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0, 2014

Day 14, Cambodia, Chiso Temple사찰 탐방, Tuol Sleng Genocide 박물관, Choeung Ek 'Killing Fields' 탐방.(11월11일,2014, 오후)

 동남 아시아의 사찰과 승려들의 생활은 거의 대동소이 한것으로 이해를 했으나, 여기 캠보디아의 Chiso Temple에서는 공동식당에 차려진 밥상으로 모두가 동시에 모여들어 점심을 먹는것이 조금은 달라 보였었다.  대부분 어린 아동들 처럼 보였으며,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만 6세부터 Monk가 되고 안되고는 본인들의 마음에 달렸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좀 낳은집에서는 처음 Monk가 되기위한 입소식(?)때는 축하 파티같은것도 해 준다고 한다.  마침, 공동식당의 한쪽에서는 새로 Monk가 되기위해 입소한 어린 아동들이 6일동안의 공동 훈련(?)을 마친후 내일 부터는 Novice로서의  Brown색의 Monk복을 입기위해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위해 정렬하여 훈장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있다.
흔히들 평하기를 동남아시아의 불교는 남방불교,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의 불교는 북방 불교라 일컬어진다.
스님들의 복장도, 북방스님은 회색옷에 한복을 따른 도포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이곳에서는 붉은 계통의 복장과 옅은 감색계통의 승려복을 입는 차이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것은 승려들의 목탁소리가 북방 불교에서는 요란한데,  이곳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염불외는것은 거의 없고, 학교처럼 불교강의를 집단으로 시키면서 승려의 길을 가는 것이 달랐다.  또한 현장 실습의 차원으로 나는 이해한것인데, 이른 새벽부터 무리를 지어 승려들이 그것도 맨발로 시주(?)를 다니고, 가정집이든 상점이든 이승려들이 들리면 보시할려고 미리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의 삶이 승려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인것을 깊이 느꼈었다.

VLC와 링크하여 동영상을 볼수 있다.
Choeung Ek "Killing Fields" 탐방의 첫번째 관문인 정문을 향해 들어서기전 한컷 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처럼 탐방하기위해 세계 각처에서 모여 드는것을 본다. 입구의 매표소에서는 Audio가 장착된 녹음기를 하나씩 듣기쉬운 언어로 녹음하여 탐방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로 영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이다.  우린 한국어 녹음기를 선택했다.
 거의 3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Pol Pot Regime의 잔혹상은 오래전 Siem Reap에 있는 Ankor Wat 를 방문할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곳의  Choeung Ek 사원은 Killing Field의 Centre에서, 모든 살육의 현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살인의 괴수, Pol Pot Regime은 1975년 4월 17일부터 수도 프놈펜으로 진격하여 1979년까지 약4년간 이유불문하고 살육을 자행 했었다고 한다.  전체 인구 약 8백만에서 3백만명, 그것도 젊고, 아직 사회활동을 할수 있는 남자들만을 골라 살육했다고 하니,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한마리의 Beast였던것 같다.  남자들을 붙잡아다, 글을 읽어 보라 시키고 더듬더듬 읽을줄 아는 사람, 안경을 낀 사람, 손을 만져봐서 부드러운 사람은 무조건 처형 대상이 됐었다고 한다.
 유골이 모셔진 이사원에는 수도 셀수 없는 Skeleton이 유형별로 진열되여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미여지게 하고, 죽음앞에서서 벌벌 떨면서 죽어갔을 캠보디아의 젊은, 또는 지식인들의 두려움에 쌓인채 처형당하기만을 기다렸을 그모습들을 상상해 보는것만으로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처형장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릴려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또 했었지만, 그럴수록 상상의 세계는 나래를 펴고 훨훨 내주위를 맴도는것 같았었다.
 위의 표지판은 한달에 2번 내지 3번씩 Tuol Sleng 감옥과  다른 지역에서 싣고온 추럭이 정차하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끌려온 사람들은 두건으로 두눈을 완전히 가리운채 차에서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웅덩이로 끌고가서 바로 총살 또는 창으로 찔러 살육을 저질렀다 한다.
 참배동안 경건을 부탁하는 안내문이 영어로 그들나름데로 정중하게 벽에 걸려 있었다.
나는 관광객으로 탐방하는 구경꾼에 불과 하지만, 당시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사시나무 떨듯이 공포에 쌓여 있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린 그영혼들이 아직도 가야할곳으로 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것 같은 한인간의 잔인함을 원망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참상이 없어야 할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것 같았다.
 Pol Pot는 1940년대에  라디오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였다고 한다.  동시기에 공산당에 입당하여, 모택동 사상을 숭배하게 됐고,  그곳에서 교사노릇을 하면서 동료들을 모았다고 한다. 세력이 커지면서 마침내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동료교사들을 먼저 처형하기시작했었다.
 젊은 청년, 문맹자들, 어린 학생들을 포섭하여 자기의 군대로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도시사람들은 농민들인 우리의 적이라는 사상을 주입시키는데 집중교육을 시켰었다고 한다.



 Pol Pot Regime은 나중에는 총알과 창을 사용하여 목숨을 끊은것도 아까워, 야자수 나무잎줄기에 톱날처럼 솟아있는 가시가 달린 잎사귀들을 눈을 가리우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후려쳐서 가시에 찢겨 피가 흘러나오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살육을 했다고 한다.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살육하기도 했었던 자리에는 위와 같이 설명서가 걸려 있었다.
                                      

1980년도에 발굴당시 위의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시체들은 마치 쓰레기 버리듯이 지하 얕은곳에 널려져 있었다고 한다.

 살육하는데 사용됐던 도구들, 즉 낯과 괭이, 칼,삽 도끼, 마차의 Shafts등이 진열됐거나 이것들을 사용하여 인간 도살을 했었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1980년에 대대적으로 이곳에서 발견된 집단매장된곳에서 남아있던 뼈와 치아들이 발견된 것이다.   원래 이지역은 당시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이 자기네들의 가족묘지로 이용하던 곳이었었다고 한다.  이묘지는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한적한 곳이기에 Pol Pot Regime은 이곳을 선택하여 그러한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집단매장된 묘지가 발견된곳이 너무도 많아 발견된곳마다 고유 번호를 부쳐, 순차적으로 탐방객들이 탐방할수 있도록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Audio 시스템으로 녹음되여, 그번호를 따라 걸어 가면서 음성을 들으면 쉽게 이해할수가 있었다.  Pol Pot Regime은 그들 자신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괴물들이었을것으로 상상해 본다.

 캠보디아 전역에 걸쳐 이와 비슷한 Killing Fields가 많이 있다는것은 오래전 Ankor Wat 탐방시에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외곽지역에서는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느끼게 하는, 매설됐떤  Mines들이 철거되지 않은곳도 많다고 설명한다.

 이곳은 집단매장된 곳을 1980년도에 발굴했을때 아직도 당시 입고 있었던 옷조각들이 발견된 곳으로 수집한 것들을  한군데 모아 후세 사람들이 보도록 진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100명이 넘는 시체의 잔해가 발굴된 곳이다.

 1980년에 이곳에서 발굴된 뼈의 잔해들이다.  구별도 할수 없어 발굴하여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수집한 옷조각을 발견될 당시의 상태 그대로 나무줄기 사이에 걸쳐놓고 그때의 참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담당 직원들이 주변을 청소 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나무에 확성기를 달아매고, 큰 소리를 내게하면서, 신음하면서 살육당하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희석시키곤 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나무를,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었다는  마술의 나무라고 불리고 있다고 했다.  살육을 하면서도 주위에 알려지는게 신경쓰였었나 보다.


 이분들도  우리처럼 탐방온 사람들이지만, 용케도 살육을 피해 살아남은 Local People이다.  이들의 형제, 자매, 친척들이 무더기로 살육을 당했을텐데.....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지금도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이와 비슷한 숙청이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보도돼고 있다.  캠보디아의 경험에서, 핵을 갖춘 세계의 강대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들은 겨우 한다는 조치가 강제성이 하나도 없는 UN Resolution 이나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  어떠 잔인한  살육행위가 벌어져도 내집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강건너 등불식으로, 행동이 없는 말잔치들만 하고 있는 이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W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재래 시장으로 가는길에 잘 진열된 값싼 장신구들의 진열장이 눈길을 끌었다.
 값싼 국수한그릇씩 주문해서 배을 채웠다.  다행인것은 모든 음식들이 끓여서 만들어 졌기에 일단은 먹는데 안심이 됐었다.  맛이 입에 딱 맞는것이 마치 월남국수(Pho)를 먹는것같은 느낌이 있었다. 값은 무척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지불하는값과 비교 했을때 말이다.  그러나 수입이 적은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매우 비싼 먹거리일수도 있을 것이다.





호텔방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뻥뻥 뭐가 터지는듯한 요란한 소리에 창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불꽃놀이(Fire Works)가 시작되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나 알아야 할것 같아 Front Desk로 가서 알아봤는데,  오늘이 이곳 캠보디아 현재왕이 탄생한 날이라 사람들이 축제로 화약을 터뜨리고 호텔바로 앞에 있는 넓은 공원에서는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야간 분수를 즐기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Lunar와 함께 바로 호텔앞의 넓은 광장으로 산보겸해서 나가 보았다.  분수대에서는 조명과 어울려 물줄기가 솟구치고, 가난한 시민들은 간간히 보였을뿐,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정도였다.



화려한 분수의 물줄기와 조명에서도 마음은 가볍지가 않았다.  Killing field에서 본 장면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다.  아직도 이들 살육자에 대한 재판은 끝나지 않고 진행형에 있다고 했다.
그들도 이제는 다 늙어서 곧 6피트 밑으로 갈자들인데.....재판이 어떻게 이아픔을 어루만져 줄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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