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제밤 묵은 호텔은 Tharabar Hotel로, Old Bagan에 위치해 있다.
25년전 정부정책에 의해 Bagan주민들은 살고있던 터전에서 현재의 New Bagan으로 옮겨졌고, 기존 Bagan은 Old Bagan으로 불려지면서, 전문 역사적 탐방지로 보존되고 있다고는 한지만, 모든 사찰들의 관리는 무방비상태, 그러나 foreigner에 대한 입장료는 철저히 받아 내는것을 입장때마다 확인됐다. 설명에 의하면 New Bagan으로 강제 이동된 주민들은 당시 정부로 부터 집지을 대지만 보상으로 받아 많은 고통이 있었다고 하는데, 벌써 1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고 Guide역시 한숨이었다. 그역시도 피해자(?)의 한명이었단다.
Magway Division에 속해 있는 Bagan은 불교문화 보존을 위한 가장 큰 불교성지로 여겨질만큼 유적이 널려있었다. 내가 어젯밤 묶은 호텔은 건물은 방갈로 형태로 Resort성격을 띄고 있다.
우선 Garden이 넓어 보이는게 모두 여유가 있어 마음이 푸근함이 있었다.
Breakfast를 제공한 식당 바로 앞쪽에 있는 구내 수영장은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였는지 이용객을 없었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는것으로 기억되는데, 버마는 행정구역이 두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7개의 States와 6개의 Divisions으로 구분되여 있다. 어떤 연유로 State로, 또 어떤 연유로 Division으로 Divide된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방문하게되는, Guni Temple이 소재한 Bagan은 Magway Division의 행정수도라고 한다.
8시30분 부터 강행군이다. 우리는 Guni Temple로 차를 몰았다. 이사찰의 특징은 건축물 구조가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올린 것이다. Bagan에는 수많은 큰 Temple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몇개만 지정하여 탐방하게 된다고 했다.
이지역에는 약 3,000개의 Pagoda, Stupar가 아직도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대부분이 9세기에서 13세기사이에 건축된 것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더이상의 Pagoda 또는 Stupar의 신축을 불허하고 있는데, 옛건축물을 보호하고 진귀함을 보존하기위한 정책때문이라고 Guide, Jaw는 설명한다.
Myanmar의 다른곳에서 탐방한 Temple 또는 Pagoda, Stupar들과는 다르게 이곳에 있는것들은 전부 벽돌로 건축된점이 매우 특히 하다고 한다. 당시에 이곳에는 벽돌 제조공장 Business가 성행 했었던 결과(?) 였을까?
Temple 위에 올라가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은 옛선조들의 불교신앙에 대한 불심을 한눈에 보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Guni Temple의 중간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평원의 Pagoda, Stupa는 360도 회전하여 보이는 Panorama 그자체였다.
Bagan평지에 보존되여 있는 3,000여개의 Stupar는 불교신앙을 떠나, 그존재이유를 굳이 설명한다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50여년전, 고국 한반도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마을 어귀에 서 있었던 장승, 또는 서낭당 그리고 곳곳에 누가 세워 놓은지도 모르는 수많은 비석들은 민속 신앙에서 그원인을 찾을수 있었던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이들의 생활여건이 그옛날에는 우리의 조상님들보다 훨씬 더 풍부했었다고 믿고 싶다.
http://www.joovideo.net/ViewMedia.aspx?Num=626&ep=209
2개의 Pagoda가 대조적이었다. 하나는 벽돌로 건축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Myanmar에서 흔히보는 대표적 Shape로 금으로 입혀져 있고 그위에는 Umbrella가 눈에 띄게 올려져 있다. 우기에는 비가오고 번개도 칠텐데.... Lighting rod이 설치되여 있다는 설명은 없는것을 보면 또 다른 방법이 있을것 같은데.... 벼락맞아서 파괴됐다는 설명은 없었다.
Guide의 Suggestion으로 오랫만에 Lunar와 함께 뒷쪽의 Pagoda와 Stupar를 배경으로 모델이 되여 보기도 했다.
Bagan Dynasty는 AD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번성했었다고 한다. 2세기부터 10세까지의 Pre-historic때의 역사적 기록은 찾을길 없지만, 11세기부터 13세기에는 역사적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이지역에 1975년도에 지진이 발생하여 상당수의 Pagoda들이 파괴됐었다는 아픈 기록이 있었다.
Jaw는 아직 40대 초반인데 뱃살이 나보다 더 앞으로 툭 튀어 나왔다.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는것을 보면 이들의 낙천적인 생활 Pattern에서 찾을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해보면서, Diet라는 그개념조차 익숙한 단어가 아닌것 같았다.
사방으로 뚫려있는 Entrance는 모두가 Arch 형으로 아주 정교하게, 당시의 건축술에 탄성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천장에는 여러행태의 Mural 들이 이어져 있고, 색은 많이 바랬지만 윤곽은 뚜렷하여, 그옛날에 손재주가 좋은 '쟁이'들이 수고를 많이 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벽돌로 쌓은 벽은 바늘하나 들어갈 틈새가 발생하지 않았다. 어떤 기술이 이렇게 오래 보존토론 한 것일까?
Temple 안에는 동,서,남,북,각 방향에 있는 Entrance입구에 커다란 불상이 안치되여 있었다.
Pagoda의 내부 구조가 무척 정교하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벽돌로 쌓아만든 Arch형 통로가 열십자로 내부를 관통하고 있었는데, 이건축술은 다른곳에서는 볼수없는 특수구조하고 한다. 이곳은 통로 역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유는 잘 모르지만, 막아놓았다. 그옛날에 이곳의 사철 더운 기온에서 오는 열기를 이통로가 바람을 Pass시키는 역활을 해서 내부의 열을 식히기위한 설계였었다고 하니.....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Main Entrance 에서 보이는 두 Buddha Statue는 당시의 왕이 친히 지시하여 만든것으로 하나는 자기가 죽인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것이고, 또 다른 하나역시 그가 죽인 형의 명복을 비는 Statue라고 한다. 왕이 되기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이렇게 Statue을 세웠다고 그의 죄가 벗어졌다고 왕은 생각했었을까?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쉽게 회계하는것 같다.
Gudie의 설명에 따르면, 벽돌공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무성의 하게 벽돌을 쌓는 장면이 왕에게 발견되면 그즉시 Brick Layer의 손목을 단두대에 넣어 잘랐다는 무서운 설명도 해주었는데, 당시 왕의 무자비함을 보는것 같았다.
Damayanayi Temple은 규모는 이곳 Bagan에서는 가장 큰 Temple로, 12세기경에 건축됐단다.
이곳 사찰을 비롯한 Ananda, Sulamuni사찰에는 Guatama Buddha의 Relic들이 보관되여 있다는 설명이다. 항상 느끼지만 그런 설명을 들을때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수 없는점이 아쉬웠다.
Mandalay와 Inle Lake에 있는 대부분의 Temple또는 Pagoda는 18세기경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곳의 Temple 또는 Pagoda는 Bagan 왕조시대인 13세기 이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벽돌을 정교하게 쌓기위해 Honey, Lime, 그리고 다른 물질들을 포함한 Mortar를 사용하여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Temple의 모서리 벽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Dhamayanayi Temple은 Bagan지역에서는 가장 큰 Temple로 당시의 왕 Narathu가 1163년부터 1165년사이에 건축했다고 한다. 이Temple의 건축양식은 Bagan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게 건축된 Anada Temple과 매우 흡사한 건축양식이다. 2개의 둥근 Corridor가 중앙의 건물을 둘러싸고 있으며며 4개의 통로가 건물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가운데 통로는, 전체 건물이 거의 완성됐을당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여, 막아 실제로 사용된적은 없다고 했다. Brick Layer 의 숙련도가 얼마나 정교했었나를 알게 하는데는, 벽돌과 벽돌사이에 바늘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Temple의 지붕 중앙에 씌워질 Dome형식의 Stupar는 현재까지도 미완성인채로 있다고 한다.
Temple은 당시의 왕 Narathu에 의해 건축됐는데, 그는 왕이 되기위해 상왕인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을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이 Temple을 건축했다고 설명한다. 이Temple을 짖는데 그는 직접 Supervising까지 했다고 한다. 후에 그는 왕비인 India 출신 왕비를 사살하고 건축물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때, 이에 앙심을 품은 인디안 Soldier가 그를 암살하면서 이 Temple 의 건설이 중단됐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의 중앙에 올려질 Stupar가 미완성인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슬픈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이제 왜 Damayanayi Temple의 중앙에 Stupar와 umbrella가 없는 Pagoda로 남아 있는지를 알게되면서 연민의 정이 일어난다.
새로 건설된 Dome과 Stupar, 그리고 Umbrella의 거대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Sulamani Temple의 윗쪽 Dome과 Umbrella는 Reconstruction됐다고 한다. 1975년경에 발생한 Earth Quake로 파괴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Pagoda의 외부벽에도 장식이 눈을 끈다. 이형상은 수호신이라고 한다.
Reclining Buddha의 머리가 놓인 방향에 따라 의마하는바가 뚜렷했다.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면 Heaven과 Angels를 뜻하고, 남쪽은 휴식을, 서쪽은 가르침과 인간애, 북쪽은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Mural에 나와 있는 코끼리들과 그밑의 석가모니상, 그옆의 여인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나 지금 기억을 해내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설명이 자못 의미 심장했었던것 같았는데.....
그러나 조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13세기경에 몽고의 징키스칸이 이곳을 침략, 점령한 내용을 19세기에 이렇게 Mural로 남겼다고 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곳 Local People들의 당시 삶의 내용을 표사한 벽화라고 하는데....
이곳을 침략한 징키스칸은 무더운 기후 관계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곳에서 퇴거하고 말았다고 한다. 살아가는 환경이 그만큼 삶을 지배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것 같다.
Nyang Oo 재래시장을 둘러 보았다. Bamboo Shoots들을 마치 벽돌 쌓듯이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진지하게 보인다.
이 잎사귀들은 버마사람들 거의가 다 담배대신 Chewing하는데 쓰이는 재료들이다. 여기에 마약성분이 있는 것을 흰색의 석회석같은 물질과 혼합하여 만들어 봉지안에 넣어 고객들에게 파는 것이다. 무척 많이 팔리고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생필품으로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있는것 같아 보였다. 동시에 또 50여년전의 고국의 시골의 5일 장터에서 부모님 따라 구경했었던, 찌뜰고 힘들어 했었던 상인들의 모습과 Overlap된다. 고국의 재래5일 시장은 없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정기적으로 재래 시장이 활기를 띄는 곳이라고 했다.
한약재료를 파는것으로 보이는 이곳의 상점에서 눈에 띄는 신기한 물건은 저울이다.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에서는 이런 진기한 Scale을 소유하고 있다면 박물관에서 전시하겠다고 많은 돈을 제시하고 구매할것을 Offer할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두아이를 데리고 시장보러온 아낙네에게 Lunar가 칫솔과 비누를 주면서 위로해 주고 있다. Lunar도 6/25 사변후 어렵게 살았을때 겪었던 그옛날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을것 같다. 그래서 가방에서 꺼내 준것같았다.
25년전 정부정책에 의해 Bagan주민들은 살고있던 터전에서 현재의 New Bagan으로 옮겨졌고, 기존 Bagan은 Old Bagan으로 불려지면서, 전문 역사적 탐방지로 보존되고 있다고는 한지만, 모든 사찰들의 관리는 무방비상태, 그러나 foreigner에 대한 입장료는 철저히 받아 내는것을 입장때마다 확인됐다. 설명에 의하면 New Bagan으로 강제 이동된 주민들은 당시 정부로 부터 집지을 대지만 보상으로 받아 많은 고통이 있었다고 하는데, 벌써 1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고 Guide역시 한숨이었다. 그역시도 피해자(?)의 한명이었단다.
Magway Division에 속해 있는 Bagan은 불교문화 보존을 위한 가장 큰 불교성지로 여겨질만큼 유적이 널려있었다. 내가 어젯밤 묶은 호텔은 건물은 방갈로 형태로 Resort성격을 띄고 있다.
우선 Garden이 넓어 보이는게 모두 여유가 있어 마음이 푸근함이 있었다.
Breakfast를 제공한 식당 바로 앞쪽에 있는 구내 수영장은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였는지 이용객을 없었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는것으로 기억되는데, 버마는 행정구역이 두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7개의 States와 6개의 Divisions으로 구분되여 있다. 어떤 연유로 State로, 또 어떤 연유로 Division으로 Divide된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방문하게되는, Guni Temple이 소재한 Bagan은 Magway Division의 행정수도라고 한다.
8시30분 부터 강행군이다. 우리는 Guni Temple로 차를 몰았다. 이사찰의 특징은 건축물 구조가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올린 것이다. Bagan에는 수많은 큰 Temple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몇개만 지정하여 탐방하게 된다고 했다.
이지역에는 약 3,000개의 Pagoda, Stupar가 아직도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대부분이 9세기에서 13세기사이에 건축된 것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더이상의 Pagoda 또는 Stupar의 신축을 불허하고 있는데, 옛건축물을 보호하고 진귀함을 보존하기위한 정책때문이라고 Guide, Jaw는 설명한다.
Myanmar의 다른곳에서 탐방한 Temple 또는 Pagoda, Stupar들과는 다르게 이곳에 있는것들은 전부 벽돌로 건축된점이 매우 특히 하다고 한다. 당시에 이곳에는 벽돌 제조공장 Business가 성행 했었던 결과(?) 였을까?
Temple 위에 올라가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은 옛선조들의 불교신앙에 대한 불심을 한눈에 보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Guni Temple의 중간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평원의 Pagoda, Stupa는 360도 회전하여 보이는 Panorama 그자체였다.
Bagan평지에 보존되여 있는 3,000여개의 Stupar는 불교신앙을 떠나, 그존재이유를 굳이 설명한다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50여년전, 고국 한반도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마을 어귀에 서 있었던 장승, 또는 서낭당 그리고 곳곳에 누가 세워 놓은지도 모르는 수많은 비석들은 민속 신앙에서 그원인을 찾을수 있었던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이들의 생활여건이 그옛날에는 우리의 조상님들보다 훨씬 더 풍부했었다고 믿고 싶다.
2개의 Pagoda가 대조적이었다. 하나는 벽돌로 건축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Myanmar에서 흔히보는 대표적 Shape로 금으로 입혀져 있고 그위에는 Umbrella가 눈에 띄게 올려져 있다. 우기에는 비가오고 번개도 칠텐데.... Lighting rod이 설치되여 있다는 설명은 없는것을 보면 또 다른 방법이 있을것 같은데.... 벼락맞아서 파괴됐다는 설명은 없었다.
Guide의 Suggestion으로 오랫만에 Lunar와 함께 뒷쪽의 Pagoda와 Stupar를 배경으로 모델이 되여 보기도 했다.
Bagan Dynasty는 AD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번성했었다고 한다. 2세기부터 10세까지의 Pre-historic때의 역사적 기록은 찾을길 없지만, 11세기부터 13세기에는 역사적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이지역에 1975년도에 지진이 발생하여 상당수의 Pagoda들이 파괴됐었다는 아픈 기록이 있었다.
Jaw는 아직 40대 초반인데 뱃살이 나보다 더 앞으로 툭 튀어 나왔다.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는것을 보면 이들의 낙천적인 생활 Pattern에서 찾을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해보면서, Diet라는 그개념조차 익숙한 단어가 아닌것 같았다.
사방으로 뚫려있는 Entrance는 모두가 Arch 형으로 아주 정교하게, 당시의 건축술에 탄성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천장에는 여러행태의 Mural 들이 이어져 있고, 색은 많이 바랬지만 윤곽은 뚜렷하여, 그옛날에 손재주가 좋은 '쟁이'들이 수고를 많이 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벽돌로 쌓은 벽은 바늘하나 들어갈 틈새가 발생하지 않았다. 어떤 기술이 이렇게 오래 보존토론 한 것일까?
Temple 안에는 동,서,남,북,각 방향에 있는 Entrance입구에 커다란 불상이 안치되여 있었다.
Pagoda의 내부 구조가 무척 정교하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벽돌로 쌓아만든 Arch형 통로가 열십자로 내부를 관통하고 있었는데, 이건축술은 다른곳에서는 볼수없는 특수구조하고 한다. 이곳은 통로 역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유는 잘 모르지만, 막아놓았다. 그옛날에 이곳의 사철 더운 기온에서 오는 열기를 이통로가 바람을 Pass시키는 역활을 해서 내부의 열을 식히기위한 설계였었다고 하니.....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Main Entrance 에서 보이는 두 Buddha Statue는 당시의 왕이 친히 지시하여 만든것으로 하나는 자기가 죽인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것이고, 또 다른 하나역시 그가 죽인 형의 명복을 비는 Statue라고 한다. 왕이 되기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이렇게 Statue을 세웠다고 그의 죄가 벗어졌다고 왕은 생각했었을까?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쉽게 회계하는것 같다.
Gudie의 설명에 따르면, 벽돌공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무성의 하게 벽돌을 쌓는 장면이 왕에게 발견되면 그즉시 Brick Layer의 손목을 단두대에 넣어 잘랐다는 무서운 설명도 해주었는데, 당시 왕의 무자비함을 보는것 같았다.
Damayanayi Temple은 규모는 이곳 Bagan에서는 가장 큰 Temple로, 12세기경에 건축됐단다.
이곳 사찰을 비롯한 Ananda, Sulamuni사찰에는 Guatama Buddha의 Relic들이 보관되여 있다는 설명이다. 항상 느끼지만 그런 설명을 들을때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수 없는점이 아쉬웠다.
Mandalay와 Inle Lake에 있는 대부분의 Temple또는 Pagoda는 18세기경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곳의 Temple 또는 Pagoda는 Bagan 왕조시대인 13세기 이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벽돌을 정교하게 쌓기위해 Honey, Lime, 그리고 다른 물질들을 포함한 Mortar를 사용하여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Temple의 모서리 벽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Dhamayanayi Temple은 Bagan지역에서는 가장 큰 Temple로 당시의 왕 Narathu가 1163년부터 1165년사이에 건축했다고 한다. 이Temple의 건축양식은 Bagan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게 건축된 Anada Temple과 매우 흡사한 건축양식이다. 2개의 둥근 Corridor가 중앙의 건물을 둘러싸고 있으며며 4개의 통로가 건물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가운데 통로는, 전체 건물이 거의 완성됐을당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여, 막아 실제로 사용된적은 없다고 했다. Brick Layer 의 숙련도가 얼마나 정교했었나를 알게 하는데는, 벽돌과 벽돌사이에 바늘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Temple의 지붕 중앙에 씌워질 Dome형식의 Stupar는 현재까지도 미완성인채로 있다고 한다.
Temple은 당시의 왕 Narathu에 의해 건축됐는데, 그는 왕이 되기위해 상왕인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을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이 Temple을 건축했다고 설명한다. 이Temple을 짖는데 그는 직접 Supervising까지 했다고 한다. 후에 그는 왕비인 India 출신 왕비를 사살하고 건축물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때, 이에 앙심을 품은 인디안 Soldier가 그를 암살하면서 이 Temple 의 건설이 중단됐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의 중앙에 올려질 Stupar가 미완성인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슬픈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이제 왜 Damayanayi Temple의 중앙에 Stupar와 umbrella가 없는 Pagoda로 남아 있는지를 알게되면서 연민의 정이 일어난다.
새로 건설된 Dome과 Stupar, 그리고 Umbrella의 거대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Sulamani Temple의 윗쪽 Dome과 Umbrella는 Reconstruction됐다고 한다. 1975년경에 발생한 Earth Quake로 파괴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Pagoda의 외부벽에도 장식이 눈을 끈다. 이형상은 수호신이라고 한다.
Reclining Buddha의 머리가 놓인 방향에 따라 의마하는바가 뚜렷했다.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면 Heaven과 Angels를 뜻하고, 남쪽은 휴식을, 서쪽은 가르침과 인간애, 북쪽은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Temple안의 동쪽 Entrance앞에 세워져 있는, 풍상에 많이 마모된 비문의 내용은 나는 알수 없었으나, 설명에 따르면 이Temple의 역사를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Mural에 나와 있는 코끼리들과 그밑의 석가모니상, 그옆의 여인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나 지금 기억을 해내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설명이 자못 의미 심장했었던것 같았는데.....
그러나 조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13세기경에 몽고의 징키스칸이 이곳을 침략, 점령한 내용을 19세기에 이렇게 Mural로 남겼다고 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곳 Local People들의 당시 삶의 내용을 표사한 벽화라고 하는데....
이곳을 침략한 징키스칸은 무더운 기후 관계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곳에서 퇴거하고 말았다고 한다. 살아가는 환경이 그만큼 삶을 지배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것 같다.
Nyang Oo 재래시장을 둘러 보았다. Bamboo Shoots들을 마치 벽돌 쌓듯이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진지하게 보인다.
이 잎사귀들은 버마사람들 거의가 다 담배대신 Chewing하는데 쓰이는 재료들이다. 여기에 마약성분이 있는 것을 흰색의 석회석같은 물질과 혼합하여 만들어 봉지안에 넣어 고객들에게 파는 것이다. 무척 많이 팔리고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생필품으로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있는것 같아 보였다. 동시에 또 50여년전의 고국의 시골의 5일 장터에서 부모님 따라 구경했었던, 찌뜰고 힘들어 했었던 상인들의 모습과 Overlap된다. 고국의 재래5일 시장은 없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정기적으로 재래 시장이 활기를 띄는 곳이라고 했다.
한약재료를 파는것으로 보이는 이곳의 상점에서 눈에 띄는 신기한 물건은 저울이다.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에서는 이런 진기한 Scale을 소유하고 있다면 박물관에서 전시하겠다고 많은 돈을 제시하고 구매할것을 Offer할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두아이를 데리고 시장보러온 아낙네에게 Lunar가 칫솔과 비누를 주면서 위로해 주고 있다. Lunar도 6/25 사변후 어렵게 살았을때 겪었던 그옛날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을것 같다. 그래서 가방에서 꺼내 준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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