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벨스"라는 단어를 대부분의 학생이나 기성세대는 듣기에 낯설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그는 나치독일의 수상이었던 힛틀러의 친구이자, 그가 이끄는 내각의 Propaganda장관으로, 독일과 전세계를 향해 사람들을 쇄내교육시키는 일등공신이었기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비서로 근무했었던, 비서가106세로, 사망했다는 뉴스보도는 뭔가 삶의 허무함을 깊이느끼게 하는것 같았다.
요즘의 고국 정치판 돌아가는것을 보면서, "궤벨스"라는 이름을 많이 음미해본다. 거짖선동꾼 "궤벨스"를 닮은 정치꾼으로 여의도 의사당이 꽉차있는데도, 우둔한(?) 국민들은 그런 "궤벨스"들의 꾐에 빠져, 그들이 마치 국가를 이끌어갈 진정한 지도자로 믿고, 국민들을 현혹시키기에 광분하고 있다. 그런 부류들이 국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좌파 언론들을 보면, 어쩌면 나치독일때보다 조국의 앞날이 더 캄캄해지는 느낌이다. 그들은 손발처럼 부려먹으면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조차 그들의 색깔을 숨겨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반증이 바로 106세로 사망한 Pomsel의 주장에서 유추해석해보는것은 어렵지 않다.
아래에 오늘자 뉴스를 옮겨놨다.
그녀가 사망함으로써, 나치 지배층의 고위급중 생존해왔던 마지막 생존자가 세상을 떠난것이다. 그녀의 행적은 최근에 그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전까지는 세상에 알져지지 않은 존재였었다. 최근에 그녀가 발견된 기록물에 따르면, Holocaust 기간동안에 6백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됐다는것을 전연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술회 했었다.
지난해 발표된 "한독일인의 삶"에서 그녀는 "전독일인들을 비난하지 않는한, 나는 전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1911년에 태어난 Ms Pomsel은 유대인 보험 브로커의 서류작성자로 수년간 근무하면서 그녀의 십대시절을 보냈고, 그후에 비슷한 직장이었지만,보수우파지향하는 회사의 서류 작성자로 근무 했었다. 또한 그녀는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아왔었다고 주장을 했지만, 그녀는 독일 나치당이 1933년에 정권을 쥐어틀면서 정치에 입문하게되는데, 그녀는 독일국내라디오와 연관된 공무원으로 근무하게된다.
그녀는 훌륭한 타자수(Typist)로, 전쟁기간동안에 '궤벨스'가 "국민계몽및 흑색선전"장관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그의 비서로 발탁됐었다.
그녀는 Goebbels'에 대한 회고에서, "키는 비록 적은편이었으나,매우 핸썸 했으며, 항상 단정했고, 그러나 거만했었다"라고 평했다.
그녀는 비서로 근무는 했었지만, 유태인 학살동안에 나치독일정권의 무자비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다고 술회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가난했던자들과 핍박받았던 유태인들에 더많은 일들을 했었던 것으로...... 나는 정말로 그런뜻으로 믿고 있었다."라고 그녀는 "한독일인의삶"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하면서, "그러나 그들은 어느쪽에도 그러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을것이다"라고 했다.
그녀는 항상 그녀의 상관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비난하는것에 동참하지않았었다는 자세를 유지해왔었다.
"나는 절대로 나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면 정부가 국민들을 근본적으로 통제할수있게 해준 전독일인들을 비난하지 않는한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그게 전부다" 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그녀의 유태인 친구, Eva Lowenthal이 1943년 11월에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60년후에 Ms Pomsel은 그친구가 아우위츠(Auschwitz)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것을 발견하게된다. Ms Pomsel은 2차대전말기에 쏘련군에 붙잡혀서, 5년간 포로수용소에서 지냈었다가 그후 1950년에 다시 독일 방송국에서 근무했었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20년간 그곳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201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전까지, 나치독일정부의 고위급들의 비서로 근무했다는것을 공개적으로 말한적은 없었다. 그리고 2016년에 발표한 다큐멘타리에서는 더 많은 내용을 공개 했었다. 그녀는 "뮨헨(Munich)"에서 106세 생일을 지낸지 몇주후에 사망한 것이다.
http://www.bbc.com/news/world-europe-38793048
요즘의 고국 정치판 돌아가는것을 보면서, "궤벨스"라는 이름을 많이 음미해본다. 거짖선동꾼 "궤벨스"를 닮은 정치꾼으로 여의도 의사당이 꽉차있는데도, 우둔한(?) 국민들은 그런 "궤벨스"들의 꾐에 빠져, 그들이 마치 국가를 이끌어갈 진정한 지도자로 믿고, 국민들을 현혹시키기에 광분하고 있다. 그런 부류들이 국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좌파 언론들을 보면, 어쩌면 나치독일때보다 조국의 앞날이 더 캄캄해지는 느낌이다. 그들은 손발처럼 부려먹으면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조차 그들의 색깔을 숨겨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반증이 바로 106세로 사망한 Pomsel의 주장에서 유추해석해보는것은 어렵지 않다.
아래에 오늘자 뉴스를 옮겨놨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Joseph Goebbels 의 여비서였던 Brunhilde Pomsel가 106세을 일기로 사망했다. 그녀가 비서로 근무하면서, 20세기들어 최악의 전범자들중 하나였던 "궤벨스"와 지근 거리에서 항상 그를 보좌했던 인물이다.
그녀가 사망함으로써, 나치 지배층의 고위급중 생존해왔던 마지막 생존자가 세상을 떠난것이다. 그녀의 행적은 최근에 그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전까지는 세상에 알져지지 않은 존재였었다. 최근에 그녀가 발견된 기록물에 따르면, Holocaust 기간동안에 6백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됐다는것을 전연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술회 했었다.
지난해 발표된 "한독일인의 삶"에서 그녀는 "전독일인들을 비난하지 않는한, 나는 전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1911년에 태어난 Ms Pomsel은 유대인 보험 브로커의 서류작성자로 수년간 근무하면서 그녀의 십대시절을 보냈고, 그후에 비슷한 직장이었지만,보수우파지향하는 회사의 서류 작성자로 근무 했었다. 또한 그녀는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아왔었다고 주장을 했지만, 그녀는 독일 나치당이 1933년에 정권을 쥐어틀면서 정치에 입문하게되는데, 그녀는 독일국내라디오와 연관된 공무원으로 근무하게된다.
그녀는 훌륭한 타자수(Typist)로, 전쟁기간동안에 '궤벨스'가 "국민계몽및 흑색선전"장관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그의 비서로 발탁됐었다.
그녀는 Goebbels'에 대한 회고에서, "키는 비록 적은편이었으나,매우 핸썸 했으며, 항상 단정했고, 그러나 거만했었다"라고 평했다.
그녀는 비서로 근무는 했었지만, 유태인 학살동안에 나치독일정권의 무자비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다고 술회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가난했던자들과 핍박받았던 유태인들에 더많은 일들을 했었던 것으로...... 나는 정말로 그런뜻으로 믿고 있었다."라고 그녀는 "한독일인의삶"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하면서, "그러나 그들은 어느쪽에도 그러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을것이다"라고 했다.
그녀는 항상 그녀의 상관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비난하는것에 동참하지않았었다는 자세를 유지해왔었다.
"나는 절대로 나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면 정부가 국민들을 근본적으로 통제할수있게 해준 전독일인들을 비난하지 않는한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그게 전부다" 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그녀의 유태인 친구, Eva Lowenthal이 1943년 11월에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60년후에 Ms Pomsel은 그친구가 아우위츠(Auschwitz)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것을 발견하게된다. Ms Pomsel은 2차대전말기에 쏘련군에 붙잡혀서, 5년간 포로수용소에서 지냈었다가 그후 1950년에 다시 독일 방송국에서 근무했었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20년간 그곳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201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전까지, 나치독일정부의 고위급들의 비서로 근무했다는것을 공개적으로 말한적은 없었다. 그리고 2016년에 발표한 다큐멘타리에서는 더 많은 내용을 공개 했었다. 그녀는 "뮨헨(Munich)"에서 106세 생일을 지낸지 몇주후에 사망한 것이다.
http://www.bbc.com/news/world-europe-3879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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