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8, 2020

최영미 "운동권이여, 민주주의 그 거룩한 단어 내뱉지 말라" 주사파, 전대협이 사회의 주역인것을....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그자들이 바로 주사파, 전대협 운동권자들인데... 그자들이 대한민국 3권 분립의 영향있는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으니....최시인의 절규가 그자들에게 먹여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국회에서 청와대에서, 그리고 사법부는 그우두머리가 방안퉁수 문재인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채워졌으니....
청와대의 비서실장은 전대협회장 출신으로 문통정부의 첫번째 비서실장을 했었다.  그는 문통이 주창하는 탈원전을 밀어부치면서, 아랍 애미리트에 수출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문재인 대통령의 청천병력같은 탈원전 선언으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아랍애미리트의 왕조는 한국과의 원자력 발전소건설 사업을 계속해야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한국에 통보를 했다. 어찌된 영문인가를 알아보고져.  그때 문통은 얼마나 급했던지, 대통령 전용기를 비서실장에게 내주고 왕조를 방문토록 했었다.  당연히 문통이 달려갔어야 했다.

대통령 전용기는 대통령만이 업무용을 사용토록 국가에서 준비해준 비행기다. 대통령이 없는 비행기를 비서실장이 타고 날아갔었는데, 방문후의 업무보고는 일체 알려진게 아직까지도 없다. 그뿐만이 아니고, 문통은 그의 부인이 인도에 혼자 방문하는데도, 대통령 전용기를 내 보냈었다.  이러한 권력남용은 국민들을 완전 허수아비로 만든 대통령의 권력남용이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이의 부당성을 거론하는 양심적인 언론이나, 정치꾼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건설 Plant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고, 국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보고 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부분은 원전건설수출도 중요하지만, 원전건설후 운영에 들어갔을때, Maintenance를 도맡아 하게될때의 이익이 훨씬 더 크다는점을 강조 했었고, 그계약은 당연히 우리 한국쪽에 맡겨지는것으로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한 경제적 횡재의 기회를, 문재인의 탈원전정책 선언으로, 아랍애미리트 왕조는 한국의 탈원전에 진정성을 믿지못해,  완전히 다른 나라(내가 알기로는 불란서)에 독점 계약을 하고 말았다.  커다란 경제적 Coffer를 뻔히 보면서 날려보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문제 재기를 하는 전문가나, 정치꾼은 하나도 없다.  만약에 어느 양심적인 인사가 이를 거론했거나, 야당의원들이 거론 했다면, 그들은 그날로부터 불편한 삶을 살아 가야만 하는 독재국가로 변한것을 이제는 국민들 거의 모두가 알고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문통이 즐겨사용하는  포퓰리즘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완전히 중독되여, 여론조사를 보면, 항상 50%이상의 인기를 얻고있다.  문통의 운동권들이 집권하여 눈에 띄게 한국의 경제와 외교관계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킨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추구한것은 북한의 비핵화 정책을 간접적으로 도와준것 뿐이었다.

최시인이 절규하는 운동권들의 국정장악을 위한 비열한 방법은 항상  양심있는 국민들의 원성을 사왔었지만, 그증거가 확실히 나타난것은, 지난번 4.15총선에서 확실히 나타났었다.  그런데도 언론은 입에 자갈이 물려져, 이를 전혀 보도하지 못하고,  여전히 문통정부의 나팔수로 전락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탈원전으로 원자력 발전소건설 Plant 수출은 완전히 막혔고, 관련기업들은 폐쇄직전에 처해있고, 관련 Engineer들은 실직상태거나, 보따리 싸서, 다른나라, 특히 정치적으로는 우리대한민국과 적국인 중국으로 많이 떠났다.
경쟁상대에 있는 다른 원전수출나라들은 횡재를 한셈이다. 중국, 불란서 등등이 그혜택을 받는 나라들이다.



9년만의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 출간
80년대 운동권, 여성 인권 짓밟으면서 침묵 강요
성추행 폭로한 이유? 여성들의 강요된 희생 밝히려고

“나의 가장 밑바닥, 뜨거운 분노와 슬픔, 출렁이던 기쁨의 순간들을 기록한…. 시시하고 소소하나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시대의 일기로 읽히기 바란다.”


최영미(58) 시인은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내며 이렇게 썼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Me too)’ 운동을 확산시킨 그의 일기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만하다. 지난 4~5년간 신문·잡지에 발표했던 글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을 다듬고 엮어 9년 만의 산문집을 냈다.

◇운동권 성추행 폭로 이유? “80년대가 여성들에게 어떤 희생 강요했는지 말하고 싶어서”


시인으로서의 고민과 치매인 어머니를 병간호하며 느낀 것들, 일상의 소소한 기록들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미투 운동 이후의 글들은 주로 5장 ‘세상의 절반을 위하여’에 묶였다. 그는 2018년 2월, JTBC 뉴스룸 출연 후 쓴 글에서 “1992년 등단 이후 제가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성추행)을 했던 남자는 네 명”이라고 밝히며 “권력을 쥔 남성 문인들의 이러저러한 요구를 거절했을 때, 여성 작가가 당하는 보복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
 



문단에 나오기 전 성추행을 당했던 일들도 ‘벌레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털어놨다. 운동권 시절, 종로 일대의 대규모 시위에 참가한 후 남자 동기의 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에 깨어나 보니, Y가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지렁이 같은 손이 또 내 옷 속을 파고들려 하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벽에 기대앉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최영미 시인은 “내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글로 불러오는 것은, 80년대가 여성들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했는지 말하고 싶어서다”라고 썼다. 그는 1980년대 운동권의 합숙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성추행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유명한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이나 법조인이 되어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성장한 그들, 명망 높은 남성 활동가들에 가려진 여성들의 고단하며 위태위태했던 일상. 선배, 동지, 남편이라는 이름의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짓밟히면서도 여성들은 침묵했다. 침묵을 강요당했다. 대의를 위해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 혁명? 내 앞에서 지금 그런 거룩한 단어들을 내뱉지 마시길….”
그는 1인 출판사를 설립해 지난해 신간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출간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유명 출판사에 시집을 내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부담스러웠는지 답을 받지 못했다”고 직접 출판사를 차린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출판사 이름 ‘이미’는 자신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너무 아파 부끄러움도 모르고 몸을 내맡기는 환자들을 보며 떠올린 시다. “이미 슬픈 사람은/울지 않는다//이미 가진 자들은/아프지 않다//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마지막은 ‘긴 싸움의 끝’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2017년 시 ‘괴물’이 발표되고 고은 시인은 최 시인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까지 패소하고 결국 상고를 포기했다. 최영미 시인은 길고 외로웠던 싸움을 돌아보며 “저는 작은 바퀴 하나를 굴렸을 뿐. 그 바퀴 굴리는데 저의 온 힘을 쏟았다”고 썼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3/20200413034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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