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5, 2022

尹이 끝낸 74년 '청와대 시대', G7경제대국위업달성염원, 욕심이 과하면 말로가 불행하다는 상징이었던 청와대시대끝.신의한수다.

문재인과 찌라시들이, 윤석렬 대통령의 집무실이전 의지를 꺽기위해 음양으로 방해를 했었지만 꺽지 못했었다.  

한번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하겠다고 약속과 계획을 세웠으면,  중도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이유를 들어 방향을 바꾸는,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취임초부터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깨버린 지난 74년간의 결과가 어떻게 국민들에게 보여 졌었고, 대통령 본인들의 은퇴후의 삶이 왜 평탄치 않았었던가를 윤석열 대통령은 아마도 뼈아프게 눈으로 보고, 겪었었던 것 같다.

시셋말로 '맨땅에 해딩'해야만 하는것 같은,  용산으로의 이전은, 그래서 전직 여러대통령들이 선거공약으로 청와대 이전공약 발표를 했었지만, 당선후에는 여러 이유를 들어 이전을 포기 했었던 것이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2/05/5-8.html

이제는 국민들의 품으로 되돌려주어, 국민들의 휴식처로 완전 개방된 청와대의 내부를, 언론들의 탐방기사를 종합해보면, 국민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던 여러 비밀(?)에 쌓여왔던 왕궁같은 집들이 이곳 저곳의 숲속에 가려져 있었던것을 보면서, 국사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집무실이라기 보다는, 옛왕조시대의 왕들이, 국민들의 신비속에서 호화판 생활을 했던, 그이상의 현대판 왕(대통령)이 되여,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겠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임기 끝나고 나갈때는, 가장 국민들위에서 국민들을 권력을 발휘 호령했었던 그기억에 사로잡혀, 어떻게 언행을 하는게 국민들을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인가를 망각하였기에, 권력이 다 떨어진 퇴임후의 삶이 평탄치 못하게 전개 됐었던 아픈 기억으로 점철됐었던 것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일부 국민들의 불평을 감수 하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데로 청와대를 국민들의 품으로 되돌려놓고, 휴식과 산책 그리고 현대판 왕조의 왕(?)들과 그가족들이 즐겼던 집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대선때의 공약을 지켰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현대판 왕실을 국민들 품에 되돌려준 그결정으로, 대통령으로서 누릴수 있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고생스럽지만, 현대판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행정 책임자로서의 굳은 심지를 보여준 그의 결단으로 봤을때, 5년후의 삶 역시 역대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서민적인 삶이 서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속에서 이어질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와대, 현대판 왕궁은 이제 완전히 국민들의 품으로 되돌아온 옛궁궐로 탈바꿈 되여, 국민들에게 휴식처 역활을 할뿐만 아니라, 현대와 미래를 살아갈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나라다'라는 체계를 세우는데, 74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내면서, 배운것을 이제부터는 행동으로 옮기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긍지를 마음속에 간직해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런게 바로 '신의 한수'로 여겨지며, 취임식날 갑자기 희망의 상징인 '영롱한 색상의 무지개'를 청명한 하늘에 만들어 국민들이 직접 보면서 느낄수 있게,  국민들에게 "아직도 대한민국은 내가 가이드하고 있다"라는 뜻을 느낄수 있도록 창조주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게 해주셨던 것으로 이해한다. 앞으로 재임기간동안, 경제와 외교 그리고 국방등등 모든 면에서 앞선 대통령과는 차원이 다른,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했었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신것 처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룬, 그래서 G7 경제대국의 위업을 일구어낸 윤석열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기원한다.  

2017년 5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로 거처를 옮긴 후 집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김정숙 여사의 배웅을 받고 있다. 뉴시스

2017년 5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로 거처를 옮긴 후 집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김정숙 여사의 배웅을 받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간 이어져온 ‘청와대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이 된다. 지난 6일 임시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가 승인되면서 ‘용산 시대’의 개막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은 취임 당일부터 용산 집무실을 쓴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강조했다”며 “여건이 되지 않으면 임시 집무실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면서 취임 당일부터 집무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 회의에서 ‘5월 9일 자정에 청와대를 떠날지, (마지막 밤을 보낸뒤)10일 오전 윤 당선인의 취임식장으로 갈지’가 논의되자 “하루를 여기 더 있고 싶은 대통령이 누가 있을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선인 측이 ‘5월 10일 0시 임기 시작과 동시에 청와대를 개방한다’고 한 데 대한 불편한 심경으로도 해석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시민 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될 청와대는 900여년간 ‘왕의 터’로 불려왔던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자리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 창건 때부터 후원(後苑ㆍ궁 안의 작은 동산)이 있었다. 앞서 고려 숙종 때인 1104년엔 청와대 자리에 남경(南京) 궁궐을 지었고, 1382년엔 5개월간 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청와대의 이전 명칭이던 경무대(景武臺)는  임진왜란때 소실됐던 경복궁을 1868년(고종 5년) 재건한 뒤 청와대 자리에 조성했던 후원의 이름이었다. 경무대 자리엔 일제강점기 때 조선 총독의 관저가 들어섰고, 존 리드 하지 미 군정 사령관도 경무대 관저를 썼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부가 경무대 현관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부가 경무대 현관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중앙포토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이 관저를 집무실 겸 생활공간으로 쓰면서 이름을 ‘경무대’로 칭했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경무대는 권력의 상징이 됐고, 1960년 취임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이를 청와대(靑瓦臺ㆍ청기왓집)로 바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직후인  1963년엔  금(金)을 뜻하는 ‘황와대(黃瓦臺)’로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온 적도 있다.

청와대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건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이뤄진 리모델링의 결과다. 당시 공사를 통해 관저와 집무실이 분리됐고 기자실 등이 신축됐다. 공사 과정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ㆍ천하 제일의 좋은 땅)’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74년간 청와대에는 이승만(1~3대)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4대)ㆍ박정희(5~9대)ㆍ최규하(10대)ㆍ전두환(11~12대)ㆍ노태우(13대)ㆍ김영삼(14대)ㆍ김대중(15대)ㆍ노무현(16대)ㆍ이명박(17대)ㆍ박근혜(18대)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19대)까지 총 12명의 대통령들이 거주하며 국정을 운영했다.

그런데 이들 ‘청와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는 평탄치 않았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ㆍ19로 하야해 하와이에서 생을 마쳤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5ㆍ16군사쿠데타로 하차한 뒤 반유신 운동 등으로 법정에 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총탄에 사망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신군부에 의해 8개월만에 물러났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후 구속됐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중 아들의 구속을 지켜봐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이명박 정부 때 진행됐던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구속돼 지금도 복역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탄핵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이 과정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여러차례 청와대 이전을 시도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구중궁궐’로 불린 청와대를 서울 정부청사로 이전하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요부처까지 충청권으로 옮기려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계획을 접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서울청사 이전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두차례 대선에서 ‘광화문 시대’를 약속했지만, 취임 1년반만에 공약을 파기하고 사과했다.

신행정수도 특별법의 위헌 결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도지사들의 간담회. 노 전 대통령의 왼쪽은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 중앙포토

신행정수도 특별법의 위헌 결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도지사들의 간담회. 노 전 대통령의 왼쪽은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 중앙포토

윤 당선인도 서울청사로의 이전을 검토하다 당선 뒤 이전지를 용산 국방부로 변경했다. 집무실 이전이 완료되면 윤 당선인은 첫 ‘용산 대통령’이 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청와대 시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는 근본적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불통의 구시대적 통치 시스템 때문”이라며 “집무실 이전을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닌 권력 분산과 소통, 통합 등 새로운 정치시스템 구축의 실질적 계기로 활용해야 한국 정치사의 의미 있는 변곡점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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