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gan에서 여러 Pagoda를 보았지만, 오늘 오후에 보는 Ananda Temple은 매우 특히한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우선 사찰의 Architecture가 인도건축양식과 Bagan양식을 절충해서 건축된 건물이라고 설명을 입구에서 자세히 해준다.
Myanmar에서 Pagoda구경을 하면서 한복바지를 입고 윗옷은 양복을 입은것 처럼 어색한점은 사찰의 입구에서 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입구에서 부터 긴 Corrider양쪽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는데 염불외는 경건한 마음으로 탐방하는 길을 막아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뭔가 앞뒤가 안맞는 이상한 풍경에, 왜 신발은 꼭 벗고 들어가라는 강제명령을 하는것일까.
본당의 중앙탑(미얀바어로 Spaya)은 지금 Renovation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2년반을 수리중에 있다고 한다 이탑부분의 건축양식은 인도건축과 Bagan의 건축양식이 절충돼, 매우 특이한 사찰이라고 한다. 모든게 잘 발달된 현재에도 지붕의 Spaya를 Reconstruction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걸리는데, 그옛날에는 얼마나 많은 고생과 시간을 보냈을까?
11세기경에 건축된, 본당사찰과 연결된, 사찰 오른쪽 Corridor와 반대편의 Corridor 역시 같은 시기에 건축된 것인데, 검은색으로 보이는것은 건축이래로 현재에 이르는 본래의 모습이고
하얗게 보이는곳은 1975년도에 있었던, 강진으로 사찰본당의 윗탑부분이 약간 Slant되여 수리를 할때, 새까맣게 그을린 벽을 라임으로 청소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찰의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낯은 지붕위에는 동물의 형상이 보였다. 이동물들은 잡귀와 악마를 막아주는 Guard역활을 하는것이라고 한다.
좀더 가까이 확대해서 보면, 부처님의 불상이 뚜렷히 보인다. 이런 건축양식은 오직 이사찰에서만 볼수 있는 독특한, 희말라야 건축양식을 접목한것이라고 Guide의 설명이 진지했다.
Tour Gudie, Jaw역시 불심이 대단히 깊은것 같았다. 매번 불상앞에 가게되면 합장하고, 고개숙여 절하는 모습에서 느낄수 있었다. 습관에 젖은 Routine일수도 있겠지만, 국민들 모두의 생활이 불교문화속에서 함께 하는, 그래서 어떤면에서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현재 Myanmar의 숙제일수도 있겠다 싶다.
사찰의 옆마당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울타리안에 나무한그루가 크게 자라고 있었는데, 생전 처음보는 꽃봉우리 하나가 활짝피여 눈길을 끌었다.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서 부처님께서 득도하신후부터 자라기 시작한 나무가 자라서 이렇게 꽃을 피웠다고 하는데.....그래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꽃봉우리만 있고, 줄기에 잎파리는 전연 안보였다.
이 도면은 이사찰의 건축양식이 매우 독특함을 보여준다. 보통 다른 Pagoda의 건축양식은 정사각형인데, 이절은 그와는 반대로 특이했다. 더 신기한것은 사찰건물안에 들어서면 조그만 아취형식으로 좌우로, Grid 형식의 통로가 연결되여 있어, 밖은 40도의 열기를 뿜어내도 안에서는 서늘한 바람의 통풍이 잘되고 있었다. 또한 이건축양식은 Hymalaya 건축양식과 절충형이라는 설명이다.
중앙의 아취형 통로 천장에는 Mural 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옛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2년전 까지만 해도 이벽화는 흰색의 라임으로 덮여져 있었는데, 이사찰을 연구하고 있었던 고고학자들이 흰색의 도배속에 Mural이 있었다는것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흰색을 벗겼는데, 자그만치 5겹이나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벽한쪽 면에는 이를 증명하려는 뜻에서 였는지 흰색의 라임칠을 5번한 흔적을 뚜렷히 보여주는 샘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현재 Rconstruction중에 있는 Spaya의 창문같이 열려있는 그안에는 5 Buddha Stutue가 안치되여 있다. 과거, 현재, 미래, 장차 오실 Buddha, 온 우주를 보호해 주시는 Buddha라고 한다.
Bagan지역에서는 가장 아름답게 건축된 Temple로, 우스개 소리로 Bagan지역에 관광와서 이 사찰을 탐방하지 않고 지나쳤다면, 그것은 Bagan지역에 관광을 오지 않았다는 뜻으로 간주될 정도로 관심과 또 깊은 뜻이 담겨있는 Temple이라고 한다.
사찰벽의 윗쪽에 각인된 동물같은 형상역시 외부에서 침략해 오는 Enemy와 Monster들을 막아주는 수호신 역활을 하는 수문장노릇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Grid 모양으로 형성된 Temple 안의 벽에는 많은 Buddha Statue가 모셔져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Buddha가 모셔져 있는 깊은 이유를 Guide가 설명해주었으나 나의 기억에서 사라져 표기하지 못함이 무척 아쉽다. 그러나 요약한다면 불도들의 소원을 빌어주는 개략적인 뜻이 포함되여 있음은 확실한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고 소리의 울림을 막아주는 방음장치 역활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사찰의 Ground Plan에서 보았듯이 4개의 Main Entrance가 있다. 동편의 정문에 모셔져 있는 Buddha Statue는 Teak Tree로 Rebuilt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사유는 도벌꾼들이 도적질해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머지 3개의 Buddha Statues는 Original로 다행스럽게도 훼손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능공들이 흰Paint로 두껍게 덮혀 있는 벽화의 모습을 되찾기위해 조심스럽게 한겹한겹 Paint를 걷어내는 작업을 오래전부터 계속 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슬퍼하여 불도들이 울고 있는 장면이라고 했다. 이 Buddha Statue는 11세기경에 모셔진것으로, 재료는 Sand Stone인데, 최근에야 금으로 도색을 했기 때문에 마치 새로 모셔진 부처상처럼 깨끗해 보인다는 것이다.
부처님에 탄생하신지 7일만에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님의 누이 동생이 부처님을 돌아가신 엄마 대신 양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이모가 어머님과 같은 존재였기에 어머님과 이모의 형상을 담은 Statue를 이곳에 모셨다는 설명이다.
사찰 구경을 마치고 Local 식당에서 Guide의 도움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웠다. 곧바로 Yangon으로 떠나기위해 공항으로 향하기전에 이곳 Local People들이 거주하는 Village탐방을 했다.
원시의 생활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생관렴은 거의 없는것으로 이해됐다. 정돈돼지 않고 지저분하고....마치 50-60년전의 가난하고 찌들었던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꼭맞는 환경인것 같았다.
Local People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항상 이들이 즐겨 씹는 담대 대용품을 만드는 곳이 먼저 눈에 띈다. 아마도 하루 세끼를 먹는 식사보다 더 중요한 기호품인것은 틀림없나 보다.
가내 수공업의 Weaving은 여기서도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생업수단인것을 알수 있었다.
Lunar는 관심이 많다. 같은 여성이라서 였을까? 자세히 문의해보고 경청한다. 이들에게서 한가지 부러운점은 상하의 나라이기에 난방에 대한 걱정이 전연없다는 점이다. 비만 피할수 있는 지붕만 잘 관리(?)하면 집에 대한 개념은 그이상도 이하도 신경쓸일이 없는것 같았다.
소들도 한가하게 Manger 에서 먹을것 다먹고 망중한을 보내는것 같다. 이곳의 소들은 특이한점이 등에 낙타에서나 볼수 있는 혹이 있는 점이다. Wagon이나 밭갈이 할때 씌우는 멍에를 씌울때 뒤로 넘어갈 염려는 없을것 같았다.
아기를 안은 아낙네가 앞장서서 Lunar를 다른곳으로 안내한다.
동네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관같은 곳으로 그녀의 설명을 이해할수 있었다.
어린 꼬마 아이는 흔들거리는 그네위에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아이가 장성했을때는 좀더 낳은 생활환경속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서양,아마도 European으로 보이는 한구룹의 관람객들이 우리와 조우했다. 그들도 우리가 느낀것 처럼 50-60 여전의 과거 삶을 되돌아 보고 있을까? 물론 아닐것이다.
부엌의 한장면이다. 생활습관이 달라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부엌의 내부는 원시인들 시대에서나, 즉 신석기 시대에서 볼수 있었을것 같은, 안쓰러운 환경이다. 주전자에서 물이 끊는가 보다. 바람이 몰아 부치면 흙먼지가 일어날것같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는 삶자체가 커다란 축복인것을 또한번 감사해 하지 않을수 없었다.
실제로는 Lunar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할머니(?)들이 긴 Ciga같은것을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장면이 Lunar와 대조를 이룬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치마는 그들이 전통의상인 타메이'(Tamei)다.
공항으로 향가는 길에서도 수많은 Pagoda와 Stupar와 조우한다. 수백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들의 삶에서 두가지를 느낀다. 첫째는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유산을 가능하면 그대로 보존할려는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문명의 미명하에, 어느민족처럼, 마주잡이로 없애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참는 민족일것이라는 점이었다.
Myanmar에서 Pagoda구경을 하면서 한복바지를 입고 윗옷은 양복을 입은것 처럼 어색한점은 사찰의 입구에서 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입구에서 부터 긴 Corrider양쪽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는데 염불외는 경건한 마음으로 탐방하는 길을 막아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뭔가 앞뒤가 안맞는 이상한 풍경에, 왜 신발은 꼭 벗고 들어가라는 강제명령을 하는것일까.
본당의 중앙탑(미얀바어로 Spaya)은 지금 Renovation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2년반을 수리중에 있다고 한다 이탑부분의 건축양식은 인도건축과 Bagan의 건축양식이 절충돼, 매우 특이한 사찰이라고 한다. 모든게 잘 발달된 현재에도 지붕의 Spaya를 Reconstruction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걸리는데, 그옛날에는 얼마나 많은 고생과 시간을 보냈을까?
탑중앙부분에 5개의 창문같은 곳에는 5개의 석가모니 불상이 안치되여 있었다. 이점이 설명에 의하면 저멀리 희말라야에서 도입해온 건축양식이라고 설명해준다. 11세기에 그정도로 먼곳에 있는 왕조들끼리 연락이 잘 됐었을까? 그러나 Guide의 설명을 듣고 수긍할수밖에 없었다.
하얗게 보이는곳은 1975년도에 있었던, 강진으로 사찰본당의 윗탑부분이 약간 Slant되여 수리를 할때, 새까맣게 그을린 벽을 라임으로 청소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찰의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낯은 지붕위에는 동물의 형상이 보였다. 이동물들은 잡귀와 악마를 막아주는 Guard역활을 하는것이라고 한다.
좀더 가까이 확대해서 보면, 부처님의 불상이 뚜렷히 보인다. 이런 건축양식은 오직 이사찰에서만 볼수 있는 독특한, 희말라야 건축양식을 접목한것이라고 Guide의 설명이 진지했다.
Tour Gudie, Jaw역시 불심이 대단히 깊은것 같았다. 매번 불상앞에 가게되면 합장하고, 고개숙여 절하는 모습에서 느낄수 있었다. 습관에 젖은 Routine일수도 있겠지만, 국민들 모두의 생활이 불교문화속에서 함께 하는, 그래서 어떤면에서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현재 Myanmar의 숙제일수도 있겠다 싶다.
이 도면은 이사찰의 건축양식이 매우 독특함을 보여준다. 보통 다른 Pagoda의 건축양식은 정사각형인데, 이절은 그와는 반대로 특이했다. 더 신기한것은 사찰건물안에 들어서면 조그만 아취형식으로 좌우로, Grid 형식의 통로가 연결되여 있어, 밖은 40도의 열기를 뿜어내도 안에서는 서늘한 바람의 통풍이 잘되고 있었다. 또한 이건축양식은 Hymalaya 건축양식과 절충형이라는 설명이다.
중앙의 아취형 통로 천장에는 Mural 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옛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2년전 까지만 해도 이벽화는 흰색의 라임으로 덮여져 있었는데, 이사찰을 연구하고 있었던 고고학자들이 흰색의 도배속에 Mural이 있었다는것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흰색을 벗겼는데, 자그만치 5겹이나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벽한쪽 면에는 이를 증명하려는 뜻에서 였는지 흰색의 라임칠을 5번한 흔적을 뚜렷히 보여주는 샘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현재 Rconstruction중에 있는 Spaya의 창문같이 열려있는 그안에는 5 Buddha Stutue가 안치되여 있다. 과거, 현재, 미래, 장차 오실 Buddha, 온 우주를 보호해 주시는 Buddha라고 한다.
Bagan지역에서는 가장 아름답게 건축된 Temple로, 우스개 소리로 Bagan지역에 관광와서 이 사찰을 탐방하지 않고 지나쳤다면, 그것은 Bagan지역에 관광을 오지 않았다는 뜻으로 간주될 정도로 관심과 또 깊은 뜻이 담겨있는 Temple이라고 한다.
사찰벽의 윗쪽에 각인된 동물같은 형상역시 외부에서 침략해 오는 Enemy와 Monster들을 막아주는 수호신 역활을 하는 수문장노릇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Grid 모양으로 형성된 Temple 안의 벽에는 많은 Buddha Statue가 모셔져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Buddha가 모셔져 있는 깊은 이유를 Guide가 설명해주었으나 나의 기억에서 사라져 표기하지 못함이 무척 아쉽다. 그러나 요약한다면 불도들의 소원을 빌어주는 개략적인 뜻이 포함되여 있음은 확실한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고 소리의 울림을 막아주는 방음장치 역활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사찰의 Ground Plan에서 보았듯이 4개의 Main Entrance가 있다. 동편의 정문에 모셔져 있는 Buddha Statue는 Teak Tree로 Rebuilt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사유는 도벌꾼들이 도적질해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머지 3개의 Buddha Statues는 Original로 다행스럽게도 훼손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능공들이 흰Paint로 두껍게 덮혀 있는 벽화의 모습을 되찾기위해 조심스럽게 한겹한겹 Paint를 걷어내는 작업을 오래전부터 계속 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슬퍼하여 불도들이 울고 있는 장면이라고 했다. 이 Buddha Statue는 11세기경에 모셔진것으로, 재료는 Sand Stone인데, 최근에야 금으로 도색을 했기 때문에 마치 새로 모셔진 부처상처럼 깨끗해 보인다는 것이다.
부처님에 탄생하신지 7일만에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님의 누이 동생이 부처님을 돌아가신 엄마 대신 양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이모가 어머님과 같은 존재였기에 어머님과 이모의 형상을 담은 Statue를 이곳에 모셨다는 설명이다.
사찰 구경을 마치고 Local 식당에서 Guide의 도움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웠다. 곧바로 Yangon으로 떠나기위해 공항으로 향하기전에 이곳 Local People들이 거주하는 Village탐방을 했다.
원시의 생활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생관렴은 거의 없는것으로 이해됐다. 정돈돼지 않고 지저분하고....마치 50-60년전의 가난하고 찌들었던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꼭맞는 환경인것 같았다.
Local People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항상 이들이 즐겨 씹는 담대 대용품을 만드는 곳이 먼저 눈에 띈다. 아마도 하루 세끼를 먹는 식사보다 더 중요한 기호품인것은 틀림없나 보다.
가내 수공업의 Weaving은 여기서도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생업수단인것을 알수 있었다.
Lunar는 관심이 많다. 같은 여성이라서 였을까? 자세히 문의해보고 경청한다. 이들에게서 한가지 부러운점은 상하의 나라이기에 난방에 대한 걱정이 전연없다는 점이다. 비만 피할수 있는 지붕만 잘 관리(?)하면 집에 대한 개념은 그이상도 이하도 신경쓸일이 없는것 같았다.
소들도 한가하게 Manger 에서 먹을것 다먹고 망중한을 보내는것 같다. 이곳의 소들은 특이한점이 등에 낙타에서나 볼수 있는 혹이 있는 점이다. Wagon이나 밭갈이 할때 씌우는 멍에를 씌울때 뒤로 넘어갈 염려는 없을것 같았다.
아기를 안은 아낙네가 앞장서서 Lunar를 다른곳으로 안내한다.
동네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관같은 곳으로 그녀의 설명을 이해할수 있었다.
어린 꼬마 아이는 흔들거리는 그네위에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아이가 장성했을때는 좀더 낳은 생활환경속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서양,아마도 European으로 보이는 한구룹의 관람객들이 우리와 조우했다. 그들도 우리가 느낀것 처럼 50-60 여전의 과거 삶을 되돌아 보고 있을까? 물론 아닐것이다.
부엌의 한장면이다. 생활습관이 달라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부엌의 내부는 원시인들 시대에서나, 즉 신석기 시대에서 볼수 있었을것 같은, 안쓰러운 환경이다. 주전자에서 물이 끊는가 보다. 바람이 몰아 부치면 흙먼지가 일어날것같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는 삶자체가 커다란 축복인것을 또한번 감사해 하지 않을수 없었다.
실제로는 Lunar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할머니(?)들이 긴 Ciga같은것을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장면이 Lunar와 대조를 이룬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치마는 그들이 전통의상인 타메이'(Tamei)다.
공항으로 향가는 길에서도 수많은 Pagoda와 Stupar와 조우한다. 수백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들의 삶에서 두가지를 느낀다. 첫째는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유산을 가능하면 그대로 보존할려는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문명의 미명하에, 어느민족처럼, 마주잡이로 없애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참는 민족일것이라는 점이었다.
공항에서 Gudie Jaw의 도움으로 손쉽게 통관 수속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데 젊은 두친구와 Encounter했다. 비행기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이들과 대화 하는사이 잠깐인것 처럼 보냈는데, 자그만치 40 이상 비행기는 Delay됐음을 늦게야 알았다.
이들은 현재 UN산하의 한 Faculty에서 근무하고 있는 Civil Engineer들로 이곳에 출장왔다가 Yangon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한친구는 Yangon 출생이고, 다른 한명은 '스리랑카'출신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40여년전에 캐나다로 이민가서 살고 있는 Korean- Canadian이라고 소개하자, 자기네들이 바라고 있는 꿈을 우리부부를 통해서 다시한번 일깨워졌다고 고마워 한다. 서로 다시 연락해 보자고 Business Cards를 건네준다. 그들의 꿈이 계획데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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