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5, 2020

K-pop Idol 되기까지의 명암과 내막 폭로. "나는 K-pop Idol이 될뻔 했던찰라 그만뒀다" 한국계 영국소녀의 고백.


어느면에서나 정상을 차지하기위한것은, 피나는 노력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한 각고의 힘든끝에 세계인들이 즐겨듣고 보는 K-pop Girl Group Idol의 공연은 정말로 희열을 느끼게 하는것  아닐까?  혹독한 훈련, 때로는 인격대우가 없는 혹독한 집단훈련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Behind Story들을 보면서, K-pop Idol에 대한 부러웠던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과연 어느쪽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수 있지만, K-pop Idol의 소녀 구룹멤버들에 대해 연민의 정과 측은한 맘을 떨져 버릴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뿐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요즘 잘나가는 한국의 K-Pop Idol에 대한 뒷얘기가 마침내, BBC의 보도로 전세계에 폭로됐다.  그뒷얘기는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집단으로 돌아가는 기계부품같은, 개인의 시간은 전연 고려치 않고, 오직 Idol이 되야 한다는 목적하나로 집중되여 있었다.

K-pop 스타로 유명인이 되기위해서는 수년간의 피나는 연습과 필요시 성형수술까지 해야 한다.  Duddias도 K-pop 가수가되기위해 영국출신으로 지독한 훈련을 받은 경험을 쌓으면서 희망을 키워왔던 여러명중의 하나이다.  여기에 그녀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설명하고있다. 걸구룹의 멤버로 선택된후 그녀는 포기하고만다. 나는 어린 소녀였을때, 영국의 동부지역의 가정에서 자란 내가 한국으로 가기위해 커다란 결심을 했었다. 한국에서 그후 2년간 K-pop 가수가 되기위해 갖은 훈련을 다 받았었다.
그때만 해도 영국에서는 K-pop에 대해 잘 알려진게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과 중국 부모사이에서 태어나 살면서 한국의 TV에서 'Boys Over Flowers와 Playful Kiss'같은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K-pop과 그문화에 홀딱 반했었다.  내학교 친구들은 당시 Britney Spears와 Blackstreet Boys에 푹빠져 있을때 나역시 Wonder Girls와 B2ST를 열심히 듣곤 했었다.  내 열망은 배우가되여 대중앞에서 공연하는 야심으로 꽉차있었다.  그꿈을 이루는것 중의 하나는 어떤것이라도 할수있는 능력을 소유한 Idol되는 것으로, 모델, 배우, 노래 또는 댄스를 한국에서 유명인이 되는것이었는데, 그길이 K-pop의 멤버가 되여 그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10살때부터 나는 여러 그분야 회사에서 오디션을 보고 그중의 한회사에서 나를 픽업하기를 희망했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자신의 연기를 비디오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었다. 가끔씩은 학교수업을 빼먹으면서 그비디오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광경을 본 엄마는 나에게 대단한 실망까지 했었다.  그때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가  살고있는 한국의 서울을 방문하게 됐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2000명이 넘는, 나와 같은 꿈을 갖인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오디션을 보게된다.  지원자 모두는 커다란 대기실에 안내됐었다. 이광경은 마치 Britains의 Got Talent를 연상케 했었는데, 다른점이 있다면 앉아 쉴수있는 의자도 없었다는 점이고, 바닥에 10줄이 넘게 정열해서 그냥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었다.  무려 6시간을 기다린후야 내차례가 왔었다. 내가슴은 콩당 콩당  숨가쁘게 내차례가  가까워 올수록 더 뛰었었다.
첫번째 소녀가 노래를 하고있는중에, 심판은 "스톱"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소녀가 그녀의 합창단과 노래를 하기도전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다음..."하고 외쳤다.  이번 오디션에  참석한 대부분의 소녀들은 이와 똑같은 취급을 당했다.  최종척으로 내차례가 왔을때, 나는 한국 TV드라마의 한장면을 재연해 보였다. 심판은 나의 연기가 약 절반쯤 했을때 "스톱" 명령을 내린것이다. "우리는 노래하는 가수를 찾고있다. 그러므로 노래를 해줄수 있겠나?" 나는 노래를 준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Disney의 Aladdin중에서 노래 "A Whole New World"를 불렀다. 그러자 심판관은 나의 노래를 중지시키고, 이번에는 댄스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댄스준비를 전연 하지 않았기에 내가 마치 바보처럼 느껴졌었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댄스 Track에 옮기더니, 그곳에서 자유댄스를 하라고 했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댄스를 했는데 심판관은 나에게 노란딱지를 주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  나는 옆방으로 다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 방바닥에 그어진 라인을 따라 걸어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게 하는사이 여러각도에서 나는 사진사들에게 사진을 찍히게 됐는데 바로 내가 카메라에 어떻게 보여지나늘  시험 하는것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함께 회사로 나와서 계약을 할수 있겠느냐는 통보를 받았다.
계약 조건을 보면, 나는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거주해야 하며, 회사의 지시에 따라 훈련을 해야만 했다.  만약에 계약이 끝나기전에 회사를 떠나게 되면, 나는 나에게 투자한 훈련비용을 전부 반납해야 된다. 즉 그비용은 수천달러에 달할수 있는 금액이었다. 엄나는 별생각없이 2년간 계약서에 나를 대신 서명했는데, 2년간 계약은 회사측에서 제안하는 가장 짧은 기간이었다. 계약서에 서명한후, 나와 엄마는 심한 의견충돌이 있었고, 그결과 우린 약 한달간 대화를 하지 않았었다.  훈련이 시작된이후, 우리와 계약을 맺은 연예회사는 나를 다른 회사에 넘겼다. 그러한 훈련생 이적은 흔히 있는 관행중의 하나였기에 훈련생은 그일에 토를 달지 않는게 관행이었었다. 새로운 회사는 매우 엄격했다. 나는 한빌딩안에서, 9세에서 16세 사이의 다른 훈련생들과 함께 훈련을 받아야 했었고, 남녀 별도로 구분 시켰었다.

우리훈련생들은 학교에서 정상수업을 받을때에만 건물밖을 나갈수 있었다. 한국출신 훈련생들은 국내학교에 갈수있었지만, 나는 영국적이었기에 국제학교에 다녔었다.  그외에는 우리 훈련생들은 사전 허락없이는 (미리 신청을 해도 허락되지않는), 밖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었다.  가끔씩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방문하고 싶어도 사전에 허락을 먼저 받아야만 가능했었다. 가족들중에서 사전에 연락없이 방문할경우에는 면회없이 그냥 되돌려지곤 했었다.
가끔씩은 우리 훈련생들은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8시에 시작하는 학교수업에 참석하기전에, 댄스 훈련을 받곤 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바로 회사로 돌아와서 노래와 춤을 배우곤 했었다. 훈련생들은 때로는 밤 11시 또는 더 늦게까지, 훈련선생님에게 잘보이기위해 훈련을 받았었다.  밤에만 우리자신들을 돌아볼  짧은 시간이 주어졌었다.  숙소의 문이 잠기기전에 우리훈련생들은 시간에 마추어 되돌아와야 하는 엄격한 통행금지시간이 있었다.
Dating was banned, though some secretly did. Trainees were all supposed to act straight even if they weren't. Anybody who appeared to be openly gay was ostracised by the company.
Both male and female trainees would have "managers" - uncle-type figures who would text us at night to keep tabs on us. If we didn't text back, then we would immediately get a phone call, asking where we were.이성간의 데이트는 절대로 허용안되지만, 가끔씩은 비밀리에 가능하기도했다. 훈련생들은 목석처럼 느낌을 표현해서는 안됐다. 만약에 어느누가 동성애자로 보이면 회사로 부터 제명당했었다.  모든 남녀 훈련생들은 uncle 처럼 "매니져"라는  명목으로 밤에는 그들의 행동을 감시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수시로 경고의 텍스트를 보내곤 한다.  응답을 즉시 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즉시 전화가 오는데, 어디에 있는거냐?라고 묻곤 했었다.  훈련생들에게는 주말이나 휴가가 없었다.  음력 설같은 명절에도, 훈련생들은 숙소안에 있어야 했었지만, 회사직원들은 휴가를 즐겼었다.
나를 고용한 회사는 훈련생들을 2 구룹으로 나누고, 팀 A 그리고 B로 명명했다. 나는 20-3-쯤 되는 A구룹에 속했다. 우리팀은 가장 가능성이 많은것을 생각했었다.  팀B는 약 200여명의 훈련생으로 구성됐다.  그들 훈련생중에는 회사에 자기 수업료를 내고 훈련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여러해를  훈련받고있지만 아무도 그들이 실질적으로 언제 "데뷰"하게 될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그말뜻은 그들중에서 누군가가 K-pop 연기자로 처음 출연한다는 뜻이다.  팀 A의 훈련생들은 기숙사에 한방에 4명의 소녀들이 같이 기숙한다. 정기적으로 훈련받는 훈련생은 커다란 방에서 같이 침실을 사용하며,  마루바닥에 메트를 깔고 사용할수 있었다.  나는 팀 B의 팀원들이 훈련후 댄스연습장에서 잠을 자고있는것을 보면서 맥이 빠지기도 했었다. 왜냐면 그들은 사용하던 메트를 그대로 깔고 자야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꼭 한번 팀B에서 훈련받던 훈련생중에서 꼭 한명이 선택되는것을 봤었다.   만약에  팀A의 훈련생 한명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불평을 하게되면, 그들은 팀A에서 쫓겨나거나 아니면 팀B로 옮겨지게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아무도 불평을 한것 못봤었다.  우리 모두는 야망이 있고, 젊기 때문이었다. 회사측의 훈련생들에 대한 생각은, 모든 훈련생들이 K-pop 아이돌이 되기위한 모든 고비를 배우는 훈련의 일부를 체험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것이다.  그래서 우리 훈련생들은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사내의 훈련장에서는 우리모두는 다른 훈련생들을 제외한, 각자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훈련생들의 특성에 따라 뽑힌 분류에 의해 이름대신에 고유번호와 무대에서의 이름을 부여받는다.  내이름은 Dia였지만, 우리를 훈련시키는 분들은 우리를 부를때 번호를 사용했는데, 그번호는 입고있는 셔츠에 새겨진 번호들이다. 그번호가 불릴때마다 우리 훈련생들은 마치 우리가 과학시간에 실험대상이라도 된것같은 이상한 기분이었었다.



나는 내가 성공한 Idol이 될수있다는 특성을 갖고있다는것을 알았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관심을 베풀어 주었었는데, 왜냐면 내체격이 아주 적었기 때문이서, 선생님은 체격이 적은 나를 항상 추겨세웠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나는 먹는것을 좋아했었지마, 몸의 신진대사가 잘돼고 그래서 몸무게가 늘지 않았었다. 몸무게가 늘어나는것은  모두가 싫어하는것중의 하나였었다. 모든 훈련생들은, 나이와 키에 상관없이 47키로그램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요구를 받아 들여야했다. 매주마다 모든 훈련생들은 트레이너로 부터 몸상태를 검진 받아야 했으며, 그결과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발표하곤 했었다.만약에 몸무게가 오버되면,  먹는 음식을 바꾸기도 했었다. 가끔식은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하기도했으며, 대신에 물만 먹는 경우도 있었다.






내생각으로는 이러한 강압적인 음식조절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로인해 상당수의 훈련생들은 키가 자랄수가 없기도 했었다.  그래서 가혹하게 음식을 먹지 않는것은 일상생활중의 일부가 될 정도였었다.  어떤 훈련생들은 음식기피증 또는 폭식하는 증상이 있기도했으며, 어떤 훈련생들은 생리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지쳐나가는 훈련생들이 발생하는것은 보통있는 일쯤으로 여겨졌으며, 가끔씩은 혼수상태에 빠진 훈련생들을 기거하는 숙소로 옮기는 일도 빈번했었다..

나의 경우 나는 두번씩이나 댄스 연습중 이런일을 당했었다. 아마도 탈진 됐었거나 충분히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서 였던것같다.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을때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사고가 있은후 훈련생들의 태도는 "그녀를 위해 잘된일이야, 그녀는 그러한 짖을 원하거든.."라고 수근 거렸으며, 지금 그때를 회상해 보면, 그러한 사고는 정말로 나를 실망시켰었다고 생각하고있다.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었던 동안에 나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었다.  훈련생 모두는 동료 그이상 이하도 아니였었다. 분위기가 항상 긴장상태였고, 경쟁속에서 생활해야 했기에 진정한 친구를 사귈심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달 열리는 공개공연때는 분위기는 너무도 무거웠었고, 각훈련생들은 모든이들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해야만 했고, 그때 선생님들은 각훈련생들에 대한 평가를 했었다.  만약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즉시 축출되곤 했었다.

그렇게 축출된 자리는 끊임없이 새로 입소한 훈련생들로 대체됐는데, 더욱더 기존의 훈련생들을 위축시킨것은 새로 입소한 훈련생들의 일부는 이미 성형수술을 하고 입소해서, 그들은 남아있는 우리들 보다  더 K-pop 스타들 처럼 보였었다는 점이다.  또한 훈련생들 사이에서 왕따시키는일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 소녀는 몸무게가 초과 됐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 것이다. 또 댄스를 잘하는 훈련생의 경우는 그녀가 신고있던 훈련화를 도둑 맞은 것이다.


나는 영국에 있는 나의 오랜 친구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오랜 친구들과 연락을 할수 없었는데, 훈련선생님들이 훈련에만 매진하도록 초점을 마추었기에 전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연예회사는 훈련생들이 처음 데뷰하기전에 좀더 신비롭게 보여지기를 원했었다.같은 맥락으로 회사에서는 소셜미디아에 우리의  모습을 올리는것을 원치 않았었다.

나는 배우가 되는것이 나의 적성에 맞을것 같다고 의견을 피력했더니, 그러한 나의 야망을 "아니야, 회사는 네가  소녀구룹에 최적으로 잘 어울릴것으로 믿고있어"라고 했다.  한고위 직원은 나에게  말하기를, 너는 한국인의 피가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길을 고집한다면 내가 생각하기로는 너는 TV Show에서 조연으로나 가능할거야 라고 냉소를 보냈었다.
그말에 나의 꿈은  멀어져감을 느꼈었다.  나의 계약이 내가속한 구룹이 데뷔를 앞두고 끝날때가 된것이다. 그때 나는계약연장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가겠다고 말하는것은, 모든 훈련생들에게는 상상도 할수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내가 제계약을 거절했을때 나는 회사에 진 빛이 없었다. 왜냐면 적기에 나는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채무가 전연없었고, 내책임은 다 완수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에 회사에 남아있으면서 구룹멤버와 함께 대뷔를 했더라면 훈련선생의 보수, 숙소비용, 그리고 성형수술비를 부담했어야 했을 것이다.  비록 성공적인 데뷔였었다 해도, 훈련중에 발생한 부채를 갚기위해 계속적으로 일을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Idol이 됐을때 그비용은 계속 커져있었을 것이다.  내경험으로봐서 K-pop 스타가 됐다고 해서 돈을 모은다는것은 정말로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얼굴성형 수술없이 영국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나의 오랜친구들과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있다. 나는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시험을 치기위해 교실에 앉아있을수 있다.  나는 예술분야코스를 계속공부하게 됐고, 불란서에서 패션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정말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데, 그이유는 많은 훈련생들이 18세에 탈락하거나 21세에 계약을 마치거나, 그렇게 되면 모든걸 다 잃은 기분일것을 알기때문이다.  그들 훈련생들은 K-pop Idol이 되기위해  모든걸 포기했었다. 그렇치만 그것으로 모든걸 다 잃고, 결국 그녀들은 아무런 능력을 쌓지 못했다는것을 그때에야 발견하게될것이다.

나의 엄마는 지금 내가 되돌아와서 무척 행복해 하신다. 엄마는 항상 내가 훈련생으로 시간을 보내는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곧 제갈길을 찾을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나는 먼길을 걸어서 되돌아 왔지만, 엄마는 항상 옳았다는것을 나는 배운것이다.내가 같이 훈련받았던 소녀구룹의 비디오를 볼때마다, 나는 내가 소녀구룹과 무대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점에 안도의 숨을 쉰다.  나에게는 그모든것들이 전부 거짖이고 위선으로 느껴진다. 왜냐면 나는 그소녀구룹멤버들을 개인별로 잘알고있고, 또 그녀들이 대중앞에서 처신하는 태도가 실질적으로 그녀들의 진실된 삶의 모습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이순간만큼은 그러한 공연하는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취미로 생각해볼수는 있지만말이다. 나는 내자신의 비디오를 만드는 작업을 좋아한다.  나는 비디오를 만들면서, K-pop훈련을 통해 배웠던 많은 점들을 적용하고있다. 나는 지금 완전한 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왜냐면 모든것을 내가 하고싶은데로, 계획부터 비디오 편집까지 하기때문이다.  내가 더 많이 생각할수록,나는 옳은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더많이 든다.

겉으로 화려한것도 좋겠지만, 그만큼 인간답게 살아갈수있는 내실이 있어야 진정한 세계적 K-pop Idol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심을 관중들로 얻을수 있지 않을까?  이소녀의 고백이 진실이든, 아니든, 이제 BBC 보도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니.... 관련부서인 문화체육부의 관심이 좀더 있어야 돼지 않을까?


We could get our phones back for 15 minutes at night, and I would use that time to call my mum. But most trainees also secretly kept a second phone.
My parents knew that training was difficult, but there really wasn't much they could do because I was under a contract and they were so far away. Most of the Korean trainees wouldn't tell their parents anything at all because they didn't want them to worry.
What kept me going was the belief that I would eventually debut as a member of a group.
However, the company only had spots for fewer than half of the members of Team A. We competed for them through constant examinations in singing, dancing, and interviews.
K-pop groups are typically organised like this: a lead vocalist, dancer, rapper, youngest member, etc. Everyone has a specific role.
I was delighted when they told me I had been picked to be a lead singer. But then the company said they were considering me for an alternative role in the group, the visual.






The visual is the face of the group. You get picked for this because of your appearance, and crucially, how you might look in the future. Another girl was in competition with me for this spot.
She was naturally more attractive than me, but the company predicted that if I got plastic surgery I would end up prettier than her and would then be ready to be the visual.
By Korean standards I have a very big face, so they wanted to change the bridge of my nose and shave my jawline.
The company couldn't force a trainee to have plastic surgery, but it was strongly encouraged. Plastic surgery is very normal in South Korea and the prospect of having surgery didn't bother me at all. I saw it as an investment in my future - the cost of the operation would have been added to my debt to the company.
But my mum had mixed feelings, she realised it meant I would be closer to becoming an idol, but she was also worried for me.





When the company told me that I was being lined up for the visual spot, I was so happy.
They told me that I was going to be a K-pop star, and that's really amazing to hear, especially when you're an impressionable teenager hearing that from powerful people.
As time went on, the company started to tell us more about what the group was going to be like.
They told us the music genre, the style that we would have, and I started feeling iffy about the whole thing.
I learned about the character behind my stage name, Dia. She was supposed to be very reserved, sweet, and innocent. As the visual, I would be expected to personify those characteristics.
But Dia just wasn't me. I'm opinionated and loud. I doubted I would be able to keep up this docile personality in public.


My mum was so happy that I was back. She always believed training wasn't the right thing for me. But she knew I had to find that out for myself. I had to go the long way round, but I learned that mum is always right.

When I see videos of the group I was to have been in, I feel relieved that it isn't me up there on stage.
The whole thing feels fake to me, as I know those girls personally, and the way they have to behave in public is not what they are like in real life.

I'm not really thinking about pursuing acting at the moment, except perhaps as a hobby.
Instead I have a career as a YouTuber. I've realised that I'm quite entrepreneurial.
I love making videos for my channel. I find I'm applying a lot of what I learned in my K-pop training. I feel liberated because I control everything, from planning to filming to editing.
The more I think about it, the more I think I made the right decision.
As told to Elaine Chong
Since Euodias underwent her training the South Korean Free Trade Commission has introduced regulations to ban some unfair practices in contracts between K-pop trainees and entertainment companies.



https://www.bbc.co.uk/news/stories-5147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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