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19, 2007

리스본,포투갈의 옛영화와 현재를 보다.





포투갈의 수도 리스본강변에 1960년도에 세워진 동상인데,항해사요 흥행가였던 Prince Henry의 새대륙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동상입니다. 탐험가로서의 정신이 돋보입니다. 강변에서 안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16세기에 건축된Jeronimos Monastery인데,오늘날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 유산으로 남아있어, 옛날 포두갈의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읍니다. 

 그앞에서 같이 여행한 친지들과 한컷한것입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세계지도가 보이고 그에 따른 여러 형상들이 진열되여 있는데, 당시의 포투갈인들은 생각하기를 지구의 절반은 포투갈이, 나머지 절반은 스페인이 점령해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자부심이 대단 했다고 합니다. 

이다리는 그길이가 무척 길지만, 모양도 아름다웠읍니다. 리스본에서 강하구를 거쳐 내륙지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다리입니다. 건설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옛날 영화에 비해볼때 오늘날의 포투갈인들의 생활상은 유럽연합에서 바닥을 헤매는 아주 발달안된 나라로 남아 있었읍니다. 젊은이들은, 마치 고국에서 흔히 보았던 기억처럼, 시골 청년들이 모두 대 도시로 빠져 나가, 유럽의 잘사는 다른 나라로 달아나(?)버려, 보이는 사람들은 부녀자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안내를 맡았던 Armando는 이를 심각하게 설명 했었읍니다.

산위의 요새이자 주거도시






적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위해 산위에 군사요지겸 도시를 건설하여 생활했다고 합니다. 도시안의 성당에 Chapel 에는 한개의 Mummy를 포함하여 약 5천명의 뼈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산상도시를 건설할때 이미 그도시 계획선안에 있던 공동묘지를 옮기면서,모아진 뼈를 Chapel안에 벽처럼 쌓아 모시면서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고 했읍니다. 신통하게도 산 꼭대기의 도시 한복판에는 당시에 주민들이 사용했던 우물이 그대로 보존되고, 눈으로 들여다본 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 있었읍니다.
포투갈의 알그라브부주에 남쪽에 있는 옛날도시 입니다.

영원할것 같았던 로마제국의 흔적들




로마제국의 흔적들입니다. 이곳 남쪽의 알그라브 지역에는 아랍권의 문화가 아직도 산재해 있지만, 옛 로마제국의 점령지였던 이곳에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뒤에 보이는 큰 기둥들은 로마제국 문화의 상징으로, 로마제국이 번성했었던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이렇게 점령하고 지배하기위해 그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오늘은 사는 우리가 그래도 조금은 위안을 받을수 있는 모티브가 되는것 같읍니다.

적을 막기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도로





옛날 유럽 도시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도시의 주거지안의 집들은 독립가옥이 아니고 시장바닥의 집들처럼 같이 붙어 있었음이 특히 했읍니다. 도로는 바닥이 조각돌로 깔아 놓았지만, 폭은 굉장히 좁습니다. 바로 적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도시형태가 형성됬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선뜻 이해가 안가는 것도 무리는 아닌것 같읍니다.

성경에 나오는 빨래터와 인근 주민들,알그라브,포투갈






포투갈의 남부 지방인 알그라브는 한때 아랍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지니고 있었읍니다. 그흔적들 즉 아랍권 문화의 자취가 군데 군데 남아 있었는데, 여기보이는 빨래터에서는, 이곳 주민중 한분이 우물가에서 성경에서 보고 배웠던 그대로 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것입니다. 우물물은, 고국에서 어렸을적에 동네 한가운데 있던 우물물이 넘쳐 흘러 바로 아래의 미나리깡으로 갔던 생각을 되뇌이게 했으며 동네 고삿길을 걸어 다닐때는 많은 동네 삽살개들이 짖어 대고 기웃거리는 모습 또한 어릴때의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 했었읍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동네 여인들과 같이 어울려, 오랫동안 기억을 간직하고파 한컷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동네 입구에 우리 일행이 묶었던 호텔이 있었읍니다. 이곳에서는 주산물이 Cork (와인병마개를 만드는 원료)라고 합니다.

성당안에 진열되어 관람시키고 있는 유물들

톨리도에 있는 한 성당안의 보물 전시실에 보관되여 있는 금빛 찬란한 왕관 및 다른 보물들의 모습입니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이렇게 호화스러운 영광뒤에서는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중들의 희생이 뒤따랐을까?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대부분의 이렇게 찬란한 유물들은 스페인제국이 지구의 절반(?)을 식민지화 해서 힘을 과시할때, 착취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세대들은 섬세함에 감탄을 연발 하면서 관람하는 영광(?)을 소유하고 있음에 감사를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것인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숙제인것 같다.

수없이 많은 성당안의 종과 멀리 보이는 투우장

성당의 종탑에는 육중한 종들이 매달려 있었읍니다. 지금도 시간에 맞춰 타종한다고 들었읍니다. 종탑에서 내려다본 멀리 보이는 경기장은 스페인들이 가장 인기있게 좋아하는 야외 경기장인데, 이곳에서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투우사와 투우사이의 싸움이 열린다고 합니다. 저희가 갔을때는 시간이 늦어 직접 경기를 볼수 없은 아쉬움만 있었읍니다. 꼭 한번 직접 눈으로 경기를 보고 그들과 어울려 환호(?)도 하고 싶었는데....

똘리도 성당안의 콜럼버스관과 회의실



신기하게도 성당안에는 콜럼버스의 관(Coffin)을 병사 4명이 어깨에 메고 있는 동상이 있었읍니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시신이 지금도 그관속에 있다고 설명했읍니다.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믿기로 했읍니다. 다른쪽에는 깊숙한곳에 회의실이 있었읍니다. 옛날에 실세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던곳이라 했읍니다. 이곳역시 사진 촬영이 금지되여,후랏쉬가없이 하다보니 dark 면이 많습니다. 간혹 고국에서 나들이온 분들을 마주치곤 했읍니다.

동키호테 동상을 중심으로



마드리드 시내한 복판에는 커다란 미술품 박물관이 있고, 그아래로는 동키호테동상이 있었읍니다.
우리 일행이 그의 동상앞에서 한컷 했읍니다. 만약에 우리 일행중 한명이라도 그와 같은 허풍을 떨거나 행동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읍니다. 박물관안에는 엄청난 양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여 있었고,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그림앞에서 화판을 차려놓고, 열심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도 아름다웠고, 그렇게 허가해준 박물관측의 설명도 재미 있었읍니다. 풍부한 소재들앞에서 미술학도들의 상상력을 도와주기 위한 배려라고 했읍니다.

Toledo에 있는 성당의 화려한 파이프 오르간



Toledo 유적지를 방문했읍니다. 성당으로 집약되는 유적지였는데,성당안의 모든 장식물은 옛날 스페인의 전성시대에 세계각곳의 점령지에서 약탈해온 보물들이라 했읍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여 Curator들의 바쁜틈을 타 파이프 오르간을 촬영했읍니다.
그외 셀수도 없는 보물들...... 이러한 유적들을 보기위해 세계가국에서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쏟아져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에 대한 스페인들의 태도는 거칠기 이를데 없었읍니다. 친절과는 상관없이, 유적지를 보기위해 관광객들은 스페인으로 오기 마련이라는 대단히 오만한 그런 자세인것을 우리를 안내했던 Armando 통해서 알았읍니다.

스페인 국왕이 살고 있는 궁전과 뒷뜰



스페인의 국왕이 살고 있는 궁전입니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영국의 버킹함 궁전이상으로 보였고, 관리도 잘하고 있었읍니다.
우리가 방문한날은 내부적으로 의전 행사가 있어서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을 금지 시킨 날이었읍니다.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대신에 옆에 잘 조성되여 있는 정원은 개방되여 그것을 보는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읍니다. 수를 셀수도 없이 많은 관상수와 잘 다듬어진 화단은 참으로 아름다웠읍니다.

Sunday, November 18, 2007

프랑코 총통을 위한 성당및 산상 마리아상






스페인 내전을 오랜기간에 걸쳐 평정한 프랭코 총통은 마드리드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진 도시의 산충턱에,사후에 자기 묘로 사용하기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지하 성당을 건축했읍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규모도 크지않고,평범한 지하성당위의 산꼭대기에는 큰 십자가와 마리아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읍니다. 재미있는것은, 그가 생존시 그를 가장 정치적으로 괴롭혔던 정적의 묘도 대각선으로 나란히 있다는것이었읍니다. 그를 괴롭협던 정적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프랭코 총통이 통곡을 하면서 서러워 했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를 통해서 정치적 구상을 하게하는 훌륭한 동반자 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이 명령으로 지하 성당에 먼저 묻히고, 총통이 그다음으로 그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지하성당의 돔에 새겨진 성화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고, 통풍을 위해 돔과 이를 감싸고 있는 지표사이에는 약 2미터의 간격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관광 코스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우리가 방문했을때, 그곳을 찾는 한국인들은 없었읍니다.

Saturday, November 17, 2007

재향군인회 동부지회 망년파티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가는 문턱에 서 있음을 오늘밤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재미있게 치러진 망년파티속에서 깊이 느꼈읍니다. 향군창설 55주년기념파티겸, 이곳 캐나다 동부지회 창설 20주년이라는 긴시간들이 마치 어제 시작됬던것 처럼 느껴지는 감회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파티였읍니다. 세월의 흐름속에 많이 세상을 뜨시고 지금은 몇명되지않는 6/25 참전 선배용사들과, 또 캐나다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코큰 옛전우들, 비록 몸은 늙었지만, 그위용은 지금도 늠름하게 이밤에 모여 지나간 전투경험담과, 이민자로서의 지내온 삶, 그리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군인으로서의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즐기면서 그렇게 또 한해를 기억속으로 묻는,즐거우면서도 뭔가 희미하게 시야에서 멀어져, 그래서 잊혀져 버리는 짙은 향수에 눈을 지그시 감고, 폭우처럼 쏟아지는 탄환을 뚫고 살아서 오늘 저녁까지 삶을 이어온 전우들의 늙은육신의 모습에서,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시간에 긍지를 깊이 느끼고 있음이 환하게 빛나는것 같았읍니다.
전우여....오래 오래 살아서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에 다시 한번, 가고 싶어도 못갔던 반토막으로 짤린 북한에 가서 환희의 통일 파티 참석하자. 그날이 오기까지 모두가 건강하시기를......

한국인 3세와 공산당원들과 함께,큐바




시내를 거닐다가 우리 앞으로 휠췌어를 타고 나타난 여인과 마주쳤읍니다. 옆에서 도와 주는 통역을 통해서 그녀가 한국인 이민 3세라는것을 알았읍니다. 처음에는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의 후손이라는점 하나로 이유없이 용돈도 주곤 했는데, 그녀가 만나는 동양인, 특히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에게 접근해서 또 같은 방법으로 돈을 구걸하는것을 보고, 동정심이 싹 가시고 말았읍니다. 이런식으로 구걸해서 벌어가는 그녀의 일당은 보통 큐바인들이 한달 이상을 열심히 일해서 버는양보다 많다고 들었읍니다. Wheel Chair타는것 자체가 거짖이 아닐까?하는 의심마져 들었읍니다. 우연히 공산당 사무실에 들렀읍니다.재미삼아 line-up 이 있기에 줄을 서서 기다려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날이 배급날이라 그랬던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줄에 섰다가 사무실안에 까지 들어갔던것이지요. 벽에는 큰 카스트로 사진이 걸려 있었읍니다. 처음에 우리를 보고 그녀들은 경계의 끈을 느추지 않았읍니다. 그녀들중 하나가 영어를 하기에 우리의 신분을 알아보고 차츰 마음의 문을 열더니, 자진해서 사진까지 찍자고 먼저 제의까지 해 왔읍니다. 인간적인 대화에서 그녀들의 본성이 착함을 느낄수 있었읍니다.
이들의 착한 본성이 여과없이 그대로 펼쳐지는 삶이 그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읍니다. 문밖의 거리는 혁명전의 그대로 였고, 변화된것이 보인다면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과 기타 시설물들이 낡아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다는 점이었읍니다.

마차가 교통수단,공산정권의 현실,큐바




빈길거리를 지키고 있던 한 마부와 deal을 해서 우리 일행 4명이 그의 마차를 타고 시내 관광(?)합니다. 말은 잘 먹지를 못해서,살결이 몹시도 거칠어 보였읍니다. 마부는 50대로 보였는데, 영어는 한마디도 통하지 못했읍니다. 마차도 겨우 굴러가는 정도로 낡았읍니다. 그래도 큐바 공산 혁명이후 50여년 동안 세뇌교육의 효과로 카스트로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는 마부가 안스럽기만 했읍니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시설물과 사람들의 생활상이 고국의 1950대 말 정도로 못살고 더러웠는데도 말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집도 보여 주어 보았읍니다. 다 쓰러져 가는 토막사 같은 인상이었읍니다. 착한 마부는 통하지 않는 언어로 손짖 발짖하면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설명할려고 애쓰는 모습이 마음을 움직여 당초 계약했던 금액보다 3배 정도를 주었더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읍니다. 그가 정말로 카스트로 공산 정권이 좋아서 찬양일색이었겠읍니까? 공포정치와 그들의 감시로 부터 살아남기위한 제스처인것을 금방 느낄수 있었읍니다.
그래도 관광객 상대로 장사라도 할 수 있는 이들의 삶이 북의 동포들 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되였읍니다.

골프일행과,호텔Chef,그리고 동네 장터.




같이 휴가겸 골프를 즐긴 일행과 멋진 폼을 잡아 보았읍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우리 일행이 묵었던 호텔이고요. 호텔식당에서 우연히 주방장을 대하게 되였는데, 우리가 한국사람임을 알고는, 더 친밀감을 나타내면서 특별 메뉴도 만들어 주기도 했었읍니다. 그가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일류 호텔에서 근무했었던 경험도 들려 주었읍니다. 고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많이 얘기해 주어 듣기가 좋았었지요.
Resort를 빠져나와 조그만 읍에 나들이 나갔었읍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주민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와 하루를 즐기는 장면이 보기에 좋았는데, 이곳은 집에서 기른 비둘기를 식용으로 사고 파는 시장 한구석입니다. 종류도 다양했었읍니다. 주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기,이루 형용할수 없이 어렵게 살고 있었으나, 그래도 카스트로를 태양처럼 얘기하면서, 감사함을 표시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북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읍니다.
세뇌교육의 덕택이겠지요. 언제나 이사람들이 자유롭게 삶을 구가 할려고 열심히 노력하게 될까요?

Cuba,프로샵의 스탭과,호텔 써비스



골프여행 겸 휴가를 끝내고 돌아올 즈음에는 서로 친구가 되여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로 된 프로샵 일행들과 함께 했읍니다. 처음에는,공산당 사상에 젖어 있어, 써비스라는것을 느껴 볼수가 없어, 서로 불편하게
티격태격한 기억도 있읍니다. 그들의 골퍼대하는 태도는 주객전도 라는 말이 걸맞게 느낄정도였었읍니다. 그러나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여러면에서 도와주고 달랬더니, 그들도 마음을 열고, 너무나 써비스가 다른 골퍼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특혜(?)를 받았읍니다.
골프를 끝내고 바로 걸어서 가는 거리에 호텔에서 묵었는데, 룸 써비스가 참으로 좋았었읍니다.
목욕타월을 이용해서 침대위에 새를 만들어 진열해 놓은 그정성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읍니다.
작은 정성으로 여유있게 가지고간 옷들을 그들에게,휴가를 마치고 떠나올때,건네 주었더니 그렇게 좋아하고, 감사함을 표시했었읍니다. 이런 열린 마음을 주고 받는게 소박한 진짜 삶의 일부가 아닐까?

초겨울의 산행


토론토 캐나다의 긴겨울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길고 추운 겨울날의 기억을 머리속에 담고 살아 갑니다.
춥고 따분한 겨울을 지혜롭고,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뜻을 같이하면서 Fellowship을 나누는 친지들끼리 이렇게 눈위를 걷는 산행을 합니다. 이렇게 산행을 같이 해온 시간들이 퍽이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다가오는 겨울에도 이렇게 산행을 계속 할것입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튼튼하게 이산행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감각을 항상 느낍니다.

고국에서 나들이한 자매들과 함께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지내던 식구들을, 고국도 아닌 이곳 새개척지에서 상봉한다는것은, 그의미가 말로 형용할수가 없을정도로 깊고 다양합니다. lake Ontario 의 동쪽 끝자락에 접해있는 Peninsula에는 Presquile Provincial Park 이 아름답게 형성되여 있고, 공원의 맨끝자락 호수가에는, 온타리오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가 150년 넘게 뱃길을 밝혀주고 있는데, 그앞에서 순간을 포착했읍니다. 엇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흘러가, 이제는 추억속에서만 그려 봅니다.
다시 이렇게 만나서 삶의 회후을 풀게 될지,아마도 장담 못하는속세에서 오늘해도 저물어 갑니다.

Wednesday, November 14, 2007

산천은 의구한데...토론토의 심장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늦가을 온타리오 호수에 반도처럼 조성되여 있는 Humbervalley Park West 에서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토론토의 심장부 입니다 CN Tower를 비롯하여 토론토를 대표하는 마천루들이 보기좋게 조화를 이루어, 완성을 의미하는것 처럼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평화롭게 보입니다. 그곳을 쉬지않고 바라보고 있는 이 여인은 무엇을 머리속에 그리며 바라보고 있을까? 아마도 화살처럼 지나온 지난날들의 추억을 그리고 있겠지요.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옛날 어느 어른이 고향을 찾아가 보고, 산천의 모습은 그대로 인데, 사람은 보이지 않음을,세월의 덧없음을 가슴아파하면서 읆었다는 시구절이 머리에 떠 오릅니다. 보이는 것은 그대로 인데.....벌써 머리에는 하얀 눈이 쓸어 내릴수도 없이 내렸고, 또 계속 내리고 있음에 무한대의 자연속에 한점도 안되는 우리네 삶의 그끝이 어디일까?를 깊이 느끼게 하는 늦가을의 무드속에 묻혀 보이는 외로움,그리고 뭔가 이루었을것 같은데 그렇게 느끼지못하는 허전함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