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14, 2020

웜비어家의 집념… 김정은, 유태인 인맥 잘못 건드렸다.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 증거. 응원한다.


Warmbier가족은 유태계 후손들이라고 들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큰 아들 Otto Warmbier가 미국에서 출발하여 이북관광을 떠난 여행팀에 합류하여, 이북을 방문했었는데, 다른 동료 여행객들은 계획된 스케쥴을 다 소화하고 되돌아 왔는데, Otto만 억류되여 몇년후 미국으로 되돌아 왔을때는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형태로 왔다가 불과 일주일도 안돼, 아들은 세상을 떠나는 참극을 맞은 부모의 맘을 전세계가 동정 했었다.

아버지, Fred와 어머니 Cindy부부는 한반도 남과 북을 가르는 판문점 근처의 Odusan통일탑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북쪽 하늘을 쳐다봤다.

전망대위에서 부부는 쌍안경을 통해 자기네 아들을 죽인 북한땅을 응시하고있다.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오열하는 감정을 추스리느라 애쓰는 모습을 쉽게 엿볼수 있었다.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꽉차있지만, 그러한 느낌이 마음속에 오래 있지 않기를 바란다. 북쪽 북한을 쳐다 보면서, '하나님 내아들의 죽음을 응시합니다' 라고. 어머니, Cindy는 쌍안경을 통해 북쪽땅을 한참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충격에 빠져있었고, 눈에서는 폭포같은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북쪽 그어디엔가에 있는 누군가와 한판 겨루고 싶다. '여보시오 나 Otto의 엄마요.' 나는 당신을 정말로 미워하지만, 당신은 더이상 나를 괴롭힐수가 없다는것을 알라. Otto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법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겠다. 선한사람이 꼭 승리한다는것을 알고 있다는것을 알려준다"

2년반전에, 전세계는 Warmbier부부의 장남, Otto Warmbier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 했었다.

Ohio태생으로 대학에서 상업경제학을 전공하고있던, 22세의 Otto Warmbier가 북한 여행을 마친후 출국할려는 찰라 북한당국에 붙잡혀 2년반동안 감옥살이한후 세상을 떠났었다.

그는 북한에서 17개월동안 식물인간( vegetative state)상태로 억류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송환(transferred back to the US) 됐었다.

그의 부모들은 생명연장 Tube를 거두어 줄것을 병원측에 요청한후, 그가 미국에 도착한지 6일만에(six days after his return)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검시관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뇌에 정상활동을 하기위해 꼭필요한 산소공급의 부족이 원인이 되여 발생한 원인을 알수없는 상처로( unknown injury)죽은 것이라고 한다.

Otto의 죽음이후, 엄마 Cindy와 아버지 Fred는 세상여러곳을 여행다니면서, 지금은 한반도의 남과북 대치점인 판문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분들의 북한에 대한 응징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응원한다. 한국정부의 많은 지원이 필요할텐데...친북 성향이 짙은 현정부의 향방을 가늠하기는 매우 불투명해서, 그점이 걱정많이 된다.  아래에 한국의 언론과 외신의 보도를 옮겨놨다.

[웜비어 부모, 5억달러 배상판결 이어 北자금 291억원도 찾아내]

압류된 北화물선 매각하고, 北대사관 호스텔 영업 중단시키기도
유력 유태인 가문의 연줄 총동원… 외교가 "북한, 정말 된통 걸려"

장남을 잃은 부모의 한(恨)이 김정은의 해외 자산에 '오뉴월의 서리'가 되어 내리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인 프레드·신디 웜비어씨는 최근 미국 내 여러 은행 계좌에 동결돼 있던 북한 관련 자금 2379만달러(약 291억원)를 찾아낸 것으로 12일 전해졌다. 두 사람은 미 정가와 유태인계 네트워크까지 동원해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북한 비자금을 찾고 있다. 이 자금을 압류해 배상금으로 받아내면 북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오토 웜비어는 지난 2015년 말 북한 여행 중 억류됐다가 1년 반 만에 혼수상태에서 풀려난 직후 사망했었다.

Fred and Cindy Warmbier stand on an observation platform at Odusan Unification Tower, on the border of North and South Korea.

As they look through the binoculars, they see the country that brought death upon their son.

They're visibly struggling to control their emotions.

"I feel hatred," says Fred Warmbier, "but I don't want to allow that feeling. When I see North Korea, I think, 'Oh my God, I'm looking at death.'"

Cindy Warmbier looks through the binoculars for some time.

She's shocked and her eyes are welling up.



"I would like to confront someone over there," she says, "and say, 'Hello, I'm Otto's mother. I hate you but you can no longer hurt me. I will make sure that there is justice for Otto and I know that the good people will win."

Two and a half years ago, the whole world was talking about the couple's eldest, Otto Warmbier.

The Ohio-born commerce and economics student was just 22 when he died, after he was arrested in North Korea while attempting to head home after a tourist trip.

He was only transferred back to the US after spending 17 months in a vegetative state.

He died six days after his return to the United States, when his parents requested that his feeding tube be removed.

The coroner's report said that he had died from an unknown injury that caused a lack of oxygen to the brain.

Since Otto's death, Cindy and Fred have been traveling the world and they're now at the border of North Korea.


They have sued the country for kidnapping, torture, and execution — they want the world to look at North Korea and to see what Kim Jong-un is doing.

Cindy and Fred are trying to hurt North Korea from afar and would like to have its government assets seized.

"[Our] mission is to hold North Korea accountable in court, to disclose their assets worldwide," says Fred. "We think that, at some point, this will force North Korea to enter into a real dialogue."

Being within viewing distance of North Korea is obviously emotional for the parents.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funeral on June 22, 2017, Otto's father is donning the same tie he wore to his son's service, adorned with the US flag; Cindy is wearing a necklace bearing Otto's name.

"Sometimes I don't know where we get the emotional strength for what we're doing," Fred says, "but I believe that we would be worse off if we did nothing. I told Otto on his deathbed that we would fight for him and for justice."

He looks through the binoculars again.

"Living there is like a death sentence," Fred says. "The country is a concentration camp. People who try to flee are shot. Otto became a victim, and I know that dictator Kim Jong-un knows his name. I want the whole country to, at some point, know Otto's name and what happened to him."

What happened between Otto's arrest and his return to the US is unclear

Otto Warmbier's story begins towards the end of 2015, when he traveled to North Korea with a tourist group.

When he attempted to leave the country again, the North Korean police arrested him at the airport.

He was accused of allegedly having taken down a propaganda poster in a hotel — an act that's considered a serious crime by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e was accused of having carried out an act of subversion on behalf of the US government and was subsequently sentenced to 15 years of imprisonment with hard labor.

Otto was then coerced into making a "public confession."

It isn't clear when exactly he fell into a coma, nor how he was mistreated to cause him to end up in this state.

What is known is that he was transferred to the US in a vegetative state on 12 June 2017, only to die six days later.


Otto's parents are convinced that North Korea's regime tortured him

"I don't care what other people are saying," says Fred. "We saw Otto, his teeth, his feet. The regime tortured and killed him. I am certain that there's further evidence over there and that it will surface at some point."

The Warmbiers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Trump's administration and were recently invited to a personal dinner with the president.

Though he strongly supports them, they're highly critical of his North Korea policy.


"It is wrong to negotiate with Kim Jong-un," says Cindy. "He killed our son, he threatens to use nuclear weapons — and still, he's invited to talks. I think the world should stand against this dictator in unison."

Cindy and Fred are continuing to exert pressure to shut down a hostel on the North Korean embassy's premises in Berlin.

"It's a scandal that North Korea can make money this way," says Cindy. "We're fighting for this hostel to be shut down and for North Korea to be unable to earn money elsewhere abroad. That's what will hurt them."

The Warmbiers spent three days in South Korea, attending a symposium next to the border and speaking at a rally.

Back home in Cincinnati, their 21-year-old son Austin and 19-year-old daughter Greta are waiting for them to return.

"As a family, we took an oath that we wanted to be happy," says Cindy. "This can't be taken from us. Otto would have wanted us to be happy, but at the same time, we will keep fighting for justice for him. It's become part of our lives. Otto had his whole life ahead of him. He was such a great student with a big heart, a moral compass, and he was open-minded towards everybody. We will keep this in our minds."



입력 2020.05.13 01:30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웜비어 부부가 찾아낸 북한 관련 자금은 JP모건체이스 계좌의 1757만달러(약 215억원), 뉴욕멜런 계좌의 321만달러(약 39억원), 웰스파고 계좌의 301만달러(약 37억원)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연방법원이 '해당 은행들이 계좌번호, 소유주, 소유주의 주소 같은 상세 정보를 웜비어씨 부모에게 제공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계좌번호와 소유주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계좌 내 자금에 대한 압류를 신청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자산 압류를 통해 아들의 죽음에 대한 배상을 받아낸다면, 북한의 인권침해에 대해 금전적 배상을 받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된다.


웜비어 부부는 2018년 말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해 5억114만달러(약 6141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북한은 배상을 거부했지만, 두 사람은 해당 판결을 근거로 김정은 정권이 전 세계에 은닉해 둔 자산을 추적하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이 당장 계좌 압류를 통해 배상금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대북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는 VOA에 "웜비어 가족이 자동적으로 해당 계좌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해외 자산은 제3국 국적자의 명의로 차명 예치돼 있거나, 북한에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제3국 정부가 이미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실제 집행까지는 장기간의 법적 공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웜비어 부부는 큰돈이 들어가는 법적 절차를 계속하고 있다. 프레드 웜비어씨는 작년 11월 방한 때 "우리의 임무는 북한이 (인권침해에) 책임을 지도록 전 세계에 있는 북한의 자산을 찾아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돈을 벌지 못하도록 싸울 것"이라고도 했다.

두 사람은 북한의 석탄 운반선 '와이즈 어니스트'호가 2018년 4월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에 압류되자, 해당 선박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 매각 대금 일부를 지급받았다. 또 북한 당국이 독일 베를린의 북한 대사관 부지 내에 운영 중이던 호스텔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해 지난 1월 독일 법원에서 영업 중단 판결을 이끌어 냈다. 신디 웜비어씨는 당시 "북한은 (억류할) 아이를 잘못 골랐다. 나는 죽을 때까지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이 제재를 해제받고 미국 내 계좌에 동결된 자금을 인출하려 해도 웜비어 부부가 압류 신청을 해두면 돈을 뺄 수가 없다. 김정은이 가장 민감해하는 '돈줄'을 죌 수 있는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정말 된통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웜비어씨는 미국 오하 이오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유태인 가문 출신이다. 삼남매 중 장남인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의해 22세의 젊은 나이로 숨지자, 모든 연줄을 동원해 보복 조치에 나선 상태다. 외교 소식통은 "웜비어 부부는 주지사 같은 거물 정치인들과도 수시로 전화할 수 있는 사이"라며 "전 세계 유태인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북한의 자산을 철저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3/20200513000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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