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는 Buffet로 음식은 풍부한 편이었다. 잘못 담아오면 실패할수 있어 조심스럽게 이곳저곳 음식이 준비되여있는 Counter에서 관찰을 해야만 했다. 여행중에는 채소종류를 많이 먹어야 몸속의 신진대사가 부드러워져 그런 종류를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식당 한켠에 부처님 처럼 한 여인이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 뭘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손님이 원하면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는것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냥 지나쳐 그녀도 무척 심심했을 터인데, 네가 만들어주는 전통음식을 조금 맛볼수있게 해줄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즉석에서 각종 양념을 첨가해서 쌀죽에 혼합시켜 넘겨준다. 맛이 달콤하고, 입에 꼭 맞아,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식도 그뿌리는 아시안들의 공통인 곰삭은 냄새를 풍기는게 기본인것 같아 보였다.
처음에 식당에서 그녀를 봤을때는, 인형이 앉아서 손님들에게 전시되고 있는것으로 착각을 했을 정도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모습을 보고 나도 지나쳤었다. 두번째 그녀 앞을 지나면서 그녀가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손님들에게 직접 만들어서 제공한다는것을 알고, 부탁했더니 그렇게 맞있는 Dish하나를 금새 각종 양념을 섞어서 만들어 주어 맛을 느끼게 해준 것이.
오늘 방문하는 Sultan Palace는 오후 1시면 문을 닫기에 일찍 떠나야만 편하게 관람할수 있다는 Eco의 제안에 따라 아침 7시에 호텔을 나섰다. 길거리는에는 벌써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길이 좁고, 통근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아 더 길은 붐비는것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토론토의 교통지옥을 양반인것을 많이 느꼈다. 이곳을 교통법규 자체를 지킬수 있는 기본 Foundation이 안돼 있기에 교통경찰이 가끔씩 눈에 띄어도 속수무책으로 보인다. 도시계획을 하고 건설된 도시나 도로가 아니고, 사람들이 먼저 살집을 제멋데로 짖고 살다가 필요에 따라 도로를 만들었으니.... 하룻밤 자고가는 여행객의 눈에도 이렇게 대책 불능인것으로 보이니....
Java섬의 중앙지에 있는 Jogjakarta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중에서 많은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불꽃은 없고 다만 하얀 연기만을 계속해서 내뿜고 있는 화산이란다. 사진에서 보이는 흰구름은 화산에서 나온 연기라고 하는데 꼭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같다.
Tuk Tuk 차를 타고 학교가는 학생과 엄마의 모습에서 옛날 우리네 어머님들 생각이 나게한다.
이러한 소박한 모습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꾸밈없이, 살아가는 한장면으로 이해하고싶다.
Borobudur 불교사원에 먼저 들렸다. 많은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붐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불교 사원의 화산돌로 만든 건축구조가 매우 특히하고, 사원의 기초역시 어제 탐방했던 Prambanan 사원은 원형이었는데, 오늘 탐방하는 사원, Borobudur사원은 정사각형이었다.
Tour Guide, Eco가 멀리 보이는 사원에 대해 Lunar에게 Briefing하고 있는 순간인데....
이불교사원은 면적이 무척 커서, 가이드 없이는 Main 사찰을 찾아가는데도 헤맬정도였다.
멀리 보이는 돌로된 사원은, 마치 Cambodia에 있는 Ankor Wat사원을 생각케 해주는 모습이다.
사원을 향해 가는데, 한구룹의 여학생들과 조우했다. 이들도 역시 영어를 배우긴 했는데,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것을 금새 알수 있었다. 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머리에 둘러쓴 히잡으로 보아 Muslim인데, 상냥하게 주위로 모여들면서, 어디서 왔느냐?라는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물어 보아, 내가 그들에게 나에대한 얘기와 여행중인 상황을 설명해주었더니, 그중에 한 친구가 사실은 인터뷰 할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잘 설명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한다. 티없이 맑은 이들에게 앞으로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탐방할 사원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사원앞에 도착하여 뒤돌아보고, 이곳을 중심으로 360도 거의 전부가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그중에는 Active Volcano 여러개 있는데, 가장 젊은 Mt. Murabi화산이 불꽃은 없고, 오직 흰 연기만 내뿜는다고 했다.
2010년도에 화산폭발이 일어나 인근에 있었던 7개 마을이 초토화 돼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깜짝 놀라 인명피해를 물었더니, 거의 없었다고 하면서 그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첫째: 화산을 감시하고 있는 정부관려부처에서 화산폭발의 조짐을 주민들에게 공지한다.
둘째: 주민들은 그공지사항에 따라 안전지대로 대피한다.
셋째: 화산이 터지면 정부가 반경 10-20킬로 안에는 완전 차단하고 사람들의 입출입을 막는다.
지금은 다시 그자리에 집들이 들어서고, 살던 주민들이 모여들어 전과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그이유가 화산폭발에서 나온 Ash가 비옥한 거름역활을 해주기에 농사를 지으면 수확이 많이 나기 때문에 자손 대대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이들이 집을 지을때 많은 보조를 해주기 때문이기도 한다라고 설명한다. 당시에 1632명의 주민들에게 정부에서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Guide, Eco가 보리수 나뭇잎 한개를 반으로 접어서 설명하기를 사원의 맨꼭대기 중앙에 있는 Stupa의 모습이 이런형상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해준다.
아래의 조각은 큰새가 작은새를 잡아 먹을려고 하자, 작은새가 왕에게 날아와 살려달라는 간청을 듣고 왕이 그렇게 해주마하고 약속을 했다. 큰새가 뒤따라와 나는 저작은 새가 내가 먹을 양식이기에 잡아먹어야겠는데 막지 말라고 애원한다. 왕이 작은새와 약속을 했기에, 작은 새도 살리고, 큰새도 배고파 죽지 않게 하기위해 고민을 하다가, 자기가 희생을 하면, 큰새와 작은새를 살릴수 있음을 생각해 내어, 작은새를 저울에 달아, 그무게만큼 자신의 왼팔을 잘라서 큰새에게 먹임으로 해서, 임금은 행동과 사랑으로 그의 식솔들을 거느린다는 점을 보여주어, 국민들로 부터 추앙을 높이 받았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위의 사진은 사자가 배가고파 먹이감을 골라 잡아 먹었는데, 목에 가시가 걸려 고생하면서, 사슴을 만나 목에 걸려있는 가시를 빼주면 널 잡아먹지 않겠다라고 하자, 사슴이 하는말이 나는 발밖에 없어서 가시를 잡아 빼낼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자, 그주변을 날고 있던 독수리가 이말을 듣고 그럼 내가 빼내주겠다라고 하고, 부리를 이용하여 가시를 빼내주었다는 내용의 조각이라고 설명한다.
석가모니가 29세에 결혼을하는 내용을 담은 조각이라고 설명해 주는데, 조각속에서 나는 그뚜렷한 의미를 읽지를 못하고 말았다.
궁밖에 나와서 서민들의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도 열악하고, 가난하여 속세를 떠나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달은바 있어, 후일 불교를 일으키게 된다는 설명이다.
Lunar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가 편지않아 나와 Tour Guide, Eco만 올라 왔는데, 맨꼭대기층은 마침 관리직원들이 물청소를 하고 있어 중앙에 있는 Stupa는옆에서 보질 못하고 말았다.
이사찰에는 전부 504개의 Statue 가 있고, Circle 밖의 Statue는 432개라고 한다. Circle안에 있는 모든 Statue 숫자는 72개이고, 맨 아래층에 있는 첫번째 Circle층은, Niawan으로도 불리며 32개의 Statue가, 그다음 Circle 2층은, Pam Mir wan에는 24개의 Statue, 그리고 맨꼭대기층은, Malu Pen으로 불리며 16개의 Statue가 있다고 설명한다.
돌로 전부 건축된 Stupa모양의 빈공간에 석가모니의 Statue가 모셔져 있었다. 이러한 석가모니의 Statue는 처음 보는 사찰의 건축양식같았다. Burma에서도 본 기억이 없는 특히한 사찰 구조로 보였다.
수십개의 석가모니의 좌상중에서 오직 2개만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Open 되여 있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사찰은 첫번째 왕 Samara Pingga때 시작해서, 2대왕 Indra를 거쳐 3대왕 Pramudyawardani 때 완성됐다고 하는데, 건축시작해서 완성한 기간이 100년 넘었다고 한다.
Security Guard와 같이 추억을 만들었다. 그친구도 배가 나오고, 나 또한 배구 불룩나와 별로 모양새가 멋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이렇게 배가 불룩하다는것을 이사진 보면서 더 많이 깊이 알게 됐는데, 앞으로 신경써야 할것같다.
불교 사원이지만, 수호신격인 Macara가 문입구 바닥에 버티고 있고, 문지방 윗쪽에는 Cara 수호신이 마치 힌두교 Shiva의 형상을 크게 하는, 구조로 설명되는데, 불교가 힌두교와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게해주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득도하기전, 그의집은 힌두교 왕궁이었었다고하는점에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봤다.
사찰 탐방을 다 마치고 거의 다 즉 1층 Circle까지 내려오는데, 기다리고 있는 Lunar가 우리를 향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순간을 목격한후 나도 바로 찰칵 Shutter를 눌렀다.
넓은 사찰의 군데군데에는 아이를 안고, 뭔가 구원을 요청하는 엄마(?)들이 많이 눈에 띄어 이곳 사람들의 삶이 많이 어렵다는 것임을 알수 있었는데..... 역시 후진국일수록 국가를 통솔하는 Leader의 자질이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많이 느낀다.
Lunar가 지나가는 탐방객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현지인에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얼마 안되지만
불교사찰 탐방을 마치고 현재 10대 왕이 살고 있는 Palace 탐방을 했다. 여기서는 Tour Gudie, Eco는 열외로 남고, 왕궁소속의 여인이 우리 부부를 맡아 안내해줬다. 그시간에 Eco는 그늘에서 쉬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왕궁의 전통 악사들의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며칠전 말레이시아 탐방시 들렸던 공만드는 가내공업공장에서 공을 만들던 기억이 나게한다. 그와 똑같은 공과 기타 놋쇠로 만들 꾕과리르 비롯한 타악기들을 이용하여 전통음악을 하는데, 소리가 은은하고 깊이 폐부를 파고 드는 느낌이었다. 이곳 악사들은 굉장한 자긍심을 갖고 근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커다란, 한국의 징과 같은 악기도 많이 애용되고, 이악기는 남성이 다루고 있었다.
검정윗옷을 입고, 버마에서 봤던 론지같은 치마같은 아래옷을 입은 사람들은 Palace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라고 하는데, 허리에 조그만 칼을 차고 다녔다. 이직업은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아주 상징적이면서도 Proud of하게 여겨지는데, 주급 5,000 루피아를 받는다고 한다. 완전 Voluteer Job인데, 근무자들은 자존심이 대단하고, 이분들은 임무교대를 마치고 퇴근하는중이라는 설명이다. 전체 인원은 200명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가 서있는 뒷쪽은 음식만드는 Kitchen이고 그 오른쪽에는 연회를 하는 Great Hall이라고 하는데, 왕궁가족들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거행되고, 각국외교사절들을 접대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허리에 칼을 찬 직원한분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는 현 71세로 우리 부부와 동갑내기였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왕궁에서 봉수할수 있다는데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차고 있던 칼을 뽑아서 보여줄려고 하는데, 안내하는 여인이 이를 적극 말ㄹ려서 칼을 꺼내 보지는 못했다. 칼도 자손에게 같이 물려준다고 한다.
9대왕이 근무시에 사용했던 사무집기들을 진열해 놓았다. 왕이면 화려했을만도 한데, 보통 정부공무원들이 사용했던 것들과 별로 다를게 없이 수수해 보였다.
이곳 Jogjakarta 는 좀 정치적으로 특히 하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왕, Sultan Hameniku Buwo는, 10대 왕으로, 왕이면서, 이주의 Governor로 봉직하고 있으며,인도네시아 독립시 Jakarta중앙정부와 합의를 해서, 이주의 왕이면서 주지사를 하고 있는 셈인데, 다른 정무직 선거는 있지만 Jogjakarta 주에서는 주지사 선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왕도 주지사를 겸하고 정치에 참여하게 될것이라고 하는데, 현재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5명이어서, 다음 왕위는 그의 동생에게 넘어가는것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Muslim왕족이지만, 현재왕은 아내 하나만 두어, 스스로 4명까지 둘수있는 Rule을 행동으로 허물어가고 있다는(?) 설명인데....
탐방나온 이곳 여인들과 Lunar가 추억을 만들었다.
Water Palace는 왕궁의 뒷켠에 별도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1757년에 왕궁이 완성되고, 왕족들의 휴식처가 별도로 필요하게되여, 그로부터 10년후인 1767년에 왕족여인들도 즐길수 있도록 별궁을 건축했고, 그중의 하나가 Water Palace라고 했다. Water Palace의 오른쪽에서는 남자왕족들이, 왼쪽 즉 South쪽은 여자왕족들이 이용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Water Palace는 100후인 3대왕때인,1867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였었는데, 2005년도에 Portugal에서 원조를 해주어 오늘과 같은 Water Palace를 재건축했다는 것이다.
Water Palace의 수호신은 Shiva신이 문턱윗쪽에 크게 새겨져 있었다.
전통나염공장 탐, 천에 들어가는 각종 무늬를 손수 연필로 Drawiong 한후 색칠하고 그위에 Wax를 덮입혀 원래의 색상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특수한 공법을 사용하는데, 크게는 안돼고 가내 수공업 정도의 수중에서 사업을 경영하는것 같았다.
Bird Market을 탐방했는데, 굼뱅이와 새들이 먹는 벌레들을 증식시켜서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쌀밥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조그만 벌레들이 득시글 거리고 있었으며, 바퀴벌레같은 징그러운 것들도 사육되고 있었다. 이런 새시장(Bird Market)은 난생 처음 구경이다.
이새장안에는 박쥐와 도마뱀같은 파충류를 보관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애완용으로 사간다는데 우리가 탐방한 그시간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보기쉽지 않은 Owl도 꼼짝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갖 부화된 병아리들도 한몫하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하기위해서 노란털에 색칠을 했으니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수 있을까?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은 우리가 먹기에 크게 어렵지 않고 깔끔했다. 인도전통음식점에서 점심을 하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여자직원들이 우리가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임을 알고, Lunar뒤에서서 또 추억을 만들어 준다.
이식당 건물은 1800년대 중반에 건축된, 오랜전통이 배여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탐방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위해 Eco에 한국식당을 알아 보라고 했더니, 좀 떨어진곳에 "대장금"이라는 식당을 찾아내서 그곳을 찾아갔다. 아쉽게도 주인장은 없어서 만나지 못하고, 한식저녁을 Tour Gudie, Driver와 함께 하면서 막걸리도 한주전자 Order해서 오랫만에 한모금 넘기는 짜릿한 맛을 느꼈었다. 맛이 토론토의 식당에서 먹는것보다 더 짜릿하고 입맛을 땅기게 하여, 결국 이친구들은 처음 대하는 막걸리여서인지,맛만 보고, 내가 훌쩍 훌쩍 다 마시고 말았다. 음식값은 매우 저렴하여, 생각했던것 보다 주머니에서 많이 나가지는 않았었다. 주인장은 또 다른 사업이 있기에 일주일에 한번쯤만 출근한다는 직원의 설명이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식당 한켠에 부처님 처럼 한 여인이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 뭘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손님이 원하면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는것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냥 지나쳐 그녀도 무척 심심했을 터인데, 네가 만들어주는 전통음식을 조금 맛볼수있게 해줄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즉석에서 각종 양념을 첨가해서 쌀죽에 혼합시켜 넘겨준다. 맛이 달콤하고, 입에 꼭 맞아,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식도 그뿌리는 아시안들의 공통인 곰삭은 냄새를 풍기는게 기본인것 같아 보였다.
처음에 식당에서 그녀를 봤을때는, 인형이 앉아서 손님들에게 전시되고 있는것으로 착각을 했을 정도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모습을 보고 나도 지나쳤었다. 두번째 그녀 앞을 지나면서 그녀가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손님들에게 직접 만들어서 제공한다는것을 알고, 부탁했더니 그렇게 맞있는 Dish하나를 금새 각종 양념을 섞어서 만들어 주어 맛을 느끼게 해준 것이.
오늘 방문하는 Sultan Palace는 오후 1시면 문을 닫기에 일찍 떠나야만 편하게 관람할수 있다는 Eco의 제안에 따라 아침 7시에 호텔을 나섰다. 길거리는에는 벌써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길이 좁고, 통근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아 더 길은 붐비는것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토론토의 교통지옥을 양반인것을 많이 느꼈다. 이곳을 교통법규 자체를 지킬수 있는 기본 Foundation이 안돼 있기에 교통경찰이 가끔씩 눈에 띄어도 속수무책으로 보인다. 도시계획을 하고 건설된 도시나 도로가 아니고, 사람들이 먼저 살집을 제멋데로 짖고 살다가 필요에 따라 도로를 만들었으니.... 하룻밤 자고가는 여행객의 눈에도 이렇게 대책 불능인것으로 보이니....
Java섬의 중앙지에 있는 Jogjakarta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중에서 많은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불꽃은 없고 다만 하얀 연기만을 계속해서 내뿜고 있는 화산이란다. 사진에서 보이는 흰구름은 화산에서 나온 연기라고 하는데 꼭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같다.
Tuk Tuk 차를 타고 학교가는 학생과 엄마의 모습에서 옛날 우리네 어머님들 생각이 나게한다.
이러한 소박한 모습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꾸밈없이, 살아가는 한장면으로 이해하고싶다.
Borobudur 불교사원에 먼저 들렸다. 많은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붐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불교 사원의 화산돌로 만든 건축구조가 매우 특히하고, 사원의 기초역시 어제 탐방했던 Prambanan 사원은 원형이었는데, 오늘 탐방하는 사원, Borobudur사원은 정사각형이었다.
Tour Guide, Eco가 멀리 보이는 사원에 대해 Lunar에게 Briefing하고 있는 순간인데....
이불교사원은 면적이 무척 커서, 가이드 없이는 Main 사찰을 찾아가는데도 헤맬정도였다.
멀리 보이는 돌로된 사원은, 마치 Cambodia에 있는 Ankor Wat사원을 생각케 해주는 모습이다.
사원을 향해 가는데, 한구룹의 여학생들과 조우했다. 이들도 역시 영어를 배우긴 했는데,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것을 금새 알수 있었다. 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머리에 둘러쓴 히잡으로 보아 Muslim인데, 상냥하게 주위로 모여들면서, 어디서 왔느냐?라는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물어 보아, 내가 그들에게 나에대한 얘기와 여행중인 상황을 설명해주었더니, 그중에 한 친구가 사실은 인터뷰 할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잘 설명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한다. 티없이 맑은 이들에게 앞으로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탐방할 사원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사원앞에 도착하여 뒤돌아보고, 이곳을 중심으로 360도 거의 전부가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그중에는 Active Volcano 여러개 있는데, 가장 젊은 Mt. Murabi화산이 불꽃은 없고, 오직 흰 연기만 내뿜는다고 했다.
2010년도에 화산폭발이 일어나 인근에 있었던 7개 마을이 초토화 돼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깜짝 놀라 인명피해를 물었더니, 거의 없었다고 하면서 그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첫째: 화산을 감시하고 있는 정부관려부처에서 화산폭발의 조짐을 주민들에게 공지한다.
둘째: 주민들은 그공지사항에 따라 안전지대로 대피한다.
셋째: 화산이 터지면 정부가 반경 10-20킬로 안에는 완전 차단하고 사람들의 입출입을 막는다.
지금은 다시 그자리에 집들이 들어서고, 살던 주민들이 모여들어 전과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그이유가 화산폭발에서 나온 Ash가 비옥한 거름역활을 해주기에 농사를 지으면 수확이 많이 나기 때문에 자손 대대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이들이 집을 지을때 많은 보조를 해주기 때문이기도 한다라고 설명한다. 당시에 1632명의 주민들에게 정부에서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Guide, Eco가 보리수 나뭇잎 한개를 반으로 접어서 설명하기를 사원의 맨꼭대기 중앙에 있는 Stupa의 모습이 이런형상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해준다.
사원 맨아랫층에 새겨진 조각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19세가 되여 처음으로 궁전밖을 나가 보았는데, 만난 많은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어 구걸을 하고 다투고, 아이들을 천덕구러기로 귀찮아 하는 광경을 보고, 깊이 깨닫게 되는 계기를 얻는 광경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벽에는 전부 조각되여 있어, 그옛날에 이렇게 정교하게 Plan을 짜고 그내용데로 조각을 하고.... 내용의 대부분은 Incarnation에 대한 설명들이라고 한다. 원래는 검정색의 돌로 조각된 것인데, Fungus의 침입으로 이렇게 색갈이 노랗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아래의 조각은 큰새가 작은새를 잡아 먹을려고 하자, 작은새가 왕에게 날아와 살려달라는 간청을 듣고 왕이 그렇게 해주마하고 약속을 했다. 큰새가 뒤따라와 나는 저작은 새가 내가 먹을 양식이기에 잡아먹어야겠는데 막지 말라고 애원한다. 왕이 작은새와 약속을 했기에, 작은 새도 살리고, 큰새도 배고파 죽지 않게 하기위해 고민을 하다가, 자기가 희생을 하면, 큰새와 작은새를 살릴수 있음을 생각해 내어, 작은새를 저울에 달아, 그무게만큼 자신의 왼팔을 잘라서 큰새에게 먹임으로 해서, 임금은 행동과 사랑으로 그의 식솔들을 거느린다는 점을 보여주어, 국민들로 부터 추앙을 높이 받았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위의 사진은 사자가 배가고파 먹이감을 골라 잡아 먹었는데, 목에 가시가 걸려 고생하면서, 사슴을 만나 목에 걸려있는 가시를 빼주면 널 잡아먹지 않겠다라고 하자, 사슴이 하는말이 나는 발밖에 없어서 가시를 잡아 빼낼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자, 그주변을 날고 있던 독수리가 이말을 듣고 그럼 내가 빼내주겠다라고 하고, 부리를 이용하여 가시를 빼내주었다는 내용의 조각이라고 설명한다.
석가모니가 29세에 결혼을하는 내용을 담은 조각이라고 설명해 주는데, 조각속에서 나는 그뚜렷한 의미를 읽지를 못하고 말았다.
궁밖에 나와서 서민들의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도 열악하고, 가난하여 속세를 떠나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달은바 있어, 후일 불교를 일으키게 된다는 설명이다.
Lunar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가 편지않아 나와 Tour Guide, Eco만 올라 왔는데, 맨꼭대기층은 마침 관리직원들이 물청소를 하고 있어 중앙에 있는 Stupa는옆에서 보질 못하고 말았다.
이사찰에는 전부 504개의 Statue 가 있고, Circle 밖의 Statue는 432개라고 한다. Circle안에 있는 모든 Statue 숫자는 72개이고, 맨 아래층에 있는 첫번째 Circle층은, Niawan으로도 불리며 32개의 Statue가, 그다음 Circle 2층은, Pam Mir wan에는 24개의 Statue, 그리고 맨꼭대기층은, Malu Pen으로 불리며 16개의 Statue가 있다고 설명한다.
돌로 전부 건축된 Stupa모양의 빈공간에 석가모니의 Statue가 모셔져 있었다. 이러한 석가모니의 Statue는 처음 보는 사찰의 건축양식같았다. Burma에서도 본 기억이 없는 특히한 사찰 구조로 보였다.
수십개의 석가모니의 좌상중에서 오직 2개만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Open 되여 있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사찰은 첫번째 왕 Samara Pingga때 시작해서, 2대왕 Indra를 거쳐 3대왕 Pramudyawardani 때 완성됐다고 하는데, 건축시작해서 완성한 기간이 100년 넘었다고 한다.
Security Guard와 같이 추억을 만들었다. 그친구도 배가 나오고, 나 또한 배구 불룩나와 별로 모양새가 멋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이렇게 배가 불룩하다는것을 이사진 보면서 더 많이 깊이 알게 됐는데, 앞으로 신경써야 할것같다.
불교 사원이지만, 수호신격인 Macara가 문입구 바닥에 버티고 있고, 문지방 윗쪽에는 Cara 수호신이 마치 힌두교 Shiva의 형상을 크게 하는, 구조로 설명되는데, 불교가 힌두교와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게해주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득도하기전, 그의집은 힌두교 왕궁이었었다고하는점에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봤다.
사찰 탐방을 다 마치고 거의 다 즉 1층 Circle까지 내려오는데, 기다리고 있는 Lunar가 우리를 향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순간을 목격한후 나도 바로 찰칵 Shutter를 눌렀다.
넓은 사찰의 군데군데에는 아이를 안고, 뭔가 구원을 요청하는 엄마(?)들이 많이 눈에 띄어 이곳 사람들의 삶이 많이 어렵다는 것임을 알수 있었는데..... 역시 후진국일수록 국가를 통솔하는 Leader의 자질이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많이 느낀다.
Lunar가 지나가는 탐방객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현지인에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얼마 안되지만
불교사찰 탐방을 마치고 현재 10대 왕이 살고 있는 Palace 탐방을 했다. 여기서는 Tour Gudie, Eco는 열외로 남고, 왕궁소속의 여인이 우리 부부를 맡아 안내해줬다. 그시간에 Eco는 그늘에서 쉬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왕궁의 전통 악사들의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며칠전 말레이시아 탐방시 들렸던 공만드는 가내공업공장에서 공을 만들던 기억이 나게한다. 그와 똑같은 공과 기타 놋쇠로 만들 꾕과리르 비롯한 타악기들을 이용하여 전통음악을 하는데, 소리가 은은하고 깊이 폐부를 파고 드는 느낌이었다. 이곳 악사들은 굉장한 자긍심을 갖고 근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커다란, 한국의 징과 같은 악기도 많이 애용되고, 이악기는 남성이 다루고 있었다.
검정윗옷을 입고, 버마에서 봤던 론지같은 치마같은 아래옷을 입은 사람들은 Palace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라고 하는데, 허리에 조그만 칼을 차고 다녔다. 이직업은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아주 상징적이면서도 Proud of하게 여겨지는데, 주급 5,000 루피아를 받는다고 한다. 완전 Voluteer Job인데, 근무자들은 자존심이 대단하고, 이분들은 임무교대를 마치고 퇴근하는중이라는 설명이다. 전체 인원은 200명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가 서있는 뒷쪽은 음식만드는 Kitchen이고 그 오른쪽에는 연회를 하는 Great Hall이라고 하는데, 왕궁가족들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거행되고, 각국외교사절들을 접대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허리에 칼을 찬 직원한분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는 현 71세로 우리 부부와 동갑내기였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왕궁에서 봉수할수 있다는데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차고 있던 칼을 뽑아서 보여줄려고 하는데, 안내하는 여인이 이를 적극 말ㄹ려서 칼을 꺼내 보지는 못했다. 칼도 자손에게 같이 물려준다고 한다.
9대왕이 근무시에 사용했던 사무집기들을 진열해 놓았다. 왕이면 화려했을만도 한데, 보통 정부공무원들이 사용했던 것들과 별로 다를게 없이 수수해 보였다.
이곳 Jogjakarta 는 좀 정치적으로 특히 하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왕, Sultan Hameniku Buwo는, 10대 왕으로, 왕이면서, 이주의 Governor로 봉직하고 있으며,인도네시아 독립시 Jakarta중앙정부와 합의를 해서, 이주의 왕이면서 주지사를 하고 있는 셈인데, 다른 정무직 선거는 있지만 Jogjakarta 주에서는 주지사 선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왕도 주지사를 겸하고 정치에 참여하게 될것이라고 하는데, 현재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5명이어서, 다음 왕위는 그의 동생에게 넘어가는것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Muslim왕족이지만, 현재왕은 아내 하나만 두어, 스스로 4명까지 둘수있는 Rule을 행동으로 허물어가고 있다는(?) 설명인데....
탐방나온 이곳 여인들과 Lunar가 추억을 만들었다.
Water Palace는 왕궁의 뒷켠에 별도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1757년에 왕궁이 완성되고, 왕족들의 휴식처가 별도로 필요하게되여, 그로부터 10년후인 1767년에 왕족여인들도 즐길수 있도록 별궁을 건축했고, 그중의 하나가 Water Palace라고 했다. Water Palace의 오른쪽에서는 남자왕족들이, 왼쪽 즉 South쪽은 여자왕족들이 이용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Water Palace는 100후인 3대왕때인,1867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였었는데, 2005년도에 Portugal에서 원조를 해주어 오늘과 같은 Water Palace를 재건축했다는 것이다.
Water Palace의 수호신은 Shiva신이 문턱윗쪽에 크게 새겨져 있었다.
전통나염공장 탐, 천에 들어가는 각종 무늬를 손수 연필로 Drawiong 한후 색칠하고 그위에 Wax를 덮입혀 원래의 색상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특수한 공법을 사용하는데, 크게는 안돼고 가내 수공업 정도의 수중에서 사업을 경영하는것 같았다.
Bird Market을 탐방했는데, 굼뱅이와 새들이 먹는 벌레들을 증식시켜서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쌀밥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조그만 벌레들이 득시글 거리고 있었으며, 바퀴벌레같은 징그러운 것들도 사육되고 있었다. 이런 새시장(Bird Market)은 난생 처음 구경이다.
이새장안에는 박쥐와 도마뱀같은 파충류를 보관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애완용으로 사간다는데 우리가 탐방한 그시간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보기쉽지 않은 Owl도 꼼짝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갖 부화된 병아리들도 한몫하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하기위해서 노란털에 색칠을 했으니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수 있을까?
이식당 건물은 1800년대 중반에 건축된, 오랜전통이 배여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탐방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위해 Eco에 한국식당을 알아 보라고 했더니, 좀 떨어진곳에 "대장금"이라는 식당을 찾아내서 그곳을 찾아갔다. 아쉽게도 주인장은 없어서 만나지 못하고, 한식저녁을 Tour Gudie, Driver와 함께 하면서 막걸리도 한주전자 Order해서 오랫만에 한모금 넘기는 짜릿한 맛을 느꼈었다. 맛이 토론토의 식당에서 먹는것보다 더 짜릿하고 입맛을 땅기게 하여, 결국 이친구들은 처음 대하는 막걸리여서인지,맛만 보고, 내가 훌쩍 훌쩍 다 마시고 말았다. 음식값은 매우 저렴하여, 생각했던것 보다 주머니에서 많이 나가지는 않았었다. 주인장은 또 다른 사업이 있기에 일주일에 한번쯤만 출근한다는 직원의 설명이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세수하는데, 그림에서 처럼 남녀 한쌍의 인형이 있고, "Open Me"라는 사인까지 붙어있는 모습이 특히하여 추억속에 담았다. 표시된데로 열어 보았더니 그속에는 세면도구 비누들이 가지런히 갖추어져 있었다. 같은 세면도구를 준비해주는데도 이런 유머가 있음을 보면서, 호텔측에 배려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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