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9시30분에 호텔 로비에 갔는데, 키가 건장하면서도 날씬한 젊은 친구가 우리부부를 알아보고 두손을 합장하면서 우리의 신분을 확인한다. 바로 Tour Guide였다. 약 10분전쯤에 와서 우리부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웠다. 오늘은 이친구와 한몸이 되여 Delhi 의 역사적 유적지를 탐방하게 된다.
First we arrived to Jama Masjid(mosque) built by 5th Mogul emperor, Shajhana during 14th century.
This temple is one of big mosque where huge congregation on worshiping time 1:00 to 2:00PM daily. Tourist are not allowed during this praying time, but Muslims only. So Singh asked for us to be a little bit hurry to see all of mosque.
At gate, as usual, we were asked to take shoes off before enter inside which we did it and another guy approached and pay the fee for camera use of taking picture, that's not cheap of $5:00US. which tour company paid through Singh. From his name I believed he is belong to Sikh but not Hindu.
At last stage to enter mosque we were again asked that Lunar wear the gown and scarf since she is woman and me scarf only,taking my hat away. Huge crowds who are mostly tourists from all over the world like us.사원안은 넓고, 사진에서 보는 계단위의 Podium은 Immam이 앉아서 대중 설교를 하는 Altar라고 했다. Dome 모양의 벽화는 사우디 아라비아 성지가 있는 방향을 표시하는것이라고 했다.
사원건물 앞쪽의 큰 굴뚝같은 기둥은 Minerat이라는 모슬림 사원건축 양식의 특징인데, 이사원은 두개만 있을 뿐이었다. 대개는 4개 아니면 6개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Singh의 설명에 따르면 건축된 시대에 따라 다소 외형이 달라질수도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According to his explanation, Emperor Shajhana moved Capital city to Shajhanabad which is Old Delhi from Jaipur that was 1856.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할당시, 인도는 두개로 나라로 나뉘었었다고 한다. 서쪽은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 흔히들 동인도 또는 서인도 라고 알고 있는 영토는 지금은 파키스탄과 그후 다시 독립해서 나간 나라가 동인도였던 Bangladesh 라고 했다.
인도는 19세기초까지 모슬림 왕조가 득세했었기에 어찌보면 모슬림국가중의 하나였었다고 볼수 있겠으나, 내면적으로는 원래 Hidustan으로 그뿌리를 하기에 그들이 일종의 억압속에서 긴 세월을 조용히 지내왔었다가, 모슬림의 퇴조와 독립을 하면서 원래 종교인 힌두교로 변했다고 한다. 현재 인도에는 약 10%의 모슬림, 5%의 Sikh 그리고 나머지가 힌두교인이라고 했다. 모슬림 인구가 Sikh보다 많다는 것인데,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사원의 맨 뒷뜰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의 일부 거리인데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플정도로 헝클어져 있다. 사람 자동차 Tuk Tuk 등등...
사원의 뒷쪽 건물의 Dome에 설치된 조명들위에는 까마귀 한마리가 자기의 집인양 걸터앉아 노래를 하고, 그밑으로 관람객들이 뒤섞여 바삐 움직이고....
머슬림 사원의 전형적인 Pattern 은 사각형모양으로 Main Hall을 중심으로 Gate와 Corridor가 연결되여 있고, 그가운데 넓은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구경하는 그시간에 광장은 비둘기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한 사람이 그들에게 먹이를 커다란 백에서 풀어 뿌린다.
Rickshaw을 타고 전통시장골목을 탐방하는것이다. 좁은 골목길은 서로엉켜 때로는 길이 올 Stop하기도 했다. 경적은 계속울려 대는데 특히 Motor cycle들의 횡포(?)가 제일 심한것 같았다.
시장 골목에 큰 건물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설명해준다.
보석상, Spice market, 과일가게, 수공예품집, 모든 물건들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최종 소비자들손에 들어가는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끝없이 골목상점들은 이어지고...
가장 고달퍼 보이는 사람은 짐차에 짐을 잔뜩싣고 목적지까지 끌고 밀고 가는 사람같았다. 바퀴역시 딱딱한 옛날 시골에서 많이 보았었던 그런 손수레들이다.
내가 사진 찍는 바로 앞에 놓여있는것이 손수레다. 그들을 이용할 손님들을 기다리는 손수레들이 Bumper to Bumper로 대기하고 있다.
Merigold꽃은 종교적 의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꽃이다. 시장골목이고, Temple 입구역시 이들 꽃장사들이 한몫 단단히 챙기는 장사인것 같아 보였다.
Spice Store에 들렸다. 한 젊은 친구가 열심으로 설명을 하면서 구입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제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형편이니.... Lunar가 cinnamon 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 맛이 토론토에서 와는 다르게 달콤하면서도 향이 매우짖었다. 그는 이곳에서 생산되는것만이 Original이라고 자랑이다.
토론토의 Lawblaws가 몇년전 "President's choice"라는 상표를 한창 PR할때, 그자신이 Spice부분에 대한 광고와 안내를 Nicholas 사장과 중역들에게 강의 및 설명을 해주었었다고 이력까지 설명해준다. 우리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왔다는 설명을 들은 직후였다. 인연이 이렇게 해서 또 맺어지는구나 하고 순리의 돌아감을 또한번 실감 했다.
토론토에서는 쳐다 보지도 않은 양은으로 만든 음료수 병들이 즐비하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거리는 미어 터질 지경인데, 이곳의 재래시장 골목에서도 한패의 남자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있다.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일용직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으로 이해를 했는데....
Rickshaw, 내가 이용한 자가용이다. 옆의 친구가 나의 운전수였었고.... 사용료는 여행사에서 부담했기에 얼마인지는 잘 모르나, Singh이 귀뜸을 해주어, 약간의 Tip을 쥐어 주었었다.
이장면은 오고가는 각종 차량들로 서로 비켜갈수가 없어 잠시 모든 교통수단이 멈춰서 있는 순간이다. 그래도 소리치는 사람은 없었고, Motor cycle들만 경적을 울려댄다. 앞뒤로 서로 조금씩 움직이더니 어느새 해결되여 거대한 흐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50여년전의 어린 나역시 그런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으니까.
내머리위로 걸려있는 각종 통신, 전선줄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다. 그래도 용케도 이선들을 통해서 교신과 전등불을 밝힌다. 만약에 메어놓은 줄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한쪽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상인이다. 군고구마위에는 Lime들이 군데군데 같이 자리를 하고 있다. 맛을 돋구어 주는 역활을 Lime이 한다고 했다.
Raji Ghat(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독립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의 Tomb이 안장되여 있는 넓은 공원이다. 입구에서 Security Check up을 여기서도 한다. 허긴 심지어는 매일 들락 거리는 호텔입구에서도 꼭 하고 있으니 뭐 더 할말이 있겠는가.
공원은 아주 정교하게 넓게 잘 조성되여 있었다. 공원 중앙을 중심으로 가운데 조금 낯은곳에 간디의 Tomb이 조성되여 있고, 주위에는 언덕으로 되여 있었다.
사랑을 나누는것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여기서도 구경꾼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진행한다.
영국의 전통이 이어받아서인지 이들의 애정표시는 매주 자연스럽다.
우리 뒷쪽에 파란 선으로 보이는 그중앙에 간디의 무덤이 안치되여 있다. 마침 관리인이 Watering을 하고 있어 그주위가 Flooding되여 그곳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간디는 인도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된지 5개월만에 암살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심복중의 한명인 힌두교사람에게 당했다고 했다. 오래전 이집트의 대통령이, 이름이 당장에 생각이 안나지만, 국가 행사장에서 그의 경호원중의 한명에게 사살당하는 장면이 연상되게 했다.
간디의 생애는 1869년 10월2일에 태어나서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그곳에서 Lawyer 가 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와 인도독립을 위해 무저항주의를 내걸고 살았었다고 한다. 그가 암살당해 죽었을때는 1948년 1월 30일 이었다고 한다.
공원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어울러져 한컷했다. 금새 친구가 된 기분이다. 이런것을 보면 절대로 싸움같은것은 없을법 한데.....
간디의 Tomb은 공원의 중앙에 있지만, Singh이 설명에 따르면 인도의 정치적 리더들도 이곳에 묘지가 조성되여 있다고 했다. 공원의 한쪽 뒷면에 조성된 집단 Tomb에는 인디라 간디, 네루 수상등등의 정치인들이 안장되여 있다고 했다. 사진에서는 멀리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것처럼, 인도는 원래 Hindustan으로 힌두교에 뿌리를 둔 종교국가 였으나, 12세기경부터 Turkey를 비롯한 아랍나라와의 문물이 시작되면서, 그들이 세운 모슬림 왕조가 터를 잡기 시작해서 중세기를 지나 19세기 초까지 모슬림이 번성했었다고 한다. 그시대에 영국이 인도에 세력을 펼치면서, 모슬림왕조는 문을 닫게됐으며, 동시에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여 있었던 힌두교로 되돌아 갔다는 정설이다.
간디 공원에서 나와 길건너에는 Humayun's tomb이 있다. 이곳 성지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여 있다고 안내판은 커다랗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1530년에서 1565년까지 Mogual 왕조의 왕으로 통치했었다고 한다.
인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오늘날 처럼 한나라가 아니고 여러 부족들이 왕조를 세우고 서로 싸우고 통치하다가 다시 쇠락하고 ..... 그런 연속의 시대가 오래 지속됐었다고 한다.
Humayan's 무덤이 안치되여 있는 성전에 도달하기위해서는 2개의 Gate를 통과한후에 가능하다.
이성전의 중앙에 높이 세워져 있는 dome 은 이중으로 건축되여 있다는 설명이다. 겉에것과 그속에 있는 Dome사이에는 빈공간이란다. 이유는 온도의 차이를 줄이기위한 이유라고 했다.
밖에서 보이는 Dome은 높았는데, 정말로 안에서 본 Dome은 앝아 보였다.
성전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히브리 사람들의 상징인 스타가 새겨져 있었다. 모슬림들도 자기네들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용했었기에 히브리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윗쪽의 스타는 남자, 아랫쪽의 스타는 여성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스타가 새겨진 그아래에 조각된 장식물은 연꽃을 상징 한다고 했는데, 인간은 때가 되면 남녀가 만나 자손을 생산하는 그이치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옛날 살기어려운 때에도 자손 번성은 종족 보존의 차원에서 성스럽게 치장되여 내려온 큰 사업이었었음을 알수 있었다.
Main Hall에서 4각형 구석에도 묘지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한곳에는 3개의 묘지가 있었다.
Humayan왕의 딸들과 또 일부 고위관리의 묘라고 한다.
Main Hall의 왼쪽편밖에서 본 하얀색의 Dome은 힌두교사원의 일부 모습이라고 한다. 그위를 솔개때들이 유유자적 인간세계의 혼잡한 삶을 내려다 보면서, 웃음을 짖고 있을까?
외곽의 광장에도 Tomb은 이곳 저곳에 널려 있다. 그러나 관리가 잘 안돼 많이 훼손된것을 보면서 일부 안타까운 후손들의 무관심에 미안함을 느끼는 내자신을 보고 놀란다.
Main Gate에는 커다란 대문들이 있었는데, 문짝에 장식되여 있는 문고리들이 Lunar의 관심을 끌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Singh이 안내해준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주문했는데, 값이 만만치 않다. Butter에 믹스된 닭살고기, Garlic Bread, Steamed rice, 그리고 두병의 300ml Coke이 전부 였는데 US $20였다. 점심 치고는 엄청 비쌌다. 오늘의 경험을 살려 다음에 점심 선택할때는 신경을 써야할것 같다. 좋은 경험은 공짜로는 안된다는 교훈같았다.
Singh도 함께 점심 하자고 했는데, 이친구는 Rule을 철저히 지키는 젊은이로 자기는 운전수와 별도로 먹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한참 맛을 음미하면서 즐기고 있는데, 이친구 우리가 식사하는게 궁금했었떤지 금새 달려와서 지켜본다. 궨찮은지 여부를 계속 물어본다. 혹시 그가 추천해준 음식이 우리가 좋아하는지의 여부가 궁금했었나 보다.
'카시미르'지역의 특산품인 카펫전시장에 잠깐 들렸다. 이들이 만든 카펫은 가로 2미터 세로 2.5미터가 표준 규격 같은데, 자그만치 2명의 기술자가 2년이상 걸려 만든 카펫이라고 설명이다. 가격도 엄청났다.
주인장 Altafa의 설명에 의하면, 카시미르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생업인 카펫짜기가 지형적인 어려움때문에 사멸될 위기에 처해지는것을 인도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이곳 Delhi로 옮겨 가업을 이어가게 하는, 일종의 Herigtage사업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그곳에 보기 드물게 큰 홍수가 나서 모든것을 다 잃었다는 설명이다. 카펫은 천이 명주실이라고 한다. 모두가 수작업이었기에 무늬는 아주 정교했는데, Lunar가 무척이나 관심을 보인다.
집의 거실에 있는 카펫이 이제 바꾸어야할 때가 이미 넘었는데, Lunar는 더 깊이 느끼는 모양이다. 열심히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댄다. 겨우 만족할만한 Deal을 성사 했는데 이제 여행 시작길인데..... 다음을 약속하고 겨우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의 Business Card까지 건네 주면서 간절히 우리가 되돌아 왔으면 하는 바램이 여실히 얼굴에 보였다.
인도의 정치적 심장부로 불리는 국회의사당, 정부청사들 그리고 대통령궁 등등, 그리고 비행기 활주로 이상으로 길게 뻗쳐 있는 바른 길 먼쪽에는 인도 독립의 상징, India Gate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원형 구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국회의사당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수는 600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이런비율이라면 캐나다는 겨우 인구 3천만명에 300명이 조금 넘고, 한국의 경우는 400명이 넘는데, 인도의 인구는 12억명이 넘는다는데 겨우 600여명이 넘을뿐이라는데.....
우리차가 대통령궁으로 들어갈려는데 Security Guard들이 막아선다. 결국포기하고 걸어서 걸어가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약간의 언덕길을 걸어 올라 섰는데, 멀리 대통령궁 건물의 Dome이 커다렇게 보인다.
갑자기 입구쪽에서 한때의 기마병들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어리둥절케 한다. 이들의 행진을 보기위해 대통령궁으로의 발길을 돌려서 기마병옆으로 가기로 했다. 오래전에 버킹험 궁전앞에서 기마병들의 열병식을 봤던 기억이 났는데, 영국의 식민지 영향이 이런곳에서 까지 확연히 나타난다.
멀리 대통령궁의 건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가까히 가보지못한게 아쉬웠지만, 예상치 않게 Horse Guard 행진을 볼수 있어서 더 좋은 결과인것 같았다. 인도의 대통령은 영국왕실의 여황처럼, 상징적인 존재이고, 정치적 실권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건물은 인도의 외교부, 국방부 등등 행정부의 중요 기능이 상주해 있는곳이고 길거너에 있는 똑 같은 건물역시 다른 중앙부서들이 집무하는 정치적 심장부라고 한다.
India Gate는 영국이 건축하여 인도인들에게 헌납한 독립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Lunar가 마치 사열을 받으러 걸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중국의 베이징 천안문 광장이 넓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곳에서 본 정치적 심장부와 이곳에서 저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India Gate가 있는 넓은 광장을 보면서, 인도 역시 대국임을 짐작케 할수 있었다.
오늘 본 Horse Guard는 1월26일에 있는 인도탄생일에 있을 행사를 위한 리허설이라고 한다. 그래도 아주멋있어 보인다.
많은 관람객들이 우리처럼 발길을 멈추고 구경에 넋을 잃고 있는것 같아 보인다. 영화속에서 보는 옛날 기마병들의 싸움에 출정식을 보는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으로 들린곳은 Qutab Minar 유적지다. 마침 입구에서 한때의 봉사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Fence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보니 한국에서온 봉사자들임을 알수 있었다. 거의 다 대학생들로 보였다. 인사를 나누면서 그들이 혹시 '코이카'에서 온분들인줄 알았는데, 한국의 현대 자동차에서 후원받아 나온 봉사자들이라는것을 알았다. 그중의 한친구에게 준비해간 조그만 Canada를 상징하는 벳지 하나를 달아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한다.
Qutab Minar입구에서 차가 막혀 서있는데, 흔히 보아왔던 광경이 또 발생했다. 젊은 아가씨가 장미꽃다발을 들고 사주기를 바라면서 차창문을 두드린다. Singh은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당부를 계속해댄다. 그렇게 하게되면 그런식으로 장사하는 잡상인들로 차가 둘러싸여 움직이지못하게 될 거란다. 이해가 간다. 깨끗히 단장하면 아주 예쁜고 발랄한 아가씨일텐데....
길고 넓은 Corridor의 각돌기둥에 새겨진 문양은 주로 사람의 얼굴모습을 묘사했는데,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모양이 뚜렷하다.
Qutab Minar의 성벽및 Gate인데, 지금은 일부가 망가져 페허된 상태에서 관람되고 있었다.
이곳의 Corridor는 기둥만 겨우 남아있었는데, 그속으로 관람객들은 유유자적으로 왕래하는데, 어떤 돌기둥은 금방 떨어져 내릴것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안전성에는 모두가 관심밖으로 보인다.
Qutab Minar가 완성된후에 후임 왕이 선조왕들을 기념하기위해 더 큰 Tower를 건축하기위해 시작했었는데, 이왕역시 탑의 Base만 건축한후 서거를 당해, 건축은 이어지지 않고 방치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슬픈 설명이었다.
한컷을 Tour Guide, Singh가 해주었다. 그와는 오늘 하루의 만남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기억을 만들어준 친구다. 그간 나의 블로그를 보겠다고 해서 알려 주면서 이별을 고하고 나는 호넬로 향했고, 그는 또 내일 다른 관광객들을 맞을 것이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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