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2, 2020

포청전,김정렴 비서실장 "청와대 봉투, 갖고나가지 말라". 이젠 누가 대신해줄까? 박정희시대의 마지막증인 영면


지금쯤 모든 삶의 고통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고 계시리라 믿고싶습니다만....
나라를 걱정하시는 당신의 그모습을 연상해 보면,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면서, 한반도에서 살아가고있는 후손들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는 그시선이 평화롭기 보다는, 거의 감겨진 눈동자를 통해 아스라히 보이는 금수강산(?)은 무법천지, 부정선거로 금뱃지달고 모여든 범죄경력 또는 혐의를 받는자들로 우글거리는 여의도 국회의사당건물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진정으로 원했던, 국사를 돌보는 일꾼들의 참모습은 이런게 아니였을텐데..."라고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 여의도 의사당에는 민주당과 괘를 같이 하는 선량(?)들이 2/3,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소위 보수라고 하는 통합당과 괘를 같이 하는 선량(?)들이 1/3을 나누어 자리를 지키고, 국사를 논하고 있다한다.
그중의 어느 넋빠진 선량은, 현재의 300명 국회의원수를 더 늘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는 쑈도 있었단한다.

문재인 정부들어서, 청와대의 비서실은, 권력의 상징으로, 모든 정치적 경제적 스캔달의 온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거대 권력조폭들로 지난 3년간 존재해 왔다는 그림을 국민들에게 그려줬고, 현재도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

지금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외국출장시 사용하라고, 전용기를 국민세금으로 만들어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때는 경제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어, 독일에 차관 얻으러 갈때도, 그사정을 잘 알고있던 독일 대통령이 주선해준 독일항공 Lufthansa가 운행하는 동남아시아 정기노선 비행기를 얻어타고, 무려 28시간의 비행끝에 독일에 도착했었다. 전용기가 있었지만, 전용기는 절대적으로 대통령이 공무로 외국방문시에만 사용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홍콩, 방콕,뉴델리, 카라치, 로마,프랑크푸르트, 그리고 최종 목적지 본(당시독일수도)도착했었다. 대통령의 체면을 따질때가 아닌, 가난을 물리치기위해서는 못할게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당시 독일도 분단국가로 분단국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릐브케 대통령이 더 각별히 동방의 조그맣고, 가난했던 나라를 눈여겨 봤었던것으로 이해된다.

여행목적을 성공리에 달성한 대통령은 독일 함보른 탄광 지하 1000미터속에서 석탄을 파고있던 광부들을 방문하여, 같이 간호사로 파독되여 근무하던 대한의 딸들과 함께, 역사적 연설을 했었다. New Daily 뉴스의 기록을 여기에 옮겨놨다.

강당에 들어선 박 대통령은 광부와 간호사들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육영수 여사도 안부를 물으며 뒤따르다 간호사가 울먹이자 참았던 눈물을 보였고, 행사장에는 흐느끼는 소리가 번져나갔다.   

이윽고 박 대통령 내외가 단상에 오르고, 광부 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 대통령의 선창으로 시작된 애국가 합창은 후렴에 이르러 흐느낌과 통곡으로 변했다.
이윽고 박 대통령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연설을 시작했다.

“만리타향에서 상봉하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이 먼 타지까지 나와 고생이 많습니다.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은 줄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땅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모국의 긍지와 조국의 영예를 빛내주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뒤에 오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또 많이 올 수 있는 길을 닦아주기를 당부합니다...”

고인은 5.16 혁명후 화폐개혁을 할때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  내각에 입각하고, 다시 비서실장에 임명되여 9년 3개월을 최장수 비서실장을 했었다.  경제학자였던, 그는 처음에는 입각을 고사했었고, 박정희 혁명세력에 동조하기를 사양 했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여러번 도와 달라는 간청을 했었다. 그의 대답은
"저는 아는것이라고는 경제뿐인데..."라고 하자,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것은 "경제건설이요"라고 맞장구 치면서, 서슬이 퍼렀던 혁명세력의 국가경제 재건의 굳건한 의지를 간파하고 한배를 탔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방문후 바로 "독일 방독록"을 만들게 해서 그속에 방독소감을 수록시켰고, 몇개월 뒤에는 "붕정칠만리"방독기록을 다른 출판사에서 폈는데, 그속에는 육영수여사의 방독소감도 수록되여 있다고한다.

방독록을 만든 근본이유는 대통령이 방독후에 대통령으로서 독일에서 보낸 짧은기간동안의 행적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기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Copy는 많지않아, 아마도 공무원들에게 교육용으로 사용하게해서, 경제개발을 하는데 국민계몽운동을 할 목적이 근본 요지 였었던 것으로 이해하고있다.

김비서실장과 박정희대통령은 국가재건과 경제발전을 위한 근면과 절약면에서 서로의 뜻이 잘 맞았던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갖인분들이 현재 대한민국내에도 상당수 있을것으로 추측 되지만, 현문재인 정부는 국가경제 건설과 통치철학에서 정치적 노선이 같은 괘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임용하지 않기에, 폭망한 한국경제재건은 계속 폭망하고, 포퓰리즘정책은 계속 지속되고있는 것이다.  문통의 역대 비서실장의 면모를 보면, 전대협 주사파출신들이 주를 이루었고, 사회주의 사상이 골수에 박혀있는, 정치적 색갈이 같은 이들이 비서실장을 포함한 수석비서관직을 차지하고 있다. 민정수석을 했던 좃꾹이는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설파했고, 추미애 법무장관은 사회주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토지공개념"을 공공연히 주창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건설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발전을 걱정하는 많은 인재들과 국민들의 걱정은 더 커져만 가는때에, 김정렴 비서실장마져 하늘 나라로 갔으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란다. 한국경제의 재건과 국민들의 뜻을 한곳에 모아 제2의 "한강기적"을 이룩 하시길 진정으로 바라며, 여기에 꼭 필요한 인재를 정치적 색갈을 떠나서 찾는 용인술을 박정희 대통령의 용인술에서 찾아 인용하시기를, 그래서 후손들이 평안히 잘사는 나라, 꼬마 김정은이의 공갈을 한칼에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가 어찌 나뿐만이겠는가?

입력 2020.04.26 14:08 | 수정 2020.04.26 14:42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만 9년3개월... 김정렴 별세

25일 별세한 김정렴(96)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 역대 정부를 통틀어 최장수 비서실상 재임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최장수 비서실장이라는 영예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철저히 낮췄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정치회고록 ‘아, 박정희’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대통령이란 큰 나무의 그늘에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 한다”면서 “그 그늘을 벗어나 양지로 나와 존재를 과시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가 비서실장 취임 당시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보더라도 그의 이런 철학이 드러난다. 그는 “국민이 청와대를 쳐다볼 때 각하 내외만 보여야지 비서관들이 보여선 안 된다”면서 “나를 포함해 우리 비서관들은 뒤에서 소리없이 각하 내외를 보필하고 각하와 행정부 간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그의 성품을 짐작게 하는 일화가 등장한다. 비서실장직을 권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른다”면서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니라고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고 경제가 잘돼야 정치·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면서 그를 설득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청와대 비서실이 외부에 권력기관으로 비치는 것도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비서실 사람들은 기자회견이나 강연 같은 것에 임해선 안 된다”면서 “명함 만드는 일도, 청와대 마크가 새겨진 봉투를 바깥에 갖고 나가는 것 도 삼가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국민은 청와대를 권력기관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비서관 등이 음식점이나 술집 또는 교제석상에서 청와대라는 낱말이 새겨진 명함을 돌리면 명함을 받은 사람이 이를 엉뚱한 곳에 이용할 우려가 크다고 봤다. 또 ‘청와대 용’임을 표시한 용지나 봉투가 많이 유통되면 될수록 불미스런 일도 늘고 적절한 단속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6/20200426006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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