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23, 2016

India Tour, Pink city,Amber Fort,Jalmahal palace, 신비스런 천체관측소탐방(Jan.24,2016


https://youtu.be/Ikzszryx1wA

Jackdish 벌써 Lobby에 와있었고, 운전수 역시 Lobby밖 문앞에서 우리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 9:00 전에 우리도 로비에 왔는데..... 어쨋던 이들이 고마웠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부부는 시간허비하고 돈허비하고 신경쓰이고 그럴텐데.....

Amber Fort로 향했다.  가는길에 어제 저녁에 들렸던 Old City로 차를 돌려 Old City 중앙에서 차를 세웠다. 이곳이 Pink City를 가장 잘 나타낼수 있는 사진촬영에 최고의 명당이라고 했다.
마침 아침 햇살이 건물에 내려쬐여 그모습을 황홀할 정도로 보여주고 있었다. 명당자리에는 벌써 우리 부부말고 많은 관광객들이 셧터 눌러대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틈새에 도인같은 한친구는 코브라 쑈를 하기위해 피리를 불어대고, 이곳에서 만이 보고 즐길수 있는 진풍경이벌어졌었다.
1800년대말에 영국왕 Edward Vll세의 이곳 방문을 환영하고 기념하기위해, 당시왕 Maharanja 왕은 Old City의 전건물을 Terra Cotta의 색으로 재정비 하도록 명령을 내려 도시의 색갈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한다.  그발상이 기발하다고 생각된다. 정확히 얘기하면 Pink Color가 아닌데, 애칭으로 Pink City로 불린다.  그래서 큰거리가 아닌 뒷골목으로 들어가보면 Original 그대로 있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역시 지저분하고...... 어쨋던 그후로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이색갈은 영원히 유지될것으로 보인다.
 이건물의 Jaipur를 Pink City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되는 효자 역활을 하는, 옛날 왕과 왕족들이 거주 했던 중심지라고 한다. 현재는 Museum으로 개조하여 과거 역사를 후손에 알리고 있단다.
건물의 구조역시 피라밋 식으로, 맨윗층의 창문을 열고 왕이나 왕비가 나와 군중들에게 환영의 손을 흔들어 줄것만 같은 느낌이다.
 Pink City에는 아침부터 관광객들과 생업을 위해 바삐움직이는 군상으로 시끌벅적하여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괜히 정다워지는 느낌을 주게 하는 Pink빛이다.
Rajasthan주에서 Jaipur는 땅이 다른 지방에서 처럼 사막지역이 아니고 농장이 많은 곳중의 하나라고 설명해준다. 그래서 큰 도시로 번성하기도 했고, 농작물도 비교적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Old City의 재래시장에서 많은 농산물과 꽃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셧터를 그를 향해 눌러대자 금새 손을 벌린다. 돈달라는 뜻이다. 모른채하고 지나치면서 사진을 찰칵했다.  이곳 Old City에는 전부 7개의 출입문이 있다고 한다. 사람, 차량은 이문을 통과해야만 안으로 들어갈수 있는 옛날 인도의 계급사회의 권위를 나타내기위해 만든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를 보면서 옛날 동화에서 많이 봤던 아랍나라의 마법사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불어대는 피리와 동행하는자는 사막에서 악마로 불리는 "코브라"가 함께한다.  그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는것을 피하기위해 일부러 Tour Guide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해서 돈요구를 피할수 있었다.

옛날에 이곳 Old City에 거주하던 왕비들은 시내를 출입할때는 항상 시중드는 여인들과 Body Guard가 호위를 했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진찍은 왕궁은 지금은 Museum으로 바뀌어 공개되고 있다고 했다.
 Old City로 들어가기위해서는 전체 7개의 Gate중 한곳을 통과해야 들어갈수 있다.  우리차가 앞에 보이는 Gate를 지나서 시내로 들어가게 되는데, 당시의 보통서민생활은 잘 파악안되지만, 왕과 그Royal Family의 Supreme living pattern을 상상하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래의 사진은 아마도 산상왕궁(Fort)으로 올라가는 코끼리 대열에 끼기위해 바삐가는것 같다는 설명이다.


Jackdish가 인도의 교육제도에 대해 얘기해준다. 공립학교, 사립학교로 나뉘어져 있는데, 공립,사립모두 Tution Fee를 받는데, 차이가 많다고 했다. 그리나 공립학교는 교육의 질이 많이 떨어져 할수만 있다면 부모들은 사립학교에 보내기를 원하고 있단다.

인도는 지금 경제적 부흥이 한창 열을 올려 지난해에도, 전세계가 불황에 허덕이는데도 7%의 성장율을 기록하여, 있는자와 없는자의 두부류로 나뉘어져있던 나라였는데, 그가운데에 중산층이 서서히 비율을 높여가고 있다고 자랑이다.  그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바람직한 일인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오늘 우리가 구경하게 되는 Amber Fort라고 설명한다.
Guide Jackdish, 운전수 Maenoj, 그리고 Lunar가 궁전아래에 있는 Man-made Lake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궁전 왼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또다른 건물은 적을 감시하는 군사들의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라고 한다.
 호수는 현재 겨울철이라서 수위가 많이 내려갔다는 설명이고, 호수의 수량을 확보하는때는 오직 Monson기간인 6,7월뿐이라고 한다.

시내뻐스 역시 국가소유와 개인뻐스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뻐스는 Monthly Pass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수입이 적은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개인뻐쓰는 매번 이용할때마다 기본금 5 Rupee를 지불하고, 거리에 따라서 더 지불하기도 한다고 설명이다.


뻐스에는 해방후 한국에서, 시내뻐스에 남자조수들이 매달려, 달리는 뻐스의 문을 열어놓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리던 그런 모습의 남자 뻐스조수들이 매달려 가는모습이 인상적이었고, nostalgic past를 생각케 했다.

 차가 산상 궁전에 더 가까워 지면서 코끼리 Safari를 하면서 궁으로 올라가는 행렬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아래 강가에서는 멧돼지 한마리가 먹이를 찾아 Stroll 하고있다. 멧돼지의 운명이 이곳과 한국에서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Nobody takes attention on warthog.


Amber Fort는 Maranhaja King이 16-17세기에 산등성이에 건축했는데, 그성에 올라가는데, 우리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약 20분 코끼리를 사파리를 하면서 올랐다. Guide가 내릴때는 코끼리 마부에게 100 Rupee를 Tip으로 줄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코끼리사파리는 오전중에만 실시하기 때문에 벌써 수많은 관광객들이 차례를 기다리는속에 우리부부도 끼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바로 올라가기에 미쳐 사진촬영할 시간도 부족한 편이었다.
 코끼리 Safari 행열은 멀리서 본것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집단으로 보였다. Nepal여행시 Jungle Safari  때와는 또다른 풍경이다.  두명씩 탑승하게 되여 있는게 우선 다르고, 규모면에서 120마리의 Female코끼리가 관광객들을 위해서 봉사한다.





동원된 코끼리는 전부 120마리고, 전부 Female Elephants라고 한다. 숫코끼리들은 성질이 사나워 부리기가 어렵다는 설명이고, 이들이 오전중에 작업이 끝나면 전부 자기집으로 돌아가는데, 소유주가 한명이 아니고 여러명이라고 한다.  오후에는 쉬었다 다시 다음날 아침에 코끼리 사파리는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마부들은 고용된 일꾼들이라고 한다.

 코끼리 마부들은 코끼리의 머리바로 목부분에 걸터앉아 엄지발가락으로 코끼리의 귀안쪽 깊은곳을 누르는 감각을 코끼리가 인지하고 우로, 좌로 속도를 늦추기도 빠르게 움직이게 하고, 손님인, 우리는 넓은 등에 설치해 놓은 2인승 소파(?)에 앉아 기우뚱 거리면서 행차한다.

 마부가 코끼리의 성질을 잘알기에 우리 둘의 몸무게가 한쪽으로 쏠릴경우 코를 우리쪽에 대고 풀어 버릴때도 있으니 주의 해달라고 당부까지 한다.  코끼리가 지나는 통로의 언덕에서 갑자기 한패거리들이 우리를 향해 사진을 찍어대면서 자세를 좀 고치고 모자도 앞을 좀 올리라는 소리를 지른다. 얼른 짐작이 갔다. 그래도 그들의 외치는데로 모자앞쪽도 좀 올리고....

코끼리의 앞머리에서 부터 코끝까지 그림을 그려넣어 비록 동물이지만 여성의 부드러움을 여기서도 나타내려 한 흔적을 느낄수 있었다.

 한마리에 둘씩 타게 되여 있었다.  Nepal에서 정글 투어 할때는 4명씩 탔었는데, 두명씩 타는게 오히려 더 균형잡는데 불편한것을 느꼈다. 사진을 촬영할려고 했는데, 움직일때마다 너무많이 흔들려 도저히 순간을 포착할수 없었다.  마부가 도와 주겠다고 하면서 촬영해준다. 그러나 우리둘의 상채만 나와서 실망이었다.

등에 타고 산상 궁전으로 올라 가면서 왕의 신분으로 상승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몸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라는 마부의 한마디가 자꾸 신경쓰여 균형을 잡느라 웃는것인지 아니면 쫄아서 버둥거리는 것인지 구별 안되는 Safari를 하는순간을 마부가 찰칵한 순간이다.
산상으로 올라가면서 코끼리등에서 뒤뚱거리는 와중에 여러컷을 촬영했으나 전부 흔들려 지우고 겨우 호수를 배경으로 한 사진 한장을  Save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사진 찍는데는 아쉬움이 많았었다.
 Safari을 하기전, Jackdish가 귀뜸해준게 생각난다. 내릴때는 마부에게 100Rupee의 Tip을 꼭 주라고.  성안으로 올라와서 코끼리를 내리기전에 준비해둔 팁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곳에 크게 안내판이 있었다. "절대로 팁을 주지말것"이라고.  그래서 마부들이 우리를 내려줄때 안내판에서 멀리 떨어진곳에서 내려줬다는 꽁수를 알수 있었다. Tip문제는 아마도 Tour Guide 와도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이 순간 번쩍했었다.

차안에서 코끼리 Safari를 하기위해 이동하면서 Jackdish는 여러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여자들에게는 일년에 두번씩 뻐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데, International Women's day, 또 인도의 명절인 Rakhi Day에 적용시킨다고 한다. 이런점은 여성우대정책중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성안의 넓은 광장에는 관광객들, 잡상인들로 북적거린다.  이성에 들어오는 문은 두개로 내가 코끼리 타고 들어온문은 Sun Gate로 옛날에는 왕과 Royal Family들만 이용했고, 그반대편에 있는 문은 Moon Gate로 일반 서민들이 이용했었다는 설명이다. 코끼리를 타고 Sun gate를 통과한 우리 부부는 Royal Family가 된 셈이다.




 맨윗층에도 중앙에 Court Yard가 있고,  광장을 대칭으로 각 3층의 아파트들이 중앙광장둘레에 세워져 있었다. 3층에는 Royal Family가 거주했는데, 그궁안에서도 겨울아파드 여름아파트로 구분하여 계절에 따라 옮겨 살았다고 한다.  이Fort는 1657년에 건축하면서 중요재료들, 거울과 Marble 들은 이태리에서 수입해왔다고 한다. 겨울용 아파트를 건설하는데 6년의 기간이 걸렸다고 하며, Mirja Raja Jai Singh왕때 였다고 한다.

 두 Gate안의 넓은 광장에서 왕과 장군들,군사들이 모여 적의 침략에 대비하는 훈련을 한곳이며, 이광장에서 3단으로 층계를 만들어, 두번째 계단에는 Commender들이 앉았고, 그위의 3번째 계단에는 왕이 앉아 사열을 받았었다고 설명한다.


코끼리 Safari를 마치고, 다시 다시 여러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또다른 궁안에 넓은 광장이 우릴 반긴다. 광장 가운데 세워진 건물은 힌두교와 모슬림의 건축양식이 둬엉켜 돌기둥과 천장등에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가 걸작품들로 보였다. 이곳에서 왕은 정사를 보기도 했단다.

 광장에서 둘러본 주위의 경관은 마치 중국방문때, 북경외곽을 방문하여 만리장성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는 성벽을 산등성이에 축조해 놓았는데, 그길이가 27키로라고 설명한다. 중국방문시 베이징 외곽에 축조되여 있는 만리장성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또다른 건물은 당시의 일반시민들이 이곳에 모여 시정을 토론하고 왕에게 전달하는 시민의 광장 역활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신문고'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던 이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원광장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정경이다.  호수가운데 Botanical Garden을 조성하여 그곳에서 주로 Saffron을 재배하여, 여름철에는 그향기로 궁전으로 올라와 왕족들의 일상적인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에 첨가하여 식욕을 돋우는 역활을 했다는 설명인데.... 그래서 이 Saffron이 비싸게, 현재도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왕실의 여성전용 터키탕이 운영됐었다고 한다.  터키 여행시 터키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두가 마치 우리가 샤워하듯이 애용하는 목욕방식인데, 그방법이 특히하여 한국에서도 한때는 터키탕이라는 공중 목욕탕이 인기를 끌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옛날 왕실에서, 그것도 여성들만을 위한 터키탕을 운영했다고 한다.  온탕과 냉탕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고, 물은 벽에 조그맣게 뚤린 구멍을 통해 공급됐으며, 탕속에 들어가기좋은 온도로 맞추어진 물은 바닥에 만들어 놓은 Groove를 이용하여 보내졌다는 설명이다.


 보내진 더운물은 이곳 통에 저장되여 목욕을 할수 있었다는 Jackdish의 설명이다.
 물을 데우기위해 불을 지피는 아궁이였다고 한다.  왕실여성들의 목욕을 돕기위해 이곳에서 불을 지펴야 했던 일꾼들은 분명 남성이었을 것이다.  영욕이 함께 했을법도 하다고 느꼈다.








 천장과 벽면에 장식된 문양은 과연 일품이다.  대부분의 재료들은 이태리에서 수입해서 축조했다고 하는데, 거울같은것은 Convex lens같은 것들도 부착되여 있어, 당시에 지금처럼 전기가없어 불을 밝힐수 없어, Lantern 이용하는데, 이조그만 거울들이 반사작용을 해서 더 훤하게 했었다는 설명이다.

궁안의 천장들은 Gem stone을 사용하여 지금도 그광채가 번들 거리고 있는데,  Jaipur에 있는 왕궁의 특징이라고 한다. 신기한것은 약 350년전에 이런 Art를 생활에 이용했었다니....





왕실의 여성들은 광장에서 어전 회의를 하는 광경을 자기네 거실에서 창문에 부착해 놓은 Mesh 들 틈새로 볼수도 있었고 또 경청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게 하는것은 이재료가 큰 Marble한장을 전부 건축공들이 파서 설치한것이라고 한것이다.




 군사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냈던 가마솥이란다.  엄청나게 크다. 원래는 이곳에 있지않았는데 관람객들을 위해 이곳에 옮겨와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의 침략이 발생했을때,왕과 왕족들이 쉽게 도망칠수 있도록 성안에 만들어놓은 지하 턴넬이 있다는 설명안내문인데, 지금은 관람을 불허 시켜 안내문을 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맨윗층에도 중앙에 Court Yard가 있고,  광장을 대칭으로 각 3층의 아파트들이 중앙광장둘레에 세워져 있었다. 3층에는 Royal Family가 거주했는데, 그궁안에서도 겨울아파드 여름아파트로 구분하여 계절에 따라 옮겨 살았다고 한다.  이Fort는 1657년에 건축하면서 중요재료들, 거울과 Marble 들은 이태리에서 수입해왔다고 한다. 겨울용 아파트를 건설하는데 6년의 기간이 걸렸다고 하며, Mirja Raja Jai Singh왕때 였다고 한다.


 Lake에 있는 궁전으로 가는 앞광장에는 많은 상인들이 점포를 벌려놓고 관광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Jalmahal Palace는 Mansagal Lake의 중앙에 세워졌는데, 역시 Royal Family들의 여름철 전용 궁전이었으며, 현재른 비어있고, 호수에는 철새들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한다.  권력도 맘껏 휘둘렀지만, 세상사는 맛을 왕과 왕족들은 즐길줄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Man-Singh Palace 에는 13개의 아파트가, 16세기 당시에 건축됐다. 왜13개의 아파트였나 궁금하여 물었더니, 당시의 왕은 13명의 부인을 두어 아파트 하나씩을 사용토록했으며, 이아파트역시 2층으로 되여 더운 여름에는 윗층에서 추운 겨울에는 아랫층에서 기거하도록 했다고한다.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보석가공하는 Factory에 들렸다. 실제로 보석가공하는 기능공들을 보는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보석으로 가공될 원석을 시가크기의 나무에 특수글루를 바르고 부착시켜, 고속으로 회전되고 있는 광석판에 대고 갈아내여 여성들이 즐겨 손가락에, 또는 목에 걸고 다니는 보석을 만들어 내는것을 봤다. 그들의 손놀림은 완전 감각에 의존하는 숙련공들임을 알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늘 점심은 Local 사람들이 즐겨먹는 난(화덕에 구어만든 중동식 빵)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숙련된 제빵공이 반죽을 활활타고 있는 화덕의 벽에 부치는 재주는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식당구조는 2층인데, 1층에서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 상대로 직접 화덕에서 난을 굽고 있었고, 2층에 써빙하는 Hall이 있는데, 조명부터 시작해서 청결상태로 봐서 식사를 할 조건이 안돼 보였다. 채소류를 써빙하는 2층의 부엌은 창고같고 그릇들과 부대에 담겨져 있는 채소류들이한데 엉켜있었다. 운전수와 Guide에게는 매일 겪는 일상이기에 스스럼없어 보인다.
 Guide와 운전수 그리고 우리 부부 4명이서 함께 했다.  이들이 우리를 좋아하면서 인간적으로 대해주는데는 이렇게 어깨를 비벼 대면서 거리를 두지않고 서로 상대방을 인정해주는데 더 정을 주는것을 우리는 터득해서 알고 있기에, 그들이 겪어본 서양의 관광객들이 풍겨주는 이미지와는 완전 다르다는것을 알기에 더 어려워 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주고 받는것 같다.  음식값도 엄청나게 저렴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호텔에서 준비해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들은 Vegetarian들이기에 햄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는 우리몫이었다. 그들의 식대는 내가 부담했다.
Guide, Jackdish는 처음으로 자신은 Brahman 계급의 후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자연식물에서 채취한 물감을 이용하여 천에 무늬를 새기는 Textile Factory에 구경을 했다. 넓은 천을 펼쳐놓고, 마치 도장을 서류에 찍는것 처럼 물감을 무쳐 커다란 목판도장을, 그것도 아주정교하게 맞추어 하나씩 하났기 찍어대는 그솜씨가 달인의 경지다.
 전시실에는 실크천외에도 전통을 주제로 그리는 Artists들이 많이 있었다.  이친구는 내가 노트하는 것을 보더니 자기에거 건네 달래서 주었더니, 앞표지에 금새 행운을 갖어다 주는(Good luck)코끼리를 그려서 건네준다.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들린곳은 천체 관측소(Observatory)로, 당시왕, Marahajan Sawai Jai Singh왕으로 그는 무척 명석하여 당시의 명성있는 석학들보다 25% 이상의 초인적 능력을 소유했었는데, 그는 Jaipur뿐만 아니고 전인도에 총 5개소의 천체관측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왕이 만들었다는 지구본이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씨줄과 날줄을 그어 천체연구를 했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정교하게 세분화 했던 그의 천문지식을 오늘날에도 인용돼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두개의 똑같은 지구는 적도를 기준으로 남반부, 북반부로 나누어 측정했다는 것인데,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햇볕이 비치는 남반부 지구본을 사용하고 여름철에는 시커멓게 보이는 북반부 지구본을 이용하여 시간측정을 했다고 한다.



Samrad Yentra라고 불리는, 시간을 나타내는 관측기계에서는 햇볕이 있는 낯시간에만 관측하는 즉 하루중 12시간만의 시간을 관측할수 있는 일종의 해시계가 중앙축을 중심으로 나뉘어 설치돼 있었는데 한쪽에서 6시간씩 측정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관측기를 통해 시간측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Delhi에 있는 시간차가 지금은 겨울철이기에 정확히 39분 차이가 나고 있음을 표시해서 그시간만큼 가감하면 정확한 시간이 계산되고, 여름에는 여름에는 8내지 9분만 차이를 두고 측정했다.




또 춘분, 추분으로 나뉘어 계절에 따라 시간을 측정할수 있는 기구도 지구의 적도를 중심으로 만들어 시간과 계절을 관측할수 있게한 왕의 생각은 마치 한국의 세종조 시대에 측우기 해시계등을 만들었던 장영실을 연상케 했다. 다른점이 있다면 장영실은 천민의 자손으로 홀대를 받으며 세종의 보호를 받아 연구할수 있었지만, 인도에서는 왕자신이 더 열성적으로 관측하는 기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북반부를 나타내는 부분은 주로 여름철에, 남반부를 나타내는 부분은 겨울철에 측정할수 있도록한 기구였다.  탑까지 쌓아 만든  Sun dial시계는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여 있다고 한다. 또한 북미를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천체측정하는데 별자리를 12개로 정해서 하는, 예를 들면 Scorpion, Zebra등등의 12개 측정기구도 그대로 잘 보존되여 있었다.



Old City에 있는 왕궁을 오늘의 탐방 마지막 순서로 방문했다.  입구에 두개의 커다란 은으로 만든 물항아리가 진열되여 있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이항아리에 순수한 물을 받아 영국황실에 상납했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곳까지 운송하는 동안에 물의 맛은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괜한 걱정을 해봤다. 자그만치 물 2톤을 수용하는 은항아리라고 한다.

 지금은 완전히 박물관으로 Converting해서 관람객들을 비롯한 많은 Local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었다.

Old City 안의 Pink City안의 Sabha Niwas는 왕이 사저로 사용하면서 중요 Meeting를 했던 회의실로 사용됐었고, 회의실을 중심으로 둘러싸여 있는 Chamber에서는   여성들이 닫힌 창문에 부착된 돌로만든 Grid뒤에서 회의광경을 보거나 듣기를 했었다고 한다.  Marahajan Sawai Jai Singh ll는 1688년에 태어나 1743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Astronomer로 또한 Jaipur도시의 터전을 세운 창설자이기도 했단다.
 왕과 황실가족들이 즐겨 애용했다는 옛날 가마들이다. 먼지에 쌓여 있었지만 역시 화려했던 옛왕조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왕궁탐사에서 유난히도 중국관광객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특성은 여러명이 모이면 시끄럽다는데서 금방 인식할수 있었고, 그외 유럽관광객들이 많았다. 북미에서온 관광객은 우리 부부외에는 없는것 처럼 보였는데 그만큼 북미에서는 많이 오지 않는다는 뜻같기도 하지만 나의 편협한 생각일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