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2, 2015

임을 위한 행진곡, 그 불편한 진실, 뒷면에 얽힌 사연은 무시된 칼럼.


임을 위한 행진곡, 그 불편한 진실

5/18 광주사건때 북한의 특수부대가 침투하여 민간인 복장을 하고 데모군중과 합류했었다는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볼 필요가 꼭 있다고 믿는다.  침투한 북한의 특수군 장교로 광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북한으로 귀환 했다가 그후 탈북한 "임 천용"씨의 증언은 아주 구체적이다. 그런데 왜 언론은 이에 대해 벙어리가 되여 있는가? 

그분 설명하는 광주 5/18 사건때 침투한 경로는 아주 구체적이다.  한패는 서쪽바다를, 다른 한패는 동해 바다를, 그리고 마지막 한패는 땅굴을 이용해서 광주에서 무사히 조우하여, 5/18을 뒤에서 조종 했었다고 한다.  이를 총지휘한자는 김정일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통의 명령을 받고 파견된 특전사 군장병들이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니.....
망월동 묘지에는 무연고자의 무덤이 6개나 있다는 그의 증언은 무엇을 뜻하는걸까?

아래의 동영상은 인터넷을 타고 떠돌아 다니는 내용을 옮겨 놓은 것들이다.

1. 광주 5.18에 북한 특수군이 왔었다 (탈북자 장교 압축)
https://www.youtube.com/watch?v=3KRmKnBApmQ&feature=youtu.be

2. 북한군 장교 탈북자 임천용씨 인터뷰 동영상 (518 광주사태는 김정일이 총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lP6lLozNB0

518 광주사태시 북괴군이 침투했다는 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kPbP1IsRe6U
진실 규명이 필요 합니다.

임천용씨는 북한의 잔악상에 열을 토하면서 남한 국민들에게 알릴려고 그렇게 발버둥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국민들은 그분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것 같아 안타깝다.  더욱히나 광주 현지에서는 더 하는것 같다.  이런식으로 얼버무리지 말고, 희생이 따르더라도 확실히 밝혀서, 더이상은 5/18때마다 겪는 2개의 기념식은 없어져야 한다.  위의 동영상을 여의도 정치꾼들은 꼭 숙독하신다음, 앞장서서 선을 분명히 만들어서 국민들뿐만 아니고 후세를에게 진실을 알려줄 크나큰 의무가 절실함을 역설해야 한다.

반대로 '임천용'씨가 있지도 않은 루머를 퍼트리고 있다면 이또한 국기문란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언론이 진실을 가려 낸다면, 5/18 국가유공자에 대한 Review가 절대로 필요하다라는 결론이다.

후세들이 살아갈 조국의 역사를 정확히 써내려갈 절박함을 생각 한다면, 국민들의 염원을 져버리고, 이북에 천문학적인 조공을 바치고 이북의 김씨와 알맹이도 없는 정상회담을 한  DJ와 노통이 의도한 그밑바닥에 깔린 목적을 꼭 재조명 해서 알려야 한다.  이일을 언론이 해야할 첫번째 과제이다.

서해바다에서는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 가면서 조국의 영토를 지키고 있던 그시간에, DJ는 이보고를 받자마자 언론보도를 막도록 지시하고,  이북의 김씨왕조와 한판 붙을 절박함을 내팽개치고,월드컵 공동개최국, 일본으로 축구경기 구경하러,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전용기타고 날아간, 전무후무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그때가 2002년 월드컵 때였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 바다의 용사와, 일본으로 날아가 축구경기를 관전한 대통령과, 누가 과연 진정한 애국자 였을까?

기사를 옮겨 실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유명한 데모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5·18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 국회에선 이미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는데 뒤늦게 웬 딴지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노래 한 곡의 문제가 아니다. 그 노래 뒤에 빙산처럼 숨은 `의도', 불편한 진실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정된 기념곡이 없다. 애국가도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가에 앞서 다른 기념곡을 지정하려는 사람들은 애국가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다.

2004년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청와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일을 전후해 좌파들은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를 대표적 친일파로 규정했고 이 기회에 애국가도 바꿔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유시민은 “애국가를 부르게 하는 것은 군사독재와 일제잔재가 청산되지 않아 생긴 파시즘의 잔재”라고 한 적도 있다.

그 한참 뒤인 2012년 통진당 이석기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므로 차라리 아리랑을 부르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음정을 3도 낮춘 `맥빠진' 애국가를 보급하려고 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반(反)대한민국 정서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이 노래는 북한에 의해 선전선동의 도구로 이용당해 왔다.

'장길산'으로 유명한 작가 황석영은 다섯 번을 방북(訪北)해 김일성을 일곱 번 만나면서 25만 달러를 받아 5·18 선동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김일성이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이 영화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삽입됐다.

여기 중간에,  박은주씨의 칼럼을 끼워 넣는다.  쉽게 이해 할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다. 아래 링크가 바로 그칼럼 내용이다.  흥미위주보다는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발생유래와 처음 이노래의 가사와 곡을 쓴 배경부터 진솔하게 다루었어야 했다.  광주시민들과 야권의 공격이 무서워 속으로는 하고 싶어도 행여나 표현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는지 "박기자"는 통찰 했어야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19/2015051902772.html

음악을 담당한 사람은 역시 김일성을 존경해 마지않던 윤이상이었다. 북한이 반미선동을 위해 만든 영화에 들어간 노래를, 조국을 배신한 사람들의 손때 묻은 노래를 굳이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할까? 
물론 이 점에 대해선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 모 의원은 이 노래가 북한에서도 금지곡이므로 우리가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북에서 금지곡인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된 게 없다.

오히려 이 노래는 북에서 발간한 `통일노래 100곡선'에 수록돼 있다. 백 보를 양보해 설사 하 의원의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북에선 이 노래를 장려하기도 했고 금지하기도 한 것이다. 북에서 현재 이 노래를 부르느냐 안 부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의도,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북은 이 노래를 기념곡으로 지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론이 분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의 잿빛 하늘 아래 부르던 이 노래와 지금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 노래는 사뭇 다르다. 시대적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노래로 봐야 한다. 민주화에 대한 열정, 때론 낭만적 추억으로 이 노래를 기억해선 곤란하다. 이 노래를 부른다고 통일이 될 것 같으면 백번이라도 부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훼손된 채 찾아오는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자유통일이 아니라 적화통일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건 불편한 것을 넘어 매우 아픈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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