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5, 2021

청와대 간첩이 "돈줄 끊고 전담 경호팀 해체, 김덕홍 비운의 망명객 만들다니", 이런게 토사구팽이구나.

황장엽, 김덕홍은 당시에 남한에서는 꼭 필요한 거물들의 탈북이었었다. 그때 당시의 남한 대통령및 권력의 핵심들은, 좌파 정치꾼들이라서 그분들이 갖고온 자료를 맘껏 활용 하지도 않았고,  미국에서 초청하여, 갈려고 했던 기회도 다 막아서 그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후 "이북의 주체사상"을 만들었던 황장엽씨는 2010년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김덕홍씨는 이제 80대 후반의 삶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현재의 정권에서, 국가에서 신변보호 및 생활대책등등 모든 경호문제와 편의제공등의, 국가가 해야할일을 다 끊었다는 뉴스에 충격뿐이다.  김덕홍옹도 미국에서 초청했었지만, 결국 실행이 안됐는데 그이유는 굳이 설명안해도 국민들이 이해할테니까 생략한다.

돌아가신, 5.16주체세력의 중심이었던 김종필씨의 말을 빌리면, 이들 두분들은 "토사구팽"당한 것이다. 이번 뉴스를 보면서 탈북하여 남한에서 살고있는 상당수의 동포들은 앞날을 걱정할텐데, 특히 신변에 대한 위협을 많이 느낄것으로 예측된다. 걱정이다.

약 2년전, 어렵게 다 부서져가는 조그만 목선타고 남하했던 젊은 청년을, 간첩들로 우글거리는 현재의 정부는 그가 남한땅을 스스로 밟기도전에 눈에는 새까만 안대로 덮어 씌우고, 바로 호송차에 태워, 김정은의 지령데로, 휴전선 판문점으로 끌고가 김정은 Regime에 되돌려 보낸 집단인점을 감안할때, 김덕홍옹을 비롯한 탈북민들의 앞날이, 최소한 앞으로 1년 정도는, 풍전등화같은 생활의 연속이 될것이다.

또 며칠전에는 북한주민들에게 북한 외부의 소식을 전하고, 먹거리 그리고 미국 Dollar까지 보내주기위해, 띄우던 대형풍선 날려 보내기 운동을, 이들 김정은의 간첩집단들은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여 원천봉쇄하여, 이를 어길때는 중형에 처하고, 이악법에 미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조사단까지 구성하여 현정권의 친북정책에 성토와 모든 방법을 강구해서 그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외교는, 국제무대에서, 완전 왕따당해 그어느나라도 진정한 우방이요 동맹국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외톨이가되여  방황하고 있다. 그렇타고해서, 그들이 Love Call하면서 애걸하는 중국이나 북한이 환영하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 나라역시, 현정권을 부르조아물을 먹은놈들이라서, 믿을수 없다고 문전박대를 받고있다는것 또한 모르는 국민이 없다. 

"주체사상 창시자"의 탈북, 노동당 자료연구실 부실장 김덕홍옹의 탈북시에, 북한은 연일 남한이 납북해간 이들 두사람을 되돌려 보내라 아우성이었고,  김덕홍옹의 아내는 바로 총살형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황장엽씨 가족또한 똑같은 보복을 받는 소식에 인간적인 고통은 말로는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이두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던 지인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 다니면서 모진 고초를 겪었었다고 한다. 당시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들 두사람의 탈북으로 숙청산된 북한주민의 규모가 30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사이비 민주투사로 위장한 좌파 정부가, 황장엽, 김덕홍에 대해 외형적으로는 대접해주는척 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왜 탈북하여 남북간에 긴장조성를 유발 시켰느냐 등등의 압박성 조치를 취한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었지만, 언론에는 보도되지 못했었다. 

좌파정부의 수괴가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2000년 6월 취임)이 쓴 회고록에서, 납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당국간에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밝혔었다.  당시 대북특사팀으로 갔었던 국정원 고위간부는 "황장엽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겠다"라고 언급한 김정일의 말을 황장엽에게 전하자 "정신나가놈"이라했고, 김덕홍씨역시 "국정원이 김정일 심부름 하는 곳이냐?"라고 따졌다고 했는데, 물론 당시 언론 보도는 없었다. 이게 좌파정부의 실체였다.

걱정되는것은 지금이라도 김덕홍옹을 미국으로 보내주던가? 아니면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정부지원책은 계속되야 할것이며, 이것마져도 싫다면, 주위에서 보내는 온정의 손길은 막지 말기를 부탁한다. 물론 1년후에는 다 끝날일이지만, 그남은 일년이 걱정 돼서다. 참 더러운 자유대한민국의 실체네.  아래문장은 그대로 옮겨놓은 내용이다.

모든 것을 보장하고 도와줄 테니 망명만 결행해달라던 금석맹약(金石盟約)은 종잇장이 됐다. 입과 발을 묶더니 오랜 거처인 안가마저 살지 못하도록 다른 곳으로 내쫓았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줄 요량이라 여겼는데 지난 연말 마지막 돈줄마저 끊었다. 새해 벽두부터는 전담 경호팀의 해체를 추진 중이다. 지난 1997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탈북·망명한 김덕홍 전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에게 닥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82세의 노 망명객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모든 것을 보장하고 도와줄 테니 망명만 결행해달라던 금석맹약(金石盟約)은 종잇장이 됐다. 입과 발을 묶더니 오랜 거처인 안가마저 살지 못하도록 다른 곳으로 내쫓았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줄 요량이라 여겼는데 지난 연말 마지막 돈줄마저 끊었다. 새해 벽두부터는 전담 경호팀의 해체를 추진 중이다. 지난 1997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탈북·망명한 김덕홍 전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에게 닥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82세의 노 망명객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북한 민주화’ 활동 지원 약속 믿고
1997년 베이징 한국 대사관에 망명
황장엽 홀대 이어 와병 김덕홍에게
문자로 해촉 통보, 신변보호 비상

“속 깊은 아내는 내가 평양을 떠나던 1997년 1월 25일 아침에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 아내 박봉실은 우리의 정치 망명이 공표되던 날 자결을 택했다.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속대가 여간 아니게 굳은 내 아내는 그것으로써 곧 엄습할 어마어마한 고통과 굴욕과 두려움에 항거하고자 했을 것이며,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절하게 감내해야 할 가장 큰 빚과 살을 저미는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려 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아내는 세월이 갈수록 나를 더더욱 아프게 한다.” (김덕홍 회고록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중에서)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연구실 부실장은 엄청난 망명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국행 직후 아내의 죽음을 접해야 했던 건 황장엽(2010년 사망) 전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체사상의 망명’ 또는 ‘북한 최고위급 동반 탈북’으로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뒤에는 두 사람의 피눈물이 배어 있었다. 다른 가족·친지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생사를 모르게 됐고, 제자들이나 친분이 있던 지인들은 모진 고초를 겪었다. 당시 우리 정보 당국은 ‘황장엽 여독 청산’의 대상 규모가 3000명 정도라고 파악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을 리 없는데 망명을 결행한 건 1996년 2월 황 전 비서의 모스크바 주체사상 강연이 기폭제가 됐다. “주체사상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란 황 전 비서의 언급은 북한 요원들에 의해 포착됐고 김정일은 냉랭해졌다. 황장엽은 김덕홍에게 “김정일이 나를 놔둘 것 같지 않다. 욕보기 전에 자살할 수 있게 독약을 구해달라”고 했고, 결국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막판 결심을 굳히는 데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보낸 친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지고 황장엽과 김덕홍의 민간차원 대북사업을 지원하고 신변 안전을 보장하며 황장엽에게는 장관급 대우를, 김덕홍에게는 차관급 대우를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는 게 김 전 부실장의 전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대통령의 약속은 이젠 옛말이 됐다.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위해 김덕홍 전 부실장에게 고문직을 부여해온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측은 지난해 12월 11일자로 “해촉 통보, 해촉 위로금 ○○○만원 지급 예정”이란 짤막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가정보원 산하 조직인 이 연구원은 과거 황장엽 전 비서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해촉 통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11월 원장으로 부임한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문재인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 차원에서 김덕홍 밀어내기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또 최근 친여 성향의 국정원장 출신 인사가 연구원 명예이사장으로 위촉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장까지 지낸 원로 인사의 용돈 벌이를 위해 김 전 실장의 돈줄을 끊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국전연 측은 “계약만료 건은 당사자가 장기간 고문으로 재직해온 점을 고려해 연구원이 10월 말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연구 자문과 경영 조언을 위해 규정에 따라 명예이사장과 고문직을 운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변안전 보장 차원에서 이뤄져 온 경호가 대폭 축소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는 최근 청이 맡아온 김덕홍 전 부실장에 대한 경호를 강남경찰서로 이관한다고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오랜 기간 김 전 부실장의 의전·경호를 맡아온 전담팀이 해체된다. 김 전 부실장의 측근은 “장기간 함께하며 자식처럼 여겨온 전담팀이 떠나면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호팀 안팎에서도 북한 최고지도자에 의해 ‘스탠딩 오더’(시한 없이 언젠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명령)가 내려진 상태인 탈북 인사의 보호에 빈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시하는 진보성향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황장엽·김덕홍씨를 비롯한 탈북인사들에 대한 압박성 조치가 이뤄지는 데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김 전 부실장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임동원 국정원장이 부임하고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당국과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대북 특사팀으로 간 국정원 고위 간부가 “황장엽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한 김정일의 말을 전해오자 황 전 비서가 “정신 나간 놈”이라고 욕했고, 김 전 부실장도 “국정원이 김정일 심부름하는 곳이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그해 11월 ▶외부강연과 출판 금지 ▶정치인·언론인 접촉 금지 ▶대북 민주화 사업 중단 등을 통보했고, 연구소 이사장직 해임 등을 언론에 발표했다. 또 2001년 미 의회와 단체 등에서 6건의 미국 방문 초청장을 받았지만, 신변안전 등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져 2003년 7월 국정원은 “황, 김을 국정원 안가에서 사회로 배출한다”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인권 단체가 통제·구금 의혹을 제기한다”는 황당한 사유였고, 아무런 존칭이나 직책 거론 없이 ‘황, 김’으로 불렀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황 전 비서의 미국 행을 마지못해 허용했지만, 김 전 부실장의 방미는 ‘신원조사 미 회보’ 등의 이유로 끝내 불허했다.
 
김 전 부실장의 명예가 회복된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인 2014년 9월이다. 당시 관련 인증서를 가지고 온 정부 당국자는 “김 선생은 대한민국에 매우 소중한 분입니다. 그러니 건강을 꼭 회복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상황은 손바닥 뒤집듯 해졌다.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하직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시켜준 명예만큼은 가슴 깊이 안고 황장엽 형님을 찾아갈 생각”이라던 노 망명객의 바람은 다시 바람 속 등불이 됐다.
 
박봉주 격려한 김정은, 새로운 경제라인에 동기 부여
박봉주 격려한 김정은

박봉주 격려한 김정은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던 박봉주(82) 전 노동당 부위원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식료공장 지배인을 시작으로 북한의 대표적 석유화학 공장의 책임비서를 거쳐 당 경공업 부부장으로 발탁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박봉주는 1984년 외국과의 합작투자를 위한 합영법 제정을 주도했던 강성산과 함께 북한에서 두 번이나 총리직에 오른 인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물 경제에 밝고 추진력 있는 박봉주를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시행 이듬해인 2003년 총리로 발탁했고, 김정은도 ‘경제 및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2013년 그를 총리에 임명했다.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에 오르며 김정은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지만 지난해 각종 경제현장을 방문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정치국 상무위원 중 최고령이던 그는 지난 5일 개막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모든 당직을 내려놓았다. 13일 조선중앙TV는 전날 당 8차 대회 폐막 소식을 전하며 새로 선출된 당 중앙 간부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던 김정은 총비서가 박봉주와 악수하고 귀엣말을 나누며 웃는 장면(사진)을 내보냈다. 경제실패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은 노구를 이끌고 최근까지 주요 경제현장을 시찰하던 박봉주를 김정은이 직접 격려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연구팀 연구위원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상황에서 경제 원로가 박수를 받으며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 구성된 경제라인에 힘을 실어주고 세대교체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출처: 중앙일보] 돈줄 끊고 전담 경호팀 해체…김덕홍 비운의 망명객 되나 

https://news.joins.com/article/23970930?cloc=joongang-home-newslis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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