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9, 2017

한국기행, 4월21일(금요일) 강화도 고려산 등반, 27기 친지분들과 함께. 특이한 추억.

내일이면, 장시간 비행기를 타기위해, 짐을 꾸려 제1일의 조국을 뒤로하고, 제2의 조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날인데도,  그런 복잡한 생각은 뒤로 하고, 친지 Mr.Oh를 따라 강화도에 있다는 "고려산"등정을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Mrs Oh께서는 새벽잠을 설쳐가면서, 옛날 기차통학하면서 학교가기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밥한술이라도 먹여 보내겠다는 어머님을 떠 올리게 할정도로, 아침상을 차려 주시는 고마움까지 듬뿍 받고, 집을 나섰다.
Lunar는 산행대신, 어쩌면 더 바쁜 시간을 쪼개여 사용하고 있을것으로, 어젯밤 얘기를 해줘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두분 여사님들께 쪼금 미안.
서울 시내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 지하철 역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모두가 옛날 학창 시절, 그리고 특이한곳에서 사회생활을 같이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죽마고우같은 친지들인것을 만나게 되면서 알수 있었다.  마치 옛친구를 만나는것 처럼 모두가 나를 대해 주어 분위기에 금새 휩싸였다.
이러한 산행 모임은 한달에 평균 한번정도 실시하고 있다는것도 알았다.  젊었을때 겪었던 특수한 삶의 악조건속에서 Fellowship을 다져온 이산행 모임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나는 기원해 보았다.
젊어서는 가파르고 거친 산악지대에서 삶을 살아온 친구분들이라서인지, 그흔한 관광뻐스를 이용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달리는 노선뻐스를 Leader되시는분은 시간에 마추어, 용케도 대원들을  잘 리드하는 능란한 솜씨를 보여 주었다.  친지 Mr. Oh의 평상시 패기 넘치는 외모가 어디서 흘러 나오나를 오늘의 산행모임에 동참하면서 자연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Leader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은 고려산의 붉은 진달래의 불길이 약 80%정도이고, 최고 절정인 100%는 지난주 였었다고 설명하는데,  멀리 보이는 상춘객들의 움직임도 마치 진달래의 분홍빛 물결속에서 함께 숨쉬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불타는듯한 많은 진달래꽃의 향연을 평생 처음 목격하는, 나로서는 오랫동안 기억될 순간이었기에 수없이 많이 찰칵 찰칵 해댔다.

고려산 입구에서 부터 붐비는 상춘객들로, 등산로는, 캐나다에서 Trail Walk하면서 느끼는 한가로움은 전연 느낄수 없이, 행여나 일행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우리 한국만의 특이한 상황을 접했다.

어렸을적, 역사시간에 배운, 고구려의 연개소문장군을 기억하고 있다.  그장군에 대한 비문이 등산로의 한켠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것을 보고, 몇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넓은 만주벌판의 어느곳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던 나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주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구전으로 이곳 강화도에서 태어난것으로 이어져온 전설을 지금은 이렇게 비문에 새겨 후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그분은 장수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단다.
진홍색 진달래꽃밭의 화려함 뒤로 보이는 희미한 산봉우리는, 한강 하구 건너에 있는 이북지역이라고 설명해준다.  아래 사진역시 지척에 있는 평야지대 건너가 이북땅이라고 한다.

일행은 정상에 올라, 오늘의 이잊지못할 추억을 요술상자에 집어 넣기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그속에 섞여, 조그만 요술상자에 많이 집어 넣었었다.


정상에 까지 계단과  Guard Rail을 설치해 놓은 당국에 감사한 마음이다.  안전을 중시하고 인명을 중시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국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진 나라임을 증명해주는 바로 미터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앞서 거쳐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행지에서 겪었던 관광지에서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아주 열악한 Security System과 자연적으로 비교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7/04/46-mt-bromo-bromo-volcano-bali.html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을 준비를 대원들을 하고,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이 마치 진수성찬같아 보인다. 푸짐하다.  나도 Mrs Oh께서 준비해준 점심이 나의 Back Pack에 잔뜩 들어 있었었다. 주위 대원들이 권하는 음식 하나씩만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는데, 배가 꽉 차서, 내것은 미쳐 꺼내지도 못하고 말았다.  조직생활을 많이 한 대원들이어서 각자 알아서 서야할곳, 앉아야 할곳을 금새 알아서 처신하는 민속함속에서, 이들의 젊었을때의 노고를 잠시 또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고,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나는 오늘 편한 산행을 하면서, 진홍색 진달래꽃의 향연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조국은 이들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조국수호를 하다 전사한 역전의 용사들을 돌보기 보다는 오히려 내팽개치고, 일본으로 비행기타고 날아가, 축구구경한, 지금은  6 Feet under에서 영생하고 있는 그런 Commander in Chief 같은 사람이 국가를 이끌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신념이, 오늘 다시 마음속에 일어났고, 예상치 않았던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여론에 의하면, 그와 비슷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일등을 하고 있다는 보도에 잠시 머리속에서 혼돈이 일어나는 괴로움을 느꼈었다.  조국의 앞날에 구름이 끼고 있는것 같은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고구려 장수왕 4년에  한불교 승려가 인도에서 이곳까지와서, 고려산 인근에 사찰들을 건축하기위한 장소를 찾았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가지의 색상을 한 연꽃잎을 뜯어 입으로 불어 허공에 날렸다고 한다. 떨어진 연꽃잎의 색갈에 따라, 백색연꽃이 떨어진곳에는 백련사, 흑색연꽃떨어진곳에는 흑련사, 적색은 적석사, 황색은 황련사, 청색은 청련사라 이름을 부쳐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련사는 승려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아, 원통해한 나머지, "원통함"이라는 사찰을 지어 현재 3개의 절과 암자를 지어 그때로 부터 수천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으며, 그래서 이연못을 "오련지"로 부르고 이산을 "오련산'으로, 그리고 5개의 사찰을 묶어 "오련사"라고 후세의 우리들은 부르고 있단다.  오련산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그만 연못옆에는 "고려산오정"이라는 비석이 그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일행은 야외식당에 모여, 시골식당 주인장의 푸짐한 부침갱이와 푸짐한 반찬을 곁들여, 우리 조국의 자랑인 "곡주"로 갈증을 해소하면서, 또다시 다음 기회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친지들과 함께한 오늘의 산행, 오래 기억속에 보관하게 될것이다.  알콜을 즐겨하지 않은 내가 요며칠 사이 매일같이 곡주를 마셨다.  싫으면 절대로 마시질 않았을텐데.....곡주는 주로 사찰의 스님들이 즐겨 부르는 "막걸리"를 뜻한다고 해서 나도 사용해 본것이다.
뜻깊은 산행에 동참할수 있게 해준 친지 Mr. Oh와 친구분들께 고마움을 이지면을 통해서 한다.  언제 일지는 몰라도 다시 이런 기회가 올수 있다면...... 아쉬운 마음 안고, Goog Bye를 해야만 했다.  만남은 어차피 헤여짐을 전제로 한것이니까..... 모두들 건강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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