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40분경에 다시 차에 올랐다. 마음이 급하다. 예약해 놓은 North Bay까지 가는 도중에 Pembroke와 Petawawa 군부대기지도 방문하고 또 좋은곳이 있으면 들릴계획이기 때문이다.
하룻밤 신세진 모텔은 아침 햇볕에 더 선명하고 깨끗하게 보인다. Continental Breakfast로 2개의 Bagel에 쨈을 발라서 만들고, 2잔의 커피도 곁들여 방으로 들고와서 간단하게 하고 드디어 차에 올라 Hwy 17 West로 올라섰다. Hwy 17은 캐나다의 동서를 이어주는 동맥같은 길인데도 Lane은 하나씩밖에 없어, 속도가 80-90키로 이상 달리면 경찰에게 고지서를 발부받기 십상이다.달리는 차창으로 제일 많이 보이는 간판은 Camping Ground인것 같다. 모두가 Privately운영되는, 여름철 한때를 위해 일년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라는 의문점이 계속 꼬리를 문다.
간판에 쓰인 내용이 좀 특히하게 눈에 들어오는게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것 같아 Shoulder에 정차시킨후 양쪽으로 부터 차량이 오지 않는틈을 타서 방향을 돌리고 캠핑장으로 들어섰다. "Camping RV Park" 라는 간판 표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 Office에 들리기전에 첫번째 눈에 띈것은 일요일날에 야외예배를 볼수 있도록 노천 예배장이 있었다.
통나무로 만든 Log house가 오래전에 건축된것 같아 보이는데, 이곳은 Private residence라고 표시되여 외부사람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것 같아 보였다. David을 상징하는 6각형별모양이 크게 새겨져 있는것으로 보아 유태계 후손이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씩 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캠핑장만이 아닌것 같아. 각종 놀이용 기차가 있고 규모가 무척 커보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인지, 전부 가동준비가 되여 있지 않았다. 낯시간에는 캠핑객들과 외부 관람객들이 많이 오는것으로 쉽게 짐작이 간다. 긴 화물차 같이 여러개의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채 앞에서 운전수가 끌면서 달리면 승객들은 동심으로 돌아갈것 같다.
더 깊이 들어가니, 캠핑객들이 Register 하는 사무실 건물이 아담하게 보인다. 그옆에는 커다란 코끼리 동상이 코를 높이 들어 올린채 손님들을 맞이하는 자세로 버티고 서있다.
1812년에 Samuel De Champlain이 그의 선원들과 함께 Ottawa River를 탐험 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Camping을 했었는데, 그를 기념하는 Monument라는 설명이다. 그당시 그는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이곳까지 왔을까? 분명히 말이 끄는 Wagon에 의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Camping sites는 보통 주립공원에서 보았던, 그런 Concept은 아니고 아예 허허벌판을 평평하게 만들고 그곳에 캠핑용 RV를 주차시키고 Camping을 하도록 해서 옆집과의 Privacy는 좀 덜할것 같았다. 그래도 많은 캠핑객들이 마지막 며칠 안남은 여름을 즐기고 있고, 어떤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여유를 갖고 즐기는 광경을 보면서, 아이들이 커서, 다시 그아이들에게 지금같은 Camping을 하게 할것이다. 자연을 아끼고 즐길줄 아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보는것 같다.
또 일부 캠핑장은 숲속에도 있었는데, 그곳은 텐트를 이용하는 곳이다. 가는 도중에 식용버섯들이 소나무에 기생하여 예쁘게 자라고 있어 한컷했다.
Canopy도 할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Costa Rica 정글 여행시 해보았던 Canopy가 연상된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해보면서 전코스 18개의 구간을, 긴것은 약900미터정도 길었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는 그렇게는 아니고 흉내만 낸것같다. 탐방을 끝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위해 다시 사무실에 들렸는데, 어린 아가씨들이 친절하게 더 알고 싶은것이 있으면 설명해주겠다고 한다. 내년도 여름에 캠핑하게 되면 이곳을 먼저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곳에 고래상이 파랗게 보였다.
"Hope you have a splashing good time at Logos Land"라는 문구가 파란 고래상의 등판에 새겨져 있다. Logos Land를 찾은 사람들이 다시 오게 하기위한 여러면의 노력이 많이 보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고래상인것이다.
Logo Land의 전체 평면도면과 시설의 규모를 잘 보여주는 Map과 안내표시가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어, 할수만 있다면 내년에 꼭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다. 그리고 이호수에서 수영을 즐길것이다.
Logos Land Resort 입구에 있는 선물센터의 집구조가 눈을 끈다. 배의 앞쪽을 나타낸 모양의 건축양식이다. 볼수록 이들의 아이디어가 튀어난다. 건물의 중앙에서 끝부분은 실제로 큰배의 선실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다.
Brighton에서 벌에 쏘인 Lunar의 손과 손가락이 계속해서 부어올라, Pempbroke에 도착하여 바로 병원을 찾았다. 수속을 하는 Receptionist는 친절하게 수속을 밟아주고, 자기 이름까지도 알려준다 Betty라고. 우리부부의 앞으로의 여행 스케쥴을 들은 그녀는 꼭 Sudbury를 들려 Nickel Mine 기념관을 들리라고 당부하다시피한다. 그곳이 자기 고향이라고 하면서, 내가 느끼기에는 그녀가 여행사 가이드인지? 병원 근무자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부담없이 정겨운 얘기를 해주어 정겨움을 많이 느꼈다. 시골병원은 그래서 마음에 든다. 간호원도 친절하고 닥터들도 수더분해서 마음에 부담이 없지만, 오래 걸리지 않고 바로바로 진찰과 치료를 한다는데 매력이 있다. 남자 간호원은 우리에게 Orange Juice까지 대접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진찰을 마친 닥터는 우선 벌에 쏘인후에 더이상은 악화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면서, 처방전을 써주면서, 하루 더 기다렸다가 부은 상태가 그대로 이어지면 그때 약을 구입해서 사용하라고 권해준다. Gravity 때문에 가능하면 부은 부위가 하늘쪽으로 향하게 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통증 해소용 Advil두알을 주어 먹게하고, 그것으로 진료는 끝이다. 캐나다가 살기에 좋은 나라임을 또한번 느끼게 한 병원치료이다. 신분을 밝히는 카드한잔이면 그것으로 치료에 대한 모든 절차는 끝나고, 치료비는 정부가 지불해 주니.....
Pembroke에서의 탐방은 약간 차질이 있고 말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한시간 이상을 지체하는 시간을 보냈기에 원래 탐방할려고 했던 Pioneer Village 방문은 Skip해야했다.
Petawawa에 도착하여 길을 물어서 Military Museum을 겨우 찾아 구경을 시작했다. 도착하기전에 지도를 조금만 더 심도깊에 점검 했었으면 쉽게 찾을수 있는 Military Base 였는데, 여러곳에서 차를 세워, 주로 상점에 들려서 설명을 듣고, 드디어 도착했는데, 머리속에 상상하고 있었던, 군부대 입구의 Sentry에서 보초병을 만날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위병소는 고사하고 Check Point도 없이 그냥 아무나 마음데로 들어가고 나오고.... 어느 누군가 Intruder가 될려고 마음 먹으면 금방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군부대는 무척 커 보였다. Lunar와 둘이서 탐방하여 그점이 너무나 편하고 좋다.
원래 이군부대 부지는 Farm Land였으나 캐나다 국방부에서 구입하여 1905년에 군부대가 창설됐다고 한다. 현재는 캐나다 육군이 주둔해 있으며, 2개의 기갑여단이 주둔해 있다고 한다. 2차 대전중에는 2개 포병부대와 공병대가 주둔하여 훈련을 받았었고, 제2차대전의 끝무렵인 1943년에는 주둔병사의 수가 약 20,000명을 넘어섰던 적도 있다고 한다.
여기 전시된 전투수송기는 공수부대원들이 출동할때 이용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살아서 남았는 병사에게는 무용담을 자랑할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많았었겠지만, 산화한 병사에게는 위패 하나가 증거물로 남아 있을 뿐이것을 보면서, 전쟁은 해서는 안될 잔인한 학살 행위이자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자유와 번영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고, 나의 경우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그진리(?)는 머리속에 각인되여 있다.
민간인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했을때는 재판을 받고 그죄값을 치른다. 전쟁은 아군과 적군이 있는 모든 살상무기를 동원하여 더 많이 인명을 살상한 쪽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무도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연도의 시민들은 환영한다. 똑 같은 귀중한 목숨인데... 결과는 한쪽은 재판을 받고, 다른 한쪽은 열열한 환영을 받고..... 여기 박물관에 진열된 장비들은 모두가 상대방의 목숨을 끊기위해 만들어진 살상용 무기들인데, 버젓히 진열되여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위해 전쟁과 싸움은 있게 마련인데....혼동이 일어날것만 같다.
특전공수단 병정들을 수송했던 Dakota C-47의 모습인데, 당시에는 제일 많이 필요로 했던 전쟁무기중 하나였었던것 같다. 지금은 초라하게, 녹슬은 낡은 모습으로 마치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들의 늙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다.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늙은 참전용사들은 정부과 국민들의 보호와 대접을 받지만.....
Lunar는 그녀의 형부와 그리고 오빠가 공군사관학교 출신이기에 군대얘기에 대해서는 전연 생소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결혼해서는 나의 군대 얘기도 들어왔었기에, 최근에는 이곳에서 재향군인회에서 일을 할때 같이 도와서 해본 경험이 있어, 전쟁과 군대에 관한 전쟁무기 전시박물관에서 무료함 보다는 이를 이해 해볼려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게 고맙기도 하다.
관람객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병사들의 정장옷을 입고 Lunar가 멋진(?)폼을 잡고 있다. 나도 해보지 못한 장교복도 입어보고, 사병의 정장도 입어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Air Borne 병사들이 입었던 그리고 갖추었던 장비들에 대한 전시품을 보면서, 갖추어야 할 장비의 무게가 무척 무거웠을것 같다는 상상을 쉽게 할수 있었다.
2차 대전때 사용됐었단 Rifle이 진열되여 있었는데, 똑 같은 모델의 소총을 당시 영국의 처칠 수상이 겨냥하고 있는 사진과 연결되여 더 관심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을 더듬어 전쟁박물관을 둘러 보면서, 그래도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기를 참 잘했었다는 자부심을 조금이나마 느끼면서, 오늘 잘사는 조국이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그최전방에서 총을 들고 적과 마주해서 조국을 지켰다는데, 자긍심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국의 덕택에, 조국에서 만들어준 Passport를 들고 이곳에 당당히 이민와서, 오늘은 역사적 전쟁 박물관까지 구경하고 있다.
이구간에는 Pine Tree들이 많이 자라고 있고, 태고의 밀림처럼 빽빽하여 사람들의 입산을 그들 자신이 막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벌채한 원목을 싣고 달리는 추럭들도 많이 지나친다.
이른 저녁에 오늘밤 신세지게될 North Bay에 도착, 여관을 짐을 풀고 잠시 바다같이 넓은 Nippising Lake 항구를 잠시 둘러 봤다.
여러해 전에 이곳에 친지 부부와 들린일이 기억난다. 그친구 부부는 Huntsville에 Cottage가 있어 그곳에 며칠 같이 묶으면서 여기까지 Driving 삼아 온것이다. 그때 봤던 항구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다른점이 보인다면, 아마도 차량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하룻밤 자고, 내일 Cruising을 해볼려고 Ticket Office에 들렸는데, 벌써 Sold Out이란다. Cruising은 다음 행선지인 Parry Sound에서 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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