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2, 2020

[朝鮮칼럼 The Column] 그 노란 재킷은 제발 벗으라. 제발 봉건적사고방식, 형식적 격식버리고 국사논하라.


외신기자가 문재인정부의 방역대책논의에 대해서, 보이기위한 형식만을 앞세우고, 대국민 접촉을 회피하는 모양새에 오죽했으면 죽을 각오를 하고, 노란자켓을 비판하고 나섰을까.

청와대 안방의 큰 회의실에 모여않아 방역대책한답시고, 모인 정부의 지도자들 복장을 보면서, 나는 처음부터 참으로 쑈를 많이 하는구나...라고 걱정을 많이 하면서, 기사에 대한 댓글도 달았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1/2020031103491.html#bbs

위의 조선기사에는 댓글 502번째로, 노란자켓입고 회의한다고 방역이 더 잘되는가? 다른 나라 국가지도자들은 그러한 유니폼 입고, 책상에 앉아 회의 하는게 아니고, 전부 직접 마이크 앞에 서서 대국민 발표를 하는데 열중하는데, 그분들의 대부분은 평소입고있는 복장에서 다른것이 있다면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현황 보고가 끝나면, 바로 기자들과 질의 응답이 있어, 기자들의 송곳같은 질문에 하나의 막힘도 없이, 의료면에서 좀더 세밀한 설명이 필요할때는, 옆에 동석한 의료전문가에게 마이크를 직접넘겨주고, 설명을 하게 했었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회의때 입은 노란 자켓은 선명히 사진에 잘 찍혀, 마치 권력서열을 나타내는것 처럼 의자에 앉아 토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많은 내용중, 극히 일부만이 언론에서 뉴스보도하는것으로 국민들은 만족했어야만 했다.  수많은 서방 여러나라들의 정상들은 거의 매일같이 Covid-19 방역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직접 국민들 향해 발표하고, 곧이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트루도수상의 대국민 보고후 질의 응답은, 듣는 국민들에게 세세히 숨김없이, 자세하게 보고한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기자들의 질문에 다 응답을 하기 때문이다.  노란 자켓을 입고 회의를 대책회의를 했으면, 뉴스미디아의 뉴스를 몇자 보내는것만으로는 절대로 자세히 설명할수없다. 자켓을 입은것 만큼 대국민 상대 보고를 직접하든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직접 현장중계로 했어야 했다. 아래의 웹링크도, 회의때 입은 노란자켓의 꼴딱서니가 보기싫어 비난하는 댓글을 2번째로 달았었는데, 언론사에서 블록킹 시켰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11821001&code=910100

Michael 기자의 칼럼을 읽으면서, 기자가 매우 완곡하게 표현하는라 고생을 많이 한 흔적을 읽을수 있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대통령이 자기의 할얘기만 하고,  국민들에게 사건 사고를 알려주는 기자들에게는 하나의 질문도 받지않고, 그옆에 서있는 사람들의 자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Discipline을 경청하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제발 이런 봉건사회주의에서 실권을 잡은 왕이나 정승들이 하던, 특히 복장에서, 고자세의 티는 내지 말기를 염원한다.

윗쪽과 아랫쪽의 두정상이 Coronavirus Pandemic에 대한 대국민 보고방법에서 확연히 다른점을
확인할수 있는 좋은 Sample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 가신들은 정말로 챙피한줄을 좀 알라. 내가 이글을 읽으면서도, 쥐구멍이 있으면 그곳에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었었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서방세계의 정상들이 대국민상대 Coronavirus 전염병 대책를 직접발표하고, 기자들이 질문도 받고 대답하는 상황을 좀 보시고, 그흉내라도 내는척 하시고 동시에 성실함을 좀 보여주시요. 왜냐면, 툭하면, 당신들은 미국에선...유럽나라에서는.... 등등의 서구여러나라의 사례를 많이 인용하기에,  대국민들에게도 직접 마이크앞에서서 해보라는 주문이라오.


국민 섬기는 척하지만 지키지 못할 것 약속해서 계속 비판 쌓이며 감옥행으로 끝맺는 정치
지도자가 민주주의 시스템 존중해야 악순환 깨진다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한국에 수십 년 살다 보니 이젠 꽤 한국인이 되었다. 지난 월드컵 때 영국이 아닌 한국을 응원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다른 영국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말하곤 했는데 나는 한반도에 전쟁이 터지면 가족을 제주도로 피신시킨 뒤 북한산 비밀 은신처에 있는 종로구 저항군에 가담하겠다고 결심하곤 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한국인이 된 건 아니다. 마지막 단계가 있다. 날씨와 사람들 매너에 대해 불평하는 영국인의 습관을 버리고, 뭔가 잘못되면 무조건 정부를 비난하는 한국인의 본능을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멈칫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 내가 주저하는 건 정부를 탓하기 전에 나는 원칙이 있고 공정하다고 확신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배우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특히 위기에 빠졌을 때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탓하는 본능에 저항하고는 있지만, 그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특히 작은 것 하나가 나를 부정적인 쪽으로 강하게 몰아가고 있다. 노란 재킷을 입은 정부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정말 그분들이 그걸 벗었으면 좋겠다. 이 옷차림은 그들이 자신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여러분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옷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그들 스스로 확신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국민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이 나라는 리더십의 문제를 겪고 있다. 생각해보자. 전 세계 전문가들은 한국을 코로나19에 잘 대처하는 모범국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중국처럼 강압적이지 않다. 코로나 검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고, 의료 시스템은 미국보다 훌륭하다. 하지만 국내외적인 인상은 정부는 엉망이고, 많은 사람을 집단 감염시키는 비정상적인 종교 집단이 있다는 것들이다. 한국은 위대한 공학자와 기술자의 나라인데, 정치인만큼은 그저 그런 나라로 비친다.

핵심은 이런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 리더십의 기준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 박 전 대통령식 리더십에 대한 암묵적 기대감을 갖고 있다. 우린 모두 '작은' 박정희들의 영향권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방식은 비전과 연간 목표를 제시하고, 전문가들이 계획을 세우면, 공무원과 재벌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들이 실패하면 교체했다. 이는 19세기 프러시아군이 채택했던 모델로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일본 장교들에게서 배웠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그 방법은 별로 나쁘지도 않고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대엔 다른 점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을 맘대로 할 수 있었고, 자신의 통치에 대한 비판이나 도전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현대의 단점은 리더십이 계속 견제를 받아 조정된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여전히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대를 받지만, 거리에선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그의 몰락을 계획하기도 한다. 지도자는 외로운 존재가 된다.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과 같은 팀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지식이 많다 해도 그들의 조언이 길거리의 군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지도자는 외롭고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옛날에 양반이 중인을 다루듯 전문가와 부하 직원들을 대한다. 지도자는 그들의 조언이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경우 자신의 지위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지도자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자신을 칭찬한다. 지도자는 '국민'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섬기는 척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두려워한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지키지 못할 것을 약속하고 미래에 받게 될 비판에 자신을 내모는 식으로 대중의 기대를 잘못 관리한다. 필연적으로 비판은 계속 쌓이고 새로 나타난 지도자는 본능적으로 전임자가 나라를 망가뜨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권력이 비민주적인 사법권을 장악하면서 옛 권력은 감옥행으로 끝을 맺는다.

확신할순 없지만, 이런  악순환은 지도자들이 대중에 대한 두려움대신 민주주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그것의 신성한 가치를 깨닫게 될 때라야만 깨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알 수가 없다. 기업의 세계는 이미 다 변했는데 정치는 그렇지 않았다. 정부의 잘못 때문일까. 그래, 정부의 잘못이 맞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난 이미 한국인이 된 것 같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0/20200320054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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