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7, 2015

위안부와 일본의 전쟁에 대한 진실 공방. 깨알같은 NY Times심층분석기사, 한국언론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중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점령국들에서, 일본제국주의 군인들과 관련 정부 관리들의 성욕을 채우기위하여, 여성납치, 불법성매매와 위안부 숙소를 운영한 역사적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 Abe정부의 정책에 전면적으로 이를 반박하는 뉴욕 타임스의 심층취재 분석 기사는 나의 가슴을 분노로 가득차게 했으며,  이러한 짐승같은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Abe총리를 미의회 양하합동회의에 초청하여 연설을 하게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극진히 모신 그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동맹국인 한국과 인근의 아시아 피해국들에게 실망을 시킨 Obama정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것 같다.


미국의 외교정책의 골격은 "인권과 여성인권신장"에 마추어져 있다고 한다.  더욱더 내마음 아프게 한것은, 제3국이나 다름없는 미국에서, 그것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New York Times 지가 장문의 분석기사를 써서 일본제국군대의 만행을 상세히 보도 했는데도, 당사자인 한국의 언론은 심층기사 하나 못쓰고,  정치꾼들의 반응은 강건너 등불식이라는점에 실망을 하지 않을수 없다.

정치꾼들은 지금 이시간에도 이전투구식, 남의 탓만 해대고,  천사의 가면을 쓴, 굶주림에 찬 Hyena의 모습을 서슴없이 들어내고, 국민들을 잡아 먹을려고 발톱을 내세워 할퀴고 있다. 

미하원의원, Mike Honda씨는 일본인 후손이다.  그는 개인 법안까지 발의하고, 위안부들에 대한 일본제국군대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기위해 헌신하고 있는 분이다.  한국의 여의도 정치꾼들은 이분의 노력을 보면서 뭘 느낄까? 개인법안 발의 하나 했다는 소리,  일본이나 미국의 주요 언론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광고 하나 냈다는 뉴스를 들어본 기억없다.

이어찌 통탄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기회만 있으면 도적질 해먹기에 혈안이 된 정치꾼들아....
이다음에 생을 마감하고 지하 6피트 밑으로 묻혔을때 먼저간 선배들과 조상님들에게 뭐라고 살아온 애기를 할것이냐?  묻고싶다.

따라서 한일 정상회담이 위안부 문제에 발목잡혀 이루어 지지 못한다는 비난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실무진들이 알아서 조속히 타결점을 찾고, 그후에 양국의 정상들이 만나서 악수를 하는 절차를 거쳐야 외교적 순리에 맞는것 같다.  정상회담이 미루어 질수록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실리보다는 잃는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일본제국군대의 만행에 관한 있는 자료들을 근거로 해서, 수시로 일본의 만행을 국제적으로 알려야할 책무가 언론과 여의도 정치꾼들에게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정부비난과 뒷통수치는 기사는 사양.


John Kerry국무장관이 한국을 이번에 방문하는 목적은, 지난번 Abe 수상의 방미때 비유가 거슬릴 정도로 일본을 의식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혈맹인 한국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것을 뒤늦게 깨닫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파견시킨것이 주목적인것 같다.  어느 언론기사처럼,  한국의 외교가 실종됐다고한 기사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호들갑만 떠는 겁쟁이 같은 발상일 뿐으로, 한국을 배제한 동맹국 방어 체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이나, 도적질 하기에 바쁜 여의도의 정치꾼들은 많이 공부하여 이런점을 배워야 한다.

분석기사를 옮겨 놓았는데, 표현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을수 있다.  이런점이 나도 답답하다.

http://www.nytimes.com/2014/11/15/opinion/comfort-women-and-japans-war-on-truth.html?mabReward=RI%3A5&action=click&pgtype=Homepage&region=CColumn&module=Recommendation&src=rechp&WT.nav=RecEngine&_r=0

와싱턴 - 1942년 일본제국주의 해군의 경리장교, 당시 중위였던 Yasuhiro Nakasone는 보르네오섬에 있는 Balikpapan에 주둔한 군부대에 근무하면서, 비행장 활주로 건설을 감독하는 직책을 맡았었다.  그러나 그는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작업능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발견 하는데, 그게 바로 성적욕구해소불만(Sexual misconduct), 노름과 싸움이 그원인이었다.

Nakasone 중위의 해결책은 군기지내에 사창가(Military brothel)조성하거나, '위안부숙소'(Comfort station)를  만드는것이라고 믿었다.  젊은 장교가 작전을 성공리에 마칠수 있었던것은  '사기저하'에 빠져있던 병사들에게 4명의 인도네시아 여인을 구해서 성적해소를 풀게한것이 효과를 볼수 있다는 내용이 해군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그의 병사들에게 위안부 여인들을 공급하기로한 Nakasone 중위의 이결정은, 2차 세계대전 전 후 동안에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일본제국주의의 육군과 해군장교들에게 사기진작용 지침서로(Matter of policy) 사용하게된다. Nauru에서 월남, 버마에서 티모르까지 여자들은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첫번째 도구였었다.

Nakasone중위가 위안부숙소를 설치했다는 것은  "23세에 3,000명의 지휘관으로서 당연한 일이다"라는 1978년에 발견된 그의 메모는 위안부 운영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매우 감사한다.  그때는 그러한 일들은 하나도 특별한 이슈가 아니었으며 문제도 되지 않았었다. 정치적 걸림돌은 더욱히나 될수 없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Mr. Nakasone는 일본의 수상이었었다.

오늘날에는 일본제국주의 군대에서 위안부숙소를 운영했다는 이슈에 대해 비난이 무척세다. 수상 Shinzo Abe는 일본의 명예를 더럽힐려고 만들어진 한쪽의 휴지에 불과한 거짖으로 역사를 조명할려는 짖이라고 역설한다.  Abe정부는 일본제국군대에서 여인을 끌어다 위안부로 종사케 했다는 것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위안부'라는 여인들은 당시에 군부대를 따라 이동하면서 성을 팔았던 값싼 존재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월말에 일본의 자민당 정부는 Nakasone전수상의 아들로, 전외무장관이었던 Hirofumi Nakasone를 위원회의 의장으로 임명하여, "위안부 이슈로 실추된 일본의 명예를 회복하기위한 대책을 준비하도록"하는 철저한 대비를 해오고 있다.

이러한 위안부 이슈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차출된 위안부 이슈보다는, 이런 이슈의 희생자들이 되고있는 일본사람들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것 처럼 분리하는 작업을 Abe정부는 진행하고 있다.

Abe정부는 일본제국주의의 명예회복에 필요한 역사적 재조명과  현대사회의 자존심을 세우기위한 관점에서 이문제를 보려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의 이러한 폭넓은 캠패인은 오히려 국제적으로 인권유린과 전쟁범죄자들을 기소하는데 책임있는 파트너로 보여지기원하는 희망을 더 약하게 하는 결과만 초래했을 뿐이다.

Abe정부의 진짜 목적은 1993년도에 발표된 Kono담화문의 의미를 계속해서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Kono 담화문은 전쟁중에 일본군들과 전쟁물자 수송및 전쟁기지 건설회사들의 직원들에게 성의 굶주림을 해소하기위한 성매매 기지촌을 건설하여 운영한것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깊이 잘못을 뉘우친다는 내용인것으로 모든 일본인들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담화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왔던 한국에서 특별히 환영을 받았으며, 위안부를 동원하는 주요 내용을 알리는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 군대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섹스해소는 군대사기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것으로 믿었으며, 군행정당국은 성병관리를 했었다.  육군과 해군에서는 위안부들을 모집하고, 신체검사를 실시했으며, 기지촌을 건설하고, 화대비를 정해 주었었다.  제대후에 Fujisankei 통신사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Nobutaka Shikanai씨는 위안부로 끌려와 성노리개로 이용된 "여성들의 사용 내구년한"을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것인가를 포함하여 기지촌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게 가장좋은 방법인지를 연구하는 일본제국군대의 학습을 배우기도 했었다.

현일본 Abe정부가 Kono 담회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것은 이미 다 알려진 비밀이다. 2007년도 Abe정부의 제1기중에 내각은 두가지 선언을 하면서 Kono담화문의 의미를 축소했었다.
즉 군대내의 위안부 접대소를 운영하기위하여 강제로 여성을 모집했었다는 증거가 되는 기록물이 없고,  또한 이런일들은 정부정책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라고.

두번째 내각을 구성하고 수상이 되기직전인 2012년에 Mr. Abe는 장차 장관이될 4명의 내각멤버들과 같이 공동서명한 항의 광고를 New Jersey신문에 냈었다. 그내용은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뉴져지주의 Palisades Park 지역에서 위안부를 추념하는 비석을 세우는것은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위안부들은 당시에 허가증을 받고 성매매를 한 매춘부일 뿐이다 라고 항의를 한내용이다.

2014년도 6월에 Abe정부는 Kono 담화문에 대한 내용을 다시 점검한 내용을 발표 했었다.
그내용은 한국정부의 외교관들이 담화문 작성에 참가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써, 전에 위안부로 일했던 16명의 한국여성의 진술을 토대로 한것인데, 일본관리들이 한국여성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위안부로 보냈다는 확실한 문서를 첨부하지 못했었다고 결론을 냈다.

그리고 나서 곧이어 8월달에 일본의 저명한 신문, Ashhi Shinbun은 20여년전에 위안부에 대한 기사를 시리즈로 보도한 내용에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했었다.   기자들은 당시 노무자들을 모집하던직에 종사했었던  Seiji Yoshida씨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했었는데, 그의 증언은 당시 해외주둔 일본군들을 위한 위안부를 모집하기위해 한국여성들을 제주도에 집합시켰었다고 폭로한 내용이었다.

학구적인 측에서는 Mr. Yoshida씨의 폭로를 사실이 아닌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해 왔었다. 그러나 Ashahi신문은, Abe 정부가 위안부 사건에 대해 엄청나고 강압적으로 위안부의 역사를 무효와 시킬려는 의도로, 일고의 가치도 없고, 성노예에 대한  악의에 찬 중상모략이라고 몰아부친 내용을 비난한것이다.  지난 10월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공평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국제적인 의견을 수렴하기위한 전략적인 기구를 설치하여 활용하라고 그의 내각에 지시까지 했었다.

2주후에, 일본은 일본의 인권대사, Kuni Sato씨를 뉴욕에 파견해,  주로 여성학대에 관한 기사를 전담한, 전 UN특별 기자,Radhika Coomaraswamy씨가 1996년도에 보도한 위안부에 대한, 즉 2차세계대전중에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에게 어떻게 성노리개 짖을 강압적으로  했는가를 주내용으로한 보고서를 다시 점검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위해 파견했었다.  이에 Coomaraswamy영기자는, 그녀의 보고서 내용을 다시 변경한다해서 결과는 달라지는게 없다면서 거절했었다.  그내용은 당시 일본이 점령했던 나라에서 자행된,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수를 셀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증거와 다큐멘트들에 근거해서 작성된 것이었다.

인도- 태평양 지역을 통털어 수많은 여성들과 소녀들이 위안부 운영시트템에 더 깊이 빠져들게하기위한 여러방법들이 있었다.  희생자들은 일본 제국군대가 점령한 농장과 점령지에서  안정된 삶을 살수 있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오게 됐던 것이다.  강압적으로 몰아부쳐 강간과 강도의 희생자들이 되게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Andaman섬사람들 또는 싱카폴사람, 필리핀의 소작농부 또는 보르네오 부족들이 처참하게 당했던 내용들과 많이 닮았었다.  어떤 경우에는, 수습병사로 근무하는 Dutch소년들을 포함한, 젊은 청년들까지도 강제로 붙잡아서, 일본군 병사들을 정기적으로 만족시키는 일에 투입했었다.

일본병사들은 필리핀의 여러섬에 있는 Bataan 종합병원2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국인 간호원도 강간 했었다.  그때 그곳에서 전쟁포로로 잡혀 있던 이들은 그간호원을 보호하기위해 그녀의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깍기도 했었고, 남장옷을 입히기도 했었다고 한다.  수습간호원으로 근무 했었던 Dutch엄마들은 그들의 어린 아이들을 먹이기위해 Jave에 있는 교회내 숙소에서 몸을 팔기도 했었다고 한다.  병원선(ship) Vyner Brooke이 공격을 당해 파선되자 난파된 뱃조각을 의지하고 표류하고 있던 영국과 오스트랄리아 여성들에게, 일본군은 그녀들에게 요구하기를 몸을 팔던가 포로수용소에서 굶어 죽던가 양단간에 결정을 하라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었다.  Ms Coomaraswamy는 1996년도 보고서에서 "동남아시아의 여러지역에서 계속적으로 모집된 여성들은 일본군대의 병사와 정부관리자들의 성욕구를 채우는 데 동원 됐었다는 아주 명확한 근거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을 둔 이유 때문에 Abe정부는 이러한 광대한 역사적 기록을 계속해서 무시해 오고 있다.  대신에 일본은 당시 식민지 한국에서 있었던 여성들에 대한 관리에 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행동은 Ms Coomaraswamy에 의해 반격을 당하고 만다.  일본내각의 비서, Yoshihide Suga씨는 UN인권위원회를 포함한 여러 국제 기구에, 병사들의 성욕구를 채우기위한 성노리개로 이용됐다는  내용을 지우기위한 방법을 찾기위해, 계속적인 항의를 계속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Abe 내각이 아무리 부정할려고 발버둥쳐도 숨길수 없는 만고의 진리는 Coomaraswamy의 보고서뿐만이 아니고 더많은 전쟁범죄와 관련도 없는 많은 최근의 UN 보고서를 부정할려고 하는 일본정부의 노력이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증언을 한마디로 일축하는 거만한 일본정부의 태도이다.  지난 3월, 2014년도에 UN주제하에 '스리랑카'에 대한 전쟁범죄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하는데 G7 국가중에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조사를 승인하는데 기권표를 던져, 유엔의 조사를 방해하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캐나다는 유엔 인권위원회 멤버가 아니지만, 이번 조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일본 내각, 외교부 차관, Seiji Kihara씨는 스리랑카 대통령에게 "국제기구에 의해 준비된, 진실이 왜곡된 보고서는 일본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있다"라고 통보하기도 했었다.

전쟁중 발생한 강간, 불법 성매매는 세계적인 문제로 아직도 남아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런 불법남용을 줄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Abe정부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려는 노력은 절대로 용납이 안되고 불변할 것이다.  일본의 위안부운영 문제로 온국가들이 뒤끓고 있는 상황속의 UN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은, 일본정부의 불법성매매와 인간들을 불법 유통시킨 역사적 범죄기록을 부인하는  Abe정부의 목적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별히 미국은 인권과 여성의 신분보장을 미국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에, 동맹국인 일본의 전쟁범죄행위 부정에 대해 강하게 권면할 책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에 미국이 이런 범죄 행위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면,  우리 미국은 일본의 전쟁범죄 사실 부인에 동조하는 겪이 될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성매매의 불법성을 포함한 전쟁범죄의 부당성을 알리려는 노력을 축소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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