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9, 2010

조국 대한민국에 치매성 환자가 이렇게 많다니...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 나의 일...


어제 중학생인 '현호군과 서현양'이 치매성환자가 되면 느낄수 있는 체험을 하면서, 무척 많이 놀랐다고 한다.
갑자기 멀쩡하던 할아버지 할머님들이 집을 못찾아 헤맨다거나, 욕조와 층계를 혼동하여 계단에서 수영하는것 처럼 이상한 행동을 한다거나, 그외 정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나는 광경이 보이면 이는 치매 증상이 있는 보고, 관련 당국에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고 정부의 관련 기관은 홍보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체험하는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내가 죽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라고 처음 겪었던 경험담을 털어 놓는다.
치매성 환자들이 발목에 굵직한 고리와 잘 보이지 않는 안경을 끼고, 마치 어린아이에게 대소변을 가리기위한 훈련을 시키는 것처럼 큰 고통이었고, 늙는다는것은 망가지기쉽고, 기억상실등의 고통이 수반하는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말한다. 치매성 환자는 인자한 웃음을 보내지만, 매순간 기억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한다.
이상은 며칠전 뉴욕타임스의 건강을 다루는 지면에 나왔던 '고국의 환자들 돌보기에 학생들도 참여' 라는 기사의 첫머리 내용이다.

생활 여건이 좋아지고, 의약품의 발달로 생명이 연장되는것은 참으로 좋은 현상으로 현재도 과학자들은 계속 연구하고 있다는것을 세상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노년에 인생을 즐기려는 많은 노년층에게는 이러한 소식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도 어느새 그범주에 속해 있음을 느끼면서 새삼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은 정상이지만, 누가 내일을 장담 할수 있단 말인가? 가끔씩 금방 옆에 있던 물건들을 찾아 헤맸던 경우, 조금전 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사물이나, 잘알고 지내는 친지의 이름이 하얀 백지처럼 생각나지 않는 황당한 경우를 체험하고 있다. "왜 그럴까? 내 기억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수 있을것 같다. 늙으면서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삶의 원치 않는 일부 현상임을...... 우리 한국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특히 현재 고국에서, 치매성 환자가 집안에 있다는것을 집안의 수치로 여겨 쉽게 이웃이나 관계기관에 알리지않고 쉬쉬 하면서 집안에서 처리 할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집안 식구중에서 한사람은, 이런 환자, 대부분 나이든 부모들을 돌보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24시간 옆에서 붙어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의 풍습으로는 자식들이 부모를 섬기는 아름다운 전통인데, 치매성 부모님을 처음에는 정성으로 보살피지만, 3년이상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 시키고, 본의 아니게 불효자들로 낙인 찍힐수 있는 현상이 비일 비재 하다고 한다. 또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인력의 손실이라고 한다.

나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연장 될지는 모르지만, 아내와 함께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주위에 짐이 되지 않는, 건강한 인생을 즐기다 때가 됐을때, 순간적으로 가버렸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이러한 바램이 어찌 우리 부부에게만 해당 되겠는가? 나이든 모든 은퇴자들의 간절한 소원중, 으뜸가는 사항일것이다. 정기적인 운동, 가능하면 복잡한 일들을 뒤로 접고, 친지들과 친교를 하고, 여름이면 골프하고, 여행도 자주하고, 이웃에 도움이 될수 있는 일들에 동참하고...... 가능하면 항상 몸과 두뇌 회전이 이어지는 행동을 하는길만이 모든 노인들이 걱정하고 있는 치료 불능의 치매성 질환에서 멀어질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나는 아내를, 아내는 나를 서로 부추기면서.... 이러한 치매성 질황에서 비켜갈수 있는 삶의 한 방법으로 그동안 꾸준히 해 오고 있는 Trail Walk이 건강도 지켜 주었지만, 그러한 질병으로 부터 지금까지는 우리 부부를 멀리 격리 시켜 주고 있는 최고의 보약이라는 확증이 더 깊어진다. 감사.

지금 고국에서는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치매성환자를 국가적으로 돕고, 돌보기위한 각종 시설이 많이 창설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9%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인데, 어느 천주교 성직자분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60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5백만이 넘고, 초등학생 이하의 인구는 4백만 정도로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국가적 큰 문제라고 걱정하는 설교를 들은 기억이 새롭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고국정부는 수천명( 어린 중고등 학생들 포함)의 사람들을 훈련시켜 환자들을 돌보게 하기위한 훈련 센터( Aging-Friendly Comprehensive Experience Hall)를 운영 하고 있다. 치매에 대한 교육 강사가 Power Point 를 사용해 가면서 강의에 열중한다.

"전화가 뭘하는거지? 아 냉장고 안에 있나?" 라고 말하는 노인은 기억상실을 하고 있는 치매성 노인들로 보면 틀림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정부는 치매증상 환자 보호소( Dementia Diagnostic Centre) 수백개를 동네 군데 군데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Nursing Home은 2008년 이후 약 3배가 증설됐고, Daycare Centre, Home Care Centre등의 시설은 2008년 이후로 약 5배가 증가했으며, 현재 약 20,000개소의 이러한 시설이 운영중이고, 정부예산도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치매성 질환의 환자가 집안에 발생하면 정부관계기관에 등록시키고 보호를 받도록 홍보를 하고 있다고 한다. 10억달러 이상의 정부예산이 금년에만 투입되고 있으며, 이는 전체 국민 건강 보험금의 6.6% 증가를 의미 하는 것이라고 한다.

65세 이상의 노인층이 2000년도에는 전체 인구의 7%였으나, 2018년에는 약 14%, 2020년에는 20%로 증가 하게 된다고 한다. 노인들의 치매질환은 국가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시켜 재정면에서도 큰 압박을 가하고 있는 국민 전체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조국 대한민국이 전세계적으로 치매환자가 많은 나라중의 하나이며 금년에만 3천만건의 치매관련 사건이 보고됐으며, 2050년에는 년 1억건이 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건강 보호 차원에서 한국정부는 막대한 예산과 시설을 이미 활발히 운영하고 있지만, 미국은 금년에야 이와 비슷한 관련 기관을 만들어 설치하고 있는 중이라고, 미국은 미국데로 걱정하고 있는것 같다.

천주교 신부님의 강연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다. 고국의 부모님들은 늙으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아들 딸들에게 일찌감치 물려주고, 뒷방으로 눌러 않아, 그때부터 모든것을 잃고 자식들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데, 그순간부터 노년의 생활은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치 않아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일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가는판에, 자식들이 노년의 부모님들을 잘 거두어 줄것으로 기대하고, 가진것 모든것을 다 주어 버렸는데, 현실은 그렇게 부모님들 생각하는 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아들 딸들은 삶의 현장에서 바삐 움직이는데, 지극정성으로 모실 그런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것이다. 이것은 딸 자식이 불효 해서가 아니라 삶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이해 해야 한다고 강조 했던점이다. 이런 뒷방노인의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경제적 부를 절대로 통채로 넘겨주지 말고, 본인의 노년삶을 위해 투자하고 사용하고 즐기면서, 치매의 위험으로 부터 해방되는 현명한 삶을 살아가십시요 라고 했던 설교내용이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 드는것 같다. 지금의 사회생활보다는 단순했던 옛날에는 2대,3대가 한지붕아래 같이 살면서, 일찍부터 재산상속을 해도 무난했으나, 그방법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부합되지 못하는것 같다. 조기 재산상속후에, 자식들로 부터 받는 대접이 기대에 못미치고, 할일이 없어진 무용지물의 존재로 전락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반응이 치매성 질환으로 나타나는것이 아닐까?라고 나만의 정의를 내려 본다. Life span길어졌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닌성 싶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자식세대들은, 이기회에 부모님으로 부터 경제적 의존도나 재산상속받는것이 정석인양 일반화 되여 있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서구사회처럼, 사회적 활동 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교육을 시켜준것 만으로 만족해 하면서 자생하는 방법을 찾아보는것도 어떨까? 생각되여 진다.

오늘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읽으면서, 새삼 천주교 신부님의 말씀 내용에 공감을 더한다.
내자신이 그러한 영향권에 진입해 있다니.....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을 외면 할수 있는 길이 없는한, 순리로 경건히 받아 들여야 한다.


http://www.nytimes.com/2010/11/26/health/26alzheimers.html?emc=eta1

Sunday, November 28, 2010

첫눈 밟으면서 Silver Creek Trail Walk



















앙상하게 남아있는 큰 나무들로 빽빽한 사이로 불어대는 바람소리는 '북풍한설 몰아칠때....'라는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귓전을 울리고, 눈덮힌 오르막 내리막 Trail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발씩 뗄떼마다 행여나 미끄러지지 않을까 내몸을 지탱해 주는 양다리에 더 힘을 주면서 조심 스럽기만 하다. 첫눈이라고 하지만 폭설은 아니고, 뿌려진 눈은 아직 얼지 않은 지표면에 아직도 덮혀 있는 낙엽위에 내려 앉아 자리를 잡고 있기에, 내리막길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썩은 나뭇잎, 말라비틀어진 잡풀들, 돌짝밭을 덮고 있는 이끼들....그외 모든 눈에 보이는것들을 깨끗하게 힌색으로 덮어버린 끝없이 펼쳐지는 숲속은 보기에도 시원하다.

요즘은 아침 7시면,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이다. 집을 출발 할때는 기온만 쌀쌀 했을뿐인데, 약 40 킬로 북쪽에 위치한, 오늘 산행하는 Silver Creek에는 흰눈이 얕게 깔려 있었고, 계속해서 흩날리고 있었다. 요며칠새 하늘은 계속해서 Grey로 변해 있고, 기온마져 떨어져 마음을 스산하게 하는 토요일 새벽이었지만, 참여한 대원들의 숫자는 변동이 거의 없다. 지난주와 달라진게 있다면, 좀더 두툼하게 덧입은 복장일 뿐이다. 어떤 대원은 귀덮개(Ear mask)를 했고, 어떤 대원은 Gaiters 한게 지난주 걸을때와는 조금 다를 뿐이다.

조그만 Creek들이 많은 이구간은, 등산객들의 편의을 위해 Board bridge가 많이 설치 되여 있는데, 그위에 쌓인 반은 젖은 눈(Wet snow)을 밟으면서 Creek을 건널때는 더 조심 스럽다, 더 쉽게 미끄러질수 있기 때문이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는 항상 같지만, 오늘은 좀 차겁게 들리는것 같다. 내마음이 며칠사이에 일어난 원치않는 세상사에 어두어지고 복잡해서 일까? 간간히 들리는 대원들의 대화 내용도 내가 보고 들은것들과 거의 같은 뉴스들이다. 뒤에 두고온 조국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들은 너나 할것없이 다 똑 같다는것을, 조국의 안위를 생각할때는 군대를 다녀온 역전의 용사들이나, 그러한 경험이 없는 여성대원들이나 한결 같다는것도 새삼 이아침에, 눈덮힌 Trail을 걸으면서 느낀다. 마음 같아서는, 이번에 조국 한반도 뿐만이 아니고 전세계를 놀라게 할정도로 사고를 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쪽의 망나니를 끌고 와서, 힌색으로 깨끗하게 덮혀진, 그러면서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는 Silver Creek의 나무숲속을 같이 걸으면서, 한발짝씩 뗄때마다, 설명도 필요없이 그속에서 스스로 깨달아, 지금까지 주위를 괴롭혀온 그의 행적이 잘못 된것이었음을 깊이 느끼게 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불끈 솟는다. 지금 이순간만큼은 복잡한 세상사 다 잊고, 하얗게 눈덮힌 대지위를 걸으면서, 어떻게 하면 남아 있는 삶을 더 멋있고, 뜻있고, 평화스럽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으로, 나같은 속인도 즐거운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더 똑똑하고 현명한(?) 그 망나니는 왜 이렇게 포근히 안아 감싸는 자연속에서 한발짝 떼어보는 지혜가 없을까? 알것같다. 모든 죄악의 원인인 '욕심'때문에....바보 천치.... 세상사람들로 부터 저주와 손가락질을 수도 없이 받고 있을 그가 측은해 진다.

한여성 대원이 곡주(집에서 만든 막걸리) 한병을 들고 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있는 대원들 사이로 다니면서 블라스틱컵에 반잔씩 나누어 준다. 목을 통해 뱃속으로 넘어간 한모금이 온몸의 삭신에 스며든 피로를 스르르 녹이게 하는 산뜻한 기분이 들게한다.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이러한 Share는 쉽지 않다. 등산을 할때는 한장의 종이장도 짐스러움을 느낀다. 막걸리병을 정성스레 Back Pack에 모시고 와서, 대원들의 목을 추겨주려는 그마음, 고맙고 아름답다. 나는 그냥 염치없이 받아 마시고, 고맙다는 말한마디로 인사를 대신할 뿐이다. 막걸리 반주를 시작으로 따뜻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의 Trail Walk에 참석못한 Lunar가 새벽부터 일어나, 김치와 소고기를 섞어 볶음밥을 만들어, 수저가 충분히 들어갈수 있는 주둥이가 큰 보온병에 담아준 점심이었기에 안주겸 점심겸 맛이 두배로 더 하는것 같다. 또 다른 조그만 보온병에는 따뜻한 옥수수차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매주 같이 동행하는 Lunar는, 그녀의 기준으로 봤을때, 더 매력적인 곳으로 갈 계획이 있었기에 참석못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즐겨 찾는곳이 어디이겠는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이 모두가 짐작을 할것으로 생각이 들어 상세한 언급은 하고 싶지 않다.

되돌아 올때는 Main Trail에서 벗어나 있는 Bennett Heritage Side Trail로 리더가 앞장선다. 이곳 Side Trail은 처음 걷는다. 이구간을 여러번씩 걸었었지만, 항상 Main Trail만 걸었었기 때문이다.
넓찍하게 뻥 뚫린 길이 앞에 보인다. 흔치않게 만들어진 구간이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지도를 살펴 봤다. 설명에 의하면 약 500년전에 이곳에는 인디언 원주민들이 살았었던 곳이라고 표시되여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넓직한 길이 상당구간 반듯하게 나 있다는것 외에는, 원주민들의 주거지 였었다는 별다른 특징을 찾아 볼수는 없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숲이 더 울창 했을 텐데.... 지금도 여름철이면 가끔씩 인디언들의 보호 구역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구경갔을때, 그곳에서 보았던 독수리 깃털이 곁들여진 원주민들의 전통의상이나, 길게 머리를 딴 한패의 청년들이 빙 둘러 앉아 커다란 북(Drum)을 두드리면서 리듬에 맞추어 춤추는 모습들이 연상된다. 엣냘의 추장은 지금보다 더 권위가 있었고, 지존이었으리라 상상해 보면서 발길을 옮긴다.

암벽으로 구성된 언덕길에 쌓인 첫눈을 밟으며 내려오는 대원들, 특히나 여성대원들의 발걸음이 때로는 마음을 조리게 했다. 보조 지팡이를 한손에 든 대원, 양손에 든 대원.... 모두가 재치있게 잘도 내려간다. 오히려 좀더 나이가 들은 남성대원들을 걱정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넓은 북미대륙에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가 이런것 아닐까? 눈위를 걷는다는것은 감상적일수는 있으나, 신경과 에너지는 더 쏟게 마련이다.
걷기를 마친 대원들의 back Pack과 모자위에는 걷는 동안 내내 조금씩 내렸던 눈이 미쳐 다 녹지못하고 간간히 쌓여 있는게, 인내 하면서 전구간을 묵무히 걸어온 인고의 흔적같이 보인다. 모자에서는 녹은 눈이 빗방울 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고, 김이 나오는것도 보인다. 같이 한식구가 되여 산행을 한대원들만이 느낄수 있는 보람과 희멸, 그위에 더해진 신체적 건강....쌓여 있는 눈이 대변해 주는것 같다.
점심시간과 중간에 Break Time까지 합쳐서 약 4시간 40분을 걸었다. 지도를 보면서 약 22 킬로를 걸었음을 알았다. 한발짝씩 한발짝씩... 쌓이고 쌓인 결과이다. 어느 대원이 지도를 보고있는 나를 향해 "오늘은 2만보 이상을 걸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그녀가 차고 있던 '만보기'를 들어 보인다. 오늘의 산행도 무사히 모두가 마무리 함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면서 온 우주를 내려다 보고 계시는 윗분에게 감사한다. 집으로 향하는 핸들은 오늘도 가볍다. 감사.

Friday, November 26, 2010

'말'잔치만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지킬수 없다. 카터 전대통령이 그 증거다.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중 한국을 방문 했었다. 당시의 박통 정부가 제공한 숙소를 마다하고, 그는 동두천의 미군부대에 숙소를 정하고, 다음날 아침 미군부대내에서 죠깅을 했었던 기억이 이아침 되살아 난다.
당시 조국 대한민국은 북한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보리고개를 없애 보겠다고, 위로는 대통령으로 부터 밑으로는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한손에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낯과 곡괭이를 들고 건설현장에서 불철주야 땀흘리면서 고생하고 있을때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세대가 훗날 후손들로부터, 조국의 국토방위와 경제건설을 위해 열심히 땀흘려 살았던 세대라고 기억 되는
우리가 되자" 라고 구호를 외쳐 대면서 박통은 가슴에 사무쳤던 가난을 물리치고져, 야당으로 부터의 정치적 압박과 이북의 사주를 받고 지하에서 암약하면서, 조국의 기강을 흔들려던 무리들에게는 고통일수도 있는 인권과 자유를 제한 하면서까지, 건설의 현장에서 선봉장으로 땀흘리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비민주적인 인권 유린에 카터는 불편한 심기를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정상외교를 한답시고 한국을 방문한 카터 대통령의 미군기지 숙박은, 당시로서는 한푼이라도 더 미국의 원조를 받아내야만 했던 박통으로서는 한미동맹관계에서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하는 괴로움이었으며, 인권유린과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고 투덜대고 있던 야당정치꾼들과 지하에서 암약하고 있던 좌파들에게는 박통의 유신정권을 규탄할 절호의 기회를 카터 대통령으로 부터 얻은 셈이 됐고, 카터 대통령은 그가 제공받은 호텔을 내던지고 미군기지에서 짐을 풀은 이유가,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정권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혈맹으로서의 공조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몰아 부치며서, 공안정치를 풀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시하라고 간접시위를 한셈이었다. 그러나 박통과 유신 정권은 그의 시위를 들어줄수가 없었다. 바로 북쪽의 공산집단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 동시에 단군이래 매년 겪어온 '보리고개'를 극복해 내기위한 경제 건설을 해야 했기에, 미국이나 기타 서방 국가 국민들이 누리고 있었던 평화와 자유를 유보할수밖에 없었다. 혈맹이라고 하는 미국이 이러한 한국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한채 '인권과 자유'를 국민들에게 주라고 압박한 것이다.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해방이후 실시되 오던 '통행금지'로 약간의 불편함을 받았던것을 제외 하고는, 일반 서민들이 살아가는데는 크게 자유가 억압되는 분위기는 당시로서는 크게 느낄수 없었다. 퇴근후에 술집에서 술한잔 하면서 세상사 얘기 할수 있었고, 여유가 있다면 국내 여행도 마음데로 다니고..... 다만 인권유린을 한다고 당시의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꾼들에게는 고통의 세월들이었음을 부인할수는 없었다.
당시의 야당정치꾼중의 한인사는 한 회고록에서 "박통은 야당 정치꾼 3만명을 못살게 굴었지만, 야당정치꾼들은 3천만을 못살게 굴었다" 라고 당시의 사정을 표현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것 보다, 먼저 보릿고개를 극복하여,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게 보편적인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었었다.

카터의 정책은 '인권, 자유'를 앞세웠을뿐, 이를 유지하기위한 힘을 유지하는데는 소홀히 하였기에, 그의 집권 4년동안에 미국의 외교적 입김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음을 실감한 미국민들은, 그를 재선 시키지 않고, '자유와 평화는 말로 지켜지는게 아니고, 그것을 유지할만한 힘이 있을때에만 가능하다'라는 구호를 내걸은 'Reagan' 후보에게 몰표를 몰아 주어 대통령으로 당선 시켰었다. 미,쏘 초강대국이 이념 전쟁에서 쏘련에게 완전히 밀려, 미국민들이 불안함을 피부로 느꼈기에,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위한 군비증강을 외쳤던 레이건에게 몰표를 던진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얼마나 그의 집권동안에 약해졌었나 하는 예를 우리는 '이란사태'에서 금방 발견할수 있었다. 동맹국 이란을 지켜줄 미국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이스람 과격주의자들을 앞세운 코메이니옹은, 1979년에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고 있던 이란의 팔래비 왕조의(Pahlavi dynasty) Shah왕과 그가족을 혁명으로 쫓아내고, 테헤란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여 66명의 미국인들을 인집로 잡아 거의 1년 반동안을 억류 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인질 구출 작전( Operation Eagle Claws)을 폈지만, 헬기의 추락으로 인명피해만 내고, 미국은 망신만 더 사는 꼴이 되고 말았었다.
말로만 외치는 자유와 평화는 지켜지지 않는다는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큰 교훈이 된 셈이었다. 선거에서 패배한 카터 대통령은 쓸쓸히 고향 Georgia 주의 땅콩 농장으로 낙향을 하고 만다. 여전히 인권을 외쳐 대면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중 최악으로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받았던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젊어서 몸소 터득한 경험을 살려,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힘을 축적하기위해, 집권 첫날부터 국방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었다, 미국민들은 자유와 평화가 보장된 사회속에서 생업에 전념할수 있어, 경제적 부가 더 커지면서, 미국과 쏘련 사이에 힘의 격차가 벌어져, 결국에는 총한방 사용하지 않고, 공산주의 종주국인 쏘련을 위시한 위성국가들을 무장 해제 시켜 그쪽 국민들에게 평화와 자유를 안겨 주었고, 양쪽으로 갈라져 있던 동,서독이 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을 이룩하게 됐었다. 오늘날에는 민주화된 옛 쏘련과 그연방국가들을 서방세계의 시민들이 자유로히 여행을 즐기고 있으며, 여전히 미국은 미국민들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시민들이 즐기고 있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고국 대한민국은 한국전 이래 이런 미국의 우산속에서 지금의 경제적 안정과 자유를 즐기고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퇴임후의 카터는 시민의 자격으로 세계 각곳을 돌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고 다니면서, 분쟁을 잠재우고 다니는 미국의 인자한 얼굴역활을 하고, 그가 대통령 재임시 그의 정책을 반대했던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그의 노력에 감사하고 있다. 한반도가 남,북간에 긴장이 고조될때, 그는 판문점을 거쳐 그쪽으로 가서 당사자들과 담판을 짖기도 했었다. 이러한 그의 봉사와 노력은, 미국이라는 큰 강대국이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위한 힘을 지탱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것을 세상사람들은 알고 있다. 미국민들의 여론에 의하면,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한 힘의 논리를 펴서, 공산주의를 굴복시킨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가 노예 해방을 시킨 Abraham Lincoln대통령보다 더 높게 나왔다는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바꾸어 얘기하면 자유와 평화는 말로 실현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쌓아 놓은 힘의 바탕이 요즘은 퇴색해 가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

며칠전 조국 대한민국이 어이없게 또 그쪽의 쪼무래기들에게 앉아서 당하고 말았다. 불과 몇개월전에도 이번에 당한것 보다 더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어제 당한 서해상의 같은 장소에서 당했었는데 또 당한 것이다. 당할때마다 '추후 도발시에는 끝까지 쫓아가 응징 할것이다' 라는 경고만 해왔을뿐, 행동은 전연 없었다. 그러한 말로만의 경고가 해방이후 60년 동안 계속돼 왔었다.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살고 있던 시민들만 희생양이 된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힘을 총동원하여, 철없이 까불어 대는 그쪽의 쪼무래기들을 뒤쫓아가 몇배로 응징을 했어야 했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재산과 인명의 희생이 뒤따라야 정신을 차릴것인가? 잔악하기로 치면 지구상에서 그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악질집단인 그 쪼무래기들에게 이성이 있기를 바래면서, '또 미친짖 할까?" 라는 막연한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위정자들과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누구나 어려서 학교 다닐때 친구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먹이 쌘 아이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하고 싶은것 다 한다. 그의 쌘 주먹이 무서워 감히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폭넓은 자유와 평화를 누리려면 더 많은 힘이 뒷받침 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힘이 세어도 꼭 사용해야 할때 사용하지 못하고 때를 놓치면, 결국에는 짐이 되고 만다. 그것은 완전히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의 몫이다. 그쪽의 미치광이 같은 지도자가 힘을 휘두르면 오늘과 같은 참변이 일어나고, 레이건 대통령 처럼,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축적된 힘을 사용할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면, 총알 한방 낭비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수 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국 남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경제적 부를 계속해서 마음놓고 누릴수 있게 지켜줄수 있는, 박통같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굴하지 않는 현명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리더 구룹이 탄생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남북통일을 바란다는것은 과대한 욕심 같기도 해서 감히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국민들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할수 있도록 안보를 확실히 해 주기를 위정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나의 생각이 조국의 동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봐도 괜찮을까?


http://www.bbc.co.uk/news/world-asia-pacific-11852683

Tuesday, November 23, 2010

왜 응징을 못하고, 먹혀 들지도 않는 구두경고만 남발 하나...


연평도가, 고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휴전선넘어 저쪽의 쪼무래기들이 갑자기 날려버린 포탄 100 여발의 조준 사격에 쑥대밭이 됐다고 난리다. 이곳의 유수한 언론들은, 고국의 언론들이 호들갑떠는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를 다루면서, 80 여발의 대포(Artillery)로 반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고국의 시간으로 오후 2시30분경에 일어난 남북간의 총격전으로, 약 1,500 여명의 연평도의 주민들은 갑작스런 포탄 세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맷다고 전한다. 평소에 민방위 훈련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고, 귀찮게만 여기고, 시간만 떼우는 형식적인 민방위 훈련을 해왔었다는 한증거를 여실히 보여준것 같았다. 그것도 바로 적진의 코앞에서 사는 사람들이기에 더욱더 충실한 대피훈련에 임하고, 오늘처럼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때, 차분히 그러나 질서 있게 대피 했어야 했다. 언론은 있는 그대로 보도 하기에, 이뉴스를 저쪽의 쪼무래기들이 들었을때, 이곳의 대응태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결과는 금방 계산될것 같다. 반대로 이러한 갑작스런 공격에도, 평소에 훈련을 진지하게 실시하고, 그길만이 유사시 살아남을수 있는 길이라는것을 숙지하고, 받은데로 대피에 차분히 임하고 질서를 지켰다라는 뉴스가 나갔다면, 쪼무래기들의 반응은, '우리의 포사격에도 끄떡 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겁먹는 모습으로, 한방 때리는 효과가 별무라고' 꺼꾸로 그들을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을 역효과를 보여 주었어야 했다.

45년전 군생활을 할때, 군병영에는 곳곳에 '항시전쟁'의 구호가 붙어 있었고, 그것은 바로 북괴의 어떠한 공격에도 한방에 격퇴 시킬수 있는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것이었었고, 그렇게 긴장된 속에서 3년 의무년한을 무사히 마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최전선에서 한치의 빈틈도 없이 그쪽 쪼무래기들을 감시하는 사이 후방의 국민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그결실이 현재 남한에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있게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의 사회환경이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남북간의 원치않는 대치 상황을 보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변화된것은 찾아 볼수가 없다. 대신에 Tension만 더 해지고, 더 많은 최신식 무기로 휴전선은 지쳐만 가는것을 봐왔다. 달라진게 있다면 남쪽에서는, 지난 10년동안의 좌파 정권에서, 군복무기간을 1년이상씩이나 단축하여, 사병들이 새로운 첨단무기의 사용법을 숙지 하기도전에 제대를 하게되는 개판 군대를 만들었고, 거기에 정신무장을 완전해제 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이북이 우리의 적이다'라는 주적개념을 완전히 정신교육에서 삭제시켜, 필요시 총구를 어디에 겨누어야 하는가를 망각하게 만들어 버렸었다. 그결과가 오늘 연평도에 떨어진 그쪽 쪼무래기들의 불장난에 군이나 민간인이나 놀아난것으로 이해된다. 지하에서 잠자고 있는 지난 좌파정권의 두 수장이 오늘 일어난 사건을 본다면, '위대한 동지만세' 아니면 '조그만 더 조이면 쌀밥에 고기국을 먹이게 되는 날이 곧 올것입니다' 라고 읖조릴까? 이번에 희생된 군인들과 재산피해등등.... 어디에 대고 보상을 요구해야 할것인가?
왜 더많은 화력과 첨단 무기를 운용하면서, 이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근심을 확 떨쳐낼수 있는,적시 대응을 하지 못하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문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인용구다. 간단한 한마디의 충고로 마음을 고쳐 먹을수 있는 사람이 있고, 초강수를 써서 코뼈를 뿌러트려야만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있다. 지난 60년 동안 그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당해만 온 남쪽의 국민들에게, 좌파사상으로 꽉 차있는 정치꾼들은, 무력충돌은 그만 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것을 뉴스에서 방금 보았다. 누구한테 대고 하는 소리인가? 왜 그쪽 쪼무래기들에게 강한 톤으로 직접 비난을 쏟아붓지 못하는가.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는가? 그것도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선한 민간인들을 향해서.... 좌파 정치꾼들이 너무나 밉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불장난을 해결할 즉각적인 행동이나 조치는 뒤로하고 '더이상 좌시 하지 않겠다' 라고 말로만 을퍼대는 남쪽의 위정자들도 걱정이다. 지난 60년 동안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면서 얻은 경험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깊이 새겨보고, 반성하고, 국민을 지켜 주어야 한다.

이보다 두서너시간 앞서, 아들이 서울에 무사히 Landing 했다고 문자 메세지가 왔었다. 이곳 시간으로는 새벽 5시경쯤 된것 같다. 아들은 늦깍이 공부를 하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홍콩에 가서 현지실습을 가는 도중에 서울에 들린것 같다. 이기회에 그아이가 아비의 조국이 처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느끼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비가 떠나온 조국을 위해, 필요시 직접 참여 헌신할수도 있다는 마음 가짐을 되새기고 왔으면 하는 바램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아이가 아직 어렸을때, 왜 아빠는 3년간 국방의무를 해야 했었는가를 애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경험담을 다듣고난 두아이(딸과 아들)가 아빠가 군복무시 항상 목에 걸고 다녔던 군번(Soldiers Identification Number)을 자기네들도 목에 걸고 다니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아, 오타와 대사관의 무관에게 문의 하여, 두개의 사본을(Copy) 본국으로 부터 입수하여, 아이들의 목에 걸게 해주었더니 자랑스러워 하면서 한동안 값비싼 목걸이 처럼 걸치고 다녔던 모습이 지금 기억에 떠 오른다.

몸은 멀리 떠나와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처럼 그쪽 쪼무래기들의 불장난으로 빗어진 청천벽력같은 사회적 소요를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고, 그들의 술수에 더이상은 휘말려들지 않아야 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위정자를 비롯한 전 국민이 마음속에 새기기를 염원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을 떠나 시집간 딸의 심정이 바로 이런 느낌 아닐까?

오늘 이아침에 젊은 목숨을 조국방어를 위해 바치고 순국한 국군장병들에게 경건한 조문과 감사한 마음을 보내 드린다.


http://interactive.joinsmsn.com/article.html?sid=315&cloc=joongang|home|interactive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korea-shelling-web-20101124,0,1410754.story

http://news.joinsmsn.com/article/876/4700876.html?ctg=1000&cloc=joongang|home|special

http://www.nytimes.com/2010/11/24/world/asia/24korea.html?_r=1&hp

http://www.cnn.com/2010/WORLD/asiapcf/11/23/nkorea.skorea.military.fire/index.html?hpt=T1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0/11/23/AR2010112300880.html?hpid=topnews

Monday, November 22, 2010

남한의 좌파 세력들, 고농축 우라늄 개발에 '잘되간다' 할까?


남한의 좌파 정권과 그추구 세력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북한 인민공화국은 농축우라늄개발 계획도 이를 실행에 옮길 아무런 구상도 세운적이 없다고 펄펄 뛰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고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진실된 의도를 폄하하는 파렴치범들의 작태라고, 싸잡아 비난했던게 완전한 위장(Camouflage)였음이 꼭 8년만에, 그들이 신처럼 추앙하는 저쪽의 정권이 전세계에 고농축 우라늄 추출 성공을 발표 함으로써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고 한다.
Enriched Uranium Program이 굶어죽는 북한 동포들의 삶에 서광이 비치는 신호라면 천만번 환영해도 부족할 경사일것이다.
오래전에 구 쏘연방의 하나인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던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로 그지방이 초토화 되고, 그 후유증이 요즘에 태어나는 후세들에게서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기형아로 나타나고,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은 이제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전세계인들이, 특히 조국 한반도의 동포들은 잘 기억하고 있기에 이번 고농축 우라늄의 추출 뉴스는 과히 충격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것 같다.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서 만든 핵폭탄을 그들은 어디에 사용 할려고 할까? 만약에 남쪽으로 쏘아서 초토화 시킨다면, 그분진이 북쪽으로 날아가서, 3대째 이어가고 있는 김씨 왕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그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생각이 너무나 순진하다못해, 계속해서 4대, 5대.....이어질 그후손들의 안위가 더 걱정되게 하는 안타까움이 연민의 정으로 남는다. 내생각이 너무나 감상적인가?
아직까지는 이번 발표에 남쪽의 좌파세력들과 정치꾼들로 부터는 아무런 논평이나 찬양의 소리도 없는것 같다. 대신에, 그들이 양심을 조금이라도 소유하고 있다면, 쥐구멍 찾기에 바빠야 할것이다. 그들이 그렇게도 신앙처럼 추겨세웠던 "햇볕정책"의 허구와, 저쪽편의 정권은 그럴 의도나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입에 거품을 품어 대면서, 남쪽의 수구세력들이 미국과 작당하여 남북간의 긴장을 조장 시켜서, 현정권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보기위한 꽁수라고 몰아 부쳤던 개똥철학의 포장을, 저쪽의 야수같은 정권이 스스로 풀어논 그내용을 귀와 눈으로 확실히 보면서 깊이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처럼 믿고 의지하고, 옹호해 왔던 김씨 왕조가, 아무런 언질이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것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이 없이 꿀먹은 먹은 벙어리짖을 하고 있는 야당과 좌파세력들의 점잖은(?)모습이 비맞은 장닭 모습으로 연상된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런 일방적인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비난을 퍼붓는 것을 당연시 하지만, 너무나 조용한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것 또한 나의 생각이 너무나 감상적인이어서 일까?

남대문서 뼘 맞고, 동대문가서 화풀이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뇌리에 떠오른다. 좌파 세력으로 짜여진 좌파 정치꾼들은, 그분풀이를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 하는데 쏟아 붓고 있다는 뉴스는, 아무리 좋게 볼려고 해도 이해가 안된다. 주야로 심의 토론해서 법정시한내에 의결을 해야 내년도 국가 살림을 정상적으로 할수 있을텐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고, 토론에 불참하고, 국가를 지키기위한 법을 만들어내는 신성한 국회에서 폭력을 휘둘러서, 세계에 웃음 거리를 만든것도 부족해, 그중의 일부 깡패정치꾼은 국회의장실에 침입하여 책상위의 집기를 내동댕이치는것도 모자라 그위에 올라가 높이뛰기를 해대는것을 보았었다. '민주주의'가 각 개인의 권리를 행사할수 있는 권한이 보장된 사회적 약속이라면, 그이상으로 절대적으로 지켜져야만 할 의무와 책임이 앞서 있다는것을 준수돼야 한다고 나같은 서민도 상식으로 알고 또 믿고있는데. 그틀이 깨질때 국가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의무가 제궤도위에서 굴러가도록 개입한다. 이럴때 그들은 '야당탄압'이라고 몰아 부치면서, 국민들을 불모로 하면서, 국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정권의 지지율이 60%가 넘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러한 지지율을 보면서, 과연 좌파야당이 떠들어 대는 소리에 귀기울일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좋은 얘기도 그도가 넘으면 맛을 잃게 된다. 햇볕정책을 처음 발표 됐을때, 국민들은 일부 의심 하면서도, 그정책을 믿고 밀어 정권을 탄생 시켜주었다. 햇볕을 쪼인다는 명목으로 국민몰래, 수억달러의 국민 혈세를, 농축우라늄개발을 발표한 세습정권에 상납하면서,이름하여 정상회담을 했었다. 그때 좌파세력들과 야당은 곧 한반도가 평화로운 통일이 되는것 처럼 떠들어 대면서, 이쪽과 저쪽의 양김씨를 민족의 태양처럼 치겨 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후 북한 동포들의 생활이 향상됐다는 소식은 없었고, 반대로 굶어죽는 뉴스가 빈번했고, 상납금의 일부로 프랑스에서 고급 wine을 대량 수입하여, 남쪽에서 즐겨 부르는 가라오케를 자랑스럽게 불러대면서 목을 추기고 있을때,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은 탈북을 시도하여 성공한 사람들은 천국(?)에서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고,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은 끌려가서 총살형을 당해 목숨을 잃고 있다는 뉴스는 세계의 분노를 샀었다. 이럴때도 좌파세력들과 야당은 김씨 왕조에 대해 한마디의 논평을 편일이 없이 오늘까지 왔다. 자기 수족이나 마찬가지인 인민들이 굶어 죽는 뉴스가 김씨왕조 울타리 밖으로 세어 나가지 못하게 철통 보안을 유지하면서, 햇볕쪼여서 인민들을 먹이고 입히라고 남쪽의 좌파정권이 갖다 바친 상납금을, 뒷구멍으로는 농축우라늄개발에 쏟아 붓고, 이것이 바로 햇볕 정책이다라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세금을 바친, 선한 국민들을 향해 또 골갈치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저쪽의 철책넘어 괴수들을 보면서, 좌파세력들과 뜻을 같이하는 정치꾼들도 이제는 가슴에 손을 대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국민들을 향해 '지금까지 김씨왕조의 감언 이설에 속아 억지논리를 펴서 국론을 분열시킨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보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더 늦기전에..... 아니면 '어느미친놈이 헛소리 하고 있는거야. 모든일이 계획데로 잘 진행되고 있는데.....위대한 동지 만세...' 라고, 겉으로는 못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을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발표를 뒤집어 보면, 뭔가 확실치 않는 냄새가 나는것 같기도 해서 또 생때를 쓸 시기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인것 같기도 하다. 상납금을 비롯한 모든 돈이 바닥이 나서, 그들이 마시고 즐길 Wine을 구입할 푼돈까지도 다 동이나서, 미국과 한국의 등을 쳐 먹을려는 상투적인 수법을 또 들이대서 한몫 잡을려는 계산으로 보여지는면이 보이는것 같아서 말이다. 아무리 철없는 막난이라 할지라도 그도가 지나치면, 결국 회초리의 매운맛을 보여서라도 버릇을 가르쳐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다스려야 하는 아픔이 뒤따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ashingtondc/la-fg-north-korea-nuclear-20101122,0,217263.story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0/11/21/AR2010112100145.html?hpid=topnews

Sunday, November 21, 2010

남한의 좌파 세력들, 고농축 우라늄 개발에 깊이 뉘우쳤으면....

북한의 김정일과 Regime 그리고 남한의 좌파 정권과 그추구 세력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북한 인민공화국은 농축우라늄개발 계획도 이를 실행에 옮길 아무런 구상도 세운적이 없다고 펄펄 뛰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고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진실된 의도를 폄하하는 파렴치범들의 작태라고, 싸잡아 비난했던게 완전한 위장(Camouflage)였음이 꼭 8년만에, 김정일 정권이 전세계에 자진해서 고농축 우라늄 추출 성공을 발표 함으로써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고 한다.
Enriched Uranium Program으로 굶어죽는 북한 동포들의 삶에 서광이 비치는 신호라면 천만번 환영해도 부족할 경사일것이다.
오래전에 구 쏘연방의 하나인 우르라이나에서 발생했던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로 그지방이 초토화 되고, 후유증이 요즘에 태어나는 후세들에게서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기형아로 나타나고,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은 이제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전세계인들이, 특히 조국 한반도의 동포들은 잘 기억하고 있기에 이번 고농축 우라늄의 추출 뉴스는 과히 충격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서 만든 핵폭탄을 그들은 어디에 사용 할려고 할까? 만약에 남쪽으로 쏘아서 초토화 시킨다면, 그분진이 북쪽으로 날아가서, 3대째 이어가고 있는 김씨 왕족에게는 그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생각이 너무나 순진하다못해, 계속해서 4대, 5대.....이어질 그후손들의 안위가 더 걱정되게 하는 안타까움이 연민의 정으로 남는다. 내생각이 너무나 감상적인가?
아직까지는 이번 발표에 남쪽의 좌파세력들과 야당으로 부터는 아무런 논평이나 찬양의 소리도 없는것 같다. 대신에, 그들이 양심을 조금이라도 소유하고 있다면, 쥐구멍 찾기에 바빠야 할것이다. 그들이 그렇게도 신앙처럼 추겨세웠던 "햇볕정책"의 허구를 이번의 발표로 깊이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0/11/21/AR2010112100145.html?hpid=topnews

Saturday, November 13, 2010

Forks of the Credit 지역 Trail Walk.



















대원들과 함께 열심히 달려 갔는데, 예상치 않게 Forks of the Credit Rd.가 도로 포장 공사로 길이 막혀서 원래 목적했던 지역을 통과 할수가 없어, 임기웅변으로 Mclaren Rd.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Puckering Lane을 지나서 계속 달리다 왼쪽으로 뚤린 길을 따라 들어가 그곳에 Parking하고 대원 모두가 Trail Walk 준비를 했다. 이곳은 원래 Walk을 시작 할려고 했던 방향에서 반대 방향에 있는 Forks of the Credit Provincial Park의 후문인 셈이다. 그곳에는 무인 Fee Collection M/C가 공동변소벽에 설치 되여 있었다. 리더를 비롯한 대원들이 Fee를 내야 하느냐 내지 말아야 하는냐로 잠시 혼선이 일기 시작 했다. 내가 우리는 Bruce Trail Member이기 때문에 Fee를 내야할 필요가 없다라고 리더와 몇사람에게 얘기를 했지만, 의견이 분분하여 일부 대원들은 Ticket을 사서 차안의 Dash Board에 올려 놓는것을 보면서, 속으로 안타 깝기도 했었다. 오늘은 또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선배님 한분이 모처럼 어제밤에 연락이 와서 같이 산행을 하는 신경 쓰이는 날이기도 했다.
그분이 얼마만큼 적응 하면서 걸으실지? .... 나때문에 오늘 Trail Walk에 참석 하셨으니..... Car Pool은, 물론 내차로 하는것을 시작으로 한것이다. 전에도 이곳을 통해서 여러번 Walk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생소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긴 Side Trail을 따라 걷다가 원래 걸을려고 했던 Main Trail에 접근 할수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Side Trail은, 캐나다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3만 킬로가 넘는 Trans Canada Trail의 한구간을 걸어서 다시 Main Trail을 걷는 코스였다. Main Trail을 따라 한참 걸으니, 걸을때 마다 보아왔던 Cataract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소리가 우리들을 반기는 것처럼 소리가 우렁찼다. 그옆으로는 지금은 없어진, 옛날 발전소 자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거의 흔적을 찾아 볼수 없는 표시를 지나 숲속을 계속 걸었다. 기울러져 가는 늦가을의 짧은 낯시간을 더 연장 하고 싶어서 인지, 드물게 햇볕도 쨍하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숲을 뚫고 줄을 지어 발길을 옮기는 대원들의 머리와 발등에 까지 따뜻하게 비쳐 주고 있어, 삭막함을 덜해 주는것 같다. 올리고 내리는 Bar가 설치된 Provincial Park의 정문은 꽉 닫혀 있었고, 그옆을 통과하여, 이어진 Dominion St를 따라 걸어가는 길 양쪽에는 Cottage촌이 즐비하게 그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처음으로 이곳을 걸을때는, 항상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 했었던 기억이 떠 오른다. "이런곳에서 뭘해서 먹고 살까? 밤에 징승들의 출몰은 없을까?" 등등의 상상하면서. 지금은 이해를 어느정도 할수 있게 됐다. 내가 여름이면 나의 시골 Cottage에서 몇년째 생활을 하면서 자연적으로 터득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Retire한후 이곳에서 한적하게 사는 사람, 아니면 도심의 복잡한 생활이 싫어서 한적한 이곳에 살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그리고 집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 등등.... 지금은 극히 정상적으로 보게 됐다.
계속 걸어 Forks of the Credit Rd.를 만나는 곳에 도달 하니, 눈에 보이는 Shoulder Parking lot은 텅 비어 있었다. 길이 막히지 않았었다면 이곳에 주차하고 지금 걸어온 길을 역으로 따라 올라 가곤 했을텐데..... 앞서가는 리더가, 마음속으로 바랬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그대로 main trail을 따라 전진 한다. 바로 그곳은 바위를 깍아 세워 놓은듯한 가파른 언덕길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오죽이나 산책객들을 괴롭히는 험난한 구간이었기에 이름도 'Devil's Pulpit' 이라고 부쳐 놓았을까? 갑자기 걱정이 앞선다. 오늘 처음 걷기에 동참한 선배분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숨이 턱에 차기 시작한다. 바로 앞서 가는 선배분의 숨소리가 나보다 더 거칠어 짐을 느낄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괜찮으세요?" 를 연발했다. 다행히도 선배분은 속으로는 힘들었겠지만, '괜찮아요' 라고 응답하시면서 걸으신다. 가는날이 장날이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처음 Pakrking 부터 꼬이더니 결국 예정에도 없는 이구간을 걷게 되는게, 선배님을 포함한 3명의 처음 참가자에게 혹독한 신고식을 시키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졌다.
약 20분에 걸친 가파른 언덕을 올라 섰을때, 모두가 해 냈다는 안도의 숨이 터졌다. 잠시 숨을 고른다음 걷기는 계속됐다. 리더가 이번에는 Trail 구간이 아닌 Caledonmountain Dr.길을 따라 Mississaga Rd 쪽으로 앞장서서 겉는다. 리더가 이곳을 통과한 다음 Belfountain Conservation Area를 통과 할려고 하는구나 라고 추측을 할수 있었다. 걷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 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Conservation 안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한단다. 편편한 잔디밭에서 점심밥상을 펴고 삼삼오오 둘러 앉은, 옆으로는 물고기들이 헤엄쳐 노는 조그만 호수가 정겹고, 아직 오후 1시도 안됐는데, 중천에 떠 있어야 할 해는 벌써 서산에 질려고 하는것 처럼 기울어져 있음은 초겨울의 해는 짧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열심히 살아왔던 삶의 대열에서 은퇴하여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암시해주는것 처럼 안타깝고, 기울어져 가는 해를 정지 시켜 밝은 낯의 시간을 더 벌기위해 꼭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가슴 깊숙히 도사리고 있음도 느낀다. 선배님은 어쨋든 간에 겉으로 보기에는 안녕 하신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오늘 점심으로 구운 고구마 몇개와 마호병에 옥수수차를 끓인 물이 전부, 아 그리고 사과 한알이다. 어제 부터 시작된 교회내의 년중행사인 '여성사역' 프로그람에 교회의 거의 모든 여성들이 참석하면서 Lunar도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집에 없었기에 나혼자서 그렇게 준비했던 것이다. Lunar가 어제 오후에 떠나면서 도시락 싸갈 준비를 다 해주었는데...... 내자신이 그것을 다시 그릇에 담고 반찬을 챙기고 하는.... 그게 싫었기 때문이다. 고구마 맛이 꿀맛이다. 따뜻한 옥수수차물도 맛을 더해주고,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사과 한알은 미쳐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다시 Back Pack에 집어 넣었다. Forks of the Credit Rd.로 연결되여 있는 Main Trail로 가기위해 Conservation안에 있는숲속을 뚫고 이어져 있는 Side Trail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가끔씩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 밟히는 소리가 바스락 거린다. 아미도 이곳은 땅이 건조 한가 보다. 드디어 아까 지나쳤던 Shoulder Parking 장을 지나 왔던길을 되돌아가 다시 공원 정문을 향해 Dominion St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공원 정문을 지나서 조금 가니까, 앞서가던 리더가, Short Cut를 하기위해 Brimstone Side Trail을 따라 걷는다고 하면서 따라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먼저 걷는다. 아뿔사. 이트레일 역시 아까 고생(?)했던 마의 계곡 못지않게 가파르다. 다시 선배가 걱정 됐다. 허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수 없기에 '괜찮으시죠?' 라고 하면서 상황을 살필수 밖에.... '응 괜찮아요' 다. 대원들 모두의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짐을 뚜렷히 들린다. Side Trail이 끝난곳에서 표시되여 있는 Mail Trail 싸인을 따라 직진을 하면 아침에 지나쳤던 Mclaren Rd.와 만나게 되여 있고, 반대로 Main Trail 싸인이 나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한참을 걸으면 아침에 만났던 Trans Canada Trail을 만나서 그길을 따라 Parking Lot으로 가게 되여 있다. 리더는 후자를 택해 걷기 시작한다.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샤워하고싶은 생각이 간절해 진다. 예정된 시간보다 약 20-30분 이상을 오늘은 더 걸은것 같다. 오늘 처음 참가한 선배님을 포함한 3명의 대원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대원들이 오늘밤에는 약간 힘들어 할것 같다. 파킹때문에 약간의 혼선을 빗었던 속에서 주차 시켜놓은 차들은 모두 무사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면서..... 대원들을 위해서는 확실한 지침이 절실히 요구되는게 중요하다는것을 다시한번 머리에 떠올려 본다. 묵묵히 리더를 따라서 무사히 전 구간 걷기를 마친 전 대원들이 자랑스럽다. 다음주를 생각하면서.....핸들을 돌린다. 감사.

Wednesday, November 10, 2010

G20 정상회담을 보는 상반된 눈과 행동들

G20 정상회담을 보는 상반된 눈과 행동들

G20 정상 회담과 실무자들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고국 대한민국으로서는 큰 잔치인 셈이다. 아시아에서는 첫번째로 이렇게 선진국 정상들 회담을 hosting 한다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정부에서는 추진 하고, 또 이기회를 이용하여 조국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누면서 살아가는, 발달된 나라가 됐음을 전 세계에 알려주는 홍보도 겸하게 되는 경사라고 한다. 세계의 언론들은 이러한 경사(?)스러운 잔치가 열릴때마다 조국 한국은 이기회를 잘 활용하여, 성과를 거두었다고 칭찬 하면서, 그예로 88 서울 올림픽과 FIFA 월드컵 챔피언쉽을 꼽는다. 나 개인적으로도 올림픽과 월드컵의 개최로 조국 대한민국이 세계에 많이, 잘사는 나라로, 짧은 기간동안에 세계의 선진국 대열에 낀 조국의 기적을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표본으로 삼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얘기도 들어왔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여 있다.

경사스러운 이 행사가 시민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떠들어 대면서, 못마땅히 여겨, 이를 반대하는 모임과 투쟁이 지금 서울 곳곳에서 열려, 수만명의 경찰 병력과 또 관련 공무원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다고 매일 뉴스에서 떠들어 대고 있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조국 대한민국이 지금 처럼 잘 살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과연, 이번 정상회담에 참석한 정상들이 불안해 할정도의 거센 데모를 이끌어 낼수 있었을까? 데모에 사용할 에너지의 여력이 있다면, 데모에 참가하는것 보다는 우선 허기진 가솔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정신과 에너지를 집중 했었을 것으로 상상해 본다. 물론 젊음을 앞세우는 혈기만으로, 못사는 부모,형제들을 위한다는 정의를 부르짖는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그래도 부모님들이 허리띠 졸라매 가면서 보내준 학자금과 생활비로 현실속에서 배고픔을 덜 느끼었을 것이기에, 정부의 정책에 맞서 싸우고 데모해 왔던 다른 집단임을, 역사를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삶에 시달리고,배고픈 노동자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항하는 예는 찾아 보기가 힘들다는 현실은 현재에도 전 지구상에서 흔히 볼수 있다. 지난 6월에 토론토에서 있었던 G7과 G20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이를 반대하는 데모꾼들에 과잉진압을 했다고, 천문학적인 돈을 탕진 했다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집단과, 정부관련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공방전이 끝이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방송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음을 보면서, 같은 나라 시민으로 똑 같이 굶주리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는 똑 같은데,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은 서로 상반되여, 한쪽은 데모로, 또 다른 한쪽인, 정부는 이런집단에 재재를 가하면서,잘사는 나라들의 수장들을 불러 모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는다는 명분을 들이댄다. 유독히도 고국 대한민국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데모는 그질이 상상을 초월하는, 혐오감을 넘어서는 상황을 곁들이는, 살기 아니면 죽기식의 극한 투쟁이 함께 하기에 더 염려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08년도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할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산 소고기는 전부 오염됐으니 수입해서는 안된다고 서울시 한복판에서 미국을 마치 철천지 원수처럼 몰아 부치는것도 모자라,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해 오던 Super Market에 침입하여 소의 생피를 뿌려대면서 부숴버렸던 데모대의 행패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런 막가파식의 주장은 이번 G20 정상 회담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조짐이 불안 하게 보인다. 이틈에서 재미를 보는 집단은 누구일까? 옛말에 '죽 쑤어서 개좋은 일 시킨다' 라는 문구가 떠 오른다. 지정학적으로 조국은 지구상에서 그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 무도한 정치깡패 집단인 북쪽의 김정일과 그 Regime이 항상 남쪽을 널름 거리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더 마음이 조린다. G20 정상회담을 빌미로 한 데모데의 싸움 결과는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쌍방의 피해와 헛구호와 말잔치로 끝날것이라는점을 뚜렷히 본다. 그와중에서 뒷치닥거리를,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 무척 소화해 내기 힘들다.

집단 이기주의는 삶의 질이 좋아질수록 더 성장할것으로 예측된다.
G20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을 만들어 내기위해, 먼저 초대된 나라의 관련장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며칠전부터 밀실회담과 집단회담을 해 왔다고 하는데, 합의문에 포함될 내용들의 합의를 이루어 냈다는것 보다는, 집단 이기주의 즉 자국의 이익을 먼저 염두에 두면서 주판을 두드린 흔적이 뚜렷한, 서로 상반된 주장들이 제기되여, 이러한 회담의 무용론까지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예측까지도 나오고 있기에,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좀더 낳은 삶의 질을 추구한다는 구호가 어필하지 못하기에, 차라리 그러한 회담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빈민을 위한 구제에 사용하라는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것이 아닐까? 어느쪽의 주장이 옮고 그른지는 창조주만이 아실것 같다. 문명의 발달과 삶의 질이 향상되는것 만큼, 긍정과 반대의 싸움이 더 극렬 해 질것이라는 염려가 머리속을 꽉 짖누르고 있음을, 이번 G20 서울회담을 지켜 보면서, 괴로워 한다. 그래도 모처럼 주인이 되여 치르는 잔치(?)이기에, 꼭 좋은 성과를 맺어야 하고, 거기서 열린 열매를 조국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시민들이 함께 따 먹을수 있도록 터전을 만들어 주는 정상회담이기를 바란다.


양 이틀간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G20 정상회담은, 예측 했던데로, 특정한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못하고, 말잔치로 끝난, 참석한 나라 정상들의 쇼에 불과한 느낌이다. 분위기를 잡고 뉴스의 초점을 받은 정상은 스타가 된 기분이고, 그렇치 못한 정상은 자국에 돌아가서, 국민들에게 한방 얻어 맞을 각오를 해야 할것 같다. 말은 쉽지만, 어떻게 자국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들에 감히 타협이나 양보를 즉석에서 Yes, No로 답할수 있단 말인가? 여러 언론의 보도를 흩어 봐도, 거의 전부가 내년회의로 미루던가, 추후 더 실무자 회담을 거쳐 보완토록 한다는게 전부다. 정상적인 정상들의 회담을 위해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 병력과 국가 공권력의 배치문제와 운용에 대해, 지난 6월에 G20 정상회담이 토론토에서 었었던 때와 비교 하면서, 토론토는 아직도 그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고, 청문회가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는, 정상회담의 본질을 벗어난 기자들의 보도 내용이기도 했다. 그만큼 보도가치 면에서, 데모대 진압에 대한 그후의 보도 의무가 더 컷던 모양이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정상회담이 끝난후의 각국의 뉴스보도가, 표현에 따라 독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꿀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주로 미국의 언론 발표는 회담 결과에 실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고국의 언론은 회의는 성공적으로 평가 할수 있다는 표현을 썼다.
내용을 읽어 보면,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환율조정과 무역전쟁에 대해서, 미국측의 언론은 확실하게 결론낸게 없이 다음으로 미루는, 알맹이 없는 회담이었다는 것이고, 고국의 언론은 반대로 많은 진전을 보였고, 마지막 최종 합의는 다음 회담에서 이루어 내도록 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마치 물컵속에 절반밖에 없는 물을 보고, 한쪽은 ' 야 큰일 났다.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라고 걱정을 하는데, 다른 한쪽은 ' 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네' 라고 호들갑을 떠는 유머와 비교가 될것 같다.

이번 회담을 위해 주최국을 비롯한 참가국들의 비용이 천문학적 숫자 일텐데......
그비용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대답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이면 누구나가 쉽게 할수 있는 한숨소리에서 답을 찾을수 있다 하겠다. 옛말에 정승집의 개가 죽으면, 조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막상 정승이 죽으면 빈초상집이라는 말의 참뜻을 이번 회담에서도 느껴본다. 미국과 중국의 두세력간의 기싸움에서 뚜렷히 나타났다. 몇년전만 해도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고, 읍소하던 각국의 정상들의 이번회담중의 행동을 보면, 미국은 죽은 정승이 된꼴이고, 중국은 정승집의 개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몰련든 조문객을 맞이하는 정승집으로 격상 되여 있음을 보았다. 이러한 광경은 하나도 이상할것 없다. 부와 명분앞에서는 너나 할것없이, 이익을 창출할수 있는곳에 줄을 서야 함을 참석한 정상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원하는것은 조그만 땅덩이의 조국 대한민국이 회담후의 이삭(Gleanings) 줍기에서 최대한의 알맹이를 찾아 거두어 들여서, 국민들이 더 편안히 더 배부르게 삶을 살아 가는 바탕을, 이삭줍기를 하는 다른 나라들의 눈총을,마찰없이 지혜롭게 피해 가면서, 튼튼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늘자 (11월10일), 정상회의를 마친후의(11월 12일) 본국판 기사와 CNN, Star와 LA Times,WSJ 기사를 옮겨 본다.



http://www.theglobeandmail.com/report-on-business/video/g20-leaders-agree-to-disagree/article1796259/?from=1796128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2748703848204575609551819168026.html?mod=WSJ_hp_LEFTTopStories

http://news.donga.com/Issue/List_G20Seoul/3/0100000001/20101112/32557410/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12/2010111201548.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1_rel01

http://www.cnn.com/2010/WORLD/asiapcf/11/11/korea.ban.ki.moon/index.html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0/11/12/AR2010111200021.html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obama-summit-20101113,0,6738896,full.story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2748703805004575607563000715350.html?mod=WSJ_hp_MIDDLETopStories

http://www.thestar.com/news/world/article/888914--compromise-needed-to-salvage-g20-seoul-summit?bn=1

http://www.thestar.com/news/world/article/888120--seoul-braces-for-g20-summit?bn=1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korea-summit-protesters-20101110,0,4247250.story

Friday, November 05, 2010

반려자가 없는 자신과의 결혼식 기사를 봤다. 이해할것 같기도 한데...

흥미 위주로 읽어보고 넘겨야 하나?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한 단면을 묘사해 주는 삶의 현장으로 보아야 하나?
이기사를 읽으면서, 산업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결혼은 곧 한 가정을 이루는 기본 출발점이라는 오랜 전통의 틀을 깨고, 일찍히 상상도 못했던, 신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는것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결혼의 풍속도를 이루어 가는 방법의 하나로, 결혼 연령이 많이 늦어지는것을 보아 왔는데, 그래서 잘사는 나라일수록 인구 증가율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고, 어떤 나라는 계속해서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부족분을 채우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오늘 아침에 본 신문 기사는 요새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Cool한 생각이라는 면도 생각해 볼수 있게 했지만, 둘이 합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결혼이라는 틀속에서 받을수 있는 여러 Pressure들로 부터 완전 해방되여, 더 자유스러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결혼은 서로 사랑하기에 둘이 합쳐지는 의식으로 여겨 왔던 나의 생각을 완전히 멍하게 만드는 Concept, 즉 혼자 살아가면서 더 많이 'Love myself'를 하기위해 나자신과 결혼을 한다는것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라는 논리로, 자유만 누리고, 의무는 애써 외면 하겠다는 뜻으로 보여져,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는 나의 두아이들을 생각해 보게된다.

신문기사 내용을 대략 여기에 옮겨 본다.

결혼은 '이신동체'라는 개념을 확 바꾸게 될 결혼식이 열린다고 한다.
Taipei에 사는, 30세가 되는 한 여성이 '결혼'이라는 개념을 확 바꾸어 버릴것 같다.
만 30세가 되면 그녀 자신과 결혼하고, 그녀 자신을 위한 축하 파티를 개최할것이라고 한다.
11월 6일 Chen Wei-yih양은 30명의 하객 앞에서 그자신과의 결혼식을 하게되며, 3별의 웨딩스레스, 2개의 반지 ( 1개는 어머니가 준비했고, 다른 하나는 그녀 자신이 준비), 3명의 신부 들러리, 3명의 Best Men, 한명의 Flower Girl, 그리고 부케를 든 신부와 결혼식후, 신혼여행은 '오스트랄리아'로 떠난다고 한다. 웨딩케이크는 그녀 자신이 손수 만들었으며, 집에서 구운 과자와 초콜렛 그리고 하객에게 줄 선물로는 Organic Tea를 준비 했다고 한다. 또 그녀는 비록 그녀 자신이 작성하긴 했지만, 혼인 서약도 낭독하게 되며, 천사로 분장한 그녀의 한친구가 이 결혼을 확인해 주는 선언서를 낭독하게 될 것이라고, 목요일 Star Paper에 보낸 e-mail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녀가 결혼식 축하연중, 전통적인 서양식 결혼예복, Hakka꽃 모양이 곁들인 Hakka결혼예복 그리고 일본의 전통의상인 Yukada 를 포함한,웨딩 드레스들을 입게 된다고 한다.

그녀의 결혼식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큰 벽걸이 계시판을 준비하여, 그곳에 그녀가 누구인가를 잘 나타낼수 있고 또 가장 좋아하는 기호품들을 장식하여 전시도 할것이라고 한다.
Lee's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Gender Study로 석사학위를 받은 Chen Wei-yih양은, 결혼은 그녀의 삶과 그녀 자신을 축하 하는것이 여권(Feminist)을 상징하는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처음에 이결혼생각은 내생일 축하파티와 Farewell Party를 뜻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됐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10대 소녀시절부터 30세가 될때를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그때가 되면 그녀 자신 스스로 굳게 홀로서서 세상을 살아갈수 있고, 삶의 걱정이나 두려움에 처해도 자신 스스로 용감하게 극복하여 삶을 이어갈수 잇을것으로 생각되는 아름다운 때가 될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생일이 가까워 오자 그녀 자신은 특별한 생일 파티를 하고 싶기에, 그녀는 그녀자신과 30세의 새로 태어난 자신과 결혼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품으면서 파티를 준비해왔는데, 결혼이라는것과, 내자신이 나와 결혼할수 있는 Concept이 어떤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준비 과정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3개월을 같이 살아본후 또 어떤 사람들은 3년 또는 5년 아니면 더 긴시간을 같이 지낸후 결혼을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견주어 볼때, 우리는 정말로 긴시간들을 서로 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타면 내자신과 결혼한다는게 이상할것도 없을것 아닌가?.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너자신을 위해 좀더 진취적이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전에 네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라고 인식시켜준다. 나에게 이번 결혼식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자신을 영원히 더 사랑하게 하는 일종의 Ceremony입니다" 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그녀도 좋은 남자만나 결혼하게 될것을 꿈꾸면 살아왔으나 Taiwan에서의 결혼이라는것은 여성에게 보이지 않는 사슬로 얽어매고, 공평하지 않은 억압을 주는 행위임을 알게 되면서, 이러한 환영받지 못할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길을 택했다고 한다.



http://www.thestar.com/news/world/article/886068--self-marriage-may-revolutionize-the-idea-of-tying-the-knot?bn=1


어제밤의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금요일 날씨는 온도는 조금 낮지만 비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8시가 가까워 오는 이 아침에, 이슬비인지, 가랑비인지 분간 안되게 초겨울 비가 내리면서 을씨년스럽게 대지를 적시고 있고, 그 조금 뒤로 보이는 넒은 온타리오 호수의 잔잔한 물위로는 한떼의 Swan떼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것인지? 아니면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기치못한 사건들이 그네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회의를 하는건지? 정중동 하는 모습이 나의 시선을 그곳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Thursday, November 04, 2010

컴퓨터와 Senior는 서로 필요하긴한데......때를 실기했기에.

"어제는 메일도 보내 보았어요. 참 신기하더만요."
"자꾸 사용해야지 그렇치 않으면 다 잊어먹어요. 자주 하세요."
"설명 들을때는 금방 다 알겠는데, 돌아서면 전연 생각이 안납니다."

" 글씨를 타자할때 한자 한자 찾아서 두둘겨야 하니, 시간은 너무 잘가더군요. 그런데 더 속상하게 만드는것은 어느 단추 하나를 나도 모르게 잘못 누르면 전부 없어져 버려, 몇시간을 헤맨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때 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선구자들임을 자랑으로 생각하셔야 해요. 많은 친지들이 컴퓨터 만질 생각을 못하고 있어요. 골치가 아프다나요"

"저는 그럴때 아이들에게 구원을 청할때가 있는데,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되더라구요"
옆에서 앉아 있던 나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 우선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법을 머리속에 암기할수만 있다면, 더 많이 효과를 볼수 있을텐데요. 저의 경우는 그랬읍니다."

어제가 화요일,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Senior들을 위해 '늘푸른 대학( Ever Green University)을 가을철이면 열어, 교회에 출석하는 Senior뿐만이 아니고, 토론토에 거주 하시는 ,60세 이상의 Senior분들이 함께 모여, 교회에서 짜놓은 프로그람에 따라, 하루를 즐기는 일명 노년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새 나도 그대열에 끼어 참석하고 있다. 젊은 남녀 봉사자들이, 이날 만큼은 하던일을 제껴놓고,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Senior들이 이날 만큼은 집안에서 하던 모든 잡다한일, 즉 손자손녀들 Baby Sitting 하는일, 집안일 돕는것, 아들 딸들이 하는 사업장에서 도와 주는일, 기타 등등의 일에 휩싸여 지내던 모든것을 훨훨 털고, 이곳에 나와서, 서로 못다한 애기를 나누기도 하고, 젊은 강사님들의 구수한 입담에 뱃속이 완전히 빈속이 될 정도로 웃기도 하고,세상 돌아가는 얘기, 그림도 그리고, Ballroom Dance 도 배우고, 하모니카를 불어대는 공부도 하고, 또 컴퓨터도 배우고..... 또 불편이 없도록 도와 주고, 간간히 간식을 만들어 제공해주고, 점심을 대접해 주는, 큰 일들을 해주어, 해가 가고 시간이 갈수록 노인 대학은 알맹이가 더 많이 영글어 가는것을 눈으로 볼수 있을 정도로 정착해 가고 있다.

점심은 보통 원탁 테이블에 6명 내지 8명 정도가 모여, 젊은 봉사자들이 정성으로 만들어 제공해 주는 음식으로 메뉴가 매주 바뀌는데, 어느 식당의 음식보다 맛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정성이 그속에 듬뿍 담겨져 같이 써빙 되기에, 오전내내 공부(?)에 지친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 역활을 해주고도 남는것 같다. 나보다 연장자 되시는, 한분이 옆에 있는 분에게 점심을 하면서 컴퓨터 얘기를 꺼낸것을 내가 나도 옆에서 듣고 대화를 한 내용중의 한 부분이 컴퓨터 였다. 한분은 젊어서는 조국을 위해 군에서 고급장성으로 봉사했고, 또 다른 한분은 일찍히 이곳에 이민와서 젊음을 이민의 뿌리 내리는데 바쳤던 분으로 알고 지내오던 사이이다. 젊었을때 그분의 머리회전이나 능력으로 보았을때 분명히 한가닥 하셨던 Elite들이었을텐데......왜 컴퓨터에서는 낯선 이방인인것 처럼 쩔쩔 매고, 안타까워 하시는것일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게(?) 그분들의 젊었을때와 나를 비교하면, 나는 그냥 보통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아 왔다는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젊었을때의 그분들의 능력면에서 본다면, 컴퓨터가 그렇게 괴물단지(?)처럼만은 아닐것 같은데.....

세상 모든 만사에는 때가 있다는것을 요즘은 참 많이 느낀다. 어렸을때, 아버님께서 항상 귀가 아프게 말씀 하시곤 했던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 이놈들아 젊음이 항상 있는줄 아느냐? 순간이야. 정신 차려서 지금 해야 할것을 안하면 이다음에는 하고 싶어도 안되고, 후회만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던 말씀인데, 이말씀을 캄퓨터를 만질때마다 대입해 본다. 결론은 나를 비롯한 Senior들은 컴퓨터를 마음데로 만지고 다룰수 있는 때를 실기 했다는 점이다. 굴뚝 산업시대를 살아왔던 Senior들에게는 가상의 세계를 날아 다니면서, 공상의 나래를 끝도 없이 펼쳐 그속에서 결과를 찾아야만 하는, 또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 컴퓨터와는 때가 맞지않는다는 것이다. 능력은 출중한데, 그능력을 컴퓨터에 사용할 Concept이 맞지않는다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 세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젊은이들세계에서는 한시라도 컴퓨터가 없으면 오히려 정신불안이 일어날 정도로 생활의 일부가 됐는데, 우리 Senior들에게는 하고는 싶지만, 큰 짐이 되여 가슴을 꽉 누르는게 바로 컴퓨터와 IT 산업의 산물이 아닐까?

나의 아내 Lunar는 컴퓨터를 Set-up 해 놓으면, Surfing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 음식만드는법, 값싸게 다닐수있는 여행지 찾는법, 기타 연속극 보는법 등등에서는 내가 그녀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타자를 전연 못하기에 다음것을 찾을 때에는 나를 꼭 호출(?)한다. 타자를 조금 그녀보다 잘 치기 때문이다. 빈말로라도 그것도 못하느냐고 한마디 건네면, 되게 텃세 한다고 되받아친다. 그래서 그녀가 간혹 고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멜이라도 보낼려면 꼭 나의 손을 빌리지 않을수 없기에 본의 아니게 그녀들과 같은 세계를 유영하는 기분을 만끽 할때도 있다. 물론 부부가 거의 같이 여행하고 친교를 하기에 서로 알고는 있지만..... 그친구들은 속도 모르고 Lunar가 보낸것으로 착각할것을 생각하면.....

내가 아직 어렸을, 20대 후반때, 공무원 하면서 영문과 한글 타자기 다루는법을 어쩌다가 익혔었는데, 그후 바쁜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십년간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컴퓨터가 보편화 되면서, 엄마 아빠도 상용 하시라고 딸아이가 하나 구해준 컴퓨터를 처음 대했을때, 저조그만 플라스틱으로 싸인 쇳덩이속에서 뭘 찾아 낸다는 것인가? 라고 의아해 했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서 한자 한자 두둘겨 보았었다. 마법의 상자처럼,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자판의 위치를 따라 누르면 글자가 그대로 나오는것을 보면서, " 아 그때에 타자기 치는 공부를 참 잘해 두었구나"라고 순간적으로 아버님이 하셨던 말씀을 떠 올리게 했었다. 그면에서는 때를 잘 맞추었기 때문에 머리속에 깊이 박혀,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이메일 보내는것은 Senior들중에서는 어느 누구못지 않게 빨리 그리고 비교적 정확히 보낼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Senior들과는 Concept이 완전히 다른 Cyber World에서는, 굴뚝산업시대의 지식은 사용되기엔 때를 실기(?)한 화려한 과거일 뿐임을,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나누었던, 이매일 작성에 관한 몇마디의 컴퓨터 이야기에서 긍지(?)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어쩔수 없이 공연을 마친 배우가 무대에서 사라지듯, Senior 인 나자신을 보면서, 복잡한 Cyber 세계를 정복 할려는 짐을 내려 놓고 이메일이라도 할수 있는게 위안이고 순리라고 자위 하면서, 마음은 안타깝지만, 그래야 남은 생애 편할것 같다고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