지키면서,모계사회를 형성하는 기틀을 다졌다는것이다.



여성이 모든걸 소유,통제
이렇게 특유한 사회구조속에서, 쌀농사를 짖는 논이나 가옥들은
전부 딸들에게 상속된다.  아이들은 그들의 어머니 성(Family
name)을 사용하고, 남자인 남편마져도 그의 부인집에서는 손님
으로 간주되는 부족들의 삶이다.

여러종교를 섬긴다.
힌두교와 불교문화가 이곳에 전수되기 전까지는 Minang족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사물을 신앙으로 대상으로 여기는 신앙심이 강한
부족이었었다.  그들 문화의 근간은 Adat으로 불리는, 그지방의 
전통과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로 부터 유래한 법과 믿음을 기본으로
여기고 있다. 한편으로는 Pawang, 즉 정신적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기위한 상담을 많이 하기도 하며, 미래를 점치거나 또는
우주에 펴져있는 정신세계와 소통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모계사회
임에도 불구하고, 어쨋던, Minang족들은 이스람도 포용하고있다.



특이한 결혼생활
이슬람 전통인, 즉 결혼을 하게되면 신부는 신랑집으로 들어가는게
아니고, Minang족의 신랑은 신부쪽 조상들이 살았던 집으로 들어
가서 그녀의 친정식구들과 같이 살게된다. 신부의 결혼몸값은 신부
가족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주로 신랑의 학력과 직업에 따라 결정
된다고 한다.

              
인생의 새로운 진로
결혼은 매우 정교한 둘만의 결합이다.  결혼식날, 신랑은 그의 집에서
나와 결혼축제를 하기위해 신부집으로 안내된다. 그곳에서 결혼의식
또는 Nikah, 즉 회교의식에 따른 결혼축제가 행해진다. 신랑은 이
축제에서 춤추는 소녀들과 Gandong Tambua, 즉 그들 전통의
드럼을 두드리고 꾕과리 징을 쳐대는 젊은 남자들의 환영을 크게 
받게된다.




화려한 전통의상과 쇼
신부의 가족들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신랑에게 바쳐질 돈,선물 그리고 음식이 들어있는, 잘 장식된 
상자를 이고 환영한다.



평등주의에 입각한 평등한 대접
가족의 모든 권한을 나이 많은 할머니가 주관하기 때문에, 결혼은
Minang족 여성들에게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우선권을 부여한다.
한가계의 호주이자 농토와 자손들을 통솔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은
가족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이를 중재 해결하고, 징벌도 내리고,
자손들 결혼과 여러 의식들을 행하는데 중요역활을 한다.


Minang족의 남성들은 집안살림을 꾸리기위한 재정적 책임을 지며,
아이들 양육에 대한 책임도 맡고 있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이러한
임무를 완수하기위해 일거리를 찾아 때로는 보금자리를 떠나며, 가
끔씩 집에 들릴뿐이다. 그들이 떠나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가정사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게 된다.



승리한 Buffalo가 의미 하는것
전설에 따르면, Java의 Majapahit왕조의 왕이 Minang족에 대항
하여 전쟁을 선포하게되면, Sumatra 왕은 전쟁 대신에 버팔로들의
싸움을 제안 했다고 한다.  양측에서 이제안을 받아들여,Minang족에
서 온 버팔로가 Majapahit 족의 버팔로를 예리한 뿔로 찔러 죽여 
승리 했었다고 한다.

Minangkabau의 말뜻은 Minang 에서 찾을수 있는데, 그뜻은 승리
를 의미하고, Kabau는 물소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 전통
가옥의 지붕 모양과, 여성들의 머리에 두른 장식은 버팔로 뿔의 모양
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http://www.bbc.com/travel/story/20160916-worlds-largest-matrilineal-society

Tuesday, September 27, 2016

미국의 양당 대선후보 정책 Debate를 시청, 그러나 내용은 기대 이하로 실망이었다.

11월초에 실시되는 미국의 대선에 앞서, 오늘 공화,민주양당의 대선주자가 첫번째 정책 토론회를, CNN 주최로 Hofstra 대학에서 저녁 9시부터 약 1시간 30분 조금넘게 진행됐었다.
이번 Debate는 미국민들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오늘밤 Debate에 적어도 1억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TV 시청하게 될것이라고 했었다.

두후보 모두 미국민들이 대통령으로서 받아 들이기에는 허물이 많다는 점이다.  Hilary Clinton은 장관 재직시 개인 이멜을 운용하여 국가 기밀이 포함된 많은 내용들을 사적으로 이용한 점이 큰 짐이 되고 있었고, Trump는 탈세를 포함한 Income Tax Return 하지 않았기에 발표를 하지 못하는것이라고 몰아 부치고 있는것이다.


우선 NBC의 Lester가 Moderator로 Debate를 주관 했는데,  중립적인 위취를 잘 지키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또한 양후보에게 정확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 2분씩을 주었을때, 이를 꼭 후보들이 지키도록 확실한 Control했어야 했는데, 그점이 그는 Moderator로서 시청자중의 하나인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주요 토론 쟁점은 Job, Tax, Crime, 테러,인종차별문제 등등이 주요 주제로 올랐었다.


Debate에서, 전체적으로 Lawyer 출신인,Clinton이 Smooth하게, 질문에 잘 비켜 나가면서, 달변가 답게 잘 처신한것을 부인할수는 없었다.  이와는 다르게 사업가인 Trump는 거칠은 표현을 써갔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잘 지적한 점을 높이 사고 싶고, 그이유로 많은 공화당원들을 포함한 미국 시민들이 그의 거의 혁명적인 Innovation 주창에 환호를 보냈었다고 생각되는데, 오늘 저녁 Debate에서는, 경험 부족으로 Clinton에게 토론의 주도를 뺏겼었던것 같다.

토론이 끝난후 CNN의 Critic과 Panel의 토론을 들어봤는데, 이들 역시 Debate의 목적인 누가 더 좋은 정책을 미국민들에게 보여줬는가를 보기 보다는, 누가 더 달변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가에 초점을 둔것 같아, 별로 호감을 줄수 없었던 것으로 나는 느꼈다.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의 정책이 잘못되여, 많은 기업들이 이웃나라인 멕시코를 비롯한 중국등 많은 나라로, Obama 정권동안에, 이전 했는데 그의 정부에서 한배를 타고 Clinton은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이런 잘못된 정책수행의 중심에 있었다고 공격했었다.  수많은 Job이 사라져 버렸다는 논리였다.  이에  Clinton은 Obama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 많은 Job이 창출되고, 경제 지표가 더 향상됐었다고 응수했었다.

Crime문제, 흑인들의 불이익정책, ISIS테러들의 세력확장은 Obama정부가 이락에서 미군들 조기철수했기 때문에 그자리에 Vacuum이 생겨 테러 조직들이 그자리에서 세력을 키워, 지금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로 뻗어 나가게 된 원인을 제공 했다고 Trump가 공격을 해댔는데,  그녀는 능숙하게, Obama정부가 들어서기전의 공화당출신 Bush대통령이 세워논 정책에 따라 미군을 철수한것일 뿐이라고 응수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고 쉽게 넘어가는 재치를 발휘했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의 정책 토론회는 그빛을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오늘 깊이 느꼈었다.
알맹이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후보에게 점수를 주고 Debate에서 승리 했다라고 발표한것을 보면서.... Practical한 정책보다는, 정치가들 특유의 달변에 더 귀를 기울이는 미국의 언론과 정치판도 다른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변했다는점이 무척 아쉬웠다.

Trump가, 국무장관 출신인 Clinton은 30년 동안 정치판에 있으면서, 말만 늘어 놓았을뿐 실적이 전연 없다고 몰아 부치자, Trump의 정책은 미국을 세계의 정치판에서 고립시킬 위험한 발상이라고 역공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정책을 큰 변화없이 동맹국들과 잘 진행시킬수 있다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테러구룹들을 소탕하는데 전력을 다해 결론적으로 우리가 승리할수 있다라고 응수했는데....
이락에서 미군 조기 철수정책은, 내생각으로는, Obama 정부의 큰 실책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론의 Commentator들은 그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점이 무척아쉬웠다.

미국인들이 투표장에 나갈때까지 앞으로 3번의 정책토론과, 한번의 부통령 정책 토론이 있다고 했다.  그 토론회에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점들을 토론할수 있도록, 다음번 정책 토론의  Moderator는 지혜를 발휘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잘 치러져야 내가 태어난, 조상님들과 가족들이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안전면에서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북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세계의 화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반도의 문제점이, 중동의 테러조직의 위협보다 더 가볍게 취급되는점도 안타까웠다.

다음  Debate을 기대해 볼수 밖에....

Monday, September 26, 2016

Brighton's Pride : Apple Festival and Parade, 매년 더 많아지는 구경꾼들..

나의 Summer residence가 있는 Brighton에서는 매년 9월 마지막주말에 Apple Festival이 3일간 열린다.  Hwy 401을 동쪽으로 달리면, Courboug  에서 부터 Trenton지역까지 Lake Ontario를 따라서 약 40킬로 정도가 Apple Orchards로 온타리오주에서는 사과 집산지이다.

15년전 처음 내가 Brighton에 갔을때, 사과축제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잘알려지지 않아 사람보는 재미는 거의 없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Main Street 의 한구간, 약 1킬로 이상을 Merchandise Booth가 설치되여 사과로 만든 Pie를 비롯한 각종 Foods, Craft 등등이 꽉 차있고....
시들어가는 여름을 뒤로하고, 새로 찾아오는 가을의 입구에서 행해지는 사과축제는 한번씩 구경할만 하다.


이곳은 Main Booth가 설치된 곳으로 부터 좀 떨어진 뒷골목에 설치된 Open Beer 축제장인데, 역시 아름다운 미녀가 빠지질 않았다.
이번 축제에는 McDonald's 가 Booth를 설치하고, 모든 Reveler 들에게 무료로 Hot drink를 제공하고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앞에 모여드는것도 특이한 사항중의 하나였다고 하겠다.
McDonald's가 이곳에 Booth를 설치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Hwy 401을 동쪽으로 달리면 Exit 509가 Brighton으로 나오는 그입구 얕은 언덕에 McDonald's 식당이, 새로 크게 건물을 짖고 거의 완성단계에 있는데, 약 한달후인 10월 말경에 Great Opening 을 하는데 대한 Promotion 차원에서 이번 Festival에 참석한것으로 보였다.  역시 Business하는 Concept이 특이 했다.
나와 Lunar 는 처음에 Mocha coffee 한잔씩 주문해서 마셨다.  향이 구수하고 입맛이 솟게했다.
Booth를 구경하면서, 되돌아 올때는 Black Coffee 한잔씩을 더 얻어 마셨는데..... Mocha coffee를 마신뒤끝의 달콤한 여운 때문이었는지, 약간  Bitter한 맛을 느꼈었다.

4일간 계속되는 축제지만, 역시 High light는 Reveler들이 발디딜팀도 없이 모여서 즐기는 Main St. 에 설치되여 있는 먹거리 Booths들을 좌우로 가르면서, 행해지는  Street Parade일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두 행렬은 어린 꼬마로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끄는 Bands, 각종 단체를 대표하는  Band, Antique Cars, Brighton의 마스코트인 Presqu'ile Park의 맨끝에 있는, 온타리오에서 가장 오래된 Light House를 Mock한 Band 등등....
Parade의 맨 앞에는 Opp Patrol Car가 Head lights을 켜고 convoy를 해주어, 사람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는 강한 메세지를 전해 주려는듯한 인상을 받고, 나도 그Officer에게 손을 흔들었다.

Scotland에서 전래한 Piper Band는 그소리도 특히 하지만, 그들이 착용하는 수백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같은 색갈에 같은 Pattern의 복장이다.  마치 우리 조국의 오랜 전통인 풍악놀이같은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전통이 그대로 오늘 또 재현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전통이, 이제는 돈벌이를 위한 일부 전문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각고장의 전통축제에서는 사란진것으로 알고 있다.  뭐가 다른가? 한국이 전통과 어른을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누가?

고교생들의 Drum Band, 꼬마들의 Street Dance. 이들 청소년들의 두얼굴을 보면서, 마음 든든해진다.  평상시에는 이들 청년들은 "화약고"라는 단서가 붙을 정도로 무질서한(?) Thug로 보이는데 이들의 질서 정연한 행동에서, 뿌리깊게 자리한 전통과 든든한 사회적 구조의 Strong foundation이 오늘의 북미사회의 근간이 된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다 썩어가는 판자떼기로 얽어서 만든 굴러가는 괴물인가? 아니면 자동차일까? 헷갈린다. 이얼마나 여유로운  Satire Gesture 인가.  어느 누가 과연 이렇게 굴러가는 괴물(?)에 엔진이 붙어 있다고 생각할수 있겠는가?



시골 농촌이기에, 옛날 고국에서 농사를 지을때, 소가 밭갈이나 논갈이 할때 주역을 맡았던것 처럼, Combine이 농사일을 다 맡아하고 있다.  지나가는 Combine 들 중엔 1950년대에 제작된 것들도 보였다.  그러나 외모는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되여 있어 보였다.




  
195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두 Senior Singer들이 Country Song을, 구성지게 불러 제끼고 있다. 그앞에는 생맥주에 취해서 같이 흥얼 거리는 맥주 애호가들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여 Park 전체를 축제 분위기로 더 취하게 한다.  Singer는 그옛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있을까?
나의 회상은 어떤것이 될까? 젊어서는 먹고살기위해, 이민 보따리까지 싸야 했었고,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는 새벽에 별을 보고 일터로 나가서 저녁에 별을 보고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팍팍한 삶에서, 뚜렷히 회상해볼수 있는, 웃음섞인, 기억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감사해 한다.  Milk Cow처럼 일했던 그댓가를 보상받아, 지금 이곳 시골에까지 와서 여름을 즐기면서 만추의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된것을 말이다.

Gamble Booth에는 역시 상당수의 구경꾼들이 모여서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하기에 여념이 없는 광경이다. 수많은 과녁들이 표시된 과녁판을 돌려서 그중의 한개가 우승자를 생산해 내고 나머지는 전부 Betting한것을 잃는다. 아마도 오늘의 축제에서 이들만이 가장 큰 수확을 얻었을것 같다.

US golf legend Arnold Palmer dies at 87. 골프의 전설, Arnold Palmer,87세에 하늘나라로.. 세월앞에는...

 전세계 골프인들의 전설, Arnold Palmer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다. 향년 87세. 골프애호가들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과 애정을 함께 받아왔던, 골프의 전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고, 역사속에 아주 자그마한 한 '획'으로 이제 기억속으로 묻혀 사라질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두손모아 빈다.

나는 골프하면, 먼저 Tiger Woods를 생각한다.  나와 동년배이면서도, 골프를 먼저 입문한 골프애호가들은 Arnold Palmer를 많이 기억할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을때는 아직 10대의 Tiger가 혜성처럼 나타나 골프계의 전통(?)을 확 바꾸어 놓을 정도로,  그가 Tournament에 나타났다하면, 그가 승자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Gallery들이 구름처럼 그를 따라 다니고, 골프 Commentator들 역시 그에 대한 얘기로 TV화면을 장식하곤 하는, 괴력적인 마력을 Tiger는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Arnold Palmer가 전성기였을때는 아직 처럼 TV가 보편화 되지 않았을, 라듸오 전성기였을때로 추측된다.
미국골프의 전설, 금세기의 가장 위대하고 골프계에 영향을 많이 끼쳤던 Arnold Palmer가 향년 87세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미국 펜실바니아주 Pittsburgh에 있는 UPMC Shadyside 병원에 입원하여 심장검사를 하던중, 사망하게 된것이라고, the Pittsburgh Post-Gazette 보도한 것이다.
그의 골프 경력을 보면, PGA Tournament에서, 7번의 메이저 챔피언쉽을 포함하여, 90개 이상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골프협회(The US Golf Assoc.)는 그를 가리켜 "가장 위대한 골프계의 대부, 전령"이라고 호칭(called him)해왔었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로 부터 애도의 물결이 쏟아졌는데, 그중에서 Tiger Woods는 "나에게 보여준 친구로서의  우정과, 나의골프 카운슬러, 그리고 많은 웃음을 선사해준 고마움에 감사 드린다. 남에게 배풀어줌과 인간애로 살다간 삶은 당신에 대한  전설중 일부이기도 하다."라고 트윗을 했다.
Palmer는 그의 열광적인 팬들로 부터 "Arnie의 군대"로 불려왔으며, TV세대가 시작되면서 골프를 세상에 알리는데 크게 일조를 담당 했었다고 한다.
골퍼로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수퍼스타로 각광과 사랑을 받았으며, 또한 청량음료수 및 애주가들 사이에서 그를 기념하기위해 '아이스 Tea'와 '레모네이드'를 혼합하여 만든 " Arnold Palmer 칵테일"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었다.
그는 또한 그의 이름을 딴 프로 골프 토너멘트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 이름하여 "Arnold Palmer Invitational"로, 매년  플로리다 Bay Hill 리조트안에 있는 사설골프장에서 열리곤 했었다. 한국의 골프대부격인 '최경주'도 초청되여 Play할때, TV시청한 기억이 있다. 골퍼로서는 이대회에 초청받는다는게 가장큰 영광중의 하나이다.

백악관에 초청된, Arnold Palmer를 비롯한 유명인사들 앞에서 Obama대통령이 퍼팅하는 모습.
아놀드는 골프하면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해온 인물' 이었었다 라고 BBC의 골프 해설가 Lain Carter는 평했다. "골프에서 그의 카리스마적인 힘은 지도위에 골프를 각인시켰으며, 절대로 시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기도 했다.
같은 골프경쟁자이자 또 가장 절친했던 친구 Jack Nicklaus는 "이제 나는 위대한 친구, Armold"를 잃어 버렸다"라고 애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골프와 스포츠 하면 가장 믿어지지 않은 그를 연상했었던 그를 떠나 보내고 말았다"라고 그또한 트윗을 했다.
"Arnold는 골프게임 그이상의 위력을 나타냈었다. 그는 골퍼였을뿐만 아니라 위대한 골퍼로, 골프의 상징, 전설로 기억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음악하면, 3 테너가 있었듯이, 골프에서는 이들 3명이 항상 골프 Galllery들을 즐겁게 해주었었다. 왼쪽부터 Arnold Palmer, Jack Nicklaus, Gary Player. 이들중 2명은 아직도 Senior골프대회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때 골프토너멘트에 출연한다.

아래의 링크를 열면, 세계유명, 현역 선수들의 트윗 내용을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