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6, 2009

2009년도 마지막 산행, Albion Hills South Trail Walk















아침에 Noona가 산행시 먹을 점심을 준비 하는데 이상하다. 밥통에 점심준비를 한사람분만 하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에 잠자리에 들때 까지만 해도 같이 2009년도의 마지막 Trail Walk을 같이 참석 하는것을 기정 사실로 모든 준비를 했었기 때문이다. "왜 점심을 한사람분만 하는거지?" 라고 물었더니, "밤사이 잠을 잘 못자서 인지, 상태가 Trail Walk할 기분아니야"라고 다소 맥 빠진 대답을 한다.
눈쌓인 겨울산행을 굳이 밀어 부치는것도 무리일것 같아, 아쉽지만 혼자서 집을 나섰다.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차고를 나와 큰 길로 들어서니 계절에 걸맞지 않게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혼자라서 기분이 가라앉아있는데, 비까지 내리니.... 어쨋던 차를 달렸다.
다른때는 겨우 시간에 대기가 일수였는데, 오늘따라 거의 30분 일찍 도착했다. 습관(?)대로 맥도날드로 걸어가 무심코 문을 당겼는데, 아뿔사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불이 꺼져 있음을 알수 있었다. 다시한번 문을 쳐다보니 "Holiday business Hour"라고 안내문이 걸려 있는데, 오늘 즉 Boxing day는 아침 8시 부터 라고 써 있는것을 보았다. 가랑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다시 차로 돌아와 시간을 죽이기위해 래디오를 켰는데, 첫번째로 들리는 소식이 '토론토 공항도 보안 검색을 더욱 강화 했다는 소식이다. 어제 낯에 NWA 항공사 여객기가 암스텔담에서 이륙하여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착륙할 무렵에 기내에서 한 사내가 폭파 장치를 이용하여 비행기를 폭파 시킬려다 미수에 그친 뉴스가 연말을 당해 바삐 움직이는 전세계를 향해 전해 졌었는데, 그후속책으로 이렇게 강화 하는 모양이다. 몇명의 못된 쓰레기 인간들 때문에 죄없는 다수의 무고한 여행객들만 더 고생을 하게 생겼으니.... 빌어먹을 놈의 세상, 도대체 어떻게 될려고 이러나? 검거된 용의자의 진술에 의하면 23세의 나이지리아국적의 청년으로 '알카에다'테러조직의 지령을 받고 저지른 만행이라고 한다.

시간이 다되여 따뜻한 커피한잔을 먹기위해 다시 차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여전히 비는 내린다. 그속에서 여러명의 대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모두가 나처럼 맥도날드로 꾸벅꾸벅 걸어간다. 8시에서 2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은 컴컴하다. 거의가 우리 산악대원들인 손님들이 문밖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린다. 그들도 이곳에 오래 살면서 줄서서 기다는데 이제는 이골이 난것 같아 보인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하여 Local Rd로 달리니 길밑바닥이 빙판이다. 조심 스럽다.
오늘은 Coolihan Rd.주차하고 Glen Haffy 반대편 남쪽 루트를 걷는다고 한다. 발길이 드문 Trail은 눈이 쌓여 있어, 가랑비에 젖어 한발짝 옮길때마다 신발이 조금씩 미끄러짐을 느낄수 있었다. 기분은 무겁다. 같이 Car Pool한 동료들에게 출발 하면서 내가 제안 했다. 오늘은 우리일행은 무조건 한시간 전진하고 되돌아 와서 일찍 하산하자고. 모두가 찬성했다. 참석한 대원들의 숫자도 현저히 적다. 대략 30명 조금 넘을것 같다. 연말인 이유도 있겠지만 날씨 관계로 그런것 같다. Main Route를 약 20분 걷더니 리더가 Side Trail로 기수를 돌린다. 의외였다. 여전히 발길은 미끄럽다. 서서히 대원들의 걷는 속도에 따라 구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어도 Side Trail의 끝은 보이지 않는것 같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본다. 아직 한시간을 채우기에는 아직도 15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점을 이곳을 걸으면서 발견했다. 전부 소나무 숲속을 지나는 것이다. 소나무숲만을 걷는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보통은 단풍나무 숲이거나 아무렇게나 어우러진 잡목 숲이었었는데.... 소나무 모두가 쭉쭉 하늘로 치솟아 반듯하게 자라고 있어 보였다. 소나무들의 구성형태로 보아 식목해서 자란 소나무숲 같지는 않아 보인다. 식목한 소나무숲이였다면 정열하여 반듯히 서 있을텐데.... 거의 모두가 집짖는데 재목으로 쓰이고도 남을 굵직한 Stump들이다. 다행히도 바람이 불지 않아 진눈깨비로 바뀐 속을 걷는데 도움이 되는것 같다. 바로 앞서 가던 리더가 break time을 하겠다고 하면서 발걸음을 쉰다. 시간을 보니 정확히 한시간을 걸었다. 머리에 언쳐있는 모자에서 땀방울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가끔씩 한방울씩 떨어진다. 카풀한 동료중에서 '요시'만 안보인다. 아마도 그는 뒤에서, 항상 그랬던것 처럼, End Man과 동무가 되여 아직 오고 있거나, 아니면 발길을 이미 되돌렸는지 모를 일이다. 우선 아까부터 궁금하게 여긴, 오늘 걸은 이 Side Trail의 내용을 보기위해 백팩에서 지도를 꺼냈다. Palgrave Side Trail이었는데, 무척 길었다. 지도상에도 이구간은 거의가 Green색으로 표시된것을 보니, 아마도 이렇게 울창한 소나무숲을 표시한것 같다. 준비해간 따끈한 옥수수차 한잔으로 목을 추겼다. 맛이 꿀맛이다. '왕형'이랑 같이 이바구하고 있는데, 평소 인사만 주고 받곤 했던 한대원이 오더니, 내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사진을 보낸 ( )라고 한다. 나는 깜짝 놀랄번 했다. 그렇치 않아도 지난번 파티사진 보낸분이 누구일까?하고 궁금하여, 오늘 산행에서 꼭 만나 볼려고 마음 먹었었는데, 그분이 먼저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나의 상상과는 완전히 빗나가게, 왕형과 동년배이거나 더 연장자이신 분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감사의 답신 보낸것 잘 받아 보았다고 말씀 하신다. 재차 사진 고맙다고 인사했다. 동년배되시는 분들이 컴퓨터를 애용하는분들은 그렇게 흔치 않기 때문에 다시한번 그분을 쳐다보곤 했다. 파티중에 사진을 찍어서, 컴퓨터에 저장 했다가 다시 꺼내어 이메일을 보냈던 요술을 부리는 앞선분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그분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바꾸기로 생각했다.
리더가 안내말을 했다. 오늘은 여기서 더 전진하지 않고 되돌아 간단다. 처음 출발점을 조금지나 글렌해피 conservation안에 있는 테이블까지 가서 그곳에서 점심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되돌아 오는 Side Trail은 더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우리 일행은 바로 차에올라 집으로 향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맴돌고 있어 그러는 것이었을까?
우리일행이 모두 도착하여 차에 오르고, 다른 대원들은 더 걸은다음 점심을 먹기위해 계속 전진한다. 아직도 진눈깨비는 차분히 내린다.
모든게 젖어 있는 느낌인데, 점심하는것도 그렇고......Back Pack속의 점심은 결국 집에 도착하여 먹게 생겼는데, 차에 탄 동료들도 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겠지? 집에서 Noona가 백팩에서 점심을 꺼내 먹는 나의 모습을 볼때 뭐라고 한마디 할까?를 상상해 보니....어쨋던 우리의 결정은 옳다는것을 오는 차속에서도 확신할수 있었다.
내년, 즉 신년도에 다시 대원들을 만날것을 마음속에 다짐 하면서.....맥도날드에 도착하니 열두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감사.

Tuesday, December 22, 2009

산울림 산악회의 AG 파티는 흥겨웠다. 그리고....










그동안 오랜세월을 매주 Trail Walk을 하는 산악팀에 합류하여 같이 Bruce Trail을 같이 걷곤 하던 대원들이 거의 60 여명의 대식구임을 며칠전 Hockly Valley 구간을 걸으면서, 잠시 쉬는 break time에 리더되시는분이 몇마디 광고를 해주는 사이에서 알게 됐었다.
여름에는 시골에서 거의 생활하는 관계로 매주 참석을 못했지만,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지나면, 시골생활을 정돈하고 토론토로 오면서, 매주 트레일 걷기에 합류 하는 것이다. 이제는 서로 깊은 얘기를 주고 받고 하는 대원들의 숫자도 늘고 있지만, 이곳에 나보다 먼저 합류한 Mr. Tanaka부부와 Mr. Walter Leu 중국인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Car Pool도 같이 하고.... 스스럼 없이, 산행때마다, 대화를 하는 벗이 된지 오래다.

12월 19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산악회의 연말 파티를 위해 한달전에 리더분이 광고를 하면서 회비를 걷는다고 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래서 오늘의 산행은 The forks of Credit Provincial Park을 관통하는 코스를 택해 다른때와는 다르게 짧은 시간을 걷겠다고 리더의 안내 말씀이 있었기도 하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때는 오후 2시가 채 안됐었다. 아내는 오늘 나보다는 조금 일찍 Return해서 걸었기에 내가 주차장에 왔을때는 벌써 차에서 대기 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저녁 7시에 '서울관'에서 시작되는 연말 파피겸 AG meeting 에 참석하기위해 준비를 했다. 아내는 머리도 만지고, 어떤옷을 입을까? 구색도 마추어 보는 모습이, 나름데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산행에서는 대원으로 만나 즐겼지만, 이런 모임에서는 처음 상면(?)하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아직 많은 대원들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좌석은 잘 정돈되여 있었고, 리더몇분은 이미 도착하여 준비 및 리더쉽 인수 인계를 위한 준비에 열중 하고 있었다. 물론 Mr. Tanaka부부와 Walter도 보이지 않았다. 중간쯤에 자리를 잡기전에 간단한 인사를 대원들과 나누고,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산행때의 복장과 파티에 참석한 대원들의 복장은 사뭇 달라, 자칫하면 알아보기가 힘들수도 있겠구나 하고 느꼈다. Walter와 Tanaka가 도착 했다. 그의 부인은 안보였다. 그이 설명에 의하면, 아내 Kayako는 이런 대중 모임에 별로 란다. 그래서 혼자 왔다고 한다. 그옆에 몇주전에 산행에서 만났던 일본인 부부가 같이 왔다. 옆좌석에 같이 자리를 하면서, 그가 Mr. Mas부부임을 알았다.
그의 부인은 일본여인들의 정장 '기모노'를 이쁘게 입고 왔다. 갑자기 70년대 중반에 일본에 출장 갔을때, 옆에서 많이 보았었던 일본 여인들이 회상됐다. 발걸음도 슬리퍼 모양의 '게다'를 신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 다니던 모습들이 Mrs Mas와 오버랩 된다. '마스' 부부는 지금도 직장출근 한다고 하기에 나이를 물었더니 62세라고 했다. 그런데 젊어 보여 나는 50대 중반 쯤으로 보아오곤 했었다.
어느사이에 좌석이 꽉 찼다. 시간도 되였다. 리더가 지나온 일년간의 대원들과 지난 시간들을 간단히 설명해 주면서, 대원들의 협조에 감사 한다고 인사로 AG Meeting은 계속된다. 예상보다 많은 대 식구가 모였단다. 산행을 할때 마다 항상 궁금해 했었던, 우리 Trail Walk Team의 이름을 알수 없었던 점인데, 리더가 처음(?)으로 언급하는 대사중에서, '산울림 등산팀'임을 알았다.

새 리더를 선출했다. 서로가 사양하기에 현리더쉽팀이 추천하여 정해익씨를 추천하여 대원들이 손벽치기로 받아 들였다. 리더의 골육지책이었던것 같다. 새리더는 이곳에 이민후 계속 가게만을 지켜, 경제적으로는 튼튼하다고 들었으나, 인생의 좋은 시간들을 가게 Cash Register와 지내온 외톨박이 절약형, Workaholic 이었음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지만, 새리더로서의 그의 인사말이 대원들을 웃겼다.
일년반전에 은퇴하면서 우연히 산악팀에 합류하여, 그동안 계속해 왔는데, 너무나 좋았었단다. 매주 목요일에 각 대원들에 전달되는 이메을 받으면 그날밤부터 흥분하여 밤잠을 제대로 못이룰정도로 Trail Walk에 심취해 있다고 하면서, 열심히 해 보겠다고 한다. 주책없는 넋두리 같고 두서없는 소리였지만, 그의 인사말에서 순수한 진실이 깊이 스며 있음을 느낄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여흥이 시작 되였다. ' Mr. 로' 라고하는 아직은 젊은 분을 가리키면서, 오늘도 MC를 보아 달라고 현 리더가 부탁한다. 나는 처음 참석한 모임이었지만, 매번 행사때마다 미스터 로가 주로 여흥을 맡아서 진행 시켜왔음을 알수 있었다. 산행때 자주 보았던 얌전한(?) 장년의 그사내였다. 그는 Podium에 오르자마자 재치있게 좌중을 응시 하면서, 적당히 우스개 소리도 하면서 대원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가라오케 신청을 받으면서, 제발 '선구자' 같은 늘어지는 노래는 ' No thank you'할테니가 그런 노래가 아니고 흥겨운 노래로 선곡 하란다.
우리 테이블에도 신청용지를 들고 한 대원이 왔다. Noona가 나의 귀에 소곤 거린다. 같이 앉아있는 Walter, Yosi, Mas와 같이 할수 있는 노래를 선곡해서 4중창을 해 보란다. 이들은 이곳에 참석해 있지만, 언어도 안통하고 어쩌면 지루한 시간을 보내느라 힘들어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해 보라고 한것이다. Edelweiss를 선곡하여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그렇게 한목소리를 내 보자고 하니 모두가 좋아 하면서 잘됐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여러 대원들이 흥에 겨운 노래들을 불렀는데, 우리가 선곡한 차례가 오지를 않아 혹시 흥겨운 가요곡이 아니라서 뒤로 밀리는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드디어 우리가 선정한 곡 이름을 MC가 불러 대더니.... 한마디 걸친다. '그렇게 희안한 노래는 선곡하지 말라고 했는데, 요상한 영어 곡목이 올라 왔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꼭 더 들여다 보아야 겠다고 한다. 우리 테이블에서 4명이 같이 일어나 Podium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창이 아님을 알아차린 MC가 '그래서 그랬군요' 라고 자기의 오판(?)을 이해해 달라는 눈짖을 하는것 같다. 그들도 알고 있는, 누구나 다 부를수 있는 쉬운 노래였지만, 잘 모르면 내가 리드할테니 그대로 나만 따르라고 다시한번 당부하고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Edelweiss Edelweiss Every morning you greet me..... 노래의 음이 뭔가 우수에 젖고 애잔한 기분을 주는 곡으로 느끼고 있는데, 좌중에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음에 맞추어 양손을 들어 좌우로 움직이면서 상체를 흔드는 모습들이 일사불란하다. 무대 위에서 보는 그들의 움직임이 보기도에도 좋았지만, 뭔가 가슴에 와 닿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부르는 가락에 그들은 이렇게 양손을 흔들면서 동참하고 있고, 노래 부르는 우리는 그모습에 가슴이 찡해지고..... MC가 느낀 감정 그대로 멘트를 또 해 주었다. '다나까'는 언제 배웠는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이번에는 독창으로 하면서, 노래말은 일본말로 했다. 조용필의 노래가 그렇게 일본에서도 인기였노라고 자리에 되돌아와 앉자 마자 설명을 해준다. 같이 동료가 돼여 노래도 부르고 호흡을 같이 함으로, 그들에게 이방인의 기분을 덜어 줄수 있었다는게 오늘 파티에 참석한 명분이 될수 있어 좋았다. 노래도 하고, 어느대원의 섹소폰 연주도 좋았고..... 춤도 추는 모습도 좋았다. 우리 부부는 춤을 한발짝도 할수 없어 그것이 항상 연말연시의 파티 참석때 나를 아쉽게 한다. 어느새 새벽 12시30분이 됐다. 식당이 문을 닫아야 할시간이란다. 더 이상소리를 지르는 것은 눈총받는것 외에는 아무득이 없음을 알기에 모두가 자리를 뜬다.

파티에서의 사진 찍기는, 처음부터 접었기에 디카를 지참하지도않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대원 두분께서 그날 저녁에 이매일로 파티하는 동안에 디카로 찍었던 여러 사진들을 보내주어 그사진을 감사하게 블로그에 올리는 보난자를 얻었다. 한분은 잘 알고 있는 분이었지만 다른 한대원은 얼굴을 보기 전에는 이름만으로는 어느분인지 구분이 쉽게 되지 않아, 일단은 감사의 답신을 보냈는데, 다음 산행때 만나면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야 겠다.

다음 산행때 훗얘기들이 있겠지? 감사.

'케네디언 노벨상 수상 - 정당치 않다' 이의제기


오늘자 Toronto Star를 읽으면서, 노벨상수상에도 납득이 안가는 이해관계가 작용하는구나 하고 그내면을 보는것 같았다.
혹자는 같은 연구실에서 근무한 동료로서, 시기하는것 아니겠는가?라고 또는 남이 연구개발한 내용을 슬쩍 모르게 자기가 한것처럼
자료를 만들어 노벨상 위원회에 올려서. 수상하는 사기를 친것일까? 아무튼 나같은 한 평범한 시민으로서는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권위있고, 신뢰를 주고 있는 그 노벨상 수상에 대한 잡음이 가끔씩 발생하는것을 보기도 했고, 그때마다 그수상자들의
살아온 경로를 다시 보곤 했었는데.....
여기에 그 신문기사 전문을 옮겨 본다.

헬리팩스, 캐나다 -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캐나다의 물리학자와 전에 같이 연구 했었던 한 동료과학자가, 스웨덴 왕립산하 과학 아카데미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발표 했읍니다.
이달초에 왕립 아카데미는 사진술에 혁명을 일으킨 '영상센서'를, 노바스코시아의 Willard Boyle과 미국인 George Smith씨가 발명한 공로로 인정된다고 발표 했었다. 그러나 뉴저지에 소재한 Bell Labs에서 같이 연구활동했던 2명의 연구원(Eugene Gordon, Mike Tompsett)은 그발표는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 했읍니다.
"그장치를 직접 그들에게 들이댄다면 그영상장비에 대해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될것이다" 라고 79세의 Gordon씨가 월요일 발표한 것이다. 26년간 Bell Labs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Gordon씨는 이번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한 그 특허는 영상장치(Imaging device)에 대한 언급이 전연 없을뿐 아니라, 왕립아카데미는 1969년에 발명한 CCD ( Charge-Coupled Device)가 '빛의 감도를 필름에 옮기는 대신 전자감지로 잡을수 있게하는' 신발명품이었다고 발표했다 라고 말했읍니다.
CCD기능은 빛(light)감도를 Pixels 즉 아주 짧은 한순간을 분리하거나 디지털화된 영상의 숫자들로 바꾸어 주는 역활을 한다.
오늘날에도 디지털 카메라, 켐코더, 고성능 망원경등에 이 원리가 사용된다.
아주 먼곳에 있는 우주의 신비를 탐사하는 장비인 Hubble Space 망원경과 화성탐사도 이 CCD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Gordon씨는, Boyle과 Smith씨는 이들 과학적 발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노벨상 수상자들은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Smith씨와 Boyle씨의 특허는, CCD전환장치( Shift register)로 명명됐을뿐, 영상에 대한 기술적 언급은 전연 없는 것이다 라고 Gordon씨는 주장한다. "왕립아카데미는 분명히 실수를 한것이다. 수상이유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공로는 '영상장비 발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라고 그의 이름으로 많은 특허와 수상을 한바 있는 뉴욕출신의 물리학자 Gordon씨는, 이번 노벨상은 같이 연구했었던, Bell Labs의 동료 과학자 Mike Tompsett씨에게 수여 됐어야 옳다고 주장 했읍니다. 월간지 Spectrum에 기고한 내용에 의하면 Boyle씨와 Smith씨는, CCDs는 영상처리에 사용되는 확실한 장치라고 주장 하면서 그들이 Tompsett씨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Tompsett씨는 Bell 연구소에서 처음 제작한 2개의 CCD카메라를 만드는데, 책임을 맡고 참여한 연구원들중의 하나이며 그장비를 발명특허 하는데 그이 이름이 등재 되여 있다. "그가 그 장비를 설계하고, 사용법을 연구하여 제작한 사람이며 실제로 시범을 보이기도 했었다" 라고 Gordon씨는 주장합니다.
의료장비회사 Germgard Lighting사의 CEO인 Gordon씨는 노벨상 위원회에 이 잘못을 지적했으나, 수용되지 않았었다. Boyle씨는 당시에 Gordon씨의 상사 였었다. Boyle씨는 이문제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고 있다고 한다. "노벨상 위원회가 정당한 결정을 내린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나는 아직도 그날에 George와 나는 CCD의 콘셉을 개발했던 기억이 생생하며, 노벨상 수상은 당연한 것이다" 라고 현재 Halifax에 거주하고 있는,85세의 Boyle 씨는 주장 했읍니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반박할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이지 않다" 라고 Smith씨는 Halifax Chronicle Herald지에서 밝히고 있다.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현재 Holidays로 휴무중이라서, 이주장들을 확인하기위한 접촉이 안되고 있다.
이건에 대해서, Tompsett 씨는 Boyle과 Smith씨가 주장하는 그들의 원래 concept에 나는 동의 하지만 그들의 기술개발은 다른 방향을 향했었다고 주장 했읍니다.



Canadian's Nobel prize challenged
Former colleagues of physicist who won for image sensor say mistake was made
Michael MacDonald
The Canadian Press
Published On Tue Dec 22 2009

HALIFAX–Former colleagues of a Canadian physicist who was recently awarded the Nobel Prize say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has made a big mistake.

Earlier this month, the academy cited Nova Scotia's Willard Boyle and American George Smith for inventing an image sensor that revolutionized photography. But two of their former co-workers at Bell Labs in New Jersey – Eugene Gordon and Mike Tompsett – say the citation is wrong.

"They wouldn't know an imaging device if it stared them in the face," Gordon, 79, said Monday.

Gordon, who worked at Bell Labs for 26 years, said the patent used to justify the award makes no mention of imaging devices, even though the academy said the invention of the charge-coupled device, or CCD, in 1969 led to the birth of digital photography "as light could now be captured electronically instead of on film."

The CCD transforms light into a large number of digitized image points, or pixels, in a split second. Today, the device is still used in digital cameras, camcorders and high-powered telescopes. The stunning deep-space images from the Hubble Space Telescope and the Mars Rovers also came from CCDs.

But Gordon said Boyle and Smith had little to do with the scientific breakthrough, a claim the Nobel Prize winners flatly dismiss.

Smith and Boyle's patent is for something called CCD shift register, which makes no mention of imaging, Gordon said.

"I think they made a mistake," Gordon said of the academy. "That citation was totally wrong. ... They had nothing to do with the invention of imaging devices." Gordon, a physicist from New York with a long list of patents and awards to his name, said the academy should have given the award to another colleague, Mike Tompsett, also of Bell Labs.

Both Boyle and Smith have said it was obvious to them that CCDs could be used for imaging, but they handed that task to Tompsett, according to a recent article in Spectrum magazine, a monthly publication produced by the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Tompsett is the one responsible for designing and building the first two CCD cameras at Bell Labs, and his name is on the patent for those devices.

"He invented how to do it," said Gordon. "He designed the devices. He built them. He demonstrated on them."

Gordon, CEO of the medical device firm Germgard Lighting, said he wrote to the Nobel Prize committee to complain about the oversight, but it did nothing.

Boyle was Gordon's boss and the head of their laboratory at the time.

As for Boyle, he said he wants to stay out of the controversy.

"I'm totally confident that the Nobel committee made the right decision," said Boyle, 85, who now lives in Halifax.

"I can clearly remember the day that George (Smith) and I developed the concept for the CCD. It's pretty firm in my mind."

Smith said the allegations don't stand up to scrutiny.

"I have documentation that disproves most of what they are saying and the rest of what they are saying is not at all logical," Smith told the Halifax Chronicle Herald.

The Swedish academy, closed for the holidays, couldn't be reached for comment.

For his part, Tompsett said that Boyle and Smith deserve credit for their original concept, but he insisted they were headed in the wrong direction with the technology.

Saturday, December 12, 2009

Kelso Conservation Trail Walk.



























하늘을 쳐다보면, 마치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 한창때인 추수의 계절 가을을 연상케 할 정도로 파랗기만 하다. 바람도 한점없이 고요함이. 어제까지 세차게 불어대던 전형적인 눈보라를 겸한 겨울의 모습을 감추어준, 그래서 Trail Walk 하기에 그만인 그런 날씨임을 창넘어 붉게 떠 오르는 아침 햇살에서 느낄수 있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창넘어로 잔잔하게 출렁이는 온타리오 호숫가위에는, 이아침을 기다렸다는듯이, Waterfowl들이 춤을 추듯이 옹기종기 모여 미풍에 출렁이는 물결위에서 춤을 추어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평화롭게 보였다.
TV의 일기예보는 하루종일 맑은 날씨에 청명하고 바람도 없는 좋은 토요일이 될것이라고 한다. 그 또한 나를 반기는 예보다.

Portable gas burner을 챙기고, 끓여먹을 국물을 챙기고, 그리고 보온병에 점심밥을 넣고.... 다른 산행때와는 좀 다르게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보통때는 없던 행사(?)를 산행 끝난후 할 계획이기 때문에, 그준비의 일부분을 아내가 준비해 가기 때문이다.
오늘의 산행 출발지인 Kelso Conservation Park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토론토외곽에는 눈이 많이 왔음을 알았다. 내가 살고 있는 호숫가의 콘도에는 눈이 휘날리긴 했어도 쌓이지는 않았었기에, Kelso Area 파킹장에 도착해서는 Snowplow 한 흔적을 볼수 있었다.

처음 산행에 합류한 대원도 눈에 띈다. 차가운 아침 공기는 귀를 빨갛게 하기도 하고, 시려워 귀마개를 하거나 아니면 손으로 감싸게 하기도 한다. 넓은 파킹장에는 우리일행차 외에 두서너대밖에 주차된게 없다. 여름과는 영 딴판이다. 항상 해오던데로 리더 되시는분의, 오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갈수 있게 해주십사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인사말로 산행을 시작했다. 오른쪽으로는 CP 철도가 지나가고, 그윗쪽으로는 아직은 개장하지 않은듯 싶은 스키장내의 여러개의 슬로프에 하얀눈이 아침 햇볕에 더 훤하게 반사되여 보인다. 시즌들어 처음 밟아보는 눈이다.
스키슬로프옆을 지나가는 트레일 표시를 따라 얕게 얼어붙은 얼음바닥위를 걸으면서, 조심스럽다. 아침에 집을 떠날때 두꺼운 Mitten을 준비 했었는데, 참 잘한것 같다. 보통때 끼었던 얇은 장갑을 끼었더라면 손끝이 시려웠을텐데..... 그런 느낌은 전연 없다.
발걸음이 얼어붙은 얼음위를 걸을때 가끔씩 미끄러지기도 했으나, 눈이 쌓인 언덕을 오를때는 그런 미끄러짐은 없어, 발걸음을 옮기는데 덜 신경이 쓰였으나, 대신 언덕을 향해 옮기는 발걸음에 숨결이 조금씩 가빠지는것을 느낀다.
겨울이 아닌때 이곳을 걸을때는 그냥 지나쳤었던,두개의 Lime Kiln( 석회석 용광로) 탑이 오늘은 더 웅장하게 보이는것 같다. 지금은 역사적(?)유물로 남아 지나는 산책객들에게 지난날의 그의 역활을 무언의 자세로 알려 주고 있지만, 그옛날에는 무척 그 역활을 잘 해냈을것 같이 느껴진다. 두개씩이나 있는것을 봐서 그렇게 느껴진다. 그가마솥에서, 옹기 그릇을 굽어내듯, 석탄이나 장작을 떼어 lime을 용해시켜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산업발전에 큰 역활을 했었을 것이다. 언덕을 헉헉 거리면서 정상에 올라서 쳐다본 건너편 Escarpment로 형성된 깍아지른듯한 절벽은 시원하면서도 추워 보인다. 그옆으로는 스키슬로프에 인공눈을 만들어 뿌리는 여러개의 노즐이 힘차게 안개처럼 물을 뿜어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아래로는 Hwy 401위를 달리는 차량행렬이 끝이없고, 아까 지나쳤던 철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철로를 안전하게 건너도록 만들어 놓은 구름 다리위를 걷는 그순간에 마침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있어 사진도 한장 찍었던 생각이 난다. 그순간 고국에서 아직 공무원 초년병 신분으로 철도에서 근무했던 생각도 났었다. 만약에 지금 이곳에 있지 않고 그냥 그곳에 있었다면.....고국 하늘쪽을 응시 해 보기도 했었다. 혹시나 눈길이기에 다른 대원들에게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하고 걱정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가 조심 스럽게, 지혜롭게 잘 걷는다. 눈이 내린이후 이구간을 우리대원들이 처음 걷는것 같다. 트레일을 따라 아무런 흔적이 없고, 오직 작은 짐승의 발자국 몇개가 우리가 가는길을 따라 가끔씩 흔적을 남겼을 뿐이다. 우리가 Pioneer임이 자랑(?)스럽다.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숲을 지날때는 바람이 나무기둥과 가지에 부딪치는 소리가 윙윙 거리곤 했으나, 오늘은 너무나 조용 했다. 바람을 느끼지 못하기에 손끝이나 귀끝이 덜 추위를 느낀다. 감사할 뿐이다. 깨끗한 눈위를 밟는 발자국 소리가 바스락 거려, 마치 낙엽이 깊이쌓인 가을 산행때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신발 밑바닥 그립사이에 끼었던 흙찌꺼기도 깨끗히 눈에 씻겨 바닥이 깨끗하다. 눈(Snow)이 청소를 해주는 셈이다.

눈쌓인 주위 경관은 Escarpment 절벽과 어울러져, 대원들 거의가 다 가족끼리 또는 같은 또래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카메가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보기 좋다. 오늘 처음 나오신 대원도, 잘 걸으면서 쉽게 동화되여 보기도 좋다. 오늘 한번 참석하기위해 지난 일년이상을 준비(?)하셨다고 웃음이다. 모든 세상사가 처음 첫걸음이 어렵다는것을 그대원의 우스개 소리에서도 깊이 느낄수 있었다.

오늘 점심은 특식이다. 옛날 최전방에서 고생하면서 군대생활할때, 설날이나 추석때면 특식이라 해서 소고기가 나오고, 돼지고기가 공급되여 배고픔을 덜어주던 생각이 나게 하는 그런 의미 있는 특식이었다. 대원중 한분이 몇주전부터 특식을 준비 해 오겠다고 별렀었는데, 오늘이바로, 산행을 마치고 점심으로 그특식을 먹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대원은 그특식을 먹을려고 오늘을 고대 하면서 기다렸었노라고 한마디 걸친다. 그분은 부대찌개를 준비 했다고 한다. 옆에 있는 Picnic Table로 옮겨 짐을 풀고, Burner들을 피우고, 담배담았던 박스를 급조하여 Burner의 바람막이를 하고.... 준비해간 넓은 냄비에 재료를 넣고, Noona가 준비해간 멸치국물을 같이 붓고.... 또 다른 burner에서는 라면을 끓이고 또 다른 Burner에서는 한 남자 대원이 돼지고기로스트를 열심히 굽고....모두가 분주히(?) 움직인다. 반찬도 푸짐하다. 밥도 푸짐하다. 모든게 푸짐하다. 고기굽는 남자대원 한분과 재료를 준비한 남자대원과 그리고 여자대원들의 수고가 너무나 고맙다. 여자대원들의 수고가 아니였으면, 초라한 특식이 되고 말았을텐데...... 그래서 남녀가 짝을 이루어 살게 마련인가 보다.
독수리도, 어느 대원의 헌신적인 수고로 맛보게 됐다. 참으로 오랫만에 맛을 보는 그짜릿함이 몸이 움츠러들게 하려는 추위를 물리쳐 주는것 같다. 다른때의 산행에서는 중간에 쉬면서 점심을 잠깐 하곤 했으나, 오늘은 이렇게 맛있고, 짜릿한 특식을 먹기위해 좀 늦었지만, 산행을 완전히 마치고,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다. 14명 모두가 합심하여 오늘의 산행과 특식을 맛있게 즐길수 있도록 하는데 각자의 맡은일을, 그동안 산행에서 터득한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에 옮겨보인 대원들이 대견하다. 이것이 바로 우정이고 삶의 맛을 Share하는것 아닐까?
모두가 포만감을 느끼는 표정이다. Tim Horton's에 들려서 마시는 커피향은 항상 구수하면서도, 오늘 산행일정의 끝날 시간이 임박해 있음을 대변 해 주는것을 느낀다. 다음 산행이 기대 된다. 감사.
참고: 오늘 Trail구간은 Bruce Trail Map No.11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