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19, 2016

India tour, Jaisalmer Fort, Jain Temples,Havelis,Bada Bagh 탐방,일곱째날(Jan.16th,2016)


식사시간은 고역중의 하나가 됐다.  모든 음식은 인도특유의 향이 짙어, Digest하기가 무척 힘들고, 우선 냄새에서 질식시키는것 같다. 그래도 Breakfast는 한결 낳은 편이다. 내가 음식을 Choose 할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은 미리 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 그래도 Energy를 얻기위해서는 먹어 두어야 하기 때문에 맛위주보다는 살아야한다는 본능으로 끼니를 때운다.
 인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공작새들이 이곳 지방에서는 참 많이 보인다. 전부 Wild Peacock다. 과연 동물들이 서식하기에는 천국이라고 해야 할까?

인도는 법적으로는 남녀 평등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이 사회에서 활동하는것을 거의 보기 힘들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써비하는 사라들은 100%남자들로 빨아입지도 않는 평상복을 입고, 어떤이는 코수염까지 길러보기 흉하기 이를데 없는, 아직 써비스에 대한 개념이 전연 없는 사회적 분위기임을 느낄수 있었으며, 같은 이치로 초창기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때 상투를 틀고 우리식 관습데로 그들에게 맛있다고 매운 음식들을 들이 대었을때 거절하지도 못하고 견디어냈을 당시를 상상해 보는것은 이번 인도여행을 하면서 쉽게 비교할수 있었다. 세계각국에서 인도로 여행객들이 모여드는데, 굳이 향이 짙은 그들의 음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선뜻 이해돼지 않았다. 

Driver Maenoj가 약속시간에 우리를 데릴러 Camp에 와서, 바로 Jaisalmer시내로 달렸다. 오늘은 시내 관광이 대부분이란다.
목적지 Jaisal Fort에 도착하니, Tour Guide, Graj-U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가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이친구역시 키가 크고 Skinny다.

Jaisal Fort는 외부에서 봐도 언덕에 거창하게 성벽처럼 노란돌로 집을 지어 마치 황금으로 집을 지어놓은것 같은 색갈이어서, 일명 Golden City라고 불린다고 한다. Rajasthan지역에서 가장 큰 사막도시지만, 인구는 약 6여명밖에 안되며, 주로 관광산업에 의존하여 주민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관광시즌역시 여름에는 섭씨 47도에서 50도까지 올라가는 너무나 뜨거운 곳이라서, 겨울이 시작되는 10월중순경부터 2월말까지 약 4개월이 관광 시즌의 Peak라고 설명한다.



Jaisal도시는 항상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어오곤 했었는데, 1965년에 약 10킬로 떨어진곳에 큰 우물을 파서 그곳으로 부터 물을 공급받아 왔으나, 그전에는 도시안에 있는 Gadi Saga Lake 물을 이용했었다고 한다. 오후에 Lake탐방을 할계획이라고 했다.  그후 1993년에 인도중앙정부와 Rajasthan지방정부가 공동으로 Canal을 만들어 물을 공급받아오고 있어 한결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Jaisal Fort는 1156년도에 당시의 왕 Jaisal이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이성안에는 약 5천명의 주민들이 소유권을 인정받아 각자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거주할수 있는 소유권은 자손에게 상속하는게 전통이어서 한번 소유한 건축물은 타인에게 넘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규모가 엄청 커 보인다.

이성(fort)에는 4개의 Gate가 있는데, 첫번째문은 Akbaybol로 불리며, 둘째문은 Sury 로, 태양을 뜻하고, 셋째문은 Ganesh Pol로 Good Luck God을 의미한다고 했다. 4번째문은 Hawa Pol로 바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그런 의미를 부쳤는지는 설명을 하지만 선뜻이해가 안됐다.
여기서 꼭 언급해야할 사항이 있다.  

다른 Havelis 또는 Fort방문때도 상황은 같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인류유산관리에 소흘하고 있다는점과, 그들이 신성시하는 소떼를 비롯한 개, 심지어는 멧돼지들까지 거리에 배설물을 쏟아내, 자칫 한눈팔면서 걷다가는 그위를 밟아 신발이 엉망이 되는것을 양반이고 자칫 배설물에 미끄럼을 탈수 있는 낭패를 보기십상이라는 점이다. 



이성의 주인, Jaisal왕의 후손, Brajraj Singh은  지금은 큰도시로 나가 사업을 하기에 이곳에 없다고 하며, 다만 수입만 챙긴다고 했다.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37%가 베지테리안, 63%가 Non Vegetarian이라고 이러한 비율은 인도사람들이 그만큼 힌두의 종교적 의식에 따라 육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Guide, Graj-U역시 자랑스럽게 베지테리안이라고 우리를 상기시킨다.

4개의 대문을 다통과한후 처음 목격된 곳은 Main Square였다. Gate을 중심으로 오른쪽 성은 옛날 Queen이 거주했던 곳으로, 전통에 따라 창문은 촘촘하게 장식된 조그만 공간만 있을뿐으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수 없는 구조였고, 그왼쪽의 건물은 왕이 거주했던곳이라는데, 창문은 활짝 열릴수 있는 구조로 되여 있었다.  왕이 베란다로 나와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상대로 Conference를 했었다고 설명이다.  건축물에 사용된 돌은 전부 노란색으로 벽과 창문으로 사용된 돌에 새겨진 문양은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상상을 추월한 작품들이었다.  입구에서 녹음기에 설명된 내용을 Earphone을 통해 들으면서 30개의 각방을 돌아 보았다.  옛날 왕과 신하들이 호화판 생활을 했을거라는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사용된 돌들은 지금처럼 고착시키기위해 그사이에 시멘트같은것은 전연 사용돼지 않았고, 정교하게 깍아서 이음새에 빈틈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Jaisal fort 바로 옆에 있는 7개의 Jain Temple 을 탐방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잘 형성된 Temple 하나만 보았다. 일명 Half Moon을 뜻한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Statue의 중앙에 반달모양이 새겨져있다.  Jain 사원은 원래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이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God으로 섬기며,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베지테리안 들이란다.  

그들이 섬기는 사람신(Man God)은 3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Generator로 Braman신분이 Creator로서의 능력을 부여 받았던 최고의 신분, 그다음이 Operator로 Sishinu, 셋째가 Destroyer로 Shiva로 분류된다고 설명이다.  인도사람들은 신(God)도 참 잘만들어 내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4세기에서 16세기사이로 약 200년에 걸쳐 완성된 Temple이라고 했다.

그들은 Sunset전에 저녁을 마치고, 해가 진후에는 먹는것과 활동을 가능하면 자제 했다는데, 사람이 그시간에 활동을 하게되면 힘없는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기가 해가 진후에 나타나는데 이것마져도 그들은 생명체라 여겨 죽인것을 살생으로 여겼단다.




Patwa Havelis의 방문에서 Patwa왕은 5채의 Havelis를 건축했는데, 자그만치 60년에 걸쳐 완성했으며, 5명의 아들에게 한채씩 나눠주기위함이었다고 한다.  Havelis는 일명 Wind House라고도 불리는데, Mandawa탐방시에도 설명이 있었지만, 사막지역에서 집안은 더위에 무척 힘들었었기에 건물의 각도에 맟추어 창문을 대칭으로 만들어서 앞뒤 좌우의 문을 열면 바람이 잘 통풍되여 열을 식히는 효과가 컸었기에 Wind house라고도 불리고, 또 규모가 크기 때문에 Mension이라고도 불린다는 설명이다.



그중에서 첫번째 집은 현재는 Museum으로 바뀌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돼고 있었다.  커다란 한개의 방에서는 각종 사무기기가 진열되여 있었고, 최초의 선풍기도 보였는데, 이방은 Patwa 왕의 금전출납을 맡았던 Accountant가 사용했었다고 한다.  이들은 돈이 많았기에 당시에 새로운 물건이 만들어지면 거침없이 구입해서 사용했었는데, 그증거가 선풍기, 타자기등등 문명의 이기들이었다.  사무를 보면서 Opium 도 마음껏 피웠었다는 흔적의 파이프가 같이 진열되여 있었다.  여성들의 코를 Pierce해서 장신구를 부착한것은 그여인은 결혼하여 임자가 있다는 뜻으로 부착하기 시작하고, 또 많은 자손을 생산하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한다.  지금은 여성의 필수품처럼 됐다는 설명이다.



당시에 사용했었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추(Weight), 손님이 방문했을때 서로 식사를 나누는 방에는 다리가 매우짧은 적은 상이 있었고, 상위에 올려진 음식은 God에 바치는 뜻으로, 그래서 바닥에 놓치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엌에서는 여러 주방기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맷돌은 우리 조상님들이 사용했던 것과 또 같았다. 옛날 신라시대의 혜초스님이 인도를 방문했을때 멧돌문화도 전수해왔거나 아니면 반대로 우리멧돌문화를 전주해 주지 않았을까?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 봤다. 모양이 거의 꼭 같았기 때문이다.

Turban이 진열된 방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터반이 진열되여 있었고, 색갈도 천연색으로 다양했다. 사용하게된 원인이 흥미로웠다. 더운지방이기에 머리에 두름으로서 직사광선을 피할수 있었고, 어떤 터반은 더 크게 보였는데, 낙타마부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겨울철이 되면 낙타는 mating season을 맞이하는데, 이때는 성질이 난폭해져 때로는 마부의 머리를 통채로 입안에 넣고 Chewing하는 사고도 발생하기에 이런 공격을 당했을때 살아남기위해 터반을 더 두껍게 했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뜻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신분과 연령에 따라 터반은 구분됐었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였었단다. 또가족중 호주가 사망하면 그다음을 이어주는 장자가 새로운 가족의 수장임을 나타내는 터반, 그들 언어로는 Pagri라고 한다. 사망한 수장과 새로운 대표자를 비롯한 가족의 결속력을 표시하는 뜻도 있다고 했다.



또 한남자가 터반을 두손으로 다른 남자의 발아래에 바치면 항복을 뜻한다고했다. 남자가 터반을 손에 들고 여성에게 건네주면 그여성의 남편이 세상을 떳다는 뜻이 담겨 있는 행위라고 한다.  참으로 터반의 사용처는 다양했었던것 같다.  그풍습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Havelis는 당시의 왕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Prime Minister가 거주했던 사저로 지금은 7대손이 거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한채의 Havelis를 짖는데 두형제 Architecture가 똑같이 돌로 건축된 외벽의 문양을 맡아 장식했는데, 거의 비슷하게 보이나, 자세히 보면 조금씩 서로 다르게 특색을 살려 정교함을 잘 나내고 있어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빌딩의 앞에는 코끼리상이 별도로 축성되여 있었는데, 이렇게 코끼리상이 있는것은 왕이나 왕을 보좌하는 특권층이 거주하고 있다는 상징물이라고 했다. 코끼리상이 있는 바로 아래벽에도 코끼리 문양이 조각되여 있는데 왼쪽의 조각은 문양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바른쪽의 것은 코끼리 문양이 안쪽으로 새겨져 있었다.  두건축가 형제가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완성한 유일한 Havelis란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되여 신분의 과시가 거의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상하 구분이 엄격하였다고 하는데,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상위계급인 Braman직위는 최고의 상위직으로 탄생됐으며, 그아래 계급인 Kshtriya는 Braman 계급의 Arm을 이용하여 탄생한 계급이고, 그아래 계급은 Vaishya 계급으로 Braman사람의 Stomach를 통해서 탄생한 삶이고, 맨마지막 하위 계급은 Sudra로 일명 untouchable로도 불렸으며, 발바닥을 통해 탄생한 삶이라고 해서 천대를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

다음 달려간곳은 Bada Bagh Cenotaphs(round shape of Umbrella type structure)를 탐방했다.  들어서는 왼쪽으로는 계곡사이에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고 설명이다. 지금은 나무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버려진 곳이다. 이곳은 사막지역이기에 땅이 매말라 물의 보관이 쉽지 않아 왕은 이계곡에 정원을 만들었는데, 비가 오면 이계곡으로 물이 고여 오래 저장할수 있는 수로시설을 잘 갖추어 나무와 풀들이 자랄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6세기경부터 왕들은 이정원에서 picnic을 자주 갖었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우산모양의 둥근 Monuments가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역시 노란색갈의 돌들을 이용했다.  이 Monuments는 선대왕이 승하하면 후손왕들이 선대왕들을 기억하기위해 건축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관리가 안돼 많이 파손되여 보는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아주 정교하게 제각기 다른 형태로 잘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러한 의식은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하는데, 왕들의 자손들은 전부 큰 도시로 나가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고 설명한다. 

Gadi Sagar Lake역시 왕족들이 뱃놀이를 즐기기위해 Half manmade호수로, Gadisar Nokayan(Boating place)로 불린다고 한다. 호수에는 관광객을 위한 뱃놀이 배들이 떠 있었으나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주위환경이 너무나 더러워 물이 썩은이유때문인지 악취가 많이 나는곳에서 감히 누가 뱃놀이를 하겠는가.  호수앞에 커다란 Gate가 있다. 이문은 옛날에 창녀들이 고위층들을 상대로 해서 돈을 벌어 세웠는데, 왕이 이문을 통과하여 뱃놀이를 하게되자 더러운 창녀들의 돈으로 세운 Gate를 통해 왕이 들락거린다는 사람들의 비난이 잦아졌다.  이에 왕은 한꾀를 내어, 그문을 Temple로 변경하여 부르게 하고, 그옆에 아주 조그만 Gate를 새로 건축하여 그곳을 이용해서 뱃놀이를 하러 갔었기에 더이상은 커다른 Gate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비난을 면하면서 뱃놀이를 즐길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호수위에는 두개의 돔형 정각이 있고, 그뒤로는 커다란 창고같은 집이 물위에 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뱃놀이할때 이용했었다는 설명이다.




이호수는 사막지역에 있었기에 항상 물이 모자랐다. Canal을 만들어 물을 공급했었으나 지금은 그나마 건기여서 물공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수위가 많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일년 강우량이 겨우 12센티미터라고 하니…. 홍수가 난기록이 최근에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2006년도에 하룻동안에 70센티미터의 폭우가 쏫아진적이 있었고, 2015년 즉 작년에 40-50센티미터의 폭우를 맞은적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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