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더 일찍 짐을 싸야했다. Tour Guide, Roy의 설명에 의하면 Tuk Tuk Peninsula에 있는 명승지를 탐방하고, 다시 Ferry를 타고 Brastagi로 가기위해서, 시간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Huta Siallagan 전통마을입구에는 수호신 역활을 하는 돌로 새겨진 장승이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시아지역은 무속신앙면에서 많은 닮은곳이 있는것 같다. 입구에서 마침 모델(?)노릇을 해주는 동네 아주머니와 꼬마들과 함께 한컷 해본다.
먼저 들린곳은 Huta마을의 Siallagan집안의 옛날 고전 집들을 들렸는데, 이집들의 지붕은 Tabo Cottage에서도, 또 어제 Parapat포구에서도 봤었던,지붕이 배의 유선형같기도하고, Buffalo의 뿔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만이 유일하게 볼수 있는 집들이었다.
Tour Guide, Roy가 열심히 설명하면서 손짖 발짖까지 하면서 해박한 지식으로 해설해준다.
이집들의 구조는 대개 2층으로 돼여있는데, 들어가는 정문의 입구가 남녀간의 성을 구분하여 만들었다는 설명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 없었다. 남성은 상징이 앞으로 튀어 나왔고 여성은 안으로 숨겨져 있는 그배경을 이층 살림하는집으로 들어가는 구조에서 잘 나타내고 있었다.
남성을 상징하는집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집밖에 설치되여 있어,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여 있었고, 여성을 상징하는 집의 2층 계단은 집안으로 설치되여 있어 계단을 다 올라가면 보이지 않는 집안에서 문을 열어주는 구조로 되여 있었다. 1층에는 주로 돼지, 닭, 개같은 가축을 키웠는데, 현대사회에서는 건강상 불결하여, 지금은 그러한 가축을 기르지 못하게 정부당국에서 단속하고 있단다.
이전통가옥의 뒷편에서 두여인이 노래를 하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많이 들었던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창조주그분께서 행여라도 우리부부의 행동이나 생각이 옆으로 비틀어질까봐, 이여인들을 통해서 다시 정신을 똑 바로 차리게 해주시는 그 세밀함에 미안하기도하고 감사하고, 지켜 주시고 계신다는 깊은 이해를 또한번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이곳 인도네시아 Muslim 국가에서 말이다.
Lunar가 그들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서, 다시한번 더 찬송가를 불러 달랬더니, 물론 언어는 몸짖 발짖이었지만, 순수히 또 불러주어 감사한 마음이었다.
여성을 상징하는 집앞에는 자손을 번식시킨다는 뜻으로 여성의 유방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옆에는 Lizard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종류의 도마뱀은 자유자재로 집안에 둔 쌀창고에 드나들수 있다는 뜻이고, 또한 이들이 쌀창고에서 "찍찍"소리를 내는것은 집안의 쌀창고에 쌀이 있다는뜻으로, 먹을것이 풍부하여 자식번식을 뜻하는것이라고 한다.
집안에서 여성들은 낯에는 베를 짜서 의복을 만드는 천을 만들었으며, 밤에는 남성들이 집으로 들어와 밤을 여자와 같이 보내면서 자손을 증식 시키는 뜻이 집의 구조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었는데..... 꼭 그런구조의 집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 무속 신앙의 영향이 무척 컸었던것 같다.
또한 남자는 여자가 없이는 삶이 어렵다는 설명도 해준다. 예를 들면, 영어표현에서 여성은 Female, 남성은 Male인데, 남성에게는 꼭 여성이 있어야 된다는 뜻이란다. Woman 또한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럴듯한 해석이기도 한것 같은데......
Ambarita마을 탐방에서 죄를 지은 남자에게 무시무시한 형벌을 가하는, 바위로 만든 시설들이 진열,전시돼고 있었다. Sialagan왕조의왕들이 죄를 묻는 형장에는 죄인을 심문하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바윗돌이 있고, 그앞에는 돌의자들이 여러개있었다. 죄인을 곤장을 때릴때는 Lemon즙을 죄인의 몸에 뿌렸다고 한다. 그렇게 곤장을 내리친다음에는 다시 그옆의 긴 가느다란 바위로 옮겨져, 죄인은 그곳에 목을 걸치고, 큰 칼을든 형장이 단칼에 목을 내려쳤다고 하는데, 실패하면 또 쳐서완전히 목이 달아날때까지 내려쳤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그시체를 사람들이 인육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유추해석을 해보면, Lemon이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역활을 하기에 곤장 때릴때 부터 미리 Lemon즙을 뿌렸다는 그이유를 알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형벌이었다. 앞의 돌의자는 당시의 고관대작들이 그광경을 지켜보던 자리라고한다.
이러한 풍습은 1834년까지 이어졌으며, 그시기에 미국인 선교사 Leyman과 Munson 씨가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면서,이와같은 잔인한 사형제도는 없어졌으나, 이들 역시 Local사람들에 의해 훗날 순교당했다고 한다.
이곳 Ambarita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12개월 달력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아래 매달려 있는 조금만 12개의 나무조각이 1개월을 뜻한다고 했는데, 선물가게에서는 많은 달력들이 더 예쁘게 색칠되여 진열되고 있었다. 하나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Lunar가 사진찍는것으로 족하자라고 조언을 해서 그만 두었다. 아직 갈길이 먼데, 조그만 것이라도 짐이 될수 있다는 관념이 머리에 꽉 박혀 있는, 여행자의 습관이라고 이해한다.
Sidabutar왕묘지가 있는 거리앞쪽과 뒷편 골목길에는 많은 선물가게들이 많은 물건을 쌓아놓고 관광객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가게앞을 지나는데 "안녕하세요"라고 능숙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기에 다시한번 그녀를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이런 구석까지 한국관광객들이 들어올리는 없을것 같아, 그사유를 물었더니, 한류바람이 불어 많은 한국 연속극과 K-pop 공연을 보면서 알게된 것이라는 설명에, 한류바람이 참 세게 아시아 대륙을 휘몰아치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또한번 하게됐다.
Ambarita 마을 주변에는 빙둘러서, 탐방객 위주로 판매하는 Gift Shop들이 너무나 많은것 같았다. 많은 탐방객들이 붐비지는 않는것 같은데.... 그래도 장사가 되니까 영업을 하는것으로 이해를 해봤다.
Batak에 있는 Tomok마을에는 Sidabutar왕조의 무덤이 모셔져 있는 곳이었다. 그곳 묘지에는 3개의 Tomb 이 있는데, 앞에서 봤을때 첫번째 무덤은 돌로 묘지를 형성하고 있고, 돌무덤위에는 접시에 과일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후손들이 와서 담배를 피우고 남은 꽁초를 돌무덤의 머리부분에 놓았다는데, 이는 조상님들이 무덤을 지켜주십시요라는 일종의 의식이라고했다.
가운데 있는 무덤을 덮고있는 돌뚜껑의 중앙이 예리한 연장을사용하여 잘랐다가 다시 이어 부친 흔적이 있어 보였는데, 30여년전에 후손들이 돌무덤의 뚜껑을 열고, 주위에 있었던 조상님들의 뼈를 한군데 모아 이렇게 가운데 무덤에 다 모아 다시 매장하고, 돌뚜껑을 시멘트를 사용하여 다시 밀봉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한 이유는 후손들이 조상님들에 대한 더 많은 존경심과 예의를 한군데서 더 쉽게 표할수 있게 하는 이유에 였다고 한다.
세번째 돌 무덤의 앞에는 흰색의 십자가 타일이 부착되여 있었다. 이왕은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인 최초의 왕이었음을 뜻한다고 했다.
묘지의 앞부분 빈터에는 동네 사람들, 아니면 관리인이 초콜렛을 만드는 '카카오" 열매를 말리고 있는것을 봤는데 갈색의 열매였다. 초콜릿 만드는 이열매를 나는 오늘 이곳에서 처음 봤다.
탐방을 마치고 다시 Parapat포구로 나가서, Brastagi로 가기위해 포구에서 승선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탐방을 마치고 이번에는 어제 Ferry를 탔던, Parapat항구로 되돌아가기위해 차를 포구로 몰았다. 차까지 승선시키는 커다란 Ferry였는데, 안전관리가 전연되여 있지 않았다. 역시 후진국임을 금새 느낄수 있었다. 갑판에서 승객들은 아무렇치도 않게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고.... 민도가 무척 낯다는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곳에 살고 있는 중국인 후손들이란다.
주민들을 태운 뻐스도 승선하기위해 동네 사람들을 잔뜩 태우고 와서 승선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Lunar가 조수 역활을 할려는듯이, 가방까지 목에 대각선으로 둘러멘 폼이 틀림없어 보인다.
Roy가 차를 세운다. 그리고 설명해주는데, 이열매가바로 커피Bean을 만드는 열매라고 하는데, 하나를 따서 껍질을 벗기고 맛을 보았는데, 달콤한 맛이고, Bitter한 맛은 아니였다.
Roy가 커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애티오피아임을 설명하는데, 몇년전 애티오피아 탐방시 커피에 대한 여러얘기와 예법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 또는 수평선은 Tuk Tuk Peninsula로 어제 우리가 지나왔던 길의 반대편에 있는데, 호수가 어느 바다의 Channel처럼 보인다.
Tuk Tuk Peninsula에 있는 옛왕궁터를 보러 가는데, 앞에 커다란 추럭이 서있고, 그곳에서는 서너명의 청년들이 차에 실려있던 쓰레기를 길가에 Dumping하고 있었는데, 보기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환경을 파괴하는 그들이 행동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정부의 손길이 보호정책이 이곳까지 미치지 못하지는 현실을 보면서..... 후진국에서는 공무원들의 횡포가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옛날 Rumah Bolon(Long House) 왕궁에서 살았던,Simalunggun 왕조의 흔적을 탐방하기위해 들렸다. 이왕조는 Batak Karo지역에서 사방 약 25키 지역을 관장하는 소형왕국이었다고 한다. 13대 왕까지 이지역을 다스렸는데, 계단을 타고 이층의 Long house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왕이 거쳐하던 조그만 방이 있고, 그왼쪽에는 가장 예뻐했던 2명의 부인 살고 있던 살림방이 있었다. 그리고 왕이 거처하는방의 바로 밑에는 시중드는 남자신하가 거쳐하고 있었는데, 그는 고자(Eunuck)만이 그직을 수행할수 있었다고 하는데, 성인 남녀는 왜인지의 이유를 금새 알수 있을것 같다.
다시 문을 열고 긴 방으로 들어서면 군대 막사처럼 양편으로 침상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곳의 오른쪽에 5명의 부인이 따로 살림을 하는 구조로 되여 있었으며, 반대편 침상에도 5명의 왕비가 똑 같은 구조의 살림을 각자 따로 했었다고 하는데, 부엌까지도 따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왕조의 마지막 13대왕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왕으로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살았는데, 인근에 사는 지방괴한에게 1947년에 암살당하는 불운을 겪었다고 한다. 그 2년후인 1949년에 미국이 당시 인도네시아를 점령통치하고 있는 Dutch정부에 압력을 가해 결국 독립국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압력은 바로 2차 세계대전후에 미국이 유럽나라를 재건하는 계획, 즉 Mashall Plan을 만들어 유럽여러나라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지원정책이었기에 Dutch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는 앞뒤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가끔씩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잘사는 집안의 개인 묘지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본다. 조상님들을 위한다기보다는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꾸며놓은 보이기위한 쑈인것으로 나는 많이 느꼈다. 우리집도 그런쪽에 비슷한 일들이 있었으니까.....
관리는 거의 하지않은가 보다. 위험하다. 관광지로서의 품위와 안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계속적인 관리가 필요한것은 필연적인데..... 환경속에서 오래 지내면 그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감각을 잃게된다. 어쩌랴.
Bratagi로 가는길에 Sipiso-Piso Water Falls를 탐방했다. 폭포의 높이는 약 100미터쯤 된다고 하는데, 물이 떨어지는곳은 보통 강아니면 Creek인데, 이폭포는 송수관을 이용한 수로를 타고 오다 아래도 떨어지는것으로 보였다. 물의 양도 꽤 많은 것으로 보아.... 수수꺼끼로 여겨졌다.
위에서 본 폭포의 물은 그끝이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아, Roy와 Lunar는 그곳에 있고, 나혼자서 약 15분을 걸어 완전한 낙차를 볼수 있는 지점까지 내려가보았다. 밑은 더 웅장하게 물줄기가 춤을 추는 광경이 아름다웠다. 폭포가 완전히 낙차하는 지점을 보기위해 약15분 거리에 있는 Look out Point에 내려가는데, 계단은 많이 망가졌고, Guard fence등, 안전 조치가 전연없어, 이나라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민도를 생각해 봤다. 마치 한국의 1970대 초를 연상하게했다.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나무 뿌리가 눈에 띄었다. 분명 나무뿌리인데...
이지역에서도 "B1"의 표시판에 간간히 길가에 세워져 있음을 보면서, 개고기가 널리 팔리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기위해 가는길에 갑자기 그곳지역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한패를 만났다. 우리가 영어를 하는것을 듣고, 한 여학생이 용감하게 Approach 해서, 배운영어를 사용하고 싶어 몇마디 해보는데, 그이상은 안돼서 나도 그들을 보면서, 내가 어렸을때 서양사람들을 보면 마음은 굴뚝인데.... 표현할 말을 찾지못해 주눅들었었던 그때가 기억에서 떠올라, 남의일같지가 않았다. 그들앞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해 주었다.
좁은 시장골목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승마를 해주고 돈을 벌어 생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가운데에 높이 색상이 뚜렷한 우산을 걸어서 장식물로 해놓은 그 Idea가 Fresh하다.
Roy가 상당이 수긍이 가는 건강관리법을 설명해준다.
우리가 먹는 Papaya열매는 우리몸에 생긴 변비를 해소시켜주는 역활을 하고, Salak(뱀가죽색갈을 갖인 열매)은 설사를 막아주는 열매라고 한다. 그럴듯하다.
Grand Mutiara Hotel에 하룻밤 신세를 지고 내일 다시 Jakarta로 떠나야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