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0, 2021

Covid-19과 요즘의 일과, 11시경에 출근, 걷기로 심신단련, 한시간 40분후에 퇴근. 살아온삶과 기억을 하는 요즘의 삶이다.

사색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Lake Ontario를 따라, 혼자서 매일같이 정상 출근(?)하는 심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과거속으로 여행하는 순간은, 때로는 나혼자서 피식 웃음을 나오게 하기도하고, 살아온 세월속에서 헤매다 보면, 잘못 살아온 그아쉬움에 마음속으로 후회와 통곡도 많이 한다.  다행인것은(?) 눈쌓인 겨울의 차거운 환경이, 나처럼 Trail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도록 조절(?)해서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없이 편하다는 생각이다.

콘도뒤에 끝없이 이어지는 Lakeshore Boardwalk Trail을 걷는것은, 여름철 시골생활을 접고, 콘도로 되돌아온 이후로는 요즘하루의 일과중 가장 큰 근무처가 된 기분이다. 나는 출근시간으로 명명했다. 옷을 충분히 입고 나왔지만, 동풍의 겨울바람과 함께 영하 15도와 체감온도 영하22도와 같이동행 하면서 걷는일은 평상시보다는 쉽지 않다는것을, 오늘같은  또다른 환경에서 깊이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많던 Trail Walker들이 오늘은 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일 출근하면서 모뉴멘트, 유적들 그외 의미가 많은 시설들을 보게 되면서,  일종의 유적재발견이라는 Thrill도 느끼게 된다.


눈이 말끔히 치워진 이 Bike Trail은 평상시에는 Biker들, Trail Walker들로 바쁜 Route였었다. 


우리 부부가 이곳 콘도로 이사온지 벌써 20년이 되온다.  구입한지는 거의 35년정도됐다.이사오기전에는 Rent를 주고, 내보고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식으로 약 15년 정도 남이 살았었다.  이지역에서 내가 살고 있는 콘도 Building Project가 맨처음 시작됐었을때만 해도 길가에는 Motel들이 즐비한 한가한 시골을 연상케 하는 조용한, 다운타운 외곽지역이었었다.  걸으면서 계산을 해보았다. 적어도 100,000 이상의 콘도 unit이 눈에 보이는 콘도빌딩안에 자리잡고, 각 unit당, 평균 재산세가 적어도 년 $3,500.00달러로 치면 약 3억 5천만 달러가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좁은 공간에서 City의 Coffer로 들어가는데.... 그런데도 매년 재산세는 올라가고, 특히 현재 Covid-19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거의 Lockdown상태인데.... 콘도 주인들 많이 힘들겠다라는 생각으로 머리속이 어지럽다.
 



이제는 오래전에 어머님이 걱정 하셨던, "사람구실 할랑가 몰라!"라고 그말씀이 기억에 다시 떠오르지만, 어머님에게 이제는 자신있게 말씀 해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어머니, 이젠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어머니 아들, 남자구실 무난하게 했고요. 그곳에서는 편하게 살고 계실것으로 믿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뵙게 되는 날까지 제가 살곳을 하나 잘 마련해 주십시요"라고 또 어머님에게 짐을 하나 또 드렸다.  오늘은 굉장히 추워서 평상시  많이 보이는 Walkers와  Bikers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나에게는 무척 편하게 걸을수있는 좋은 찬스같다.  다른때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고, 또 바이커들이 벨을 울리면서 지나칠때에 신경을 쓰면서, Off했던 마스크를 다시 가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맘데로 편하게,  넓은 뒷뜰을 걷는 기분으로, 오히려 이러한 기회를 갖을수 있게 된것에 감사한 마음이 많이 일어난다. 옆의 차도에도 차량들이 다른때에 비해 한가하다. 
지금 내가 걷는 Trail은, 평상시에는 Bikers만이 이용할수있는 Biker Trail이고, Trail Walker들이 걷는 길은 눈을 치우지 않아, 걷기에 위험하여, 그곳을 피해 이곳을 걷는데, 바이커들이 없기에 아주 편하게 걸을수 있어, 너무도 기분이 많이 up된다.



Biker들이, 눈이 내리고 급강하한 기온 때문인것으로 이해되지만, City에서 운영하는 Bike Stand에는 자전거들이 꽉 차있다. 평상시에는 거의 빈 Stand로 있었는데.... 발걸음이 무겁다는 느낌은 전연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차거워진 날씨를 고마워 한다. 내가 편하게 걸을수 있으니까.






지금은 문닫혀 있지만, 이곳 스낵바를 지날때마다, 나는 살아온 세월에 대한 가슴시린 서러움에 마음속에서는 통곡을 여러번 했었다.  처음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둘째아이를 낳고, 아직 앞날에 대한 계획이 제대로 안풀릴때,  큰아이는 3살, 둘째아이는 아직 6개월 정도밖에 안됐을때, 처음으로 이곳 호숫가를 찾아와 오랫만에 큰맘먹고 Pizza 2쪽을 구입하여 셋이서 나누어 먹었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세월은 참 빨리도 흘러갔다.  처음 이곳에 들렸을때는,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직장은 구해지지 않고..... 시내의 서쪽편에 있었던 변압기 만드는 공장에 임시로 일자리를 얻었었는데, 직종이 Overhead Crane Operator였다. 경험도 없는데, 거짖으로 이력서를 그렇게 작성하여 간신히 일하게 되서 우선 아파트렌트와 식품구입문제를 해결했다고 좋아는 했는데....  Hook에 Transformer 몸통을 담기위한 Container에잔뜩 들어있는 Insulating Oil을 들어 올리기도하고, 내리기도하고, 이동도 시켜야 하는데, 한번도 그런일을 해본적이 없었기에, Smooth한 이동이 되지가 않고, 큰 파도처럼 흔들거리고 출렁이면서 사고는 연속 발생하기만 하고..... 이럴줄 알았더라면, 이곳까지 멀리 이사오기전에, 현장 Work shop으로가서 근무하던 직장에서 구입하기위한 Overhead Crane Specification을 작성할때, 현장에 가서 한번만이라도 '직접 운전대를 잡고 조작해 볼것을....'라는 탄식을 땅이 꺼져라 하곤 했었지만...
Supervisor의 경멸하는 질책을 들으면서도 참고 또 참았었던 그기억이 지금 이순간에는, 참 용케도 버티며 살아왔다는데,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는데,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무도 이식하면 몸살을 앓는다. 우리 인간살이도 똑같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것은 겪어보기전에는 그정신적 아픔을 말로 설명할 방법이 쉽지가 않다.  Lunar의 기지로 어렵게 신사동 지역에 조그만 아파드지만, 내동기들중에서는 제일먼저 운좋게 구입하고, 첫아이 낳아서 신혼의 안정된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할려는 판인데, 갑자기 멀리 이사를 가겠다고 하니, Lunar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었다. "가지 않겠다고....".  그녀를 설득하기위해, "그곳에 가면 영어한마디 사용하지않고, 편안하게 아이만 키우게 하겠다고 여러날을 설득하여 겨우 승락받고, 여기까지 왔었는데, 현실은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계획데로 되는게 거의 없었고, 하루를 자고나면 주머니는 비어가고 있었기에... 앞날이 전연 예측이 안된 불안한 삶이됐었다. 당시에는 돈도 없었지만, 있다해도 정부의 정책이 외화반출 허용이 안되던 때였었다.  우리가 이사오던해부터 규제가 약간 완화되여, 머리당 $200달러보다 조금 많은 반출이 허용돼 우리는 1500달러를 어렵게 만들어서 들고는 왔었지만....새발의 피같이 턱없이 부족할 뿐이었었다. 

그로 부터 벌써 45년의 세월을 옆돌아볼 시간도없이 흘려 보냈다.  사진에서 보는 그때 당시의 두아이는 벌써 우리부부의 곁을 떠난지 참오래됐다. 지금은 어쩌다 모여 논쟁이라도 야기되면, 우리는 뒷켠으로 자연적으로 물러앉아, 오히려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역활이 바뀐, 무대뒤로 물러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삶의 Pattern이 정상인줄은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허전함을 느끼는것은 같은 연배의 모든이들이 같이 느끼고 있을것으로 이해한다. 

그아이들은 우리처럼 고생하면서 세상을 헤쳐 나가지는 말아야 할텐데....그래도 자식이기에 그렇게 기도하면서 지내지만, 그나마 지금은 Covid-19 Pandemic으로 함께 자리를 했던 기억이 무척 오래된것 같다. 



멀리 아스라히 우리 부부의 보금자리인 콘도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높이 솟은 마천루 건물들은 지난 5년 사이에 새로 건축된 고급 콘도들이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대도시의 한상징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내가 콘도를 구입할때는, 이지역은 허허 벌판이었었는데....세월의 무상함을 가슴 시리게 느낀다.


예상치도 않게 맑게 들리는 새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는데, 어렵게 소리나는 쪽을 찾아 발견된 새는 Cardinals로, 숫컷이 아마도 암컷을 찾아 유혹하는 소리로 이해됐는데, 사방은 눈으로 쌓여있고, 날씨도 차거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Mating Partner를 찾는것으로 봐서, 봄이 멀지 않다는 느낌을 깊이 느끼게 했다.  운좋게 짝을 찾기를 기원해 주면서..... 나는 계속 걷는다.







캐나다 대륙의 동쪽끝의 Nova Scotia에서 서쪽의 Victoria Island까지의 직선 길이는 약 4,000키로라고 한다.  동에서 서쪽으로 자연속의 숲에서 Trekking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을 위한 대륙횡당 Trail이 잘 조성되여 있다.  동서를 이어주는 Trail의 총길이는 약 3만킬로미터라고 한다. 엄청난 Trail 이다.  이 Trail을 조성하는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그 구간중의 일부Trail이 매일 같이 내가 걷고있는 이곳을 통과하여 다시 북쪽으로 북상하는데,  가끔씩은 Covid-19 Pandemic전까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멤버들과 함께 걸었던 Bruce Trail구간과도 조우하여, 표지판을 볼때마다 서쪽까지, 아니면 동쪽까지의 구간을 언젠가는 더늦기전에 걸어볼 희망을 항상 갖었었다.


오늘은 오랫만에 기마순찰( Mounted Police)가 순찰하는 순간을 봤다.  그들은 지나가는 산책객들의 친한 친구가 되여 많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내가 사진을 찍었더니, 웃으면서, "좀더 멋진 폼을 잡았어야 했는데...."로 응답한다.  "그자세가 더 자유스러워 최고다, 고마워.." 


오래전, QEW 고속도로가,1939년에 개통되기전에는 Lakeshore에서 유일하게 영업을 했었던 Gas Station,  그이름이 무척 정답게 느껴지는, Joy Oil Station이다.  그뒤 주위에 많은 변화가 생겨, 더이상 영업을 할수 없게된채로 수십년간 방치되여 있었는데, 약 15년전에 시에서 그건물을 통채로 큰 Trailer싣고,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그옆에는 Joy Oil Station에 대한 기록을 간략히 설명까지 해 놓았다.  역사가 짧은 캐나다는 웬만하면 기록으로 남겨둘려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어디를 가나 자주 보게 된다, 2년전 서쪽 끝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Victoria Island에 탐방 갔을때에도 그곳에서 의회 의사당 건물이 역사적 보존 건물로 지정되여 보호를 받고 있으면서도 현재 BC주 의회 의사당으로 이용하고 있었던 광경도 떠올리게 한다.



Humber Bay Creek을 연결시켜주는 아주 운치있는 Arch형 Bridge다.  오늘 처럼 춥지않고 햇볕이 내리쬐이는 날에는 많은 Trail Walker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적어도 한번씩은 걷는것을 멈추고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온타리오 호수를 초점없이 쳐다보면서, 특히 연인들이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소리를 듣는 경우는 흔했었는데.... 지금은 거창한 행사가 끝나고 썰물처럼 모두가 빠져나간 Theatre로 상상을 하기에 충분한 정적인풍경이다.  마치 쉴새없이 뛰고 부딪쳤었던 나의 지나온 삶을 뒤로하고 지금처럼 나혼자서 Lakeshore Trail을 걷는것이 하루의 일과중 가장 큰 일인것 처럼.....


캐나다에서 맨처음 건설된 Queen Elizabeth Way(QEW)고속도로는 1939년도에 개통됐는데, 그개통 테이프를  당시 영국여왕 Elizabeth l세께서 먼길을 달려와, 끊어 주셨었다는데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속도로인데, 나이아가라 반도의 끝에 있는 미국쪽 Fort Erie에 있는 Peace Bridge구간에서 시작하여 토론토시의 서쪽에 있는 Hwy 427 까지 이어지는, 총 139. 1키로미터(86.4 마일)다.  기념타워와 그앞에 앉아있는 사자상은, 온타리오 정부부에서 1974년도에 QEW를 넓히면서 이곳에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Palace Pier가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문을 읽으면서, 주위가 너무도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설명서에 따르면, 이곳은 1920년대까지는, 이곳으로 부터 약 3키로 동쪽에 있는 Sunnyside Pavillion과 쌍벽을 이루면서 당시 주민들의 놀이터로 이용됐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시민들의 휴식처 였을까?를 상상하기에는, 주위가 너무도 많이 변해, 쉽지가 않다.
 

지금은 그자리에 커다란 콘도빌딩 두채가 쌍벽을 이루어 이곳이 콘도미니엄으로 채워진 새로운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음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속에서 자연은 묵묵히 우리 인간들의 욕구를 받아 들이고 있다라고 생각해 본다.



위의 Kayak들은 시즌인 여름철이 되면 하루종일 호수위에 떠 있게된다. 그만큼 Leisure로서는 최고의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전에는 관심없이 지나치곤 했었는데 오늘은 그가치를 마치 재발견한것 같은 느낌이다.


이야외 Swimming Pool은 내생각으로는 토론토에서는 가장 큰 야외 풀장인것 같다.  왜 여름철에는 그냥 지나치다가 오늘은 확실하게 풀장의 외형을 보면서,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구간에는 Route를 따라 걸으면서 주위를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많은 유적들이 보인다. 내가 여기에 간략히 적은것들은 그일부일 뿐이다. 




일찌기 폴란드에서 이민와서, 철도 Engineer로 캐나다 철도 건설에 많은 공적을 남긴 그의 업적을 후세들에게 전수해주기위해  Trail이 관통하는 넓은 잔듸위에 어린이 놀이터를 비롯한, 조그만 표지판이 지나치는 Trekker들의 시선을 모은다.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그리고 바람이 불고 추운날이라서 오늘은 꼬마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완전히 끊겼기에, 고요만 흐를뿐이다.
 

 

Trail을 따라 군데 군데 세워진 조형물에는 수많은 Graffiti들이 참많기도 하다.  철없는 사람들이 무심코 욕구불만을 그렇게 표현하는 그심정을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볼때 흉물로 보일수 있다는것을 조그만 생각해 봤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그러한 낙서만을 지우는 업체가 성업(?)을 이루는것 같다.  아래의 Green Metal Box는 주택가에 지하로 연결되여 있는 전력공급선의 Junction Box인데,  낙서만 전문적으로 지우는,"Goodbye Graffiti"라는 회사의 수고로,새로히 말끔히 낙서를 지운상태다.
이광경을 아프리카 탐방시 여러번 Encounter한 늪지대에서 많이 봤었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 견주어 본다.  이회사는 낙서꾼들이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는것 처럼.





차거운 호숫가 물속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쉬는 오리들, 백조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이 이런 날씨에 이들처럼 맨발로 있으면 동상에 다 걸려 심한 경우는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할텐데.... 그중의 한 백조는 아예 편하게 고개를 몸속에 처박고 잠을 자는 모습에서 넉넉하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뒷쪽으로는 방파제에 Ice Screen드리워져 있어, 더 추워 보인다.  그와는 반대로 내가 신고있는 신발에서는 따뜻함을 많이 느끼게 한다.  신발제조술이 발달되여 이렇게 편하게 추위를 모르고 걷는데.... 할수만 있다면 저기 Waterfowl들에게도 신겨주어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수 있다면.... 엉뚱한 생각이다.  발걸음은 계속된다. 


며칠전 Family Doctor와 Un-tact로 상의한 결과, Lunar의  Knee Arthritis(Rheumatism)에서 오는 통증을 완화 시키기위해, Rheumatologist를 만나 상담하고 치료하고 Cartilage주사를 Inoculation했던 광경을 떠오르게 한다. 저 Waterfowl들이 관절염에 걸리지 않기를 마음에서 빌어본다.  이들 오리, Swan들은 관절염이라는 질병을 모르고 살아가겠지만서도.... 한번 주사에 약 6개월 또는 1년 정도는 무난하게 고통없이 지낼수 있다고 닥터는 얘기해 줬지만.... 영구적 치료약이 아직 까지는 없나 보다.  관절염은 특히 추운 겨울에 많이 발생하여 활동에 많은 지장을 주는것으로 알게 됐다.  숲속에서 해왔던 매주 해왔었던 Trail Walk을 못하게 된지가 벌써 2달쯤 되여 간다.  요즘은 집에서만 회복에 전념하는 Lunar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해진다.  마음도 많이 아파온다.  젊었을때 많이 과로가 겹치는줄도 모르고 너무나 일만 해서 이런 결과가 온것에 너무도 미안하다.  2달전까지만 해도 이런 Rheumatism으로 고생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리고 항상 바위처럼 든든한 Lunar일것으로만 착각하고 살아왔던, 나의 무지함이 오늘은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엄습해 오는 중압감에 마음속에서는 통곡이 또이어진다.  "Lunar 더이상 아프지 말고, 우리 같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Post Pandemic이 됐을때, 다시 여행을 계속하면서 석양의 아름답게 지는 해를 자신있게 바라보면서 즐길수 있도록, 건강 빨리 회복해야 하오.  내가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무용지물 같아서 더 마음은 무겁다.  황혼기의 삶을 살아가는 옆동의 친지분은 요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집에만 있는데, 그친지분도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Wife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쳐다볼때마다 마음이 더 아파 온다는 실토를 했었던 기억이, 지금의 새생각을 미리 말해준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들 꼬마들과 젊은이들이 Hockey Play하는것을 보면서, 6.25동란 직후 어렷을적에 입을 옷도없어, 몸에 맞지도 않은, 너덜거리는 바지 저고리를 입고 동네에 있는 미나리깡에서 동네 죽마지우들과 썰매를 타러 뛰쳐 나갈때마다, 어머님이 걱정하시면서,  "저 썩을놈, 이담에 사람구실이나 잘해야 할텐디.... 저렇게 쏘다니면 다 얼어버릴텐데..."라고 안타까움을 욕설로 표현 하셨던, 어머니 생각이 스치면서,  가슴을 저미게 한다.  손가락이 얼어서 벌겋타 못해 시푸르등등 했어도 썰매 타는 그맛에 추운것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들 젊은 친구들을 그때 당시와 비교해 본다.  어렵고 고생했었던 그때가 지금은 더그리워진다.  벌써 석양길을 내가 걷고 있으니....세월무상.
그죽마지우들을 못본지가 벌써 거의 반세기가 흘렀다.  이런게 우리 인생이 자라면서 서로의 갈길이 다르게 살아가는 과정중의 하나인것을 진직히 알았더라면, 더 활동이 쉬웠을때  내가 먼저 고향에 찾아가 손내밀면서 회포라도 풀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에 마음만 저며 온다.


벌써 출근후 한시간 40분이 흘렀다. 오늘의 일과를 계획데로 무사히 마치고, 이제 문을 열고, Lunar가 기다리는 콘도로 퇴근할때다.  방문을 열자 말끔하게 청소되여 있는 모습이 첫번째로 눈에 들어왔다. 무릎이 아직도 편치 않은 상태인데....괜히 또 미안한 마음이다. 늦은 점심을 차려주겠다고 Lunar는 부엌으로 발길을 옮긴다. Thank you. 세월이 흘러갈수록 가정의 포근함을 더 깊이 느낀다.  요즘같은 춥고, 눈오는 겨울철이지만, 출근은 계속될것이다.  이런 Outdoor Activity 유일하게 내가 할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Lunar 무릎이 회복되면, 다시 우리는 걷기를 계속 할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정확히 1시간 40분동안 근무(걷기)했다. 이제부터는 자유시간이지만.... 가장 좋은 직장(?)생활로 착각이 되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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