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을 이간질 시키는 마귀임을 이번에 또다시 세월호 특별 검사를 임명하는것을 보고 확실하게 느꼈다. 그동안 수많은 군관계자, 민간인들이 부당하게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에 경찰에 끌려 다니면서 수모를 당한게 모자라 특검을 또하겠다고 특별검사를 임명했다. 부당하게 끌려 다녔던 분들은 거의가 다 Volunteer로, 또 사고시 현장에서 밤잠 설쳐가면서, 구조작업에 헌신했던 분들이고, 당시 해난구조대장으로 동분서주했던 김진황씨는 그해에 국방부와 조선일보가 수여하는 '위국헌신상'까지 수상했던 분이다.
특검으로 임명된 이현주는 민변출신에다 대전시 정무 부시장을 지낸 친 문빠 찌라시로 알고있다. 세월호특검을 열손가락으로 세어도 모자랄 지경으로 울궈먹고 울궈먹고해서, 이젠 국민들도 지칠데로 지쳤는데, 또 한다고? 일단 문재인과 그패거리들이 하겠다고 하니까 막을 방법이 없다. 이현주에게 충고한다. 특검해서 얻을게 뭐가 있는가? 잘 생각해 보고, 특별검사 임명을, 구국한다는 차원에서, 정중히 거절하고, 문재인에게 "두눈으로 모든 사물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보기를 권다"라고 충고도 잊지마라.
그러면 이번에는 특별검사를, 지금 검찰총장을 임명하기위한, 총장후보 위원회를 만들어 그곳에서 후보군을 뽑고, 다시 법무장관이 최종 1명을 추천하여 문재인에게 상신하면, 임명 하는식으로, 특검후보를 선출해서, 특별검사를 뽑았다면, 그런데로 이해 하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절차는 한점도 안보이고, 미리 각본에 짜여진 프레임에 따라, 민주당 찌라시들이 임명했다고 한다.
특검 결과가 어떤 결론을 만들어 낼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김진황 해난구조대장을 또 불러다 조사할테고.... 그분은 해난구조대장을 하면서 위국헌신상까지 받은 진정한 해군이었지만, 국가에서는, 특히 문재인 정부는 당연히 별을 달아주었어야 했지만, 반대로 쓰레기 취급하고, 결국 대령으로 군복을 벗었다고 한다. 장군심사위원회의 멤버는 누구인지? 누가 임명한 제도 인지는 나는 잘 모른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볼때, 이런 참군인이 장군으로 진급이 안되는데, 장군으로 진급한 군인들은, 객관적으로 인정이 되는 더큰 공적이 있어서 였을까? 있었다면 어떤 공적이었을까?
정말로 세월호 특검이 필요하다면, 문재인과 그패거리들에게 다시한번 생각해 보라고 충고한다. 우선 특검으로 임명된 이현주의 능력이 출중해서 임명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러한 발상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데로, 정치적 활동을 하지않은 능력있는 인사들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그분들이 특별 검사를 선출하여 인준 받도록 하라.
문재인과 민주당 찌라시들이 지난4년내내 울궈먹은 세월호 침몰사건에 연루된 가족들도 이제는 지쳤을 것으로 이해하는데, 그동안 국가로 부터 보상받은 금액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거액의 위로금을 받았었음을 인정한다면, 자진해서 그만 하라고 문재인을 설득하던가, 더이상 협조하지 말아야 한다. 자식을 더이상 흥정의 제물로 이용 당하지 말라는 충고다.
우리의 바다를 지키다, 항상 그래왔었던것 처럼, 북괴의 어뢰정을 맞아 침몰한 우리 해군장병들은, 국가에서 지급한 보상금은, 수학여행가다 침몰한 세월호 희생학생들에게 지급한 위로금에 비하면 1/10도 안된것으로 알고있다. 그래도 침몰한 유가족들이나 군관계자들은 묵묵히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한쪽은 수학여행가다 침몰한 사건이고, 다른 한쪽은 서해 바다를 지키다 북괴가 불법으로 발사한 Torpedo에 맞아 수장된 엄청난 도발행위 였었다.
제발 정치꾼들아 이젠 그만 울궈 먹어라, 세월호 침몰은 선박운항회사와 이를 이용한 학교와의 관계이고, 사고가 난것은 당시 해양경찰대와 해양수산부장관이 책임지고, 선박항해 지침을 잘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는데, 당시 야당 대표로 있던 문재인과 그패거리들은 세월호침몰로 인한 분노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문재인일당의 선동에 동참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으로 밀어 부치는 선동, 협박에 박수를 보냈었고, 결국 탄핵까지 당해 현재 차거운 감옥에서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쓰고, 사회와 격리되여 있다. 이제는 한발뒤로 물러서 정신차려라, 넋빠진 국민들아.
또 특검을 한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또 뭘 파헤치겠다는 꼼수인지? 어제 새로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는 송영길에게도 묻고싶다. 양심이 있으면, 특검은 그만 하라고 문재인과 담판을 지어라. 천안함 폭침때는 문재인과 그찌라시들은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았었다. 이얼마나 속보이는 치졸한 정치적 발악이냐 말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48762?cloc=joongang-home-newslistleft
최보식 기자가 만난 당시의 해난구조대장은 평생을 해군에서 젊음을 보낸, 해사출신 엘리트였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어서,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최보식기자가 그를 만나게된 동기는 간단했다. 도저히 막장으로가는 정치꾼과 문재인의 악의적인 국민 이간질을 더이상은 참을수 없어, 접촉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저는 천안함과 세월호 현장에서 발로 뛰었습니다. 천안함에서는 55일간, 세월호에서는 84일간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살았는데 결국 얻은것은 그당시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이 발병했고, 2017년 7월 아산병원에서 심장을 열어 수술을 받고 다시 제2의 인생을 살고있습니다."
지금 문재인이가 국토교통부장관 후보로 지명한 노형욱, 과기처장관으로 지명한 임혜숙 후보는 결점 투성이가 차고 넘친다. 본인 아니면 가족들이 저지른 혐의는 참으로 치사하다. 한후보의 마누라는 Super Market에서 좀도둑질 하다가 경비원에 걸려서, 벌금형을 받은 전과자고, 대도 조세형이 처럼 크게 해먹다 걸렸다면 그럴만도 하겠다 하겠지만, 슬쩍 좀도둑하다 걸렸다는것은 다른때도 다른 수퍼마켓에서 도적질을 했었다는 습관화된 범죄자 가족으로 보인다. 또 한후보는 공직으로 해외 출장가면서 두딸들을 대동하고, 자녀들의 이중국적, 미납세금을 후보지명받고 불야불야 납부하는, 양심불량자인데 문재인은 "산학연을 두루 거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이자 과기정통부 최초의 여성장관 후보"라고 자랑삼아 소개 했었다.
소설, 소인국 거인국에 나오는 주인공이 소인국에 가면 거인이 되고, 거인국에 가면 난쟁이가 되는,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문재인이가 임명하는 장관급 후보들은 지금까지 35명히 훨씬 넘지만, 국회청문회를 제대로 통과한후 장관에 임명된자는 5명도 안된다. 전부 자격미달, 양심불량자 등등의 결격사유로 청문회에서 빵점을 받았지만,문재인은 그대로 임명한 것이다. 그결과 장관들이 제대로 국정운영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뉴스는 보질 못했다.
이번에 후보로 지명된 두사람은, 문재인의 눈높이로 봤을때는 훌륭한(?)자격의 소유자로 보이겠지만, 정상적인 두눈을 갖인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전부 자격미달자다. 양심불량자들이다.
해난구조대장으로 군생활 35년 이상을 한 군 엘리트가 제대하면서 느낀점은 절망과 탄식뿐이었다. 조국을 위해 평생을 바쳐 근무한 애국자는 혐의자로 프레임을 씌워 계속 괴롭혔고, 결격사유가 넘처흐르는 문재인의 장관 후보자는 칭찬일색으로 밀어 부치는, 이런 Discrepancy는 오직 문재인에게서만 통하는 공식(?)이다.
김진황 해난구조대장의 한마디는 문재인뿐 아니고 민주당 찌라시와 정치꾼들에게 일침이었다.
"정말 이 정부, 말도 안되는 논리와 이야기로 세상을 혼돈속으로 몰아넣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군복입었던 사람의 서글픔이라고 할까요. 제복입은 사람은 죄가 있어서 말을하지 않은게 아닙니다. 단지 복잡한것이 싫어서, 이런 세상이 싫어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자들은 절대로 자기네 생각과 다르면 듣지 않거든요" 라고.
문재인이 만약에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다시 대통령을 한다면, 나라를 수호하기위해 목숨바쳐 헌신할 우리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존재할까? 앞으로가 큰 문제다. 하늘이시여, 대한민국 보살펴 주소서.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1/05/02/JIJR5DBSAJA7XNU6Y7XA3GX67A/
https://biz.chosun.com/it-science/general_policy/2021/04/28/MGWERRLYZFBENAXATHRCWDQ7SY/
[최보식이 만난 사람] 천안함과 세월호 현장의 증인, 김진황 前 해난구조대장
세월호 참사 후 7년간 9번째 진상조사를 벌일 ‘세월호 특검’이 임명됐을 때다. 누군가 내 휴대폰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는 천안함과 세월호 현장에서 발로 뛰었습니다. 천안함에서는 55일간, 세월호에서는 84일간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살았는데 결국 얻은 것은 그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이 발병했고, 2017년 7월 아산병원에서 심장을 열어 수술을 받고 다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김진황 전(前) 해군 해난구조대장이었다. 해사 40기인 그는 34년간 군 생활의 절반을 특수부대인 해난구조대(SSU)에서 근무했다. 천안함(2010년) 사건 현장에서는 수심이 훨씬 깊었던 선미(船尾) 수색을 맡았고, 세월호(2014년) 현장에서는 해군 책임관으로서 유족들 앞에서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작년 2월 대령으로 전역했다.
통화를 하니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정말 이 정부,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이야기로 세상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군복 입었던 사람의 서글픔이라고 할까요. 제복 입은 사람은 죄가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단지 복잡한 것이 싫어서, 이런 세상이 싫어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이현주 세월호 특검은 민변 출신에다 대전시 정무부시장를 지낸 친여(親與) 인사이더군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 몇 번째입니까. 현장에 있었던 군인으로서 정말 모멸감을 느낍니다. 군에 치욕을 주는 겁니다. 당시 선체 수색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준 민간 업체 관계자나 잠수사들까지 불러가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이런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할망정…,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나니 마치 흑막이 있는 것처럼 조사받고 매도됐어요. 앞으로 누가 나라를 위해 나서겠습니까.”
-현 정권에서 검찰특수단이 구성돼 이미 1년 넘게 총 201명이나 조사했지요. 올 초 검찰특수단은 여러 제기된 문제에 대해 ‘유족이 실망하겠지만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며 무혐의를 발표했습니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지만 다시 특검이 시작됐군요.
“저쪽에서 VDR(항해기록 저장장치)를 조작했다느니 하는데, 그걸 건졌던 친구가 몇 번 조사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머리에 피가 확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그걸 다 보고 바꿔치기를 합니까. 공상과학 소설도 그렇게 쓸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조사했으면 저쪽 말대로 어느 누군가가 나와서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 현장 양쪽에 모두 있었다고 했지요?
“군인은 명령에 따라 죽고 삽니다. 해난구조대는 이런 사건·사고 현장에서 작전하는 부대이고, 임무가 주어지면 행하는 게 군인입니다.”
-시간 순으로 천안함 사건부터 얘기합시다. 폭침 당일 무얼 하고 있었지요?
“진해에서 미군과 연합훈련을 하다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밤 출동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현장에서 UDT는 천안함 함수(艦首)를, 제가 지휘하는 SSU 부대는 더 깊은 수심에 위치한 함미(艦尾) 수색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냥 역할 분담입니까, 두 특수부대 간에 기능적 차이가 있는 겁니까?
“평소 두 부대의 훈련이 다릅니다. UDT는 침투 부대여서 잠수도 수심 20m 이내에서 합니다. 구조 전문은 SSU입니다. 천안함 함수는 수심 18m, 함미는 수심 48m 아래에 있었습니다.”
-수심 48m이면 까마득한 거리인데?
“이런 심해에는 바깥과 연결된 호수로 공기를 주입하는 ‘SSDS(표면공기공급방식)’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조류가 너무 센 데다 바닥이 굵은 자갈밭이어서 앵커를 박아 고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걸 포기하고 공기통을 메는 스쿠버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쿠버의 한계는 수심 40m입니다. 부하 대원들이 바다 속으로 집어넣고서 다시 나올 때까지 저는 초긴장 상태였습니다.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부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제 책임이었습니다. 나중에 작전이 끝난 뒤 저는 불러가 ‘스쿠버 잠수의 한계 수심은 40m인데 왜 집어넣었느냐’고 감사(監査)를 받았습니다.”
-천안함 수색 과정에서 UDT 한준호 준위가 사망했는데?
“함수 수색을 맡았던 한준호 준위가 숨졌지요. 규정대로 하면 침투 부대인 UDT는 구조작전에 투입돼서는 안 됩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3월 날씨가 너무 추웠어요.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감기 걸린 대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시간에 쫓겨 야간 다이빙까지 해야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군 상부와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인명 구조를 나갔다가 오히려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장면이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 대원들에게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부하들을 죽여가면서 이 임무를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대장을 찾아가 대원들의 어려움을 보고하니, ‘너희는 죽기라도 했어. 죽을 때까지 해!’라는 호통이 돌아왔습니다. 전대장도 상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을 겁니다. 저는 경례를 하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상사급 이상 대원들을 모아놓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틀 뒤 천안함 승조원 김태섭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실종자 가족들이 ‘위험하니 이제 수색을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혹시라도 살아있을 걸로 믿었는데 현실을 받아들인 겁니다. 그 뒤 수색을 중단하고 민간 업체가 주도하는 인양작전으로 넘어갔습니다.”
-천안함 루머와 음모론은 끊이질 않았지요. 한 달 전 천안함에 대해서도 재조사 결정을 했다가 번복했지요.
“저는 사람 목숨을 구하는 부대에서 근무해왔지만, 그 따위 음모론을 제기하는 인간이 눈앞에 보이면 정말 죽이고 싶습니다.”
-천안함의 폭침 증거인 북한 어뢰 잔해물을 현장에서 봤습니까?
“UDT를 지휘하는 해사 2년 후배인 권영대 중령이 ‘이상한 물건이 올라왔다’고 보고했습니다. 저는 김정두 제독, 국방부 헌병단 조사관과 함께 현장에 가서 그걸 봤습니다. 저는 합참 근무 시절 2년간 해군 무기체계를 담당했고 김정두 제독은 잠수함 함장을 했기에. 그게 북한 어뢰 잔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해 국방부와 조선일보가 주는 ‘위국헌신상’을 수상했더군요.
“군인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했던 것뿐입니다. 2010년 그해는 유독 해난사고가 많았습니다. 4월에는 해군 링스 헬기가 소청도 인근에 불시착했어요. 천안함 사건 현장에 있다가 출동했습니다. 6월에는 강릉 앞바다에 추락한 공군 F-5 전투기 인양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11월에는 제주 근해에서 해군고속정이 트롤 어선에 받혀 침몰해 두 명이 숨졌습니다. 해저 117m에 가라앉아 있어서 인양 작전을 하느라 40일 넘게 바다에 있었습니다.”
-그 뒤 스트레스로 심장병이 생겼다고 했나요?
“그해 말 복귀한 뒤 부대원들을 격려하려고 돼지 세 마리를 사서 파티 준비를 지시했어요. 그러고는 부대 뒷산을 오르는데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내려오니 멀쩡했습니다. 그 뒤 그런 증상이 두세 번 일어났습니다. 병원에 가니 ‘원인은 모르겠지만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다’며, 혈관이 막히는 것을 막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해 줬습니다. 그때부터 이 약을 계속 복용하게 됐습니다.”
그의 부대는 2012년 말 북한이 쏜 장사정 미사일의 잔해가 서해안에 떨어졌을 때 그걸 수거해 돌아왔다. 해난구조대장으로서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됐다는 걸 느꼈다. 전근을 자청해 제주방위사령부로 옮겨갔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제주도에 있는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헬기를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진도 팽목항 세월호 현장에 있게 된 겁니다.”
-그때는 해난구조대장이 아니었는데, 세월호 현장에서의 역할은?
“해경에는 심해 구조작전을 아는 이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해경청장을 보좌하기 위해 해경함에 탔습니다.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사들 간의 임무 조율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해경차장이 유족들에게 브리핑하다가 봉변을 당하자, 내게 그 임무를 맡겼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잃어 슬픔으로 거의 실신상태였던 유족들 앞에 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당시 기사를 보니까 김 대령의 브리핑은 유족들의 신뢰를 얻은 걸로 나오더군요.
“저는 브리핑에서 거짓말을 안 했습니다.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헛된 기대를 주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닷속에 들어갈 수 없을 때는 들어갈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왜 그런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당시 몸 상태는?
“어떨 때는 계단을 못 오를 정도로 힘들었고 어지러웠습니다. 약도 다 떨어졌습니다. 독도함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니트로글리세린을 타 달라’고 했습니다. 후배가 약을 갖고 와서는 ‘군의관 말로는 이 약을 먹는 사람은 현장에 있어서 안 된다고 합니다’라고 걱정했습니다. 제가 ‘나도 안다. 받은 임무인데 어떻게 하겠나. 버틸 때까지 버텨보겠다’고 말했습니다. 8월 7일까지 현장에 있었습니다.”
-근무 혹사와 심장병과 확실히 인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까?
“세월호 현장에서 돌아온 뒤 서울 아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비후성 심근경색이라고 했습니다. 선천적이면 20대에 발병하는데, 젊은 시절 SSU 훈련을 받아도 끄덕없었습니다. 가족·형제 중 누구도 이런 병이 없습니다. 술 담배도 안 하니, 결국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었지 않을까요. 7시간 반에 걸친 심장 수술을 마치고 나왔을 때 집사람이 울고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34년 군 생활을 마치고 나오니 어떤가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군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아 할 수 있었던 게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살아서 전역한 것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1/05/02/RPHIEQ7UOZCALMZDNKEDTWF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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