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길건너에는 인도 군대부대가 있다. "Konark Military compound" 무척큰부대라고 한다. 육해공이 다 같이 근무하고 있는 부대라고 설명한다. 낯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전투기들이 훈련을 하느라 밤공기를 가르고 날아가면서 폭음을 쏟아낼때는 호텔방에 있는데도 몹시 시끄러웠다. 불꽃을 뿜으며 나의 호텔위의 밤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다.
나와 Lunar가 묶고 있는 이호텔은 건축된지 2년된 새건물로 이역시 전부 붉은 돌로 되여 있고, 직사각형의 건물형태와 그가운데에는 Open Air형태의 Atrium의 공간이 넓게 자리고하고 있고, 그중앙에 Show를 할수 있는 무대가 잘 정돈되여 있다. Indana Hotel.
호텔정문밖 울타리넘어에서는 여인들을 포함한 인부들이 화단 조성을 하는데, 여성들은 조그만 망테기에 자갈들을 당아 머리와 허리에 끼고 한참을 가서부린다. 남자인부들은 망치도 돌덩이를 깨고...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인도에서는 너무나 큰것 같다.
조속히 단장을 끝낼려면 장비를 동원해서 처리하면 쉬울텐데.... 굳이 인부들을 동원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자리 창출면에서 골육지책으로 선택된 방법인것 같다. Showl을 두르고 머리에는 돌이 잔뜩 들어있는 바구니를이고, 수백번을 왕복해도, 장비로 한번 하면 그이상으로 효과도 크고 시간을 죽이지 않는다는 심플한 원리를 주인은 알고 있을 것이다.....
Jodhpur시는 일명 군대도시, 교육도시, Sun City, Blue city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곳은 땅이 박토라서 농사는 거의 없고, 많은 사람들이 Stone industry에 종사하고 있어 자그만치 그숫자가 55,000여명에 달하고 있는 이도시의 커다란 젖줄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외곽으로는 적을 막기위한 City Wall이 만들어졌는데 그길이가 자그만치 10킬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성벽에는 7개의 문이 설치되여 사람왕래 하는데 사용되고 신원파악을 했었다고 한다.
Tour Guide, Bophal은 열심히 달리는 차안에서 설명에 여념이 없다. Jodhpur는 Rajasthan Province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약 1.6백만명이라고한다. 때로는 잘 알아듣지를 못해 다시 설명해달라는 주문도 했었는데, 인도인들 특유의 영어 발음이, 특히 이친구는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게 아니고 들어서 동냥하듯히 얻은 지식이기에, 그러나 본인은 자부심이 대단해 하는것 같은데, 예를 들면 November, Pregnancy같은 발음은 도저히 알아들을수가 없어 괴로웠었다.
Jaswant Thada(Memorial)는 1899년에 시작하여 1906년에 완성시켰는데, 첫번째 Maharaja Singh이1885년에 세상을 뜨자, 이를 슬퍼한 부인이 남편을 기리기위해 현재의 위치에 크게 축성했다고 한다. 추모사원은 전부 돌을 이용건축되고, 그안에는 Maharaja Singh의 Statue가 Altar가 세워져 있었다.
Memorial 가는 길에는 좌를 틀고 앉아 있는 거리의 악사를 나와 Lunar를 맞이하고, 전통악기에 전통음악을 구성지게 불러제끼지만 그의미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살기위해서 하는 Performance이기에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한푼 Donation 했다. 마음이 좀 편해진다.
조금만 정자 한가운데는 Tomb이모셔져 있었다. 뒤에 큰 건물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념하기위해 완성한 성전이다. 벽에는 Marble로 만들어 햇볕이 들었을때는 맑게 햇볕이 투시되기도 했다.
추모사원 밖에는 왼쪽에는 남편의 Tomb을 모셔져 있고, 인공호수까지 축성하여 경관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또 이와 비슷하게 Maharaja 왕들과 Royal Family가 죽으면 Tomb을 보시는 조그만 정자들이, 5대에 걸쳐, 후손들에 의해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오늘이 마침 후손들이 모여 선조들에 대한 추모식을 거행하는날이라고 했다. 권력과 부를 축적한 자들의 사후도 후손들의 보살핌속에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인공호수는 수량이 많지 않아 보였고, 고여있는 물이라서 썩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각종 Waterfowl들이, 어제 보았던 철새 Crane도 보였다. Monson시즌인 6-7월달에 비가 내리면 움푹패인계곡에 만들어진 이호수로 빗물이 고여 수량을 유지한다.
Memorial 사원탐방을 마치고 나오면서, Rao Jodha라는 토후가 1459년에 오늘날의 Jodhpur시를 짖기위한 최초의 터를 잡은 인물임을 기념하기위해 도시 이름은 그를 기리기위해 사용돼기 시작했었다는 설명이다.
역사적 Site를 방문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인종이 많아서인지는 확실히 잘 터득하지는 못했으나 Gate에 Uniform을 입은 Security Guard, 청소부들 그외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게 통롱갓길쪽에 좌를 틀고 앉아 처음보는 어설픈 악기를 들고 외관상으로 관광객이다 싶으면 소리를 내여 관심을 끌기시작한다. 적선해달라는 것이다.
Maharangarth Fort는 돌산위에 크게 세워진 전략전 요충지라고 한다. 1459년에 축성하기 시작하여 그후 왕들이 17대에 걸쳐, 계속해서 Expand하여 오늘의 큰 성이 됐다고 설명이다. 성에 들어가는 성문이 두개가 있고, 성안에서는 Section별로 또다른 7개의 문을 통과하면서 구경하게 된 구조라고 한다. 42대 후손왕까지 거주 했었으나 현재는 모두 외곽으로 빠져 나가 살고 있을뿐, 관람객들에게 관람 시키는 역사적 Site가 됐다고 한다. 직접 곁에서 보니 규모가 어마마하다 고개를 높이 들어 보아야 성곽윗쪽이 보일 정도다.
건물구조형태는 Mogul 식으로, 2층벽에는 Flower를 조각해서 정교함이 감탄케한다. 이부분은 17세기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Coronation이 이루어진것은 1952년이었다.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서, 옛날 왕들은 호화롭게 그리고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특히한 기구들을 많이 사용했었던것으로 보였다. 타고 다니는 가마만 해도 왕비의 몸무게에 따라 가마꾼들의 숫자가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16명까지 있었다고 하니....
Daulat Khana는 왕실의 재산, 즉 회계를 하던방으로 관리들이 사용했었다고 한다. 건물안의 문양(Painting)은 두가지로 표현됐다. Hindu Painting으로 주로 인간의 얼굴을 나타내는 Marwar식이고 다른 하나는 Mogul 타입으로 꽃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었다.
Phool Mahal방은 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모여 연회를 열었던 곳이라고 한다. 벽화의 화려함이 당시 왕족들의 화려함을 대변하는것 같이 보였는데, 한쪽 벽은 흰색으로 남겨져 있었다. 한명의 유명한 화가가 10년에 걸쳐 그리다가 한쪽면을 남겨놓고 세상을 떴다. 왕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기리기위해 미완성인 그벽을 흰색으로 남겨 놓도록 명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벽화에 사용된 금은 자그만치 80킬로그람이다고, 믿거나 말거나, Guide의 설명이다.
성전 관람중 우연히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여행온 젊은친구 3명을 만났다. 3명모두 군복무를 마치고 세상을 배우기위해 약 10여일 일정으로 인도를 탐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들의 자세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보기쉽지않은 겸손함과, 알려고 하는 자세가 우리 부부의 시선을 끌게 해줬다. 그들과 함께 행동을 하면서 성안을 구경하는데, 그들에게 주문을 했다. 이해가 안되고 의문이 생기면 Tour Guide, Bophal에게 주져없이 질문을 던지라고. 영어 소통도 크게 문제가 없어 보여 다행으로 느꼈기에 주문을 한것이다. 다행히도 Bophal이 이런 나의 제안에 혼쾌히 받아 들였다. 젊어서 하는 이들의 여행이 후일에 사회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Motive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기전시관에는 Bamboo Spear, 각종 칼 등등이 빼곡히 진열되여 있었다. Guide의 설명은 전시된 무기들은 한번도 실제 전장에서 사용된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성안의 맨 꼭대기층에 있는 왕의 Main Bedroom에는 당시의 침대및 방석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여 있었고, Maharaja Takhat Vila는 공식적으로 36명의 부인과 90명의 Sex를 위한 Girl Friends를 거느렸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이런 설명을 들으면 참으로 많이 부러워할것 같다. 나도 젊어서 이런 구경을 하게 됐었다면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맨꼭대기층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회랑에서 내려다본 시내의 깨딱지 같은 집들은 색갈이 Blue color로 칠해져 있었다. 그래서 일명 Blue city라는 설명이 이해가 됐다.
그의미는 사막에서 일어나는 먼지에 민감하지 않고, 더운 여름에 열을 방사는 역활을 하고, 생명체 심지어 모기까지도 살상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Blue Color를 즐겨 사용했던 것이다.
상층의 방한칸에서 터반을 두른 이노인은 공공연히 Opium을 피우고 관람객들에도 권했다.
육안으로는 도심의 집들이 Blue Color를 띄고 있었는데, 그래서 Blue City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사진에서는 선명히 색상이 나타나지 않아 좀 안타깝다. 이렇게 큰 성을 전부 돌로 쌓아 올리고, 또 조각( Carving)까지 해서, 수십년씩 매달려 건축했다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선뜻이해가 안간다.
Peace and Power를 나타내는 Shewa는 주로 남자, Parapi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설명이고, Moti Mahal라는 단어는 Guide의 설명없이는 알길이 없는 그들몇명만이 알수 있는 수수꺼끼같은 언어들이다. Gudie의 설명에 의하면 성전안의 그려진 색상을 뜻한다고 하는데, 단순히 관람하는 관광객들에게 골치를 더 아프게 해주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당이 큰 Hall에는,왕들이 여성들만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별도의 방을 만들어 그녀들이 마음껏 노래하고 Hide and See게임같은것을 즐길수 있도록 배려한 그근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도 일었다. 방의 이름은 Zanarin Deodi(여성전용). 그리고 그뒷방에서 왕들은 이광경을 즐겨 보았고.... 당시의 여성은 권력자들의 놀이개 그이상 이하도 아닌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 횡포의 일면을 보면서, 인도의 현실은 현재에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다.
Fort탐방을 마치고 3명의 젊은이들과 헤여져야 했다. Lunar가 원한다면 같이 오늘의 남은 일정을 같이 소화할수 있으니 괘념치 말라고 했더니, 우리부부에게 불편을 줄까봐 굳이 사양하고 만다. Lunar의 생각은 우리가 사용하는 차에 다 같이 타고 돌아다닐 계획이었었다. 그들이 남은 일정 잘소화하고 뜻있는 여행되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Mandore Garden는 현재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여 많은 산책객들이 찾고 있는 넓은 공원이 앞쪽에 있었고, 안쪽으로 여러개의 Memorial 집들이, 이역시 전부 붉은 돌로 축조, 크고 작게 자리하고 있었다. 4세기부터 12세기에 번성했던 Marwa 왕조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17명의 왕들이 실제 이용했었던 왕궁도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대에 앞서도 언급했듯이, Ro Jodha가 고을 이름을 Jodhpur라고 최초사용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전체 42개의 Memorial들중에서 오직 7개만 이공원 Compound안에 있고 나머지 Memorial들은 도시 외곽에 모셔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공원에는 수많은 원숭이 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한마리의 원숭이가 내가 입은 Orange색갈의 자켓을 보더니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자 Gudie가 재빨리 쫓아 버린다. 하마트면 봉변을 당할번 한 순간이었었다. 인도 여행에서 처음 보는 원숭이 가족이다.
이곳 Jodhpur에서 가장 유명한 Sadra Market안의 넓은 광장에는 Clock Tower가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1915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시간은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시장은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남자들은 주위에 아랑곳 하지않고 방뇨하고....민도가 언제쯤 체면을 차릴 정도가 성잘할까?
뒤에 보이는 탑속에 시계가 들어 있었고, 정확한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했다.
Market에서 다시 나가는 입구왼쪽에는 한떼의 여인들이 평상복인 까운을 입고 그들만이 할수있는 대화를 하고 있다. 화려한 색상이지만, 가까이서 보는것 보다는 멀리서 쳐다보는것이 더 아름답다는 새로운 사실도 확인 했고, Guide Bophal이 요구르트 상점으로 우리 데리고 들어가 대접을 해준다. 보기 보다는 맛이 있었다. 두컵의 요구르트를 먹어 치웠다.
Bophal이 장사의 귀재라고 알려진 Jain족이 운영하는 Textile상점안의 3층 전시실로 우릴 안내 했다. 중년의 배가 약간나온 사내가 정중히 우리부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미국의 배우 Richard Gear와 Charles황태자같은 인사들이 즐겨찾았던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에서 발간되는 Fortune Magazine, Fashion magazine에 나와 있는 방문기사를 보여 주면서 자랑이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유럽이나 미국시장의 Ratail상점에서 한장에 4천달러이상으로 팔리고있는 고가의 Showl이나 여성용 천들이 거의 전부 이곳에서 만들어져 그곳에 수출되여 팔리고 있는 제품들이란다. 의아해 하는데, 전문 Fashion Designer들이 디자인해서 보내오고 주문을 하면 한정된 수량의 제품만을 만들어 그들에게 Wholesale로 판매하고 여분으로 몇개 더 만들어서 우리같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면 염가로 판매한다는 설명이다.
Lunar가 조금만 소품 몇개를 구입한다. 여행하면서 물건 사는것은 아마도 처음인것 같다.
Umaid Bhawan Palace 탐방이 오늘의 마지막 스케쥴이다. 그곳입구에서 우연히 또 고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을 만났다. 교통편을 우선 궁금하여 물었더니, Tuk Tuk 운전수와 Deal을 잘해서왕복 사용하기로 하고 한대 Rent해서 왔었다고 설명이고 구경마치고 다시 시내 기차역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재치있는 청년들임을 다시 보게한 순간이다.
Lunar재빨리 우리가 준비해간 과일들과 Bottled Water를 차에서 꺼내 주면서 용기를 심어준다. 한피를 나눈 민족이기에 먼 이국에서 처음만났는데도 정을 나눈다. 이Palace는 1929년에서 1947년 사이에 완성된 돌건물이다. 현재도 후손인 Maharaja Goj Singh ll 가 이곳의 별채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건물을 지은왕의 증손자인 셈이다.
공식스케쥴이 끝나고 운전수,Maenoj가 우리부부를 자기집으로 초청해 저녁식사전에 갔었다.
그는 6년전에 자기집을 구입했다고 하면서, 4명의 자녀가 있었다 큰아니는 15세로 그중간에 2명의 딸과 막내는 아들로 다복한 가장이다. 2마리의 Buffalo암컷과 함께 살고 있었다. Milk을 얻기위해 사육하고 있는데, Maenoj는 주로 집밖에서 생활하기에 Wife 가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고...고된 삶을 살아가는게 눈에 휜히 보였다.
여기 보이는 조그만 Water pump는 2일에 한번씩 사용한단다. 수도물이 매일 공급안돼기 때문에 집앞까지 연결된 수도관을 연결하여 집뒤에 있는 지하 물탱크에 저장한다는 것이다
집안의 거실은 돌바닥에 그대로 노출돼있어, 그들에게는 일상생활이지만, 우리에게는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하는 고역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부부를 어떻게 보았는지 Maenoj가 초청하여, 그의 부인은 저녁준비까지 했었으니 .... 고마웠지만, 도저히 저녁을 여기서 같이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아, 정중히 사양하고 호텔에서 먹기로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전통에 따라 Wife역시 코에 장신구를 달았고, 손목 발목에는 은으로된 장신구들이 많이 매달려 있음을 볼수 있었다. 아이들 교육시키는데 한달에 약 평균 1500Rupee의 월사금을 지불해야 한다. 국립학교인데로 이들의 생활수준에서는 비싼 교육비지출이다. 아이들이 배우는 영어책을 보여 주면서 대화를 해보고져 한다. 입은 옷들은 여전히 꽤재재한, 옛날 어렷을때의 시골촌사내였던 내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았다. 그들에게 적은 성의를 손에 쥐어 주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해 봤다. 나는 축복을 받아 여행을 다니면서 인생수업을 할수있는 현장을 이꼬마들이 보여주어 정신재무장을 해주는 감사한 마음이다.
부엌은 여성이 음식을 만드는 특유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전연없었다. 이곳에서 만든 음식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고급이라서가 아니고 이런환경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받아 들이기에는 내자신이 너무나 고급스럽게 살아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저녁을 하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성의만 받겠다는 뜻을 Maenoj를 통해 그의 부인에게 전달했다.
Lunar가 아이들에게 호텔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제의했더니 모두가 찬성이다. 이들에게는 커다란 호텔을 구경하는게 처음이란다. Front Desk에서 내가 먼저 사유를 설명했더니 혼쾌히 승락해줘 무사히 우리방으로 모두가 이동했다. 이곳 저곳을 보고, 사진도 찰칵했다. Lunar가 몇개의 윗옷과 준비해간 칫솔 치약 그리고 몇개의 상비약품을 챙겨 주었다. Maenoj는 아빠로서의 긍지가 많이 살아난 기분인것 같았다.
Maenoj의 원래 직업은 이곳출신 국회의원의 운전수로 오랫동안 일해왔다는 것이다. 마침 보스가 속한 집권당의 정강정책 Conference가 남쪽의 Channai에서 한달간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 우리의 여행기관과 같은 기간이어서 약 15일간 같이 동행하게 된것이라고 사유를 설명한다. 우리부부의 여행을 맡아하는 Travelogy India에서 중역으로 일하는 절친한 친구가 쉬는 시간에 살림에 보탤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 추천을 해주어 Part time으로 우리와의 인연을 맺었다고한다. 인연이란 우연찮게 맺어지는 것임을 이여행을 통해서 또한번 느낀다.
나와 Lunar가 묶고 있는 이호텔은 건축된지 2년된 새건물로 이역시 전부 붉은 돌로 되여 있고, 직사각형의 건물형태와 그가운데에는 Open Air형태의 Atrium의 공간이 넓게 자리고하고 있고, 그중앙에 Show를 할수 있는 무대가 잘 정돈되여 있다. Indana Hotel.
호텔정문밖 울타리넘어에서는 여인들을 포함한 인부들이 화단 조성을 하는데, 여성들은 조그만 망테기에 자갈들을 당아 머리와 허리에 끼고 한참을 가서부린다. 남자인부들은 망치도 돌덩이를 깨고...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인도에서는 너무나 큰것 같다.
조속히 단장을 끝낼려면 장비를 동원해서 처리하면 쉬울텐데.... 굳이 인부들을 동원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자리 창출면에서 골육지책으로 선택된 방법인것 같다. Showl을 두르고 머리에는 돌이 잔뜩 들어있는 바구니를이고, 수백번을 왕복해도, 장비로 한번 하면 그이상으로 효과도 크고 시간을 죽이지 않는다는 심플한 원리를 주인은 알고 있을 것이다.....
Jodhpur시는 일명 군대도시, 교육도시, Sun City, Blue city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곳은 땅이 박토라서 농사는 거의 없고, 많은 사람들이 Stone industry에 종사하고 있어 자그만치 그숫자가 55,000여명에 달하고 있는 이도시의 커다란 젖줄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외곽으로는 적을 막기위한 City Wall이 만들어졌는데 그길이가 자그만치 10킬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성벽에는 7개의 문이 설치되여 사람왕래 하는데 사용되고 신원파악을 했었다고 한다.
Tour Guide, Bophal은 열심히 달리는 차안에서 설명에 여념이 없다. Jodhpur는 Rajasthan Province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약 1.6백만명이라고한다. 때로는 잘 알아듣지를 못해 다시 설명해달라는 주문도 했었는데, 인도인들 특유의 영어 발음이, 특히 이친구는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게 아니고 들어서 동냥하듯히 얻은 지식이기에, 그러나 본인은 자부심이 대단해 하는것 같은데, 예를 들면 November, Pregnancy같은 발음은 도저히 알아들을수가 없어 괴로웠었다.
Jaswant Thada(Memorial)는 1899년에 시작하여 1906년에 완성시켰는데, 첫번째 Maharaja Singh이1885년에 세상을 뜨자, 이를 슬퍼한 부인이 남편을 기리기위해 현재의 위치에 크게 축성했다고 한다. 추모사원은 전부 돌을 이용건축되고, 그안에는 Maharaja Singh의 Statue가 Altar가 세워져 있었다.
Memorial 가는 길에는 좌를 틀고 앉아 있는 거리의 악사를 나와 Lunar를 맞이하고, 전통악기에 전통음악을 구성지게 불러제끼지만 그의미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살기위해서 하는 Performance이기에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한푼 Donation 했다. 마음이 좀 편해진다.
조금만 정자 한가운데는 Tomb이모셔져 있었다. 뒤에 큰 건물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념하기위해 완성한 성전이다. 벽에는 Marble로 만들어 햇볕이 들었을때는 맑게 햇볕이 투시되기도 했다.
추모사원 밖에는 왼쪽에는 남편의 Tomb을 모셔져 있고, 인공호수까지 축성하여 경관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또 이와 비슷하게 Maharaja 왕들과 Royal Family가 죽으면 Tomb을 보시는 조그만 정자들이, 5대에 걸쳐, 후손들에 의해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오늘이 마침 후손들이 모여 선조들에 대한 추모식을 거행하는날이라고 했다. 권력과 부를 축적한 자들의 사후도 후손들의 보살핌속에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인공호수는 수량이 많지 않아 보였고, 고여있는 물이라서 썩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각종 Waterfowl들이, 어제 보았던 철새 Crane도 보였다. Monson시즌인 6-7월달에 비가 내리면 움푹패인계곡에 만들어진 이호수로 빗물이 고여 수량을 유지한다.
Memorial 사원탐방을 마치고 나오면서, Rao Jodha라는 토후가 1459년에 오늘날의 Jodhpur시를 짖기위한 최초의 터를 잡은 인물임을 기념하기위해 도시 이름은 그를 기리기위해 사용돼기 시작했었다는 설명이다.
역사적 Site를 방문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인종이 많아서인지는 확실히 잘 터득하지는 못했으나 Gate에 Uniform을 입은 Security Guard, 청소부들 그외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게 통롱갓길쪽에 좌를 틀고 앉아 처음보는 어설픈 악기를 들고 외관상으로 관광객이다 싶으면 소리를 내여 관심을 끌기시작한다. 적선해달라는 것이다.
Maharangarth Fort는 돌산위에 크게 세워진 전략전 요충지라고 한다. 1459년에 축성하기 시작하여 그후 왕들이 17대에 걸쳐, 계속해서 Expand하여 오늘의 큰 성이 됐다고 설명이다. 성에 들어가는 성문이 두개가 있고, 성안에서는 Section별로 또다른 7개의 문을 통과하면서 구경하게 된 구조라고 한다. 42대 후손왕까지 거주 했었으나 현재는 모두 외곽으로 빠져 나가 살고 있을뿐, 관람객들에게 관람 시키는 역사적 Site가 됐다고 한다. 직접 곁에서 보니 규모가 어마마하다 고개를 높이 들어 보아야 성곽윗쪽이 보일 정도다.
건물구조형태는 Mogul 식으로, 2층벽에는 Flower를 조각해서 정교함이 감탄케한다. 이부분은 17세기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Coronation이 이루어진것은 1952년이었다.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서, 옛날 왕들은 호화롭게 그리고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특히한 기구들을 많이 사용했었던것으로 보였다. 타고 다니는 가마만 해도 왕비의 몸무게에 따라 가마꾼들의 숫자가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16명까지 있었다고 하니....
Daulat Khana는 왕실의 재산, 즉 회계를 하던방으로 관리들이 사용했었다고 한다. 건물안의 문양(Painting)은 두가지로 표현됐다. Hindu Painting으로 주로 인간의 얼굴을 나타내는 Marwar식이고 다른 하나는 Mogul 타입으로 꽃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었다.
Phool Mahal방은 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모여 연회를 열었던 곳이라고 한다. 벽화의 화려함이 당시 왕족들의 화려함을 대변하는것 같이 보였는데, 한쪽 벽은 흰색으로 남겨져 있었다. 한명의 유명한 화가가 10년에 걸쳐 그리다가 한쪽면을 남겨놓고 세상을 떴다. 왕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기리기위해 미완성인 그벽을 흰색으로 남겨 놓도록 명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벽화에 사용된 금은 자그만치 80킬로그람이다고, 믿거나 말거나, Guide의 설명이다.
성전 관람중 우연히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여행온 젊은친구 3명을 만났다. 3명모두 군복무를 마치고 세상을 배우기위해 약 10여일 일정으로 인도를 탐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들의 자세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보기쉽지않은 겸손함과, 알려고 하는 자세가 우리 부부의 시선을 끌게 해줬다. 그들과 함께 행동을 하면서 성안을 구경하는데, 그들에게 주문을 했다. 이해가 안되고 의문이 생기면 Tour Guide, Bophal에게 주져없이 질문을 던지라고. 영어 소통도 크게 문제가 없어 보여 다행으로 느꼈기에 주문을 한것이다. 다행히도 Bophal이 이런 나의 제안에 혼쾌히 받아 들였다. 젊어서 하는 이들의 여행이 후일에 사회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Motive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기전시관에는 Bamboo Spear, 각종 칼 등등이 빼곡히 진열되여 있었다. Guide의 설명은 전시된 무기들은 한번도 실제 전장에서 사용된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성안의 맨 꼭대기층에 있는 왕의 Main Bedroom에는 당시의 침대및 방석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여 있었고, Maharaja Takhat Vila는 공식적으로 36명의 부인과 90명의 Sex를 위한 Girl Friends를 거느렸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이런 설명을 들으면 참으로 많이 부러워할것 같다. 나도 젊어서 이런 구경을 하게 됐었다면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맨꼭대기층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회랑에서 내려다본 시내의 깨딱지 같은 집들은 색갈이 Blue color로 칠해져 있었다. 그래서 일명 Blue city라는 설명이 이해가 됐다.
그의미는 사막에서 일어나는 먼지에 민감하지 않고, 더운 여름에 열을 방사는 역활을 하고, 생명체 심지어 모기까지도 살상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Blue Color를 즐겨 사용했던 것이다.
상층의 방한칸에서 터반을 두른 이노인은 공공연히 Opium을 피우고 관람객들에도 권했다.
육안으로는 도심의 집들이 Blue Color를 띄고 있었는데, 그래서 Blue City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사진에서는 선명히 색상이 나타나지 않아 좀 안타깝다. 이렇게 큰 성을 전부 돌로 쌓아 올리고, 또 조각( Carving)까지 해서, 수십년씩 매달려 건축했다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선뜻이해가 안간다.
Peace and Power를 나타내는 Shewa는 주로 남자, Parapi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설명이고, Moti Mahal라는 단어는 Guide의 설명없이는 알길이 없는 그들몇명만이 알수 있는 수수꺼끼같은 언어들이다. Gudie의 설명에 의하면 성전안의 그려진 색상을 뜻한다고 하는데, 단순히 관람하는 관광객들에게 골치를 더 아프게 해주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당이 큰 Hall에는,왕들이 여성들만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별도의 방을 만들어 그녀들이 마음껏 노래하고 Hide and See게임같은것을 즐길수 있도록 배려한 그근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도 일었다. 방의 이름은 Zanarin Deodi(여성전용). 그리고 그뒷방에서 왕들은 이광경을 즐겨 보았고.... 당시의 여성은 권력자들의 놀이개 그이상 이하도 아닌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 횡포의 일면을 보면서, 인도의 현실은 현재에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다.
Fort탐방을 마치고 3명의 젊은이들과 헤여져야 했다. Lunar가 원한다면 같이 오늘의 남은 일정을 같이 소화할수 있으니 괘념치 말라고 했더니, 우리부부에게 불편을 줄까봐 굳이 사양하고 만다. Lunar의 생각은 우리가 사용하는 차에 다 같이 타고 돌아다닐 계획이었었다. 그들이 남은 일정 잘소화하고 뜻있는 여행되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Mandore Garden는 현재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여 많은 산책객들이 찾고 있는 넓은 공원이 앞쪽에 있었고, 안쪽으로 여러개의 Memorial 집들이, 이역시 전부 붉은 돌로 축조, 크고 작게 자리하고 있었다. 4세기부터 12세기에 번성했던 Marwa 왕조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17명의 왕들이 실제 이용했었던 왕궁도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대에 앞서도 언급했듯이, Ro Jodha가 고을 이름을 Jodhpur라고 최초사용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전체 42개의 Memorial들중에서 오직 7개만 이공원 Compound안에 있고 나머지 Memorial들은 도시 외곽에 모셔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공원에는 수많은 원숭이 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한마리의 원숭이가 내가 입은 Orange색갈의 자켓을 보더니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자 Gudie가 재빨리 쫓아 버린다. 하마트면 봉변을 당할번 한 순간이었었다. 인도 여행에서 처음 보는 원숭이 가족이다.
이곳 Jodhpur에서 가장 유명한 Sadra Market안의 넓은 광장에는 Clock Tower가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1915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시간은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시장은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남자들은 주위에 아랑곳 하지않고 방뇨하고....민도가 언제쯤 체면을 차릴 정도가 성잘할까?
뒤에 보이는 탑속에 시계가 들어 있었고, 정확한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했다.
Market에서 다시 나가는 입구왼쪽에는 한떼의 여인들이 평상복인 까운을 입고 그들만이 할수있는 대화를 하고 있다. 화려한 색상이지만, 가까이서 보는것 보다는 멀리서 쳐다보는것이 더 아름답다는 새로운 사실도 확인 했고, Guide Bophal이 요구르트 상점으로 우리 데리고 들어가 대접을 해준다. 보기 보다는 맛이 있었다. 두컵의 요구르트를 먹어 치웠다.
Bophal이 장사의 귀재라고 알려진 Jain족이 운영하는 Textile상점안의 3층 전시실로 우릴 안내 했다. 중년의 배가 약간나온 사내가 정중히 우리부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미국의 배우 Richard Gear와 Charles황태자같은 인사들이 즐겨찾았던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에서 발간되는 Fortune Magazine, Fashion magazine에 나와 있는 방문기사를 보여 주면서 자랑이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유럽이나 미국시장의 Ratail상점에서 한장에 4천달러이상으로 팔리고있는 고가의 Showl이나 여성용 천들이 거의 전부 이곳에서 만들어져 그곳에 수출되여 팔리고 있는 제품들이란다. 의아해 하는데, 전문 Fashion Designer들이 디자인해서 보내오고 주문을 하면 한정된 수량의 제품만을 만들어 그들에게 Wholesale로 판매하고 여분으로 몇개 더 만들어서 우리같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면 염가로 판매한다는 설명이다.
Lunar가 조금만 소품 몇개를 구입한다. 여행하면서 물건 사는것은 아마도 처음인것 같다.
Umaid Bhawan Palace 탐방이 오늘의 마지막 스케쥴이다. 그곳입구에서 우연히 또 고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을 만났다. 교통편을 우선 궁금하여 물었더니, Tuk Tuk 운전수와 Deal을 잘해서왕복 사용하기로 하고 한대 Rent해서 왔었다고 설명이고 구경마치고 다시 시내 기차역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재치있는 청년들임을 다시 보게한 순간이다.
Lunar재빨리 우리가 준비해간 과일들과 Bottled Water를 차에서 꺼내 주면서 용기를 심어준다. 한피를 나눈 민족이기에 먼 이국에서 처음만났는데도 정을 나눈다. 이Palace는 1929년에서 1947년 사이에 완성된 돌건물이다. 현재도 후손인 Maharaja Goj Singh ll 가 이곳의 별채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건물을 지은왕의 증손자인 셈이다.
공식스케쥴이 끝나고 운전수,Maenoj가 우리부부를 자기집으로 초청해 저녁식사전에 갔었다.
그는 6년전에 자기집을 구입했다고 하면서, 4명의 자녀가 있었다 큰아니는 15세로 그중간에 2명의 딸과 막내는 아들로 다복한 가장이다. 2마리의 Buffalo암컷과 함께 살고 있었다. Milk을 얻기위해 사육하고 있는데, Maenoj는 주로 집밖에서 생활하기에 Wife 가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고...고된 삶을 살아가는게 눈에 휜히 보였다.
여기 보이는 조그만 Water pump는 2일에 한번씩 사용한단다. 수도물이 매일 공급안돼기 때문에 집앞까지 연결된 수도관을 연결하여 집뒤에 있는 지하 물탱크에 저장한다는 것이다
집안의 거실은 돌바닥에 그대로 노출돼있어, 그들에게는 일상생활이지만, 우리에게는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하는 고역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부부를 어떻게 보았는지 Maenoj가 초청하여, 그의 부인은 저녁준비까지 했었으니 .... 고마웠지만, 도저히 저녁을 여기서 같이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아, 정중히 사양하고 호텔에서 먹기로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전통에 따라 Wife역시 코에 장신구를 달았고, 손목 발목에는 은으로된 장신구들이 많이 매달려 있음을 볼수 있었다. 아이들 교육시키는데 한달에 약 평균 1500Rupee의 월사금을 지불해야 한다. 국립학교인데로 이들의 생활수준에서는 비싼 교육비지출이다. 아이들이 배우는 영어책을 보여 주면서 대화를 해보고져 한다. 입은 옷들은 여전히 꽤재재한, 옛날 어렷을때의 시골촌사내였던 내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았다. 그들에게 적은 성의를 손에 쥐어 주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해 봤다. 나는 축복을 받아 여행을 다니면서 인생수업을 할수있는 현장을 이꼬마들이 보여주어 정신재무장을 해주는 감사한 마음이다.
부엌은 여성이 음식을 만드는 특유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전연없었다. 이곳에서 만든 음식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고급이라서가 아니고 이런환경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받아 들이기에는 내자신이 너무나 고급스럽게 살아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저녁을 하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성의만 받겠다는 뜻을 Maenoj를 통해 그의 부인에게 전달했다.
Lunar가 아이들에게 호텔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제의했더니 모두가 찬성이다. 이들에게는 커다란 호텔을 구경하는게 처음이란다. Front Desk에서 내가 먼저 사유를 설명했더니 혼쾌히 승락해줘 무사히 우리방으로 모두가 이동했다. 이곳 저곳을 보고, 사진도 찰칵했다. Lunar가 몇개의 윗옷과 준비해간 칫솔 치약 그리고 몇개의 상비약품을 챙겨 주었다. Maenoj는 아빠로서의 긍지가 많이 살아난 기분인것 같았다.
Maenoj의 원래 직업은 이곳출신 국회의원의 운전수로 오랫동안 일해왔다는 것이다. 마침 보스가 속한 집권당의 정강정책 Conference가 남쪽의 Channai에서 한달간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 우리의 여행기관과 같은 기간이어서 약 15일간 같이 동행하게 된것이라고 사유를 설명한다. 우리부부의 여행을 맡아하는 Travelogy India에서 중역으로 일하는 절친한 친구가 쉬는 시간에 살림에 보탤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 추천을 해주어 Part time으로 우리와의 인연을 맺었다고한다. 인연이란 우연찮게 맺어지는 것임을 이여행을 통해서 또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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