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8, 2017

한국탐방,4월17-20일(월,화,수,목요일), 남해안 탐방, 고교동창 친구부부들 함께,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들 부부 5쌍이 함께하는, 일명 "묻지마 관광"은, 두대의 차량에 몸을 의지하고, 이번 여행의 기획을 맡은 K형이 운전하는 차량의 핸들이 움직이는데로 남해안 탐방하는, 평생잊지못할 여행중 하나가 되였다.

남해안 절경들을 둘러보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디를 거쳐서 이곳까지왔는지는, 알수도 없고, 그러나 마냥 동심으로 돌아가 폭소가 끝이지 않는 운전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내려서 주위경관의 수려함에, 역시 K형의 여행경험이 이런곳에서 확연히 나타남을 설명없이도 느끼게 하는 스릴을 만들어 주었던 한바탕 웃자판 여행이었다.


Lunar의 덕택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 매번 한국방문때마다 모여서, 이러한 여행을 해온지도 벌써 몇번째인지?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로 여러번인데, 지난번에는 강원도 휴전선 근처의 산골짜기를 헤매면서, 우정을 나누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곳은 "물염" 홍정순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이지역에서 객사한곳이기도 해서, 그의 비석도 함께 옆에 세워져 있었다.   김삿갓의 아들, 김익균이 아버지가 서거한 날로 부터 약 2년후에 이곳으로 부터 아버지의 유해를 강원도 영월로 모셨다는, K형의 설명이 당시의 그날을 머리속에서 그려보고도 남게 아주 흥미있게 설명을 해주어 옛어른들의 해학적인 삶을 더 그려볼수도 있었다.
사당과 비석들이 즐비한 그 끝자락에 돌을 깍아 세워논 방랑시인 김삿갓의 모습이 내가 보기에는 가분수 모양으로, 보기에도 머리가 무척 무거울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수는 없었으나, 분명 그렇게 Unbalance하게 조각한 뜻이 있을것으로 추측됐다. 역시 돌아가신후에도 후세의 사람들에게 그는 한량이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보여준것 같다.
이곳은 16세기 중엽에, 호는 "물염"이요 이름은 "송정순"이 건립한 정자가 위치해있는 역사적 유물로,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 3호로 명명되여 보호받고있는 곳이라고 한다.
호를 물염으로 정한것은, 주위 있던 물염정의 경관이 빼어 당대의 유명한, 요즘으로 치면, 정치인들이 자주와서 물염정의 적벽을 감상하면서 술잔을 기울였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것 같다.

구룹사진을 찍겠다고 일행 모두를 모아놓고, 카메라 셧터를 누르고 있는 K형의 멋진 폼이 낑낑 거리는 강아지의 모습을 연출해내는것 같아 일행은 또한번 폭소를 쏟아내고 말았다.







여기는 "화순 서유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로  한국에도 이런 화석이 있었다는점에, 그옛날에 이곳 한반도에서도 많은 공룡들이 서식했었다는 증거자료여서, 관심이 끌렸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가 둔해서인지, 공룡의 발자국이라는 설명이 있긴 했지만, 도저히 상상히 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줄 알았는데, 여성분들은 나보다 더 의심을 많이 하는것 같아, 나만이 지능지수가 둔한것은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도 있었다.


공룡의 발자국을 마치 새로 발견하고 황홀감에 빠져 있는 제스처로 손을 들어 흔들어대는, S형의 익살에 일행은 또한번 폭소에 빠지기도 했다.  그의 뒤에는 묻지마 관광의 우두머리 K형이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고.....





망향정건립탑.  친구와 떨어져 살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살이를 대변해주려는듯, 이곳에는 떨어져 삶을 살아야 했던 옛 친구들을 잊지못해 이곳에서 망향의 정을 그렸다는 곳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밑으로 한참을 내려가면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곳의 경관은, 한국산천의 오목조목한 비경을 대표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것 같은 평화스러움으로, 잠시 현대사회의 복잡함속에서 빠져나와 태평함을 느끼게 하는것 같은 무아지경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순간이 지 나면,  70을 넘긴 여인네들의 함께한 순간도 역사속으로 묻혀질 것이다.   학창시절의 그날을 재발견하고 좋아하는 친구의 정은 삶의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호수는 주암 다목적 댐으로, 망향정의 정취를 더 깊에 해주는 부수적인 역활까지 하고 있었다.



순천만의 국가 정원으로 이동하기전에 아침식사를 해야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서 보이는 식당들은 아직 장사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길에서 뒷쪽으로 들어가 있는곳에 보이는 식당으로 여성친구들이 들어갔는데, 이곳도 역시 준비는 덜된 상태여서, 선뜻 우리 일행을 받아 들이 준비가 안돼 망설이는 주방 아줌마들에게 접근하여 주방안을 봤는데, 막 잡아온 싱싱한 쭈꾸미들이 큰 다라에 가득히 채워져 있는것을 보고 그냥 물러날 여인들이 아니였었다.  그래서 조금 기다리는 시간이 길더라도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고 방안에 둘러 앉았었다.

주인장 아저씨가 인심이 너무도 좋았다.  푸짐하게 쭈꾸미 찌게를 만들어 Burner에 올려놓고 끓이면서 입맛을 다시는데, 여인네들의 넉살좋은 칭찬에 계속해서 살아있는 쭈꾸미를 매운탕 끓이는 솥에 갖다주고, 아주머님들은 갖은 양념을 직접 첨가하고 맛을 봐가면서, 우리 일행을 도와주기에 금새 친한 친구가 되여 한데 어울리고 말았다.
Lunar가 나는 매운 찌게를 먹을수 없는 처지라고 설명하자, 금새 삶은 쭈꾸미 한사라 가져와서 대접하는게 아닌가.  이분들이 돈을 남기는 장사를 하는건지? 아니면 같이 어울리는 그재미에 손익계산은 잊고 있는것은 아닌지? 분간이 안될 밥상이 되고 말았다.  주인장 아저씨의 설명에 따르면 어젯밤에 갖 잡아온 그래서 아직도 살아움직이는 신선한 쭈꾸미라서 값이 비싼편이지만, 그까짖게 대수는 아니라는듯이, 밥상에 어울려, 노익장을 과시했다.  77세라고 하시면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Muscle을 자랑(?)해 보이시기도 했다. 우리일행의 철부지 같은 여행담이 무척 부러웠었던 것 같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내가 맨 나중에 나오면서, 준비해간 캐나다 국기의 상징인 Maple Tree가 새겨져 있는 뱃지를 주방 아줌마 두분에게 입고있는 윗옷의 Lapel에 달아 드렸더니 싱글벙글하셨다.  이런게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냄새나는 삶이라는것을 깊이 느꼈다.   식당에서 나와 길건너에는 면사무소 건물이 있어, 그앞에서 사진을 찍은 S형 부부의 표정이 함박웃음이다. 뭐가 이들을 그렇게 웃게 만들었을까? 관상용 커다란 화분에는 보리싹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어, 화초로서의 역활을 잘하고 있었다.



순천만 국가지정 공원입구에서 Promotion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났다. 부상으로 Selfie를 하나씩 주고 있어, 나도 신청해서 엉겹결에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앞으로 Selfie를 이용해서 특히  Trail Walk할때 이용해 볼 결심이다.


세계적인 거대한 공원, 순천만 국가공원에서 느낀점은, 홍보부족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들만의 집안Picnic같은점이 아쉬웠었다.  SNS와 발달된 통신수단으로 이미 전 서방세계에 잘 알려져 있을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너무 앞선것이었을까? 오래전 중국의 장가계를 탐방할때에도, 지금 이곳에서 내가 보고 느낀것 처럼, 전부 중국인들 일색이었고, 한국인 관광객들이 일부 보였을뿐이었는데, 그 현상을 이곳에서 다시 보는것 같아, 한국에서 올림픽 개최할때 내걸었던 슬로건 " World to Korea, Korea to World"의  맥이 끊겨 버린것은 아닐까라는 아쉬운 생각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아니면 다문화 가족들이 조국에 많다고 들었는데, 이분들마져도 보이지 않으니, Picnic할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일까?  Harmony를 이루어 이른 봄날의 나들이 분위기가 펼쳐졌어야 하는데....


해외에는 "한국관광공사" Branch가 무척 많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곳에도, Downtown의 비싼 중심가에 넓은 공간을 Rent하여 한국을 홍보한다는 취지아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얼마나 한국홍보에 일조를 하고 있는지 재검토 해봐야 할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비상하는 커다란 새(Raptor)의 조형물이 이색적이다.  이러한 조형물을 보는것을 처음으로 순천공원의 마스코트로 지정해도 될것 같다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게 아쉽기 그지 없었다.
각나라의 특색을 살린 정원들이 수없이 많이 조성되여, 만국의 사랑스런 공원임을 쉽게 볼수 있었다.  Designer의 Sharp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중국관도 있고....듣기에 생소한 나라의 정원도 조성되여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Canada의 정원은 안보였다. 친지들과 같이 또한번 둘러 보기도 했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캐나다라는 나라를 지도상에서 아직 발견못해서 였을까?  아니면? 미국으로 착각해서 였을까? 아니면 국토가 너무나 작아서(?)였을까?



보는곳 마다, 그아름다움에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시간을 두고, 잘관리하다보면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게될것으로 기대를 했다.

국제적 수준의 이렇게 좋은 휴식처에서 가장 아쉽게 느낀점 또 하나는 영어 표기가 너무나 Konglish수준이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서쪽 입장문"이라는 표현을 "West Gate-in"이라고 표현한것 등이다.  보통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은 " West Gate Entrance"라고 표현되는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알고 있는데....  이럴때 당국은 자문을 분명히 전문가에게 받았을텐데..... 왜 한국은 아직도 죽은 영어, 아니면 한국식 영어를 버리지 못할까?  토익점수 많이 받으면 뭐하고, 그렇게 많은 대학교수들, 특히 언론에 나와 얼굴알리기에 바쁜 교수들, 그들의 눈에는 이런 챙피한 표현이 안보이나?  분명히 그들은 벌써 한번 이상씩 탐방을 했었을 텐데.....



어린이들뿐만이 아니고, 어른들까지도 즐길수 있는 "굴렁쇠" 굴리는 장소에서 60년만에 처음으로 해 보았다. 굴렁쇠도 큼지막하게 잘만들었고, 이를 Control하는 Stick도 잘 만들어져 있어, 나도 한번 해 보았다.  옛기억을 되살려 굴려봤는데, 처음에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쓰러지곤 했었는데, 금새 Know-how가 되살아나 여유있게 즐길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적에는 소달구지의 Spoke를 중심에서 붙잡아 주는 약간 넓고, 볼품없는 주철 Ring이었었다. Control Stick은 철사 한토막을 어렵게 구해서 이를 구부려 손수 만들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신고 있는 검정고무신 바닥이 빨리 닳는다고 , 뛰지도 못하게 하셨을 정도로 모든게 궁핍했었던 시절이었었다.  당시의 고달팠던 삶을, 지금의 젊은이들은 알지 못하고 또 굳이 알필요도 없다고 할수 있겠지만, 역사를 알아야 오늘을 살아가는  당위성을 느낄수 있다고 믿기에 집에서 아니면 학교에서 교육과 양육을 책임지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시대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를 생각해 본다.  이곳이 지금 Tulip이 만발하고 있으니까 약 2주쯤 후에는 그곳에도  Tulip이 활짝피고, Ottawa의 Parliament Building을 중심으로 전시내에 활짝 피어난 꽁봉우리를 보기위해 많은 상춘객들이 몰릴것이다.  캐나다는 눈많이 내리고 추운 겨울이 너무나 길어서, 꽃피는 봄이 올때쯤이면 따뜻한 햇볕과 자연속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기위해 많은 시간들을 사람들은 자연속에서 보내는데 할애한다.



나는 찍사를 하느라, 내모습이 빠져있다.  십년후에 다시 이곳에 여기있는 친지부부들과 함께 올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괜히 마음이 석연해 진다.


묻지마 관광의 Leader, K형의 빡빡한 관광스케쥴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저녁먹을 시간을 놓쳐, 호텔방에서 라면과 막걸리로 저녁을 즐기고 있는 순간이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을 쉽게 잊을수 있을까?  라면은 낯에 음료수를 준비하기위해 여성친지분들이 Super Market에 들렸을때, 선견지명을 느끼고 구입했었던 것이라고 먹고난뒤에 들었다.  그래서 같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가 보다.



이곳은 영덕지역의 강구항인것 같다.  넓은 바다와 눈에 익은 주변 동네에서 쉽게 느낄수 있었다.

커다란 계(Crab)의 동상이 바로 이곳이 영덕임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그냥 지나칠수 없어 모두가 계가 짝 벌리고 있는 두개의 Wrench같은 입으로 모여들어 추억을 만들었다. 멋있다. 정말로 균형이 잘 잡히고.... 모델들의 인물도 너무나 뚜렷히 훤칠하게 잘 나타났고.....







"영덕"하면  Crab의 집산지로 인식되는 곳이기에 한식당앞의 Show Window에 들렸다.  수조에 꽉차있는 영덕개들은 툭튀어나온 눈알을 움직이기만 할뿐, 거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이북의 김정은집단이 운영하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처럼, 좁은 공간에 갖혀 배가 고파서 눈만 움직이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우리일행의 저녁식사를 영덕계로 푸짐하게 준비해준 식당의 안주인과 그의 따님과 추억을 만들었다.  이곳 식당에 다녀갔다는 증거로, 준비해간 캐나다 국기가 새겨진 Maple Leaf 뱃지를 하나씩 Lapel과 멜빵에 달아 주었다.  이분들이 이뺏지를 볼때마다 캐나다에서 왔었던, 손님인 나를 기억할것이다.

밥상이 너무나 푸짐하다.  모녀가 정신없이 삶아낸 영덕계를 먹기좋게 가위와 Wench이용하여 적당한 크기로 자르느라 정신없이 손질을 하고 있다.  이기억 역시 오래 간직될 것이다.







포구의 한곳에서는 Dried Fish를 팔고 있었다.  생선에서 나오는 소금기가 바람과 함께 내코끝을 간지럽힌다.  갈길이 먼 여행객인 우리처지라서 그냥 눈요기만 하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곳은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있는 "주왕산"이고,  우리 일행은  잘 정돈된 Trail Board Walk을 따라 중간지점까지 가는사이에, 깍아세운듯한 양쪽절벽사이를 통과하고있다.


고국의 산천은 규모가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섬세하고 아기자기한 풍광에 넋을 잃게 한다.  폭포를 지나고 계속 전진하면 주왕산 Peak에 오른다고 하는데..... 폭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들이 보면 "늙은이들이 주책없이...."라는 지적을 당할까봐서라기 보다는 내일을 위한 Energy를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변명이 될까?














주왕산을 빠져나와 K형이 모두를 안내해서 온곳은 "주산지"라는 곳이었다.  절벽같은 바위들은 안보였지만, 산계곡속에 자리하고 있는 Pond와 산세가, 마치 젊은 부부처럼 잘 어울려 정신없이 눈요기를 시켜 준다.   K형 Thank you.  너무나 강행군 시킨다고 투정도 부리곤 했었는데, 이제야 그이유를 우리 모두는 이해했고, 그래서 묻지마 관광이라는 Nick Name을 미리 달아두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한다.  그래서 친지들이 그에게 이번에는 "꼴통"이라는 특수한 이름의 애칭 부쳐 주고, 우리끼리 불러 보면서, 킥킥 대고..... 여행은 계속된다.




홍천에 있는 S형 부부의 여름 산장에 도착했다. 몇년전 왔을때의 그모습 그대로 외관은 보여졌다.  이곳 산골짜기에도 공평하게 봄은 찾아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목격했다.

S형은 멀리 캐나다에서 왔다는 이유를 대고, 새벽부터 집에서 기르고 있는 토종닭 2마리를 잡아서 아침 점심 밥상에 올리기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계피를 비롯한 각종 한약재를 첨가하여 장시간 삶고있다.  아궁이에 솔가지나무를 지피느라  연기가 되돌아 나올때는 눈물까지 흘리게 하는 괴로움(?)도 느꼈을테지만, 친구라는게 이런 험한일도 기쁜마음으로 해치우게 하는 마력이 있는것같다.  감사하고, 고맙고....안주인은 걷기에 불편한데도, 묻지마 관광에 같이 어울려 다니느라 피곤할텐데도.... 부억에서 뭔가를 만드느라 부산을 떤다.






묻지마 관광의 Leader, K형이 서울로 부터 달려와 다시 합세하여 준비한 점심을 같이하기위해 Lunch Table에 둘러 앉았다.  새벽부터 준비해서 밥상에 올라온 닭고기는, 양계장 출신의 푸석푸석한 닭고기는와는 다르게 씹히는 맛이, 옛날 어렸을적에 어쩌다 집에 큰 손님이 찾아오면 대접으로 올렸던 닭고기 그맛을 느끼게 해줬고, 더해서 한약재의 Bitter한 맛까지 겹쳐, 포식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괜히 가슴이 찡해지고, 고맙고 ..... 사람사는 냄새를 진하게 느낀다.

이집의 안주인을 제외한 두여인들은 텃밭에서 나물을 채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여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나는 어렸을적 누나들이 이른봄이면 바구니 들고 들녘으로 나가 나물을 캐면 코흘리개 나를 비롯한 동네 꼬마들은 그주위에서 빙빙 돌면서 보냈던 그순간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그랬던 우리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나이를 훨씬 넘겨.... 이제야 좀 철드는 삶을 살아갈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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