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50대 전후의 국민들은 이승만, 박정희 두대통령을 실질적으로 목격했었거나, 최소한 부모님 또는 연장자들로 부터 들어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경우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3.15부정선거였었다. 당시에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Rumour는 지금생각해보면, 너무도 황당한 내용이었지만, 당시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말을 믿고, 이승만 대통령을 비난하고, 하야를 주장하고, 마침내는 4.19혁명으로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경무대에서 스스로 걸어나와, 어렵게 마련해준 비행기편을 이용하여, 하와이로 백발의 머리를 휘날리면서, 프란체스카 할머니와 함께 망명의 길을 떠나야만 했었다. 1950대말 나는 국민학교 5-6학년이었었다. 후에 아버지로 부터 들은 얘기로는, 대통령이 믿고 부렸던 보좌관들이 모의 하여 영구집권을 위한 Conspiracy를 꾸며, 실질적으로 대통령은 자세한 내막을 모른체 3.15부정 선거의 몸통으로 부각됐었다는 내용이었었다. 최인규내무장관이 주관 했었지만, 최종책임은 리더가 져야 하기에....
그황당한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중궁궐에서 살았기에 시장에서 서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는지를 전연몰라, 대통령이 시장 시찰나갈때면, 보좌관들이 미리 시장을 순회하면서, 상인들에게 팔리는 물건값을 최소한 절반이하의 값으로 대답하라 시켜, 대통령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피부로 느끼지못하는 호화판 생활을 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생활은, 프란체스카 할머니가 구멍난 양말을 수선하기위해 돋보기 안경을 끼고, 필라멘트가 나간 폐전구를 양말속에 넣고, 손수 바느질을 해서 다시 또 신었었다는, 가슴 미여지는,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는 뒷얘기를, 그분들이 망명한 후에 세상에 알려져, 당시의 젊은 대학생들을 뺀, 중장년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을 창설한 건국의 진정한 아버지였음을 알았었지만, 그때는 이미한국에 계시지 않았었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대한민국을 창설하지 않았었다면? 하고 Subjunctive Mood를 적용시켜 본다면...둘로 갈라진 국민들의 정치적 사상, 즉 찬탁, 반탁으로 나뉘어 싸우다, 어쩌면 지금 우리국민들이 살고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하에서 Freedom의 맛을 느낄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다.
4.19혁명의 환호도 한순간, 아직 민도가 낮은 국민들에게 당시의 정치꾼들은 선거에서 선거뇌물 공세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뇌물은 거의가 다 고무신한켤레, 빨래비누, 아니면 시장바닥에서 국밥을 한그릇씩 제공하는, 지금의 기준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유치한 뇌물공세에 유권자들은 표를 팔아먹어, 선거결과는 "도로아미타불"의 연속이었었다. 더이상은 참을수 없어, 당시 군수기지 사령관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한강을 건너서, 청와대와 방송국을 선점하고, 혁명공약을 발표하고, 군정시대의 막을 올렸었다. 국민들의 많은 희생위에서 밥상을 잘 차려 주었지만, 정치꾼들은, 지금 현재의 정치판처럼, 패거리 싸움질만 해서, 기아선상에서 헤여나지 못할것이라는것을 인지한, 박정희 당시 군수기지사령관이 분연히 일어나 구국의 휏불에 불을 지폈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I&nNewsNumb=201303100034
내기억으로는 그는 바로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도와 달라는 도움의 손길을 케네디 대통령에게 내밀었지만, 내가 알기로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되돌아 왔었다.
4.19혁명이후, 국민들은 무조건 "자유를 달라 그렇치 않으면 죽음을 달라"라고 무조건 떠들고, 일은 하지 않고.... 그런 악순환의 되풀이를 더이상은 놔둘수 없어,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치꾼들을 제압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재건에 온갖 역량을 다 쏟기시작하면서, 국민들의 일부 자유를 제한하면서, 산업의 현장에서 뛰도록 여건 만들기에 올인 했었다. 나같은 서민들은 일상활동에 아무런 제약을 느끼지 못했었다.
많은 정치꾼들, 특히 김대중, 김영삼 같은 이들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현장에 달려가 불도져의 Shovel앞에 벌렁 드러누워, 방해하면서, "차도없는데 고속도로는 왜 만드느냐?"라는 선동을 서슴지 않았었다. "군발이들이 정권을 잡더니 자기네들이 고속도로 드라이빙을 즐길려고..."라고 국민들과 이간질을 시키는데 하루해가 뜨고 지고 그런 시간을 보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에 개의지 않고 계속 밀어 부치고, 포항제철을 일본의 자본과 기술협조속에 건설하고, 창원 공업단지를 만들고, 중앙선 산업선 전철화, 그리고 곧이어서 서울시 지하철을 건설하기 시작했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태준 포철 사장이 포철을 건설하는데, 유명한 두명의 선동꾼정치인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정치꾼들이 툭하면 포항에 찾아와 뇌물을 요구하자, 박사장은 청와대를 찾아가 "각하 그만 사직할랍니다. 정치꾼들의 돈요구와 공갈 협박에 도저히 이대로는 사장을 하기 힘들다"라고 하자, 조용히 듣고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특명이 표시된 문구를 적고, 밑에 서명한 종이 한장을 건네 주면서, 격려시키고 다시 되돌려 보냈다. 그게 훗날 알려지기로는 이조시대에 암행어사들이 지니고 다녔던 마패같은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뒤로는 정치꾼들의 정치적 작난을 다 막아, 오늘날의 포항제철의 신화를 써내려가는, 일본에서도 부러워 하는, 세계적 제철소로 만든 것이다. 즉 건설자금이 한푼도 옆으로 새지않고 다 건설에 투입됐다는 신화를 썼던 것이다.
당시 중국의 등소평은, 한국에서 가져올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포항제철의 박태준은 꼭 할수만 있다면 중국으로 모셔오고싶은 인물이다라고 높이 평가했었다고 한다. 박정희대통령이 졸지에 돌아가시고, 새정부는 퇴임한 박태준사장의 집을 강제압수수색하는 권력의 칼을 들이댔으나, 아마도 포항제철 건설현장에 오지 못하도록 철퇴를 내린 앙갚음으로, 그들이 초점을 둔 비자금같은 부정한 재물은 한푼도 발견하지 못했었다는 후일담에 서글픈 생각뿐이었었다.
정치꾼들, 특히 김대중은 미국및 일본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박정희 독재정권을 계속 비난했었다. 많은 국민들도 김대중의 선동적 발언에 감동을 받고 박정권 반대대열에 합류하는 그사이에, 다시는 보릿고개를 후손들에게는 유산으로 물려주지 말자는 맹세비슷한 서약을 거의 매일 아침 일상을 시작할때, 복창하면서, 각자의 일터에서 피땀을 흘렸었다.
사실은 김대중이의 목숨을 박정희 대통령이 살려주어 후에 대통령까지 했었다. 일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근거도 없이, 독재정권을 하면서 도적질해 먹는다고 비난을 퍼붓는 악의에 찬 선동질을 더이상은 참고 볼수없어, 기관원들이 납치하여 현해탄 한가운데서 수장할 계획임을 접한 대통령은 급히 말리고, 서울에 도착하자 바로 동교동 자택으로 돌려보낸 얘기는, 현재의 문재인 좌파대통령이 두명의 전직 대통령의 남은 생을 감옥에서 마감하도록 하고 있는것과 많은 비교가 된다.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권력남용죄를....
김영삼같은 선동꾼은 경제건설로 잘살게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노력과 보릿고개를 없앤 그업적을 평한다는 칭찬소리에 "박정희가 했나? 노동자들이 이룩한 업적이지..."라는 해서는 안될 견소리를 국민들을 향해 선동질 하곤 했었다. 세계 어느나라 역사를 봐도 리더가 노동현장에서 매일같이 행동했었다는 기록은 없다. 10년 아니 백년후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인 리더쉽이 중요한 것이지...
전세계가 경제성장율이 좋지 않을때 평균 매년 7-9%씩 성장하여, 전세계로 부터 한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칭송하는데 박수를 아끼지 않았었다. 박대통령의 업적을 길이 보전하기위해 최소한 그분의 이름을 딴 "박정희국제공항"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리핀은 아퀴노공항, 케네디공항, 히드로공항, 터키에는Artaturk 공항 등등 수없이 많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9/10/blog-post_28.html
그러나 정치적 반대 세력들은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을 경제적 Foundation을 만들어 줬고 보릿고개를 영원히 추방한 업적은 다 시궁창에 처박고, 오직 "독재자"라는 점만을 부각시켜, 폄하 하는데 오늘도 혈안이다.
당시 아시아의 4룡( Four Dragons)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나라들중에서 경제적 성취도를 이룬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었다. 필리핀은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었지만, 정치꾼들의 편가르기식 싸움으로 지금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돼는 가난한 나라로 주져 앉아 있다.
분명히 공,과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봤을때, 잘한 업적이 그과를 덮고도 남는다면, 당연히 그업적을 추겨 세워 후손들에게 귀감이 될수있는 국가적 리더로 묘사하여 전수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노예를 해방 시킨 영웅으로 칭송받는, 링컨은 개인적으로 부리던 노예가 300명이 넘었었다. 특히 미국의 45명의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는 거의 다 미국의 영웅으로 묘사돼있고, 후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빌클링턴 대통령도 경제를 회생시킨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그의 Sex Scandal은 미국뿐만이 아니고 전세계를 발칵 뒤집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었고, 끝내는 탄핵까지 갔었지만, 그러한 잘못한 실수는 전연 언급이 없고, 업적만 부각시키는 미국인들의 리더들에 대한 존경심은 우리가 하루바삐 본받아야할 숙제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0/01/40-ranking-60.html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후, 정치꾼들은 혹시라도 박대통령이 부정한 방법으로 재화를 축적해 놨을것으로 짐작하고, 스위스 비밀은행까지 다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고, 청와대 들어가기전에 소유하고 있었던 집한채뿐이었었다. 어쨋던 우리대한민국에 "박정희"대통령이 계셨다는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큰 축복이었고, 행운이었다. 김문수씨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짧은 멘트는 두고 두고 음미해야 할 금언이라고 할수 있겠다.
우리 대한민국이 앞으로 더 살아갈수있는 길은, 현재 수준의 모든 Technology를 계승하여 계속 발전시키면 충분하다. 현재 정치꾼들이 조그만 정신 차려서 현재의 수준에서 1%만 Up 시키면 우리대한민국이 스위스 이상으로 잘사는 국가로 우뚝서는것은 단 1-2년 사이에 가능하다는 확신이 나에게는 항상 있다. 우리 모두, 특히 정치꾼들은 정신차리고, 한발 뒤로 물러서서 더 넓게 보고 더깊이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 정적들을 무조건 죽이려 하지 말고....행운을 빈다.
박용진 의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것 잊지 않는다.
연세대 온라인 강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재선·서울 강북을) 의원은 12일 “정치는 미래를 향해야 한다. 정치는 미래 세대의 것”이라며 “선동, 대립, 갈등이 아니라 통합, 설득의 길로, 그리고 문제 해결과 개혁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연세대학교 학부생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워크숍’ 온라인 강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미래지향적 정치인의 사례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들었다. 두 전직 대통령을 ‘친일’ ‘독재’의 장본인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민주당에선 이례적인 평가다.
박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은 초가집으로 학교 지을 돈도 없던 나라에서 교육이 국민의 의무이고, 무상으로 해야 한다는 걸 교육법에 명시했다”며 “이는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은 물론 여러 과오가 많은 분이긴 하다”면서도 “한글을 가르치고 학문을 가르치려는 일에 전력했던 계몽가로서, (이 대통령이) ‘교육 입국’이라는 자기 생각을 반영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군사 독재, 반 인권은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가 ‘산업 입국’의 길을 닦기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깔았다”고 했다. 이어 “그때 대한민국에 바퀴 달린 자동차가 수천 대밖에 안 됐다”며 “(고속도로 필요성을) 국민이 이해 못하고 야당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가 깔렸기 때문에 대한민국 수출, 물류 대동맥이 만들어져 10~20년 뒤를 준비했다”고 했다.
박 의원은 미래지향적 지도자의 사례로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한 김대중 전 대통령, 정치적 반대를 예상하고도 대연정을 제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 통합과 화해의 대표적 리더십으로 미국 워싱턴 초대 대통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박 의원은 최근 타계한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가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사례를 이야기하며 “외롭고 힘들고 욕을 먹더라도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또박또박 잘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에 대한 과가 있더라도 한국전쟁에서 그가 세운 공을 인정해서 현충원에 잘 모시면 된다”며 “'박용진 너는 친일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냐'는 식의 조롱도 있었는데, 정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70년 전 (친일 등) 문제는 그것대로 평가하고 기록하면 되는 것”이라며 “미래로 가는 과정에서 과거가 발목을 잡거나 과거 문제로 서로 다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가 아등바등 싸움만 하고 있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못하고 있다”며 ‘토착 왜구다!’ ‘신종 적폐다!’ ‘내로남불한다!’ 면서 서로 싸우고만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그래서 저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로남불 하지 말고 역지사지하는 정치인의 태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야당이 하면 잘못됐고, 여당이 하면 잘못됐고, 이런 식으로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 저격수’로 불리기도 하는 박 의원은 “재벌 개혁에 앞장서다 보니 사회주의자냐 공격받는 일도 많다”며 “유치원 3법 앞서서 하다 보니 또 유치원의 한유총과 같은 이익집단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 내에서 비판적인 언급을 할 때마다 ‘또 너는 내부 총질하냐?’ 하는 비판도 들을 때가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정치의 리더, 공동체의 리더는 그 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이 맞는다”며 “(리더는) 기득권, 주류 질서로부터 자유롭고, 포섭되지 않은 사람이어야 된다. 그래야 더 자유롭게 미래 질서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또 자기의 생각과 소신을 제대로 펼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기존 질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쓸데없는 짓 한다!’ ‘빨갱이 아냐?’ 라고 욕하게 돼 있는데, (지도자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뚫고 나갈 용기와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2020/11/12/N2KCVRSQBVCCZEJZGLAMGIM7HU/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