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광화문앞에 우뚝 서있었던, "중앙청"건물을 -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았던 김영삼씨가 대통령이었을때 첫번째 업적으로 꼽을수 있는 - 헐어 버린 반역죄를 저지른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식민지당했던 표본이라고 해서 없애면서, 다른곳으로 이전하여 후세사람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만든다는 이유를 댔었다.
지금은 그건물에서 헐어낸 돌조각하나 조차 없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특히 초중고 대학생들은 "중앙청"의 의미를 알지못하고, 알려고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런걸 갖고 시의회에서, 또진보좌파 성향의 시민들이 철거를 해야된다. 안된다 싸움질하고 있으니...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좋은역사, 잘못된역사 모두 후세교육을 위해서 다 보존시켜야한다. 역사기록에 권력이, 정권이 간섭하면 진실된 역사는 없어진다.
자유는 정해진 규율안에서 자유롭게 소신발의하고, 행동을 해야 자유인것이지, 그선을 넘으면 무질서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패를 부리는것과 똑같다. 마치 술취한 정신적 병자들을, 술깰때까지 파출소에 데려온 경찰관들을 두둘겨 패면서, 그것이 자유인양 횡설수설해대는 그풍경과 하나도 다를게없다.
역사는 항상 좋은쪽만 취사선택해서 후세들에게 가르칠수는 없다. 그래서도 절대 안된다.
전두환 대통령이 있었기에, 그다음부터 자유선거를 통해 국민들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할수있는 기본틀을 만들어 준것은 모두가 깡그리 빼고있다. 전두환 대통령때 수출의 청신호가 활짝 열리게 됐었다는 점은 완전히 빼버리고 오늘에 이르고있다. 90대 노인을 광주까지 호출하는 그목적이 5.18사건의 진상을 가리기위함이 목적이 아니고, 고문을 하기위한 정치적 쑈라고 나는 믿는다. 이빨빠진 호랑이는 힘이없다.
반면에 철권통치를 해서 일부 정치꾼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을 주었었다. 여기서 우리는 백과 흑을 가려 좋은점 나쁜점을 따지되, 두개다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할 의무가 있다. 권력이 역사에 끼어들면, 후손들은 선조들의 국가관이나 애국심에 혼돈이 오게한다. 지금 초중고대학생들의 역사책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100%악의에 찬 내용으로만 도배되여있다. 경제적부흥을위한 Infrastructure를 건설한 영웅적 업적은 전부 다 삭제하고, 독재자 박정희로만 기록되여있다. "이조실록"을 기록할때, 왕과 고급관료들은 절대로 그내용을 볼수 없게 왕이 특명을 내려, 있는 그대로의 왕조실록을 역사학자들이 기록하도록 했었다는 그현명함에 감탄을 하는 이유가 뚜렷히 보여진다.
지금의 광화문은 박정희 대통령이 재건축한것임을 알고있는 후손들이, 배우는 학생들이 몇명이나 될까?
그리고 한글현판 "광화문"을 직접 친필로 써주셨었다. 그후에 정치꾼들이 그현판 떼어내고, 현재 부착되여있는 현판으로 바꿔 치웠었다. 박대통령이 서거한지 불과 몇년지나지 않아서였다. 흔적을 지우겠다는 우물안 개구리식의 속좁아터진 정치꾼들의 반 역사적 행동이었다.
"護國路"돌비석 철거를 해 버리면, 마음이 편할것 같지만,절대로 아니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이 사실데로 기록하도록, 권력이 철저히 보호해줘야 한다. 이점 문재인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할 절대절명의 명제다.
건물전체가 대리석으로 건축되여있었던, 중앙청건물은 하늘에서 보면, '日'자로 보였었다. 진보좌파분들이 보기에 흉물처럼 보일수 있었겠지만, 그자체로 후세에, 36년간 선조들이 개돼지 취급받았던 식민지 교육자료로 전수된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영삼씨도 "자유"와 "방종"을 구별못했던것으로 이해된다. 진정한 민주주의 투사였다면, 김영삼씨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헐어내자고 했어도 말렸어야했다. 그가 대학다니면서 공부는 안하고 딴짖만 해서 머리에 들어있는게 없어 많은 그의 보좌관들도 뒤에서는 "돌대가리"라고 수근대곤 했었다는 일화는 뜻하는바 크다.
다른데로 옮겨 복원시키고, 후손들에게 역사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손짖까지 하면서 열변을 토했던 그의 모습이 전부 가짜였음을 오늘을 사는 후손들은 알길이 없다. 역사시간에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삼씨가 철거계획을 발표할때, 3김씨중의 하나였던, 김종필씨가 간곡히 말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조국이 광복이 되여 우리손으로 중앙청 홀 지붕에 첫번째로 태극기를 계양했던곳이다. 재고해달라"라는 진언에
"무신 씰데없는 소리...."로 잘라버렸다는 것이다.
포천시청과, 진보좌파분들 그리고 문대통령에게 고언드린다.
제발 "호국로"돌비석은 그대로 존치 하시요. 진보좌파분들이 대한민국을 진정한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장래의 보금자리로 생각한다면 말이오. 그게 아니고 공산당이 주인으로 행세하는 나라를 보고싶은 야망이 있어서라면..
더이상 할말은 없소.
이글을 맺으면서, 한마디 더 부치겠소.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삼씨를 정신적 동지이자 정치적 사상이 같은걸로 알고 있는데, 그분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싶다면, 그분이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중앙청"청사를 다른곳에 건축하여, 후세들에게 일본식민지로 함락되여 고생했었던, 그리고 민족혼을 불사르던 선배님들에 대한 역사를 배우게하시요. 그러면 당신에 대한 인식이 현재보다 훨씬더 Upgrade될것 확신하거든요.
진보단체 등 5월마다 "전두환 공적비 철거" 촉구
"철거하자" vs "흑역사로 미래세대 알려야"
포천시 "시민들도 의견 엇갈려...일단 보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인 18일 경기 포천시에서 ‘전두환 공덕비’ 철거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1987년 만들어진 이 비석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친필로 한자 ‘護國路(호국로)’를 새겼다. 그러나
진보단체의 잇따른 철거 요구에도 포천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해 임의 철거는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포천시 43번 국도 축석고개 입구에 있는 호국로 기념비 앞에서는 지역 진보단체, 정당 관계자 등 1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했다. 호국로 비석은 도로 건설을 기념해 세운 높이 5m, 폭 2m 크기의 기념비다. 이들은 “수년 동안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반대 측 민원이 있다는 이유로 철거를 안 하고 있다”며 포천시와 시의회에 철거를 촉구했다.
이날 오후 2시 포천시 43번 국도 축석고개 입구에 있는 호국로 기념비 앞에서는 지역 진보단체, 정당 관계자 등 1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했다. 호국로 비석은 도로 건설을 기념해 세운 높이 5m, 폭 2m 크기의 기념비다. 이들은 “수년 동안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반대 측 민원이 있다는 이유로 철거를 안 하고 있다”며 포천시와 시의회에 철거를 촉구했다.
이어 “공덕비는 단순한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군사독재 잔존세력의 상징과 같다”며 “우리 사회는 전두환을 용서하지 않았다.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위해서라도 학살자, 범죄자의 공덕비 철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흰 천으로 비석을 가렸다. 비석을 덮은 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과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공덕비’라는 문구를 담았다.
이 기념비는 원래 축석초교 입구에 있었으나 43번 국도 확장 과정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주민들의 눈에 띄게 됐다. 이 때문에 매년 5월 18일만 되면 철거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규탄 대회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측이 이 비석을 전두환 공덕비라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비석 옆의 입간판이다. 이 간판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작년 5월까지는 있었으나 지금은 훼손돼 뜯겨 나가 문구는 남아있지 않다. 포천시 관계자는 “누가 훼손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흰 천으로 비석을 가렸다. 비석을 덮은 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과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공덕비’라는 문구를 담았다.
이 기념비는 원래 축석초교 입구에 있었으나 43번 국도 확장 과정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주민들의 눈에 띄게 됐다. 이 때문에 매년 5월 18일만 되면 철거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규탄 대회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측이 이 비석을 전두환 공덕비라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비석 옆의 입간판이다. 이 간판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작년 5월까지는 있었으나 지금은 훼손돼 뜯겨 나가 문구는 남아있지 않다. 포천시 관계자는 “누가 훼손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덕비는 단순한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군사독재 잔존세력의 상징과 같다”며 “우리 사회는 전두환을 용서하지 않았다.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위해서라도 학살자, 범죄자의 공덕비 철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흰 천으로 비석을 가렸다. 비석을 덮은 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과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공덕비’라는 문구를 담았다.
이 기념비는 원래 축석초교 입구에 있었으나 43번 국도 확장 과정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주민들의 눈에 띄게 됐다. 이 때문에 매년 5월 18일만 되면 철거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규탄 대회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측이 이 비석을 전두환 공덕비라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비석 옆의 입간판이다. 이 간판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작년 5월까지는 있었으나 지금은 훼손돼 뜯겨 나가 문구는 남아있지 않다. 포천시 관계자는 “누가 훼손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흰 천으로 비석을 가렸다. 비석을 덮은 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과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공덕비’라는 문구를 담았다.
이 기념비는 원래 축석초교 입구에 있었으나 43번 국도 확장 과정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주민들의 눈에 띄게 됐다. 이 때문에 매년 5월 18일만 되면 철거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규탄 대회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측이 이 비석을 전두환 공덕비라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비석 옆의 입간판이다. 이 간판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작년 5월까지는 있었으나 지금은 훼손돼 뜯겨 나가 문구는 남아있지 않다. 포천시 관계자는 “누가 훼손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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