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25, 2019

싱어즈-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 - 송창식편, 격동의 어려웠던 시대의 배경도 정확히 설명됐었으면...

나는 한국이 낳은 천재 소년,청년, 장년, 노년의 시대를 살아가는 송창식 가수와 동시대를 살아왔기에 그의 노래 하나, 한구절 들을때마다, 당시의 어려웠던 시대상황들이 주마등 처럼 머리속에서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말의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 하기까지의 우리조국 대한민국은,  장발도 허락안됐었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Curfew가 실시되여, 이북으로 부터 남파된 간첩들의 활동을 막고, 색출해내기위해서, 그여파로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의 활동을 제약하기도 했었던 시대였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송창식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 가수들이 불러서 공전의 힛트를 한 노래들이 당국의 검열에 걸려 방송 금지곡이 됐었다.  심지어 불멸의 국민 가수로 추앙받고있는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도 금지곡으로 방송을 타지 못하고 창고에 처박혀 있었던, 그런 시대였었다.

어제 우연히 송창식의 "싱어즈 송창식" 코너를 인터넷을 통해 봤었다. 그의 천진난만했었던 과거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황혼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느 인생들과 다를바 없는, 그러면서도 때묻지 않은 그특유의 모습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할수만 있다면, Time Machine을 타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정도로 정겨웠었다.
당시 송창식을 비롯한 여러 당대의 가수들의 노래는, 젊은 청년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도 남을 주옥같은 노래들이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5천년 역사동안 후손들에게 보물처럼 내려져오던 보릿고개를 타개하고, 우리 다음세대에게는 절대로 그러한 가난을 물려주지않기위한 경제건설과,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던 이북의 김일성집단으로 부터 국토를 방어하기위해 모든 국가적 역량을 바쳐 주야로 온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여 매진할때의 시대상황하에서는, 쉽게 용납이 안돼는 반항적인 노래들로 인식되던 시대였었다. 당시 동남아의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등의 나라들은 한국의 GNP보다 4배 5배 앞서가선 경제 선진국 나라들이었었고, 민주주의 꽃을 피워 시민들의 자유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되게 자유로웠었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씨의 그깊은 전문성이 포함된 송창식 음악평에 대해서 나무랄데없는 귀중한, 역사적 평가로 이해 됐었으나, 그렇게 금지곡으로 방송을 못타고 창고에 처박혔어야만 했던 그시대적 배경에 대한, 절대 절명의,  배고픔을 해소하기위한, 5천년 보릿고개의 고통을 이겨내기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일정기간동안 자유를 유보시키면서,  경제건설을 해야만 했었던, 고통스런 뒷얘기들을 전제로한 간략한 시대적 설명을 곁들이고, 음악적 평가를 했었더라면 훨씬 더 값진, 모두가 수긍이 가는 쪽으로 이해를 했었을 것이다.  아깝게도 그분의 해석은, 그런 부분에 대한 앞뒤 내용은 거두절미하고, 당시의 독재정권은 그렇게 무자비 했었다는 식으로 재단을 한것에 대해서는 당대의 경제건설 현장에서 뛰었던 한 인생의 선배로서 매우 섭섭함을 금할길 없었다.

오늘날의 시대적 배경을 표준화 해서 평가한다면, 세종대왕도 성군은 커녕, 독재자요, 백성들은 그분의 소모품으로, 목숨은 법이 아닌 그분의 명령 한마디에 죽고 살고하던 시대였었다.  그런시대적 배경에 대한 공평한 평가는 너무도 인색한 현실이 한국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있음이 무척 안타깝다.

만약에 당시의 민주주의 선진국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처럼 모든 자유를 누리면서 절제없이 생활을 했었더라면....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은 필리핀 말레이시아같은  나라들이 부러워 하는,  잘사는 나라로서의 대한민국은 존재치 못했을 것임을 국민들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의 민주주의 열사라고 일부국민들이 추앙했었던 김영삼, 김대중 같은 분들은, 박정희를 독재자로 비난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 쫒아가 불도져 Shovel앞에 벌렁 드러누워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건설을 방해했던 분들이었다. 그분들의 주장은,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으면, 그위를 달릴 자동차도 없고, 기름도 없고, 박정희 독재자들만이 고속도로를 달리기 위해 건설하는것이라고 맹비난을 했었다. 그후 그두분들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대통령이 됐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기초를 다져놓은 Foundation을 뿌리채 흔들어 IMF까지 초래했었던, 경제적으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엉터리 민주투사임을 증명해주고 말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를 유보하고 경제건설을 하면서 많은 저항을 받을 때마다, "누군들 자유를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한 자유는,  걱정없이 먹고살수있는 경제적 기초가 마련됐을때에만 가능한것이다. 모든 욕은 내가 다 먹는다. 이다음에 내무덤에 침을 뱉어도 달게받겠다" 라고 국민들을 독려했었다.

나는 나보다 연령적으로 후배인 양희은양을 처음에는 좋아했었다. 그녀가 불러서 크게 힛트했었던 "아침이슬, 세노야 등등"의 노래는 신선한 느낌과 충격을 주었다. 그랬던 그녀의 노래역시 금지곡이 됐었다.
많이 동정도 갔었다.  그랬던 그녀가 발표한 자서전을 읽고난후부터 완전히 그녀는 두개의 얼굴소유자인것을 확실히 알면서 그녀의 노래뿐만이 아니고, 그녀가 나오는 TV 화면도 다른 체널로 돌렸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자서전에서는 완전히 쏙 빼버린, 이태리계의 남자와 난잡한 동거생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됐었는가의 처절한 이유를 나열했었더라면, 그녀의 솔직함에 더 동정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말고, 또 그녀의 계모에 대해서는 천편일률적으로 나쁜 여자로 묘사했다는것은, 자기 생부에 대해  아버지로서 인정을 하지않았다는 증거이기도했다. 계모의 그녀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은 한국에서 그녀의 이웃으로 살면서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이웃들에게 분노를 사게 하고도 남았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오는 방송은 안보게 된 원인이다. 이제는 인생 살만큼 살았으니, 위선으로 뒤덮혀진 인생살이를 솔직이, 실토하고 재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난 70여년간의 한국의 역사는 완전 왜곡되여, 국가 위정자들에 대해 편향된면이 너무도 많다. 현재의 좌파성향의 정권이 물러나고 시간이 흘러가면 다시 역사의 괘는, 이조실록이 어렵게 편집되여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 전해지듯이, 제위치를 찾아 재편집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의 좌파성향의  역사학자(?)들이 만든 한국사 책에는 "천안함폭침사건"도 "박정희 대통령의 헌신으로 오늘날 처럼 잘살게된 경제적 Foundation을 구축한 리더쉽"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이 없다.

송창식이는 노래하는 가수니까, 그의 노래가 금지곡이 됐는지의 이유에 대해 왈가왈부 할처지는 아니라는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노래를 평하는 Music Critic 들은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꼭 그배경 설명을 전제로 설명하면서 평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평론가들이 진정으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꼭 그렇게 설명해줘야 한국의 역사가 바로 설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의 중고등학생들의 한국 근대사에 대한 지식은 완전히 편향적으로, 어느 교과서는 6/25가 북침으로 시작됐다는 것으로 표기되여 있다고 들었다.  시대적 배경을 중립적으로 표현된 내용인데도, 내생각이 좁아 터져서 잘못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면 나는 겸허이 받아들일 것이다.

송창식의 독특한 창법의 노래는 국민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것으로, 그래서 그의 노래에 심취하게되며, 의심없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건강 유념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 있기를 기원 드린다.


www.youtube.com/watch?v=xxeR4BG7pLA

https://www.youtube.com/watch?v=y_ccjL0GXJM










No comments: