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알고 있는 주위사람들은 그런 그의 발상을 매우 염려 했었으며 또한 위험을 초래할수도 있다"라고 조언했지만, 임목사는 북한을 돕기로 결정하고 모인 성금으로 쌀과 옥수수를 중국에서 구입하여 기차에 싣고 북한으로 보냈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고, 사업을 확장하여 중국에서 수입해온 곡물들을 이용하여 빵을 만들수 있는 공장을 건설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여, 딸기농장을 비롯한 농장사업은 확장시켰다. 그는 북한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로 여겼으며, 북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돕기를 원했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며, 그렇게 됐을경우 이북사람들은 자력으로 살아갈수 있게 될것으로 생각했었다"라고 조목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임목사의 이북에서 사업확장은 자연스럽게 수년간 계속됐으며, 사업의 종류를 다 열거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여러분야에서 사업을 했었다. 큰빛교회는 그가 추진했던 사업중 12가지가 넘는 사업리스트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어 Globe and Mail신문사는 관련된 질문을 했었으나 아직까지 회신은 없다. 또한 교회는 임목사를 곁에서 도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막아서 무산되고 말았다. 교회뿐만이 아니고 이북에 가서 주민교육과 인도적 도움을 주었던 여러명의 사람들과, 임목사를 도와 함께 사역했던 사람들 마져도 일체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유인즉, 이사건은 매우 민감해서 함부로 발설했을경우 임목사의 신변에 위험이 따르는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Big ambitions
Globe신문은 임목사의 삶과 목회자로서의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교회뉴스레터, You Tube에 올려놓은 설교내용에서, 캐나다에 머물면서 그의 설교를 들고 자세히 적어놓은 사람의 노트, 큰빛교회와 관련이 깊은 영어권 교회에서 온라인에 올려놓은 이메일 대화내용, 그리고 토론토, 캘리포니아, 한국, 러시아와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세한 자료를 확보했다.
그자료를 통해서 그려진 임목사에 대한 그림은, 한국과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전세계로 부터 모아진 많은 성금을 이북에 도와주고, 대신에 이북에서의 선교활동을 하기위한 기득권을 다른 구룹보다 먼저 확보 할려는 열정이 넘친 사람사람으로 묘사됐다.
그가운데서 임목사의 가장 큰 열망은: "평양에서 가장 좋은 대동강 호텔을 구입하는것이었다" 라고 토론토에서 발행되는 '시사한겨레'신문에 2012년도에 기고한 글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현지주민들의 인컴을 높이기위해 400 에이커의 농지를 구입해서 딸기종류의 과일을 재배하는것과 연관시켜 호텔을 구입할려고 했었다. "이 2개의 사업에 드는 비용은 3천만불이 넘는다"라고 그는 보고서에서밝히곤 했다.
" 다른 소규모와 대규모 사업중도 현재 진행중에 있다"
이러한 사업들 중에는 자동차연료 보급기지를 건설하면서, 여기에 세차장까지 완성 시키는 사업, 또 20,000명 이상이 함께 사용할수 있는 공중목욕탕 건설, 여기에 50척의 작은 배들로 구성된 어선들과, 예멘에서 수입된 2척의 큰배를 묵어 어선함대를 만드는 사업들이 포함되여 있다. 이 어선단을 '아덴만'으로 부터 항해해서 오는데 - '아카페 1' 과 '아가페 2' 로 명명됨 - 드는 비용이 약 $100,000 달러가 소요된다 라고 2010년 있었던 설교에서 밝히고 있다. (Agape는 그리스어로 사랑을 뜻한다.)
Globe and Mail신문은 3시간 분량의 설교 내용을, 직접 들은바 있는 사람으로 부터 입수했다. 그내용에 의하면, '일본해'로 알려지기도한 동해에서 어장 확보로 고기잡이를 할수 있는 합의문에 서명해야 하는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어업은 임목사가 추진하는 가장 핵심사업중의 하나 였다. 건강유지에 필수인 프로텐을 공급하기위한 방법으로, 쉽지않은 고기잡이 사업은 이미 시작됐었다라고 그가 목회했던 교회에서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사업은 어떤 연유로 중단되고 말았다. 왜냐면 이를 가공할 시설의 부족과 에너지 자원의 보급이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임목사는 농작물, 즉 밀재배를 하기위한 씨앗을 구입하기위해 미국에서 가장 큰 종자를 재배생산하는 회사와 접촉하여 현재 협의 중에 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었다. 그는 또한 돼지를 이북에 수입하기도 했으며, 딸기종류를 남한에 수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그의 꿈은 원대 했으마, 과연 몇개의 사업들이 그열매를 맺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진것은 없다. 그는 보석가공 공장과 보석소매점을 평양에 진출시키기위한 투자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텔을 구입하는것과 맞물려, 그런 계획이 과연 진행됐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내용은 알려진게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임목사의 그러한 사업계획과 욕망은, 선교와 인도적 사업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조금만 프로젝트도 규모면에서 확장하는 습관이 그에게는 있다. 라면을 조금 수입할려 했던 계획은 결국에는 중국으로 부터 추럭 600대 분량을 수입하는 결과를 초래했었다. 수력발전소 댐을 건설하는 인부들에게 먹일려고 5,000톤 분량의 식품을 들여 오기도 했었다. (이북주민들보다 훨씬 많이 먹는 미국의 보통사람 한명이 일년간 먹는 양은 1톤을 채 넘지 않는다).
임목사는 가발 만드는 공장을 도왔으며, $2천만불에 달하는 800,000개의 안경을 이북에 수입하는데도 도와주었다 라고 2012년에 발행된 신문의 칼럼란에 기고하기도 했었다.
또 그는 2개의 탁아소,3채의 노인전용 집과 초등학교 하나를 건설하는데도 도움을 주었었다.
그는 염소젖을 짜는 북한내 농장에 추럭을 보내 주었으며, 북한의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이 캐나다에서 훈련할수 있도록 도와주고, 카작스탄에서 열렸던 동계아시안게임에 참석하기도 했었다.
임목사가 추진했던 여러개의 사업중에서 그가 목회했던 '큰빛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프로젝트가 어떤것들인지는 확실하게 밝혀진바는 없으며, 그자신의 노력으로 된것 또한 밝혀진바는 없다. 이북에 교회성금 수백만 달러를 보내는 토론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교회가 Canadian Charitable Organization에 보고하기위해 작성한 filing에는 그가 후원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언급이 전연 없었다. 그는 여러 교회들과 미국에 거주하는 잘사는 후원자들을 통해 많은 액수의 성금이 모아지는 확실한 발판을 갖추고 있다.
큰빛교회는 북한에서 사업을 확충하면서 이에 곁들여 인도적차원의 사업을 하는 외부구룹에 들어있지 않는 단 하나인 셈이다. 수많은 원조구룹들은 소규모 공장을 짖고 영농을 도와주고 있다. 문선명교회로 호칭 되기도 하는 '통일교'는 평화자동차공장에 합작투자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SUV차, 고급차 그리고 픽업추럭들은 이북에서 팔리고 있다.
임목사가 "교회 조직을 이용하여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첫번째 사람이 아니다."라고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사업분쟁조정위원회(An anti-conflict advocacy)인 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프로젝트 부책임자인 Daniel Pinkston씨는 설명한다.
교회들은 재정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어느 장소에서 사업을 하는데 이익을 창출하는것과는 상관없이 얼굴마담역활을 하는 단제중의 하나일 뿐이다. 북한이라는곳은 사업을 해서 창출된 수익금이나 이윤을 이북 밖으로 반출하도록 허가해주지 않는 곳이다 라고 오스트리아 국립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Leonid Petrov씨는 설명을 한다.
비즈니스를 한다는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시장의 원리를 가르치는 셈인데,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들이 북한정권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모든 한인들이 북한정권이 무너지기를 원하긴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매우 어려운일이 되고 말것이다. 왜냐면 북한 주민들에게 물고기를 잡을수 있는 능력을 주는것은 매우 나쁜 일이되기 때문이다"라고 토론토의 인권운동가 Mr.Kim은 설명한다.
Need for caution
일부교회와 인도적 차원의 도움을 주는 단체중에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만 하는 북한에서 임목사의 돌출 행동은 좀 도가 지나쳤었다고 얘기한다( 북한에서 선교는 불법이다)
몇년전 Auckland에 있는 장로교회 목사, Stuart Vogel씨는 북한의 학교에 컴퓨터를 사주기위해 성금을 모았었다. 목적외의 사용을 피하기위해, Vogel 목사는 뉴질랜드의 외교부 직원들과 만나 "이북에 보내는 컴퓨터는 학교 교육용으로 사용되야 하며, 절대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돼서는 안되게 해야 한다"라고 조건을 달았었다. 컴퓨터를 보내는것은 정부의 봉쇄정책을 위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돈을 보내 컴퓨터 대신에 교과서를 구입하는데 사용하도록 했었다.
"실질적으로나 도덕적 관습 면에서 모든것은 마음데로 할수가 없게된다"라고 Vogel목사는 말한다.
임목사의 가장 큰 프로젝트중의 하나는 평양에 5층빌딩을 건설해서 그곳에서 컴퓨터와 영어학습을 향상시키는 훈련센터를 운용하는 것이었다. 북한정권에 의해 운영되면서 컴퓨터기수술을 가르치는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며 이와 병행하여 영어로 선생들을 훈련한다는것이었다.
큰빛교회는 일년에 3번 또는 4번 정도 이러한 일을 돕기위해 자원봉사자들을 파견 운영 했었다.
큰빛교회 성도로 운영센터에서 북한관련 조직에 참가 했었던 Jamie Kim씨는 교회에서 했던 일들은 "상식을 벗어난 특별한 작업은 아니었었다"라고 두둔하고 있다. 그는 Harvard나 Yale대학들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점을 지적하면서, 서구의 선교사들이 한국의 유명 대학들을 설립운영하는데 중심역활을 했었다고라고 강조한다.
그는 강조하기를 기독교인들은 북한과 관계를 맺고 또 이해시키는 진정한 "Ambassadors"라고 강조한다. "수많은 좋은 일들을 하는것이, 이북같은 나라를 고립시키거나 비난해서 어렵게 하는것 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창출 할수 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여러면에서 사업을 벌이고있는 교회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국 국민들을 괴롭히는 범죄행위를 일삼는 북한정권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UN의 비난을 그는 반대한다.
"우리는 어쩌면 북한정권의 리더쉽에 동조할수는 없으나, 그렇타고 해서 우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어린아이들, 여성들 또는 일반 사람들을 외면할수는 없지 않은가" 라고 대변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무엇을 하는게 고난속에서 헤매는 주민들을 돕는 일이고, 또무엇을 하는게 북한통치자 김정은을 돕는일인가를 구별하는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주민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도왔던 3명의 봉사자들은 말하기를, 북한의 지방관리들은 교회로 부터 보내온 구호물자들을 지역 주민들에게 배분하면서 설명하기를 위대한 지도자동지의 은덕의 공이다 - 즉 인도적 차원의 원조를 하는 행위가 북한 정권의 흑색선전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관리들이 인도적차원의 봉사자들이 할수 있는일과 할수없는 일들을 지시받아야 하는 북한에서 자원봉사하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부로 부터의 간섭을 요구받기도 한다.
아직도 봉사활동을 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은 임목사가 인도적차원에서 도왔던 사업의 그뒷면에 깔려 있는 목적을 이해을 이해 해 볼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 그는 지방관리들의 주장에 응하기위해 공중목욕탕을 지었다 라고 2010년 설교에서 밝히고 있다. 그가 벌인 사업중 일부는 군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제대군인들을 위한 병원건축하고 의료장비를 설치해주는 것들이 이에 포함된다.
북한의 제 2도시인 함흥에 유류저장소를 건설하는데 도움을 준것도 많은 의문점을 낳게한다.
2012년도에 이공사가 완공됐을때, 그지역에서는 가장큰 유류저장소였으며 자동차세척장까지 겸비했었다. 기름은 트랙터와 어선을 움직이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부품과 같다. 즉 깊은 뜻이 그속에 포함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농업발전을 위해 유류배당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군사목적 다음순위에 두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도 자가용차 소유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북한정권의 엘리트 구룹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주유소는 "인도적 차원의 도움을 주민들에게 주는것 보다는 사업에 더 많이 이용된다."라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를 역힘했고, 현재는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관련 연구소에서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Valery Sukhinin씨는 설명한다. 그는 임목사가 개설한 개스 주유소에 대해서는 거의 알고 있지 않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설명 하기를 "북한 사람들은 그들 자체의 석유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가격이 비싸서 문제다. 그러나 만약에 돈이 있으면 필요한 기름을 구입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라고 설명한다.
Difficulties for Ottawa
지난해에 '조목사'가 기도중에 받은 심상치 않은 느낌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터의 계시 같이 느껴졌었다. 임목사가 북한을 방문횟수를 줄이는게 좋겠다. 나뿐만이 아니고 많은 신도들도 또한 그러한 조언을 했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북한 내부사정을 파악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 나라인것은 맞지만, 최근 몇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볼때 비록 정치적 문제 일수도 있겠지만, 그이유를 알수가 없다고 한탄이다.
평양당국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와 선교사들을 포함하여 그동안 감금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풀어 주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2013년에 붙잡혔던 3번째 한국의 선교사가 종신 중노동형을 언도 받고 복역중이다. 지난 4월에는 1997년부터 이북내 외곽지역에서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는 German Agro Action팀의 책임자를 추방시켜버렸다.
그이유는 확실히 밝혀진게 없다. 이에 대한 아무런 사유가 밝혀진게 없는 상태에서 임목사를 감금시킨 그뒷면에 뭔가 있을거라는 이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임목사는 지난해에 캐나다 정부와 접촉하여, 탈북난민들을 위해 도움을 줄것을 요청하기도 했었는데, 그점이 평양당국을 분노케 한것으로 보인다. Mr. Sok씨는 "임목사가 탈북자문제에 깊이 관여한것 때문에 북한당국이 그를 감금시킨것"이라고 염려하는 점이다.
그의 봉사활동역활에서 발생한 약간의 문제점이 그가 정권내부의 관계자들 또는 일부집단과의 접촉면에서 그의 위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점인데, 특히 내부의 권력암투에서 밀접한 관계가 끊어진것이 그를 위험에 처하게 한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가 가끔씩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삶의 실상에 대해 굉장히 절망적임을 나타내곤 했던 점들이 "현정권실세들의 신경을 건드린 요인이 된것 같다"라고 전 토론토 언론인으로, 북한을 8번이나 들락 거렸던 '송광호'씨는 설명한다. 북한의 국방부장관이 지난주에 숙청됐다. 처음 보도에서는 그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비난했다는 명목으로 처형됐다라고 보도 됐었다. 어쨋거나 임목사가 감금되여 있는 상태에서 오타와는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태다.
"북한은 분명 뭔가를 요구하고 있는것 같다. 즉 그들은 연방수상 Harper가 이북으로 달려와 김정은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보여 줄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고 오스트랄리아의 석학 Petrov교수는 설명한다. 그렇치 않으면 그들은 캐나다 정부에 대해 경제봉쇄를 철회하라 그리고 북한에 투자하고 또 개발원조를 해달라"라는 주문을 할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평양 당국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수도 있다. 역사를 들여다 보면 이와 비슷했던 경우가 있다. "그들은 단지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요구하고, 가능하다면 인도적 차원의 도움을 청할수 있을 것이다." 라고 전북한주재 대사 Sukhinin씨는 추측한다.
임목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다. 임목사는 금년에 큰빛교회에서 물러날 의향을 나타냈었고, 그렇게 되면 교회로 부터 자유로워지게되고, 북한에서 벌인사업에 더 몰수 할수 있을것으로 희망해 왔었다.
"그는 조기 은퇴를 할려고 했었다. 그리고 나서 북한의 선교사업에 더 전념하고져 했었다. 그는 현재 벌이고 있는 선교사업과 비즈니스를 한껏 더 확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라고 Mr.Jo는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