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은 지난달 20일 현 정부가 조기 폐쇄 결정을 한 월성 원전(原電) 1호기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22일 이 사건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보냈다. 감사원 자료는 총 70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수사 참고 자료’를 받아본 검찰 내부에선 자료의 분량보다 그 형식이 더 화제가 됐다고 한다. 자료가 두서없이 나열돼 있는 게 아니라 사건 개요와 관련자들의 역할, 적용 가능 법조항 등 사건 전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 “꼭 법원 판결문 같은 자료” “법률가의 솜씨”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원로 변호사는 “법원장 출신인 최재형 감사원장이 이 사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이 2018년 월성 원전(原電) 1호기의 ‘한시적 가동’ 필요성을 보고한 산업부 담당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하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지시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감사원이 확보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이후 백 전 장관은 ‘즉시 중단’으로 수정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리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월성 1호기는 작년 12월 가동을 영구 정지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부한 월성 1호기 관련 ‘수사 참고 자료’에 현 정권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밀어붙인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감사원은 당시 의사 결정 과정의 책임자급인 백 전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 등 고위 공직자 4명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있는 사실상 ‘수사 대상’으로 명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수사 참고 자료’에 2018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5명 안팎의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 등의 이름을 적어 검찰에 송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자료에서 이들이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부당 업무처리’ 정황이 있다고 밝히고,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역할, 지시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내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청와대 보좌관에게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계획을 물은 뒤, 청와대와 산업부, 한수원 관계자들이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를 실행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내부 문건, 관계자 진술 등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감사원은 그 다음 ‘소결(小結)’ 항목을 따로 만들어 이들 행동의 ‘범죄 개연성’을 요약 정리한 뒤, 적용 가능 법조항까지 적었다고 한다. 적용 가능한 법조항에는 형법의 직권남용, 업무방해, 증거인멸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들 각각의 ‘부당 업무 처리’ 내용과 핵심 범죄 혐의를 적은 ‘소결’ 내용을 범죄 사실로 뽑아내고, 감사원이 적시한 적용 가능 법조항까지 참고해 영장에 담으면 되기 때문에 검찰 입장에선 보다 신속한 영장 청구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은 감사원의 자료가 도착한 지 14일 만인 지난 5일 100여 명의 인력을 지원받아 정부세종청사 내 산업부와 경북 경주의 한수원 본사, 대구 가스공사 본사를 동시에 압수 수색했다. 검찰이 신속히 대규모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최재형 감사원장식 ‘판결문 참고 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영장전담판사를 지낸 한 부장판사는 “애당초 원 자료에 수사 포인트, 법률 검토 내용까지 담겨 있다면 그 내용을 추가 검토해 만든 검찰의 영장은 더 탄탄하고 세련될 수밖에 없다. 영장 발부 가능성도 당연히 더 높아진다”고 했다. 검찰이 최근 월성 1호기 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거의 전부 발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당은 검찰의 월성 1호기 관련 수사를 “정권을 겨냥한 정치 수사”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번 수사를 촉발한 건 ‘정치’가 아니라 국회의 감사 청구로 나온 감사원의 감사 결과라는 ‘팩트’라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