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30, 2016

UN 안보리에서는 북핵무기와 미사일발사에 더강력한 봉쇄조치를 하는데, 한국의 넋빠진 정치꾼들은 대통령탄핵향해 죽기살기로 매달리고..

정말로 요즘은 내가 한국피를 나눈 사람이라는것에 챙피함을 넘어서, 이곳 현지의 친지들이 한국 정치꾼들의 미쳐나가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느냐고 물어 올때면, 대답은 고사하고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가고 싶은, 통곡하고싶은 심정이다.


오늘 UN 안전보장 이사회 회의에서 전원 만장일치로 북괴의 핵무기개발과 미사일 발사조짐이 있는것을 보고, 더 강력한 봉쇄 조치를 취하기로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것이다. 북괴의 혈맹인 중국과 러시아마져도 북한의 망나지짖에 전적으로, 이이상은 우방국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기권을 해오던 전례를 깨고, 다른 회원국들과 함께 강력한 재재조치를 하는데 한배를 탄것이다.  

노무현의 좌파 정권당시, 유엔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통과 시킬 투표를 할때,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죄인은 북한의 김정일동지에게 찬반 투표여부를 먼저 물어본후에 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이적죄를 저지른 범죄용의자인데, 그가 박대통령 하야를 부르짖다니...기가막힌다.  법은 있으되 집행이 될수없는 나라의 전형이다.

UN 안보리 회원국이 더강한 북한봉쇄를 이행할 결의안 만장일치로 채택.
북한 김정은, 군대시찰한 사진을 북한중앙방송이 11월 11일에 내보낸사진.

같은 시간에 한국의 정치꾼들, 특히 좌파정치꾼들은, 전세계가 북한의 망난이짖을 막기위해 전전긍긍하고,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도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 막을까 보좌관들과 머리를 싸매고 숙의하고 있는와중에, 정작 당사국의 정치꾼들은, 먹이감 하나를 놓고 서로 많이 쳐먹겠다고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Hyena떼들을 연상케하는 망국적인, 국민선동질을 하느라, 북한의 불법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언론은 한발 더 앞서, 이들의 이적질과 망국적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는 이작태를 보면서, 과연 이들의 조국은 어디일까? 아마도 38선 넘어서 Espionage하기위해 남한에 침투한 적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서울에서 데모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의 표명 대국민발표문에 실망을 표명하면서, 탄핵을 해야한다고 또 다른 생떼를 쓰고 있다.


월남 패망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지금 조국의 돌아가는 꼴이 꼭 당시의 월남을 생각케 한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검찰, 공무원들중에는 좌파의 두 우두머리가 대통령으로 있을때 학교생활을, 또는 완전히 Brainwash된 그들이 현재의 공권력 집행의 핵으로 있기에 법데로 공권력집행하길 바라고 명령 하달해 봤댔자 먹혀 들어 갈리가 절대로 없다. 사회는 개판일보 직전으로, 적군 아군을 구별못하는 정신병자가 돼버린 공권력이다.  정신나간 정치꾼들의 선동에 현혹되여, 일당 5만원씩 받고,선동데모행렬에 몰려든 불쌍한 국민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빨갱이 후손이 정치권을 좌지우지하는데 동참하는 그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할수있는가?   촛불시위하면서, 북쪽의 김정은 Regime에 경고한마디 외쳐본적 있는가?  





 과연 이들이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고, 북한의 남한에 대한 Heckling을 한순간이라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한다고 누가 믿어주겠는가?  대통령 탄핵하여 몰아내면 그순간부터, 한국은 월남 패망의 전철을 똑 같이 밟아가는 수순을 걸어가는 꼴이 된다.  월남의 옛대통령궁에 가보면 공산정권에 떨어진후의 월남의 존재를 실감케한다.  당시의 티우민주정권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용감한 월맹군이 월남을 불법점령하고 있던 미제들을 완전히 몰아내여, 조국을 통일 시켰다고 커다란 안내판에서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꼭 월남패망전의 실상을 꼭 닮아가고 있음을 피부로 좀 느껴라. 미제가 오랫동안 점령했던 남한을, 김정은 동지가 지휘한 공산군대가 완전 승리하여 이제는 남한전역이 지상천국이 됐다라고 Propaganda로 다시 세뇌시킬것이다.  아서라 더늦기전에...

어제는 언론에, 자칭원로라는 자들이 시내 호텔에서 모여 대통령 하야 하라고 거들었다. 누가 그대들을 원로라 했는가? 내가 보기에는 당신들은 해바라기였었다.  법집행이 잘될때는 행여나 잡혀갈까봐 이리저리 해바라기하다가, 이제는 원로랍시고 훈수하겠다니.... 당신들은 심장에 털이 났어도 너무나 많이 났다. 나이들은 나와 같은 연배들같은데, 그대들은 젊었을때 개발의 현장에서 하루라도 보낸일 있었나?  못사는 조국 내팽개치고 유학가서, 편하게 살다가 비겁하게 슬쩍 귀국한후 해바라기를 하여 운좋게 국해의원등등의 특권이 이용하여 흡혈귀노릇하다가 해바라기한 그대들을 누가 원로라 대접하는가?  원로대접받고 싶으면, 우선 국가의 영웅들을 대접하라.  실행은 간단하다.  인천국제공항을 "박정희 국제공항", 부산국제공항을 "이승만 국제공항"으로 개명해서 후세들에게 그분들의 애국적 국정철학을 전수시키도록 하라.


로동신문은 이제 노골적으로 빨갱이 후손을 응원하고있다.  신문의 Head Line이 읽기에도 섬뜻하다. "형제의 나라 호남조선의 자랑스러운 혁명동지, 김정은동지의 명에 따라 적화통일의 횃불을 들었습네다!" 정신 차려야 그나마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경제적 여유를 만끽할수 있다는것을 깨달아라.  Demagogue들아, SNS를 악용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비툴어진 조국관을 심어주지 마라.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라.  공권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빨갱이 후손과 그일당들은 벌써 감옥에 있어야할 존재들인데....

https://mail.google.com/mail/u/0/?tab=wm#inbox/158b249700b514ed

                         심상정, 정의당대표. 이여인이 조국을 위해 한짖이라곤, 정부정책에 발목만 잡았뿐이다.

좌파정치 선동꾼들이, 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언론에서도 한번 거론된적없는 심상정 같은 여인을 끌어들여, 마치 거대한 정치집단을 응원군으로 얻은것 마냥 선동질하고있다.
과연 이여인이 국민의 세금으로 호위호식하면서, 국가를 위한 한짖이, 국민들 선동하는것 말고, 무엇이 있었는가? 복장이 터진다.  돌아가신 박대통령을 중심으로, 후손들에게 보릿고개를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신념하나로 똘똘 뭉쳐, 지금의 조국이 존재할수 있도록 초석을 만들어 주었더니..... 복장이 터진다.  그리고 서구세계의 친구이자 동맹국들에게 더이상 조롱거리를 만들지 마라.  Washington Post, CNN, NY times, LA time, MS NBC등등의 기사를 좀 읽어보라. 수치심 금방 느낄것이다.   Power vacuum을 절대로 만들지 말라.  간절히 부탁한다.

http://www.nytimes.com/2016/11/30/world/asia/south-korea-president-impeachment-park.html?ref=asia

http://www.nytimes.com/2016/11/30/world/asia/north-korea-un-sanctions.html?ref=asia

Tuesday, November 29, 2016

몽고의 6000년 전통,독수리를 이용한 사냥,이제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나는 지금도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했을무렵에, 이미 청년이 된 위의 형님들이 길들여진(tamed)매(Hwak)를 이용하여 꿩과 산토끼를 잡기위해 사냥가서 어깨에 앉아있던 매를 공중에 날리면 공중에 멀리 날아올라, 사방을 정찰후 먹이감을 탐지하면 화살처럼 하강하여 꿩과 토끼를 잡던 그순간을 보면서 좋아라 손벽을 쳤었던 추억이 있다.  형들이 사냥매를 어떻게 구했거나, 훈련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덜덜 떨면서, 그냥 좋아서 따라 다녔던, 지금생각하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쯤으로 아스라히 기억에 가물가물거린다.

몽고에서는 아직도 사냥독수리를 이용하여 필요한 Food감을 확보한다는 뉴스는, 막연히, 자연과 어울려 삶을 살아가는 몽고인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추억속의 기억과 거의 같을 거라는것, 틀린것이 있다면, 몽고인들은 말을 타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Parairie),또는 매마른땅(Bad land)을 달리면서 사냥을 한다는점이 더 목가적으로 느껴지는것 같다.

요즘은 고국이 생활이 윤택해져,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는데, 그들이 많이 찾는곳중의 하나가 몽골이라고 들었다.  과연 그들의 눈에, 또 몽골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볼점이 참으로 많을것 같아 보인다.

중앙 아시아의 끝없이 펼쳐지는 매마른 땅에서 독수리를 이용하여 사냥으로 삶을 대를 이어가면서 이어온 전통이, 이제는 서서히 그막을 내리고 있다.

                              암컷 독수리는 사냥용으로 최고로 친다. 암컷은 더 공격적이고 수컷보다 몸이 더 무겁다. 

몽고 서쪽의 Altai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끝없이 넓은 그곳에는 도로와 또는 이와 비슷한 통로도 없이, 몽고,카작스탄,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고원지대로 정상에는 하얀눈이 덮혀있는 곳으로, 이들 나라들이 영토주장을 할수 없을 정도로,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나는 지금 해발 3,000미터인 Bayan Olgii 지역의 매마른땅에  있는데, 소수민족 Kazakh인으로 보이는 Bikbolat와 함께 서있다.  그는 여우가죽으로 만든 모자와 양가죽으로 만든 긴 오바를 입고 있고, 그의 팔위에 앉아있는 독수리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두리번 거리면서 먹이감을 찾아 사냥을 떠날 자세를 취하고 있다.

Bikbolat씨는 이지역에 약 250명 정도 남아있는 독수리 사냥꾼중의 한명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Berkuthchi 사냥꾼이며, 6000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초원지역에서 이어져온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징기스칸,쿠불라이칸 같은 장수들은 사냥용 새들을 수천마리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사냥을 하기위해 멀리 이곳까지 여행을 왔었다는 기록은 Marco Polo의 자료에  잘 나타나있다.


                        한마리의 사냥용 새를 훈련 시키는데 때로는 수년이 걸리기도한다.

Bayan Olgii지역의 거주민 대부분을 이루고있는 Ethnic Kazakhs 부족은 1800년대 중반에 러시아 제국의 병사들에 의해 이곳에 정착하게된다. 독수리 사냥꾼들은 현대사회로 부터 거의 완전히 떨어져 그들만이 소유한 고유한 삶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겨울의 맹추위를 이겨내고, 원추형의 이동용 텐트속에서 거주하는것을 집어치우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독수리를 훈련시키면서 살아간다.

사냥꾼과 독수리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게 연결되여있다.  독수리들은 자립정신이 강해, 서로간에 신뢰를 쌓기위해 아주 어렸을적부터 훈련을 시켜야 한다. Bikbolt씨의 설명에 따르면, 어린 독수리를 길들이는것은 집에서 기르는 가축류로 여겨지기에 닭이나 양들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성장한 독수리는 여우나 늑대를 잡아 먹어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하여 훌륭한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설명하기를, 암컷독수리는 가장 사냥을 잘하는데, 그이유는 성격이 공격적이라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수컷독수리보다 1/3 정도 더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Olgii지역에서 남녀가 말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는장면

수년이 걸려 훈련이 되면, 독수리는 사냥꾼의 왼쪽 거깨에 걸터앉은채, 함께 말을 타고 사냥에 나간다.  사냥꾼과 독수리사이에는 매우 돈독한 믿음이 깊어, 사냥꾼의 팔뚝에 앉아있는 독수리의 발톱에 가벼운 압력이 가해지는것을 느끼면, 그뜻은 독수리는 사냥깜이 어디엔가 있다는 냄새를 맡았다는 표시라고 설명한다.

상당수의 Kazakh 사냥꾼들은 아직도 구식 러시아산 소총을 소유하고있는데, 그들은 겨우 산토끼를 사냥하는데 사용하고, 전반적인 사냥은, 사냥꾼이 소유하고있는, 사람의 눈보다 8배이상 밝은 눈을 소유한 독수리가 전담하다시피하고있다.  독수리가 주로 사냥하는 먹이감은, 따뜻한 가죽이 최고로 값나가는 Corsac 여우들과, 고기와 털을 제공하는 Marmots와 때로는 올빼미, 늑대,눈속에서 서식하는 표범들까지 다양하다.

사냥은 주로, 날짐승들이 몸이 약해지고, 배고픔으로 고생하고 있을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갔을때는 가을철이었었다. Bikbolat 씨는 우리들 발아래로 펼쳐져 있는 넓은 초원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탄식하기를,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사냥감으로 보이는 짐승들의 발자국을 추적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푸념했었다. 지금은 사냥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다. 어쨋든간에, 그는 독수리를 날려보낼 준비를 하면서, 작은고기한덩이를 언덕밑으로 던져놓고, 독수리가 사냥하지 않고 조용히 쉬거나 경종을 주기위해, 씌워놓았던 눈덮개를 풀었다. 독수리의 눈은 잠시 우리를 응시하다가 두툼한 장갑을 낀 Bikbolat씨의 손에서 뛰아 나가, 던저놓은 고기를, 마치 사냥에서 잡아논것처럼, 공격하는것이었다.
                                 사냥꾼들은 독수리와 아주 돈독한 친한관계를 형성한다.
매년 9월에 이지역의 수도, Olgii에서 사냥꾼들의 축제(eagle hunters’ festival)가 열리는데, 커다란 현금이 걸려있는 사냥축제이기에 많은 사냥꾼들이 몰려든다.  사냥기술을 자랑하는것에 더하여 남자들은 말을 타고 염소나 여우의 털을 로프처럼 사용하여 Kokbar라는 전통적인 전쟁놀이도 하고, 또 Tenge alu라고하는 시합을 하는데, 그것은 말을탄 사냥꾼들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말등에서 내리지 않고 달리면서 줍는 경기이다. 

철저히 남성들만이 참여하는것으로 한정되여 있지만, 여성들도, Kyz Kuu 축제동안에 남녀합동으로 승마경기를 하면서 여성만의 섹시함을 과시하는, 그녀들의 승마묘기를 자랑하기도한다. 만약에 남자선수가 승리하면 키스의 맛을 보지만, 만약에 여성을 앞지르지 못하고 패배하면, 여자선수는 그를 따돌린후에 뒤로 돌아서 그에게 채찍을 휘둘러 몸둥이를 휘감는 묘기를 보여 구경꾼들을 즐겁게 해준다.

아쉽게도 이렇게 오래 전해온 전통이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독수리 사냥꾼들은 이제 현대사회에서 그위치를 잃고 곧 사라지게 됐다

 지난 수년동안에 몽골고원의 초원지역은 급속히 황페해져, 이제는 사냥할 야생동물들이 거의 사라져버렸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Kazakhs 부족과 야생동물의 영역을 더 좁히는 역활을 하고 있다. Kazakhs 부족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대도시로 보내여 더많은 수입을 얻게해서, 그들이 운영하는 농장의 가축들을 돌보게 하도록하고있다. Bikbolat씨는 설명하기를, 이제는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비율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라고.  

현재도 매서운 겨울추위에 사냥꾼들은 따뜻한 동물의 털을 이용하여 사냥복,모자 그리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만든다. 사냥용 독수리들은 사냥꾼들에게 아직도 대접을 잘 받고 있으며, 그렇게 10여년 동안 같이 생활하다가 그후에는 다시 야생으로 되돌려 보낸다.

아직도 매우 중요하게 Berkutchi 의식으로, Kazakh 부족의 청년들은, 독수리들을 수족움직이듯이 훈련시키면서 그들사이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그전통이 아버지로 부터 아들에게 전수되는, 고도화된 묘기를 하나의 독특한 의식으로 여기고 있다. Bikbolat씨의 경우, 그렇게 독수리와 함께 사냥을 12대째 해오고 있으며, 또한 가문의 큰 영광으로 확신하고 있다.  


 Bikbolat씨는 나에게 Kazakh 부족들이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속담을 알려주었다. 즉 사냥꾼들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Altai의 넓은 광야생활을 하게하는 내용에 대한 얘기였다.  "재빠른 말들과 맹수인 독수리들은 Kazakh부족의 삶의 날개들이다"라고. 

황폐해가는 광활한, 그렇치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그는 내고향으로 부르고 있는것 만큼이나 많은, 그의 수많은 사연이 얽혀있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가 가족 동료들과 이런 전통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삶이 존경스럽고, 성인같이 느껴졌다.

http://www.bbc.com/travel/story/20160926-mongolias-6000-year-tradition?ocid=ww.social.link.email

Sunday, November 27, 2016

Fidel Castro의 죽음, 큐바인들에게는 슬픔, 그의독재슬하를 빠져나온 큐바인들은 축제무드.

군복에, 긴수염에, 그리고 내가 군대생활할때 쓰고 다녔던 각이 빳빳히 세워진 Green Hat을 쓰고, 대중앞에 나타났었던, 큐바의 독재자, Fidel Castro가 마침내 지구를 떠나서,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긴 여행을 시작했다는 뉴스가 전세계에 금요일 오후에 타전 됐었다.

전세계의 반응은 희,비가 엇갈리는, 그러면서도 그의 인생역전에 대한 장문의 기사들을 쏟아 내느라 경쟁하는 언론들의 모습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골치덩어리, 한국의 문죄인처럼 문제아 였었지만, 큐바에서는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에 충격적이면서도, 애도의 깊은 뜻을 나타내는, 9일간의 애도기간이 선포되기도 했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08/10/cuba-could-be-koreas-beachhead-to.html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Kennedy 대통령이 암살 당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아침에 등교길에 라디오 방송에서 듣고 괜히 망연자실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기 전에 케네디 대통령은, 쏘련 선박이 큐바에 정박하는것을 미국 해군이 해상봉쇄를 통해 막았었다는 뉴스도 들었었다. 바로 그화물선에는 큐바에 설치 하려는 Missile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큐바영토에 설치되면 곧바로 미국의 와싱턴을 향해 겨냥하기 때문이었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세계3차 대전이 일어날것을 예언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 케네디 대통령은, 큐바출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Texas주를 방문하여 Car parade하는 도중에 Sniper의 흉탄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었다.


그러나 그런 Happening은 발생하지 않았고, 오늘까지 3차 대전은 없었다.  당시 쏘련수상 "니키타 후루시쵸프"이, 미국의 해상봉쇄 정책에 백기를 들고 선수를 다시 쏘련으로 돌렸고, 모든것은 없었던 일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허풍이 얼마나 어리석었었나를 실증하는 엄청난 증거였었다.

큐바사람들에게 Fidel Castro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녔었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는것은 매우 어렵다고 하겠다. 그가 사랑받는 혁명가 아니면 독재자였던지간에, 또는 천하에 둘도없는 독재자로 알려졌던 Castro는 수십년간 그들의 삶과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90세를 사는동안, 그의 이미지는 올리브와 그린 색갈로 염색된 위장복보다, 그린색상의 군복을 입고 체스처를 쓰면서 그를 상상하는것은  모든사람들에게 다 편안함을 준것은 아니였다.
한떼의 학생들이 1950년대에 그가 다녔던 법대건물밖에 모여, 큐바국기와, 카스트로의 사진과 그위에 혁명구호를 들고 있었다. 그들중에는 눈물을 흘리는자도 있었으며, 위대한 지도자 카스트로가 미국의 지배로 부터 자기나라를 해방 시켜준것으로 여겼던 여겼던 혁명가의 죽음을 슬퍼했기 때문이었다.  수도 하바나의 사람들은 모두가 말없이 조용했으며, 아마도 국가에서 발행한 신문이나 방송을 듣느라 그렇게 보였던것 모습을 그렇게 표현 한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큐바를 도망쳐 나와 플로리다주에 많이 모여 살고 있는 큐바출신 사람들은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은지 2틀째 밤을, 특히 Miami시내에서는 축제의 파티가 열리고, 그의 죽음을 환영하는 축제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카스트로를 반대하는 큐바-어메리칸 코뮤니티에서는 오랫동안 카스트로가 그들의 삶에서 지워지기를 원해 왔었던 것이다. 그가 마침내 90세로 세상을 떠나자, 이제는 더이상 그를 그들의 삶속에서 생각안해도 된다는 기쁨인것으로 보였다.

나는 2000년대초에 은퇴후, 캐나다의 춥고 눈쌓인 겨울을 잠시나마 피하기위해, 매년 큐바의 "바라데로"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겨오고 있다.  처음에 갔었을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삶에는 항상 궁색함이 깊이 묻어 있었고,  길거리에는 크고 작은 혁명구호와 그의 사진들이 도배되여 있음을 보았고,  큐바인들은 그렇게 보여지는것이 그들의 삶의 한부분인것으로, 거부감이 없어 보였었지만, 서방세계에서, 특히 캐나다 또는 유럽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는 이광경이 무척 이해하기 힘들었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겨울에도 나는 또 바라데로 휴양지를 찾아서 곧 떠난다.  매년 신년초에 갔었으나, 이번 여행은 일찍 떠나기로 한것인데, 일년전에 미국이 마침내 큐바와 국교를 재개한후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는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변화되기전의 모습을 좀더 많이 보고, 기억해 두기위해서다.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beach+head,Cuba

큐바는 현재 그의 친동생 Raul Castro가 그의 형으로 부터 실권을 인계받아, 벌써 10여년 넘게 통치해오고 있다.  근본 정책은 여전히 철저한 반미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중국의 영향력을 완전 무시할수는 없어,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느낄수 있는 첫번째의 신호는 거리를 달리는 뻐쓰와 그들의 Taxi에서 볼수 있다고 하겠다.  Taxi들중에는 고국의 현대차들도 많이 보여, 돈이 벌리는 경제쪽에서는 공산주의, 민주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이윤추구를 향해서 달리는데는 더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증거라고하겠다.

http://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38120710

http://www.cnn.com/2016/11/26/americas/fidel-castro-obit/index.html

http://www.nbcnews.com/storyline/fidel-castros-death/fidel-castro-dies-90-obama-world-leaders-react-death-cuban-n688571

Saturday, November 26, 2016

TKPC대원들,Boyne Valley Provincial Park Trail Walk in Primrose Area.

오늘 걸은 곳은 지난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한 때에 TKPC대원들과 함께 걸었던 곳이다.
IKEA식당에서 나설때에는 초겨울답지 않게 보슬비까지 내려,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낯시간이 짧은 요즘은 여름과 달라, 숲속길을 걷는데, 시간과의 경쟁을 해야한다는것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Trail Head에 거의 한시간 반을 달려 현지에 도착했을때는, 하늘은 회색빛이었지만, 거짖말처럼 비도 그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본 주위의 숲속에는 잔설이 깔려 있어, 겨울이 실존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Primrose 지역의 남북으로 훤하게 뚫려있는 Hwy 10을 계속달려, Hwy 89를 통과하여 직진하니 그곳은 Local Rd 19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원래 목적지인 Parking 장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다른 Trail  Walker들이 주차한 차들로 꽉차 우리일행의 차들이 주차할 공간이 없이 다시 더 전진하여 Primrose Loop Side Trail이 시작되는곳의 길가 Shoulder Parking장에 주차하고, Side Trail 입구에 모두 모여, 항상해왔던것 처럼, 대원 R이 모두를 대신해서 위에 계신 Guide이자,  친구인 그분께 염원을 담아 오늘 산행의 모든일을 맡기고, 힘찬 발걸음을 떼었다.


옛날 고려의 충신, 길재가 고려가 망한뒤, 한필의 말에 의지하고 개성에 되돌아 서면서, 주위의 경관이 그옛날 태평성대를 이룰때와 다를게 없는것을 보면서, 읆었다는 시구절이 생각난다.


5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들어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모든 주위경관은 초록이 시작될때와 똑 같았으나, 다만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는 힌눈이 간간히 덮혀있어,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주는것외는 말이다.


 오늘의 산행내용은 지난번 이곳을 걸었을때와 같아, 그때의 블로그를 다시 읽어 보는것으로 대신했다.  이제 또 한해가 거의 끝나간다. 일년 12개월중에 앞으로 1개월후면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게 될것이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6/06/tkpc-boyne-valley-trail-walk-murphys.html

































 오늘은 승마를 즐기는 두여인을 마주했다.  여름철 바쁜 농사철에는 열심히 씨뿌리고 가꿔 결실을 해놓고, 오늘은 이렇게 여유롭게 말등에 올라타고 자연속을 헤매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무척 한가로워 보였다.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듯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 대원들을 발길을 계속했다.



















 대원 P가 양손에 플라스틱 돈을 들고 즐거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원들이 매번 해왔던것 처럼 P가 회비를 걷어 마치 횡재를 한것 처럼, 천진난만한 그녀의 얼굴에서, 행복은 큰것에서 찾는게 아니고 이렇게 조그만 순간의 Wit에서 나타난다는것을......





 산행을 마치고, Hwy 400과 Hwy 89에 있는 Tanger Mall로 Black Friday 쇼핑을, 여자대원들이 원해, 차를 그곳으로 돌렸다.
너무나 많은 차량이 주차되여, Parking spot을 찾느라 넓은 주차장을 두바퀴 돌면서, 겨우 Spot을 찾아 주차하고, Mall안에 들어섰고,  특히 여성대원들은 이곳에 온 것이 너무나도 Happy한듯, 쇼핑을 즐겨하는것을 보면서, 남자대원들은 그시간에 Coffee한잔을 훌쩍 하면서 밀려 다니는 쇼핑객들을 보면서 성격의 차이가 이렇게, 남녀간에 있음을 또한번 실감한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