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31, 2021

“5·18 정신 정치적 이용 안 돼, 특정 정파 전유물 아냐… 분단된 나라가 통일은커녕 갈라져 싸우는 현실 안타까워”

 5.18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으로 수고 했었던 박남선씨의 Reconcilliation gesture깊이 공감하고 감사해 한다. 

박남선씨처럼, 잘한것은 잘했다고 하고, 잘못한것은 잘못한것이라고 구별해서 표현한 내용을 오늘 여러번 읽고 또 읽었었다.  동시에 CP24 언론사의 노태우 대통령의 장례식에 대한 뉴스도 봤었다.

부탁하고 싶은것은 정치꾼들이 아직도 내편 네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웅을 역적 만들고, 역적을 영웅화 하는 쫌생이 짖들은 이제 과감히 탈피하고, 국가 장래를 위한 설계를 잘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박남선씨는 정치꾼은 아닌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정치꾼들의 편협한 생각은 유치원생들 보다 더 한가 말이다. 박남선씨의 기사 내용을 정치꾼들은 백번씩 이상으로 읽고 또 읽고해서 화해하는 방법을 좀 터득하라.

노태우 대통령의 '국가장' 과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한 업적들을 보도한 캐나다의 CP24언론사의 Kim Tong Hyung씨가 보도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기사를 보면서, 그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표현을, 거두절미하고, S.Korea's dictator라고 표현한것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Comment 몇자 적어서 신문사에 보냈더니, 고맙다는 답장과 함께, 참고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아래는 내가 보낸 코멘트의 내용이다.

I made a comment that mentioned about wrong expression of 박정희 대통령 as below: 


Reporter said of Late President Park Chung Hee was a dictator that was wrong. He should've reviewed what many world leaders nowadays praised that he was the hero,making strong foundation what the S.Korea is nowadays. I agree with what he said of dictatorship about but what he did for S.Korea was well cover the dictatorship at that time for upgraded living patterns of S. Koreans.


2021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5.18 시민군 상황실장인 박남선씨가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2021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5.18 시민군 상황실장인 박남선씨가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임민혁이 만난 사람] “5·18 정신 정치적 이용 안 돼, 특정 정파 전유물 아냐… 분단된 나라가 통일은커녕 갈라져 싸우는 현실 안타까워”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 찾은 5·18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


지난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와 책임, 용서·화합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책임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은 유서를 통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지만, 5·18 단체 등에서는 “시민 학살한 책임을 덮을 수 없다”고 했다. 국가장(葬), 조기(弔旗) 게양을 놓고도 민심은 갈렸다. 그렇기 때문에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67)씨의 노 전 대통령 조문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박씨는 당시 시민군을 이끌다 계엄군에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3년간 복역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 27일 노 전 대통령 빈소에서 유족들 손을 잡아주며 “이제 하나가 된 대한민국을 위해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29일 광주로 다시 내려갈 채비를 하던 그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빈소 조문이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

“뉴스가 나가고 여기저기서 전화 200통을 넘게 받았다. 대부분 ‘수고했다’ ‘잘했다’는 격려였다. 항의나 욕은 거의 없었다. (그는 31일 통화에서 ‘주말 새 80여 통을 더 받았다’고 했다.) 물론 5·18 유가족과 부상자들 가운데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를 비난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분들의 한(恨)과 분노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2021년 10월 27일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2021년 10월 27일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난 5·18 당시 ‘폭도대장’으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동생은 곤봉에 맞아 팔·다리·갈비뼈·코 다 부러졌다. 부상자·유가족 4500여명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사죄 뜻을 밝힌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이제는 화합·통합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단된 나라가 통일되기는커녕 지금 지역·정파·계층으로 나뉘어 더 갈등하고 싸우고 있지 않나. 이런 내 뜻에 공감하는 광주 사람들도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잘못을 다 용서했다는 의미인가.

“용서는 피해자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칠 때 시작되는 거 아닌가. 40년 가까이 그런 일이 없었는데, 신군부 일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19년부터 아들 노재헌씨를 세 번이나 광주에 보내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한참 늦었고, 아들을 통한 대리 사과이지만 그런 부분은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미안하다고 한다고 해서 잘못이 다 없어질 수는 없지만, 용서를 비는데 받아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다른 당사자들도 죽기 전에 결자해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광주에서 노재헌씨를 만났을 때 조문 약속을 한 걸로 알고 있다.

“노씨가 처음 광주에 왔을 때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는데 만나지 않았다. 두 번째부터 만났는데 나는 ‘아들이 와서 사죄하는 것보다 당사자가 직접 와서 육성(肉聲)으로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계속 누워 있고 필담 겨우 하는 정도라고 하더라. 병상에서 끌고 내려오라고 할 순 없지 않나. 노씨는 그 후에도 계속 내려왔다. 5·18 행사 때 쓱 참배하고 가버리는 정치인들보다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마지막 만났을 때 노씨에게 5·18 기념 배지를 달아주면서 ‘5·18 정신 꼭 기억해라. 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찾아가겠다’고 했다.”

빈소에서는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했나.

“고인이 광주 사람들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지만 그래도 아들 통해서 용서를 구하고 사죄한 것은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또 고인 주변에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있을 것인데 장례가 끝나면 그런 것들을 공개해 진상 규명이 완성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했다. 유족들도 그러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논란 속에서 끝났다. 국가장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여당 지도부는 대부분 영결식에 불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도 메시지는 발표했지만 직접 조문은 하지 않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조문을 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장례 예우·절차를 놓고 갈등이 많았다. 광주와 5·18단체들은 국가장을 반대했다.

“광주의 아픔은 다 치유된 게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분들도 많고 후유증으로 인해 삶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만 80여 명이다. 그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국가장 예우를 해준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꼭 국가장을 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부도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결정한 걸로 알고 있다. 총리도 ‘현대사가 거쳤던 굴곡에 대해서 한 단계를 넘어가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은 조문하지 않았는데.

“국가장을 안 하면 모를까 정부가 예우를 갖추기로 결정했는데 그 수반인 대통령이 조문을 안 한 건 모순으로 보인다. 공과를 따지는 건 별개로 하고 화합 메시지 차원에서 조문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나 지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모든 국민을 껴안아야 하는 것 아닌가.”

노 전 대통령 별세 계기로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길 가다 어깨 부딪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사람인데, 전씨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놓고 뉘우치는 모습이 전혀 없고 오히려 희생자들을 욕보인다. 전씨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빌면 용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인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참….”

몇 해 전부터 야당 지도부가 ‘다시는 광주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

“작년에 김종인(당시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씨가 5·18 묘지에 와서 무릎 꿇었을 때 난 참배 막으려고 시위하다 벌금 100만원 받았다. 그가 야당 대표여서 반대한 건 아니고 신군부에 적극 협조했던 사람이어서 그랬다. 지금 야당은 5·18에 책임 있는 민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고 과거 망언으로 광주 사람들 가슴에 못도 많이 박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계속 찾아와 참회하고 반성하는 노력을 하는 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조금씩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다 언젠가 결국 화해가 이뤄지는 것 아니겠나.”

여당 일각에서는 야당의 이런 모습을 “사죄 쇼”라고 한다. “5·18은 국민의힘 따위가 정치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역사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사과·반성 안 한다고 욕해왔는데 사과하는 걸로 또 문제 삼는 건 너무 편협하다. 물론 민주당에는 5·18에 직접 참여했거나 그 정신을 알리고 구현하는 데 앞장서온 분이 야당 쪽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5·18 정신이 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5·18은 민주화 초석이 된 국민의 운동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이를 독점하려 한다면 5·18 정신을 계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광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작 현 정부가 5·18 유족들을 위해 한 것도 거의 없다.”

그는 “많은 사람이 5·18 유족들이 큰 보상을 받았고 계속 특혜를 받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이 부분을 꼭 써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첫해에 5·18 유족들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실질적으로 나아진 건 없다. 5·18 동지 중에 기초생활수급자가 600명이다. 폭도로 낙인찍혀 직장도 다니지 못했고, 자녀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킨 사람도 많다. ‘가산점’ 때문에 논란이 있는데 애초 그런 자리에 응시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받은 유가족이 많지 않다. 몇 년 전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빈 부의 봉투가 여럿 들어왔다. 동지들이 위로 마음은 전하고 싶은데 형편이 되지 않으니 봉투에 이름만 써서 보낸 것이다. 5·18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5·18에 대한 왜곡·폄훼가 진정한 화합을 가로막고 있다고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부 단체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5·18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당시 찍힌 광주 사진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은 박씨였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법원도 박씨 손을 들어줬다.

“당시 황장엽이 56세였는데 26세인 내 사진을 황장엽이라고 우기고 그걸 또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왜곡이 계속되면 용서·화합을 바라는 광주 사람들 마음도 멀어진다. 5·18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

2021년 10월 27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박 씨는 고인이 아들을 통해서나마 광주학살에 대해 사죄했다고 말했다.


S Koreans send off former President Roh in small funeral

President Roh funeral

The hearse of deceased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Roh Tae-woo leaves at the at the Olympic park, Saturday, Oct. 30, 2021, in Seoul, South Korea. Dozens of relatives and dignitaries gathered in South Korea’s capital on Saturday to pay their final respects to former President Roh Tae-woo, a key participant in a 1979 military coup who later won a landmark democratic election before his political career ended with imprisonment for corruption and treason. (Kim Min-Hee/Pool Photo via AP)

I made a comment that mentioned about wrong expression of 박정희 대통령 as below: 


Reporter said of Late President Park Chung Hee was dictator that was wrong. He should've reviewed what many world leaders nowadays praised that he was the hero,making strong foundation what the S.Korea is nowadays. I agree with what he said of dictatorship about but what he did for S.Korea was well cover the dictatorship at that time for upgraded living patterns of S. Koreans.



Kim Tong-hyung, The Associated Press
Published Saturday, October 30, 2021 7:04AM EDT

SEOUL, South Korea (AP) - Dozens of relatives and dignitaries gathered in South Korea's capital on Saturday to pay their final respects to former President Roh Tae-woo, a key participant in a 1979 military coup who later won a landmark democratic election before his political career ended with imprisonment for corruption and treason.

Pandemic restrictions limited the size of funeral services for Roh, who died Tuesday at age 88 from complications from various illnesses. Doctors said his condition worsened in recent years because of a degenerative disorder.

President Moon Jae-in's decision to hold a state funeral for Roh was controversial because of his links to the coup and a bloody suppression of pro-democracy protesters in the southern city of Gwangju in 1980 that killed around 200 people and injured hundreds of others.

Gwangju and several other cities and provincial governments refused to raise flags half-staff or set up memorial altars for Roh in accordance with state funeral procedures.

Moon, who did not visit Roh's memorial altar at a Seoul hospital before leaving for Rome on Thursday for meetings with Pope Francis and Group of 20 leaders, said through his office that Roh made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national development despite many historical wrongdoings.”

On the final day of a five-day funeral procession, honor guards wrapped Roh's coffin with the national flag and placed it into the back of a limousine. The vehicle then rolled out of the hospital and followed a black convertible topped with a huge portrait of Roh in a motorcade that drove toward his house in northern Seoul.

Family members quietly toured the house, led by a grandson who carried a smaller portrait of Roh. Then they headed toward southern Seoul for a funeral service at a square at Olympic Park, a venue built for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held during the first year of Roh's presidency.

The funeral's participants were limited to 50 people, including relatives, government officials, religious leaders and foreign diplomats, because of COVID-19 concerns. Roh's wife, Kim Ok-suk, and their two children, Roh Soh-young and Roh Jae-heon, sat quietly in chairs distanced apart, looking solemnly at the ground.

Prime Minister Kim Boo-kyum, Seoul's No. 2, said in a speech that Roh will be remembered for his many accomplishments as president, including the successful hosting of the Olympics, expanding relations with communist nations and easing tensions with North Korea.

Kim also regretted that Roh never apologized in person over the coup and military atrocities, although his children conveyed his remorse while his health deteriorated in recent years.

“It's undisputable truth President Roh Tae-woo has an immense fault that cannot be erased,” said Kim. “Attending the funeral service today, we realize that nobody is free from the (judgement) of history.”

Roh's criminal convictions legally prevent him from being buried with other former leaders and national heroes at the country's national cemetery. His cremated remains will be kept at a Buddhist temple in Paju, north of Seoul, until his tomb is ready at nearby Paju Reunification Park, which was built during his presidency in 1989 as a symbol of peace between the two Koreas.

Gwangju Mayor Lee Yong-sup, a member of Moon's liberal Democratic Party, said the city couldn't honor Roh when he was a core member of dictator Chun Doo-hwan's military junta that massacred its citizens.

“He was the president of our country, and while it's our traditional sentiment to mourn a person who died, Gwangju cannot do that (for Roh),” Lee said Wednesday.

U.S. State Department spokesperson Ned Price said in a statement that Roh leaves a “complicated legacy” but credited him for solidifying South Korea's democratic transition as president.

Roh took office in 1988 after he became the country's first directly elected leader in decades following successive military governments in Seoul.

He was a major player in a December 1979 military coup that brought his longtime army friend Chun to power. Their takeover came months after their mentor, dictator Park Chung-hee, was assassinated by his spy chief following 18 years of rule.

Roh had been Chun's hand-picked successor, but massive pro-democracy protests in 1987 forced them to accept a direct presidential election, which initiated South Korea's transition toward democracy.

Despite his military background, Roh crafted a softer image during the presidential campaign, calling himself an “average person.” He won a closely contested vote in December 1987, largely thanks to a split in liberal votes between opposition candidates Kim Young-sam and Kim Dae-jung, who both later became presidents.

During his five-year term, Roh actively pursued diplomacy with communist nations following the fall of the Berlin Wall, establishing relations with the Soviet Union and China in the early 1990s.

He also took steps to improve relations with North Korea, which led to the Koreas jointly issuing a statement vowing 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 and joining the U.N. at the same time in 1991.

His government was also credited for successfully hosting the 1988 Seoul Olympics, which were seen as South Korea's coming-out party to the world following its rapid rebuild from the destructions of the 1950-53 Korean War.

After his successor, Kim Young-sam, investigated the coup and the crackdown in Gwangju, Roh was arrested, convicted of mutiny, treason and corruption and received a prison term of 22 1/2 years. Chun was sentenced to death.

The Supreme Court later reduced those sentences to life imprisonment for Chun and 17 years for Roh. After spending about two years in prison, Roh and Chun were released in late 1997 under a special pardon requested by then President-elect Kim Dae-jung, who sought national reconciliation.

Roh had stayed mostly out of the public eye following his release from prison. Last April, his daughter, Roh So-young, wrote on Facebook that her father had been bed-bound over the past 10 years without being able to speak or move his body.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11/01/DLLPT3PLZJGNTENBLCP4MK3LSM/

https://www.cp24.com/world/s-koreans-send-off-former-president-roh-in-small-funeral-1.5645177

당나라 군대로 변한게 어제 오늘 일 아니다. 별 달린 장성 마주치자 장병 10여명 '쌩', 사병에게 존칭어를 쓰라고 하니…요즘 군대 이렇다

지금 같은 군대 기강으로는 북괴군과 싸웠을때, 백전백패의 전과기록을 남길 뿐이다.

6.25전쟁때, 전쟁의 영웅이었던 백선엽장군은 30세로 사단장을 했었다. 그때 나이 겨우 30세 전후였었지만,  백장군이 지휘하던 1사단의 고급 장교들은 대부분 나이가 연장자 들이었었다.  그러나 전쟁에 임하는 장병들에게 젊은 백사단장은, 지금처럼 "작전은 이렇게 합니다. 사병님들은 ...."라고 명령한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만약에 그때 당시에 지금처럼, 지휘관들 즉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등등의 장교들이, "이상병님 총수입좀 잘 하셔야 겠습니다"라고 명령을 했었더라면, 6.25전쟁은 완전대패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것이라는것은 꿈도 못꾸었을 것이다.

내가 군대병역의무를 완수하고 있을때(1965초-1967년도말) 일어났었던 일화 한토막을 소개한다.

당시 통신참모는 육군중령,  통신중대장은 육군 대위였지만, 나이는 오히려 중대장이 한살 연장자 였었다.  어떤 연유로 해서 우리 통신중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통신참모가 화가 잔뜩 나가지고, 중대장을 워커발로 조인트를 까는데 옆에서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깨지는것을 보았는데, 쓰고있던 중대장의 안경이 그충격으로 멀리 날아가버릴 정도였었지만, 무릎을 깨면 비틀거리다 바로 정위치로 반듯히 서있고, 끝까지 인내하는것을 본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군대는 계급이고, 나이와는 상관없는 조직이고, 일과시간에는 항상 긴장상태로 있어야 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을 해야하고, 존칭어를 사용해도, 그것이 기강해이의 단초가 될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선임병은,예를 들면 상병은 일병 또는 이병에게 군에서는 상관이기에, 지금 군대조직처럼, 존칭어를 써서는 절대로 안된다. 

나이많은 부사관들이 초임 장교들에게 경례하는것을 거북스러워 한다면, 그조직은 군대가 아니고, 시정 잡배도 아니고... 개판조직인 것이다. 군은 계급사회다. 명령이 절대로 존중 되어야 한다.

몇년전, 지금은 퇴역한 박찬주 대장이, 같이 근무하던 공관병이 불만을 품고, 육군대장을 SNS에 비난하는 글을 올렸는데, 파장이 심해, 결국 그분은 옷을 벗고, 헌병감실의 조사까지 받는 수난을 겪었었다.  그후에 공관병의 개인적인 불만이 원인이었음을 알고, 박장군에게 혐의를 두었던 모든 죄목이 해결되여 자유인의 몸이 되였지만, 평생을 바쳐 국가를 지키기위해 헌신해온 그분의 명예는 시궁창에 처박히는 억울한 군생활을 마무리 한셈이된다. 

이유야 어쨌던, 4성장군이 되기까지에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어려운일과, 노력을 많이 했었을 것으로 알고있다.  일개 사병의 불만을 확대해석해서, 결국 더 국가에 봉사할수 있는 역전의 장군을 매장시킨꼴이 됐었고, 그뒤에는 많은 정치꾼놈들의 농간이 있었음을 대다수의 국민들은 알고 있다.

요즘은 사병의 복무기간이 2년도 채 안되는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병역의무의 군복무기간을 하는데, 이들에게 군대라는 계급조직을 첫날부터 철저히 가르쳐야할 중대한 시기에, "사병들에게 존칭어를 써라,  맡겨진 직책외에는 편히쉬게 하라,  부식이 부실하다.... 등등'의 불만을 사병들로 부터 듣기만을 원하고,  훈련을 담당하는 상관들의 고충은 가볍에 흘려 버리고....

이런 군대는 아래 뉴스에서 보다시피, 군장성과 마주쳐도 고개를 다른곳으로 돌리고, 못본채하고, 명령을 따르겠다는 복종의 의미로 거수 경례를 부치지 않는 사병이나 장교들이 수두룩하다고 하니.... 장교들과 마주치는 사병들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쳐다만 보고 있다는데, 이게 군대냐. 경례를 한다는것은, 군대에 복무하는 그시간만큼은 절대로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깊은 뜻이 경례속에 포함되여있는데,  이런 기본 Rule도 못지키는 군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렇게 군대가 개판 5분전으로 변하게 된데는, 많은 정치꾼들의 농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거시에 표를 얻을려는 얄팍한 수작을 걸어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꼼수때문이고, 또다른 문제는 현재 군에서 고위급 장교로 근무하는 장성들이 이렇게 군기문란을 유발시킨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전에는 대한민국의 젊은 젊은 청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오면 흔히들 "인간 재생창에서 공부 많이 했다. 군대가 나같은 망나니를 사람만들어, 오늘날 이렇게 사회생활을 모범적으로 하게 만들었다.....등등"으로 군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추한18년의 아들놈은 모든 사병들이 그곳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던 "카투사''에서 근무하면서 외출나와서, 귀대하기 싫다고, 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미귀로 군대 영창깜이었지만, 엄마의 빽을 동원하여 해당부대의 장교에게 공갈쳐서 정상적으로 귀대한것으로 처리하여, 사회적 이유를 만들었던 뉴스를 보면서, 그때 나는 '대한민국 군대 당나라 군대로 변했다'라고 한탄했었다.

추한18년 역시 전형적인 정치꾼중의 하나였었다.  그런 더러운 정치꾼이 내년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더불당 후보로 나왔다가, 결국은 망신만 당하고 낙동강 오리알이 됐지만.... 이렇게 정치꾼들의 아들놈들이 군대를 교묘히 면했거나, 군복무를 한다해도 근무하기 편한곳으로 때돌리는, 그래서 대한민국 60만 대군은 숫적으로는 많지만, 그누군가가 옆구리 한번 푹 찌르면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지경에 이르르고 만것이다.

"강장밑에 강졸나고, 약장밑에 약졸난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이대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군의 리더들 부터 정신차리고, 군기를 잡아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방부와 정치꾼놈들이 법을 만들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자유는 공짜로 얻는게 아니다.  이를 지킬만한 질서와 힘이 있을때에만 가능하다"라는 미국의 대통령이 한말이 문뜩 머리에 떠오른다.  정해진 규율을 잘 지키고 존중해야만 원하는 Freedom을 얻을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하기위해 목숨바쳐 나라를 지킨 선배들은, 먹을것 입을것도 부족하고, 겨울이면 전방에서는 목욕을 할 시설이 없어, 한겨울 지나고 봄철이 되여 산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몸을 씻을때는, 너나 할것없이 뱃때기에 검은 때가 마치 돼지 뱃떼기에 붙어있는 오물처럼 붙어 있었고, 이를 닥아 내는데는 비누도 없어, 계곡물속에 있는 고운 모래를 한줌 집어서 배를 문지고곤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인내하는법을 배우고,  길지도 않은 군생활을 지겹다고 생각말고, 옛날 그대들의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들로 부터 들었던 군생활얘기들을 잘 기억하면서, 군생활을 즐겨라.  "상명하복"을 지켜라. 억울하게 명령한다고 불만을 품지말고. 

옥에도 티는 있는 법이다. 개중에는 나쁜 선임병도, 장교도 부사관들도 있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같은 구룹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곧 그부당함이 탄로나게 되여 있다고 믿는다.  정치꾼들아 제발 정신 차리고, 군대가다시 강군으로 태어나도록 뒷받침을 해주어라.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훈포장 및 표장 수여자들에게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훈포장 및 표장 수여자들에게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 거수경례와 전투력 

서울 용산역에서 한 장성이 겪었던 일이란다. 그가 별이 달린 정복을 입고 열차를 타러 가면서 10명이 넘는 간부와 병사와 마주쳤다. 그러나 그에게 경례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다른 간부와 병사는 고개를 돌리거나, 아니면 그를 무심코 지나쳤다.

국방부 엘리베이터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영관급 장교가 들어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엔 장성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영관급 장교는 장성을 모른 척했다.

요즘 군대의 군기가 어떤지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군대는 계급 중심의 위계질서가 뚜렷하며 그에 따른 명령과 복종 관계로 이뤄진 집단이다. 거수경례는 군 예절의 기본이다. 권위를 인정하며 명령에 따르겠다는 뜻을 상급자에게 나타내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군기의 기본인 거수경례가 이러할진대 ‘군기가 빠졌다’는 한탄이 군대에서 나오는 게 당연하다. 최근 간부와 병사간 두발 규정 차이를 없애는 방향으로 국방부가 검토한다고 하자 장교ㆍ부사관과 같은 간부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새 두발 규정이 당나라 군대로 만들겠다는 우려를 섞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군기를 땅에 떨어뜨린 주범은 병사가 아닌 간부들이다. 일례로, 나이가 지긋한 부사관이 갓 임관한 장교에게 경례를 꺼리는 일이 잦다. 다른 군의 상급자에 대한 경례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도 한다. 군기의 기본인 경례부터 간부들이 먼저 등한시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리처드 윈터스 소령이 예전 상관인 허버트 소블 대위가 외면한 채 지나가려 하자 경례를 받아 내며 한 얘기는 경례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사람이 아니라 계급에 대해 경례하는 걸세.”

경례뿐만이 아니다. 한여름 덥다며 밖에서 군모를 벗어 손에 들고 다니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간부를 여럿 봤다. 군예식령에 따르면 ‘군모는 실외에서 착용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멋을 낸다며 규정보다 머리가 더 긴 젊은 간부들도 있다.

군대 문화를 연구하는 김진형 예비역 해군 소장은 “ 거수경례, 두발ㆍ복장규정은 허례허식이 아니다. 군대는 항상 엄정한 군기를 세워야 전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며 “간부들의 솔선수범이야말로 군기를 확립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9458

트레비 분수 앞에 선 G20정상들, 불참한 文은 어디에...청와대왈 'Session연설 준비에 집중' 하느라. 그말에 믿음이 안가.

청와대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 수도 '로마'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대에서 잠시 여가를 즐기면서, 심지어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행운의 동전'던지기 게임을 하고 있는, 그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혼자서 곧바로 이어질 'Session연설 준비에 집중' 하느라 불참 했다는 변명아닌 변명을 했단다.

연설내용이 어떤것일지는, 그러나 대강은 짐작이가는, 지구 온난화(Climate Change)를 방지하기위한 원고를 작성하기위한 것일것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그렇타면 다른 나라의 정상들은 그러한 목적으로 모인 이번 정상들 회담에서, 연설할 주목적은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이렇게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동전 던지기까지 하는 모습은, 청와대의 기준에서 본다면, 직무태만일수도 있다는 엿같은 변명을 한데 대해, 대통령 문재인을 수행한 청와대 수석(돌대가리들)은 뭘하고 있었느라,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게 했느냐?라는 질문이다.

정상회담이 열리기전에 미리 도착하여 교황청으로 교황을 방문하는 여유까지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었는데..... 문재인을 포함한 대통령을 수행한 돌대가리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열중하기위해,  정상들이 함께 모여 농담도 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Break Time에 참석 못했다는, 그좁살스런 이유를 댄 청와대는 정말로 문제가 많은 돌대가리들이 포진하여 문재인 대통령의 그훌륭한 Talent를 세계 정상들에게 보여주는 기회를 박탈(?)하는 엿같은 짖을 했다고 추측할수밖에 없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21/10/0-4-g20.html

내생각으로는 동행한 정수기가 문재인에게 투정을 부려, 투정을 들어 주느라 그시간에 관광지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었던가, 아니면 어느 유명 Department에 쇼핑을 갔었던가....로 결론이 귀결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문재인씨가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질병이 있어서였던가.... 암튼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아니면 두 Dementia Patients들끼리 모여, 한반도 '종전선언협약'을 위한 작전을 짜느라 빠졌었던가....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자유시간에 자율적으로 분수대 앞에서 모이는 계획에 없었던 자리였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곳에 모인 각국의 정상들역시 초면이거나 겨우 한두번 만났던 경험이 있을 것인데, 엄밀히 따지면 모두가 서로 처음 대하는, 친목을 쌓기위한 아주 좋은 순간을 우리의 좌파 문재인 대통령 각하(?)께서는 발길로 걷어 차버린 것으로 너무나 아쉽다. 

https://www.cnn.com/2021/10/31/politics/xi-jinping-vladimir-putin-g20-joe-biden/index.html

모처럼 만난 이기회를, 그동안 국제외교무대에서 왕따를 당해 국격을 추락시켰었던, 만회의 기회로 삼아 열심히 Chatting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어가 불통이라서 문제가 될수 있는 걸림돌때문이었다고 또 이유를 댄다면,  그것은 다른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위한 구차한 변명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인종들을 만나고, 그들이 하는 언어역시 생판 들어보지도 못한 말들을 뱉어낸다. 그렇타고 대화가, 또는 이해를 못해 본적은 거의 없었다. 표정과 Body Language 를 하면, 대개는 서로 이해를 하기에 소통의 어려움으로 문제가 되여본적은, 내경험으로는, 없었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9/02/ethiopiaafrica-3-16-mursi-tribe-mago.html

아니면 상전으로 모시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시진핑 주석을 대신하여 참석한 왕이와 비밀리에 알현 하느라 참석을 못한것인지의 여부도 궁금증을 낳게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찌하여 보잉 747s점보기까지 타고 그곳에 가신 대통령께서 유난하게도 툭튀는 행동을 해서, 겉으로는 태연한척 보인 각국의 정상들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역시 문재인다운 돌출 행동을 또 했구먼....'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치졸한 행동을 번번히 연출했을까라는 것이다. 아이 챙피해. 

바로 이어 열리는 세션에서 하게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나를 비롯한 온 국민들은 경청해 볼것이다. 그순간이 방영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백억원의 경비를 들여, 정상회담에 참석한 목적을 잘 이루었는지의 여부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현지시간) 수도 로마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에서 '행운의 동전'을 던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현지시간) 수도 로마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에서 '행운의 동전'을 던지고 있다. /연합뉴스

청 “자율 일정이라서 세션 연설 준비에 집중”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트레비 분수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기념 사진 촬영 현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날 촬영 현장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대신해 참석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도 불참했다.

이를 놓고 현지에선 깜짝 한ㆍ미 정상회담 등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사진 촬영 불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사진 촬영은 정상간 친교 차원의 산책 중 이뤄진 자율 참석 일정이었다”며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제2 세션을 준비하기 위해 불참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친교 일정에 불참하는 사이 별도 한ㆍ미 회담 등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현지 시간) 트레비 분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일정은 참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 일정이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은 사진촬영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현지 시간) 트레비 분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일정은 참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 일정이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은 사진촬영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상황은 다르지만 문 대통령이 다자 외교무대에서 단체 사진 촬영에 불참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12회 아셈(ASEM) 정상회의 때는 사진 촬영 현장에 도착하지 못해 단체사진을 찍지 못한 적이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기념사진 촬영 일정이 늦어지자 본회의장에 대기하면서 이후 일정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주최측은 급하게 촬영 일정을 공지했고, 정상들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로 몰리는 바람에 문 대통령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당시 문 대통령 외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5개국 정상이 사진 촬영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동선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 당시 청와대 의전팀에 대한 책임론이 일기도 했다. 특히 청와대는 당시 주최측의 운영 미숙 때문에 촬영에 불참하게 됐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복도 의자에 앉아 원고를 보는 사진을 공개했는데, 청와대가 대통령의 대기실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드러나 오히려 논란이 더 커지기도 했다.

201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정상 기념촬영에 문재인 대통령이 빠진 이유를 청와대가 사진을 공개하며 설명했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본부 내 유로파 빌딩 9층 복도에서 정상 기념 촬영을 기다리며 연설문을 검토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 사진 청와대

201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정상 기념촬영에 문재인 대통령이 빠진 이유를 청와대가 사진을 공개하며 설명했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본부 내 유로파 빌딩 9층 복도에서 정상 기념 촬영을 기다리며 연설문을 검토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 사진 청와대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7월 아셈정상회의 기념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터키에서 터진 군사쿠데타의 여파로 유럽연합 측 정상들이 서둘러 촬영 장소를 빠져나오는 바람에 촬영이 일찍 끝났다. 이 때문에 의전상 후반부에 오기로 돼 있었던 박 전 대통령은 촬영이 끝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현지시간) 수도 로마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에서 '행운의 동전'을 던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31일(현지시간) 수도 로마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에서 '행운의 동전'을 던지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마지막날인 31일(현지시각) 정상 단체사진 일정에 불참했다. 청와대는 “자율 일정이라서 G20 두번째 세션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G20 정상들은 이날 오전 로마의 주요 관광지인 트레비 분수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의 정상들은 참석해 서로 대화도 나누고 분수 안에 손을 넣기도 했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정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은 함께했다.

청와대는 “정상 간 산책 일정이었고 필수 참여 일정이 아니었다”며 “대통령께서는 제2세션 준비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열리는 기후변화 및 환경과 관련한 G20 세션 2에서 연설이 예정돼 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10/31/WA5RLI4FX5GQHK4HLOFSW6D7CQ/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9687

Saturday, October 30, 2021

문재인의 탈원전 정책의 허구가 정부탄소중립위원회에서 지적, “화력발전 중단? 현실성 낮고 되레 재생에너지 전환동력 약화”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2050년까지석탄화력 발전을 완전히 배제하는 시나리오안을 확정 발표했는데, 문제는 탄소중립위원회가 관련된, 전력생산 협회( 남부발전, 중부발전, 남동발전 그리고 GS 포스코등이 회원으로 있는 민간발전협회)와 사전에 협의나 회의를 해서 만들어낸 계획이 아닌, 탄소중립위원회 독단적으로 작성, 성급히 발표했다는데 문제가 크게 발생할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민간발전협회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6%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중 하위권으로 우리나라의 치후 지형증 재생에너지 확대에 불리한 환경 여건상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70.8%수준까지 확대가 가능한지 명확한 근거와 사실 확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관련된 전력생산협회를 만들고 그들이 전력을 나름데로 발전생산해서 운형하는 현장의 책임자들이라는 점을 인정해 준다면, 탄소중립위원회는 그들과 항상 소통하고 협의하고 그다음에 중론을 모아 에너지 정책을 발표 했어야 했다.

왜 문재인 정부는 모든 국가정책을 집행하면서 독단적으로 전문성이 결여된 내용의 정책을 발표흘 양산 하는가 말이다.  

탈원전을 선언할때도, 위에 언급한 남부, 남동, 중부, 그리고 민간발전 협회 그리고 원자력 협회의 전문가들과 사전 협의 한마디만 했어도 지금처럼, 전력난 또는 전기료인상에 대한, 국민들이 들어서 부담이, 정부 발표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그들이 발표한 수많은 정책들중에서, 국민들에게 만족을 줄수있는 유용한 정책을 집행한 실적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떳떳히 발표해 보라는 요구하고 싶다.  

태양열판 전력생산, 풍력발전 전력생산은 현재로서는 국민세금만 받아먹는 하마일뿐, 전력생산은 전적으로 바람과 태양광에 의존 하기에 Stability가 원자력 발전처럼, 또는 석탄발전처럼 안정성이 결여돼 실질적으로는 실요적이지 못하다는점을 문재인 정부는 인정을 해야 하는데......역방향으로 자꾸 몰아가고 있는 현실에 전문가들의 걱정만 더해주고 있다.

남은 임기동안만이라도 국민들 모두가 수긍할수있는 정책을 세밀히 만들어 발표하는 진정성을 좀 보여 주기를 원한다.  국민들은 개 돼지가 아닌, 생각과 비젼을 생산해 내는 현명한 국가의 보석들임을 조금이라도 인식해 준다면,  일방적인, 국력소모를 부채질하는 정책집행을 하지 말기를 간절히 원한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윤순진 공동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윤순진 공동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205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완전 퇴출하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확정·발표했지만, 산업계는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해 현실성이 결여됐으며 오히려 탄소 중립으로의 에너지 전환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는 지난 8월 5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탄중위가 제시한 3개 안은 1안 수명을 다하지 않은 석탄 발전소 7기 유지하되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적용해 순배출 제로화, 2안 석탄발전소 7기 중단, LNG 발전은 활용하되 CCUS 기술 적용으로 순배출 제로화, 3안 석탄발전소 7기와 LNG 발전 전면 중단 등이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 산하 발전 공기업들은 탄중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석탄발전의 조기 폐쇄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남부발전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향후 석탄발전기를 퇴출하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석탄발전기 설계 수명은 30년이지만, 환경설비 개선과 주기적인 설비 보강으로 설계 수명 이후에도 실질적 운영이 가능하고, 잔존 수명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어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석탄·LNG 발전기가 조기 퇴장할 경우 불가피한 매몰 비용 발생으로 발전사의 재무적 부담이 가중돼 재생에너지와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전원 등 에너지 전환 추진 동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익 악화가 지속될 경우 회사 존립 위협으로 일자리 창출, 협력사 고용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 등이 어려워져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중부발전은 “석탄발전을 대체할 LNG 발전 건설이 필요하다”며 “기존 석탄발전설비 폐지에 따른 자산 손실과 신규 자금 조달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에는 대규모 예산이 필요하지만, 발전 공기업은 높아지는 부채 비율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남동발전은 “강도 높은 기후·대기 정책으로 발전사 경영 부담이 심화돼 수익성 악화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구체적인 보상 방안이 적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밀어붙이는 데 대해선 “주민 수용성, 전력계통 확보와 인·허가 문제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남부발전도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사업 개발을 통한 설비 확대가 중요하지만, 현재 사업 개발 여건은 민원과 인·허가, 계통 연계 등 장애요인 해결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개발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려야 하지만, 주력인 석탄화력발전의 조기 퇴출 등으로 경영 여건이 악화해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GS·포스코 등이 회원으로 있는 민간발전협회는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6%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며 “우리나라의 기후·지형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불리한 환경 여건 상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70.8% 수준까지 확대가 가능한지 명확한 근거와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간발전협회는 탄중위가 시나리오 초안에서 밝힌 3개안 중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는 2·3안에 대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과다한 경제적 비용 부담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LNG까지 전면 중단하는 3안에 대해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지만 기술적·경제적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민간발전협회는 또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리는 2·3안에 대해 “특정 발전원 의존에 따른 연료 수급의 불안정성, 신재생발전의 간헐성 등에 따른 전력 계통의 불안정 리스크가 매우 크다”며 “석탄발전을 포함한 안정적 전원 구성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 지리적 위치 등을 감안하면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석탄·LNG 등 다양하고 적정한 전원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던 탄중위는 이 같은 발전업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지난 18일 석탄화력발전을 완전히 배제하는 시나리오안을 확정·발표했다. 이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의 퇴출은 불가피하며 이에 따른 매몰 비용 발생과 이의 보전을 위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1/10/25/TKKYE77A7FCSNJ6VDMEC5KEJRY/

24년째 국적 없는 고려인 3세 "그림자처럼 산다", 미국에서는 생판 모르는 이민자들에게도 국적 만들어 주는데...북괴에는 읍소하는 문정권이...

이분들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스탈린은 북한과 만주벌판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우리 국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지금의 타슈켄트로 몰아 넣으면서, 같은 공산당 김일성 소련군 대위에게는 북한공산정권을 세워준게 지금의 김정은 Regime으로 이어져 3대째, 2,500백만 북한 동포들을 삶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데, 우리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한 살인마에게 더 많이 퍼주지 못해서 안달을 떨어 왔는데, 이번에는 또다시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에게 북한 방문하여 달라는 주문까지 하는 판인데... 누굴위해서, 북한 동포를 위해서? 아니면 김정은에게 아첨떨기위해서....

정상회담이고, 교황방문이고 다 명색은 그럴듯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속에는 쌀한톨만큼의 알맹이도 보이지 않는,  허례허식의 표본 뿐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타슈켄트를 비롯한 그인근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와 피를 나눈 고려인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고향땅으로 이주를 시킬수 있을까를 협의하고 담판짖기위해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방문해 볼 생각은 티끌만큼도 보여주질 못하는, 오직 김정은 김여정에게만 관심을 쏟는, 문재인과 그찌라시들의 조국관은 무엇인가?

G20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들의 애국적 헌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고사하고, "독재자"라는 누명만 씌워, 대국민 선동을 하고 있는 현정권은, 마치 자기네가 이룩해 놓은 업적인양, 슬며시 숫갈을 얹어놓고 생색내는 꼬락서니는 정말로 가슴 아프게 한다.

생색내는길에, 앞서 언급한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고있는 우리 혈족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어볼 인정머리는 정말로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란 그런자리인가?  아니면 본의 아니게 한민족의 피를 나눌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일까?  참으로 엿같은 우리의 대통령, 문재인.  

돌아가신 '노태우' 대통령이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랄수 있는 북방외교를 펴서 공산주의 종주국 쏘련과 중국과의 국교를 터서, 국력을 키웠던것 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혁신적인 정책을 펴서, 한건의 공적이라도 세워놓고 양산으로 가시던가 하시길....

나라를 이끌어가는 Leader의 기본자세는 진정성을 앞세우고, 사랑으로 온 국민들 감싸안는 포옹력이라고 본다. 엄하게 다스리는것과 포옹력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회의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할수만 있다면 중앙 아시아나라들을 한번 방문해서 실정을 살펴보고 오시기를 바라오.



황만금과 함께 구소련 시절 최고의 집단농장 책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1세대 고려인 김병화(1905~1974)는 강제이주 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땅에서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으면서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타슈켄트 



 <1> 나라 없이 지낸 150년, 고려인

내전 피해 고향 돌아왔지만 국적 못 얻어
빈곤과 무국적 신분의 끊을 수 없는 굴레
뚜렷한 이유 없이 14년간 국적 못 받기도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국가에 소속되지 못해 학교에 갈 수도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이들의 삶은 깜깜한 절망 그 자체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인들은 모여 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상업지구에서 ‘코리아타운’을 볼 수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들녘 한가운데에 ‘고려인 집성촌’이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차로 40여 분, 치르치크강 동쪽의 더스트릭 마을. 1937년 강제이주한 고려인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만들었다는 이곳은 지난해 '황만금 마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구소련(CCCP) 시절 치르치크 집단농장 책임자로 마을을 소련 최고의 모범농장으로 일궈 사회노동영웅 칭호와 레닌 훈장을 받은 고려인 1세 황만금(1919~1997)을 국가적 위인으로 기리려는 현지 고려인 단체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마을의 모습은 1991년 소련 해체 이전, 그 영화롭던 한때에 멈춘 듯했다. 잘 정돈된 광활한 논밭과 소련 시절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농가주택은 그 시절 마을의 자랑거리였지만 지금은 쇠락의 징표와 다름없어 보였다.

"그림자처럼 산다" 국적 없이 24년째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가 이달 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황만금 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가 이달 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황만금 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이달 8일(현지시간) 황만금 마을에서 만난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의 삶도 마을과 함께 과거에 갇혀 있다. 장씨는 있지만 없는, 존재 자체가 불법인 무국적자다. 장씨의 부모는 모두 우즈베키스탄 국적자였지만 장씨 본인은 그 나라 국적을 받지 못했다. 1971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투르크메니스탄 국적도 없다.

장씨는 "소련 해체 후 지금까지 직업도 집도 없이 그림자처럼 살고 있다"며 짐더미 속에서 빨간색 수첩을 꺼내 보였다. 구소련 정부가 강제이주 한인에게 발급한 여권이었다. 앞표지에 'CCCP'란 글자가 박힌 여권에는 '1971년생' '카레이스키(고려인)' 등 장씨의 신상정보가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1988년 발급받은 이 여권으로 그는 병역 의무도 마쳤다.

장씨의 실재를 증명해줄 유일한 서류였던 여권은 그러나 효력을 다한 지 오래다. 사라진 나라의 여권으로는 이제 마을 밖을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대처로 나가려면 치르치크강을 건너야 하지만 검문소를 통과할 수 없다. 장씨는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강제이주시킨 뒤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검문소를 세워 통제했다"며 "나는 지금도 스탈린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씨가 구소련 시절 발급받은 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가 구소련 시절 발급받은 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빈곤과 함께 대물림되는 무국적 신분

내전을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이후 20년 넘게 장씨는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간 이웃의 빈집을 빌려 살고 있다. 이정원 기자

내전을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이후 20년 넘게 장씨는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간 이웃의 빈집을 빌려 살고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는 다섯 살이던 1975년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출생지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타지키스탄 집단농장으로 옮겨 가 살았다. 소련 붕괴 이후 타지키스탄에서 터진 내전이 길어지면서 1997년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란왔지만, 그를 기다린 건 지금까지 장장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무국적자의 삶이었다.

당연히 우즈베키스탄 국적일 거라 믿었던 장씨는 역사적 격변 속에 잃어버린 신분을 여태 되찾지 못했다.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처음 안 1997년 국적을 취득하려 했지만 거주지 등록 제도에 발목이 잡혔다.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1991년 이후 거주지 등록을 하지 않은 기간을 따져 3개월마다 20달러씩 지불해야 한다"는 담당 경찰의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못됐다. 지금은 내야 할 벌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최근엔 출생증명서 제출 조건도 생겼다. 이를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에 다녀오려면 경비 80달러가 추가로 든다.

한국 정부가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외교에 공을 들이면서 고려인 무국적자 문제는 해결의 전기를 맞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무국적 고려인에게 국적 취득을 허용한 것.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가 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뒤 줄곧 무국적자 신세였던 김 기나지(61)씨 등 600여 명의 고려인이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장씨는 이 기회조차 붙잡을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이 닿아 있어 무국적자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무국적자로 지낸 기간에 거주지 등록을 하지 못해 그간의 이동 경로를 증명할 수 없다. 거주지 등록을 하려면 벌금도 내야 한다. 장씨는 자신에게 부과될 벌금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정한 벌금 기본값(BRV) 약 20달러에 거주지 비등록 기간 20여 년을 분기별로 곱한 금액으로 알고 있다.

신분 증명을 할 수 없어 그림자 노동을 해야 하는 장씨에겐 감당하기 힘든 돈이다. 한국 정부가 벌금을 대신 내줄 거란 기대는 애초 없었다. 인테리어 기술이 있는 장씨는 "같은 마을 고려인들로부터 가끔 일감을 받아 버는 일당(3달러)으로 생활하는데, 그마저도 최근 한 달간은 일이 없었다"며 "돈을 모아야 거주지 등록을 하고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 국적이 없으니 돈도 벌 수 없는 굴레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장씨의 아내와 12세 아들이 집 앞에 서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는 무국적자 신분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해야 하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프다. 거주지 등록을 못한 탓에 장씨 자녀들도 사실상 무국적 상태를 앞두고 있다. 장씨는 "아이들이 만 16세가 되면 국적을 받아야 하는데 그 전에 벌금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지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19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고려인 집성촌을 직접 방문해 무국적자 실태를 파악했다. 당시 집계된 고려인 무국적자 수는 총 843명이었다. 한국 정부는 공식 집계를 한 적이 없기에, 현재로서는 이 정보가 고려인 무국적자 규모와 관련된 유일한 통계다. 그러나 현지 한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라고 평가한다. 한 관계자는 "중앙아시아 일대 고려인의 무국적자 비율은 10%에 달한다"며 "사망자 등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따져도 우즈베키스탄 내 고려인 가운데 1만여 명은 무국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무국적자가 5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그중 많은 인원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어머니 나라 찾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제적 형편이 낫다고 해도 무국적자의 삶은 크게 다를 게 없다.

구한말 러시아 연해주에 터를 잡았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외증조부모로부터 4대를 내려왔건만,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알렌산 카쟈란(30)씨는 국적이 없어 프로축구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고려인 어머니와 아르메니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카쟈란씨는 아르메니아에서 출생해 7세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뒤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라 자신도 당연히 이 나라 국민이라고 생각했지만, 국적이 부여되는 16세가 됐을 때 그에겐 영주권만 주어졌다. 10년 거주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1년만 기다리면 10년 거주 기한이 채워져 국적이 나올 거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네 차례 신청 끝에 지난달 국적을 받을 때까지, 14년간 국가는 카쟈란씨의 거듭된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자신이 무국적자여야 하는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담당 경찰은 "대통령 사인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2019년 고려인에 대한 국적 부여가 허용됐을 때도 카쟈란씨는 아버지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주권이 있으니 그마저도 없는 무국적 고려인보다 형편은 나았지만, 하는 일마다 제약이 따르긴 매한가지였다.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 프로축구 리그 선수가 됐지만 신분은 번번이 걸림돌이 됐다. 구단들은 내국인 지위가 없어 외국인 급여를 줘야 하는 카쟈란의 영입을 꺼렸다. 해외 원정경기라도 있으면 더 난감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무국적자에게 발급하는 여행문서인 '회색 여권'을 인정하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입국 때마다 팀 동료들을 먼저 보낸 뒤 환승게이트에 남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번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고려인 4세 알렉산 카쟈란씨가 이달 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외곽에 있는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세 살짜리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들은 엄마에게 카쟈란씨의 영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고려인 아내를 만나 세 살, 한 살짜리 두 아이를 둔 카쟈란씨는 축구선수 생활을 접고 영업사원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 명의의 집을 살 수도, 마음대로 거주지를 옮길 수도 없었다. 휴대폰은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서 개통했다. 더구나 외국인으로 간주돼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세금은 내국인보다 2배가량 더 내야 했다. "무국적자는 차량 번호판 색깔도 다릅니다. 더 많은 의무를 지고 살면서도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카쟈란씨는 2018년 증조부모의 나라를 찾기도 했다. 고려인 지원단체 주최로 고려인 무국적자 문제를 다루는 콘퍼런스에 초청을 받아서다. 그는 "(콘퍼런스가 열린) 경기 안산시 공무원들도 참석한 자리였고, 사연을 얘기해 달라기에 말했더니 다들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였다"며 "나를 불쌍하다고만 할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카쟈란씨는 "지난달 경찰에 한국 언론이 무국적자인 나를 취재한다는 사실을 알렸더니 느닷없이 국적이 나왔다"며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이정원 기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1413370003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