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여년간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 Freedom을 즐겨왔던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공산경찰국가인가?
어려서 시골동네에서 많이 들었던 "방안통수"라는 말이 지금 생각난다.
집안에서만 집안 식구들 괴롭히면서 Complaint 많이 하던, 덩치도 나이에 비해 컸었던, 불알친구가 있었다. 그는 읍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읍에서 그곳의 패거리들을 만나면, 덩치값도 못하면서, 방안통수로 행세하던 그용기는 찾아볼수가 없이, 주머니에 가지고있던것을 다 빼앗기고, 때로는 얻어터지기도 했었던기억이 떠올려졌다. 처참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굽신대면서 손을 비벼대던 모습이 떠올려진것이다.
지금 한국은 "방안통수"라는 어벙이가 5천만살아가는 집안에서 모든것을 손안에 넣고 쥐락펴락한지가 이제 3년이 거의 되여간다.
거대한 747 점보기를 타고 "정상회담"이라는 미명하에 해외에 나갔다하면, 상대국에서 왕따 당하기 일수이고, 혼밥에, 몇마디 안되는 주고받을 회담의 내용을 A4용지에 적어서 그내용을 읽느라 상대방 정상과의 눈맞춤에서 벗어나 희죽희죽 냉소적인 웃음이나 흘리는, 꼭 뭔가에 꼭지가 빠진자 같은 방안통수의 천방지축 행동으로 온나라가 뒤숭숭하기만 하다.
"방안통수"의 본색을 집안에서는, 더이상 형용사를 사용해가면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손댈것, 안댈것 가리지 않고 트집잡거나 흔들어대어 옆사람들을 정신 못차리게 하는데는 특출하다고 할 정도로 좌충우돌하면서, 방안통수 특유의 특징을 잘들어내고 있다.
며칠전에는 한국사회의 기본질서를 총괄하는 법무장관에, 방안통수 그자신과 똑같은 범죄혐의자를 임명하더니, 헌법수호를 하기위해 사력을 다해 근무하고있는 검찰이, 그범죄집단을 단죄하려는 노력을 방안통수와 법무장관이 뒤흔들어, 그 impact로 온나라가 또다시,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냐? 아니면 사회주의식 경찰국가로 변질시켜, 국민의 눈과 귀를 꽉막을 것인가의 기로에서 국가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고있다.
지난 연말에는 한일중 3국의 정상회담이 중국의 남부도시 Chengdu에서 있었다. 아베수상, 리커창수상, 한국의 방안통수가 한자리에 모여서, 북한의 비핵화의 효과적인 실현방법을 논의 하기위해서였다. 한국의 방안통수는 베이징에 먼저들려, 시진핑을 알현했다. 그것은 정상회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행이었다.
"홍콩과 위구르지역의 소요사태는 중국의 내정입니다"라고 아부를 했다고 중국측이 발표를 했는데, 방안통수의 청와대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사실이 아닌라면, 한국의 체면에 먹칠을 한것인데도, 방안통수는 한마디 항의나 발표내용 수정을 요구한바 없다고 한다. 그에 앞서 GSOMIA협정연장때 일본의 발표내용이 한국과 달랐다고 일본에 대해서는 방안통수가 할수있는 온갖쑈를 일본에 대고 퍼부은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시진핑앞에서는 방안통수 특유의, 45도 허리굽혀 굽신대는 Eunach연출을 잘한것이다.
방안통수의 또 다른 특징은 형에게는 개거품을 뿜어 대면서 대들고 기어오를려고 한다. 그런데도 형은 동생의 방안통수짖거리를 참을데 까지는 참아가면서, 귀엽게대해준다. 그러다가 인계한계점에 이르면, 형은 방안통수, 동생의 귀싸대기를 갈겨서 눈에서 별들이 번쩍번쩍하게 한다. 한미 동맹관계는 지난 70여년 동안에 이런 형과 방안통수인 동생의 관계로 혈맹의연을 맺고 오늘에 이르렀지만, 요즘은 방안통수가 벌인,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중국의 시진핑에 내시처럼 굴욕적 정상외교를 하는것에 더이상은 참을수 없게되여, 방안통수 동생에게 귀싸대기를 올려칠 그시간이 임박해 오고있음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눈에 별빛이 번쩍번쩍하면, 그때는 죄없는 국민들은 방안통수가 벌인 망난이짖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것을 상상만 해도 아찔 해진다. 지난번 미국방문때 13시간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Oval Office에서 불과 2분 만나고 쫒겨나는 망신을 당했는데, 이게 바로 형으로서의 참을수있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5천만 국민들은 이제 정신바짝 차리고 방안통수를 청와대에서 끌어내어 국민들 앞에 석고대좌토록 하고, 다시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써내려가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러한 시도가 실패하게 되면,한국의 앞날은 사회주의 국가로 전락하여, Freedom은 피부로 느낄수없고, 다시 지난 5천년동안 해왔던 오랜관습데로, 중국에 조공을 정기적으로 올려야 하는 부속국가로 추락할수밖에 없다. 슬프다.
양상훈 칼럼
운동권에 中·北 공산당은 여전히 애틋한 그 무엇
美 전문가들 미·중 대결 시 韓은 100% 중국 편 판단
우리는 중국서 벗어난 뒤 사상 최고 번영기 맞았지만 20~30년 뒤에도 그럴까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과 위구르는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했다는 중국 측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말한 건 시진핑 주석이고 문 대통령은 "잘 들었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정상 발언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중국에 항의도 정정
요청도 하지 않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때 일본과 발표 내용이 달랐다고 흥분해 펄펄 뛰던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이 정권은 미국·일본 등 전통 우방 앞에서는 당당하게 '철수하려면 하라' '사과하라' '양심이 있느냐' '무례하다'고 외치면서도 북한·중국의 공산당 앞에만 서면 다소곳해진다. 한국민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세습 권력제, 우상화 독재, 고문과 공개 처형 등이다. 그걸 다 하고 있는 북한 노동당 앞에서 한국 민주 정부가 절절맨다.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개성에서 북 노동당 인사들과 만난 한국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밥을 먹다 춤을 췄다. 우리를 겨냥한 미사일을 난사하고 '겁먹은 개'라고 해도 눈치를 본다. '김정은 이벤트'를 이어가려는 안간힘이겠지만 그 바탕엔 노동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깔려 있다.
1948년까지 남로당(남한 노동당)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정당이었다. 6·25 이후엔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국 독재 정부와의 투쟁이 운동권 이념을 반미 좌파로 만들었다. 1970~80년대 대학가에 리영희 책이 퍼지면서 반미·좌파가 운동권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결국 북한 노동당을 추종하는 주사파까지 등장했다. 당시 주사파에게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은 '이상향'과도 같았다. 그 후 소련이 무너지고 공산권과 북한의 허구가 드러나 큰 좌절을 맛봤지만 이들에게 공산당은 여전히 애틋한 그 무엇이다. 문 대통령이 평양 연설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다"면서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했다. 여기에 노동당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 대항하는 G2로 떠오른 중국 공산당은 한국 운동권에게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존재처럼 됐다. 2003년 방중(訪中)한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으로 '마오쩌둥'을 꼽았다. 마오는 김일성과 함께 6·25 남침을 기획했고 대규모 파병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은 장본인이다. 중공군에게 죽고 능욕당한 우리 국민이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현재의 한반도 질곡도 그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마오를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자식이 아버지 죽인 사람을 제일 존경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동경, 흠모 없이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노 대통령과 후진타오가 함께 한 기자회견은 필자의 기억 속에 고양이와 쥐가 나란히 앉은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2017년 방중한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면서 "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夢)에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그 나라를 추켜세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원수가 제 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것은 상대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 원조 찬양자이자 숭배자인 리영희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다면 이렇게 쉽게 3불(不)로 중국에 한국 군사주권을 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이 한국 대통령 특사를 홍콩 행정장관 자리에 앉히는 것은 사드 보복이지만 한국을 보는 시각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말한 사람이다. 한국 특사는 중국에 이 의전을 변경할 것을 정식 요청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 특사가 지방 장관 자리에 앉아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절절맨다. 중국의 폭력적 대외정책을 겁낸 탓도 있겠지만 중국 공산당에 대한 '열등의식' '작은집 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중 대결에서 일본은 100% 미국 편에 서고, 한국은 100% 중국 편에 선다고 보고 있다. 한·미가 결국엔 갈라설 것이란 예측이다. 중국 세력권에 있을 때 한국은 세계 최빈국을 면치 못했다. 모욕과 굴종의 역사였다. 중국에서 벗어나자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가 찾아왔다. 공산당 앞에만 서면 기를 못 펴는 사람들은 이번이든 다음이든 앞으로도 권력을 잡는다. 20~30년 후 한국이 어디에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정권은 미국·일본 등 전통 우방 앞에서는 당당하게 '철수하려면 하라' '사과하라' '양심이 있느냐' '무례하다'고 외치면서도 북한·중국의 공산당 앞에만 서면 다소곳해진다. 한국민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세습 권력제, 우상화 독재, 고문과 공개 처형 등이다. 그걸 다 하고 있는 북한 노동당 앞에서 한국 민주 정부가 절절맨다.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개성에서 북 노동당 인사들과 만난 한국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밥을 먹다 춤을 췄다. 우리를 겨냥한 미사일을 난사하고 '겁먹은 개'라고 해도 눈치를 본다. '김정은 이벤트'를 이어가려는 안간힘이겠지만 그 바탕엔 노동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깔려 있다.
1948년까지 남로당(남한 노동당)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정당이었다. 6·25 이후엔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국 독재 정부와의 투쟁이 운동권 이념을 반미 좌파로 만들었다. 1970~80년대 대학가에 리영희 책이 퍼지면서 반미·좌파가 운동권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결국 북한 노동당을 추종하는 주사파까지 등장했다. 당시 주사파에게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은 '이상향'과도 같았다. 그 후 소련이 무너지고 공산권과 북한의 허구가 드러나 큰 좌절을 맛봤지만 이들에게 공산당은 여전히 애틋한 그 무엇이다. 문 대통령이 평양 연설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다"면서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했다. 여기에 노동당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 대항하는 G2로 떠오른 중국 공산당은 한국 운동권에게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존재처럼 됐다. 2003년 방중(訪中)한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으로 '마오쩌둥'을 꼽았다. 마오는 김일성과 함께 6·25 남침을 기획했고 대규모 파병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은 장본인이다. 중공군에게 죽고 능욕당한 우리 국민이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현재의 한반도 질곡도 그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마오를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자식이 아버지 죽인 사람을 제일 존경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동경, 흠모 없이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노 대통령과 후진타오가 함께 한 기자회견은 필자의 기억 속에 고양이와 쥐가 나란히 앉은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2017년 방중한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면서 "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夢)에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그 나라를 추켜세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원수가 제 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것은 상대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 원조 찬양자이자 숭배자인 리영희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다면 이렇게 쉽게 3불(不)로 중국에 한국 군사주권을 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이 한국 대통령 특사를 홍콩 행정장관 자리에 앉히는 것은 사드 보복이지만 한국을 보는 시각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말한 사람이다. 한국 특사는 중국에 이 의전을 변경할 것을 정식 요청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 특사가 지방 장관 자리에 앉아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절절맨다. 중국의 폭력적 대외정책을 겁낸 탓도 있겠지만 중국 공산당에 대한 '열등의식' '작은집 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중 대결에서 일본은 100% 미국 편에 서고, 한국은 100% 중국 편에 선다고 보고 있다. 한·미가 결국엔 갈라설 것이란 예측이다. 중국 세력권에 있을 때 한국은 세계 최빈국을 면치 못했다. 모욕과 굴종의 역사였다. 중국에서 벗어나자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가 찾아왔다. 공산당 앞에만 서면 기를 못 펴는 사람들은 이번이든 다음이든 앞으로도 권력을 잡는다. 20~30년 후 한국이 어디에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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