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9, 2016

애티오피아,북부고산지역의 암굴교회탐방은 험난한 Trekking에서만 가능하다.. 산악인과 신앙인들의 다른점.

우리 부부는 2013년 3월부터 약 한달간 애티오피아 전역을 북쪽 Axum부터 남쪽의 Kenya국경 가까운데까지 구석구석을 가능한한 자세히 탐방했었다.  기억에 특별히 남는것은 암굴교회(Rock - Hewn Churches)들이, 내 생각으로는 거의 불가사의한 선배인류분들의 걸작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본 암굴들은 대개 낮은 산이나 인간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위산을 뚫고 다듬어서 교회건축물을 만든 걸작들이었었는데, 특이하게 Debre-Damo-Monastery만은 높은 바위산위에 있어, 그곳을 올라가는데는, 15미터쯤 되는 바위 절벽을 밧줄하나에 의지하고 힘들게 올라가야만 바위산위에 있는 Church를 볼수 있었는데, 나는 교회를 탐방해볼 간절한 마음으로 밧줄을 잡고 죽을 힘을,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올라갈려고 했는데, 겨우 6미터쯤 오르고 팔에 힘이 떨어져 원망스럽게도 Give up하고, 나의 양팔이 내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받쳐주기에는 너무나 빈약함에 무척 낙망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아쉽기만한 애티오피아 여행의 숙제로 남아있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3/03/debre-damo-monastery.html

오늘 BBC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나를 무척 흥분되게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애피오피아의 북쪽 지방에 있는 Gheralta 바위산속에 1,000년 이상된 동굴교회들이 많이 있다는 뉴스는 다시한번 애티오피아에 여행을 가고픈 욕망을 솟게 했었다.  교회들이 건축물이 아니고 높은 바위산위의 동굴같은곳에 만들어져 그속에는 예배보는 처소와 자연에서 Extract한 염료, 즉 페인트를 이용하여 천장과 그리고 암벽에 벽화를 섬세히 그렸다는 것이다.  내가 오르려고 했었던 Debre-Damo-Monastery가 바로 그러한 바위산 정상에 있는 교회중의 하나였음을 세삼 깊이 느끼게된다.


애티오피아의 Gheralta산속에 있는 1,000년 이상 오래된 동굴속에 있는 교회의 벽화를 보기위해서는 칼날처럼 깍아세운듯한 바위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생명줄이다시피 한 로프 하나없이 어렵게 올라가야만 되는, 힘찬 체력과 기술을 요하는 Trekking이 필수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애티오피아의 산속암굴 교회들.애피오피아의 북쪽 Gheralta산속의 수직으로 
형성된, 상상을 초월하는,바위 절벽을 넘어야만 접할수 있는 어마어마한 산새는 미국의 남서쪽에 쭉 펼쳐져 
있는 붉은 사막을연상케하고도 남는다.

이산들속의 교회들이 기본적으로 다른점은 높은 절벽위에 자리하고있고,험난한 낭떨어지를 어렵게 올라, 
볼수있는 건축물은 애티오피아의 Orthodox교회로, 그들중에는 건축된지 1,000년이 훨씬넘는 암굴교회를 
보기드물게 방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된 지형으로 봐서, Gheralta에 흩어진
여러교회들은 Aksum지방의 중앙지역에 건축되여 있는 초기 애티오피아 정교회들이다. 지리적으로 
Tigray지방에 있는 Gheralta지역에 건축된 교회들은 30개 이상의 각자 건축형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지방에 오래동안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교회들은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건축된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이교회들은 9세기에서 12세기경에 건축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험한 협곡을 지나 어렵게올라갈수있는 Haven.
Gheralta churches 는 험한 산속에 묻혀져있고 그목적은 크게 두가지로 볼수 있다.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 높은 산속에서 기도하는것은 하늘과 더 가깝게 연결될수 있다는점과, 또다른 
목적은 침략자들이 이곳을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고, 또 그들 침략자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한다.  

교회방문을 하기위해서는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때문에, 협곡을 기어올라가야하고, 절벽같이 깍아
져있는 사암절벽을 기어올라 스커트처럼 펼쳐져 있는 절벽의 끝부분을 조심스럽게 올라야 한다.

애티오피아 정부관계자들은 Gheralta 산속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고져 하는 사람들은, 이지방의 언어와 전통
그리고 이곳 험한 산세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안내자를 꼭 앞장세워 가기를 강력히 권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우리는, 안내자,Yemane과 함께 우리의 첫번째 방문교회인 Korkor교회를 가기위해
협곡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서 전진해야만 했다.  이곳을 가기위한 험한 길은  동남쪽으로
약 1킬로 떨어져 있는 Megab 마을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산속의 바위를 깍아 세운 암굴교회

6미터가 넘는 사암절벽을 기어오르는것을 포함하여 약 한시간을 Trekking한후 마침내 우리일행은
Maryam Korkor에 오를수 있었다.  계곡밑에서는 보이지 않은 애티오피식 Orthodox교회의 건축물 - 절벽에 
에 일부가 걸쳐있는 부분적인 큰 암석 - 은 거의 불규칙하게 형성되여 굉장히 넓게 보였는데, 내부깊이가
17미터이고 넓이는 9미터 넘게 보이는 구조물을 보호하는 아주 심플하게 보이는 정면이 특이 했다.  이 큰
바위돌의 건축물은 바위를 조각하여 만든것이었다.

 
아직 엄마 자궁에 있는 그리스도. 

Maryam Korkor안에 있는 높이 6미터의 아치와 십자가형상의 기둥
들은 자연에서 채취한 색상으로 만든 종교적색채가 짙은 수채물감으로
그려져 있다. 비록 이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분야의 전문역사학자들은 이작품은 17세기경
에 제작된것으로 믿고 있는데, 그이유는 여기 그림에서 볼수 있는것
처럼, 그리스도가 엄마의 자궁안에 있는 형상의 이미지들이 비잔틴
시대의 강한 성격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위험한 자리.
Myryam Korkor와 Daniel Korkor교회를 돌보는 사람은 Aba

Tesfa Silassie라는 남자로, 그는 78세의 애티오피아 Orthodox

교회의 수도사로, 지난 63년동안 이렇게 깊은 산속의 교회에서 살아

온것이다.  그는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에 거의 마음에 내려가는

일이 없었다.  대신에 동네 소년들이 그에게 줄 물과 먹거리를 깡통에

담아와서 그에게 주면, 그는 그대가로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읽어

주고 설교도 해 주었다.  우리는 그를 따라 절벽의 끝까지 가서

Daniel Korkor교회입구에 도착하여 교회안의 암벽에 앉았다.

Silassie는 수직으로 된 좁은 곳을 따라 플라스틱 샌달을 신고 들어

가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그의 왼쪽으로로 펼쳐진 약 300미터의 깍아

세운듯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림을 통한 상상속에서 배운다.
우리는 Daniel Korkor교회에 들어가기위해 아주 조그만 문을 통해
기어들어갔는데, 그안에는 두개의 방이 있었고 천장과 벽들은 자연
에서 채취한 베리와 꽃재료를 사용한 페인트로 색칠되여 있다.
이교회의 페인팅은 Gheralta교회에서 보다 더 간단해 보였었다.
우리는 왼쪽벽에 그려진, St.George가 용을 살해하는것을 간단
하게 묘사한 벽화들이 무척 보기 좋았었다.

20세기까지, 문맹을 퇴치하기위한 교육을 애티오피아 Orthodox
수도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시킬수 있도록 미리 계획을 세웠고, 이러한
벽화들을 통해서 성경과 애티오피아 사람들에 관한 역사를 많은
사람들이 배우게 했었다.



파노라믹한 평원들 처럼보이다.
Daniel Korkor 교회를 내려 오면서 우리는 절벽 아래에 펼쳐지는
Hawzien 평원이 보이는 Gheralta 산맥들의 파노라믹한 모습을
절벽의 끝머리에서 충분히 즐길수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지역의 어머니들은 우리가 험악한 산악을 힘겹게
올라가 정상에 도착했던것과 똑같은 Trek을 해서 교회에 갔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세상에 태어난지 겨우 40-80여일밖에 안된 어린아이
를 등에 업고 힘겹게 올라서, 세례를 받았었다고 한다.  그러한 세례
의식은 1,000년 이상을 이어져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위를 향해 계속 전진
The following morning, we began our climb to the church of 
Abuna Yemata Guh along a route that made than our 
previous day’s journey look almost easy. Setting off, we saw 
this tiny, modern Ethiopian Orthodox church, which marks 
the trailhead on the valley floor. Local Christians, preferring 
to worship at a spot closer to heaven, make the climb to the 
ancient cave church each Sunday and on holidays. Before 
setting off, our guide pointed up to the cliffs to show us 
where we are headed, but none of us could spot our 
destination, hidden amid the rocks. (Daniel Noll)
Free climbing
After about a 2km climb, we approached a nearly 90-degree 
sandstone rock face some 7m high. Our guide asked us to 
remove our shoes out of respect; we were entering the limits
of the holy ground of the Abuna Yemata Guh church above.
Noticing our looks of concern, he assured us that we would
be able to better grip the holes in the sandstone with our
bare feet. Without the aid of any ropes or climbing
instruments, our ascent felt appropriately akin to taking a
leap of faith. (Daniel Noll)
Helping hands
Local men dotting the trail offered climbing help in an 
attempt to make some extra money. We listened to their 
instructions, but followed closely those administered by our 
lead guide: “Right foot there, left hand in that hole. And don’t
look down.” With each deliberate move, we inched our way 
slowly up the rock. After scaling the wall to a clearing just 
above it, we dusted ourselves off. We could barely consider 
how we would manage it on the way back down. 
(Daniel Noll)
Abuna Yemata Guh
To reach Abuna Yemata Guh, we then had to navigate a 
natural stone bridge with a sheer drop of approximately 
250m on either side. From there, we crossed a final narrow 
wooden footbridge, then hugged the edges of an unsettlingly
smooth sandstone wall until we found the entrance. 

Relieved,we took a few minutes inside to rest and adjust to the

darkness and the frescoes inside. On the ceiling above, a

painting depicted nine of the 12 apostles; the remaining three

apostles appeared on a side wall. It is unclear why they are

separated – our guide joked that the artist unexpectedly ran out

of room. Art historians believe the paintings date from the 15th

Century, but like the other Gheralta church frescoes they are

well preserved, since their remote location has protected them

from looting and from the scars of conflict. (Audrey Scott)


손에 땀이 나게하는흥미진진한 산행
인가 아니면 믿음에서 나온 행동인가?

우리가 바위표면을 타고 내려 오면서 Yemane이 알려준데로  그의 지침

을 따라 내려왔다. 그길은 두손으로 꼭 붙잡고 동시에 두발로 꼭 미끄러

지지 않도록 신발의 그립을이용해야 하는 코스였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이렇게 험난한 산절벽을 오르 내리는 사람들의 강한 인내심과 강인함에

경의를 표해야 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에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야외활동 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신앙의 믿음속에서 

나오는 정기적인 행동인 것이었다.


http://www.bbc.com/travel/slideshow/20140814-in-ethiopia-an-adrenaline-filled-act-of-faith

Sunday, March 27, 2016

"부활이 우리에게 준 축복" - Antioch( Ha Tay)에 소재한 베드로교회 방문 회상.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 축하하는, 부활절(Resurrection of Christ - Easter) 예배로,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큰 축제중의 하나인 특별한 예배주일이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축제의 의미를 새기는 "부활이 우리에게 준 축복" 의 Theme 으로 Sermon 이 있었다.

베드로 전서 1:3-9 의 성경이 오늘의 설교내용이었는데,  다 기억은 할수 없었지만, 당시 시대상황으로 봐서, 로마 제국시대의 종교탄압과 예수님 순교라는 엄청난 시련앞에서, 그래서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부활의 참뜻을 이해한후에 담대하게 그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는것은 큰 축복이며, 특히 눈으로 볼수없는 상황에서 부활을 믿는자는 더 복되도다"라고 외쳐 댄 뜻깊은 말씀을 경청하면서 많은 기억들이 머리속을 맴돌게 한 내용이었다.  설교를 듣고 마음속에 나도 축복을 받은 기독교인중의 하나임을 확신했다는것 큰 축복이라 아니할수 없는 좋은 날이었다.

성가대원들의 부활절뜻을 기리는 화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았다. 

 사도로서 베드로의, 예수님부활에 대한 외침을 오늘의 설교를 경청하면서, 6년전 안디옥에 있는 베드로 교회를 방문해서,  현장 탐방을 했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뇌리속에서 맴돌았다.

유감스럽게도 "안디옥"을 방문하고져 한다면, 현지 상황을 먼저 잘 숙독해야만 가능하다는것을 강조하고 싶다.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은 현재 터키영토의 맨 동쪽 끝에 "이락과 시리아"와의 국경에 인접해 있는데, 지명도 터키어로 바뀌어 지금은 Ha Tay로 불린다.  현재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지역에서만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여 여러 종교들이 비교적 많이 성행하는 곳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곳에서 한국, 서울에 있는 "광림교회"에서 지교회를 세워 현지 선교를 하고 있는 목회자분을 만나서 그분과 함께 사도 바울의 생가가 있는 Tarsus까지 300여킬로를 같이 여행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베드로 교회는 이곳, Ha Tay(안디옥)에 있는 산, Mt.Sourin 정상의 동굴속에 있다.  동굴속의 교회는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교회 전면은 오래전에 새로 단장을 하여 한결 교회다워 보였었다.  David을 표시하는  Star모습도 각인되여 있었고,  당시의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을 지키기위해 무척 핍박과 고생을 많이 했었겠구나 라는 마음의 아픔도 느낄수 있었다.

베드로 교회는 안디옥 시내 외곽의 산 Mt. Stourin속의 동굴교회이다.  기독교의 오랜전통에 따르면 이베드로교회에서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하며, 당시 로마시대의 박해를 피해 비밀리에 예배를 본곳이라고 한다.

사도행전 11장 25-26에 따르면 바나바가 사도 바울의 고향 다소(Tarsus)에 가서 바울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1년간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무리들에게 전도했고, 제자들이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불렸었다고 한다.  설명에 따르면 이산속동굴교회에서 처음으로 베드로가 교회주교(Bishop)직을 수행 했으며, 이 전통의 축제가 지금도 매년 6월 29에 열린다고 한다.

교회안의 바닥은 여전히 울퉁불퉁한 흙바닥으로,  앞쪽의 재단(Altar)에는 돌로 만들어진 의자가 있는데 이교회의 초대 주교였던 "베드로"를 기념하고 축하하기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베드로의 동상 역시 1932년에 세워졌으며, 1963년 베드로를 기념하는 날에, 당시 로마교황 바오로 6세가 이곳을 방문하여 예배를 집전했으며, 이교회로 성지순례온 기독교인들은 특별히 총회에서 죄사함을 받은것과 같은 축복을 받았음을 선언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내가 Ha Tay(Antioch)을 탐방할때는, Lunar와 단둘이였다.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여행Package가 없었다.  성서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Haran, Tarsus, Mount Ararat, Sanri Urfa(갈대아우르), 사도바울이 첫번째 전도여행을 떠났던 '셀루시아' 등등의 지역을 탐방 했었다.  당시에는 깊이 느끼지못했었지만, 오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원래 계획에 없는 그곳을 나와 Lunar를 보내준 윗분의 그뜻은 무엇을 의미 했는가를 오늘에야 뒤늦게 조금더 음미하게 된 죄송함도 있다.
오늘 부활절에는 전교인이 푸짐한 Steak Lunch를 제공 받았다.  부활절을 비롯을 큰 명절때는 어김없이 식사를 제공해 주는 믿음의 동지, L 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  식사를 하면서 그분에게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것으로 보아 1부예배에 참석안한것 같았다.  우리 모두에게 보이지 않지만 굳게 믿고 큰 축복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좀더 넉넉한 삶을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http://www.lifemeansgo.blogspot.ca/2010/04/ha-tayantioch.html

Saturday, March 26, 2016

성금요일,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히고 회개한 필리핀 성도들 - 꼭 이렇게해야만 회개하는 것인가?

오늘은 성금요일(Good Friday)였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도 추워 나같은 경우는 교회예배에 참석도 못하고 집에서 TV를 보면서 그의미를 얄팍하게나마 느껴볼려고 했었다.  그런데 국민들 전체가 천주교 신자들인 필리핀에서 회개한다는 명제하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혀,당시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승천하셨던 그모습을 재현하는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  과연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진정한 회개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뭔가 믿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해보게 하는 사건으로 보여졌다.  나는 체험을 더 얻기위해 가끔씩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생각지도 않은, 기독교신자인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많은 신기한 상황과 부딪친 적은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CNN이 보도한 내용이다.


 동남 아시아에 있는 섬나라 필리핀에서는, 신앙이 깊은 캐톨릭 신자들이 이번 성 금요일이 곁들인 부활절 주말에, 몸소 몸을 십자가에 눕히고 양손과 발에 못을 박고 자신의 몸둥이를 두둘겨 패는, 보기에 편치 않은 광경을 보여 준 성 금요일이 었다.

 

성 금요일(Good Friday)을 맞아 진정한 회개를 원하는 10명이 훨씬 넘는 신자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묘사하기위해 자신들의 손바닥과 발목에 정말로 대못을 박았다.  한편 다른 신자들은 시내거리를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매고 힘겹게 끌고 가면서 무릎과 손바닥에 피를 흘리면서 기어가는 광경도 있었다.

또 다른 한패의 사람들은, 로마제국시대의 군사령관으로 분장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을 당하는 광경을 재현하기위해, 몇분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가 다시 땅위로 내려오는 고통의 순간을, 자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신자의 손 발에 못을 박는 일을 도와서 재현해 주기도 했었다.

이와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고통역활을 체험하는 회개자들은 영적인 중재 또는 사랑을 요구하기위한 시도를 하거나 (luck or divine intervention), 또는 이전에 기적같은 도움을 받은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위한 극한체험인것이다.   매년 전통적으로 믿음이 깊은 천주교신자들이 주동이 되여 행해지는 이러한 행사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들과 그곳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하게 한다.

 매년 전통적으로 믿음이 깊은 천주교신자들이 주동이 되여 행해지는 이러한 행사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들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하게 한다.   이행사는 Central Luzon섬의 Pampanga에서 열광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Manila 근처의 Barangay에 있는 Cutud 같은 도시에서도 이축제가 열려 이끔찍한 광경을 보기위해 수많은 군중이 모인다.

http://www.cnn.com/2016/03/25/asia/philippines-easter-good-friday-crucifixion/index.html

Thursday, March 24, 2016

Kim's Dynasty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북한의 두 얼굴.

한반도에는 두개의 서로다른 정치체제하에서 약 7천5백만명의 한민족이 살고 있지만,  남쪽의 국민들은 보통 서구의 나라국민들 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름철이면 바캉스를 가고 세계 어느나라든 여행하고 싶으면 제약을 받지않고 다닐수있는 나라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볼수없는 두개의 얼굴을, 그하나는 김정은과 그 Regime의 특권층만이 삶을 Enjoy하고, 그 다른면은 이들 특수층을 위해서 전국민은 초근목피를 해가면서 떠받들어야하고, 속으로는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태양과 같은 위대한 영도자라고 찬양을 해야 살아남을수 있는, 그래서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두얼굴의 Beast Regime이 철권을 휘두르는 곳이다.




 사진 아랫쪽에 있는 Link을 클릭하면 설명이 깃들인, 북한내부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상당히 많이 보여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나자신을 비롯한 서구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엄청난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비교 터득하게 될것이다.


            한 병사가 잔듸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뒤에 이병사는 어떻게 됐을까?




http://www.cnn.com/video/data/2.0/video/world/2014/05/21/natpkg-banned-from-north-korea-eric-lafforgue.cnn.html

Wednesday, March 23, 2016

김지하 "아직도 이 땅에 오적(五賊)이 있다" (5월14일,2014.) 불행하게도 오적은 더 활개치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지적이 참으로 예리한것 같다.  거의 2년전에 그분이 지적한 내용이 오늘날에도 한국사회의 돌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지적하는것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한달남짖 남은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치꾼들의 치졸한 행태를 보면,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좀먹는 오적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발전을 앞에서 가로막는것도 모자라, 앞으로 나아갈려고하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끄는 일꾼들이 더 신나게 달리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자기네들 주머니와 당리를 위해서 뒤에서 꺼꾸로 끌어당기는, 허가낸 도적들이라고 나는 감히 선언한다.  빨간무리들.

경제가 활성화 되기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일할 자리를 창출해야하는 법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를 발의한 정부를, 민주노총의 하수인이 되여 목숨걸고 막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그들이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가고, 그것도 모자라, 나라의 경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년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올려서 배를 불리고 있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민들을 위한척 하는 일등가는 위선자들이다.  빨간무리들.

여의도 정치꾼들은 남의 나라 민주주의와 의회제도를 참많이 imitating 한다.  문제는 정치꾼들이 자기네에게 유리한 제도만 도입하고 어렵고 짐이 될것 같은 제도는 절대로 모방하지 않는, 이중적인 얼굴들이기도하다.  빨간무리들의 특징.

예를 들면, 행정부의 고위직을 대통령이 임명하면, 여의도 도적소굴에서 청문회를 열어, 꼭 딴지를 걸고, 일을 하고져 하는 대통령이 중심이 된 행정부를 괴롭힌다.  정치가 발달된 서구사회에서 청문회를 제도화 해서 상용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미국뿐이다.  그외 나라는 고위직 임명에 청문회를 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경우는 행정부의 장관을 의회에서 청문회를 통해 인준할때의 기준은 후보자에 대한 업무능력을 중점적으로 따질뿐이다.  여의도 정치꾼들은 후보자의 업무능력처리능력보다는 업무와는 상관없는 신상털기로 시간을 다보내고 인준여부를 결정한다.  빨간무리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데, 서구의 대다수 나라들은 해당지역의 당원들이 투표하여 후보자를 선출하여 본선거에 출전시킨다. 여의도 정치꾼들은 이런점은 절대로 모방하지 않고,  서울의 중앙당에서 각지역의 후보를 만들어 보낸다.  이방법은 절대로 민주주의방식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 나갈 각당의 후보들을, 서울의 중앙당에서 공천위를 급조하여 마음에 들면 공천주고, 그렇치 않으면 탈락시키는 아주 후한무치한 민주주의 도적질들을 하고 있어, 태평양 건너에 살고 있는 나의 귀까지, 치고박고 하는 치사한 정치꾼들 싸움으로 박터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다.  도대체 얼마를 바치고, 얼마나 주머니를 채워야 이제도를 없애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방식으로 지역을 대표할 참된 일꾼을 뽑게 할것인가?

공권력을 집행하는 최일선을 담당하는 곳은 경찰이다.  뉴스에 보면 술취한 놈들이 파출소에서 기물을 부수고,  시위를 막는 경찰을 무차별로 주먹질과 발길질해서 부상을 입혀도, 여의도 꾼들이 이들을 보호할 입법을 만들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것 같다.  이곳 서구에서는 경찰을 구타한다는것은  상상도 못하고, 만약에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나면 이유불문하고 바로 붙잡아 유치장에 처넣는다.  경찰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공권력의 최일선이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세월호를 자기네가 선택하여 승선했다가 침몰로 죽은자들이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게 뭐가 있나?  서해상에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젊은 영령들은 쓰레기(Trash)가 되고,  이것역시 사상적으로 빨간물이 전국에 무섭게 들어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반만년의 역사속에 조상님들이 계시고 일가친척들이 살고 계시는 조국이기에, 두고온 조국이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안정을 염원하기에, 강건너등불처럼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기에 이렇게 생각을 적는것이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있는 시민광장 한복판에 국기게양대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나라, 이미 사상적으로는 빨간물이 많이 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이번 총선을 치르는 광경을 보면서 김지하씨는 어떤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너무도 한심하여 할말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괜한 걱정까지 든다.



김지하(金芝河·73)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아직도 이 땅에 ‘오적(五賊)’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고급 공무원과 국회의원 등 오적한테서 부패가 발생한다. 지금도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지난 1970년 ‘사상계(思想界)’에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빗대 권력층을 비판하는 시 ‘오적’을 발표했다가 구속됐으며 이때부터 저항 시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14일 강원도 원주의 박경리토지문화관에서 만난 김 시인은 인터뷰 도중 상의 주머니에 시집 ‘오적’을 넣고 있었다. 자신이 쓴 저항시들을 다시 보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그저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개헌을 포함해 국가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가는 치열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무슨 생각부터 들었나.
“슬펐다. 학생들을 두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에 대해 한없이 분노했다.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었던 그곳에서 왜 그런 일이…. 하지만 이 땅의 지성인은 슬픔에만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회 지도층은 이제 개인이 아닌 나라에 대한 생각을 앞세워야 한다.”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가?
“몇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이 땅에 오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적이라는 시를 쓴 게 40년이 더 됐는데, 지금도 그 오적을 중심으로 부패가 나오고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생각만 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에서 모든 걸 논의해야 한다. 길거리에서 ‘대통령 물러가라’ ‘너 책임져라’ 하고 떠드는 행위는 자유당 시절 송욱 시인이 얘기했듯 ‘정치가 아니라 치정(癡情)’이다. 규제 개혁 등 대통령이 내놓은 것을 다 엉터리라고 하지 말고 그 안에 들어있는 긍정적 요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유신 분위기와 체제를 연상시키는 쪽으로 가서도 안 되지만 희생자 부모들의 슬픔을 이용해 판을 뒤엎으려는 비이성적 세력도 경계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여론의 비판에 몰려 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모든 사안을 직접 챙김)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 TV 볼 때마다 김기춘 비서실장 말고는 모든 각료가 받아쓰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김관진 같은 무골도 받아 적고 있더라. 더 이상 만기친람은 안 된다. 대통령이 결국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또 하루아침에 구조적 모순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주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나.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 방향은 이원집정제다. 이원집정제와 책임 총리제, 대통령 중임제 등을 도입하고 고급 공무원들, 소위 관피아 문제 해결을 통한 공무원의 자기 수습과 개혁 등 관료 체제의 대개혁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만기친람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런 구체적 방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박근혜 대통령 지지 발언을 했다. 지지가 아직도 유효한가.
“대통령이 지난번 규제 개혁 끝장 토론에 참가해서 발언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역대 다른 대통령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있더라. 북한에 대한 드레스덴 선언 등 외교도 잘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여성이 오랫동안 괄시받았던 한국 사회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되다 보니 심성에 날카로운 측면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고 무슨 일만 생기면 여자 대통령이 돼서 그렇다는 식의 고루한 생각은 곤란하다. 집권한 지 1년 좀 넘었다. 일을 하도록 좀 기다려주자.”

―이번 사태에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거세다.
“붉은 악마와 초기 촛불 시위에 담긴 젊은이들 열정의 의미를 기성세대가 알아야 한다. 좌도 우도 아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팽목항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가감 없이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 소통 의미를 뛰어넘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와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근본 동력이 될 것이다.”

―참혹한 사건을 눈앞에 두고도 이념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데모를 많이 해봤다. 데모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좌익 공부도 많이 해봤다. 서로 상대방을 잡아먹으려고 기를 쓰는 거…. 역사에 대한 통관(通觀)이 필요하다. 이제 다 털어놓고 얘기할 때도 됐다. 좌익 이데올로기 중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까놓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사상적 미스터리에 가려서 속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어리석지 않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가 진도의 아픔을 다 끌어안으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오적(五賊)

김지하 시인이 29세 청년이던 1970년 5월 잡지 ‘사상계’에 발표한 시(詩).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섰던 을사오적에 빗대 당시 권력층 다섯 부류의 부패와 부조리를 해학적이고 신랄하게 비판한 300여행의 긴 담시(譚詩)이다. 이 시로 인해 김 시인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사상계는 폐간됐다. 시 속의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이다.

☞‘오적(五賊)’ 詩 주요부분 발췌본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예산에서 몽땅먹고 입찰에서 왕창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
켄트를 피워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듣고 뒤쫓아온 말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자네 핸디 몇이더라?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14/2014051404640.html?csmain

Tuesday, March 22, 2016

전직 토론토시장 Rob Ford, 암과의 싸움에서 졌다. Mayor로서 그의 업적은 길이 빛나리....46세로.

그가 현직으로 있었을때, 토론토 시의원들은 그의 기행적인 행동에 반감을 품고, 시정을 개선하기위한 정책을 Agenda로 올렸을때, 항상 반대를 해오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정책의 옮고 그름을 떠나, 그가 제안했기 때문에, 특히 시의원들의 대다수가 사회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보수정책을 고수하는 그의 정책에 찬성할수 없는 분위기는 항상 그를 괴롭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http://www.torontosun.com/2016/03/24/rob-fords-last-words-to-family-i-dont-want-to-leave-you-guys

 예를 들면  쓰레기 수거를 하는데 툭하면 노조원들이 데모를 하여, 여름철이면 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것을 경험했던 시장 Rob Ford가 Yonge St.를 중심으로 토론토시의 서쪽을 시험적으로 외부회사와 계약을 체결하여 쓰레기 수거를 할려고 할때 노조원들의 반항도 많았었지만, 시의원들의 반대도 무척심했던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쪽은 시공무원이 아닌 계약회사 직원들이, 그반대편의 동쪽은 시직원들이 쓰레기 수거를 하게 되여, 두 구룹간에 일종의 경쟁을 유발시켜, 더 낳은 써비스와 시예산 절약의 시험대 역활을 추진 했었다.  일년후에 그성과가 나타났는데, 서쪽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향상된 써비스를 좋아 했었고,  연말 결산때 확실치는 않치만 약 2천만불의 시예산을 절약하는 효과까지 있었다는 발표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를 싫어하는 상당수의 시의원들은 절약됐다는 예산이 어디 있느냐고 억어지로 따지는 촌극을 벌이는 토론을 TV를 통해서 본 기억도 있다.
또한 그는 시장(Mayor)의 업무수행을 위해 년 백만달러가 넘는 Allowance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고, 또 그의 Pay Cheque는 시장하면서 한푼도 주머니에 넣지 않고 자선단체에 전부 기부했었고, 그러한 선행은 그가 시장이 되기전, 시의원직을 수행할때도 전부 자선단체에 기부했었다는 뒤늦은 뉴스를 보고 알았었다.

그가 몇년전 마약 흡연 혐의로 구설수에 오르고,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을때, 동료시의원들이 거센 비난을 보내고, 나중에는 시장직 수행 권한까지 박탈하여 부시장에게 넘겨 주기도 했었다.  캐나다에서 제일큰 도시의 시장을 하면서 그렇게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 마약을 하게 됐었다는 그뒷면을 한번쯤을 생각해 봄직도 했지만, 시장이라는 자가 어떻게 그런짖을 할수 있었는가라고 대포를 쏘아대고 마치 흉물을 대하듯한 시의원들이었었다.

그의 부음이 발표되자, 이번에는 앞다투어 그를 찬양하기에 서로 앞장을 서고 있는 장면을 방송을 통해서 보면서, 세상의 인심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시장직을 수행 할때는, 재산세를 거의 올린적이 없었다.  그러한 시장의 정책에 반기를 든 시의원들이 시장의 정책을 무시하고 꺼꾸로 재산세를 올려 통과시킨 기억을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토론토의 대다수의 시의원들은 사회주의 성향이 짙어 포퓰리즘을 앞장세워, 세금을 올리고, 노조를 응원하는, 그런 정책을 항상 고수해 왔는데, 이점이 Rob Ford를 괴롭히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마음의 고통이 생겨 암이 발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Yonge St. 동쪽의 쓰레기 수거를, 현 시장 John Tory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서쪽에서 처럼 외부 회사와 계약을 하겠다고 했었기에 그에게 한표를 던졌었다.  그러나 그는 그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고,  시노조공무원들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어, 써비스와 예산면에서 낭비를 계속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방 정부는 정치적 쇼를 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생활현장에서 시민들과 어깨를 맞대고 현안문제를 풀어가는 실무적인 대변인 성격이 매우크다.  Rob Ford 시장은, 듣기좋은 미사여구(Rhetoric)로 시민들을 현혹한 시장은 아니였다.  어떻게 하든 시민들이 낸 세금을 한푼이라도 아끼면서,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낼려고 노력했던 실무형 시장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현시장 John Tory는 이와는 반대로, 실무행정가라기 보다는 정치적 쑈를 잘해내는, 그래서 하루에도 평균 3번 또는 5번 이상 TV에 나타나 전시행정을 남발하는, 연방 또는 주정치판에서나 있음직한, Lip Service만 하는 시장이라는 점이 Rob Ford 전시장과 참많이 비교된다.  예를 들면 Gardiner Exp.way 길은 아직도 공사중으로 시민들이 크게 불편을 겪고 있는곳이다.  그가 처음 시장으로 취임 했을때, 아직공사중인 구간을, Contractor와 협의하여 조속히 끝내서 교통체증을 해소하겠다고 했고, 정말로 원래의 공기보다 약 1개월반정도를 앞당겨 개통시켰었다. 현재 Gardiner Exp.Way의 같은 구간을 다시 보수공사하고 있는, 그런 쑈는 지방정부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Rob Ford의 치적은 그래서 더 사후에 빛을 발하는것 같다.

금년에도 재산세,전기세, 수도세 TTC Fare 가 잔뜩올라 불경기속에서 허덕이는 시민들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게하고 있다. 현지장 John Tory의 공약이 공상누각일뿐,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토의 다운타운 코어지역의 옛건물들의 외형은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듯이 흉물스럽다.  집주인들의 주머니가 세금으로 다 털려, 이를 보수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46세인 Rob Ford 전시장이 암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보도를 접하면서,  이제부터 진짜로 시의원으로, 또 시장으로 재직했을 당시에 이루어진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게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과 "겪어봐야 안다"라는 말을 상기해 본다.  이제 토론토시 정부에는 그의 정치적 사상을 이어받을자가 있을지?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유가족, 특히 그의 형 Doug Ford에게 위로의 말을 드리고싶다.  이승에서 24시간 벌어지는 아귀 다툼없는 천당에 가시여, 평안한 영생을 누리소서.

http://www.cnn.com/2016/03/22/us/rob-ford-dies/index.html

http://www.thestar.com/news/gta/2016/03/22/why-rob-ford-appealed-to-so-many-in-toronto-james.html

Hillary Clinton도, 국가기밀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었던 전 CIA국장 Petraeus와 같은 운명에 처할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후보선출 경쟁에 출전한 선수들중, 가장 Gender advantage를 누리는 후보는 Hillary Clinton으로 보인다.  여성이기에 대통령으로서의 수행능력을 중점적으로 Focus해야 하는점과,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법을 어기고 개인적 용도로 국가기밀을 Break한 Suspect인데도, 그의 Name Value에 묻혀 슬쩍 국민들의 관심과 시야에서 사라져가는것을 보면서,  미국사회도 별수 없구나 라는 Lament를 하지 않을수 없다.  Hillary가 국무장관으로 재직시 그녀가 개인용 이멜구좌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Server를 set up한 보좌관, Bryan Pagliano과 FBI가 Deal을 해서, 보좌관은 처벌을 받지않는 면책권(Immunity)을 얻은대신, FBI에 그가 알고있는 모든 정보를 넘겨주는 조건이었었다.  현재 FBI가 은밀히 내사중에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이엄청난 국가기밀누설 사건이 결국 정치적 이슈로 변형되여 흐지부지될 조짐이 강하다.

그녀가 수많은 TV show에 등장하지만,  Anchor들 마져도 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보통시민이 이와 비슷한 Crime을 했다면 분명히 Charge되여 지금쯤 법의 심판을 받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11월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역사속으로 묻히고 말것이다.  과연 미국인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할만큼 우둔할까? 두고 지켜볼일이다.

국무장관으로 재직중에 국가비밀에 속하는 정보관리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적 용도로 이용한 혐의로 인해 그녀의 대통령 꿈이 물거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선거운동을 일년넘게 하면서 용케도 이문제를 비껴왔다는게 문제다. 그러나 여론은 크게 두개로 갈린다. 그녀가 행한 증거들이 범죄행위에 해당되는 것인지 아니면 공화 민주간의 정쟁의 희생물인가 라는 점이다.

그녀의 변칙 이멜사용에 대한 결론을 들여다 볼수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와 비슷한 경우의 국가기밀을 누설한, 전직 미CIA 국장을 지낸, David Petraeus 사건이 최근에 종결된 내용을 비교하면서 Hillary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게 좋을듯 하다.
Petraeus는 그의 애인이였던 Paula Broadwell에게 그의 자서전을 의뢰 하면서 그가 평소에 국가정보기밀, 범죄내용등을 기록해 두었던 여러개의 Notebook을 건너준것인데, 이기밀이 외부에 발설된 이유를 들어, 지난해 재판에서 그는 범죄행위에 해당된다고 인정했던 사건이다.  이사건으로 그는 벌금을 부과받고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그의 명예에 먹칠을 한셈이된 것이다.
국가의 기밀을 폭로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다른 사람은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2009년 정부와 계약을 맺고 일했던 Stephen Kim은 비밀등급으로 분류된 내용을 기자에게 넘겨준 죄로 13개월 형무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Petaeus 경우는 최고위직 관리의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의 경우는 미군이 이락에서 전쟁을 할때 작전을 잘세워 이락이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데, 일시적이었지만, 많은 도움을 준 업적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에 그를 CIA 수장으로 추천했을때,  공화당 일부에서는 2012년도에 치러지는 대선 후보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을 때였었다.

하늘을 치솟는 그에 대한 인기는 상당수의 반대파들이 국가기밀이 누설된 사건을 포함하여 기준을 정하는데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것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즉 Hillary의 개인 메일구좌개설 사용에 대한 범죄여파가 가볍게 처리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Hillary Clinton은 그녀가 국무장관으로 재직당시 그의 사저에 개인 서버를 설치하고 사용했었고, 그녀가 주고 받은 이멜중에서는 국가기밀이 담긴 내용들이 있었음이 나타난것이다. 비록 그가 메일을 주고 받을 당시에는 그내용이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밝혀진게 없다.  국가기밀을 누설하는것을 범죄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기밀누설에 대한 사실여부는 처해진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별도의 방법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비밀누설에 대해 기소를 하기도 매우 까다로운 경우로 해석된다.
정부의 율사들은, 예를 들면 먼저 각개인이 직책을 수행할때 그것이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행위였는지를 인지하고 있었는가를 증명해야만 기소가 가능하지만, Hillary의 경우는 메일을 다룰때 그녀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이해가 안될 정도로 대충 다루었었는지의 여부를 파악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그녀가 잘못처신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었으나, 후에 Hillary는 개인 서버를 그녀의 집에서 사용한것은 실수였었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었다.

"두개의 메일구좌를 나는 사용했었어야 했다. 하나는 내개인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무장관직을 하면서 사용하는 구좌였어야 했다.  내가 실수를 저지른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라고 그녀는 지난 9월에 Facebook에 올린 글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녀의 전직 보좌관 Bryan Pagliano가 그녀의 집에 개인 서버를 설치 했었다. 그는 이사건을 조사하는 담당자들에게 협조하기로 합의한것으로 보도됐었다.  와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그대가로 면책권을 받았다고 한다.
이사건 담당자들은 사건 내용을 나에게 설명하기를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내용이 새어 나가도록 놔둘것이다"라고 Marc Raimondi, 법무부의 국내정보관리국 대변인은 설명하고 있다.
FBI 요원들은 Hillary Clinton과 그녀의 전 현직 보좌관들을 앞으로 소환해서 조사를 해야 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곧하게 될것이라고 한다.
비록 Hillary가 범죄행위로 인한 처벌을 피해갈수는 있어도, 대통령후보 경선에 치명적일수도 있는 이사건은 전직 국무장관으로서의 그녀의 행동이 거짖말로 믿음을 깨 버리는 멍애로 작용될수 있는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은 대선에서 그녀를 패배시킬수 있는 요인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백악관을 8년간 점령한 민주당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로 활동될수 있기를 희망하는 좋은 뉴스로 보고있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중요함이 포함된 법적골치거리를 심도있게 토의하게 할수도 있다고 하겠다.
이번주에 관련된 개인이 연방조사관들에 협조하기로 한 내용이 폭로되는것과 같이, 이사건 해결을 이리저리 짜 맞추는것은 주의깊게 들여다 보아야만 될것 같다.
전직 미국대사로 봉직했고 현재는 McCain기관에서 책임자로 근무하고있는 Kurt Volker씨는, Hillary의 사건은 Patraeus가 저지른 사건의 경우보다 더 위험한 행동이었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Patraeus 사건은, 그의 애인에게 국가기밀을 고의적으로 건네준 경우지만, Hillary Clinton 사건의 경우는 아무런 사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개인서버를 이용한 인터넷을 통해 국가기밀을 이멜로 보냈다는데서 문제가 큰것이다.  Volker씨는 이사건을 보면서 국기기밀로 분류된 내용들은 헤커들에게 쉽게 노출될수 있다는게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누구나 또는 그들의 가족들이 이기밀을 쉽게 접할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이란, 중국 또는 누구나 들여다 볼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Volker씨는 Mrs Clinton은 그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처벌을 받는게 당연하고, 조사관들은 이사건의 내용을 조사하기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정당한 임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사건의 결과가 원칙데로 나올것 같지는 않다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그녀가 속한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고 있어, 그녀가 저지른 잘못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것은 거의 불가능할것으로 보고 있다.




FBI는 이국가기밀누설사건을 범죄행위로 몰아 조사할것이지만, 법무부의 관련 담당자들은 정치적 공세로 몰아갈 공산이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Mrs Clinton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거운동에 임하고있다)

그는 백악관이 개입하여 정치적 개입으로 치부될것을 걱정한다. 선거운동기간은 국가에 대한 열정, 파라노이아 그리고 모든 말잔치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와싱턴 정가에서는 이유야 어쨋던 아무도 그녀가 기소될것으로 믿는 얼간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만약에 기소된다고 해도, Patraeus가 저지른 기밀누설의 범죄에 보호관찰의 조치를 받은 전례가 있는것에 비해, 감옥에 보낸다는것은 매우 어려울것이라고 보고있다.
만약에 그녀가 기소되여 심각한 처벌은 피하게 될것으로 보이는데, 만약에 그렇다면 FBI 관계자들과 연방조사관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정치적 정적들이 이를 반대하는 성토를 하게될 충분한 이유가 될수있다.
"범죄행위를 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한, 위협에 직면할 요소 또한 찾아낼수 없다는 점이다" 라고 미국과학자협회의 정부정책 책임자, Steven Aftergood씨는 설명한다.
Volker씨는 생각하는것 처럼 그역시 이사건은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다.
"기소하기위한 증거를 확보하기도전에 우리는 엄청난 비난이 우리에게 퍼부어지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이유 때문에 잘 만들어진 이견차이로 보일수 밖에 없다"라고 Aftergood씨는 설명한다.
Mrs Clinton의 이멜사건은 정치적 사건으로 포장되여 가고 있음을 보면서, 이문제는 선거가 끝날때까지는 계속 화제가 될 공산이 크다.

http://www.bbc.com/news/world-us-canada-3572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