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늦은 10시에 탐방 시작으로 마음이 좀 느긋하다. 이곳 Khajaraho에 있는 유일한 5성급 호텔이지만, 관리를 잘 하지못해 많이 망가지고, 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이다. 직원들의 근성이 문제점이 터지면 그순간만 피하고 넘어가면 그만인것으로 인식되여, 마치 큐바의 Resort에서 본것과 다를게 없어 보인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창문도 닫히지 않았고, 벽에 붙어 있는 Plug용 Socket 판넬도 덜렁 거리고.....
https://youtu.be/2YKdqT8b56I
Lobby에서 기다리고있던 Tour Guide Ashwani씨를 만났다. 곧바로 Khajuraho main temple로 차를 몰았다. 불과 호텔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시간을 만히 절약할수 있어 좋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쓰레기들이 덜 보였다. 역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것은 여기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Temple 정문에 들어서자 오른쪽 큰 Budah Tree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당시왕은 부처가 이나무를 무척 좋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Budah Tree로 명명하여 오늘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것이다. 내가 볼때는 포블러 나무같아 보였는데, 심각하게 설명하니 그럴듯하다.
Tour Guide로 부터 설명을 듣기 시작하면서 유교사상이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우리한국사람들의 정서와는 해결돼야할 문제점, 특히 성(Sex)에 대한 본데로 느낀데로 표현하는것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마음을 망설이게 해서, 그중에 몇개만 듣고 소화한데로 적어 보기로 했다.
Temple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오른쪽에 White Temple보인다. 지붕위에 있는 3개의 Dome은 제각기 모양이 달랐는데, Hindu, Budah, Muslim건축양식으로 표현한다. 그뜻은 다민족이 어울려 살면서 Harmony를 이룬다는 뜻이며, 19세기, 즉 150여년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Dome은 원래 하얀색인데 검정색으로 변해 더러워 보였는데, 암모니아를 사용하여 청소를 했는데, 그독가스로 표면이 망가져, 지금은 10에서 15년에 한번씩 다른 세척제를 사용하여 검정때를 벗긴다.
Khajuhara의 원래뜻은 인도의 중심지라는 뜻이란다. 이곳은 농장지역으로 Dates, Palm tree등이 잘자라는, 그래서 농사를 짖는 곳이라는 뜻이다.
Main temple, Lasshmana Temple과 그주위의 직사강형 형태의 둘레에 작은 Temple들은 약 1000년전에 Chandella 통치자가 20년에 걸쳐 건설했다고 한다. 그중의 왼쪽앞에 있는 Temple의 일부조각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Reconstruction했다는데, UNESCO에서 새로 훼손된 부분을 고칠때, 원래의 Temple과 비교시키기위해서 일부러 Simple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고쳐진 부분에는 힌페인트로 고유의 번호가 부착되여 있었다.
Khajuraho Temple의 근본 개념은, 인간이 낯동안에 살아가면서, 먹을것, 입을것, 남녀간에 성을 즐기는것, 싸움터에 나가는것 등등의 삶의 일상을 Temple의 외곽벽에 섬세하게 조각한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특히 남녀간, 또는 동물과 인간과의 성관계 등등, 모든 Intercourse자세를 표현한것에 중점을 준 Unique한 성전이라고 할수 있겠다. Temple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Gangga 아취형으로 조각하여, 사람들이 성전안으로 들어갈때, 그곳에서 두방울씩의 물이 떨어져 일종의 침례를 하는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Gangga river water는 Holy water로 간지스강물을 이용하여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것 처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Main Temple입구에 있는 층계에는 반달모양과 조개껍질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었다.
Ganesh God에 대한 Lengend는 듣기에 흥미진진했다.
아버지 Shiva, 어머니 Barpati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단다. 아버지는 부인이 아들을 낳은것도 모른채 Hymalaya 산중에서 득도하기위한 기도를 하고, 마침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와 왔는데 문전에서 어느 사내가 집에 못들어가게 막는다. "내가 이집의 주인이다"라고 해도 막무가내고 못들어가게 하자, "너의 어머님이 누구냐?" 하자, "Barpati "라고 하자, "그러면 내가 바로 너의 아버지야" 라고 말을 했는데도 이소년은 믿을수가 없어 들여 보내지않자, 화가난 아버지는 즉석에서 아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러한 소란이 일자, 집안에 있던 어머니가 밖으로 나와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져 있는게 아닌가.
그때에 옆에는 Brahman과 Vishnu가 이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이두개의 신이 중재를 해서 그러면 목이 베인 아들, Ganesh의 머리에 코끼리머리를 부치기로 하고, 즉시 코끼리를 구해서 목을쳐 바로 Ganesh의 목에 부치게 된대서 오늘날 Ganesh God의 목은 코끼리로 묘사되고, 몸통은 인간의 모습으로 돼 있다는 설명이다.
Main temple의 Lakshmana Temple의 외곽벽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들을 대부분 남녀간의 성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옛날 인두교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성을 포함을 모든 인생사들 괴로워하고 즐긴후에 Temple 안으로 들어가 그런삶의 뜻으로 그들의 신에게 Donation하는것과 연결시키고 있는 Practical한 삶을 묘사했다고 본다.
Tuntra Yoga는 여성의 성적으로 가장 자극을 받는 7개 포인트가 있는데, 달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는것으로 이해되여, 만월달일때는 성적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포인트가 여성의 머리꼭지이며, 반달일때는 여성의 뒷쪽 허리부분이어서 남성이 손가락으로 그곳을 누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Carving에서 그형태를 잘 나타내주고 있어 신기하까지 했다.
이여인은 얼굴을 돌리고 있는 형상인데 설명에 의하면 유방이 너무 커서 그사이로 아래 남자를 보기위해 돌린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상은 조각을 한 사람이 남성이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자기의 생각이라는 주석도 달았다.
조각에서 Hindu여성은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민낯으로 표현됐는데, 이점이 이상하여 물었는데, Guide의 대답은, 14세기 전까지는 힌두여성은 아무것도 가린게 없는 민낯이었었다.
그이후 India를 Muslim들이 점령하면서 그들의 풍습을 여성들에게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면서 얼굴을 가리기 시작한것이 전통이 되여 오늘날에는 그것이 Hindu여인들이 전통이 되다시피한 슬픈 과거사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Hindu사람들은 낯시간동안에는 남년간에 섹스를 하는것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즉 먹는것, 사람을 나누는것, 돈버는것, 그리고 싸우는것등등의 일들을 하고, 그후에 Hindu Temple로 들어가 낯시간 동안에 행한 감사의 뜻으로 Donation을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남녀간에 사랑을 나눈것을 가장 큰 즐거움을 Donation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내가 믿는 기독교와는 정반대의 뜻으로 이해할수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섯부른 나의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일을 준비하기위해 몸을 경건히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런면에서 Practical한 면이 많이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Temple안의 Altar에는 Vishnu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Laximi라는 여인으로 Main Temple 앞쪽에 있는 조그만 Temple이 그녀를 모시는 곳이다. 당시의 왕 Laxibamana는 Vishnu God 을 숭상하기위해 낯동안에는 그의 상(Statue) 모셔져 있는 동안에 항상 햇볕이 들어 경배하는 사람들이 쉽게 볼수 있게 하기위해 해가뜨는 동쪽을 향해 성전의 정문을 내고, 성전안 중앙바닥에 반질 반질한 돌을 깔아 반사된 햇볕이 Vishnu상의 발끝부터 차차 몸전체까지 비추게 하는 특수 기법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Vishnu상이 세워져 있는 옆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빛이 그곳을 향해 들어오면 벽면에 햇볕이 반사되여 Vishnu상을 비추도록 했다고한다.
이모습은 돌판을 비스듬히 세우기위해 Base에 놓여있는 돌에 Groove를 파서 그곳에 돌판을 끼워 넣어 필요한 각도만큼씩 눕히고 세우고 했었는데, 아주견고하게 잘 역학적으로 판단하여 그당시에도 응용했었다는 설명이다.
Temple을 받치고 있는 Base의 벽에 새겨진 조각상은 남녀간의 성교 position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69형, 73형,11형,12형등등으로로 세밀하게 조각되여 있음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당시 Hindu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중심이었었다고 설명한다.
그옆에는 당시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Soldiers)들이 동물과 관계를 하고 있었는데, 여성이 전쟁에 임하는 상황에서는 같이 있는게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옆에 있던 병사는 마치 아무것도 안보고 있는것 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형국은 실상을 정말로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진정한 삶이 한장면이라는 설명이었다.
Maint Temple뒤에 별도로 건축된 Temple은 Kadariya Temple인데, 전체적인 조각은 Main temple과 비슷한데, 입구가 Hymalaya산맥에서 Vishnu가 기도하기위해 기거했던 Cave의 입구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Temple은 11세기경에 Chandella 왕조의 Bidradhar왕이 건축했다는 설명이다. Outside Wall에 조각된 각종 모형은 Main Temple에 조각된 내용들과 대동소이 했다.
Tour Guide가 우리 부부가 모델이 되여 보라고 권한다. 그까짓것 못할게 뭔가. 조각된 모형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Form을 잡아 보았는데 마음뿐이다. 서있는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힌두언어로 Gamastra라고 하는데..... 힌두교의 근본은 먼저 하고 싶은것 다하고 그다음에 성전으로 들어가 Worship 하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는것으로 이해를 해봤다.
또 다른 조각은 3명의 여인과 1명의 남자가 동시에 성을 즐기는 조각상이었는데, 당시의 성이 문란했다는 설명은 없었다. 한남자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궁둥이를 들어올려 여인의 그곳에 심볼을 집어 넣고, 양옆에서 이를 지켜보고있는 여인의 그곳을 손으로 만져 흥분시키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UNESCO에서 복원한 조각물은 서로 구별하기위해 힌페인트로 Numbering을 해놓았다. 기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옆에는 한남자가 두여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얼굴은 그의 오른쪽에 있는 여인에게, 그의 다른 한발은 반대편 여인을 향해 벌려져 있는 형태로 둘다 취하고 싶은 남자의 심정을 묘사한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이곳 Khajuraho Temple은 14세기경까지 밀림으로 싸여 있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었는데, 1838년 영국의 탐험가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설명을 들으면서 Cambodia Siem Reap에 있는 Ankor Wat를 탐험했을때 들었던 내용과 비슷함을 느꼈다.
길건너있는 Eastern Temple은 Jain Temple로, 3개의 Jain Temple중 Parshvanath Temple을 탐방했다. 그들역시 Hindu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Jain Temple은 24개의 24명의 Prophets 숭배한다는 것이다.
성벽의 벽공간에 살아 움직이는 Owl이 마치 화석처럼 앉아 있었다. 보통 Tourists들이 소리치면 전연 반응이 없다가 나의 Guide가 음성으로 신호(?)를 보내자 눈을 껌뻑이고 고개까지 움직인다. Guide가 처음에 물었었다. 장식물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올빼미인가? 모두가 장식물이라고 했었던 대답에 정면으로 반증해준 순간이다.
Jain Temple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목앞에 똑같은 모양의 돌을 조각하여 판매하는 Craft shop에 들렸다. 참으로 많이 조각하여 진열해 놓았다. 큰 조각을 하고 있는중이었는데, 약 1년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무척 정교하다. 이물건이 잘 팔려서 그들이 생업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는곳마다 Baggar들이 들끓고 있는것은 한두번 본것이 아니지만, 오늘도 Schedule다 끝내고 차를 탈려고 하는데 두명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웬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적선을 하고 말았다. 인도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없어져야 서로가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게 근본 이념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텐데.....
Jain Monks에는 두종류의 Priest가 있단다.
White Cloth를 입은 Priest는 Switambara이고, 옷을 입지 않는 Priest는 Digambara로, Nude로 살아가는데 생활이 굉장히 엄격하다고 한다. 현재 인디아에는 이런 어려운 수행때문에 약 2,000여명의 Jain Monks만 존재할 뿐이며 그중에서 Nude Monks는 확실한 집계가 없으며 약간명이 있을것으로 추산정도라고 한다.
Jain Monks는 철저히 채식주의자이며, 그런데도 감자와 오니언은 안먹는다고 한다. 왜냐면 감자와 양파는 땅속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생명체여서, 살생을 해야 감자와 양파를 먹을수 있다는 논리라고한다. 다른 채식은 잎만 먹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온다는 믿음때문이란다.
벽에 새겨진 조각상에는 한남성이 오른손에 Sugar Cane을 들고있는 윗쪽에는 Cane끝에 5명의 사람머리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이는 Smell, Watching, Hearing, Eating, Feeling을 뜻한다고 한다. 옆의 조각상은 Budah상을 많이 닮고 있는데 전연 다르다는 설명이다. 부처님의 이마에 다이아 몬드가 있는데, Jain 상(Statue)에는 가슴에 새겨져 있었고, 두손은 부처님 모습에서 보는것과는 다르게 손바닥을 펴서 포개서 놓고 앉아있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저녁 8시부터 인도 전통의 Folk Dance 관람했다. 그진정한 내용이 뭔지는 잘 이해할수 없었지만 우선 의상의 화려함과, 여러민족이 모여 살기에 화합을 묘사하는 내용이 많았다. 인도전통의 무용은 생전 처음 본다. 무희들중에 여성은 발목과 발가락에 까지 링을 끼운것을 봤는데
링을끼우고 안끼우고를 보고 유부녀, 처녀를 구별하게 된다고 한다. 끼운여성은 기혼 여성이라고 했다. 의상의 색상이 자연에서 채취한 물감으로 염색을 했기에 고울수 밖에 없다고 본다.
Punjab 지역의 수염 덥수룩한 모양을 한 배우들의 모습은 좀 거칠다는 표현을 나타낼려고 하는것 같았다. 참 좋은 경험을 한 오늘 저녁이었다.
관람을 끝나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호텔뒷뜰의 넓은 공간에서 야간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낯에부터 뒷뜰에서 무대설치를 하느라 약 30 여명 정도가 바삐 움직이는것을 보았는데, 호텔바로 앞의 큰길에서 부터 거창한 장식을 한것이다. 단장된 꽃은 전부 생화였는데
여기서도 결혼식 축하를 해주는것은 인정하되, 있는자의 과시인것을 또한번 보는것 같아 씁쓸했다. 한국에서 겉치례에 치중한 결혼식을 하지 못하도록 돌아가신 박통계실때에 계몽을 했었던, 그래서 내가 결혼할때는 공무원 신분으로 청첩도 공식적으로 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인도의 사회 구조로 봤을때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더 커질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며칠전 한 Tour Guide는 인도의경제적 눈부신 성장으로 새로운 중산층이 생겨 다행스러운 현상이라 좋아 하는것을 서로 토론해본적이 있는데, 이런 과장된 경제적 힘을 결혼식에서 All in 한다는것은 좀 사회적 Leader들이 솔선수범해야할 사항이라고 본다
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것은, 이들의 축하연이 새벽 까지 이어져 투숙객들이 잠을 청할수 없도록 음악과 Fire Works까지 곁들였다. 나만 하고 싶은것 하면 되고, 남의 인권침해는 눈꼽만큼도 안중에 두지 않는 졸부의 본성을 보고, 또 이런 야간 결혼식이 투숙객들에게 미칠 영향을 다 알면서도 받아들인 호텔측의 장사속에 냉소와 비난을 퍼붓지 않을수 없었다.
https://youtu.be/2YKdqT8b56I
Lobby에서 기다리고있던 Tour Guide Ashwani씨를 만났다. 곧바로 Khajuraho main temple로 차를 몰았다. 불과 호텔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시간을 만히 절약할수 있어 좋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쓰레기들이 덜 보였다. 역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것은 여기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Temple 정문에 들어서자 오른쪽 큰 Budah Tree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당시왕은 부처가 이나무를 무척 좋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Budah Tree로 명명하여 오늘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것이다. 내가 볼때는 포블러 나무같아 보였는데, 심각하게 설명하니 그럴듯하다.
Tour Guide로 부터 설명을 듣기 시작하면서 유교사상이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우리한국사람들의 정서와는 해결돼야할 문제점, 특히 성(Sex)에 대한 본데로 느낀데로 표현하는것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마음을 망설이게 해서, 그중에 몇개만 듣고 소화한데로 적어 보기로 했다.
Temple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오른쪽에 White Temple보인다. 지붕위에 있는 3개의 Dome은 제각기 모양이 달랐는데, Hindu, Budah, Muslim건축양식으로 표현한다. 그뜻은 다민족이 어울려 살면서 Harmony를 이룬다는 뜻이며, 19세기, 즉 150여년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Dome은 원래 하얀색인데 검정색으로 변해 더러워 보였는데, 암모니아를 사용하여 청소를 했는데, 그독가스로 표면이 망가져, 지금은 10에서 15년에 한번씩 다른 세척제를 사용하여 검정때를 벗긴다.
Khajuhara의 원래뜻은 인도의 중심지라는 뜻이란다. 이곳은 농장지역으로 Dates, Palm tree등이 잘자라는, 그래서 농사를 짖는 곳이라는 뜻이다.
Main temple, Lasshmana Temple과 그주위의 직사강형 형태의 둘레에 작은 Temple들은 약 1000년전에 Chandella 통치자가 20년에 걸쳐 건설했다고 한다. 그중의 왼쪽앞에 있는 Temple의 일부조각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Reconstruction했다는데, UNESCO에서 새로 훼손된 부분을 고칠때, 원래의 Temple과 비교시키기위해서 일부러 Simple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고쳐진 부분에는 힌페인트로 고유의 번호가 부착되여 있었다.
Khajuraho Temple의 근본 개념은, 인간이 낯동안에 살아가면서, 먹을것, 입을것, 남녀간에 성을 즐기는것, 싸움터에 나가는것 등등의 삶의 일상을 Temple의 외곽벽에 섬세하게 조각한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특히 남녀간, 또는 동물과 인간과의 성관계 등등, 모든 Intercourse자세를 표현한것에 중점을 준 Unique한 성전이라고 할수 있겠다. Temple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Gangga 아취형으로 조각하여, 사람들이 성전안으로 들어갈때, 그곳에서 두방울씩의 물이 떨어져 일종의 침례를 하는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Gangga river water는 Holy water로 간지스강물을 이용하여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것 처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Main Temple입구에 있는 층계에는 반달모양과 조개껍질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었다.
Ganesh God에 대한 Lengend는 듣기에 흥미진진했다.
아버지 Shiva, 어머니 Barpati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단다. 아버지는 부인이 아들을 낳은것도 모른채 Hymalaya 산중에서 득도하기위한 기도를 하고, 마침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와 왔는데 문전에서 어느 사내가 집에 못들어가게 막는다. "내가 이집의 주인이다"라고 해도 막무가내고 못들어가게 하자, "너의 어머님이 누구냐?" 하자, "Barpati "라고 하자, "그러면 내가 바로 너의 아버지야" 라고 말을 했는데도 이소년은 믿을수가 없어 들여 보내지않자, 화가난 아버지는 즉석에서 아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러한 소란이 일자, 집안에 있던 어머니가 밖으로 나와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져 있는게 아닌가.
그때에 옆에는 Brahman과 Vishnu가 이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이두개의 신이 중재를 해서 그러면 목이 베인 아들, Ganesh의 머리에 코끼리머리를 부치기로 하고, 즉시 코끼리를 구해서 목을쳐 바로 Ganesh의 목에 부치게 된대서 오늘날 Ganesh God의 목은 코끼리로 묘사되고, 몸통은 인간의 모습으로 돼 있다는 설명이다.
코끼리의 조각은 또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3마리의 코끼리가 무거운 발로 죄인들을 짖뭉개고 있는데 맨 오른쪽에 코끼리의 머리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로 그옆에서 성교를 하고 있는 남녀를 보면서 바라보면서 흐믓해 하고 있는 표정이 사뭇 옆에 있는 2마리의 코끼리와 완전 다른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Tuntra Yoga는 여성의 성적으로 가장 자극을 받는 7개 포인트가 있는데, 달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는것으로 이해되여, 만월달일때는 성적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포인트가 여성의 머리꼭지이며, 반달일때는 여성의 뒷쪽 허리부분이어서 남성이 손가락으로 그곳을 누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Carving에서 그형태를 잘 나타내주고 있어 신기하까지 했다.
이여인은 얼굴을 돌리고 있는 형상인데 설명에 의하면 유방이 너무 커서 그사이로 아래 남자를 보기위해 돌린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상은 조각을 한 사람이 남성이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자기의 생각이라는 주석도 달았다.
조각에서 Hindu여성은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민낯으로 표현됐는데, 이점이 이상하여 물었는데, Guide의 대답은, 14세기 전까지는 힌두여성은 아무것도 가린게 없는 민낯이었었다.
그이후 India를 Muslim들이 점령하면서 그들의 풍습을 여성들에게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면서 얼굴을 가리기 시작한것이 전통이 되여 오늘날에는 그것이 Hindu여인들이 전통이 되다시피한 슬픈 과거사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Hindu사람들은 낯시간동안에는 남년간에 섹스를 하는것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즉 먹는것, 사람을 나누는것, 돈버는것, 그리고 싸우는것등등의 일들을 하고, 그후에 Hindu Temple로 들어가 낯시간 동안에 행한 감사의 뜻으로 Donation을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남녀간에 사랑을 나눈것을 가장 큰 즐거움을 Donation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내가 믿는 기독교와는 정반대의 뜻으로 이해할수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섯부른 나의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일을 준비하기위해 몸을 경건히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런면에서 Practical한 면이 많이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Temple안의 Altar에는 Vishnu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Laximi라는 여인으로 Main Temple 앞쪽에 있는 조그만 Temple이 그녀를 모시는 곳이다. 당시의 왕 Laxibamana는 Vishnu God 을 숭상하기위해 낯동안에는 그의 상(Statue) 모셔져 있는 동안에 항상 햇볕이 들어 경배하는 사람들이 쉽게 볼수 있게 하기위해 해가뜨는 동쪽을 향해 성전의 정문을 내고, 성전안 중앙바닥에 반질 반질한 돌을 깔아 반사된 햇볕이 Vishnu상의 발끝부터 차차 몸전체까지 비추게 하는 특수 기법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Vishnu상이 세워져 있는 옆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빛이 그곳을 향해 들어오면 벽면에 햇볕이 반사되여 Vishnu상을 비추도록 했다고한다.
이모습은 돌판을 비스듬히 세우기위해 Base에 놓여있는 돌에 Groove를 파서 그곳에 돌판을 끼워 넣어 필요한 각도만큼씩 눕히고 세우고 했었는데, 아주견고하게 잘 역학적으로 판단하여 그당시에도 응용했었다는 설명이다.
Temple을 받치고 있는 Base의 벽에 새겨진 조각상은 남녀간의 성교 position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69형, 73형,11형,12형등등으로로 세밀하게 조각되여 있음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당시 Hindu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중심이었었다고 설명한다.
그옆에는 당시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Soldiers)들이 동물과 관계를 하고 있었는데, 여성이 전쟁에 임하는 상황에서는 같이 있는게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옆에 있던 병사는 마치 아무것도 안보고 있는것 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형국은 실상을 정말로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진정한 삶이 한장면이라는 설명이었다.
Maint Temple뒤에 별도로 건축된 Temple은 Kadariya Temple인데, 전체적인 조각은 Main temple과 비슷한데, 입구가 Hymalaya산맥에서 Vishnu가 기도하기위해 기거했던 Cave의 입구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Temple은 11세기경에 Chandella 왕조의 Bidradhar왕이 건축했다는 설명이다. Outside Wall에 조각된 각종 모형은 Main Temple에 조각된 내용들과 대동소이 했다.
Tour Guide가 우리 부부가 모델이 되여 보라고 권한다. 그까짓것 못할게 뭔가. 조각된 모형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Form을 잡아 보았는데 마음뿐이다. 서있는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힌두언어로 Gamastra라고 하는데..... 힌두교의 근본은 먼저 하고 싶은것 다하고 그다음에 성전으로 들어가 Worship 하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는것으로 이해를 해봤다.
또 다른 조각은 3명의 여인과 1명의 남자가 동시에 성을 즐기는 조각상이었는데, 당시의 성이 문란했다는 설명은 없었다. 한남자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궁둥이를 들어올려 여인의 그곳에 심볼을 집어 넣고, 양옆에서 이를 지켜보고있는 여인의 그곳을 손으로 만져 흥분시키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Jain Monks의 Statue와 불교의 불상과는 외형이 비슷하여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똑 같은 것으로 보일수 있으나, 다른점은 불상은 앞이마에 다이아몬드가 있으나, Jain Monks는 앞 가슴에 마름모꼴의 다이아몬드 모양이 새겨져 있다. 또 불상은 양손이 여러형태로 표현되고 있으나 Jain Monks는 양손을 항상 겹쳐서 나란히 손바닥(Palm)이 하늘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 Khajuraho Temple은 14세기경까지 밀림으로 싸여 있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었는데, 1838년 영국의 탐험가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설명을 들으면서 Cambodia Siem Reap에 있는 Ankor Wat를 탐험했을때 들었던 내용과 비슷함을 느꼈다.
길건너있는 Eastern Temple은 Jain Temple로, 3개의 Jain Temple중 Parshvanath Temple을 탐방했다. 그들역시 Hindu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Jain Temple은 24개의 24명의 Prophets 숭배한다는 것이다.
성벽의 벽공간에 살아 움직이는 Owl이 마치 화석처럼 앉아 있었다. 보통 Tourists들이 소리치면 전연 반응이 없다가 나의 Guide가 음성으로 신호(?)를 보내자 눈을 껌뻑이고 고개까지 움직인다. Guide가 처음에 물었었다. 장식물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올빼미인가? 모두가 장식물이라고 했었던 대답에 정면으로 반증해준 순간이다.
Jain Temple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목앞에 똑같은 모양의 돌을 조각하여 판매하는 Craft shop에 들렸다. 참으로 많이 조각하여 진열해 놓았다. 큰 조각을 하고 있는중이었는데, 약 1년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무척 정교하다. 이물건이 잘 팔려서 그들이 생업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는곳마다 Baggar들이 들끓고 있는것은 한두번 본것이 아니지만, 오늘도 Schedule다 끝내고 차를 탈려고 하는데 두명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웬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적선을 하고 말았다. 인도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없어져야 서로가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게 근본 이념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텐데.....
Jain Monks에는 두종류의 Priest가 있단다.
White Cloth를 입은 Priest는 Switambara이고, 옷을 입지 않는 Priest는 Digambara로, Nude로 살아가는데 생활이 굉장히 엄격하다고 한다. 현재 인디아에는 이런 어려운 수행때문에 약 2,000여명의 Jain Monks만 존재할 뿐이며 그중에서 Nude Monks는 확실한 집계가 없으며 약간명이 있을것으로 추산정도라고 한다.
Jain Monks는 철저히 채식주의자이며, 그런데도 감자와 오니언은 안먹는다고 한다. 왜냐면 감자와 양파는 땅속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생명체여서, 살생을 해야 감자와 양파를 먹을수 있다는 논리라고한다. 다른 채식은 잎만 먹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온다는 믿음때문이란다.
벽에 새겨진 조각상에는 한남성이 오른손에 Sugar Cane을 들고있는 윗쪽에는 Cane끝에 5명의 사람머리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이는 Smell, Watching, Hearing, Eating, Feeling을 뜻한다고 한다. 옆의 조각상은 Budah상을 많이 닮고 있는데 전연 다르다는 설명이다. 부처님의 이마에 다이아 몬드가 있는데, Jain 상(Statue)에는 가슴에 새겨져 있었고, 두손은 부처님 모습에서 보는것과는 다르게 손바닥을 펴서 포개서 놓고 앉아있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저녁 8시부터 인도 전통의 Folk Dance 관람했다. 그진정한 내용이 뭔지는 잘 이해할수 없었지만 우선 의상의 화려함과, 여러민족이 모여 살기에 화합을 묘사하는 내용이 많았다. 인도전통의 무용은 생전 처음 본다. 무희들중에 여성은 발목과 발가락에 까지 링을 끼운것을 봤는데
Punjab 지역의 수염 덥수룩한 모양을 한 배우들의 모습은 좀 거칠다는 표현을 나타낼려고 하는것 같았다. 참 좋은 경험을 한 오늘 저녁이었다.
여기서도 결혼식 축하를 해주는것은 인정하되, 있는자의 과시인것을 또한번 보는것 같아 씁쓸했다. 한국에서 겉치례에 치중한 결혼식을 하지 못하도록 돌아가신 박통계실때에 계몽을 했었던, 그래서 내가 결혼할때는 공무원 신분으로 청첩도 공식적으로 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인도의 사회 구조로 봤을때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더 커질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며칠전 한 Tour Guide는 인도의경제적 눈부신 성장으로 새로운 중산층이 생겨 다행스러운 현상이라 좋아 하는것을 서로 토론해본적이 있는데, 이런 과장된 경제적 힘을 결혼식에서 All in 한다는것은 좀 사회적 Leader들이 솔선수범해야할 사항이라고 본다
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것은, 이들의 축하연이 새벽 까지 이어져 투숙객들이 잠을 청할수 없도록 음악과 Fire Works까지 곁들였다. 나만 하고 싶은것 하면 되고, 남의 인권침해는 눈꼽만큼도 안중에 두지 않는 졸부의 본성을 보고, 또 이런 야간 결혼식이 투숙객들에게 미칠 영향을 다 알면서도 받아들인 호텔측의 장사속에 냉소와 비난을 퍼붓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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