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Korea, Republic Of -- North and South Korea on Thursday separately marked the 70th anniversary of the start of the Korean War with largely subdued commemorations amid the coronavirus pandemic, a day after the North abruptly halted a pressure campaign against the South.

South Korea issued a joint statement with the United States, which fought alongside it during the 1950-53 war triggered by a surprise North Korean invasion. The U.S. still stations about 28,500 soldiers in South Korea in what North Korea views as a military threat.

In the statement, South Korean Defence Minister Jeong Kyeong-doo and U.S. Defence Secretary Mark T. Esper said they “commit to strengthening and adapting the alliance to meet present and future challenges” and urged North Korea to implement past disarmament pledges.


문대통령 6.25 70주년 기념식서 제창
한때 금지곡이었던 '늙은 군인의 노래'도 울려퍼져

문대통령이 6·25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6·25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KTV 캡쳐
문대통령이 6·25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6·25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KTV 캡쳐

25일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박정희 정권 당시 국방부 장관이 지정한 ‘1호 금지곡’이었다. 과거 이 노래가 금지됐던 주된 이유는 “군의 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꽃피고 눈 내리기/어언 30년”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이날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행사장에서 가수 윤도현의 목소리로 다시 불렸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가수 김민기가 1978년 발매한 앨범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에 수록됐다. 김민기는 군복무 시절에 30년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앞둔 선임하사의 요청으로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김민기 본인은 이 노래를 저항가로 만들지 않았지만, 유신 정권 때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하면서 반독재 투쟁 현장에서 많이 불렸다.

1978년 이 노래는 양희은의 앨범에 실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 음반은 판매금지됐다. ‘허무주의적 가사가 군기해이, 사기저하를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였다. 다른 해석도 있다. 노랫말에서 군인이 때로는 투사로 바꿔 불렸기 때문에 정권이 이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학가에서 ‘늙은 군인’은 군에 강제징집 당했다가, 전역해서 돌아온 운동권 간부들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노동자들은 김민기 작사·작곡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 바꿔 불렀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노동자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는 식이었다.

이날 유해 봉환식에서는 ‘6·25의 노래’도 제창됐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문 대통령은 이 노래를 참전 용사 및 현역 군인들과 함께 불렀다.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제70주년 행사에서 국군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뉴시스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제70주년 행사에서 국군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뉴시스


이날 6·25 70주년 행사는 ‘영웅에 대해 경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사회는 6·25전쟁 배경 드라마 ‘전우’의 주연배우 최수종씨와 국방홍보원 아나운서 정동미 대위가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귀환한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를 직접 맞았다. 유해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행사장에 들어섰다.

아래는 ‘늙은 군인의 노래’ 가사.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 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5/2020062505014.html

Jeong and other South Korean military leaders later paid their respects at a national cemetery in Seoul, where about 130,000 war-related dead, mostly South Korean soldiers, are buried or honoured.

They were given special permission to enter Seoul National Cemetery, which has imposed entry restrictions amid a resurgence of the coronavirus in recent weeks. The cemetery received about 530,000 visitors in June last year but only about 61,000 this month, according to cemetery officials.

A war museum in Seoul, normally a popular place to visit on the war's anniversary or on Memorial Day on June 6, remained shut Thursday.

In the evening, South Korea held a ceremony with 300 war veterans, bereaved relatives and government officials at a military airport near Seoul. It was far less than the 4,000 people who attended last year, according to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During the ceremony, President Moon Jae-in said he hopes North Korea will “boldly embark on an endeavour to end the most sorrowful war in world history.” He said the two Koreas must achieve peace first before being able to see the path to reunification.

North Korea marked the anniversary with visits to monuments to late soldiers and with anti-U.S. rhetoric and newspaper editorials praising its fighting in “the Fatherland Liberation War.”

An institute run by the North's Foreign Ministry said in a statement that “we will continue to build up our strength to overwhelm the persistent nuclear threats that the U.S. has launched at us.”

The main newspaper, Rodong Sinmun, said in an editorial that, “The spirit of defending the country in the 1950s which brought about a victory after defeating the aggressors is valuable mental heritage to be glorified forever, generation after generation.”

Seoul's Unification Ministry, which handles relations with North Korea, said there were no signs that North Korea had organized mass public events commemorating the anniversary.

North Korea considers July 27, the day when the war's armistice was signed in 1953, a bigger anniversary because it views it as the day of its war victory. But the North held a mass public rally in Pyongyang, its capital, on the 65th anniversary of the war's start in 2015, the Unification Ministry said.

Seventy years after the war's beginning, the Korean Peninsula remains technically in a state of war because the armistice that ended the fighting has yet to be replaced with a peace treaty. Animosity has deepened recently as North Korea resumed aggressive rhetoric toward South Korea, blew up a Seoul-built liaison office on its territory and threatened to take steps to nullify 2018 tension-reduction deals.

“Seventy years have passed but nothing has changed ... and we're tired of that,” Kim Young-man, the son of a South Korean soldier killed during the war, said at the Seoul cemetery.

Observers believe North Korea is trying to wrest concessions from Seoul and Washington amid stalled nuclear talks. Japanese Defence Minister Taro Kono told reporters Thursday that he believes North Korea might have attempted to divert public attention away from problems such as the coronavirus.

North Korea has steadfastly claimed it hasn't recorded a single virus case, but foreign experts are highly skeptical. They believe the pandemic worsened economic troubles in North Korea because it has closed its border with China, its biggest trading partner and economic pipeline.

On Wednesday, North Korea said leader Kim Jong Un put off planned steps to end the 2018 deals after he and other senior ruling party officials in charge of military affairs “took stock of the prevailing situation.”

Experts say North Korea may be trying to leave room for South Korean concessions or may be worried about a stronger response from Seoul, whose help it may need again when it wants to reach out to the United States for future talks.

The Korean War left millions of people dead, injured or missing and destroyed much of the two Koreas. About 36,000 U.S. soldiers were also killed.

During the military airport event, Moon reviewed an honour guard ceremony for the arrival from the United States of the remains of 147 South Korean soldiers killed during the war. North Korea earlier sent the remains to the U.S., where forensic reviews found they were South Korean. Moon said the return of “these valiant warriors” makes “us feel sad but proud” and that “we will engrave their names in our history.”

Associated Press journalists Chang Yong Jun in Seoul and Mari Yamaguchi in Tokyo contributed to this report.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 6·25전쟁 제70주년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참전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147분 용사의 유해를 모셨습니다. 서울공항은 영웅들의 귀환을 환영하는 가장 엄숙한 자리가 됐습니다.


용사들은 이제야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장을 되찾고, 7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슬프고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지체됐지만, 조국은 단 한 순간도 당신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예우를 다해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신 영웅들 중에는 이미 신원이 밝혀진 일곱 분이 계십니다. 모두 함경남도의 장진호 전투에서 산화하신 분들입니다.

고 김동성 일병, 고 김정용 일병, 고 박진실 일병, 고 정재술 일병, 고 최재익 일병, 고 하진호 일병, 고 오대영 이등중사의 이름을 역사에 새겨 넣겠습니다. 가족의 품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합니다.

참전용사 한분 한분의 헌신이 우리의 자유와 평화, 번영의 기반이 됐습니다. 그리움과 슬픔을 자긍심으로 견뎌온 유가족께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전우를 애타게 기다려온 생존 참전용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정부는 국민과 함께 호국의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12만3000 전사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낼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5000여 명의 참전용사들에게 미처 전달하지 못한 훈장을 수여했고, 생활조정수당을 비롯해 무공명예수당과 참전명예수당, 전몰용사 자녀수당을 대폭 인상했습니다.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의 예우에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영현단에는 우리가 찾아내어 미국으로 보내드릴 미군 전사자 여섯 분의 유해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미국을 비롯한 22개국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워싱턴 ‘추모의 벽’을 2022년까지 완공해 ‘위대한 동맹’이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리겠습니다.

제가 해외순방 중 만난 유엔 참전용사들은 한결 같이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우리의 발전에 자기 일처럼 큰 기쁨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참전용사들께 국민을 대표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고, 태국 참전용사들께는 ‘평화의 사도 메달’을 달아드렸습니다.

보훈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유엔참전국과 함께 하는 다양한 보훈사업을 통해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뜻깊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신 유엔참전국 정상들과 오늘 행사에 함께해주신 각국 대사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6·25전쟁은 오늘의 우리를 만든 전쟁입니다. 전쟁이 가져온 비극도, 전쟁을 이겨낸 의지도, 전쟁을 딛고 이룩한 경제성장의 자부심과 전쟁이 남긴 이념적 상처 모두 우리의 삶과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70년이 흘렀지만, 그대로 우리의 모습이 됐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화에 함께 맞서고 이겨내며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났습니다. 국난 앞에서 단합했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킬 힘을 길렀습니다.

‘가장 평범한 사람’을 ‘가장 위대한 애국자’로 만든 것도 6·25전쟁입니다. 농사를 짓다 말고, 학기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가족을 집에 남겨두고 떠난 우리의 이웃들이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서울을 수복한 영웅이 됐습니다. 국가의 존재가치를 체감하며 애국심이 고양됐고, 평화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도 6·25전쟁이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전쟁을 이겨낸 자부심과 군에서 익힌 기술로 전후 재건의 주축이 됐습니다. 전장에서 쓰러져간 전우들의 몫까지 대한민국을 사랑했고, 이웃과 가족들의 긍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6·25전쟁을 진정으로 기념할 수 없습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의 위협은 계속되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위협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보이지 않는 반목과도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참전용사의 딸이고, 피난민의 아들입니다. 전쟁은 국토 곳곳에 상흔을 남기며, 아직도 한 개인의 삶과 한 가족의 역사에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그것은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근면함으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정신으로 다양하게 표출됐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하나의 마음은, 이 땅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손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6·25전쟁을 세대와 이념을 통합하는 모두의 역사적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 이 오래된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는 것이 ‘종전’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70년 전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유엔 참전용사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 모두의 염원이기도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 발발 10시간 만에 결의문을 채택해 ‘북한군의 침략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촉구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위해 역사상 최초의 ‘유엔 집단안보’를 발동했습니다. 세계가 함께 고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자유와 평화, 번영의 뿌리가 된 수많은 희생에 대한 기억과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독립선열의 정신이 호국영령의 정신으로 이어져 다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거대한 정신이 됐듯, 6·25전쟁에서 실천한 애국과 가슴에 담은 자유민주주의를 평화와 번영의 동력으로 되살려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전쟁을 기념하는 길입니다.

국민 여러분, 6·25전쟁으로 국군 13만8000명이 전사했습니다. 45만 명이 부상당했고, 2만5000명이 실종됐습니다.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학살·부상으로 희생됐습니다. 10만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됐으며, 320만 명이 고향을 떠나고, 1000만 명의 국민이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했고, 경제적으로도 참혹한 피해를 안겼습니다. 산업시설의 80%가 파괴됐고, 당시 2년 치 국민소득에 달하는 재산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사회경제의 기반과 국민의 삶의 터전이 무너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과 북은 긴 세월 냉전의 최전방에서 맞서며 국력을 소모해야만 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전쟁의 아픔을 겪는 동안, 오히려 전쟁특수를 누린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후 경제의 재건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원조에 의존해 복구와 재건에 힘썼고 경공업·중화학공업·ICT(정보통신기술)산업을 차례로 육성하며, 선진국을 따라잡기까지 꼬박 70년이 걸렸습니다.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불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폐허에서 일어나 국민소득 3만 불이 넘는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고,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제 국민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국민을 지켜낼 만큼 강해졌습니다. 평화를 만들어낼 만큼 강한 힘과 정신을 가졌습니다. 우리 군은 어떤 위협도 막아낼 힘이 있습니다.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우리는 두 번 다시 단 한 뼘의 영토·영해·영공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굳건한 한미동맹 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도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반드시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갈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참전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전쟁을 반대합니다.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습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며, 함께 잘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이좋은 이웃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초·중등 ‘피난학교’를 세웠고, 여러 지역에서 ‘전시연합대학’을 운영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했고, 평화를 지키는 힘을 기르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남보다 앞서 준비하며,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전쟁을 겪은 부모세대와 새로운 70년을 열어갈 후세들 모두에게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반드시 이뤄야 할 책무입니다. 8000만 겨레 모두의 숙원입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랍니다.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90624000442

https://www.cp24.com/world/two-koreas-mark-war-anniversary-after-pause-in-rising-tensions-1.4999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