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외무장관한 영향력이 많이 작용한것 같다. 문재인 정권들어서 "친일행적"을 조작하여, 문재인편에 서있지 않은 국민들이나 국가에 헌신한 분들은 전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는것, 많은 국민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을 편갈라놓는 정책, 망국적 정책, 사회주의 정책의 민낯이었다.
얼마전 돌아가신 6.25전쟁의 영웅, 주한 미국대사들이 새로 부임하면 다 찾아뵙고, 무릎꿇고,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예의를 갖춰 존경하는것 보다 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백선엽 장군의 무훈담을 존경하고 고마움을 표시했었던 분인데, 문재인 좌파 패거리들은, 그분이 친일 했다고, 즉 일본군 장교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것을 반대하여, 동작동 묘지에 모시는것을 반대하여, 결국 먼길을 돌아, 대전현충원에 겨우 모셨던, 가슴아픈 기억속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전에, 천지가 진동할 사건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터졌다.
똑같은 일본군으로 근무한, 강경화 외무장관의 시아버지,이기을씨는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아, 증서를 받았다고 한다. 광복회장 김원웅의 괴변을 빌린다면, 당시에는 먹고살기위해 직업을 갖고, 일제에 협력한것은 피치못할 현실이었음을 이해해 달라는, 자기변명을 늘어놓은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기을씨는 먹고살기위한 생업의 수단으로 인정해준것이다. 문재인 편에선 강경화 영향이다.
강경화의 시아버지는 일본군 학병으로 근무했었을 뿐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일본군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한 경험을 발판 삼아,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군에 입대하여 창군에 헌신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일성휘하의 북괴군들과 3년간의 긴싸움을 하면서, 맥아더장군의 지휘하에 있던 미군들과 유엔군들과 함께 싸워 북괴군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킨 역전의 용사에게는, 친일부역을 했다는 억지 놀리를 꿰어마추어, 그렇게 홀대를 했었다. 문재인의 반대편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와싱턴 국립묘지의 전시관에 가면, 6.25전쟁영웅으로, 백선엽장군의 기록이 잘 보관돼 있고, 내가 기억하는 또한분은 정일권 전국무총리다. 이두분은 문재인과 그좌파정부에서는 반패편으로 분류돼여 있다. 그러나 강경화 시아버지, 이기을에 대한 기록은 전연 보이지 않는다.
강경화의 시아버지이자, 남편 이일병씨 아버지의 업적(?)과 백선엽장군의 업적을 똑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봤을때, 과연 누가더 목숨걸고 우리 대한민국을 지켰나를 쉽게 비교할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패거리들은 강경화의 시아버지, 이기을씨를 독립유공자로 우대했고, 백선엽장군은 친일부역했다는 구실을 부쳐 독립유공자 명단에서 제외 시켰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정부가 기준으로 삼는 "독립유공자"가 되기위해서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근무한 경력이 꼭 필요하다는것을 증명해준것이다. 일본군 학도병으로 근무했었지만, 혹시라도 친일파로 낙인 찍힐까봐서, 독립유공자 신청을 못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학도병으로 근무했다는 증명서나 이를 증명할만한 비슷한 자료가 있다면 지참하고, 청와대 문재인에게 달려가,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 하시기를 권한다.
아참, 한가지 빠진게 있다. 학도병으로 독립유공자 신청을 할려면, 과거에 한번 신청했다가 실격됐던 경력을 첨가하면 더 좋을것 같다는 확신이 선다. 참으로 엿같은, 아니 고무줄같은 문재인정부의 정책에 합당해야 하니까....
이엄중한 시기에 독립유공자이자, 강경화의 남편 이일병씨는 아직도 Fancy Boat를 구입하기위해,오래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쇼핑중에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구입한 보트가 국내에 유입되면, 굉장한 뉴스거리가 될것이다. 독립유공자의 아들이 후광을 업고 있는 돈으로 호화판 보트하나 구입한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테니까.
원전기술 세계 일등, 조선기술 세계일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Fancy Boat제작 기술이 없다는 핑계를 믿거나 말거나 내뱉고 미국갔으니까... 받는 유공자 연금으로 연료는 구입할테고...
지난달 사망, 유족에 한달 74만원 지급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시아버지 고(故) 이기을 연세대 명예교수가 독립유공자로 등록될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이 교수는 1983년 독립유공자 등록을 시도했지만 일본군 학병 이력으로 심사에 탈락했고, 최근 다시 서훈을 신청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 교수가 최근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으로 결정됐고,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관련 안건이 통과됐다”며 “오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교수는 1941년 독립 등에 관한 토론을 한 이른바 ‘중앙고보 5인 독서회’ 사건에 가담해 수개월 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1943년 일본군 학병이 돼 일본 가고시마에 배치됐는데, 1983년 독립유공자 신청 당시엔 이 이력 때문에 서훈 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 교수가 당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던 특수성이 감안됐다”며 “포상 기준도 이전에 비해 완화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일본군 학병 이력으로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던 이 교수가 현 정부에선 독립유공자가 됨에 따라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이 교수의 훈격이 인정됨에 따라 유족은 매월 74만원의 보훈 급여를 받게 됐다. 독립유공자에게는 보훈급여와 임대주택 우선 공급, 국립묘지 안장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0/11/11/OABBPJ6XHZC4PAV3IOJOOSRQ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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