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라는 집단의 내막을 파고 들면 들수록, 서방의 자유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은 '개 돼지'라도, 입만 열면 거짖으로 꾸며지는 그들의 "Human Scum"에 진절머리를 치지 않을수 없는, 사람의 탈을 쓰고 살수 없는 곳이라는것을 더 극명히 알수 있게된다. 이런 참극의 끝은 언제쯤 오게 될까?
핵무기를 개발하고 탄도 미사일을 허공에 쏘아 댄다고 그어느누가 "참 잘한다" 라고 응수 해줄 사람이나 집단이 그어디에 있을까? 우리 북조선의 안전을 위협하는 미제와 미국의 앞잡이 남조선으로 부터의 공격을 막기위한 자위책이라고 아무리 선동을 해도, 귀가 막히고 눈이 가려진 북한의 인민들도 믿지 않는다는것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오직 Kim's Regime의 일부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안타깝다.
이런 Beast집단에게 인도적 차원의 원조를 쏟아붓는 남측의 Hypocrite 들에게도 문제가 너무나 많다고 본다.
CNN의 보도팀이 이북에 재입북하여, 현지에서 보도한 내용을 옮겨 놨다. 진짜 내용은 그들이 미국으로 되돌아 왔을때, 앞서 애기했던것처럼, 가능할것으로 보인다.
http://www.cnn.com/2015/05/19/asia/north-korean-child-defectors-revisited/index.html
평양, 북조선(CNN) - 꽃제비, 문학적 의미로는 "꽃을 전달하는 제비",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지만 실상은 이와는 정반대의 뜻이다.
북한에서 쓰이는 의미는 집없는 아이들, 가족이나 국가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뜻한다. 이말의 어원은 한국전쟁의 참상에서 찾을수 있다. 러시아말의 "코체비"를 연상케 되는데, 그뜻은 "정처없이 헤맨다 "라는 의미가 있고, 1950-1953년사이에 있었던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아이들과 연관된다.
1990년대에 북한에는 수년간 매우심한 가뭄으로 농작물 수확이 현저히 줄어들어 수만명이 굶어 죽는 흉년이 이어졌었다. 온나라의 식량배급망이 깨져 버렸고, 가족들이 흩어지는 참상이 이어졌었다. 꽃제비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오늘날에는 그때에 비해 상태가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북한은 아직도 배고픔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있다. 식량 배급상태는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수많은 꽃제비들은 여전히 거리를 헤메고 있다.
The Reveal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비밀에 싸여있는 사회이다. 최근에 CNN 방송팀이 북한을 방문 했을때, 우리들의 모든 스케쥴은 북한 정부 담당자들에 의해 작성되곤 했었다. 그들은 우리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밀착하여 감시 했으며, 우리의 방송계획을 미리 알려 달라는 부탁을 했었으나 결과는 허사였으며, 불과 두서너시간전에야 겨우 우리가 할수 있는 순서를 겨우 알수 있었을 뿐이다.
어느날 오후에 우리가 묶고 있는 호텔에서 모임이 있을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팅룸에 누가 있는지를 알수가 없었다. 다만 탈북자들과 만난다는 내용 뿐이었다.
우리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때 그곳에는 8명의 젊은 청년들이 큰 회의용 원탁테이블의 한쪽에 앉아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금방 우리는 이들이 우리가 만날 상대임을 알게 됐다.
'Human Scum'
2013년 초여름에 전세계의 언론은, 당시 14에서 19세였던 9명의 북한탈출 아이들이 '라오스'에서 붙잡혀 북한에 되돌려 보내지는 사건을 맹비난한적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출신의 선교사팀에 의해 북한을 탈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 갈려고, 라오스 국경을 넘는 와중에 국경경비대에 붙잡혔었다.
http://edition.cnn.com/2013/09/30/world/asia/north-korea-laos-defectors-hancocks/
평양당국은 탈북자들에 대해 증오를 갖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탈북자들에 대해, 북한 국영 방송은 'Human Scum' 라고 몰아 부치면서, 조국과 조국의 명예와 돈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버린자들이라고 거짖설명하면서, 크나큰 범죄행위라고 비난 했었다.
어린탈북 아이들을 이북으로 되돌려 보내는 사건을 전세계는 맹비난을 퍼부었었다. 그들이 닥칠 운명을 쉽게 예측할수 있었다. 즉 아이들은 북한에 보내지면 즉각 감옥에 처넣을것이다. 평생감옥생활을 하거나 심할경우 사형까지 당하게 될것이다 라고.
그러나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선 이호텔방에는 거의 2년전에 되돌려 보내졌던, 소위 '꽃제비'들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4명의 젊은 청년들은 파란색의 대학생교복을 입고 있었으며, 2명의 소년들과 2명의 소녀들은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 모두는 우리가 묻게될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붙잡혀 북한에 되돌려 보내졌던 9번째의 아이는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어, 갑자기 급조된 이번 미팅에 참가할수 있는 시간이 없어 데려 올수 없었음을 알수 있었다.
Leaving home
그들이 중국으로 탈출할 당시 나이는 12세 - 17세로, 소구룹으로 구성되여 중국으로 넘어온 다음 선교사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모두 만났었다.
우리는 그들이 대답하기에 매우 난처해할 첫번째 질문으로, 왜 북한을 탈출 했는가?를 물었었다.
"우리는 그때 매우 어렸었다. 우리는 그때 중국에 대한 호기심에서 단지 구경을 넘어 중국에 갔었을 뿐이다."라고 17세의 '이광혁'군은 대답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줄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21세의 '문철'군은 모든것을 시인하면서 "솔직히 말해서, 당시 우리는 집안식구들과 문제가 좀 었었다. 우리는 한동안, 소위 말하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지내야만 했었다.
그때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모든게 불만이었었다. 우리는 그때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인 압록강 근처에 살고 있었다. 단지 중국을 구경한후 다시 집으로 되돌아 올려고 했었다. 단지 호기심뿐이었다." 라고 설명을 했다. 우리팀은 다시 그들에게 "너희들중 몇명이 국경을 넘기전 배고픔을 당했었느냐?"라고 물었더니, 8명중 4명이 손을 들었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우리는 겨울을 지낼 월동준비로 농작물을 비축해 두었었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았었고, 우리 식구는 많았었다."라고 19세의 박광혁군은 설명을 해주었다.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국경지역 도시인 '단동'에 거주하고 있는 한가옥으로 안내되였는데, 그집은 한국에서 건너온, 선교사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 CNN팀은 편의상 그들 부부를 간단히 M. J.로 지난번 보도에서 밝힌바 있다.
이들 M. J.부부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 배고픔에 허덕이던 아이들은 선교사부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냈었다. 사진에서 본 이들 아이들은 매우 초췌해 있었다. 그들은 1년반동안 이집에서 같이 기거하면서 살았었다.
"이들 선교사부부는 우리에게 "자유"를 가르쳤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도록 강요 했으며, 성경을 암기 하도록 했었다" 라고 '문철'군은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음식은 풍부 했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우린 다른 만족이 없었다. 아이들이 배가 부를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를 더 필요로 하게 되는것은 당연하다"라고 그는 설명을 덧부친다.
이젊은이들 만난후 CNN팀은 M. J.과 우연히 연결됐을때, 그들은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느냐? 그때 이후로 우린 그들을 잃어 버린게 안타깝다라고 대답하는것을 들었다. 그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깊은 얘기하는것을 꺼려 하면서, 그학생들은 이북을 탈출한후 많은 도움이 필요 해서 도와 주었었다고 강조했었다.
Detained in Laos
중국은 오랫동안 북한의 동맹국이다. 그래서 북한은 불법으로 중국내에, 탈북자들을 붙잡았을때 추방시키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1년반동안 같이 지낸후, 이들 선교사부부는 아이들을 제 3국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중국의 남쪽 국경에 접해 있는 '라오스'를 선택하고, 그곳에 도착하면 무사히 한국으로 보낼수 있을것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거칠고 두려움속에서 수많은 날을 국경지역의 산악지대를 걸으면서 결국 라오스의 국경 수비대에 붙잡혀 그때부터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결국 이북으로 되돌려 보낼거라는 소식을 듣게 됐을때, 아이들은 무서움에 벌벌 떨었었다.
"선교사는 설명하기를,우리가 이북에 되돌아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선교사들은 우리가 조국을 배반하고 탈출했기에 그죄가로 우리 식구들은 다 처형당했다"라고 '문철'군은 설명을 했다.
Return of the prodigals
그러나 죄가를 치르는 대신에, 우리는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라고 설명하면서, 3년동안 허송세월 보내면서 다니지못했던 학교를 다닐수 있도록 학비까지 보조해 주었으며, 우린 지금 평양에서 가장좋은 교육시설이 되여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라고 설명까지 해주었다.
"나는 모든게 두려웠었다. 나는 죄책감을 갖고 집을 떠나서 해외에서 시간을 허비했었다. 우리는 조국을 배반한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벌을 받을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평양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우리고 염려 했었던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이었던가를 알고 있다" 라고 '박광혁'군은 시인하고 있다.
그들이 이북에 되돌아 오자마자, 그들은 평양 TV에 출현해서 남한사람들의 꼬임에 빠져 탈출했었던 당시의 상황을 맹비난 했었다. 그로부터 1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들은 다시 전시대에 진열되여 있는 꼴이 됐다.
그아이들은 북한당국의 배려로 "죄를 용서받고 잘 지내고 있다"라는 포스터 아이들이 되여 있다. 이아이들의 삶이 당시 중국을 향해 떠날때와 지금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 나는 지금 왕자가 되여있는 가난뱅이 같은 느낌이다"라고 '이광혁'군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북의 해외 선전장인 평양에서 그들의 부모는 만나지 못했다. 그들의 부모는 여전히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http://www.cnn.com/2015/05/15/asia/north-korean-foreign-workers/index.html
우리가 다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만약에 한국에 들어가 살게 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그의 대답은 "만약에 내가 한국에 들어갔었더라면, 식구들을 버리고 달아난 패륜아라는 낙인이 찍힌 국가 반역자가 되였을 것이다. 나는 '지구에서 있어서는 안될 패륜아'라는 낙인이 찍히고 벌써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문철'군은 설명했다.
http://www.cnn.com/2015/05/26/asia/north-korea-hula-hooping/index.html
이북을 방문중에 있는 CNN팀의 활동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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