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아시아지역에서 이민와서 살고 있는 Diaspora들에게는 뜻깊은 설날, 즉 새해 첫날이다. 내가 알기로는 중국Community, 베트남Community를 비롯한 소수민족들은 일년중 가장 큰 명절로, 축제의 분위기가 거의 일주일 동안 지속된다. 그들이 운영하는 Business는 철시하고 새해 축복무드에 젖어 든다. 새해설날을 진정으로 축복하고 즐긴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내려쬐어, 내일 설날 아침엔도 그렇게 빨간 햇살이 내려쬘것으로 기대를 했었는데, 나의 예상과 기대는 여지없이 부셔져 버렸고, 하늘은 높은 회색구름으로꽉 덮혀, 설날 아침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Covid-19 전염병으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데, 자연도 힘들었었나보다. 이렇게 회색하늘을 보는것 보니.... 내가 매일 걷은 길바닥은 밤사이 내린 하얀눈으로 뒤덮혀 있어, 이역시 Trekker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는것 같이 느껴지게 한다.
동양문화의 중심에 있는 중국은 한자권 문화의 대표적 존재라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세계 2위의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그 전통은 더 철저히 지켜질것으로 예산된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새해를 시작하는 금년도 설날은 철갑을 두른 황소의 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Covid-19으로 전세계가 어려운속에서 버텨 나가는데도, "춘절"이라고도 하는 설날의 가족들의 모임은 당국의 엄한 Gathering금지에도, 이어질걸로 예상된다.
그래도 설날을 기억하기위한, "떡국"을 Lunar가 만들어서, 아침을 다른때와는 다르게 단둘이서 즐겼고, 새해의 허전함을 서로 위로의 말로 달랬었다. 이곳의 풍습에 따라 Solar Calendar로 새해를 축하하기위해 가족들이 모이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아침에 둘만이 식탁에 앉아 드는 떡국을 넘기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마음 깊이 묻어야만 했었다.
"사랑의 콜센터"를 청취하면서, 국민영웅이 된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경연대회에서 불렀던 "어느 60대노부부의 얘기"를 소재로한 노래를, 오늘 다시 보여 주었는데, 같이 살아가는 황혼의 부부들의 삶의 얘기를 "늙어가는것이 아니라 익어가는것이다"라는 아름다운 해석이 섞인 가사를 의미하면서, 가는세월 그누가 막을수 있나?를 의미심장하게 가슴에 새겼었다. "이내몸이 흙이 돼도 내마음은 영원하리..." 늙어본 사람만이 그절실함을 알수있다는것을, 그누구에게 하소연 할수도 없음을 깊이 또한번 느끼게한 "사랑의 콜센터"였다.
장민호의 아버지에 대한 애절함을 표현한 노래 "내이름 아시죠?"를 부를때, 그는 처음에는 목이메여 부르는데 실패하고 몇분후에 다시 등장하여 부르는데, 잘은 모르지만,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불효와 안타까움을 그자신이 노래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그런 마음으로 불렀던 것으로 이해됐다. 아들이 이제는 국민들이 알아주는 가수로 성장하여, 모든면에서 여유로워졌지만,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아버지는 옆에 안계시는 안타까움을 부르짖은 노래 였는데, 애절함에 MC와 동료가수들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고, 나자신도, Lunar함께 훌적거렸었다. 늙는다는것은 감정에도 매우 약하다는것을 오늘 또한번, 설날 아침에 깊이 느낀 순간이었었다.
나는 설날이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출근을 한다는 착각을 일으켜, 매일 걸었던 Route를 바꾸어 오늘은 그반대편인 서쪽으로 걸었는데, 여전히 회색으로 뒤덮힌 하늘을 보는것은, 마음을 무겁게 해주었다. 윗그림의 맨앞쪽에 흰색으로 보이는 낮은 빌딩이 내가 살고있는 콘도다. 날씨가 맑을때는 윤곽도 뚜렷하고 멋저 보이곤 했었는데.... 오늘 설날은 모든게 밝은 색상이 아니고 회색일색이었다.
걸으면서 나의 지나온 삶을 Scanning해봤다. 거의 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에, 단 한번도 추석이나 설명절을 고국에서 즐겼었던 그기분으로, 복잡한 세상사 잠시 내려놓고, 오붓하게 가족들과 즐겼었던 기억이 없었다. 나의 뿌리는 어디였는가? 현지에 살면서 그풍습에 깊이 젖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고향에 모처럼가도, 나는 벌써 친구와 친족들이 살아가는 생활풍습에서 또 이방인이 되여 있음을 여러번 느꼈었다. 나의 진정한 Identity는 어디에서 생활화 할수 있다는 말인가?
오래전에 DCI사장으로 캐나다를 커버하면서 Wholesale Business를 했었던, 동년배의 네델란드 출신의 David과 이민자로서의 정신적 삶에서 Identity를 지킨다는것은 주위환경이 이를 쉽게 허락치 않아 매우 어려운데, 그런 애매한 삶의 자세가 정착하기 까지는 대략 3 or 4 Generation이 지나야 가능하다는것을, 자기가 속해있는 Community에서 확실하게, 완전 현지화로 나타나고 있음을 봤었다고 설명해주면서, 그친구가 나에게 해준말이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 Paul, 절대로 서둘지 말기를 바란다. 외모가 비슷한 우리 코뮤니티가 3대 4대 지나니까 현지 주류사회에 아무런 스스럼없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라고 해주던말끝에, "너희는 외모도 우리와 달라서 어쩌면 더적응이 쉽지 않을수도 있으니 열심히 주어진 삶에 매진하고, 다음세대로 그임무는 넘겨주는게 현명할것이다"라고.
그래서 내자신이 살아가는 요즘의 생활이, 비단 Covid-19 Pandemic의 Lockdown때문에 공허하고 무의미한것 처럼 느껴지는 속에서 속절없이 세월만 죽인것만이 아니고, Diaspora의 삶은 적어도 3-4 세대가 흘러야 그흔적이 없어지고 소속된 코뮤니티에 주류로서 역활을 부담없이 하게 된다는것을 깨닫고 마음속에 다짐을 다시 하는 새해 설날의 각오를 다지는것으로 하루를 보내야 된다는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는 날이 될것 같다.
Mounted Police Officers은 오늘이 동방의 나라에서 건너와 살고 있는 Tribe들의 설날과 그의미를 알고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Trail을 무심히 Patrol하기위한 발걸음을 초점없이 내딛는 모습이 내눈에는 한가롭게 보이기만 한다. 문화의 차이를 보는 또 다른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또 한해를, 정신적으로는 Diaspora의 삶을 살아가고있는 우리 부부는 늙어가고 있는것은 아닐까? 라고 허전하고 아쉬움을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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