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2, 2014

Day 21, Myanmar,Boat로 Pahtodawgyi Pagoda,Mingun Bell, Mya Thein Dan Pagoda,Mandalay Sunset(11월 18일 화요일 오후)

점심후 Mingun 지역에 있는 Pahtodawgyi Pagoda와 Mingun Bell을 탐방하기위해, 한시간 이상이 걸리는 Cruising Boat 타기위해 Ayawadi River의 Port로 Tour Guide와 함께 향했다.  포구에는 항상 그랬던 것 처럼 많은 Boat들이 Passenger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서 아직은 많은 Foreign Tourists들이 몰려 들지 않고 있다는 증표같기도 했다.
Lunar와 내가 타고갈 Boat는포구의 안쪽에 있어 정박해 있는 다른 배들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사공들과 Tour Guide의 Assisst를 받아 건너뛰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배에 도착했다.
넓은 강줄기를 헤치고 한시간 이상을 달리면서 스치는 주위 경관은 평화, 평화, 자연의 경이로움, 며칠전 토론토에서 날아온 소식에서, 눈이 내리고 춥다는 그상상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세상에서 최고의 인생의 낙을 즐기는, 그것도 20명 이상이 승선할수 있는 Cruise Boat에 달랑 승객은 우리 부부뿐으로,  Charted boat 이기에 가능한,  Cruise인것이다.
Lunar 가 부딪치는 미풍을 즐기면서 오수에 젖어 들어 있다.  여행에서의 고생스런 순간들은 말끔히 씻어 하늘에 날려버리고, 세상과는 등진 인생을 살아가는 듯한, 오직 이시간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여유로움을 진정 축복으로 감사해 하지 않을수 없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만 그만한 인생을 서로 엉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여, 우리의 이곳 탐방을 반겨주는것 같은 상상이 이어진다.
사공(Captain) 뱃길에 익숙해 눈감고 Handle을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료한듯, 발을 Steering Wheel에 올려놓고 시간을 Killing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렵다기 보다는, 달인으로 보였다.
파괴된 페허주변에 조그만 White Buddha Statues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그사유가 이상하고 이해가 돼지 않아 궁금해 했었는데,  탐방을 계속하면서 이해할수 있었다.
주민들의 빨래하는 풍경도 무척 정겨워 보였다.  어렸을적, 아주 어렸을적에 지금은 고인이 된 누나와 동네 여인들이 함께 동네 뒤를 흐르는 뒷냇갈을 타고 깨끗히 흘러가는 물에서 빨래하곤 했을때,  콧구멍에 노란코를 달고 살았던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우리 꼬마들은 뚝위에서 둥글곤 했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게 하고도 남는다.



Mingun Temple은 외모가 굉장히 특히했다고 한다.  사자상(Statue of Lion)을 본딴 Temple이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봤을때는 무슨 형상인지 잘 구별이 안되는, 미완성의 사자상(Statue of Lion)이 갈라진채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안타까운 모양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첫눈에 들어왔다.
선물상점들이 즐비하게 관광객들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지만, 관광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선물을 구입하는 광경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민들의 얼굴은,  Business와는 상관 없다는듯이, 환한 웃음이 끝이지 않아 여유로워 보여 좋았다.

사장상에 대한 사연을 들으면서 엎어지고 갈라지고, 그리고 나딩굴고 있는 Statue of Lion을 다시 쳐다보고 또봤다.  거대한 사자상은 당시에 벽돌을 쌓아 만든것이라고 했다.  완성이 돼기도전에 커다란 지진이 1834년도에 이곳을 덮쳐, 지금 보고 있는 Ruin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같은 장소에 이번에는 흰색의 미니 불상들을 세워서 당시의 참상을 잊게 할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왕조의 왕, Bodowphayar이1790년에 이렇게 거대한 Pagoda를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와중에 이곳을 지나가던 한 astrologist 가 왕을 향해 Pagoda 건축을 중단하지 않으면 왕조가 망하게 되는 큰 재앙이 뒤따를것이라는 경고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고를 경청했던 왕은 바로 공사를 중단시켜, 미완성된 채로 방치해 두었는데, 이와는 상관없이 1834년도에 Earth Quake가 일어나 파괴되고, 오늘의 모양으로 페허가 됐다고 한다.
Pagoda의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걸어서 불상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항상 그랫듯이 조심스러웠다.  조그마한 돌부스러기를 밟을때는 Pain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요구하는 Rule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벗은 신발을 보관함에 넣었다.


페허된 Pagoda의 입구에는 Buddha Statue가 모셔져 있었는데, 거의 다 부서진 상태로, 관리가 허술했다.  그래도 성스런 곳이라고 또 신발은 벗어야 한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페허가된 사자상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되여 있었으나 직접오르지는 않았다. 안전문제로 오르지 말라는 경고판 때문이기도 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었다.  이경고를 무시한 일부 탐방객들이 내려오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그들은 위에서 뭘 보고 느꼈을까?




안으로 더 들어가면 또 다른 Pagoda 가 우리를 반기고 있는것 같았다.  사찰의 외모가 좀 특히했다.  보기 드물게 불상이 아닌 스님의 전신을 묘사한  Statue가 Hall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불교의 모든 경전을 하나에서 끝까지 완전 암기 했었고,  해탈을 한 Monk, Bhaddanta를 기념하는 Monument라고 했다.


이번에는 바로 옆에 있는 Mingun Bell이 안치되여 있는 종탑으로 발길을 옮겼다


90톤의 Ringing Bell은 2대왕 Bodawpaya 에 거대한 Stupa를 건설하면서, 주조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이종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Myanmar의 고유한 방식으로 무게를 달았을때 55,555 Viss 또는 Peiktha 라고 한다. 버마 글자의 자음을 나타내는 5는 버마의 천문학과 숫자에서 독특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55,555에 무게를 마추었다니.....

Bell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마어마 한 규모라는것을 확실히 느낄수 있는 거대한 Bell이었다. 먼저 지나간 탐방객들의  Graffiti가 어지럽게 종의 벽에 널려 있다.  그래도 소리는 은은하게 울려, 전설적으로 들어만 왔던 애밀레종을 연상케 했었다.


Mingun Bell에 대한 안내문이 돌판에 새겨져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설명을 요약하면 이종은 1808년에 당시의 왕 Bodawpaya에 의해 주조되여, 완성되지 못하고 중간에 건설이 중단된채 있다가 1834년의 지진에 다 망가져 페허가된  Mingun Pagoda에 헌납 할려고 했었다고 한다.  종의 무게는 90톤으로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2번째 큰 종으로, 3번째 큰 종은 Moscow에 있다고 하며, St. Paul에 있는 종보다 14배가 크다.  이종을 지지하고 있던 버팀목은 1839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파괴되였고, 1896년까지 방치되여 있다가 현재의 빌딩에 철재 Beam으로 고정시킨 고리에 올려 놓게 됐다.  이Bell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Bell 외부직경: 16피트 3인치, Bell의 윗쪽 내부직경: 4피트 8인치, Bell의 내부직경:10피트,
내부높이:11피트 6인치, 외부높이:12피트, Bell의 꼭대기 내경: 8피트 6인치.


Mya Thein Than Pagoda는 전체가 하얗게 건축되여 있는 특이한 모양으로, Bodawphayar왕의 아들이 건축했다고 한다.  불행 하게도 2대왕이기도한 그의 아들은 정식으로 왕위계승을 위한 Coronation Festival을 갖지 못한 불운한 왕으로,  그가 이 Pagoda를 건축한 큰 이유는 장차 이왕조의  Queen이 될 자기 아내를 위해서 였다고 한다.
각계단마다 7개의 Stream이 묘사되여 있었는데, 이는 당시에 7 Ocean 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 그가 정식으로  Crown을 쓰지 못했는지는 설명이 없어 아쉬웠었다.





Pagoda의 Entrance를 통해 나와 Lunar는 Guide의 안내를 받아 Pagoda의 꼭대기에 올랐다.




힘들게 올라서 내려다본 주위경관은 넓고 평화스러워 보였고,  불운한 2대왕의 당시 심경을 이해할려고 명상에 잠시 잠겨 보기도 했었다.


하나 하나의 Stupar 모양이 다 달랐다.  몇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금색의 Stupar 들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앞서 보았던 지진에 파괴된 사자상의 Pagoda와 대조를 이루었고, 정교해 보였다.






Myanmar에서는 자주 보곤 했던 재래식 변기는, 지금은 서구사회에서는 전연 볼수 없는, 얼른 보기에는 스핑크스의 얼굴을 연상케하는 모양으로, 볼일을 보았을때는 왼쪽에 있는 물탱크에 있는 물을 Container로 떠서 변기에 퍼붓는, 골동품이라서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있는 이곳 Min Gun  Region에서, 나와 Lunar는 옛선조들의 삶과 현재의 삶을 연결시켜 볼수 있었다.






다시 뱃길을 따라 Mandalay Hill을 향해 달렸다. 바로 Sunset을 보기위해서다.

약 10여년전에 예상치도 않게 Escalator까지 설치해 놓아, 관광객들의 발길을 편하게 하고 있는 배려에 감사해야 할지? Myanmar에 관광온 사람들에게 Sunset을 관망하는데 3곳을 Guide들이 추천해 준곳중의 하나가 바로 Mandalay Hill이라고 한다.  첫번째는 이미 다녀왔던 Golden Rock이고, 다른 한곳은 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보게 되는 Sunset은 의미가 클것 같다.






주로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 먼저와서 Sunset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과 합류하여 좀더 낳은 순간을 포착해 볼려고 틈새에 끼어들었다.  해가 서산넘어로 완전히 사라진후의
아스라히 보이는 Village는 어둠과 안개가 서로 엉켜 희미한 꿈속에서 본 마을의 전경같다.


Lunar 가 4명의 아릿다운 아가씨들의 부탁을 받고 셧터를 누르고 있다.  그녀들은 우리가 오늘 석양노을에서 보고 느낀 감정과는 다른 그들의 꿈을 실어서 기억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Sunset의 황홀함을 본뒤 다시 Temple로 들어와 Guide와 촬영하고, Buddha Statue는 구리로 주조된것이 아니고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것임을 그의 설명으로 알게됐다.



흰색의 두 건물은 하나는 Prison Cell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교 Campus라고 하는데, 원래는 수도 Yangon에 몰려있던 대학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각지방에 분산시키면서 이곳 시골에 대학이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후진국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대항하여 대학생들이 선두에 나서 데모를 하는것은 보편적 상황인것으로 알고 있다.  2년전 Myanmar 정부가 문호를 개방하기 전까지는 정권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의 데모같은 행동은 용납이 안됐었다고 한다. 우스개 소리로 대학생들에게 주는 메세지는, 캠퍼스에서 공부를 할것이냐, 공부대신 데모를 해서 Prison Cell로 갈래?라는 선택을 요구하는 의미로 이렇게  Shoulder to Shoulder 식으로 두 Facility를 건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Guide는 설명했다.  슬픈 사연이 깊들인 역사가, 40-50여년전의 고국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볼수 있었던 대학생들의 가두시위가 격렬했던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Sunset 관람을 마치고 Temple안에서 Guide 의 설명은 이어졌지만, 귀담아 듣고 싶은 여유가 없었다.  긴여정에서 온 피로탓이었을까?
Temple을 막나오려는 순간에 한Group의 Monks들과 조우했다.  생김새와 그들이 입은 복장의 색갈이 더 화려한것 같아 대화를 걸었는데, 이Monk들은 Thailand에서 이곳 Temple 탐방을 왔다가 우리를 만난것이라고 하면서 반가워 한다.    Canada, Toronto에서 왔다는 나의 소개에 그들은 더 반겨했다.  이렇게 순간에 친구가된것 처럼 얘기를 하고 다시 우린 헤어져야 했다.
"헤여지기위해서 만나는것이다" 라는 어느 유명작가의 한구절이 이런경우에 맞는것 같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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