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회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안이 14일 여당의 주도로 통과됐다.

통과된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금지한다.

전단뿐만 아니라 돈을 보내는 행위까지도 폭넓게 금지 대상으로 규정해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과 게시물 게시를 금지하며 전단의 살포를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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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과 게시물 게시를 금지하며 전단의 살포를 금지한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송영길 의원(민주당) 대표발의안과 김홍걸 의원(민주당) 대표발의안을 수정 보완했다.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금지하고 처벌 규정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전단’과 ‘살포’ 등 관련 용어의 정의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했다.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과 게시물 게시를 금지하며 전단의 살포를 금지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단’이란 광고선전물, 인쇄물, USB 보조기억장치는 물론이고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뜻한다.

‘살포’란 선전, 증여를 목적으로 이를 정부의 승인 없이 북한에 보내는 행위를 말한다. 제3국을 거쳐서 보내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무슨 계기로 이런 법안이 나왔나?

북한은 지난 6월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하여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폐쇄한 후 폭파시켰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담화문을 내 당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이를 저지하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한국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위한 법률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들도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위한 법안들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야당의 반발에도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해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려 했으나 표결로 강제 종료됐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서 10시간 이상 발언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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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서 10시간 이상 발언을 이어나갔다

무엇이 논란인가?

개정안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개정안을 찬성하는 측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이 무력 도발을 할 경우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이 위험해진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측은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한다고 비판한다.

개정안이 ‘전단’과 ‘살포’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규정해 형법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개정안이 제3국을 거쳐서 전단 등을 보내는 행위까지 금지한 데 대해 "김여정이나 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요구했던 사항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징역 3년까지 부과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규정을 담아야 하는데 (개정안을 보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죄형법정주의'란 범죄와 그에 대한 형벌이 법률로 명확하고 엄격하게 정의돼야 한다는 원칙인데, 개정안에서 정의하는 '전단'과 '살포'의 행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 신 법률분석관의 지적이다.

탈북민이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도 불법?

개정안은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에 돈을 보내는 행위도 금지한다. 이 때문에 탈북민이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 법률분석관은 "여러 가지 대북 제재를 하는 미국 재무부에서도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할 때는 연간 5000달러까지는 별도의 신고 없이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이번 개정안이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15일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개정안은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전단 등을 살포해 우리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는 행위를 규제하려는 것"이라며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북한에 물품을 단순 전달하는 행위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 법률분석관은 지난 6월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발언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대북 전단 살포가 문제가 된 후 통일부가 공유수면법, 항공안전법 등을 근거로 전단을 발송한 단체들을 고발했던 사례를 지적했다.

공유수면법과 항공안전법 모두 본래 법 제정 취지는 대북 전단 살포와는 무관하지만 전단을 살포한 단체를 처벌하기 위해 통일부가 법을 “확대해석”해 고발했다고 신 법률분석관은 말했다.

한편,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5일 개정안을 비판하면서 “한국 정부가 자국 국민들이 기본적 인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 북한의 김정은을 기쁘게 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크리스 스미스 미국 뉴저지주 하원의원(공화당)은 지난 11일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두고 "한국 헌법뿐만 아니라 자유권 규약(ICCPR)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