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in, 또는 Out하는 Counter에는 꽃잎으로 잘 Decoration된 큰 접시가 눈길을 끌고, 환한 웃음을 웃고 있는 Clerk과 잘 어울린다.
호텔의 정문은 마치 어느 Temple의 입구처럼 영업을 하는 여관의 냄새는 안나는 외형이다. Check out을 마치고 나오는 Lunar의 모습을 기억속에 잡아두었다.
우선 한마리의 말이 끌고가는 Wagon에 몸을 싣고, Old Bagan지역의 일부 외곽을 돌아보기위해서다. 마부는 순진한 전형적인 이곳 태생인것 같았다. Guide와 Driver는 Wagon으로 돌아보는 탐방이 끝나면 다시 만나게 된다. Guide가 좁은 마차위에서 흔들거리는 우리부부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고 내 카메라를 달라고 하더니 한컷 해준다. 앞으로 남은 생애도 지금 이순간처럼 평화롭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떨쳐 버릴수 없었다.
커다란 Stupar가 눈앞에 먼저 나온다. 주인은 누구인지, 언제 세워졌는지는 미상이다. 어느 부자가 Stupar를 세워, 집안의 염원을 빌었었나 보다. Bagan지역에 있는 모든 Pagoda또는Temple의 건축구조처럼, 역시 벽돌로 정교하게 잘 쌓아 올렸다.
마부에게 Lunar가 Gift로 Canada Flag가 빨갛게 새겨진 손수건 한장을 건넸더니, 한참을 가다가 Wagon을 세우고, 왼쪽에 보이는 대나무 울타리쪽안의 허술한 집을 가리키면서 자기네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소개한다. 말발굽소리를 듣고, 금새 남편임을 알아차린 부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어머니가 문밖으로 나와서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나는것 처럼 웃음으로 환영한다.
많은 거주민들을 New Bagan으로 약 20여년전에 강제 이동시켰다는 사연을 들었던터라, 상가지역이나 주거지역을 깨끗하게 정비 했을것으로 상상했었는데, 그런 흔적은 찾아 볼수가 없었고, 변한것도 없어 보였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선물가게, 호텔근무자 등등 관광객들을 맞이하기위해 필요한 곳에서 근무하는 가족들은 남아, 거주할수있는 행운(?)을 얻었다고 설명을 들었던 터다.
이지역의 주민들은 Wagon을 부리는 마부들이 대부분인것 같았다. 군데군데 손님을 기다리는 Wagon들이 주차되여 있었다.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주거지역은 또 다른데 있다고 한다.
Temple, Pagoda, Stupar들이 가는곳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오랜 역사를 품은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거룩하고 육중하게 세워져 있는 Stupar의 주변은 잡풀과 쓰레기로 어울리지 않는다. Guide의 가족이 당한, 즉 강제 이동당한 그 억울함이, 아마도 주변 정화를 하지않고 그대로 방치해두는 당국의 정책이 허구였음을 비난하는 뜻이 내포되여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Pagoda에는 white 색갈의 Buddha Statue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채 좌정하고 있는 모습이 웬지 외로워 보였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고, 또 돌보지 않아서 그렇게 내눈에 보였을까? 그러나 벽돌공의 정교한 솜씨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당시의Brick Layer 들의 기술을 감탄할수밖에 없었다.
Pagoda, Stupar와 작물을 심은 농장이 한데 어우러져, 어쩌면 오래전의, 고국, 내가살았던 시골의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텃밭이나 들판에 세워져 있었던 장승이나 비석들이 무질서하게 서 있었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고도 남는다. 50내지 60여년전의 찌들고 봄이면 보릿고개를 넘느라 힘들어 했었던, 고국 대한민국의 시골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는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점이, 고국에서는 미신이라해서 다 없애 버린, 깊은 생각없는 당장의 눈앞에것만 신경썻던 선배들의 짧은 발상이 대조된다.
Sunset를 보기위해 올랐던 Shwe San Daw Pagoda의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았던 아름다운 경치의 Panorama를 이곳의 이름모를 Pagoda와 Stupar 들이 연출하고 있었음을 이해할수 있었다.
건기(Dry season)이라서 작물들도 겨우, 고국에서 겪었던 배고팠던 보릿고개를 넘기위해 안간힘을 썻던 부모님세대의 어려웠던 삶의 현장을, 어린 코흘리개였던 내가 목격하고 겪었던, 그현장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고 있다.
이 Pagoda는 앞에 비문까지 새겨져 있는것으로 보아 당시에 행세께나 했었던 집안의 후손이 세웠던 건축물인것 같다. 인간의 허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쩐(Money or Fortune)이 좌지우지 하는것 같다. 잡풀이 수북히 자라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비록 후손이 살아있다해도 먹고살기위한 고달픈 삶이 여기까지 보살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것으로 이해된다. 아니면 이들의 풍습이 우리와 달라서 일까?
마부는 계속해서,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파란잎사귀로 말아 담배처럼 생긴 물질을 씹어댄다.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했더니 빨간 색갈의 앞니들이 들어나게 환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성인이된 미얀마의 남성들은 거의다 이물질을 담배대신 씹는것 같다. '꽁야'라고하는 한국의 들깻잎같은 것에 흰색의 석회가루같은 묽은 물질을 풀칠하듯이 해서, 그위에 '세이'라고 하는 약재를 넣고, 다시 또 '꽁디'라는 코카(?)같은 자극성있는 것을 넣은 다음 잎사귀를 잘 Folding해서 약 10개씩 비닐 봉지에 넣어 판매하고 있는, 일종의 기호품인것 같다.
천진하다고 해야하나? 파란 잎사귀의 물질을 씹기 때문에 아직 어린 나이(겨우 30세도 채안되 보이는)에 치아는 세상을 다 살아온 노인처럼 낡아 보였다. Thank You, horse keeper.
조그만 Pick up Truck이 길가의 얕은 Ditch에 처박혀 있는 광경을 보면서, 마부가 서투룬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너무나 많은 잎사귀를 씹어서 정신이 몽롱하여 발생한 사고라고.
Anada Phaya 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Temple같은 건물의 색갈이 아래 몸체는 흰색인데 윗부분 Dome과 Umbrella는 황금색으로 보였다. Wagon tour 가 끝나면 Guide에게 이곳을 방문해 보자고 Suggestion할 생각이 들게 했다.
Tour를 거의 마칠 무렵 Lunar가 다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말의 고삐를 돌려, 그들과 만났다. Lunar가 아까부터 어깨에 매고 다니던 백속에서 Lip Stick하나를 꺼내보이면서, 이것이라도 마부의 아내에게 주어야 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만나자 마자 마부의 아내이자, 며느리에게 선물로 준다. 서로 언어는 안통했지만, 눈빛과 몸놀림에서 서로의 뜻을 주고 받으면서, Lunar는 선물이 약소한점에 대해 미안해 하고, 그녀는 생전 처음 만져보는 Lip Stick에 고마워 한다. 며느리의 얼굴에도 예외없이 그들만의 화장품으로 Make up한것이 눈에 들어온다.
마부와 헤여져, 다시 Guide의 안내로 Lacquer Ware Factory를 방문하기위해 차를 몰았다.
Bagan지역이 더 유명하게 외부에 알려진 여러이유중 하나인 Lacquer Ware 제조공장에서 그이유를 어려푸시나마 느낄수 있었다. 첫번째 방에서는 한직원이 공예품에 색칠하는 물질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새까만 물질의 Lacquer 물감이 변해서 번쩍번쩍하는 유명한 공예품이 된다니....
공예품의 재료는 Bamboo, Wood,그리고 말총(Horse' Tail hair)가 사용된다고 설명이다.
하나의 공예품(Hand craft)를 만들기 위해서는 18번의 lacquering 하면서, lacquer를 건조시키기위해 그늘에서 장시간에 걸쳐 습기를 제거하면서 Dry 시킨다고 한다.
Carving된 Ware를 독특한 액체에 넣고 잘 씻어내는 공정을 보여주고 있다.
공예품에 새겨진 무늬를 만들기위한 Carving은 전부 손끝에 잡혀 있는 예리한 칼날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또한 Lacquer Painting 역시 손끝으로 한다고 했다. 만약에 Brush를 사용하게되면 표면이 거칠어지고 또 Paint의 두께를 고르게 할수 없기 때문에 손끝으로 칠하면서 느끼는 Feeling에 의존 한다는 것이다.
많은 직원들이 열심히 Carving을 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위한 첫단계에서 완성품이 되기 까지는 약 5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완성된,크고작은 공예품들이 전시실에서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색상이나 Carving이 정교하다. 탐방하고 머리속에 기억시키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좋다고 사게되면 갈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Lacquer Ware Factory 견학을 마치고 Bagan의 고고학 박물관을 탐방했다. 진열된 모든 골동품들을 진품이 아니고 Replica라고 설명해준다. 그런데도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아 그렇치 않아도 복잡한 머리속에 저장해야만 했는데, 그점이 무척 아쉬웠다.
Hti lominulo Temple 탐방을 했다. 설명이 특이했다. Hti의 뜻은 Temple의 건물 윗쪽에 세워진 Umbrella를 뜻하고, lominulo는 왕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Tharawara Buddism은 남방불교의 원래 교리를 지키고 있는 불교신앙이고, 이와는 반대로 북방불교는 Mahayana Buddism으로 대별된다는 설명인데, 선뜻 그내용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사찰에서는 북방불교에서 흔히 볼수 있는 좌상의 Buddha Statue 를 볼수 있었는데, 어쩌면 내가 잘못 이해한것일수도 있는 Mistake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왕조에서는 5명의 왕자들이 있었는데, 왕은 큰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않고, 막내인 5번째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했다고 한다. White umbrella는 아랫쪽으로 약간 휘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왕위 계승이 막내에게 있다는 뜻을 나타낸것이라고 한다. 왕이된 막내왕자는 그의 아버지를 기념하기위해 이 Temple을 지었다고 Guide는 설명해준다.
단장된 벽의 외부가 벗겨져 벽돌이 보이는데, 이역시 정교하게 쌓여 있었고, 아직도 벽돌을 덮고 있는 문양역시 섬세하기 이를데 없었다.
Volunteer들이 근무하고 있다고 하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것으로 보아 임무가 무엇인지는 잘 이해할수가 없었다. 여인들의 얼굴은 그들만의 Make up인 노란색갈의 천연나뭇가루가 얼룩져 있었다.
외벽의 문양에서 Monster가 보였는데, 이는 외부로 부터의 침략을 막아내기위한 상징물이라고 한다. 이 Temple 역시 13세기에 건축됐다고 한다.
Temple로 들어가는 통로 양쪽에는 어디서나 볼수 있는 선물상점들이 즐비했다.
이곳 Bagan에서의 묘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Guide의 배려로 직접 공동묘지를 방문할수 있었다. 인간 세상은 어디를 가나, "Money talks"라는 말이 실감나게 한다. 여기 묘지들은 모두 돌로 또는 시멘트로 봉분을 만들었는데, 있는자의 묘와 없는자의 묘는 크기에서 구분됨을 알수 있었다. 고국에서 넓게 자치하고 있는 묘지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의 공동묘지(Public Cemetery)에서 처럼 필요한 공간만을 이용하는 형태였다. 고국 한국은 땅덩이가 매우 좁은 나라인데, 묘지는 넓게 자리하고 있고, 이곳 Myanmar와 토론토역시 땅이 넓은 나라인데, 묘지는 Coffin이 들어갈 자리만을 사용하고 있는점에서 허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점을 보았다.
가난한자들의 묘지는 조금전에 보았던 있는자들의 묘지와는 완전히 다른 초라한 모습이다.
있는자의 묘, 없는자의 초라한 묘, 모두가 관리는 안되는것 처럼 보였다. 잡초가 무성한점으로 보아서 그렇게 판단해 본것인데..... 이곳의 풍습인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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